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퇴근 무렵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매장가서 애들 겨울점퍼도 사고 우리옷도 골라보고 이것저것 사야 하는데 부피가...."
말끝을 흐리며 전화를 끊는것을 보니 이번에도 쇼핑길에 애들을 볼모로
운전수 노릇을 하라는 아내의 무언의 압력 이었습니다.
매장 가는길에 승용차 운전과 매장안에서의 카트 운전수 노릇과 짐꾼.
운전을 하지 못하는 무면허 아내 덕에 집과 거리가 제법 떨어진 쇼핑길에는
언제나 나를 대동하려고 아내는 [이기사~] 하고 꼬시곤 했습니다.
마님이 행차를 하며 지게꾼 돌쇠를 앞장 세우듯이 나도 가끔 돌쇠가 되었지요.
이미 결혼생활 17년동안 익숙해진 피할수없는 중년가장의 일과였기에
속으로는 꿀맛같은 휴식시간을 몇시간 동안 뒤치닥거리 할 꼬붕 노릇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지만 어쩌랴!
겉으로는 아이들에게는 인자한 아빠의 모습이요. 아내에게는 말 잘듣는 머슴이요.
밤길에 치한 퇴치용 보디가드를 자처하며 억지 웃음을 보였습니다.
"아빠! 이 패딩점퍼 나 작아서 못입겠어. 아빠가 입으면 안돼?"
중학생 아들녀석이 입고있던 점퍼를 벗더니 슬그머니 운전하는 내 옆에 밀어 놓았습니다.
시루에 키우는 콩나물도 아닌 녀석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키가 커져 작년에 사준 점퍼의 소매가
팔꿈치까지 기어올라 이미 그옷은 아들녀석의 몸가리개 역활은 끝이 난것입니다.
"ㅎㅎ 그 점퍼 당신에게 펑퍼짐한게 잘 어울리겠는데!ㅎ"
아내의 그말은 내 겨울 방한복은 그걸로 장만이 되었다는 소리였습니다.
아들녀석의 작아진 옷이 지극히 키작은 저의 방한복으로 탈바꿈 되어버린 것이지요.
어릴적에 형에게 물려받아 입던 옷을 결혼하고 중년이 되어서도 아들녀석에게 물려받아 입는
이 껄적지근한 대물림은 또 무엇인가!
이곳저곳 돌아다닌지 한시간이 흘렀습니다.
카트 바구니 안에는 라면 몇봉지와 생필품 몇가지가 전부였습니다.
"어! 이게 더 싸네 ㅎ"
바구니 안에 들어있는 샴푸를 꺼내더니 옆에 진열해놓은 좀더 저렴한 샴푸로 채워놓는 아내.
물건을 바구니 안에 넣었다,빼냈다 하는 아내의 등뒤로 아들,딸 녀석과 내가
어미오리를 따라가는 미운 오리새끼들이 되어 쫄랑쫄랑 뒤따르는 모습 이었습니다.
이층의 의류 매장에 들어서는데 거의 두시간이 흘렀습니다.
슬슬 지겨워 지는 중년남자의 인내력. 카트라이더의 일인자인 아들에게 카트 운전대를 맡기고는
"입고 싶은옷 사. 다 사줄테니.험! 그리고 얼.른.가.자!"
참을수 없는 가벼움의 하품을 직직 해대며 한쪽 구석에서 짝다리로 서서 아내를 쳐다보았습니다.
아이들 옷을 고르며 치수를 재어보고 꼼꼼하게 박음질을 살피던 아내가
마지막으로 가격표를 보더니 머리를 절래절래 흔드는 모습이 보였고
숙녀복 코너를 지나면서 곁눈질로 가격표만 힐끔 살피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1층에 내려가서 애들하고 밥 먹고 있어.배고프잖아.금방 사가지고 내려갈께"
"좀 비싸도 사.까짓거 내가 그 정도 능력이 안되겠냐. 그리고 얼.른.가.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o형 성격에 차라리 카드로 몇달긋고 집에 빨리 가는게 낫다 싶어
감당못할 호기를 부리고는 아이들을 데리고 1층 푸드점에 내려가는데
[떨이요.떨~이. 엄니가 아파 빨리 집에가야 하는 관계로 무조껀 공짜 가격대로 드릴테니
골라요.골~라.]
의류매장 출입구밖 간이 가판대에서 들려오는 구성진 확성기의 장사꾼 소리.
아이들과 1층에서 저녁을 다 먹고 트림을 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아내가 커다란 비닐 쇼핑백에 옷을 사들고 내려왔습니다.
"에고. 이제 전부 산거지? 당신도 밥먹어. 배고프잖아"
"옷 많이 샀어. 밥은 집에 가서 먹지 뭐"
집에 오자마자 아이들은 옷을 꺼내 입어보고 거울을 보며 소란을 떨었습니다.
"이건 당신 점퍼야 입어봐. 비싼거야 ㅎ"
"내옷까지 샀어?ㅎ 아들놈에게 물려받은 옷도 있는데 왜..당신옷은?"
" 하나도 맘에 드는게 없어서..다음에 사지뭐"
가격표가 보이지 않는 아이들 옷과 내옷.
아이들과 내게 비싸고 좋은 옷이라고 아껴입으라고 말을 했지만
그말은 아내의 어설픈 거짓말 이었습니다.
확성기로 들려오던 [떨이요] 소리에 고개를 번쩍들던 아내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떼어지고 없어진 옷의 가격표.
그리고 그 떨이 옷 조차 아내는 자기 옷은 사지를 않았습니다.
무릎나온 츄리닝 차림으로 옷을 정리하는 아내.
[휴우. 미안하다. 연말에 보너스에 성과급 받게되면 근사한 코트 사줄께.근데 성과급이 나오려나! ]
내 생각대로 사줄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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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휴우. 미안하다. 연말에 보너스에 성과급 받게되면 근사한 코트 사줄께.근데 성과급이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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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마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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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내가 사준 겨울잠바를 입지도 않고 팽했습니다. 같이 가면 사지않고 입히기 어려우니 무조건 사서 안겨보려는 심산이지요. 내심 사연은 털이 달린 것이라 그건 동물보호차원에서 나는 입지않는 철학을 가져왔습니다. 오래 살아도 o형 아내는 잘 모르는 듯해요.
그리고 그 살 돈 있다면 다른데 쓰라는 것인데 모두 말로 표현하지않은 것이라 추측만 나름대로 했을 것같습니다. 이래저래 마음 아팠습니다 ^^
아내들의 마음은 모두 같은가봅니다.그래도 기쁨으로 받아주세요.^^마음 아파하지 마시고..
잘보고 갑니다. 더많은 사연 올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아내사랑 마음의진실이라면실제좋아하는옷한벌사주시고즐거운한해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