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라는 주제가 어떻게 인문학으로 연결되는가 하는 그 지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발표는 의미도 좋았을 뿐더러 그 내용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특히 기존의 서평이나 맑스 꼬뮤날레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보았던 글들인데, 이러한 글들이 단순히 정체되어서 완성된 것이 아닌, 발표때 느꼈던 의문이나 발표때 받았던 질의응답들에 대해서 계속해 생각의 지평을 넓혀가고 그것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이 좋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글이 너무 넓고 주제가 흔들린다고 했던 '유연한 인간'의 경우는 그러한 고민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며 읽었습니다. 사실 '접속'을 매체로 한 다중접속 게임, 즉 사이버 온라인 게임을 대상으로 해서 이야기를 펼쳐내는가, 또는 싱글 게임으로 이야기를 펼쳐내는가 하는 것처럼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게 되면 이런 이야기들은 수많은 예외랑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영진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 게임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지점인가 하는 논의가 보다 우선적이어야겠지요. 그렇기 위해선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무언가 개념을 나누기 보다 게임 그자체에 대한 분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구요. 그렇기에 다중접속 매체에서의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 게임이 게임을 소비하는 유저로 하여금 어떠한 상태에 처하게 하는가 하는 그 질문이 루도 자본주의나 놀이노동자 파트였다면, 그것을 떠나서 게임을 하는 행위 그 자체가 우리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상태'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는 '유연한 인간'이라는 파트가 유용했다고 봅니다. 저 역시 그 파트 이전에는 "이 모든 내용은 잉여력이 하나의 자본화 되어서 회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득을 안긴다"라는 전제가 우선된 다중접속 게임들에 한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거든요.
그렇기에 이번 발표를 통해서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돕니다.
1. 사실 선생님께서 발표 때도 이야기하셨듯이 이 유연한 인간이라는 것이 이야기 할 부분은 무척 넓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저는 이러한 부분에서는 연극적으로 게임을 바라보는 것보다 서사 대상으로서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 공감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모바일 게임에서 유행했던 '개복치 키우기'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죽음이 반복되면서 그 경험을 내려보내 '개복치가 죽을 확률'을 밑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지요. 역시 메가히트하고 후속 패치까지 이루어졌던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개복치가 죽는 이유 중에서 핸드폰을 아래위로 10번 이상 흔들면 화면에 거품이 심해져서 시야가 약해져 죽는 경우와, 핸드폰의 조명을 제일 아래로 낮춰놓으면 너무 어두워서 죽는 조건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게이머이기 이전에 실제로 다마고치 같이, '내가 게임의 대상을 키우는' 일반인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현실의 '내'가 게임의 대상과 연애를 하거나, 또는 게임과 현실 사이의 유저를 매개하는 중간자적인 1인칭 캐릭터 '나'가 생략되고, 게임에서 직접 내가 무언가를 쓰고 만드는 계열의 게임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예를 들면 노트를 찍었을 때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보컬로이드나, RPG라는 게임 자체를 만들 수 있게 툴로 제공한 '쯔꾸르' 계열의 게임들, 그리고 세상 자체를 구성해서 놀 수 있게 해 준 마인크래프트 같은 것이요.
이러한 게임들은 선생님 말씀처럼 게임이라는 장르 자체가 문학적으로 소비되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게임이라는 것이 유저를 어떤 상태로 확정시키는 것에 대한 예외 지점으로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2. 발표의 질문에서도 나왔듯이 이 사람들이 잉여력을 통해 허구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면, 도대체 이 욕망을 가동시키는 동력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이 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잉여력이나 실업상태에 대한 불안 등이 게임을 하게 만들어도 본질적으로 유저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유희적인 것을 벗어난 어떠한 욕망 대상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일본에서는 야리코미라는 게임의 플레이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파고들기'라는 말로도 표현이 되는데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게임 내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요소를 목표로 플레이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동일 게임을 수십회 이상 반복하여 더 이상 클리어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플레이어들에 의해 주로 행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은 클리어가 존재하며 선형적 진행을 가진 게임에서 클리어 외의 다른 요소, 특히 게임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즉, 자유도가 넘치는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마인크래프트같이 해석기관을 만든다거나 등 자유도가 있는 게임에는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오락실 격투게임에서 타임 어택을 찍거나, RPG에서 아이템 수입률 100%를 만들거나, 모든 게임 유닛의 레벨을 최고로 찍거나, 또는 게임의 초기 장비로 엔딩을 보거나 슈팅게임에서 폭탄을 봉인하는 플레이 등의 방식이지요.
이러한 행위 자체가 시간을 투자해서 무언가 즐거움 그 자체를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저는 이러한 즐거움들은 기본적으로 성취감에 기반한다고 봅니다. 특히 이러한 성취감은 명예욕구와 많은 연계가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시간을 이야기 하셨는데, 그것이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서 전 세계에서도 한국의 유저가 2위라는 걸 알고, 그 닉네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런 야리코미 플레이 역시도 게임이라는 것 자체를 하나의 기예로 볼 때, 자기완성과 자기만족, 그리고 그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명예의 구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터넷 게임 BJ 대정령이 가장 유명해 진 것이 누구보다도 빠르게 '메탈슬러그'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영상 때문이었지요. 보통 사람들이 1시간에서 2시간 이상 걸리는 게임 플레이를 10여분만에 끝내버리는 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세계에서 '메탈슬러그를 가장 잘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붙었지요. 실제로 슈퍼마리오 최단속도 세계기록 관련 영상은 3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발표에서 이러한 욕망이나 대상들은 사실상 게임 회사에서 만든 허구적인 것이고 허무한 것이라는 부분이 요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제 카이와가 <놀이와 인간>에서 게임의 요소를 분석할 때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참여자들에게는 이 게임 바깥에서 아무 의미가 없고 게임 속에서만 통용되는 수많은 규칙들이라는 것을 이미 동의하고 잘 숙지한 상태에서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긴 시간 E-Sports의 왕자로 등극했던 스타크래프트도 이미 그 시기가 가고 워크래프트의 시기가 오는가 했더니 지금은 스타2와 LOL의 시대가 온 것처럼, 유저들은 누구보다도 게임의 수명에 예민하고, 그 수명만큼 이 게임은 지금 이 순간에 즐길 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허구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동의가 있을 때, 그들이 단순히 게임을 욕망하는 것이 내부의 허무한 요소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좀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안에서 게이머들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어떠한 것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명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Sports 라는 것이 어떻게보면 앞서 언급한 '명예'라는 것을 산업화 한 것이구요.
어떠한 게임을 잘 한다라는 그 명예는 사실상 게임 회사에서 주어지는 것 보다는 게임 바깥에서 게이머들만을 대상으로 한 하나의 지표이고 분명히 현실에서 작동하는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허망할 수 있는 게임회사의 루도 자본주의를 벗어나 게이머들 사이에서 스스로 게이머들을 위로하고 독려하고, 또 가치화하기 위한 하나의 저항운동의 지점으로 놓을 수 있지도 않을까요.
평소 게임이나 만화, 장르쪽에 관심을 갖다 보니 이러한 발표에서부터 시작되는 고민들이나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무척 좋았습니다. 단지 이러한 고민들이나 이야기가 이런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만 공유하는 이야기에서 벗어나서 "아, 저 게임의 이야기가 이렇게 생각될 수도 있고 필요하구나" 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게임 바깥으로 뛰쳐나올 수 있느냐 없느냐가 분명한 과제겠지요.
선생님이 이야기 하신 내용에서 이어 후기 2번 고민에 대해 글을 써 전개해 볼 생각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저 나름의 고민 해답을 찾고 좋은 글로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발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정성스럽고 좋은 후기 잘 읽었어요
역시 전공 적합성이 높은 분의 후기답군요. 진심으로 감탄하고 갑니다. 다음달 보게 될 융희 씨의 답가(?)도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