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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고원
곧 해가 뜰 시간이었다. 새벽어둠 속에서 검은 선으로 서 있던 나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천사백오십팔 미터, 기상실황판에 나타난 기온은 영하 이십 도였지만 체감온도는 그보다 한참 아래였다. 제욱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밑에서 시작해 시야 끝인 하늘과의 경계선까지, 파도처럼 펼쳐진 겨울 산맥들이 흰빛으로 덮여 있었다. 밤새 영하의 골짜기를 떠돌던 물 입자들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으면서 피운 상고대였다.
시야가 맑은 날은 동쪽 바다까지도 내다보이는 곳이었다. 운무가 자욱한 날은 봉우리들이 섬처럼 떠다녔다. 제욱은 지금 발왕산 정상에 서 있었다. 멀리 선자령의 풍력발전기와 넓게 펼쳐진 목초지가 보였다. 목초지를 시작으로 조금씩 색깔을 달리하며 평탄면이 이어졌다. 그 고지대 벌판은 더 높은 산들에 둘러싸인 분지형 고원이었다.
제욱은 고원을 내려다보며 자리에 섰다. 제욱이 지금부터 걸어 내려가려는 곳은 발왕산의 북쪽 사면이었다. 용평스키장의 총 이십팔 면 슬로프가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곤돌라와 리프트가 운행을 시작하려면 한 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산 정상에는 제욱밖에 없었다. 가파른 비탈 앞에 서자 제욱은 그대로 활강을 시작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제욱은 아이젠에 의지해 슬로프를 한 발 한 발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스타트 지점까지 이백 걸음, 스타트 지점에서 레인보우 삼거리까지가 오백 걸음. 제욱은 삼거리에서 레인보우1 슬로프로 접어들었다. 스키를 타면 삼 분이 안 걸리는 곳이었지만 걸어서 내려가자 경사마저도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해발 천오백 미터에서 몰아치는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시야를 가렸다. 제욱은 휘청거리며 곡선 코스로 걸어갔다. 레인보우1 슬로프만의 속도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안전펜스에 걸려 있는 위치표시막이 보였다. ‘현재 위치 RR-10 레인보우1. SOS : 패트롤실 033-330-7362’
제욱은 그곳에서 멈춰 섰다. 사고 지점이었다. 몇 번을 올라와 확인한 곳이었지만 거기엔 사고를 일으킬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안전펜스 밖으로 늘어선 주목 군락뿐이었다. 제욱은 겨울 산에 포위된 듯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무에 맺힌 얼음꽃들이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제욱은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속눈썹 끝으로 다른 기운이 새어드는 게 느껴졌다. 제욱은 알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눈을 떴다. 멀리 고원 끝에서, 미처 어찌할 새도 없이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
“원래 이쪽 지역 분이시오?”
명함을 건네자 노인이 물었다. 제욱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뒤이어 레인보우1을 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노인은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듯 조금 웃었다.
“아니지. 이렇게 물어보는 게 낫겠군. 레인보우1을 좋아하시오?”
노인은 소주 한 병을 반 넘게 비운 뒤였다. 제욱보다 한참 전에 와서 제욱을 기다린 듯했다.
“그런 편입니다.”
노인은 제욱 앞으로 황탯국을 하나 시켜주더니 잠시 후에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식당의 통유리 바깥으로 송천교가 내다보였다. 송천 건너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황태 덕장이 보였다. 덕장 너머로는 제욱이 발왕산 정상에 갈 때마다 내려다보던 고원이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옛날에는 저 횡계 고원이 다 황태 밭이었지. 그때만 해도 동해에서 명태가 꽤 잡혔는데 말이야. 속초에서 명태를 싣고 와서는 여기 송천에서 일일이 씻고, 꿰고, 통나무 덕에 걸어 말렸지.”
노인은 황탯국 뚝배기를 제욱 쪽으로 더 밀었다.
“들게. 식기 전에 어서 들어.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말게. 명태가 황태 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아나? 하늘이 도와야 나오는 게 이 황태야. 황태 남기면 벌 받네. 빨리 먹어.”
길게 썬 두부 사이로 뭉툭하게 찢어 넣은 황태가 보였다. 생감자도 투박한 모양으로 들어가 있었다. 리조트 직원 식당에서 나오는 황탯국보다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제욱은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었다가 한 그릇을 금세 비우고 말았다. 그동안 왜 이 집을 몰랐을까 싶을 만큼 국물 맛이 진했다. 땀을 닦으며 고개를 드니 노인은 제욱의 명함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역민은 아니고, 스키는 꽤 타시고, 스키가 좋아서 아르바이트로 왔다가 어찌어찌 눌러앉은 게로군. 나이로 보나 직급으로 보나 발왕산에 들어와 산 지는 낼모레면 십 년이겠고. 안 그렇소, 용평리조트 총무과 윤제욱 대리님?”
제욱은 그제야 노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오랫동안 찬 바람과 땡볕 속에서 일을 해온 자의 피부 결이었다. 얼굴도 손도 거칠었다. 눈동자가 누르스름해 지병이 있는 듯도 보였지만 눈빛은 차고 묵직했다.
“나도 여기 사람은 아니었지. 영동고속도로 뚫릴 때 공사 인부로 평창에 처음 들어왔네. 용평스키장 개장 공사 때 여기 발왕산에서 막일도 좀 하고. 덕장도 기웃거리고. 그러다 눌러앉았지. 자네처럼. 흐흐.”
스키장 개장 공사 때라면 1970년대 초중반일 것이었다.
“하긴, 자네가 궁금한 건 사십 년 전 얘기가 아니겠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바쁜 시간 쪼개서 나온 걸 테니.”
노인은 소주 한 잔을 들이키더니 긴장한 사람처럼 침을 삼켰다.
“혹시 말이네. 스키 타다 사고당했다는 사람들 말이야. 넘어질 때 뭔가를 보지 못했다던가?”
제욱은 마시던 물 잔을 내려놨다.
“무엇을…… 말입니까?”
노인은 얼굴을 풀며 맥없이 웃었다.
“그러게. 그게 뭘까. 뭐냔 말이지. 이게 뭐냔 말이야.”
제욱도 답답한 마음에 술을 들이켰다. 레인보우1 슬로프는 용평리조트 슬로프 중에서 경사도가 가장 높은 최상급자 코스였다. 난이도가 있는 만큼 중환자도 종종 생기는 곳이었지만 이번처럼 사고가 한 지점에서만 일어났던 적은 없었다. 레인보우1 슬로프는 구성과 설질에서 최고 레벨로 꼽히는 곳이었고 크고 작은 대회도 여러 번 치러낸 곳이었다.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국제경기용으로 공인을 받은 지 오래였다.
초중급자가 레벨에 맞지 않게 상급자 코스로 가서 생긴 사고가 아니었다. 사고자들은 모두 최상급자들이었다. 안전시설물 이상도 아니었다. 첫 번째 사고 이후 바로 설질 검사와 슬로프 보수를 했지만 사고는 같은 장소에서만 일어났다. 리조트 쪽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제욱은 패트롤들이 찍은 현장 사진과 사고 보고서를 몇 번이나 들여다봤지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임원들 입에서는 그 자리에 수맥을 짚어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노인이 연락을 해온 것은 그때였다. 노인은 사고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담당 실무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나는 사람을 하나 찾고 있네.”
노인이 입을 뗐다.
“실은 사십 년째 찾고 있지. 그 사람이 여기 있을 것 같네. 살아 있다면 틀림없이 여기 있을 거야.”
“여기라면.”
“발왕산 말이네.”
“지금 하시는 얘기가 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인가요?”
“있을 것만 같네. 없을 수도 있겠지만.”
노인은 피로한 얼굴로 등을 기댔다. 제욱은 송천을 내다보았다. 차를 타고 지나다니기만 했던 곳이었다. 앉아서 건너다보니 송천은 생각했던 것보다 폭이 넓고 잔잔했다.
“오늘은 이쯤하지. 난 요새 저녁마다 여기에 있네. 수십 년 된 단골집이지. 퇴근하고 시간이 되거든 언제라도 들르게.”
노인은 외투를 집어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이름은 김필상이네. 난 자네가 마음에 들어. 따지고 보면 우리 다 발왕산에 뭐 하나씩 묶인 사람들 아닌가. 자네도, 나도, 그 사람도.”
노인은 출입문을 열고 나가 송천교를 건넜다. 어두워진 천변 위로 덕장 불빛이 어른거렸다. 그 사람이라. 사고 업무로 녹초가 되어버린 제욱은 멍하니 중얼거리다 몸을 일으켰다.
*
며칠간 내린 비로 눈 상태가 좋지 않았다. 용평리조트 전 슬로프에서 보강 제설이 이어졌다. 겨울 시즌 행사 준비와 사고 처리로 제욱은 야근이 잦았다. 사무실에서 밤을 보낼 때도 있었다. 담배를 피우러 사무실 발코니로 나가면 자동제설기가 뿜어내는 눈가루가 야간 조명 위로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제설기들은 슬로프 능선 곳곳에 서서 쉬지 않고 눈을 뿜어올렸다. 흰 가루들은 밤새 발왕산을 안개처럼 채우다 흩어졌다. 발왕산 정상에서 시작되는 가장 고지대의 슬로프, 레인보우에도 제설기가 돌고 있을 것이었다.
야간작업을 마친 제설 팀이 퇴근하는 것을 보면서 제욱은 병원으로 출발했다. 한 명은 무릎 십자인대 파열, 한 명은 어깨와 팔 골절, 또 한 명은 하반신 마비라는 큰 부상을 입었다. 보험 처리를 위해 사고자들을 만나고 돌아오니 어느새 늦은 저녁이었다. 사고자들은 사고의 순간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제욱은 노인의 말이 걸려 혹시 시야 장애가 있지는 않았는지 물었지만 사고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고만 했다. 그냥 갑자기, 순식간에 넘어졌다고. 잡생각이 떠올라 집중도가 떨어진 건 아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쓸모 있는 질문은 아닌 듯했다. 잠깐 사이에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가는 게 사람 머릿속이었다. 그걸 알아채고 다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했다.
제욱은 어두워진 횡계 로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직원 아파트가 아닌 송천변으로 차를 몰았다. 김필상 노인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뭐 좀 알아냈나?”
“우연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세 사고가 원인이 꼭 같으란 법은 없잖습니까.”
제욱은 자리에 앉자마자 필상에게 항의하듯 말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나. 어떻게든 사고 원인을 꿰어서 해결책 내놓고, 보고서 쓰고, 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건 자네 아닌가?”
필상은 제욱의 표정을 훑었다.
“혹시 네 번째 사고를 기다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미안하네.”
시끌벅적했던 테이블이 하나둘 비어갔다. 둘은 말없이 술을 마셨다. 서너 잔이 더 들어갔을 때 필상이 말을 꺼냈다.
“자네 봉산리에 들어가봤나?”
“진부 봉산리 말씀입니까?”
“그래. 사람들이 곤돌라 타고 올라가서 다 같이 내려다보는 여기, 횡계리 용산리 일대 말고. 그 반대쪽, 산 너머 산에 숨어 있는 마을 말이네.”
봉산리라면 발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었다. 등산 중에 초입까지 가본 적은 있지만 마을로 들어가본 적은 없었다. 오래전에 폐허가 된 마을이었다.
“지금이야 신기리 쪽으로 길이 뚫렸지만 옛날엔 이쪽 용산리에서 봉산리로 가려면 천 미터가 넘는 발왕재를 넘어야 했네. 겨울에 눈이 쌓이면 거기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아예 바깥 마을로 나오질 못했다더군.”
한파가 다시 오려는지 통유리로 새어드는 웃풍이 만만치 않았다. 며칠 내로 폭설이 온다는 예보도 있었다. 다들 제설기가 뿜어내는 인공설이 아니라 자연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조트에는 좋은 소식이었다.
“자네 말이네.”
필상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천 미터가 넘는 고개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그 고개를 넘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제욱은 송천을 내다보던 시선을 돌려 필상을 보았다.
“사십 년 전에 말이야, 내가 한 사내를 만났네. 천 미터 너머 봉산리에서 온 사내였지. 이 횡계 고원에서, 그 사내랑 딱 겨울 한 철을 같이 보냈네.”
웃풍이 찬데도 식당 구들은 뜨거웠다. 황탯국 때문인지 소주 때문인지 제욱은 배꼽 밑에서부터 더운 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 봉산리 사내랑 석 달을 같이 있었는데, 사내가 자기 얘길 해준 건 하룻밤 몇 시간뿐이었네. 그날 말이야, 새벽이 오고 해가 뜨는 걸 둘이 같이 봤지. 사내가 해준 얘기를 사십 년 동안 곱씹다보니 말일세, 그 사람 인상이랑 얘기들이 뒤범벅이 돼서 나만 아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어. 이제는 진짜 그 사내가 해준 얘긴지 헷갈릴 정도라네.”
제욱은 붉게 달아오른 필상의 얼굴이 뜻밖이라 한참 쳐다보았다. 창밖 바람 소리가 거셀수록 안쪽 취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봉산리 사람이라면 발왕산에서 태어나 발왕산에서 자란 사람일 것이었다. 제욱은 자기도 모르는 새 한 사내 얘기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요 며칠 필상의 얼굴에서 느껴진 기대와 회한 같은 감정들이 새삼 도드라져 보였다. 필상은 젊은 시절 한 사내와 보낸 석 달을 잊지 못해 여지껏 헤매고 있다는 얘길 하는 것이었다.
*
필상이 봉산리 사내를 처음 본 곳은 지금의 실버슬로프 자리쯤이었다. 발왕산에 벌목이 끝나고 슬로프 자리에 흙 성토 작업이 한창일 때였다. 현장 소장이 몸집이 작은 사내 하나를 밖으로 패대기치고 있었다. 사람들이 끌어내는데도 사내는 공사가 한창인 산속으로 계속 들어가려고 했다. 사내는 뾰족하고 기다란 꼬챙이 하나를 들고서 흙 성토가 끝난 자리 여기저기를 찌르고 다녔다. 기껏 다져놓은 곳을 망치는 격이니 다들 미친놈이라면서 욕을 했다.
필상 또한 웃기는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내는 필상의 머릿속에서 곧 잊혔다. 스키장 공사가 끝나고 다음 해 봄부터 가을까지 필상은 대화에 있는 감자 원종장에서 막일을 했다. 겨울이 되었을 때 필상은 원종장에서 알게 된 사람의 소개로 횡계 고원에 있는 황태 덕장에 가게 되었다. 덕대를 세우거나 황태를 거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갔지만 필상이 갔을 때는 그런 작업이 모두 끝난 뒤였다. 필상이 덕장주를 따라 올라가서 본 것은 드넓은 대지 위에 빽빽하게 걸려 있는 수백만 마리의 황태였다.
통나무 덕대 아래서 황태들이 눈을 맞고 있던 풍경이 필상은 아직도 생생했다. 하늘로 벌어진 황태 입마다 눈이 수북이 쌓여 그대로 얼어붙고 있었다. 필상이 물고기 떼를 그야말로 떼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필상이 할 일은 봄바람이 불 때까지 서너 달 동안 황태들을 지키는 일이었다. 겨울을 일거리 없이 흘려보내는 것보다야 낫겠다 싶어 온 것이었지만 고원을 둘러싼 산들을 보니 필상은 겁부터 났다. 잘못하면 황태 옆에서 얼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산짐승들이 황태 냄새를 맡고 어슬렁거리면서 내려올 생각을 하니 잘못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주는 필상을 황태 밭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 산막이 하나 있었고 산막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둘이 낮과 밤을 번갈아가면서 황태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필상이 그 일을 하기로 한 건 자신이 낮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필상은 처음에는 사내를 몰라봤다. 그러나 사내가 보물처럼 지니고 다니는 꼬챙이를 보고는 벌목된 산에 들어가려다 얻어맞던 작고 까만 남자를 기억해냈다. 그러나 그뿐, 사내는 필상과 말을 섞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교대할 때 외에는 얼굴을 볼 일도 많지 않았다. 필상은 마을에서 아침과 저녁을 해결하고 잠도 마을에 내려가 잤지만 사내는 아침이 되어 교대를 해도 덕주 집에서 자는 것 같진 않았다. 낮 동안 어디를 헤매다 돌아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원의 한겨울 바람은 상상을 초월했다. 방한 비닐을 두른 산막이라고 해도 추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추위에 떠는 필상과 달리 사내는 겨울 산에서 나서 겨울만 살아온 사람 같았다. 눈이 반들반들한 게 민첩했고 손재주도 좋았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던 산막을 나무로 괴고, 비닐로 두르고, 못으로 박고 해서 꽤 지낼 만하게 해놓았다.
황태를 지킬 시간이 되면 필상은 마을에서 고원으로 올라갔지만 사내는 산에서 고원으로 내려왔다. 손에는 청설모나 메토끼 같은 게 들려 있었다. 사내는 얼어 있는 송천 물을 깨고는 토끼털을 뽑고 살을 발라내 칼집을 냈다. 잘라낸 드럼통에 장작을 때려 넣고 불을 피워서 그 위에 토끼 고기를 구웠다. 필상이 밤이 되어서도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산막에서 눈을 붙이게 된 건 사내가 기가 막히게 구워내는 토끼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 보니 둘은 드럼통 장작불 옆에 마주 앉아서 고기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들은 고원 너머로 해가 지는 저녁이 되면 말 한 마디 없이 수그리고 앉아서 그렇게 고기만 뜯어 먹었다. 사내 둘이 가까워지는 데에 다른 절차는 필요 없었다.
“돼지고기, 소고기하고는 비교가 안 되네.”
필상이 토끼 다리뼈를 알뜰하게 빨아 먹으면서 말했다.
“난 돼지랑 소 맛은 몰라. 토끼랑 닭 맛은 알지만.”
봉산리 사내의 말이었다. 얼핏 보면 사내애인지 성인 남자인지 구별이 안 되는 앳된 얼굴이었다. 둘 다 이십 대 중반을 넘지 않았을 때니 어리고 젊을 때였다. 필상은 마을에서 강냉이 막걸리를 공수해오고 파랑새 담배도 몇 보루 가져다 산막 안에 쌓아놓았다. 그들은 얼음이 버석버석한 술을 녹여 마시고 곱은 손으로 담배를 피워가며 고원의 추위를 견뎠다.
해는 빨리 떨어졌다. 산막 안에서 몸을 녹이다 설핏 잠이 들면 봉산리 사내가 덕장 저쪽에서 양철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짐승들을 쫓는 소리였다. 겨울 산에서는 멧돼지나 삵 같은 것들이 수시로 내려왔다. 몇 해 전만 해도 호랑이가 출몰했었다는 산이었다. 둘은 밤마다 컴컴한 산을 향해 전짓불을 휘두르며 덕장을 돌았다. 산짐승들은 어둠 속에서 두 눈만 빛내며 소리 없이 덕장으로 접근했다. 컴컴한 산에 떠다니는 야광 눈빛을 보면 필상은 괴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면서 전짓불을 들고 겅중겅중 뛰었다. 반면에 봉산리 사내의 전짓불은 조용히 움직이다가 순식간에 산 전체를 휘저어놓았다. 사내가 산으로 보내는 불빛을 보고 있으면 짐승들을 쫓는 건지 불러들이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사내는 티가 안 날 만큼만 황태들을 떼어서 산 밑에 둘러놓기도 했다. 산토끼에 대한 보답이려니, 필상은 생각했다.
영하 이삼십 도를 맴도는 고지대의 추위는 황태가 마르기에는 최적이었다. 밤새 칼바람에 꽁꽁 언 황태들이 낮이 되면 겨울 햇빛에 조금씩 녹았다. 그렇게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황태들은 속살이 노랗게 부풀어갔다. 필상과 사내가 같이 보낸 시간은 명태가 황태가 되던 시간들이었다.
필상은 제욱에게 말했다. 그해 겨울에 횡계 고원에는 수백만 마리의 황태와 사람 둘, 바람과 햇빛이 있었다고.
*
심야 스키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제욱은 혼자 리프트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엔 레인보우와 주목, 봉산리, 벌목 같은 단어들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은 겨울이었다. 겨울이 되면 제욱은 약속도 잡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런 건 봄부터 가을까지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겨울 중 근무가 없는 시간엔 주간이든 야간이든 제욱은 스키만 탔다. 제욱에게 겨울은 산속에만 있기에도 하루하루가 아깝고 귀중했다. 지난 며칠처럼 낯선 사람과 술잔을 앞에 두고 한참씩 앉아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제욱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일 수 있었다. 어쩌면 레인보우 슬로프 사고와도 상관없을지 몰랐다. 그런데도 제욱은 필상에게 봉산리 사내 얘기를 들은 뒤 하루도 그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지금은 스키 장비 없이 리프트만 타고 어두운 산에 올라가고 있었다. 뭘 보러 가는 걸까. 나무를 보겠다는 건가?
리프트 아래로 심야 스키를 타는 스키어와 보더들이 쉭쉭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들은 금세 리조트의 야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겨울에는 낮보다 밤이 더 밝은 곳이었다. 콘도와 베이스의 불빛, 슬로프를 따라 이어진 라이트타워 행렬들. 리프트에서 내려다보면 야간 조명에 둘러싸인 겨울 발왕산은 거대한 환영 같았다. 금세 흩어져버리는 제설기의 눈구름을 볼 때, 어두컴컴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골짜기와 라이트타워의 불빛을 번갈아 내려다볼 때, 제욱은 비눗방울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펑 터져서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산의 실체가 느껴질 때는 오직 심야 스키를 탈 때뿐이었다. 한밤에 산을 활강해 내려오다 보면 겨울 산의 컴컴한 여백들이 제욱만을 감싸며 달려들었다. 어둠 때문에 시야가 좁아지는 대신 산 전체의 바람을 혼자서 누리는 짜릿한 순간이 오는 것이다. 겨울에 맛보는 몇 번의 심야 활강을 위해 제욱은 봄과 여름과 가을을 이 산골짜기에서 견디고 있는지도 몰랐다. 떠나고 싶어서 몸을 비틀 때쯤 겨울은 다시 왔다. 아이를 어르는 얼음 마녀의 주문처럼 겨울은 정말 매년 왔다. 스키를 실컷 탈 생각에 스키 패트롤로 처음 용평에 올 때만 해도 제욱은 자신이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발왕산을 못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리프트는 제욱을 산속에 내려주었다. 제욱은 자신이 딛고 선 비탈을 발로 눌러보았다. 이곳 또한 아주 오래전 봉산리 소년의 탐침봉이 지나간 자리일지 몰랐다. 시야 멀리로 횡계의 불빛이 내려다보였다. 두 사내가 머물던 사십 년 전의 산막터가 저 고원 어디쯤 묻혀 있을 것이었다.
“주목을 봤겠지, 자네는?”
송천변 황탯집에서 필상은 어느 날부터인가 황태 얘기보다 나무 얘기를 더 많이 했다
“주목나무 말씀입니까?”
“그래. 주목나무.”
주목은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침엽수였다. 발왕산에서는 누구나 주목을 볼 수 있었다. 곤돌라를 타고 발왕산 정상에 올라온 관광객들은 대부분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갔다. 주목한테는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만큼 고사목이 되어서도 오랜 시간을 서 있는 나무였다.
“죽어서 천 년을 서 있는 나무한테서 말이야.”
필상은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본 적이 있나 자네?”
그러면서 필상은 탐침봉 얘기를 시작했다.
봉산리 사내는 잘 때도 탐침봉이라 부르는 꼬챙이를 옆에 두고 잤다고 했다. 땅이 내내 얼어 있었기 때문에 사내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탐침봉으로 허공을 찌르며 시간을 보냈다. 필상은 황태 눈을 털어내다가 사내한테 멱살이 잡히기도 했다. 탐침봉으로 털었기 때문이었다.
“대관절 뭐에 쓰는 물건인데 그렇게 어머니 모시듯 해?”
필상이 열을 내자 사내는 고원 한쪽에 솟아 있는 산을 가리켰다. 사내가 가리킨 곳은 발왕산의 맨 꼭대기였다. 눈으로 뒤덮인 발왕산 봉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까마득했다.
“저기 맨 꼭대기에서 몇백 걸음만 내려가면 돼. 거기에 내가 봐둔 나무가 있어. 땅이 녹으면 거기에 올라갈 거야.”
보물 탐사라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봉산리 사내는 눈이 번득였다. 봉산리가 있는 발왕산 남쪽은 스키장이 있는 발왕산 북쪽보다 산이 험했다. 봉산리는 그야말로 첩첩산중 속의 산간 마을이었다. 집들도 이웃집이라고 하기에는 먼 거리에 띄엄띄엄 들어서 있었다. 한 집에서 살인이 일어나도 웬만해선 알기 힘든 곳이었다.
사내는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 형과 누나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유독 사내에게만 나무 해오는 일을 시켰다. 아직 키가 자라지 않은 봉산리 아이는 자기 키보다 높이 올려 쌓은 나뭇단을 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산에서 내려왔다. 그렇게 해야만 아버지는 일을 제대로 한 것으로 쳐주었다. 아침에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될 때까지 먹는 것은 감자밥 한두 덩이와 굳어서 꾸덕꾸덕해진 옥수수 범벅이 다였다. 저녁 무렵이 되면 어머니는 하루 종일 산을 탄 아이가 안쓰러워서 산 초입까지 와서 서성이고는 했다. 아이가 길을 헤매다 깜깜해져서 내려오는 날은 뱀에게 물리지는 않았는지, 공비라도 만난 건 아닌지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이가 감기를 앓거나 배탈이 나면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아이를 방에 뉘어놓았다. 그런 날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리지는 않았다. 어머니 얼굴을 흙바닥에 문대고는 발로 어머니의 뒷목을 밟아 눌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숨이 언제 끊어질지 정확히 아는 사람 같았다. 항상 그 직전에 발을 뗐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산에 있는 게 식구 모두에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살 두 살 더 먹을수록 집보다는 산이 편해졌다. 아이는 수염이 거뭇하게 돋아나는 소년이 될 때까지 발왕산 구석구석을 누볐다. 뱀 자루를 들고 다니는 땅꾼들도 만났고 산나물을 뜯으러 다니는 아낙들도 만났다. 그중에서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은 약초꾼들이었다.
어느 날 봉산리 소년은 뾰족한 탐침봉으로 땅을 찌르며 다니는 약초꾼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죽은 나무만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약초꾼들은 고사목을 찾아 그 땅속뿌리 쪽으로 탐침봉을 찔러 넣었다. 대개는 허탕을 치는 듯했지만 환호성이 들려서 가보면 약초꾼들이 나무 밑에서 커다란 혹 덩어리를 캐내 배낭에 넣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그 덩어리를 부령(腐笭)이라고 불렀다.
소년은 나무를 하는 틈틈이 약초꾼들 주위를 서성였다. 약초꾼들은 까무잡잡한 사내애가 지게를 지고 기웃대는 게 신기했는지 주먹밥도 나누어주고 이런저런 약초 얘기도 해주었다. 그들이 하는 얘기는 거의 부령에 관한 것이었다. 부령을 캐러 가다 절벽에서 굴렀던 얘기, 부령 판 돈으로 노름을 하다 거덜이 난 얘기, 사냥꾼들과 약초꾼들이 한판 떴던 산속 결투 얘기.
나무가 죽으면 수액이 썩어서 그루터기로 내려간다고 했다. 거기서 번식한 균핵 덩어리가 부령이었다. 약초꾼들은 침엽수 중에서도, 죽고 나서도 오래 서 있는 주목의 부령이 최고라고 했다. 삼대가 복을 받아도 캐기 힘들다는 귀한 약재라 진부 약 시장에 내다 팔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자신을 봉산리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은 공부도 아니고 산판일도 아니고 감자 농사도 아닌, 죽은 나무에서 번식한 부령 덩어리라는 것을. 소년은 집에서 새벽같이 나와 나무를 미리 해놓고는 하루 종일 약초꾼들을 따라다녔다. 그로부터 이 년 뒤에 소년은 자신의 탐침봉을 갖게 되었다.
자신만의 탐침봉이 생기던 때를 얘기해주면서 봉산리 사내는 필상에게 말했다. 탐침봉으로 처음 부령을 찔렀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필상은 사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검게 그은 드럼통 안에 장작을 여러 번 던져 넣었다. 달빛도 있었고 장작 불빛도 있었지만 부령 얘기를 할 때만은 봉산리 사내의 눈빛이 가장 밝았다.
무른 땅을 찌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했다. 탐침봉이 땅속으로 찐득하게 들어가면서 ‘이게 바로 부령이다’ 하는 특유의 손맛이 왔다. 탐침봉에 진액이나 흰 가루가 묻어 나오는 것까지 확인하면 그곳을 파기만 하면 됐다. 부령의 크기에 따라 탐침봉이 들어가는 깊이도 달랐다. 소년은 부령이 있을 만한 나무와 위치를 찾아내는 감각이 뛰어났다. 양지바른 비탈, 유난히 붉은빛을 띠면서 거죽이 숯처럼 갈라진 주목을 찾아가면 거기에 부령이 있었다. 땅을 수천 번 찔러야 부령 하나를 만날까 말까 했지만 소년은 그 손맛을 한 번 더, 한 번만 더 느끼기 위해 밤늦게까지 산을 헤매고 다녔다.
아버지에게 탐침봉을 들킨 건 소년이 부령을 두 번째로 찾아낸 뒤였다. 아버지는 소년을 밭에 있는 감자 구덩이에 가두었다. 구덩이로 내려보내는 건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내리는 가장 큰 벌이었다. 감자 백 가마니는 넉넉히 들어가는 넓은 구덩이였다. 성인 남자도 사다리를 걸어야 오르내릴 수 있을 만큼 깊었다. 사람 몸 하나 크기의 출입구가 천장 어귀에 매달려 있을 뿐 그곳은 완벽히 땅속이었다.
소년은 거기서 생감자만 씹어 먹으면서 낮인지 밤인지 모르는 시간을 보냈다. 감자를 먹고 나면 푸르죽죽한 설사가 나왔다. 소년은 설사를 흙으로 덮고 그 옆에서 다시 감자를 먹고, 그 옆에서 빈 가마니를 깔고 잤다. 자신을 꺼내려던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밟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간간이 떠올랐지만 대개는 부령 생각뿐이었다. 거기에서 나가 한 번만 더 부령이 있는 주목 그루터기를 찔러볼 수 있다면 그 후에는 영원히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소년은 감자 구덩이 안에서 상상의 탐침봉을 만들었다. 부령을 찔렀을 때의 느낌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면서 소년은 눈을 감고 허공을 찔렀다. 시간이 지나자 소년은 허공 대신 구덩이 벽을 찔렀다. 천장을 찔러보려고 제자리 뛰기를 했다. 뛸 기력이 없어지자 소년은 다시 벽에 붙었다. 소년은 열 손가락으로 굴을 파듯 벽을 찔렀다. 찌르고 또 찔렀다. 기력은 갈수록 사라졌다. 소년은 감자 가마 옆에 쓰러지듯 누웠다. 왜 손이 아플까 생각하면서 보니 손마디가 다 뭉개져 있었다. 잠이 들면 구덩이 천장으로 누군가의 탐침봉이 들어오는 꿈을 꿨다. 단꿈처럼, 탐침봉이 뚫어놓은 구멍 속으로 산바람과 햇빛이 들어왔다. 그런 구멍 수천 개가 뚫리는 꿈에 소년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아버지는 감자 구덩이에 사람이 얼마 동안 갇혀 있어야 죽는지도 잘 아는 것 같았다. 소년이 이제 죽겠구나 싶었을 때 아버지는 소년을 꺼내주었다. 소년은 한 달을 앓았다. 기력을 찾고 보니 한겨울이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은 탐침봉 하나만을 들고 눈이 허리까지 빠지는 발왕재를 넘었다. 다시는 넘어온 쪽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소년은 이를 물었다.
소년은 약초꾼들을 따라 태백산과 오대산, 가리왕산의 주목을 찾아다녔다. 땅을 찌르는 힘도, 속도도, 산과 나무를 보는 눈빛도, 소년의 모든 것이 그 전과 달랐다. 약초꾼들은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눈에 광기가 서렸느냐며 소년을 놀려댔다. 다른 산을 헤매는 중에도 소년은 발왕산만을 생각했다. 자신이 정상께에 봐두고 온 주목 밑에는 틀림없이 거대한 부령이 있었다. 캐지만 않았을 뿐 탐침봉으로 확인도 끝낸 상태였다.
입대를 하면서도 소년은 의심하지 않았다. 부령이 사라진다면 그건 눈 밝은 약초꾼 때문이지 다른 어떤 것 때문도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봉산리 사내가 제대 후 발왕산에 도착해서 본 것은 바리캉이 지나간 것 같은 슬로프 공사터였다. 사내는 미친 사람처럼 흙 성토 작업이 한창인 공사터로 뛰어들었다.
“그래도 말이야.”
필상이 제욱의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때까지도 사내가 봐둔 주목은 그대로 있었어. 우리가 횡계 고원에 있을 때까지도 말이야.”
스키장 개장 때인 70년대 중반에는 발왕산 정상에 슬로프가 없었다. 레인보우 슬로프는 한참 뒤에 추가로 생긴 슬로프였다.
“봄이 돼서 황태 지키는 일이 끝나면 부령을 캐러 올라가려고 했던 거군요.”
“그래서 겨우내 발왕산 꼭대기만 보고 있었던 게지. 어쨌든 그때까진 캐지 않고 아껴두고 있는 것 같았네. 시간이 지날수록 부령은 더 커질 테니까.”
그 무렵 부령은 봉산리를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내의 모든 것이 되어 있었다. 사내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필상은 알 수 있었다.
사내가 필상에게 부령 얘기를 해주던 밤에는 고원을 둘러싼 산 중턱에 찬 안개가 떠다녔다. 안개는 바람을 타고 산을 떠돌다 나뭇가지에 닿는 순간 그대로 얼어버렸다. 드럼통의 장작불이 사위어갈 무렵, 필상과 사내는 새벽어둠이 한밤의 어둠을 밀어내는 것을 보았다. 산들이 푸르스름한 흰빛을 내보내면서 고원 가까이 다가왔다. 밤새 피어난 상고대가 모습을 드러내려고 뒤척이는 것이 대기 가득 느껴졌다. 여명이 밝고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의 시간, 그들은 마침내 사방에 피어난 얼음꽃을 보았다. 차고 시린 결정이 가지가지마다 매달려 능선을 덮고 있었다. 겨울 새벽에만 볼 수 있는 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둘은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았다. 눈을 뜨니 발왕산 왼쪽 등성이로 해가 들고 있었다. 양지로 물든 산등성이 쪽 나무들이 미세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산이 왜 저렇게 반짝이지.”
필상이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꽃이 녹느라 그래.”
불쏘시개로 드럼통 안의 숯 덩어리를 뒤적이며 사내가 말했다. 겨울 산속에 있다 보면 죽은 나무에도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해가 뜨자마자 그 꽃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것도 보게 된다고. 양지가 서서히 산 아래쪽으로 밀고 내려왔다. 물이 번지듯이 꽃이 지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을 보면서 필상은 고백하듯이 사내에게 말했다.
“나랑 같이 인제에 가자.”
필상은 자기 목소리에 당황한 사람처럼 조금 허둥댔다.
“거기가 덕장터로 그만이라는 얘길 들었어. 둘이 같이 모으면 서른 넘어서 덕장 하나 차릴 수 있을 거야. 부령 캐는 거보다 많이 벌걸?”
태백산맥 너머에서 누그러진 바람이 불어오면 금세 봄이었다. 그러면 둘은 고원을 내려가야 했다. 필상은 사내를 발왕산에서 데리고 나가고 싶었다.
산을 다 차지한 아침볕이 고원으로 내려왔다. 언 황태가 해 아래에서 녹을 차례였다. 사내는 대답 없이 덕대 쪽으로 걸어가더니 황태 한 마리를 떼어왔다. 사내는 황태 머리통을 뜯어내고는 몸을 반으로 찢어 필상에게 주었다. 중간에 한번 떼어보았을 때와는 냄새도 무게도 달랐다. 그새 고소하고 노랗게 잘 말라 있었다. 둘은 황태 살을 씹어 먹으면서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황태 밭을 바라보았다. 필상과 사내가 한 건 황태 옆에서 석 달을 머문 것밖에 없었다. 명태를 잡아 올린 것도 아니고 그렇게 힘들다는 덕대 작업을 한 것도 아니었다. 바람과 햇빛은 땅과 하늘이 준 것이었다. 그런데도 황태가 잘 마른 것이 그들은 너무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추위는 여전했지만 바람이 볼에 닿는 느낌은 하루하루 달라졌다. 영원히 겨울일 것 같았던 횡계 고원에도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전 내내 해가 좋던 날이었다. 필상과 사내는 점심을 먹고 산막에 앉아 발톱을 깎았다. 힘을 줘야 겨우 잘려나갈 만큼 겨우내 자란 발톱은 억셌다. 처음엔 발톱이 잘려나가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드문드문 이어지던 소리는 그러나 금세 커지며 작은 산막 전체를 때리기 시작했다. 필상과 사내는 맨발인 채 밖으로 뛰어나왔다. 놀랍게도 덕장 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런 예보도 전조도 없던 일이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두꺼운 구름이 이미 고원 위로 몰려와 있었다. 둘은 삼 초 정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다. 그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상용으로 쌓아놓은 방수포 쪽으로 뛰어갔다. 필상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황태들한테는 늦겨울에 내리는 비가 따뜻한 겨울보다 몇 배는 안 좋았다. 겨우내 아무리 잘 말라도 비를 한번 맞으면 그해 황태는 끝이었다.
비는 점점 굵게 쏟아졌다. 둘은 방수포를 한 더미씩 안고 각자 반대쪽에서부터 황태를 덮어왔다. 그러나 그 많은 황태를 씌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방수포도 금세 동이 났다. 황태 수백만 마리가 속수무책으로 젖고 있었다. 필상은 사내 쪽으로 뛰어갔다. 사내는 비에 흠뻑 젖은 채 어떻게든 방수포를 덕대 위로 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사내는 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고 있었다. 사내는 팔뚝으로 얼굴을 훔쳐가며 계속 방수포를 끌어 올렸다. 필상은 방수포를 잡아채다가 그대로 사내와 엉겨버렸다. 둘은 덕주가 욕을 하면서 뛰어 올라올 때까지 방수포를 붙잡고 계속 울었다.
필상과 봉산리 사내는 약속한 돈의 반만 받은 채 쫓겨나다시피 고원을 내려왔다. 그들은 망가진 황태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내려오는 동안 서로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고원 밑에는 봄이 완연했다. 송천을 덮고 있던 얼음도 어느새 녹고 천변가로는 꽃다지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다. 그들은 송천교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옆에 있는 황탯집으로 들어갔다.
“하이고, 산적들이 따로 없네.”
주인아주머니가 뜨거운 물을 내오면서 말했다.
“공비라고 안 해주니 고맙네요.”
필상이 웃었다.
그들은 황탯집 한쪽 방에서 며칠 머물면서 겨우내 입었던 옷을 빨아 널었다. 해가 좋은 시간엔 냇가 바위에 앉아 햇빛을 쬐었다. 얼마 전 콘크리트 다리로 바뀐 송천교가 저쪽 위로 올려다보였다.
“다리가 새거네.”
봉산리 사내는 그렇게 말하더니 물가로 걸어가 웃통을 벗고 엎드렸다. 필상은 바가지에 송천 물을 담아 사내의 등에 천천히 부어 내렸다.
“좀 문질러봐.”
봉산리 사내가 엎드린 채로 말했다. 필상은 손바닥으로 사내의 등뼈를 천천히 쓸어내렸다. 남자 몸이 어쩌면 이렇게 야위었을까 싶었다. 사내의 허리에서부터 척추를 따라 목으로 흘러가는 송천의 물줄기를 보면서 필상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같이 인제에 가지 않겠느냐고.
봉산리 사내는 필상보다 하루 먼저 황탯집을 떠났다.
겨울 점퍼를 허리에 돌려 묶고 배낭을 멘 채 사내는 그들이 건너왔던 송천교를 혼자 건넜다. 다리를 지나 걸어가는 사내 옆으로 고원으로 올라가는 샛길이 보였다. 발왕산 쪽 길로 접어들면서 사내는 뒤를 돌아 손을 한번 흔들었다. 배낭 위로 솟아오른 탐침봉에 햇빛이 쨍 박히고는 곧 흩어졌다.
필상은 메토끼 귀를 잡고 산에서 덜렁덜렁 내려오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산막 앞으로 순간순간 스쳐가던 전짓불빛과 흙바닥에 엎드려 어린 아들의 신발께를 보았을 그의 어머니. 같이 인제에 가자, 물었을 때 강돌을 손에 쥐고 몸을 일으키던 모습과 꾹 다문 입으로 한참 동안 물수제비를 뜨던 그의 벗은 등을 생각했다.
*
제욱은 오후 네 시에 곤돌라를 탔다. 네 시 곤돌라를 끝으로 레인보우 슬로프는 주간 일정이 끝났다. 야간과 심야에는 개장되지 않는 슬로프였다. 발왕산 정상 헬리콥터장 부근에는 겨울 야영객들이 꽤 있었다. 제욱은 야영지 한쪽에 텐트를 치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스키 장비를 다시 점검하면서 제욱은 봉산리 사내의 행방을 생각해보았다. 필상은 송천변에서 사내와 헤어지고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살든 발왕산에만 오면 그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 그런데 어디서도 그 사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어. 약초꾼들을 수소문해도 소용없었지. 여기에도 안 들린 것 같고.”
식당 한쪽에서는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가 수저를 들고 황태에 보푸라기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발왕산 정상에 레인보우인가 뭔가가 생기더구먼. 그때 공사를 했던 인부들한테 물어도 별다른 말이 없었지. 모르겠네. 그 사람이 부령을 캤는지 어쨌는지. 나무가 있다던 자리가 분명히 레인보우 어디쯤일 텐데 말이야.”
그 나무가 레인보우 공사 때 벌목이 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 슬로프 옆 어딘가에 서 있는 건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인제에는…… 혼자 가신 겁니까?”
제욱이 물었다.
“혼자 갔지. 한 십 년 죽을 듯이 모아서 덕장을 열었어. 내 이름으로 된 덕장이 생기니까 그 사람 생각이 더 간절했다네. 나중에 황태 붐이 일면서 덕장 하는 사람들이 돈 좀 만졌지. 조합도 생기고, 포장법도 조리법도 나날이 좋아지고. 나도 황태 덕에 결혼도 하고 애들 대학도 보내고, 할 거 다 하면서 살았어. 지금은 아들놈한테 넘겨주고 이렇게 술이나 마시고 있지만.”
필상이 숨을 가볍게 내뿜었다. 할머니가 깨소금을 친 황태 보푸라기를 내왔다.
“젊은 애랑 있으니 상늙은이가 따로 없네.”
“상늙은이면 중늙은이보단 높은 거지요?”
필상이 허허 웃었다.
“당분간 여기 계십니까?”
“아니, 나는 산으로 가네.”
“산이라면…….”
“주목이야 높은 산에 있겠지. 곧 벌목이 시작되는 곳이 있네.”
“봉산리 그분을 산에서 만날 거라고 믿고 계세요?”
“글쎄……. 그냥 나는…… 주목 하나가 쓰러질 때마다 그 사람이 괴성을 지르면서 미친 척 나타나줬으면 좋겠어. 사십 년 전 그때처럼.”
필상은 카운터로 가서 메모지와 펜을 가져왔다.
“부탁이 있네. 자네야 매일 발왕산에 있는 사람 아닌가. 딱 이만한 길이네. 이렇게 생긴 거. 이런 꼬챙이를 들고 다니는 작고 늙은 사내를 보거든 나한테 꼭 연락을 주게.”
필상은 인제의 덕장 주소와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적었다.
“그리고 말이야, 스키 사고가 거기서 또 나거든 그때도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네.”
노인은 택시를 불러 타고 송천변을 떠났다.
제욱은 스키복 바지에서 노인이 준 메모지를 꺼냈다. 랜턴을 비추자 노인이 정성스럽게 눌러쓴 ‘봉산덕장’이라는 글씨가 들어왔다. 이 쪽지를 봉산리 사내에게 건네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제욱은 종이를 접어 넣고 레인보우 스타트 지점으로 갔다.
스키 장비를 갖추고 정상에 서자 제욱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밤 레인보우에 서본 게 얼마 만인가. 야간 개장이 없는 레인보우에는 라이트타워가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다. 눈이 되쏘는 빛에만 의지해 감으로 내려가야 했다. 위험하다면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제욱은 패트롤 일을 할 때부터 컴컴한 레인보우를 종종 탔다. 눈을 감고도 내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제욱은 고글을 쓰고 심호흡을 한 뒤 스타트 지점을 출발했다. 스키 폴을 접고 몸을 낮추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제욱은 순식간에 레인보우 삼거리를 지나 레인보우1으로 접어들었다. 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몸의 감각들이 한꺼번에 살아났다. 이것이었다. 그래, 이것이었어. 제욱이 살아 있다고 느낄 때는 오직 이 순간이었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바리캉이 지나간 것처럼 보이는 이 산이 제욱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제욱은 RR-6 지점을 지났다. RR-8을 지나자 속도가 정점을 향해 올라갔다. 곧 있으면 사고 지점이었다. 제욱은 집중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침을 삼켰다. 걸리는 것은 없다. 그대로 미끄러져가는 것이다. 오직 발과 몸의 중심력만으로 간다. 제욱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안전펜스 밖으로 주목나무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RR-10, 드디어 곡선 코스를 도는 찰나였다. 주목나무 가지 사이였다. 야광 눈빛 두 개가 제욱을 보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욱은 알 수 있었다. 눈빛이 떠 있는 높이가 네발짐승의 눈높이가 아니었다. 그건 두발짐승의 눈빛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안 돼, 망상이야, 중심을 잃을 거야. 제욱은 눈빛을 보는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갑자기 몸이 떠올랐고, 동시에 산비탈이 달려들었다.
야광 눈빛이 다시 보였던 걸 보면 뒤를 돌아봤던 것도 같았다. 이건 제욱이 RR-10 근처에 누워서 한 생각이었다. 달빛도 없어서 하늘은 암흑처럼 검었다. 멀리서 야영객들의 소리가 들렸다. 비상용으로 챙겨왔던 무전기가 작게 삐삐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그것들은 멀리 있었고 제욱은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위쪽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렸다. 제욱은 입술을 물며 눈을 감았다.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욱은 검은 허공에 뚫려 있는 두 개의 야광 빛을 보았다. 누군가 제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제욱이 느낀 것은 두려움도 반가움도 아니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었다. 살았다, 중얼거리면서 제욱은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