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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녹색당 원문보기 글쓴이: yachty
“ 생명의 위기적 상황에 대해 어떠한 정치세력도 근본적인 접근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
- 4/11 총선 출마이유서(구자상 녹색당 부산 해운대·기장을 예비후보) -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폭발은 위기의 기로에 선 현대문명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안전신화 일본의 붕괴는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핵에너지는 중대한 변화의 시점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지속적인 핵확산의 경로를 오히려 천명하고 있습니다.
짧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 40년의 내용과 실상은 천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겉으로 화려한 성장의 모양새는 안으로는 기실 노동의 기본권을 유보하고 강과 산과 바다를 파괴한 값을 지불하지 않은 채, 재벌과 권력중심, 서울 집중의 기형사회가 되고 말았으며, 농업을 죽이고, 지역을 황폐화한 기형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살인적 경쟁사회, 공동체가 파괴된 위험사회, 일자리가 없는 만성적 실업사회, 결정적으로 생명과 평화의 원리가 왜곡된 99%와 1%의 양극 속에 오늘 우리 사회는 하루 42명이 죽어가는 세계 최고의 자살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물질적 성취의 토대는 분명 값싼 석유에너지에 기반한 반생태적 석유체제 토건구조에 기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값싼 에너지는 반드시 환경적 비용과 생태적 부정의 흔적을 남기면서 총체적인 위기의 물리적 토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6위의 석유소비국이 되었으며, 반면 에너지사용의 효율성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석유체제와 에너지 사용효율이 낮은 문제는 경제적 생산성과 직접 연동되는 문제이면서 에너지 사용의 외부효과가 생태계와 사회 일반의 보편적인 분배의 문제와 지역 분권의 민주주의의 양태에 이르기까지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는 새로운 비용이 지불되어야 하는 수질오염, 대기오염, 해양오염, 폐기물의 양산, 토양의 부영양화등의 문제로 나타나며, 지역분산적 자연에너지 체계의 구축을 근본적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예로, 질 좋은 유기질 비료의 원료가 되는 동물의 분뇨나 유기물질들이 바다에 대량으로 합법적으로 투기되면서도 농업은 석유의 부산물인 농약과 화학비료에 강제되어 있는 우리의 농업구조는 이러한 에너지독점의 정치경제가 가진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석유가 없이는 농업등 모체산업이 불가능한 즉 석유의 구조에 예속된 형태가 됩니다. 독점 권력의 석유, 원자력에너지의 정치경제구조는 한국에서 극단적인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석유와 원자력의 에너지에 중독된 경제사회가 되었으며, 양적 성장주의가 빚은 영혼을 잃은 회색의 발전론이 국토 생명의 원형질조차 결단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의 환경용량이 생산하고 수용할 수 있는 생산력보다 6배나 많은 소비를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전기에너지의 경우 우리는 독일보다 영국보다 많은 양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제외하면 전 세계 1위로 전기를 과용하고 있습니다. 물 사용량 또한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많은 나라들에 들어갑니다. 더 이상 핵발전소를 늘려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대형 송전선로를 반대하면서 분신으로 항거하는 농민들의 아픔이 남도에 무겁습니다. 곳곳에 괴물같은 원자력의 전기를 송전하는 선로가 금수강산을 휘감고 있습니다. 남쪽은 과영양화로 북쪽은 빈영양화로 고통받는 모순의 땅이 되었습니다.
문명의 종말까지도 운위될 정도에 이른 석유, 원자력체제는 미래사회의 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 보수적인 세계에너지기구조차 세계는 석유최대생산피크를 넘어섰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원자력은 이제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명백백히 체르노빌이 후쿠시마가 비극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는 기후변화, 환경재앙의 현실을 직시하며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화석에너지에 근거한 지속불가능한 구조의 경제 산업 구조의 한국사회는 빠른 에너지 전환을 통한 새로운 생태적 민주주의의 발전과 생태적 순환경제로의 변화가 절실한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부산은 거대한 빈곤의 도시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자기이유가 없으며, 회색과 토건의 무리에게 점령당한 주체상실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전국 16대도시 중 최저의 GDP, 전국 최고의 자살율, 최저의 출산율등은 오늘 부산의 사회적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부산의 정치력들은 동부산관광단지와 같은 대규모 관광리조트산업의 실패는 이미 일본의 사례에서도 많은 예가 있음에도 토건세력에게 휘둘리면서 도시를 투기장으로 변모시키고 있습니다. 영도의 관통도로와 같은 대형토목사업은 외곽순환도로 수요를 엉터리로 과다 계산하여 수년째 주민들의 반대에도 꾸역꾸역 진행되고 있으며, 금정산에는 새로운 대형관통도로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도권 전체보다 많은 유료도로는 부산이 대외의 토건 재벌들에게 포위된 벙어리도시라는 증좌입니다. 해운대를 회색도시로 만들어 버릴 거대 108층 계획은 극단에 이른 토건족의 횡포입니다. 정체적 자기 위치를 잃어버린 부산시장과 관료, 토건기업. 정치인이 철의 삼각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부산생태도시로의 전망과 경로는 지역을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21세기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사무실 옆방에서 공해추방운동에 입문한 것이 학교를 졸업한 해(1985년) 2월 겨울이었습니다. 이후 나는 올해로 줄 곧 26년째의 시민환경운동가로의 삶을 이어 왔습니다. 천혜의 생태계인 낙동강삼각주가 하구언이란 토목사업으로 깨어지고 그에 깃든 하구 사람들의 생존이 뿌리째로 흔들리는 속에서 현실 환경운동에 참여한 것이 나의 첫 번째 실천운동이었습니다. 중금속에 오염되어 사지를 쓸 수 없는 울산 온산 공단의 지역주민, 피부병에 걸린 지금은 없어진 온산 초등학교의 아이들을 만나고 주민운동을 지원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이 오늘도 생생합니다. 반송에서 용호동에서 김해에서 주민들의 환경생존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80년대 후반 90년대의 질풍같은 환경운동의 시기에 언제나 그 일의 근저에 함께 하였습니다.
부산지역의 공해추방운동을 비롯한 전국의 환경권에 대한 요구는 새로운 시민운동의 대응양식으로 등장하였습니다. 그것은 산업화 도시화로 달려온 짧은 우리의 무한성장정책의 폐해에 대한 최소한의 시민적 대처였다고 보입니다.
특히 부산에서 낙동강은 부산시민의 생명의 근본이었으며, 민족의 숨결이 살아 있는 어머니의 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화되는 오염의 정도와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되는 파괴적 개발사업과 연례적으로 터져 나온 대표적인 상수원의 대규모 오염사태는 우리에게는 미래 없는 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였습니다. 90년대 중반시기 이에 대응한 부산 경남의 시민적 역량의 결집은 한국환경운동사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질 환경법 체계의 근본을 바꾸었을 정도로 강력하고 절박한 것이었습니다. 페놀오염사건, 위천공단저지 운동은 대표적인 시민적 공해반대운동의 역사입니다. 저는 생명과 평화에 대한 일념의 의지로 이러한 일들의 중심에서 복무해 왔습니다. 강의 파괴, 골프장과 같은 대규모 생태계파괴, 바다의 매립과 같은 대형 토건사업에 이르기 까지 시민환경운동의 영역과 활동이 넓게 확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나는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양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조처는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직접적인 생태환경에 대한 위협에서부터 화학물질과 미량의 유해물질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위기는 복잡다단하게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정부의 정책에 대한 대안을 언제나 제출해 왔습니다.
전국적인 차원의 환경적 사안에 대해서도 공동의 힘과 열정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또 시민환경운동의 힘은 조직된 시민들의 참여로 열어 간다는 신념으로 시민의 조직과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위해 다양한 시민환경강좌를 기획하여 실천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치열한 80년대의 환경운동은 우리의 정치적민주화에 대한 또 하나의 부분의 과제나 개별적인 문제거리 정도로 인식되면서 생명파괴의 깊은 문명적 인식에는 미약함이 많았습니다. 그야말로 공해가 추방될 수 있는 하나의 문제거리 정도로 생각하고 민주적 정부가 구성되면 어느 정도 공해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는 이러한 생태적 합리성을 가진 새로운 성장전략에 대한 비전과는 정반대의 길을 보여 주었고 또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혁적 정권조차도 생명의 대규모의 위기앞에 너무나 무력하고 허약한 모습을 노정하였습니다.
개혁정부는 새만금, 경부고속철도, 결정적인 핵발전의 문제에서도 토건과 재벌의 논리와 요구를 한 걸음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개혁정치와 변화의 정치에 생태적 합리성의 과제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환경위기의 시대 분명하고 권위있는 지도력은 민활한 생태학적 상상력에서 온다는 환경운동의 권고는 조금은 낭만적인 현실인식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환경운동의 삶에서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과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시 대통령의 죽음은 질곡으로 점철된 우리의 현대사에 무거운 슬픔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가려지는 그의 죽음이 나는 아직도 우리들에게 변화의 의미를 가르는 교훈으로 살아오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너무나 큰 아픔 속에서 나는 감히 대통령의 서거를 생태학적 문명론의 시각에서 보고자 합니다.
현대 문명은 석유없이 하루도 연명할 수 없습니다. 석유는 현존하는 모든 권력의 물적 토대입니다. 원자력은 하위의 파트너입니다. 인간과 생태계의 살림과 처지를 주요하게 좌지우지하는 에너지는 현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입니다. 에너지민주주의는 그래서 개혁의 키워드가 됩니다. 저들은 조금의 변화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생태적 조건과 토대에 대한 접근이 미흡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은 석유 원자력 체제의 희생자입니다. 석유, 원자력의 구조는 그를 죽인 바탕입니다. 우리의 짧은 현대사에서 그토록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자 누구였습니까. 석유, 원자력체제는 정치권력과 재벌과 이를 마름하는 보수언론과 전문관료집단으로 기능하고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의 민주주의가 명확한 생태적 이유를 가질 수 없을 때 어떠한 민주주의적인 개혁도 불가능합니다. 경제 성장이 목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잘 살 수 있습니다.
환경생명운동은 폭력적 개발주의와 물질 성장주의중심의 경제성장 정책의 반생명성에 대해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문제제기를 하여 왔습니다. 이를 통해 환경운동은 미약하지만 한국 시민운동의 의미있는 세력을 형성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나는 언제나 한 사람의 환경운동가로 자기의 의무와 표현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생명과 평화의 길을 운명으로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녹색당 운동은 생명운동의 새로운 표현입니다. 얕은 정치공학으로 이 운동을 보지 말아 주십시오.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에 노출된 피해자는 무려 7백만에 이릅니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동북지역을 일본 정부는 포기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혁신의 정치가 이것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근대의 지질학적 자원을 동원한 개발과 성장에 바탕을 둔 발전론이 자본주의개혁이든 사회주의의 혁신이든 함께 하는 공유지입니다. 녹색당은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의 행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는 녹색당 후보로 출마를 통해 이 길을 가려 합니다. 함께 그리고 따로 갑시다. 생태학적 민주주의의 길로.
2012. 2. 부산 해운대·기장을 국회의원 예비후보
구 자 상 모심.
첫댓글 감동적입니다...어렵지만 헌신적인 결단을 하셨습니다. 신생 정당의 첫 선거지만 참여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꾸준히 즐겁게 함께 걸어 갑시다...
반정당의 정당, 탈석유 정당은 녹색당의 유일무이한 정체성입니다. 그것은 험난하고 먼 길을 가볍지않게 뚜벅뚜벅 가야할 녹색당의 운명이며 문명의 전환입니다. 구자상후보 퐈이야!~~~~~~~~
출마이유서를 읽고 트윗과 페북에 알리며 덧붙인 글입니다. "구자상 후보. 그의 어깨띠에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 아래 녹색당이라는 당명이 써 있겠지. 내일 그도, 나도 얕은 정치공학을 넘어서는 녹색당의 당원이 된다. 평소 몸으로 말하지 글로 잘 말하지 않는 구자상이다. 그의 출마이유서는 26년 전업활동가의 육필이다."
반발 앞서 나서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상 선배!
뭇생명을 사랑하는 이들을 대변하여 나서주심에 감사드림니다
본결 아버님, 건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