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미술 그림샘 & 월간 아트앤씨
애니메이션과 사람이야기 일곱 번째
Is a Woman [MV making by Shynola]
Animation & Human Story 7th
Is a Woman [song by Lambchop]
[글 / 조아진 : 방문미술 그림샘 대표, 월간 아트앤씨 객원기자]
봄을 기다리며
가을의 마지막을 고하듯 붉은 단풍잎 하나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작별인사도 못한체 힘없이 추락하고 있다. 바람불면 부는대로 휘둘리고 물이 흐르면 흐르는대로 휩쓸려간다. 하지만 정처 없이 흘러가다가도 때때로 물 위로 솟은 돌부리에 기대어 쉬기도 한다.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더없이 청명한 하늘과 순백의 눈으로 덮인 온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평온하기만하다. 어제에도 그랬듯 오늘도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길을 재촉하듯 다시 물 길 따라 흐르고 아득히 먼 곳까지 이르렀을 무렵 샤이놀라(Shynola)가 선사하는 나뭇잎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잰 걸음으로 뭍 위로 오르기 시작하는 나뭇잎 뒤로 가지각색의 나뭇잎들이 뒤를 쫓기 시작한다. 어느 덧 수 백, 수천의 나뭇잎들이 된 그들은 눈 길을 헤치고 언덕을 지나 벌판을 질주한다. 하루가 꼬박 다 지나가고 석양이 대지를 적실 무렵 그들이 다다른 곳은 그들이 나고 자란 곳. 생명의 근원. 나무로의 환향이다. 메마른 가지를 타고 올라 가지의 끝에 자리를 잡고 별 빛으로 수놓은 밤의 이불을 덮고서 포근한 잠에 빠진다. 깊은 밤이 지나고 따듯한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 봄이 기지개를 켠다.
세상을 온통 연녹빛으로 가득채운 봄의 기운은 인간들의 삶이 그러하듯 태어나고 자라서 먼 길을 떠나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 순환의 과정이다. 자칫 무겁게 다가올 법한 이러한 주제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매체적 특성과 샤이놀라라는 개성 넘치는 4인의 영상창작집단을 만나 유쾌한 상상과 희망의 메시지로 재생된다. 뮤직비디오는 균형이 중요하다. 음악과 영상이 만나 서로의 존재를 각인시켜 주며 서로 간에 상승효과를 발휘해야 좋은 뮤직비디오가 될 수 있다.
샤이놀라가 제작한 뮤직비디오 영상중 2009년 최근작인 콜드플레이(coldplay)의 strawberry swing이 독특한 발상과 현란한 비쥬얼 효과로 대중들의 인기를 끌었었다면 지금 소개하는 램찹(Lambchop)의 2002년 앨범인 Is a Woman에서는 서정적이고 관조적이며 환상적이다. 게다가 음악과 영상의 조화로만 보자면 앞서 언급한 것 이상의 시너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묘사의 생략과 강한 대비 그리고 일본의 민화를 떠오르게 하는 일러스트적인 느낌들이 램찹 보컬의 차분하게 읖조리는 듯한 노랫소리와 기묘하게 조화된다. 특히 흐르는 물에 몸을 실어 정처없이 떠돌다 잠시 돌부리에 기대어 쉴 때의 고요함과 후반부에 이르러 경쾌하게 시작되는 타악기 리듬에 맞추어 되살아나는 나뭇잎의 시퀀스는 애니메이션의 타이밍이 음악과 절묘하게 만났을 때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섬세한 표현보다 더욱 빛나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에 있다.
겨울의 끝과 마지막 인사는 언젠가는 우리가 걸어야할 인생의 마지막 길과 닮아있으며 어둠과 함께 내리는 찬연한 별빛은 먼저 떠난 이들의 환영과 축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게다가 떠나는 길이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나로 인해 다시 태어날 새로운 희망들이 싹을 틔울 것임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꽃이 필 때, 꽃이 질 때 그리고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달아 줄 때도 사실은 아픈 것이라는 이해인 수녀의 시처럼, 희생이 주는 선물은 나에게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전해졌을 때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