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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군인
설송아
사리원-나진 완행열차가 보름 만에 역 구내에 들어섰다. 갑자기 역 구내는 쑤셔놓은 벌 둥지처럼 혼란이 일어났는데 며칠 굶은 이리가 사슴을 만났을 때 덤벼드는 최악의 극치였다. 역전 홈으로 담장 위로 혹은 역 담장 밑으로 흐르는 도랑에서도 사람 떼가 열차에 달려들어 성을 빼앗듯이 아우성이다. 열차 안내원들이 입술에 힘을 주며 호각을 불어대지만 쓸데없는 짓이다.
“밀치지 마…….”
“뭐야 눈깔 파놓기 전에…… 내가 밀쳤어? 시라소니 같은 게 걸치지 마…….”
겨우 승강대에 붙은 여인네들끼리 열차 안으로 들어가려 힘을 쓰다 악들이 받쳐 어성을 높인다. 시루 안의 콩나물보다 더 빽빽이 들어선 인간 벽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센스 있는 여인이 일반 열차를 포기하고는 간부용 상급침대칸으로 달려갔다.
“문 좀 열어줘요…… 담배 줄게요…….”
그는 닫힌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출장 간부인 듯한 중년 남자가 창문으로 반쯤 머리를 내밀더니 젊은 여인을 내려다본다. 고양이 담배를 쥔 여인의 손이 그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에 권태롭던 사나이는 징그러운 웃음을 짓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뒤따라 온 남자도 담배를 들고 사정했지만 열차 문은 닫힌다.
“개 바람둥이 같은 새끼…… 기차 바퀴에 끼여 콱 죽어라…….”
젊은 여자만 열차에 올려주는 간부에게 남정네가 쌍스러운 욕을 퍼붓더니 침을 퉤 받았다. 그러더니 일반열차 창문으로 뛰어오른다. 성문이라도 열 듯 그는 상의를 집어던지고 상반신을 창밖으로 내밀더니 아내의 어깨를 안아 올렸다.
승객들이 절반도 오르내리지 못했는데 기차가 떠나려는 듯 경적소리를 길게 울렸다. 이 열차를 놓치면 또 보름을 기다려야 한다. 먹을 것도 없는 판에 객사할 일이 있나. 사람 떼들이 열차 문구에서 광기를 부르며 요동쳤다.
“사람 깔렸어요.”
열차 안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내리지 못한 여인이 오르는 사람들의 힘에 밀려 몸 균형을 잃고 넘어진 판이다. 그의 몸이 발길에 깔려 소리를 질러댔으나 누구 하나 손잡아 일으키는 사람 없다. 밟혀 죽을 판이다.
“아 악…… 야 이…… 새끼들아 짓밟지…… 마…… 으…… 윽…….”
점점 여인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누가 그의 목을 밟고 지나가면서 목소리를 눌러버렸다.
제대되어 고향에 도착한 철혁이 십 년 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군복 입고 고향을 떠나던 그날, 꽃송이를 달아주며 바래주던 정겨운 추억이 아녔다. 그도 열차에서 내려야 한다. 완력으로 열차에서 내릴 수도 있었으나 생소한 광경이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지켜봤다. 그러나 밟혀 죽는다고 소리치는 여인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것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인간인가?’
조금만 더 있으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여인에게로 철혁은 급히 가려고 했으나 철벽 한가지다. 철혁은 아예 몸을 솟구치더니 사람들의 어깨 위를 밟으며 방금 소리 난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못이 나무에 박히듯이 깔려 있을 듯한 여자의 주위에 몸을 꽂으며 장승같이 서 있는 사람들을 주먹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야만 같은 것들아…… 사람이 죽는다잖아…….”
깔려 있는 여인을 끌어올린 철혁은 문 쪽으로 돌아서며 막혀 있는 사람들을 또 한 번 발로 차대며 나갔다. 군대라면 토비 공포증이 오는 시기라 누구도 맞서는 사람은 없다. 이때라고 생각한 소매치기 군들이 철혁이 메고 있는 배낭에 붙었다. 철혁이 여인을 끌고 열차에서 내리는 동안 제대배낭은 이미 칼에 찢어져 훌렁해진 뒤다. 군대 덕에 살아난 여인은 콘크리트 바닥에 맥없이 앉아 정신이 드는 듯 그의 배낭을 바라보았다.
“쓰리(소매치기) 맞혔네…… 나 때문에…….”
그제야 배낭을 벗어 확인한 철혁은 갑자기 어이가 없어 벙벙해졌다. 부모님께 제대기념으로 드릴 옷 두 벌이 있었는데 어쩐단 말인가.
“어떤 새끼야 죽여 버리기 전에…….”
혼자 소리쳐봐야 소용없다. 여행 짐 털리는 것이 한둘이랴. 사회 물정에 소경인 철혁이에게만 생소할 뿐이다.
군복 입은 병사들은 영양부족에 목이 가느다란 것이 특징이라지만 철혁은 예외다. 훤칠한 키에 체격도 안성맞춤이어서 입은 군복이 장성처럼 잘 어울렸다. 단정한 옷차림의 제대군인이 배낭 짐을 털리고 분을 삭이는 모습에 여인은 미안한 애정이 생겼다. 그에게는 장삿길에 물건 팔고 오는 돈다발이 있었다. 허리춤을 올리던 여인은 방금 철혁이 놀란 것보다 더 놀라운 목소리로 어안이 나간 듯이 소리쳤다.
“어머 이거 어쩌나…… 내 돈 가방이 통째로…….”
스타킹에 돈을 넣고 허리춤에 보이지 않게 단단히 묶어놓았었다. 하지만 소매치기 군들은 옷차림만 봐도 돈 위치를 귀신같이 알아내고 솜씨있게 잘라낸다.
“…….”
철혁은 돈 가방을 잃어버린 여인에게 같은 처지라는 위안의 눈빛을 던지고는 아무 말도 없이 갈 길을 갔다. 멀어져가는 철혁의 뒷모습에 여인은 잃은 돈만큼 마음이 아팠다. 손에 대충 감아쥔 그의 제대배낭에는 지하 족 한 켤레만 쥐방울처럼 남아 있다.
철혁은 군사복무를 편하게 보낸 편이다. 아버지 덕이었다. 신병훈련 시 철혁은 이미 아버지의 뇌물 덕에 여단 직속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철혁의 아버지가 큰 간부는 아니다. 도매소 운수지도원이라는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대남 연락소 출신 부친의 죽음 덕으로 간부 사업에 발탁된 후 영리하게도 당 일꾼을 포기하고 도매소 직업을 택했다. 도매소는 국영 기업소 생산 물자를 받아 보관한 후 상업관리소에 공급하는 곳이다. 배급제 시대에도 이 직업은 노른자위였으니 장마당이 들어선 1990년대는 황금 밭이다. 사회주의 지주라고 불릴 만큼 철혁의 집은 부잣집으로 통했다. 밥과 빨래를 해주는 동네여인도 두고 살면서 쉬쉬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철혁 아버지 머리 회전은 타고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학자다운 인격에 더 가깝지만, 지적인 머리는 늘 경제 타산에 이용됐다. 철혁의 어머니는 단순한 편이다. 그래도 남편의 경제력 배경으로 한 가지 잘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대단히 사회에 공헌한 일이었는데 해마다 돼지 스무 마리 길러 군부대에 지원하고 김정일 감사를 받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꼭 한마디 한다.
“그거 받아 뭐해…… 감사문이라는게 종잇장이지.”
실제로 철혁이가 운전사 강습을 받은 뒤 여단장 운전사로 부유한 군사복무를 하게 된 것은 아버지 수완일 뿐 어머니가 받은 장군님 감사문은 하등의 가치도 없었다.
몇 달이라도 철혁이가 일반 군인들처럼 강원도 건설부대 배고픔과 추위, 육체노동의 진수를 맞보았다면 인간수업을 깨달을 수도 모른다. 포만 된 그의 기계적인 군사복무는 풍부한 생활이 가져다준 건장한 육체와 대학추천서가 전부였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채 제대되어 귀가하는 길이였다.
집이 다가올수록 철혁은 아들의 제대를 축하하며 며칠 동안 찾아올 아버지 친구들 생각에 흐뭇했다. 도매소 물품을 더 받으려고 늘 기회 보는 사람들은 꼭 철혁의 생일 날 뇌물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집 대문이 철혁을 기다린 듯 빠끔히 열려 있었다.
“어머니…….”
철혁은 문을 열면서 크게 불렀다. 응답이 없었다. 대문에서 집까지는 십 미터도 되지 않는다. 어디 나가셨나…… 인적이 없는 집 마당을 둘러보던 철혁은 왠지 자기 집이 아닌 듯 낯설어 보였다. 고급이었던 모직 옷이 털이 빠져 볼품없을 때 입어보는 그런 감정이다. 꽃을 심었던 마당 둘레에는 배추와 무가 되는대로 자랐고 울타리 둘레로는 새끼줄에 달린 줄당 콩이 얼기설기 매달려 있었다.
집을 잘못 찾았다는 생각을 해봤으나 분명 자기 집이다. 조그마한 강아지가 철혁에게 달려오며 자지러지듯 짖어댔다. 강아지라도 달려드니 반가웠다. 철혁이 강아지에게 손짓하니 제김에 놀랐는지 와닥닥 쫓기듯 우리로 들어가며 더 세게 짖어댄다.
“아버지…… 어머니…….”
철혁은 집 앞으로 다가가며 다시 불러봤다. 문이 열리더니 헝클어진 머리 모양을 한 여인이 앞을 응시한다.
“어머니, 철혁입니다.”
철혁은 놀라며 어머니를 바라봤다. 쉰 고개에 들어선 어머니 얼굴이 환갑을 맞은 노파처럼 머리칼이 희끗희끗 변해버렸고 정기 있던 눈도 흐릿해진 상태다.
“막내야…… 우리 철혁이 아니냐…… 응. 철혁아…… 내 아들 왔구나…….”
아들이 마치 남의 소유라도 되는 듯 ‘내 아들’이라는 말에 힘을 주며 어머니는 철혁을 안았다. 웃음 절반 눈물 절반 허둥거리던 어머니가 혼자서 외우는 듯이 말하는 소리가 철혁의 귀가에 들렸다
“네가 오려고…… 네가 집에 오려고 어제 꿈에 아버지가 보였…… 네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시…….”
“아버님은 몇 시 들어오는…… 누님들이랑 잘 계시죠. 어머니…….”
갑자기 어머니가 통곡한다. 물목이 터지듯 울어대는 어머니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철혁은 소리쳤다.
“엄마 왜 그래요. 왜 우는 데요…….”
철혁은 연약해진 어머니를 위로하려는 듯 꼭 안아주었다. 왜 그러는지 불길했다. 설마 하는 예감이 스치듯이 지나갔으나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네 이름만 찾다가…….”
어머니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철혁의 머리에서 윙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어머니를 안고 있던 손맥이 풀렸다.
“아버지가 왜 돌아가셔요…… 나한데 왜 알리지 않았어요…….”
철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울고 있는 어머니의 눈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이 확인되면서 몸이 땅속으로 잦아들었다. 창백해진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어머니는 눈물범벅으로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숨을 거두기 전 아버지를 발견했는데…… 아픈 걸 참느라 손톱이 빠지도록 땅을 긁으면서도…… 자살 때문에 네게 지장 될까봐 아무도 찾지 못하게 했어…… 여보…… 그렇게 찾던 아들이 왔는데…… 막내가 왔단 말이에요…….”
남편을 잃고 하늘이 무너지는 지긋지긋한 날들을 아들을 기다리며 버티던 어머니다. 이제야 마음껏 울고 부르짖더니 손발이 까 들어 지기 시작하였다. 심장협심증이 또 도진 것이다.
철혁은 급히 어머니의 손발을 주물러주며 아랫목에 눕혔다. 한참 지나자 어머니는 조금 진정 되어 평온이 돌기 시작하더니 아버지의 죽음을 천천히 이야기해주었다.
초겨울 저녁 열 시쯤, 집으로 돌아오던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철교 밑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오 미터나 되는 철교 위에서 큰 돌들이 몇 개 떨어졌다. 정통으로 뒷머리를 맞은 아버지는 즉시 졸도하였다. 불행의 원인은 아버지가 탄 자전거였다. 굶어 죽게 된 청장년들이 어둠이 깃들면 철교 위에 잠복한다. 밤이면 자전거를 탄 사람을 큰 돌로 급소 시켜 자전거를 빼앗는 일이 빈번했다.
‘밤 열 시에 자전거를 타고 다닐 건 뭐람…… 간덩이가 부었지…….’
철혁이 아버지 사고 소식을 듣고 주변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다.
한참 후에 지나가는 차 불빛에 발견된 철혁이 아버지가 병원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는 뇌 타박상이 심해 도 병원에 후송된 뒤였다. 한 달 입원치료 하는데 뭉청 저축한 돈이 날아가 버렸다. 무상치료제는 소가 말하던 옛말이다.
도매소 운수지도원 직업도 더는 유지할 수가 없었다. 석 달 후 다시 병이 재발한 것이다. 재발 치료하려면 집안의 재산을 팔아야 했다. 한계를 느낀 그는 쥐약을 먹고 자살을 선택했다. 입에 넣은 쥐약은 달콤했다. 그러나 오 분 뒤 뒤틀리는 배 아픔은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손으로 땅바닥을 허비며 고통을 참느라 철혁 아버지 입에는 마당의 흙이 한 줌이나 틀어막혀 있었다. 이 끔찍한 정경을 어머니는 아침에야 발견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났을 때 철혁의 몸이 마비가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직 하나 어머니 앞에서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만이 그의 의지를 세차게 후려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아들을 안았다. 그러나 정신이 잃을 정도로까지 나약한 철혁이는 아니다.
대담하게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강인한 천성을 물려받아 독스러운 성격이 그의 장점으로까지 되지 못해도 이런 상태를 이겨내는 데는 충분했다. 늙으신 어머니 모습과 초췌해진 집이 한 고리처럼 연결되는 순간 비로소 철혁은 몸부림을 쳤다.
“엄마…….”
처음 소리를 내어 울어보았다.
다음 날 아버지 산소에 철혁은 술 한 잔을 부으며 또 울어댔다. 쩝쩔한 눈물이 그의 입귀를 타고 턱으로 떨어지더니 산소를 적셨다. 이제는 어디도 믿을 데가 없다. 아버지가 없으니 대학을 포기해야 한다. 그다음은 뭐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말라가는 샘 줄기처럼 자신의 피가 타 들어가는 것 같다. 밟고 어두운 조명이 처음 그의 몸체를 비춰주는 셈이다.
어머니는 두부 장사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었다. 철혁은 며칠 동안 중학교 친구들을 찾아가 보았으나 어느 집이나 하루살이가 고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멀리 시집갔던 누이들까지 살기 어려워 친정집이라고 들어왔다. 온 식구가 두부 장사에 달라붙었다. 자칫 잘못하여 두붓물이 쉴 때는 밑천이 뭉텅 잘린다. 그것을 보충하느라 굶기도 하고 허기를 채우느라 찌끼로 빵을 해먹으면서도 철혁의 식구들은 밥 한 그릇 배불리 먹을 수가 없었다.
병약한 어머니가 먼저 자리에 눕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이밥 한 그릇 대접하고 싶었지만 철혁은 방법이 없다. 아들의 눈앞에서 죽어야 하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아들을 어머니도 당연한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머니는 끝내 굶어 돌아가셨다.
얼어붙은 땅을 곡괭이로 파헤치며 어머니를 묻는 철혁은 정신이 미치기 직전이었다. 엄마를 아버지 옆에 묻고 집에 박힌 채 며칠을 보냈다. 그동안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앞에도 뒤에도 꽉 막혀버린 감옥같은 세월이 온통 숨 막히는 질식 그 자체였다.
‘돈... ...돈....’ 갑자기 돈이라는 악에 받친 말이 나왔다. 그제야 그는 제정신이 돌았다. 어머니의 죽음이 그를 말려 죽이려고 할 때 돈이라는 유혹이 일보 직전에 제정신으로 사고하게 한 것이다.
철혁은 죽은 듯이 누워 있던 몸체를 벌떡 일으켜 성급히 밖으로 나왔다. 그 무엇이 그를 강하게 사로잡았는데 그것을 잡았다가 거진 놓칠까 싶으면 그는 다시 돈이라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돈벌이가 무엇인지 안타깝게 궁리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강도라도 되고 싶다. 어떻게…….
열차 안에서 군복 입은 자신을 무서워하던 승객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도난당한 제대배낭과 여인의 돈주머니도 떠오른다.
“그렇지…… 세월을 이용해야지…….”
심 봉사가 눈을 뜨듯 철혁은 이제야 세상이 보이는 듯했다. 어깨가 조금 펴지더니 깊은 숨이 나왔다.
운수직장에 배치된 그의 직업은 차 수리공이었다. 엔진 소리만 듣고도 어디가 고장인지 대번에 찾아낼 수 있지만 대체할 부속이 없다. 배터리가 낡아 차를 운행할 수 없다며 한 운전사가 직장장과 싸우고 있던 어느 날.
“식량을 실어오자 해도 배터리가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직장장 동지.”
“자력갱생은 말로 하는 게 아니야. 수단 써서라도 해결해보란 말이야.”
“해결이 말로 됩니까. 장마당에도 배터리 파는 게 없는데 도적질하란 말입니까…….”
남포항에 들어 온 수입쌀을 직장으로 운송하면 굶고 있는 종업원들에게 일주일 분 식량을 배급할 수 있다. 직장장도 굶기를 밥 먹듯 한다.
“수입쌀 핑계로 배터리를 외상 가져 오란 말이야…… 머리가 암둔한 것들이…….”
직장장이 중얼거렸다.
순간 철혁은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면 위에 오를 듯 말 듯 무엇부터 시작할지 밤새워 고민하던 것이 한 줌에 잡히는 순간이다.
“이것이다…… 내가 왜 지금까지…….”
철혁은 드라마 화면이 흐르듯 치밀한 계획이 세워졌다. 흠흠 한 표정으로 퇴근한 철혁은 옷장에 넣어두었던 군복과 군모를 꺼냈다. 이 군복이 가장 좋은 무기라는 것을 오늘 제대로 깨우친 셈이다.
달빛이 환한 거리로 철혁은 군복을 정히 입고 나섰다. 누가 눈 여겨 보지도 않는다. 시내를 한 바퀴 돌기도 전에 학교 구석에 세워놓은 화물차가 보인다. 묘준 했던 사냥물이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쏘아 떨군 꿩을 줍는 사냥꾼처럼 차체 곁으로 다가섰다. 그리고는 좌우로 ‘적정’을 둘러본다. 솔직히 마음은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군복을 입지 않았는가.
차체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병사는 드디어 ‘진지’를 차지하고 ‘목표물’을 한번 쓸어보았다. 곧 기민한 동작으로 가지고 간 스빠나로 배터리 덮개의 나사를 풀기 시작했다. 긴장 속에 마지막 나사를 풀려고 할 때 자는 줄 알았던 운전사가 불쑥 차문을 열고 나왔다. 철혁의 몸이 다람쥐처럼 날쌔게 차바퀴 안으로 오무라들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땅 울림으로 운전사 귀에까지 들릴 것 같다. 들키면 한 대치고 뛸 판이다. 다행히 소변을 본 운전사가 몸을 으스스 떨더니 차 안으로 들어갔다.
철혁은 다시 배터리에 붙었다. 마지막 나사가 풀렸다. 배터리 커버를 젖힌 철혁이 물건을 힘껏 뽑았다. 배터리가 단번에 나왔다. ‘내 것이다’ 철혁은 배터리를 소중히 들어 패인 웅덩이에 옮겨놓고 태연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루마를 끌고 숨겨놓은 배터리를 싣고 집 창고에 옮겨놓은 철혁은 혼자 씩 웃음이 나갔다.
첫 노획물이다. 야비한 승리감에 도취되었는지 철혁의 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잔잔했던 물결이 파도를 솟구쳐 철썩 바다 흐름을 쳐 갈기는 쾌감이었다. 그 쾌감 속에 곧 잠들어 버렸는데 몸체가 흰 구름에 실려 둥둥 떠다니며 날아다니는 새를 잡는 꿈이었다.
며칠 후 배터리는 남포항으로 수입 식량을 실려 가는 직장운전사에게 외상 주었다. 이틀 후 식량은 도착했고 배터리 가격으로 백 키로의 쌀을 직장에서 받았다. 개선장군이 연회를 베풀 듯 보석처럼 상상 하던 입쌀을 철혁은 집에 들여왔다. 누이들은 놀랍고 기쁜 나머지 쌀 마대를 헤치지도 못하고 쓰다듬기만 했다. 그리고는 동생에게 물었다.
“우리 쌀이니. 먹어도 되는 쌀이니…… 어디서 갑자기 이렇게 많은 쌀이…… 꿈같아서 믿기지 않아…….”
철혁의 대답은 아주 의연하였다.
“이밥을 실컷 잡숴봐. 그리고 이제부터는 굶지 말아요…… 조금 일찍 철이 들었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지 않았겠는데…….”
철혁의 눈가에 흥건히 눈물이 고였다. 쌀 마대를 신기하게 만져보던 누이들이 부모님 생각에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철혁은 나무에서 떨어져 기어 다니며 밟혀 죽을지 모르던 송충이가 나비로 둔갑하여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지금 같은 세상에 굶어 죽으면 벌레인 거야.’
철혁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를 흘겨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새로운 삶이었다. 죄의식보다는 떳떳함이라는 버젓함이 삶의 가치를 만들고 있었다.
철혁의 장사수완이 좋아서 집안 살림이 좋아진다고 여기저기서 혼인이 들어왔다. 인물이 괜찮거나 직업이 괜찮으면 모두 그의 대상자다. 왜서인지 누구도 맘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철혁의 나이 스물여덟 살이면 사랑이 애절할 때이다. 그 애절한 사랑이 철혁에게는 수익을 계산하는 잣대이다. 철혁의 마음도 모르고 누이가 재촉했다.
“철혁아. 중학교 교사 체네 선 한번 보렴…… 마음도 착하다는데…….”
“누이. 착한 게 밥 벌어 먹이겠어요. 능력이 있어야지 …….”
“………….”
철혁의 말투에 약간 짜증이 묻어 나왔다. 능력이라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누이는 그저 동생에게 토를 달고 싶진 않았다. 쌀 마대를 집에 들여온 그날부터 동생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은밀한 가정 체계가 시작되었다.
며칠 후 철혁이 차 배터리를 또 노획했다. 누이들이 협조했는데 철혁이 뗀 물건을 구루마에 싣고 집에 나르는 것이었다. 구매자를 찾는 일도 누이들 몫이다. 전기를 충전하는 배터리가 집 재산 1호로 유행이어서 구매자를 찾는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돈주로 인정되는 집을 찾아가 배터리를 사지 않겠는가 물어보면 거의 오케이다. 또 잘 산다고 인정받으려면 유행되는 배터리 정도는 놓고 창문가에 조명 빛이 흘러나와야 위신이 선다.
“금천동 과부가 배터리를 사고 싶어 한대.”
철혁에게 누이가 말했다. 대동강 넘어 새로 지은 아파트 동네를 말한다.
“가면 맞돈이겠죠…….”
누이들이 정확한 상대를 알아냈는가 하는 질문이다. 맏누이가 얼버무렸다.
“잘산다는데 뭐…… 맞돈 아닐까…….”
“지금 가면 사람 있나요.”
“집에서 앉은장사(도매) 한다는데 모르겠어…… 열에 아홉은 있을 거야.”
“빨리 팔아야 하니까 지금 떠나요 누이.”
철혁은 배터리를 구루마에 싣고 그 위에 헌 마대를 씌워 놓았다. 배추 몇 단까지 위장한 다음 자전거를 타고 먼저 도로에 나갔다. 구루마는 누이들이 끌고 철혁은 뒤에서 순찰대(주민들의 장마당 활동을 단속하는 법기관에 동원된 사람들)가 붙지 않는지 감시해야 했다. 별다른 일없이 다리 건너 새 아파트 마을에 도착했다.
파란 철 대문을 한 집 앞에서 누이들이 멈췄다. 철문에는 키 번호가 달려있었다. 비싼 철문에 키 번호까지 설치한 걸 보니 잘산다는 과붓집이 맞는 것 같다.
“계세요…….”
누이들이 주먹으로 철문을 쾅쾅 두드렸다. 인쯤 나오지 않았다. 누이들은 주먹에 힘을 주고 더 크게 두드렸다. 집 안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렸다. 기척이 나더니 주인인 듯한 여인이 철문 빗장을 덜커덩 열면서 얼굴을 내밀었다.
“어디서 왔어요.”
낮잠 자던 모습인지 헝클어진 머리칼과 그의 눈빛은 졸던 고양이처럼 풀려 있었다.
“배터리 필요하지 않아요? 좋은 물건인데 한번 봐요.”
누이들이 조심스레 말했다.
“배터리요, 어디 있어요?”
구루마에 실려 있는 배터리를 누이가 위장물을 젖혀 버리고 보여주었다. 배터리 물건을 확인하려고 목을 빼던 과부는 구루마 옆에 서 있는 철혁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 눈길이 마주쳤다.
“이거 군대 삼촌 아니야…….”
과부의 목소리가 반갑던 나머지 약간 갈리기까지 한다. 그의 목소리가 아파트 공간을 울렸지만 철혁은 바라보기만 했다.
“아는 사이야. 철혁아.”
누이가 물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억이었지만 철혁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줍게 웃으며 의아한 표정만 던질 뿐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삼춘. 세상이 좁다더니…… 여기서 만날 줄은…… 날 살려주었잖아. 열차 생각 안 나…….”
살려주었다는 말에 철혁은 불현듯 제대되던 날 열차 안에서의 일이 상기되었다. 승객들에게 깔려 죽을 뻔했던 아줌마?
“그날…… 내가 제대되던 날…… 맞죠? 아줌마?”
“그래. 삼촌 아니었으면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지…… 제대배낭 털린 거 보면서도…… 내 돈 가방도 쓰리꾼(소매치기)들이 모셔가는 덕에…….”
과부의 이름은 화순이다. 화순은 혼자 흥에 겨워 말을 하며 웃어댔다. 실제로 그는 반가웠고 즐거웠다. 배터리는 관심에도 없는 듯 철혁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철혁은 끌리다시피 여인의 손에 끌려 들어가며 누이들을 돌아보았다.
“들어와요. 누인가요?”
철혁이의 눈길을 따라 여인이 상냥하게 말했다. 생각밖에 동생과의 친분을 만난 누이들은 배터리가 잘 팔릴 수 있다는 생각에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는 배터리를 들고 동생을 따라 들어갔다.
철혁은 과부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연했다. 넓은 집안에 배분 된 재산들이 지금껏 철혁이 보지 못했던 값진 것들이었다. 넓은 창문 옆에는 삼면 경대가 놓여 있었는데 연보라 작은 꽃들이 꽃병에 꽂혀 경대 탁에서 하늘거렸다. 우측 벽체에는 긴 소파와 나란히 대형 냉장기가 놓여 있어 집 안 무게를 살려주는데 그 자체가 장관이다. 전실에는 방금 짖어대던 커다란 군견이 앞다리를 세우고 앉아 낯선 손님들을 경계하며 으르렁대고 있다. 현대식 부잣집이었다. 옛날 철혁의 아버지가 도매소 다닐 때 잘 산다고 인식했던 그런 차원이 아녔다. 한 세기를 앞선, 그것도 쌀이 없어 굶어 죽어 가는 지금, 별세계와도 같은 극락세계였다.
어느 하나도 홀시 할 수 없으리만큼 값비싼 가구들과 중국제 상품으로 일식 된 부엌세간이다. 철혁은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아름드리나무 앞에 싸리나무 한 가지가 주제 없이 서 있는 느낌이 든다. 부자 같은 마나님 집을 누이들이 구경하고 있을 때 철혁의 마음 구석에서는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불공평한 시대가 누구에게는 행운을 준다는 사실과 그것을 잡지 못한 질투 같은 감정이었다.
화순은 성의껏 밥상을 차렸다.
“뭐 갑자기... 배고플 텐데 식사부터 해요”
“......”
돼지발족 요리와 가지찜, 이밥에 두붓국 진수성찬이다. 갖가지 양념들이 들어간 김치 또한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철혁은 일부러 화순과 눈빛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눈치 보지 않고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편한 분위기다. 철혁의 누이들도 화순에게 열차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배불리 음식을 먹었다.
“이 값은 배터리 값이에요…… 그리고 이건 그날 날 살려준 거 인사비용이니 받으라요.”
배터리 값은 이십만 원이다. 그러나 화순이가 철혁이게 준 배터리 돈은 삼십만 원이다. 열차에서 구해 준 인사비용이라며 이십만 원을 더 얹어 오십만 원을 주었다. 누이들이 사양했으나 철혁은 마지못한 척 받아 넣고 일어났다. 심장이 왜서인지 뛰고 있었다.
“잘 가. 군대 삼촌.”
그때에야 철혁은 여인을 정면으로 보았는데, 사십 대치고는 생기가 끓어 넘쳤고 연한 화장으로 느낄 수 있는 엷은 향기는 이성을 흡인할 만큼 넉넉했다. 생긋이 웃을 때 드러난 덧니가 퍽 귀여운 인상을 준다.
“고마워요. 누이. 잘 쓸게요”
누이라는 말에 화순의 얼굴빛이 약간 붉어지는 듯하더니 살짝 웃으며 철혁에게 말했다.
“또 봐…… 일 있으면 아무 때든 찾아 오구…….”
철혁은 저 여인이 세상의 한끝에서 바람 곬을 잡은 신처럼 보였다. 그 바람 부는 언덕에 자기라고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황황한 걸음으로 철혁은 도로에 나섰다. 벌렁 누워 굶어 죽으면서도 눈만 덩그러니 뜨고 있는 순진한 사람들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철혁은 오늘 깨달았다.
지금같이 혼잡 된 빈 틈바구니에서 저 여성 같은 부자가 나올 수 있는 세상 묘리가 신기하다. 철혁에게는 도적행위처럼 의식되던 부당성을 밀어붙이는 힘이 되었다. 심장이 부웅 뜨는 감을 느꼈다. 자신을 깨워준 여인처럼 세상을 안고 싶은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화순이 얼굴만 얼른거린다.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다.’
돈 버는 방법을 배워달라며 동창생들이 올 때마다 철혁은 이 말을 해주었다. 그는 친구들 중에 경보 출신 두 명과 손을 잡았다. 전투에 진입할 수 있는 최상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었다. 가난으로 타락할 뻔했던 그들은 철혁의 제안에 찬성했는데 군복을 입고 열차 화통이나 자동차 물품을 도난 하는 일이었다.
산산한 달빛이 거리를 희붐히 비치던 겨울 어느 날, 제대군인 부대 첫 거사는 자동차 급습부터 진행했다. 반듯한 군복을 입은 이들의 머리에는 군모의 군별까지 달빛에 반사하고 있어 품위 있는 친위부대(수령을 옆에서 보위하는 호위국)를 방불케 했다. 오히려 으슥한 밤 길손들이 보호를 받고 싶을 정도이다. 철혁은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화물차를 잡아타고 상차리 고개에서 내렸다.
철혁이가 구상했던 작전 지형이다. 도로 좌우로는 듬성듬성 나무들이 서 있는 산비탈이었고 길목은 오르막길이어서 속도를 낼 수가 없는 곳이다. 여기서 이들은 목표물을 기다려야 했다. 여러 대의 차들이 지나갔다. 적재함에는 물품이 없거나 유조차들뿐이다.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쌀 마대를 실은 차가 달빛에 훤히 들여다 보이였다. 2호 창고로 실어가는 식량이다. 최대 가속을 밟으며 올라오는 식량 차는 철혁이 잠복한 마지막 정점에서 더는 속도를 낼 수 없었다. 급경사 길로 천천히 올라오는 적재함에 병사 하나가 나는 듯이 올랐다. 인수원 두 명이 벌떡 일어났으나 칼을 든 군인 모습에 공포에 떨며 급히 운전 칸을 두들겼다. 운전 칸도 이미 철혁의 계획대로 다른 병사가 쟁탈한 뒤였다.
“…….”
반항해봤자 목숨까지 잃을 판이어서 식량 후송 인원들은 꼼짝 않고 반항하지 않았다. 철혁이가 어느새 제동기를 밟고 차를 세웠다. 식량 운송 일행들이 급급히 달아나자 쳘혁은 전투를 지휘했다. 초조한 시간이 삼십 분이나 흘렀다.
“철혁아 빨리 차를 몰고 가는 수가 아니냐…… 어쩌자고 이래.”
같이 온 친구들은 장승처럼 뻗치고 서 있는 그를 보며 소리쳤다. 그러나 철혁은 다 생각이 있다. 한참이나 먼 곳을 응시하던 철혁이 마침내 입을 열고 소리쳤다.
“저기 빈 차가 온다. 차를 세워야 해. 운전수는 놀래우지 말고.”
정말 철혁의 말처럼 빈 차가 한 대 올라왔다. 차 불빛 속에 군인들의 형체가 환히 드러났다. 철혁은 깍듯이 거수경례를 하며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운전사 동지, 차가 고장 났는데 식량 후송 중입니다. 도와주십시오…… 민가 있는 데까지만 좀 부탁합시다.”
운전사는 추운 겨울 고생하는 군인들을 동정하고 싶었는지 빨리 옮겨 실으라고 손으로 시늉했다. 다섯 톤가량의 입쌀을 옮겨 실은 차는 화순이 사는 아파트에서 멎었다. 그 여인만이 이 방대한 일을 능숙히 처리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찰보안원들이 이 밤중 식량차를 단속하려다 군복 입은 군인들을 보고는 찍소리 없이 물러났다.
갑자기 나타난 철혁을 본 화순은 놀랍기도 했고 반갑기도 하여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삼촌이 무슨 일로 밤중에…… 이 쌀은 무슨 쌀이에요……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누이. 농촌 가서 실어오는 쌀인데 처리 해줘요. 좋은 쌀이에요. 믿고 찾아 왔습니다.”
쌀은 그의 집 창고로 옮겨졌다. 여인은 다섯 톤임을 확인하고는 야매(국정가격이 아닌 시장가격)가격으로 계산하여 맞돈을 주었다. 마치 이 여인이 공짜로 주는 돈 같다. 철혁은 돈 보다다 화순을 안아주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다시 한 번 이성의 흡인력이 철혁을 사로잡았다. 겨울 새벽바람이 대지를 얼구며 지나갔지만 철혁은 뜨거운 화로를 짚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철혁은 십오 년이나 연상인 화순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큰돈을 받으니 무도라도 출 것 같은 기분이다. 삶이 왜 그렇게 암담했던지, 어디선가 술에 취한 주정뱅이 노랫소리가 괴이쩍게 들려왔지만, 그것도 축가처럼 들렸을 뿐이다. 첫 전투의 승리를 철혁은 친구들과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자축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다. 선군시대를 이용하여 철혁은 일년 동안 막대한 돈을 모았다.
담이 세진 철혁은 한 계단 올려 기차 화통 작전을 벌였다. 한 번은 역 사령원과 술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7총국(인민군 건설부대) 군수물자가 일반 화통과 연결되어 운행된다는 정보다. 군수물자라면 돈이 나가는 물건이다.
날짜와 시간을 알아 낸 철혁은 수십 개 연결 된 화통 속에 몇 번째 화통이 군수물자인지부터 알아냈다.
그날이 왔다. 철혁은 철길 옆 역삼밭에 잠복했고 친구들은 몇 미터 떨어져 있다. 멀리서 기차 소리가 레일 장으로 들려온다. 서서히 몸체를 드러내며 다가오는 열차 화통을 바라보던 경보제대군인이 마지막 화통에 붙었다. 군수물자 화통이다. 다행이 마지막 화통이어서 퍽 유리했다.
총을 멘 군인 두 명이 물자를 인솔하고 있다. 그들은 물자를 실은 화차 위에 총을 메고 앉아 무엇인가 먹고 있었다. 다행히 그 덕에 화통 밑에 붙은 ‘강도’들을 볼 수가 없었다. 경보제대군인이 화차를 연결하고 있는 공기 호스부터 뽑았다. 그다음 또 다른 군인이 연결하고 있는 커다란 못을 돌리면서 뽑아 버렸다. 화차가 분리되면서 떨어졌다. 달리는 화통 쪽에 붙었던 경보제대군인이 나는 듯이 뛰어내려 분리된 화통으로 원숭이처럼 붙었다. 군사복무시기 십 년 동안 특수훈련을 받은 그대로 손색없는 동작이었다. 저 멀리 열차는 속력으로 계속 달린다. 급기야 대기하고 있던 철혁이 화통 문을 열고 물품 마대를 내리기 시작했다. 십 미터 밖에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순간도 지체하면 안 된다. 화통이 없어진 것이 발견되기만 하면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역전 지나면서 7총국 경비대 군인은 화통 한 개가 떨어진 것을 발견했다. 열차는 비상정차를 하였다. 비상사건이다. 군인 두 명이 모다까(철길정비를 할 때 타고 다니는 수동차)를 몰아대며 오고 있다는 것을 철혁은 알 수가 없었다. 철혁이 화통의 물품을 차 옆에 가져다 놓으면 친구들은 차 적재함에 상차하고 있었다.
“꼼짝 말아…… 어느 부대야.”
도착한 군인들이 군복을 입은 철혁에게 소리쳤다.
“…….”
철혁이 두 손을 입에 넣고 휙! 소리가 나도록 휘파람을 불어댔다. 모두 잡히면 안 된다. 극히 위험에 처할 때 약속된 신호였다. 총을 든 군인들이 철혁이 신호한 방향을 감을 잡아 눈길을 돌렸다. 급히 시동 걸며 떠나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차의 행적을 따라 경비대 군인들이 달려가는 틈을 이용해 철혁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라…… 안 서면 쏜다.”
한 명의 군인이 돌아서며 철혁에게 소리쳤다. 군인들의 목소리가 야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고스란히 잡힐 철혁이 아녔다. 최대의 속도로 철혁은 달리기 시작했다. 자동차의 물품이 이젠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잡히지 않으면 성공이다.
“땅…….”
총소리가 울렸다. 어둠 속에 달리고 있는 철혁이를 향해 군인이 공포를 쏘아대는 것이다. 도망치던 철혁이 주저앉을 줄 알았지만, 그는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경비대 군인이 이번엔 철혁이 뛰지 못하도록 다리를 명중하여 쏘아댔다. 그러나 그 총알은 철혁이 허리 중심을 맞혔다. 두 번째 총소리가 또 나더니 복부를 명중했다. 몸이 따끔한 것 같더니 철혁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 뛰려고 했으나 쿨럭 쿨럭 배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쫓아온 군인이 쓰러진 철혁이 목덜미를 쥐고 일으켜 세우려다 낭자한 피에 화들짝 놀랐다. 출혈하는 배를 그러쥔 철혁이 뭐라고 말한다. 그러나 군인은 들으려고도 안 한다. 군수물자를 도난당한 책임이 그에게는 더 무서운 것이다. 자동차 추적도 놓쳐버린 다른 군인이 뒤늦게 달려와 총에 맞아 쓰러진 철혁을 보더니 가자고 손 시늉을 했다. 두 명의 병사들은 방금 철혁이 뛰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도망쳐 갔다.
철혁의 몸에서 피는 멈추지 않았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철혁은 굼지럭 손을 움직이더니 윗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눈물때문인지 사진이 뿌옇게 보인다. 그것도 잠시 철혁이 손에서 사진은 피고인 땅에 떨어졌다. 환히 웃고 있는 남녀 얼굴이 피색으로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화순이와 사랑을 나누며 찍은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