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고문 이유식 교수 근작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을 읽고
김창현/수필가
'수필가는 많지만 좋은 수필은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문인협회에 등록된 수필가와 지류 샛강의 수필가를 합치면 어림잡아 4천에 가까울 것이다. 그 결과 내허외화(內虛外華), 물결은 도도해졌으나 탁해졌다. 6,70년대 엄격한 등용문 시절이 그립다.
차제에 한국문인협회 고문 이유식 교수가 최근 내놓은 수필집, '새로운 장르, 새로운 수필의 향연'은 이런 수필계에 좋은 참고서가 되리라 생각된다.
이교수는 55년 전 1961년 8월, 이 나라의 최장수 문예지 <현대문학>에 '현대적 시인형'으로 조연현 선생 추천으로 문단에 혜성 같이 등단한 원로 평론가다. 그러면서 유달리 수필을 사랑해 그동안 '내 마지막 노을빛 사랑', 옥산봉에 걸린 조각달' 등 10 여권이 훨씬 넘는 수필집을 낸 한국 수필계의 숨은 후원자이다.
'수필문학' 발행인이자 수필문학가협회 강석호 회장 말대로, '그의 수필활동은 상대적으로 평론활동에 가리어 다소 손해를 보고있다. 오로지 수필가로서 만으로도 사실은 독자적 평가를 받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않는 바 아니지만, 흙에 묻혔다고 옥(玉)이 옥 아니랴. 그동안 문단의 시와 소설 등 주요 작품을 해부하고 평론해온 예리한 안목이 그의 수필엔 지적(智的) 에스프리와 날카롭고 청신한 감각으로 펼쳐져 있다.
그의 '안개의 초상'을 보면,
'구름과 안개는 다 같이 물이란 씨앗에서 잉태된 수증기의 쌍생아다. 지표면에 있으면 안개가 되고,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된다. 안개가 보병이라면 구름은 하늘을 나는 파일럿이다.
안개는 자연이 창조해내는 마성(魔性)을 지닌 여인이다. 때나 분위기 그리고 그 정황에 따라 마(魔)의 여신 같기도 하고, 요정 같기도 하며, 이승에 한을 품고 헤매고 있는 원혼이나 원귀 같기도 하다. 또 이승의 사람으로 보면 청상과부나 가슴을 풀어치고 나다니는 미친 여자 같기도 하다.(후략)'
라고 쓰여있다.
그의 수필을 근세 한국의 수필가 유달영 이양하 정비석 김진섭 피천덕 이어령 수필과 비교해보면, 이양하 김진섭과 궤가 같은듯 싶다. 흔히 수필가들이 범하는 흔해 빠진 신변잡기와, 감상적 심정을 비친 구절을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동서고금 해박한 지식이 함축된 언어의 마술로 사람을 홀린다.
이번에 나온 수필집의 첫째 마당을 보면, 주제가 주로, 안개, 이슬, 구름, 노을, 무지개, 바람, 달, 해, 별, 비, 물, 바다, 땅, 지평선, 숲, 뒷동산 같은 것들이다. 우리 주변에 흔한 일상적 대상을 50 여년 문필활동을 통한 노작가의 천의무봉 솜씨로 새롭게 비춰준다. 일종의 자연과 인문학의 융합 내지 결합시킨 수필로, 소위 그가 주창하는 테마 수필이다. 기존 수필들이 대개 과거 추수주의에 젖어 서정 일변도인데 비해, 진일보한 엎그레이드 자연수필이다.
'이슬의 수사학(修辭學)'이란 수필에서는,
'이슬은 자연이 선물해준 보석이다. 이 중 풀잎이나 싸리꽃, 연잎이나 거미줄에 맺혀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아침이슬이야말로 수정처럼 영롱하다. 하양, 노랑, 빨강, 자주 등으로 빛을 발하는 이슬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이 걸어준 이어링이요, 목걸이이며, 손목걸이요, 물방울의 살아있는 예술이요, 설치미술이다.
(중략)
아무튼 이슬이 비록 단명과 덧없음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할지라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큼하고 청순해 보인다. 그래서 이 단어가 작명에도 선호되어 여아나 아가씨들의 이름에서도 빛을 내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전설의 동물 유니콘이 이슬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듯, 술꾼들을 유혹하기 위해 술이름에도 참이슬, 아침이슬이 서로 경쟁을 벌리고 있는 세상이다. (후략)'
라고 이슬을 그려놓았는데, 여러 글에서 자연을 소재로 한만큼 자연보호 차원에서 환경문제도 살짝 내비치고 있다.
오래 동안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교수답다. 글이 재미있고 구수하다. 정답고 친근감 들고 전혀 현학적 사변적이거나 어렵지 않다. 원래 미숙한 사람은 글을 쓰면 어렵게 쓰고, 노련한 사람은 쉽게 쓴다. 어떻게 이렇게 어렵지 않게 썼는지를 감탄케 한다. 절제되지 않은 감각은 저속하기 쉽지만, 적재적소에 우리에게 친숙한 술이름과 유행가 가사까지 넣어, 어떻게 이리 박자를 맞추고 감칠맛을 내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마당은 테마 수필의 또 하나 실험으로 '가계수필'인데, 집안의 내력, 선대조의 일화(逸話), 선대조들의 아호(雅號), 혼맥(婚脈), 직계 선조가 종유(從遊)했던 벗들, 묘갈명을 쓴 명유(名儒)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가 책머리의 '과연 새로운 수필은 없는 것인가?'란 제하의 글에서 보인 것처럼, 이 역시 수필의 새로운 장르로서 시험 제창해본 글이다. 시시한 일상사 타령을 벗어나 선조들의 삶의 모습을 수필로 재현해 봄으로서, 마치 미국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뿌리>란 작품을 통해 한 것처럼 뿌리 의식을 일깨워보자는 것이다. 수필계 작단이 소재가 빈약해 지나친 동음반복적 소재로 그침에 경고장을 낸 것이다.
세째 마당은 정든 땅 정든 언덕의 진달래꽃, 초가지붕, 반딧불, 부산 시절의 회고, 다리, 등이 나온다. 고향 하동 옥종의 쑥이 돋아나던 논두렁, 진달래 꽃을 따먹던 소년 이야기가 나온다. 고추잠자리 날아다니던 초가지붕과 밤하늘 개똥벌레, 밤에 개천에서 알몸 목욕하던 동네 처녀들, 그를 몰래 지켜보던 풋고추들 체험이 나오고, 작가의 고향 면가(面歌)를 쓰게 된 내역이 소개되어 있다.
'부산 시절의 회고'는 1960년대 부산 문단 시절 회고인데, 당시 만난 유치환, 김상옥, 최계락, 천상병 조향 등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생에 명수필 한두 편 남겨도 성공일 것이다. 마지막 '다리'란 수필은 그의 '안개' '이슬'과 함께 저자의 대표작이지 싶다.
'다리는 육지와 육지를 연결해주는 관문이요,땅과 땅의 중매쟁이요,허리띠며,길과 길의 악수다. 다리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욕망의 콤마요 접속사며, 잠시 경관의 아름다움에 도취케하는 탄성의 감탄부호며, 종착지의 마침표를 향해 가는 욕망의 간이역이다.
다리는 늘 두 다리를 뻗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견인주의자다. 육로가 산문이라면 다리는 시다.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물새가 날고, 물의 음악이 흐르며, 달빛이 흐르고 햇살이 반짝어린다. 자연의 조화가 하늘의 무지개라면 인간의 조화는 다리다. 지상에 놓여진 다리를 보아왔던 몽상가들이 문득 하늘의 은하수를 보고 상상해낸 창작품이 바로 오작교다. 지상의 다리가 하늘에 투영된 것이 이른바 견우직녀 이야기가 아닌가.' (후략)
이런 수필은 마땅히 교과서에 실려 젊은이들이 배워야 마땅하다 생각된다. 수필은 서정, 서사, 비평적인 것까지 포함하지만, 그의 세련된 문체, 다양한 함축적 지식의 구사는 수필의 텍스트로 볼 수 있다 싶다. 아무튼 한국 문단의 뿌리 깊은 거목이 수필 분야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우리 수필계의 복이라 싶다.
*새문학신문에 기고한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