지구촌의 일류 문명국들(3)
(3)룩셈부르크
10월6일 (월)
오늘은 전용버스로 종일 장거리여행을 하는 날이다.
아침시간은 비교적 여유가 있다. 호텔에는 벌써 이태리에서 온 장거리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LDC (Long Distance Coach) 라고 하는 이 대형버스는 53인승으로 2층버스 비슷한 모양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승차감이 좋고 각종 기기와 장치를 갖추고 있다.
8시에 호텔을 출발하니 파리시내는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이라 활기가 있고 분주하다. 시가지를 벗어 나서는 낮은 구릉지대가 끝없이 펼쳐진 농촌지역으로 고속도로가 달리는데 동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몇 시간을 가도 비슷한 풍경이고 멀리 촌락이 보이지만 들에는 일하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장면을 한 번 본 것 외에는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사람구경을 못하겠다. 그런데도 들에는 작물이 있고 고속도로 주변에는 드문 드문 숲이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EC국가들의 농업인들은 복있는 사람들이다. 넓은 농토와 좋은 기후에 첨단 농기계와 기술을 갖추어 고생하지 않아도 들에는 농작물이 풍부하니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도 프랑스의 농민데모는 계속되고 있으니 왜 그럴까?
12시쯤 되니 추적 추적 비가 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2일간은 날씨가 좋아서 런던과 파리를 운 좋게 잘 구경한 셈이다. 유럽여행에서 우산은 항상 손가방에 넣고 다녀야 한다. 날씨가 좋다가도 갑자기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차는 산간 지방으로 접어 들어 한동안 달리는데 룩셈부르크 국경을 넘는다. 빗 속에 룩셈부르크에 도착했다.
룩셈부르크는 면적 2,500평방km(제주도의 1.3배)에 인구 44만명의 소국이다. 그런데도 1인당 GNP는 42,930불 (1999년)로 세계 제1위이며 철광과 금융이 주요산업이다. 입헌군주국가로서 앙리大公이 2000년에 즉위하였고, 수상이 실권을 행사한다.
높은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거리나 상점들이 화려하지는 않고 길거리에 사람도 드물어 옛날 시골도시같은 인상이다.
수도이름도 룩셈부르크 인데 빗속에 아돌프다리와 왕궁을 먼 발치에서 관광하고 중국식당에서 식사한 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로 출발하였다.

(4)하이델베르크
독일 남서부 네카르江가의 고색창연한 인구 13만명의 하이델베르크는 소도시이지만 1386년 루프레흐트 1세에 의하여 설립된 독일 最古의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때문에 유명하다. 또 1907년에 발견된 하이델베르크인(인류의 조상, 原人)으로도 유명하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는 강의실 도서관 기숙사등 건물들이 시내에 여기 저기 분산되어 있고,괴테, 헤겔, 야스퍼스등이 이 대학의 전통을 빛내는 이름들이다. 16세기 후반부터 종교개혁의 중심지 역할도 하였다. 독일어권의 유럽에는 ~berg 또는 ~burg 라는 이름의 도시가 많은데 berg는 산(山), burg는 성(城)을 의미한다.우리나라의 梁山, 慶州쯤 될까?
구시가지는 수백년된 건물들 사이로 폭 4~6m의 좁은 길에 손바닥보다 작은 4각형 돌들을 박아서 포장해 놓았는데 걷기에도 안 좋고 자전거나 차가 다니는 데에도 불편하겠다. 도시전체를 구경할 시간이 없어 실제는 어떤지 모르지만, 저녁때 잠시 본 바로는 경치가 썩 좋은 것 같지도 않고 인적도 드물어 그저 고풍스럽고 침침한 분위기이다.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서 볼거리가 없고 땅값은 매우 비싼 모양이다. 하이델베르크 고성(古城)은 고딕-르네상스 건축물로서 관광객의 시선을 많이 끌고 있지만 높은 곳에 있고 시간도 없어서 사진 한 장으로 대신하였다.
Griesheim이라는 시골에 있는 Aron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오히려 이 작은 호텔에서 볼거리가 하나 생겼다.
창문을 열려고 하니 창문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열 수 없는 창문인 줄 알았다. 아무리 보아도 열릴 것 같지 않은데 오른 쪽 끝부분에 작은 손잡이가 하나 있는걸 보면 여는 방법이 있긴 있는 모양인데 이상하다? 무조건 손잡이를 잡고 아래로 돌리니 창문위 부분이 바깥쪽으로 기울어지고 창문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깜짝 놀라 꼭 붙잡고 다시 보니 아래는 고정된 채로 위부분만 열려 있다. 또 밀어 보니 창문 전체가 열린다. 폭과 길이가 2m이상씩 되는 무거운 통유리창이 한 손으로 쉽게 열린다. 위만 열어서 환기를 할 수도 있고 전체를 열 수도 있게 설계되어 있다.
“ 나만 몰라서 그렇지 한국에도 어딘가 있을거야, 하여간 독일사람들 머리 좋구나“ 생각했다.
통일독일은 면적 35만 평방km에 8,200만명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다. 1인당GNP는 25,600불(1999년). 검소하기로는 세계 제1이다. 런던과 파리에서는 객실화장실에 욕조가 있는데 여기서는 그게 없다. 화장실에는 변기와 세면대가 있을 뿐 한쪽 구석에 미닫이 커텐을 두르고 선채로 샤워만 하도록 되어 있다.

(5)로텐부르크와 뮌헨
10월7일 (화)
오늘도 몇백 km를 이동하는 일정이다.
호텔을 출발하여 한참 후에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창 밖에는 숲이 시야를 가려서 볼 것이 없고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작은 도시로 들어서는데 중세기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로텐부르크이다. 독일의 중남부 뷔르츠부르크에서 남쪽으로 오스트리아국경 근처 퓌센까지 약 300km에 이르는 도로에는 중세의 모습이 남아 있는 소도시들이 많은데 “로맨틱 가도”라는 이름을 붙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그 중간 쯤에 있는 로텐부르크는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중세도시이다. 비가 오고 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주차장에서부터 우산을 쓰고 작은 성벽문으로 들어 서니 좁은 골목들이 나오고 성벽과 종루, 중세기 건물들이 있는 시가지가 있다. 돌을 깔아 포장을 한 음산하고 좁은 길에는 우산을 쓴 노인들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 가는데 때마침 종소리가 들리면서 여운이 길게 퍼져 나가 마치 지금이 1000년 전의 중세기인 양 착각이 들었다. 시청앞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부근에 있는 야곱교회를 둘러 보았다. 전부 600년 이상된 건물이라고 한다. 시청사도 낡을대로 낡아서 출입하는 사람이 없고 안에 직원들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지루한 고속도로를 달린다. 잠을 청하였지만 잠은 오지 않고 차창밖에 비만 내린다. 심심한데 시나 한 수 지어야 겠다.
중세기 노인을 만나다
ㅡ로텐부르크 고도에서ㅡ
야곱교회 푸른 벽에 희미한 양각그림
동강난 시간들을 간신히 이어 주니
중세기 살던 노인을 여기 와서 만나네
고성을 두들기는 종소리 긴 여운에
동양의 먼 길손들 꿈속을 헤매다가
야릇한 타임머신을 뒤로 하고 떠난다
몇 시간을 달렸는지 남부독일 최대의 도시 뮌헨에 도착했다. 인구 130만명으로 독일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며 1200년부터 약700년간 바이에른公國의 수도였다. 뮌헨올림픽(1972년 제20회), 맥주의 고장, 상공업도시, BMW본사소재지, 알프스 부근의 관광도시, 3개의 고속도로교차점, 국제열차발착지, 세계각국으로 통하는 국제공항(리임공항)등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오후 늦게 도착하여 중앙역을 중심으로한 마리엔광장, 대학가의 거리이며 예술가의 거리인 슈바빙거리, 100년된 네오고틱양식의 신시청사등을 구경하고 2시간도 머물지 않고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로 출발했다. 신시청사에는 종탑이 특징인데 정오가 되면 10분간 뻐꾹시계같이 인형들이 나와서 춤을 춘다고 한다.

(6)인스부르크
밤 늦게 알프스산맥의 북쪽기슭을 타고 올라 오스트리아의 도시 인스부르크에 도착하엿다.
시 외곽지역 산록에 있는 레스토랑 호텔에 여장을 풀었는데 유럽여행중 가장 좋은 숙소였다. 저녁식사도 맛있고 푸짐하며, 방에는 침대2, 아동용침대2, 의자2, 화장실, 빨래 건조장치가 있는 목욕실, 간단한 음식재료가 있는 주방, 4인용 식탁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 간단한 빨래를 하고 목욕도 시원하게 하고 나니 피로가 확 풀린다.
프랑스,독일과는 인심이 아주 다르다. 더운 물도 넉넉하게 쓸 수 있고 종업원들도 웃는 얼굴에 아주 착해 보인다.
오스트리아는 과거 오스트로-헝가리 왕국으로서 대국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후 1918년에 영토의 73%가 폴란드,첵코,헝가리,유고등 신생국으로 분할되고 27%만 남아 현 오스트리아공화국이 되었다. 면적 8만 평방km에 인구 8백만의 소국이다. 1인당 GNP 25,430불(1999년),역시 고소득국가이다.
10월 8일(수)
새벽에 싸늘한 산속 공기를 마시며 30분간 산책하였다. 산에는 흰 눈이 덮혀 있고 스키장들이 보인다.
인스부르크는 1964년과 1976년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곳인데 도시규모가 작아서 도보로 반나절이면 다 구경할 수 있다. 오전에는 유럽에서 아름다운 거리로 손꼽히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와 황금지붕이 있는 건물, 그리고 머리에 물을 찍어 바르면 지혜가 솟는다는 <지혜의 샘>을 구경하고 Inn강 다리위에서 사진 1장 찍은 것이 전부이다. 강은 알프스의 눈녹은 물이 굽이치는 급류로 래프팅의 명소이다.


(지혜의 샘)

(7)루체른
점심식사후 스위스로 출발하였다. 스위스 루체른 근처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기까지 펼쳐지는 알프스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코발트 빛 하늘과 흰 구름과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들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풍경은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 하고 계곡과 터널을 지날때마다 장면이 바뀌어서 지루하지도 않다. 자동차로 5분이상 걸리는 긴 터널도 놀랍고, 가파른 산록의 눈속에 묻혀있는 집들도 인상적이다. 날씨가 좋아서 알프스를 가장 멋지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호수가를 따라 길게 뻗은 들도 있고 도시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스위스는 크고 작은 호수가 수없이 많은 나라이다.

오늘의 숙소(Lowen Hotel)는 루체른을 한참 지나서 호수가에 길게 자리잡은 작은 마을에 있다. 창문을 열면 새파란 호수와 병풍같은 설산이 눈을 시리게 한다. 아직은 어둡지 않아 호수가에 나가보니 선착장같은 시설물이 있고 수심이 아주 깊어 보인다. 여행중 처음으로 집을 짖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닭과 고양이가 졸고 있다.
스위스는 면적 4만 평방km에 7백만명이 사는 작은 나라이지만 1인당 GNP는 38,380불(1999년)로 룩셈부르크 다음가는 고 소득 국가이다. 이런 산골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소득을 올리는지 정말 대단하다. 아시아의 네팔과 비슷한 환경인데, 네팔은 면적 14만 평방km,인구2,500만명에 풍부한 산림자원과 수자원 그리고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민소득은 220불 밖에 안되니 인간능력에 그렇게 큰 차이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