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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브레노스창의영재교육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김경현 BRENOS
김효민 〈캘리포니아대학교(어바인) 방문교수〉
흔히 치매는 노년에 찾아오는 날벼락과 같은 병으로 인식된다. 치매 환자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확실한 치료 방법이 없고, 발병의 원인도 아직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치매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0년 10월 16일, 대한치매학회와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치매 극복의 날 행사는 ‘치매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대한치매학회 한설희 이사장에 따르면 치매는 이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예방할 수 있으며, 조기 진단시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다(〈뉴시스〉, 2010. 9. 12). 언론의 보도에서도 ‘치매는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조기에 발견해 적절하게 치료하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상실하는 불행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조선일보》, 2009. 9. 22)이므로 ‘치매는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는 선입견’을(《포커스신문》, 2011. 12. 5)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뇌과학은 과학적 설명을 통해 특정한 형태의 미래상을 그려 내는데, 이때 어떤 미래상은 매우 희망적인 부분을 포함한다. 치매를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뇌과학을 통해 인간의 인지적 능력을 치료하고, 관리하고, 보호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특히 치매를 조기 진단하여 적절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은 인지력 저하로 인해 존엄성을 상실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하는 환자 개인이나 환자의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근래에 와서 치매는 건강 및 사회 복지 서비스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가장 심각한 요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Care Services Improvement Partnership, 2005). 국제알츠하이머학회(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의 2010년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의 치매 환자 수는 3560만 명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또한 치매 환자의 수가 2030년에는 6570만 명, 2050년에는 1억 154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010년에 전 세계적으로 치매 환자를 위한 치료, 케어 및 복지 서비스에 쓰인 공식 및 비공식적 비용은 합계 604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 2010). 치매에 관한 우려가 증가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조기 진단을 치매에 들어가는 보건 의료 및 사회 복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적 전략의 하나로 선택하고 있다(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 2011).
경미한 치매 증상 혹은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는 노인을 상대로 검사를 실시하여 치매를 조기 진단하는 작업이, 치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써 인식되고 있음을 여러 보고서에서 볼 수 있다(Department of Health 2009, Welsh Assembly Government 2009, 오병훈 2008). 2011년 보건복지부는 치매의 조기 진단을 권고하면서, ‘치매는 중증으로 진행할수록 의료비 및 부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중증 환자의 경우 증상이 가벼울 때보다 9배나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치매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덜 훼손하는 것은 물론, 사회경제적 부담도 줄이는’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연합뉴스〉, 2011. 2. 25).
이 장에서는 현재 치매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식인지를 정리해 봄으로써, 치매에 관한 새로운 뇌과학적 논의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치매가 손을 쓸 수 없는 병이 아니라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면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병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사회에 확산되는 과정에서 노인의 인지력과 삶의 의미가 어떻게 재구성되고 있는지를 짚어 보고자 한다.
강남구 치매 지원 센터가 배포하는 한 안내 책자에는 〈치매도 치료가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어머니가 기억력 및 인지력 저하의 증상을 간혹 나타내는데도 큰아들은 “나이를 드셔서 그런 것이겠지. 별일이야 있겠나. 혹 치매라고 하더라도 어쩌겠어. 치료도 안 된다는데.”라고 생각해서 방치했는데, 외국에 살고 있는 작은아들이 귀국해서 얼른 검사를 받게 했더니 뇌종양에 의한 치매여서 바로 수술을 받았고 일상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 정도로 회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뇌종양에 의한 치매 이외에도 갑상선 기능 저하증, 비타민 B12나 엽산 결핍, 우울증 등에 의해 발생한 치매의 경우는 조기에 진단하여 치료를 할 경우 완치가 가능하고, 완치가 어려운 혈관성 치매나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에도 조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면 증상이 악화되는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끝이 난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치매의 조기 발견이 늦다. 치매의 첫 증상이 있고 난 후 병원을 찾는 데 걸리는 기간이 외국은 평균 1.4년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평균 2.7년으로 거의 2배나 걸린다. 이준영 서울시 보라매병원 정신과 교수는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가 되어야 치매라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에 치매 부모가 중증이 될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9. 9. 22위의 기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노인이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가 아니라도, 약간의 인지력 저하의 징후를 보이면 치매 고위험군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노인의 뇌를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 관찰해야 하는 대상으로 재구성한다. 내가 치매 노인이 아니라고 해서 정상 노인인 것이 아니고, 고위험군 노인일 수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상실하는 불행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새로운 책임 의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노인들이 자신의 사소한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고 기억력과 인지력의 장애로 문제화하는 사고방식의 전환은 치매 관련 기관과 대중 매체를 통해 장려되고 있다.
위의 그래프(《조선일보》, 2007. 6. 26)는 경도 인지 장애 단계에서 조기 진단을 받아 빨리 치료를 받으면 중증 치매로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간략하게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이때 ‘경도 인지 장애’나 ‘치매 고위험군’이라는 이름은 비록 인지 장애를 겪고 있지만, 당신은 아직 존엄하고 죽기 전까지 존엄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표시로 작용한다. 치매 고위험군이라는 이름을 통해 노년의 인지 장애와 존엄성의 상실 사이에 새로운 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지 장애로 진단을 받더라도 중증 치매까지는 겪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는 과정에서, 뇌과학의 담론은 새로운 책임과 문제의식을 생산해 낸다. 이제 치매는 걸리면 안 되는 질병이 아니라 조기 발견을 못 하면 안 되는 질병으로 변하고 있다.
치매 조기 진단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노인이 일으키는 사소한 실수는 의학적 문제의 대상이 된다. 노인이 깜박 약속을 잊거나 일상생활의 수행 능력이 젊을 때에 비해 감퇴한 것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대신, 이러한 변화가 치매로 이어질 가능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조기 검진을 받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 행동인 것이다. 치매 관련 의료 기관과 언론은 조기 검진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깜박깜박 하신다고요? 또, 약속을 잊으셨나요? 헉, 냄비를 태우셨어요? 걱정만 하지 마시고 기억력 검사 받으세요.”
구로구 치매 지원 센터, 〈치매에 대하여〉
“본인의 실수를 깨닫지 못하고, 의심과 집착이 심해지거나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할 때는 치매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SBS 뉴스〉, 2012. 1. 21
“치매의 초기 증상은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이라 불리는 일상생활 수행 능력에 장애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억력이 저하되면서 가스 불 끄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잘 찾아오던 집을 잊어버리는 등 평소 잘 해오던 일상생활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이 가장 흔히 범하는 오류는 이러한 증상들이 노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 혹은 그저 가벼운 건망증의 일종이라고 간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 치매 증상을 발견했다면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 정확한 검진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매일경제》, 2012. 2. 7
실제로 치매의 조기 진단을 위한 시설과 지원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치매가 의심되는 노인이 병원을 찾아가서 자기공명영상 촬영(MRI)과 인지 기능 평가 검사를 받으려면 50만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하다. 2007년부터 시작된 치매 조기 검진 사업은 보건소에 치매 상담 센터를 설치하고 거점 병원과 연계하여 60세 이상 노인이라면 인지 기능 평가 검사와 컴퓨터 단층 촬영(CT) 검사를 무료로 받고, MRI 검사는 일부 비용을 보조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치매 조기 검진 사업을 실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보건소는 2009년에 192개로 발표되었다(《조선일보》, 2009. 9. 22).
2009년 서울시의 25개 자치구에는 14개의 치매 지원 센터가 설치되었다. 치매 지원 센터는 중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용 시설 중심의 치매 관리와는 다른 역할을 담당한다. 치매 지원 센터의 주된 사업은 조기 검진, 치매 예방 교육, 인지 재활 프로그램 운영, 저소득층 치매 환자를 위한 검사비와 치료비 지원, 치매 환자 가족 지원과 조호에 필요한 물품 제공이다.
이 중 조기 검진 사업은 자치구 내의 건강한 노인을 포함한 모든 노인들에게 치매 조기 검진을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치매 지원 센터들은 조기 검진율을 높이는 것을 매우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각 자치구의 치매 지원 센터들은 얼마나 많은 노인을 검진해서 얼마나 많은 치매 고위험군 환자와 치매 환자를 검진해 내었는가를 통해 평가를 받기 때문에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검진율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구로구 치매 지원 센터는 센터로 찾아오는 60세 이상 노인들에게 기억력 검사를 해줄 뿐만 아니라, 구내 15개의 주민센터로도 직접 찾아가서 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단 조기 검진을 받고서, 치매 고위험군으로 진단된 노인들은 치매 지원 센터에서 운영하는 비약물적 인지 치료 프로그램은 물론, 치매 지원 센터와 연계된 병원들이 제공하는 약물 치료 등을 효율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심각한 인지력 저하 증상을 보이지 않거나, 심지어는 인지력 저하 증상을 전혀 보이지 않는 노인도 일단 60세가 되면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을 것을 장려한다.
2011년 서울시는 25개 자치구 치매 지원 센터 이용자 51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치매 지원 센터 서비스 이용 만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설문 결과에 따르면 치매 지원 센터를 방문한 사람들 중 55.14%인 2826명은 본인이 치매인지를 진단받고 싶어서 직접 방문했으며, 배우자가 치매인지를 알아보고 싶어서 방문한 사람은 925명(18.05%)이었고, 부모가 치매인지 알아보고 싶어서 방문한 사람은 799명(15.59%)으로 상대적으로 소수인 것으로 나타났다(《중앙일보》, 2012. 1. 6). 치매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치매에 걸린 노인이나 치매 관련 의료 인력의 일상을 바꾸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치매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많은 60대 노인에게 정기적인 치매 진단이라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치매학회는 ‘진인사대천명’이란 슬로건 아래 치매 예방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진, 진땀 나게 운동한다. 인, 인정사정없이 담배를 끊는다. 사,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 대, 대뇌 활동을 열심히 한다. 천, 천박하게 술 많이 마시지 않는다. 명, 명이 긴 식사를 한다. 이 캠페인은 치매를 나이가 들어서 걸리는 불치병이 아니라, 생활 습관의 개선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병으로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신문이나 책을 읽는 등의 대뇌 활동을 열심히 하면 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은 뇌과학의 용어와 권위를 통해 확산되는 경향이 있다.
서울 시내 14개의 치매 지원 센터에서 운영되는 인지 재활 프로그램에는 미술 심리 치료, 음악 치료, 독서 치료, 작업 치료 프로그램 등의 비약물성 치료가 포함되는데, 이 프로그램들은 치매 고위험군 환자가 중증 치매로 진행하는 속도를 늦추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인들은 다양한 인지재활 치료를 뇌 기능의 강화와 연관 지어 이해하도록 장려되고 있다. 또한 많은 치매 지원 센터는 치매 고위험군 노인을 위한 비약물적 치료 사업 이외에도 뇌와 인지 교육에 관한 교육 사업을 실시한다.
인지 기능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뇌의 특정 부위를 단련시켜서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교육 사업이다. 이와 같은 교육은 고위험군 노인들뿐만이 아니라 정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통해서도 실시된다. 되돌릴 수 없는 ‘나이’에 관한 강연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뇌’에 관한 강연을 통해, 치매 지원 센터는 노인들에게 다가간다. 많은 노인들이 치매 지원 센터와 언론의 치매 관련 보도를 접하게 되면서, 치매가 뇌의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인식은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강남구 치매 지원 센터와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치매 클리닉에서 실시하고 있는 한 치매 예방 교육 유인물은 뇌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본인의 노력을 통해 인지 기능 약화를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나의 뇌를 웃게 하자’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60세 이상의 노인들은 5일간 매일 두 시간씩 뇌를 자극하여 치매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운동법, 뇌 건강에 좋은 음식 등에 관한 교육을 받는다. 교육 유인물에 의하면 십자말 풀이, 끝말잇기, 반대말 대기, 특정 자음으로 시작하는 낱말 생각하기, 낱말 거꾸로 말하기 등은 전두엽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좋은 활동이며, 측두엽의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매일 신문 기사를 하나씩 읽고 말이나 글로 요약해 보거나, 독서한 내용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거나, 앨범을 보면서 가족들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매일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한다.
강남구 치매 지원 센터의 ‘뇌 건강 하모니 음악 교실’은 안내 책자를 통해 소리 및 음악 감상과 노래 부르기는 측두엽을 활성화하고, 작사와 같은 창조적 음악 활동은 전두엽을 활성화하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는 활동은 두정엽을 활성화하고, 악기를 통해 촉각을 자극하는 활동은 후두엽을 활성화한다고 설명한다. 고위험군에서 중증 치매로 진행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새롭게 생활 양식을 바꿔야 한다고 노인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는 유연한 노년의 뇌라는 이미지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구로구 치매 지원 센터에서 펴낸 《치매를 예방하려면?》이라는 책자에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 수영, 자전거, 빠르게 걷기와 같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해산물, 등 푸른 생선, 견과류 등을 규칙적으로 섭취하고, 절주와 금연을 하고, 체중을 줄이고, 스트레스를 피하고,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을 권고한다. 이와 같은 권고 사항들은 인지력의 저하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개인의 지속적인 노력과 습관 개선을 통하여 예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킨다. 개인의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뇌를 건강하게 할 수 있고, 인지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는 메시지는 언론의 보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치매는 막을 수 없다고? 치매는 기본적으로 뇌 신경 세포가 손상되면 발생하므로 평소 뇌를 맑게 하고 혈액을 깨끗이 유지할 수 있는 운동을 한다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한쪽 콧구멍으로 숨쉬기를 연습하면 코 점막이 쉽게 자극받아 뇌 신경 전체가 활성화돼 뇌의 전두엽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손을 빠르게 움직이거나 손가락을 잡아당기면 뇌의 혈류가 좋아지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헬스조선》, 2012. 1. 2
“약물 치료뿐 아니라 활발한 인지 활동을 자극하는 비약물적인 치료 방법도 있다. 뇌세포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으로 음악 치료, 원예 치료, 미술 치료, 회상 치료, 작업 치료 등을 들 수 있고 신체적인 운동을 병행하는 것 또한 치매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뇌를 자극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손을 많이 쓰는 것이다. 뜨개질이나 수놓기, 그림이나 서예 등, 손과 뇌를 함께 쓰는 활동이 여기에 해당된다. 전화번호나 주소를 외우거나 일기를 쓰는 습관도 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매일경제》, 2012. 2. 7
“뇌를 건강하게 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십자수, 종이접기, 뜨개질처럼 손과 머리를 함께 움직일 수 있는 활동들이 뇌 발달을 돕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달 말까지 다 짜야지’, ‘이번 주까지 몇 개를 접어야지’와 같이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변화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평소 사용하지 않는 손을 사용하도록 한다. 집 안의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도 뇌를 자극한다. 눈을 감은 채 익숙한 일을 하거나 퍼즐 놀이를 하는 것, 책을 소리 내어 읽거나 새로운 소식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도 뇌를 건강하게 한다.”
《한겨레》, 2010. 1. 18
“주부 박 모씨(69·서울 노원구)는 자신이 치매의 진행 단계에 들어선 것을 알고 있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로 본격적인 발병을 막고 있다. 그는 1년 전 건망증이 급속히 심해지자 신경과 검사를 받고 경도 인지 장애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의사 처방에 따라 약을 먹으면서 아침마다 걷기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할 때는 라디오를 켜놓고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른다. 2주 전 정기 검진에서 주치의는 박 씨에게 ‘1년 전과 같은 상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는 ‘경도 인지 장애일 때 치료를 시작하면 치매 발병을 1년 이상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1. 11. 30
‘나의 뇌를 웃게 하자’나 ‘뇌 튼튼, 행복한 노후’와 같은 치매 교육 사업의 슬로건들은 언뜻 체중 감량 프로그램이나 헬스클럽의 구호를 연상시킨다. 노인의 인지력을 일상적인 훈련을 통해 단련시킬 수 있는 일종의 근육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인지력은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감퇴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말 풀이나 신문 기사 요약, 퍼즐 놀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는 지식이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치매 고위험군 혹은 경도 인지 장애 환자는 새로운 의료 관리의 대상으로 등장하고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는 국내 65세 노인 중 24.1%가 경도 인지 장애 증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데이터뉴스〉, 2009. 5. 4).
경도 인지 장애 환자가 조기에 진단을 받고 두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는 치료를 받으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고, 가족의 삶의 질을 훼손하는 상황도 막을 수 있다는 기대는 과거의 “치매라고 하더라도 어쩌겠어. 치료도 안 된다는데.”와 같은 생각에 비해 더 희망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인지력의 저하를 겪고 있는 노인에게 일상의 행위는 이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뇌를 꾸준히 단련함으로써 중증 치매로 진행될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과 함께, 중증 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일상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새로운 의무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치매가 개인의 삶 속에서 생활 습관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병이라는 인식은 치매 지원 센터의 성격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치매 지원 센터의 성격은 우선적으로는 시설 보호보다는 재가 보호를 강조하여 치매 관리 비용 증가를 억제하고자 하는 보건 정책의 방향을 따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변용찬, 1997). 치매 지원 센터는 중증 치매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 중증 치매 환자를 위한 수용 시설이 없다는 점 때문에, 치매 지원 센터는 인지력 저하를 겪는 노인에게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담당할 수 있게 된다.
치매 지원 센터에 찾아오는 노인들은 인지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치매 진단을 받은 후 다시 가까운 집, 즉 정상인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치매 지원 센터를 이용하는 고위험군 노인들은 스스로를 중증 치매 환자와 구분지어 인식할 수 있다. 시설에 수용된 중증 치매 환자와는 달리, 치매 지원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나는 치매 노인이 아니라는 자기 인식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치매 지원 센터들은 이와 같은 기대를 인지하고 있거나, 최소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용산구 치매 지원 센터는 ‘만세! 인생은 60부터! 이팔청춘으로 살자’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지역 주민이 누구나 와서 신체 측정을 하고 치매와 관련해 궁금한 사항을 상담할 수 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아시아경제〉, 2010. 7. 30).
강남구 치매 지원 센터의 ‘늘 푸른 카페’는 커피와 차를 무료로 제공하고, 인지 치료 프로그램 외에도 영화 상영, 문화 공연, 요가, 네일 아트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치매 지원 센터는 이미 어쩔 수 없는 치매 중증 환자를 위한 수용 시설이 아니라, 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치매 고위험군 노인이 찾아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치매 고위험군 노인을 위한 인지 치료 프로그램들에 관한 언론 보도들도 인지력 저하를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노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박 씨가 대학 병원 신경과를 찾은 작년 8월. 진단 결과 경도(輕度)의 인지 장애라는 판정이 나왔다. 초기 치매를 말한다. 그는 병원이 제공하는 뇌 기능 활성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때부터 치열한 ‘머리싸움’이 시작됐다. 프로그램은 ▲ 매일 일기 쓰기 ▲ 하루 5개 이상의 전화번호를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외우기 ▲ 병원에서 대여한 아이패드로 하루 20분 치매 예방용 컴퓨터 게임 하기(낱말 맞히기, 숨은 그림 찾기 등의 치매 예방용으로 제작된 게임) ▲ 각 나라의 국기가 그려진 100여 장의 카드로 국가 이름 외우기 ▲ 일주일에 네 번 이상 빠르게 30분 걷기 ▲ 햇빛 쬐며 산책하기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고등어와 같은 등 푸른 생선 챙겨 먹기(‘오메가3’ 성분이 뇌 혈관 보호)며 일주일에 한 번 카레 먹기(‘쿠쿠민’ 성분이 치매 예방)도 있었다. 박 씨는 이를 다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렇게 하길 3개월, 놀라운 변화가 일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 24점이던 기억력 테스트 점수가 38점으로 급상승했다. 그는 20여 명의 프로그램 참가자 중 성적 향상 1등을 차지해 부상으로 아이패드까지 받았다. 박 씨는 ‘노년의 삶이 밝고 즐거운 일들로 채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 2011. 1. 17
아래의 사진(《조선일보》, 2011. 11. 30)은 마포구 치매 지원 센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음악 치료 프로그램을 촬영한 것으로, 치매 초기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에 삽입된 사진이다. 기사는 경도 인지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아침마다 걷기 운동을 하고, 집안일을 할 때는 라디오를 켜놓고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로 본격적인 발병을 막고’ 있다는 주부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모범적인 사례의 주인공은 ‘2주 전 정기 검진’에서도 주치의로부터 ‘1년 전과 같은 상태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음악 치료를 받거나 노래 부르기와 같이 뇌를 자극하는 일상적인 활동을 늘림으로써, 치매 초기 단계에서 중증 치매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희망은 계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년의 인지력 저하는 그동안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위험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뇌과학이 이들에 대한 해결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 퍼져 나가면서 희망적인 메시지와 이미지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운동, 금연, 신문 읽기, 그림 그리기, 게임하기 등이 모두 뇌 건강에 좋고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노인들의 희망과 함께 증가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사회적 책임이다. 인지력이 저하되어도 조기에 진단을 받고 적극적으로 약물적, 비약물적 치료를 받으면 중증 치매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은, 중증 치매에 걸린 사람을 단순히 운 나쁜 사람으로 보는 인식을 전환시킨다. 중증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한 사람이다.
60세 이상의 노인은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야 하고, 고위험군 진단을 받으면 매주 두 번 치매 관리 센터에 나가야 하며, 중증 치매로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계속해서 정기적인 검진도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치매 고위험군 진단을 받자마자 더 늦기 전에 신속히 인지력 저하 속도를 늦추기 위한 관리 프로그램과 연계될 수 있도록, 겉으로 보기에 별문제가 없는 노인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질환으로 인식하는 활동이 희망과 함께 새로운 책임감을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겉보기에 문제 없는 노인의 뇌는 정기적, 의학적 검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강동성심병원 치매 예방 센터 연병길 센터장에 의하면 ‘이제는 50대 중후반에서도 건망증이 좀 심하면 치매를 예방하겠다고 찾아올 정도’이며 이러한 변화는 ‘최근에는 경도 인지 장애 이전의 전(前) 경도 인지 장애에 대한 연구까지 이뤄지고’ 있는 현상과 함께 나타나고 있다(《경향신문》, 2010. 2. 25). 동시에 여전히 치매 조기 진단의 비율이 낮은 상황, 예를 들어 ‘한 달에 치매 신규 환자를 80~100명 이상 보는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경도 인지 장애 단계에서 스스로 검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10명 미만’인 상황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조선일보》, 2010. 9. 8).
인지력 저하의 증상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뇌를 정기적인 검진의 대상으로 제공하는 행동은 가족과 사회를 생각하는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평가되고 있다. 뇌 영상 사진과 인지력 테스트를 통해 치매 고위험군이라는 진단을 받은 노인에게는 단순히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 사실 이외에도 중증 치매로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인지 치료 프로그램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비교적 명확한 목표가 부여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치매 혹은 치매 고위험군 판정을 받은 환자가 사회적 낙인이나 가족으로부터의 고립과 같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위험이 여전히 잔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종류의 잠재적 위험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치매 조기 진단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비해 사회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기 진단이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치매 고위험군으로 진단받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수치심, 불안감, 고립감 혹은 오진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조기 진단의 비율을 높이고, 조기 진단을 국가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논의는 별다른 저항 없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치매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로 의료 기관과 언론이 제시하는 행동의 양식들을 짚어 보았다. 기본적으로 치매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로 제시하는 행동의 양식들은 노년의 뇌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통해 ‘치매 예방을 위한 활동과 조기 검진에 적극적인 노인’이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특히 노인의 기억력과 인지력 감퇴를 어쩔 수 없는 현상이 아닌, 개인이 책임을 지고 관리해야 할 문제로 만들어 내는 작업은 뇌과학 지식 및 기술의 전파와 함께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과 공간의 형성을 포함한다. 뇌과학의 지식과 기술이 문화적 작업과 상호작용하면서 치매와 노년의 뇌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방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치매를 ‘완치’할 수는 없지만 ‘치료’할 수 있다는 뇌과학의 지침은 새로운 문화적 기대와 희망, 문제의식과 책임이 확산되는 밑바탕으로 작용한다. 또한 건강한 습관을 가지면 노년에도 뇌 기능과 인지력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경도 인지 장애에서 중증 치매로의 진행을 늦추기 위한 작업을 선뜻 ‘치료’나 ‘예방’으로 부를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발판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희망은 노년의 뇌에 관한 뇌과학적 지식, 조기 검진을 위한 기술, 조기 검진과 치매 고위험군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 기관과 함께 빠르게 전파될 것이다.
첫댓글 치매는 예방할수 있다.
치매는 조기 발견하면 진행을 늦출수 있다,
치매는 뇌운동과 건강한 생활습관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