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기행
날씨는 기행의 맞춤인양 완벽했습니다.
영모정앞에
흐르던 영산강을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제법 먼 거리라 유유자적 황토돗단배는 타보지 못했지만 지나는 배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풍경이었습니다. 선비들의 멋과 운치를 인문학기행 중에 느끼는 시간입니다.
의례 마지막
토요일은 인문학 기행일이라고 달력에 못박힌 듯 정해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시인의 해설은
그 시대를 살아도 못 풀어낼 역사의 한 올 한 올을 명쾌하게 들려줍니다.
많이 듣고
쌓이게 되니 역사의 흔적들이 스며들어 내 것이 되는 것도 생겼습니다.
백호 임제
선생의 700여편의 시중에서 김시인님이 번역한 몇 편을 긴 여행길에서 몇 사람이 낭독을 하여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삼십대 중반의
백호, 시인이며 관리가 된 임제선생께서 죽은 황진이 무덤가를 지나며 지었다는 시는 여러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시였지요. 그것으로 임제선생은
긴 공무원생활을 못하였다지요. 황진이를 운운하고, 차갑고
도도한 한우도 녹여낸 그는 호기 좋은 사내였나 봅니다.
전라도의
라는 나주였듯이 나주평야가 끝없이 펼쳐진 곡창지대, 호남의 천년고도인 나주, 이곳을 나는 어찌 처음인지...... 인문학기행 덕에 값진 여행을 하게 됩니다.
국립나주박물관이 있는 반남고분군터는 백제 이전의 마한의 수도였던 것 같습니다.
삼한시대
때라고 추정만 할 뿐 글줄 하나가 없어서 경주나 공주처럼 수도였다는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남는 그곳은 놀람 그 자체였습니다.
고분에서 일본은
도둑같이 많이 가지고 갔다고 하고도 남은 것들 중에도 귀중한 보물이 많았습니다.
능에서 나온
것들 중에 옹관의 흔적은 많이 놀라웠습니다. 거대한
옹기를 보고 혹시 모형을 전시한 것이 아니냐고 물으니 출토된 것이라 합니다.
박물관 꼭대기
전망대에서 ‘아~” 하고 탄식이 나왔습니다. 여기가 '나주의 자미산이구나' 했습니다.
천문의 자미원과
자미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던 것이 이곳이구나를 그때 알았습니다.
고대 왕들의
무덤인듯한 능들은 필리핀 보홀섬의 둥근 산봉우리처럼 펼쳐진 그곳에서 나주의 잊히고 묻혔던 역사의 끈 하나를 찾은 것 같다.
산책을 하듯
걸어서 돌 비석 두 개가 서있는 거대한 능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글이란 게
이토록 중한 것을... 갑골의 흔적도 찾지 못해 적을 것이 궁색해진 후손들이다
작은 동산
두 개가 멀리 영암의 월출산 배경으로 어우러져 이어져 있는 능앞에 섰다.
물배수관이
그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월출산을
뒷배경으로 능 앞에 서서 나주 여행팀들과 개성 있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 순간
그곳에서 나는 우주의 기운을 느꼈다
역사기행의
매력 중에 하나는 우리민족의 혼을 느껴보는 시간이며, 잃어버린 세포의 기억을 찾아주는 여행이다.
익히 알려진
근 현대의 문인들과 조선의 문인들의 흔적들 틈 사이로 고대 역사의 숨쉼을 듣는 시간이었다.
자미산과 고분들, 인터넷에서 국립나주박물관을 검색하여
보니 시월의 마한 축제 소식이 있다.
오래 묻혀있던
나주가 고대의 기운이 들썩이는 것도 같다.
역사는 전쟁과 승자의 기록이라 왜곡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여도 묻혀있는 흔적들이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자미산과
고분들
여서완
고대왕국의
흔적만 남고
설화도 자취를
감춘 반남고분군
우주선아래
우주 별똥별로
떨어져
생경하게
오늘 여기 섰다.
무덤 속
발굴된 유적 앞에
이유 없는
이유로 느낌표가 남는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미이라보다
값진 역사가
옹관속에서
숨쉬고 있는
황궁천제의
자미극좌물화자연
그곳의 시작이
여기였구나!
죽설원, 화가의 정원
인사동 화랑에서
전시때에 보고
그의 참새를
흉내내어 그려 보았던
시원 선생이 계시는 나주의 죽설원
뭔가 그리우면
펼쳐보던 화가의 정원
백일홍인
불꽃으로 피고
옥잠화가
하얀 미소를 머금고
상사화가
피어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연락을 드리니
긴 안데스
여행 후
피곤속에서도
반갑게 맞아 주신다.
기와장의
촉감을 기억하는 손이
책장을 넘기며
여행중 그림자처럼
사라져
번개처럼 다녀와
숨통만 틔었어도
황홀했다.
기약만 남겨둔
그래서
훌쩍 다시
가 봐야 할 그곳
갈 곳 또
한곳이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