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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Review (2007. 7월)
화가, 만화영상학 박사 이순구
우리는 가끔 '정체성'이란 말을 접하곤 한다. 특히 예술일반이나 문화현상을 이야기 할 때 종종 오르내리던 기억이다. 무엇에 대한, 무엇을 위한, 무엇의 정체성을 말하는지 시기적인 혼돈이 오는 단어였다. 정체성은 흔히 민족성 내지는 '우리의 것', '신토불이', '향토성'이라는 것들과 어우러져 있다. 실상 한동안 미술에서의 드러나지 않는 이슈 아닌 이슈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유목민적 사고방식과 생활패턴의 변화로 신토불이의 결벽성은 많이 해체되고 있다. 필자는 1980년 중반 당시 "충남미술대전"에 내려진 셔터 문 사이에 끼워진 신문을 유화로 그려서 출품한 때가 있었다. 심사후일담으로 들은 바는 우수상 이상으로 선정되었다가 특선으로 그친 경우이다. 그 이유는 "향토색"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초가집을 변형한 다른 그림으로 우수상은 정해졌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작용했겠지만 여기서도 문제되는 것이 정체성이었다. 당시 심사를 했던 분의 관념에는 초가집 정도가 한국적인 향토성과 정체성으로 각인되는 편협을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 결과이다.
'정체성'이란 나와 타인과의 설정에서 사회구성 인으로서 드러나는, 또는 드러내야하는 개인개성의 존중, 또는 그런 의미의 반영한 정신 정도가 아닐까한다. 시대를 녹녹치 않게 담구어 빚어내는 예술작품은 쉽지가 않다. 이 시대의 흐물흐물한 자존심과 그것으로 삶을 진행하는 방편으로 자행되는 신종「우겨대기」식의 개인사상과 유목적 흉내 내기로 존재하는 작품들의 난무가 가히 기가 막히다. 근자에 일어난 모 큐레이터(교수겸직)의 불가사의한 희대의 사기극과 같이 신의와 진정한 도덕이 얼버무려져 파생되어 만연된 불감증은 혹여 아직도 그림 그리는 존재를 신비감으로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된다. 정체성의 사전적 뜻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 또는 그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이다.
1. 창작 지원전- Booming up Artist
박경범 展 2007.7.5 - 11 롯데화랑
기업과 문화는 각별하다. 아니 각별해야 한다. 예술분야가 그 노력만큼의 경제가 적절히 형성되기란 쉽지 않기에 그 이면에는 창작의 여건이 되게 하는 금전적 지원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실상 미술 분야의 개인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지원의 여건은 타 지역에 비해 대전은 유난히 나쁘다. 혹 여론 모르게 지원되고, 받는지 알 수 없으나 거의 희박하다고 본다.
롯데화랑은 2000년 개관이래 3-4명을 선정하여 개인전을 열어준다. 여기에 적절한 크기의 개인전 팸플릿도 만들어준다. 대부분 유수한 화랑들에서 작가의 작품과 성향에 투자하는 방식의 초대전과 기획전을 개최할 때와 개인의 화랑이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줄 때는 전시장만을 빌려주고 팸플릿은 개인이 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롯데화랑은 그 중간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대전지역 화랑들의 운영난은 힘겹다. 따라서 작가에게 절대적인 투자라는 것은 그만큼 소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대전에서의 개인 기업이 그나마 창작지원의 명맥을 유지하는 롯데화랑의 지원방향이 좀 더 적극적이며 전문적인 운영방법으로 연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의 창작 지원 전 그 첫 번째가 박경범의 전시회이다. 그는 학부졸업 후 전형적인 유화를 제작하였다. 그러던 그가 많은 변혁을 꾀하고 있다. 일부 모방의 단계를 벗어나려고 노력함을 볼 수 있다. 박경범은 학부 때부터 유화를 다루는 테크닉이 유려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을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어야하는지는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까지만 하여도 미술의 오랜 전통의 모방mimesis에 그의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모사가 "잘 그렸다"는 것으로만 끝이 나서는 그것은 기술이다. 기술을 넘어선 작가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추구해 나가는 것이 시각예술가로서의 길이다. 물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표현력의 부족으로 드러낼 수 없어 얼버무려 놓는 일과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어불성설의 작가 관을 끄집어 들이댄다. 박경범은 일단 테크닉 부분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서 들고 나온 대상은 「인형」들이다. 비교적 나중에 제작된 「인형」들은 냉랭한 차가움과 도자기와도 같은 피부의 질감에서 묘연한 자아의 시선을 집중하게 한다. 그것은 「인형」초기의 「관절인형」과는 화면의 느낌조차 다르다. 이 지점이 중요하게 보인다.
「관절인형」들에서는 반듯하게 순응적 또는 자포자기적 포즈로 누워있거나 힘든 숨을 몰아쉬고 있다. 때로는 마디마디에 끈으로 연결되어 조종당하기도 한다. 박경범이 바라본 여성이란 이렇게 느껴진 것일까. 좀 더 확대하자면 이는 여성뿐 아니라 현대인이 느끼는 감성의 이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굳이 사디즘sadism이나 마조히즘masochism을 붙이지 않아도 된다. 사람의 감성이 어디 그뿐일까. 일상에서 빚어지는 감성들을 병리적 심상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러한 감성을 드러내는데 척박한 우리의 시각이 문제이다. 「인형」들의 작품은 이전 작품들에서 생화(生花)를 생화처럼 그리기 원했지만 화폭 속에는 항시 조화(造花)로 남아있음을 발견하고, 오히려 조화를 잘 그려 생화처럼 보이게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또한 인형다운 부자유의 장치를 해 놓았는데 그것은 화면을 덮어씌운 유리의 형태이다. 유리의 모양은 수족관의 공기방울의 형태와 반짝임으로 표현되었는데 화면 안을 들여다보는 감상자의 시각을 유도하였다. 화면의 겉과 안을 이중의 장치로 마치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효과를 가진다. 이는 이미 「인형」이라는 속성, 즉 진열되어 팔리기를 기다리는 상품으로서의 대상이다. 그런데 이 대상들은 아프다. 물론 나중에 그려진 인형들은 유리관을 박차고나와 좀 더 떳떳하다. 오히려 당차고 도도한 포즈들을 가지고 사뭇 도발적이다.「관절인형」이 아픔이었다면 「인형」들은 맑은 얼굴에 특유의 커다란 눈과 투명체의 맛이 더한다. 이 서구적 인형들은 이미 우리가 입는 ‘양복’과도 같이 국적이 희미하지만 아직도 서구적, 또는 일본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현대에는 회화의 ‘정체성’이란 국지적이지 아니하고 국제적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좀 더 내면적인 에너지를 키워야 이러한 변혁의 「인형」들을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개인의 변화는 대중적 호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젊은 작가로서의 기백과 끈기를 믿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과감하게 변화할 수 있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림2] 박경범 <Doll>,Oil on Canvas, 130x162cm, 2007
[그림1] 박경범 <Doll>, Oil on Canvas, 162x130cm, 2007
2. ‘Segment’ 단면
국제 교류전 2007.7.6-14 이공갤러리 ․ 우연갤러리 ․ 갤러리 이안
'세그먼트Segment' 전은 대전에 거주하는 일부 작가들과 헝가리계 작가들의 교류전이다. 이공갤러리에서는 그동안 소규모이지만 독일, 일본, 서유럽의 작가들과 교류전을 해왔으며 이번이 다섯 번째 기획한 전시회였다. 한국작가 13명, 헝가리에서 추천한 12명의 작가가 한국에서는 이공, 우연, 이안의 3개 갤러리에서 열린 것이다. 대전지역에서 이처럼 지속적인 국제교류전을 지속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서울 집중적인 미술에서 직접 지역 간의 연결이라는 데서 또 다른 돌파구의 역할을 내다볼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개의 갤러리에서 협업하여 만들어진 이러한 기획전은 외국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교두보가 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한국작가는 김영호, 안치인, 유동조, 이종협, 정장직 등 이미 이 지역에서 알려진 작가들이고, 독일의 INSA WINKLER와 헝가리 계에서는 ESZTER CSURKA 등 우리에게는 생소한 작가들이지만 이번 헝가리계의 커미셔너이자 루마니아 국적의 본 전시의 참여 작가인 ERÖSS ISTVÁN에 의하면 매우 열성적이고 지명도 있는 작가들이라고 한다. 작품의 방식은 평면과 설치, 사진, 영상들을 복합적으로 창작하는 작가들이다. PÁL PETER의 경우는 금강국제자연 비엔날레에 참석했고, 이공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진 이력이 있는 작가이다.
[그림4] 국제교류전, 이공갤러리, 2007
INSA WINKLER는 '돼지 프로젝트'로서 농장을 운영하며 2006부터 2007년까지의 과정을 비디오에 담는가 하면, 인체의 움직이는 현상을 프린트한 ESZTER CSURKA, 얼굴과 인체의 왜곡된 부분을 설치와 영상, 프린트로 보여주는 LAJOS CSONTÓ, 사람의 관계와 판타지를 전형적인 수채화의 기법으로 보이는 CHILF MÁRIA, 각종 계획된 사진을 프린트해 '베게'의 형태를 만들고 이를 다시 사진을 찍어 제시한 ERÖSS ISTVÁN, '유사한 풍경'이라는 주제로 세계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는 풍경을 잉크와 붉은 색으로 수평으로 그려진 KÁROLY ELEKES, 'Bello Brotto'의 두상을 가죽으로 압박한 형상을 이끌어내 오랜 미라나 전쟁의 노예, 또는 심리적인 현상에서의 죄수처럼 느껴지도록 만든 GAÁL JÓZSEF, 스테인 원기둥을 중심으로 색깔 있는 돌을 소용돌이 형태로 설치한 PÁL PETER, 전형적인 서유럽의 카툰형식에서 나오는 기하적 입방체와 얼굴을 그린 JÓZSEF SZURCSIK 등 다양한 작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여건에 의한 현지참여의 부재로 인해 입체적인 작품은 전시되지 않았고 대부분 평면의 작품으로 치환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의 국적답게 동구권 서유럽의 작품경향을 단면적으로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인간의 대동소이한 관심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앞으로 11월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4개화랑에서 전시예정이며, 3차 전시는 루마니아 T,C NURES에서 2008년 전시를 기회중이다.
[그림3]국제교류전, 우연갤러리, 2007
[그림1)]국제교류전, 갤러리이안, 2007 [그림2)]ERÖSS ISTVÁN,국제교류전
3. Multi-Toon 전
'만화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2007.7.19-31 대청문화 전시관
그림의 효용가치는 시대에 따라 그 범주를 달리하였다. 표현하는 방식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형상을 닮게 그리거나 형상의 핵심이나 느낌, 심지어 선입견 까지 그려내는 인간의 감각으로 자리한다. 또한 오래전부터 추상도 있었다. 회화에도 있었고, 음악, 연극, 무용에도 추상이 존재한다. 오래전부터 만화형식도 있었다. 그러나 만화의 형식은 그 표현방식을 드로잉적인 것이거나 형상의 내용 속에 담긴 서사, 그리고 그 서사속의 해학과 익살, 풍자적인 표현이 강한 것으로 만화를 나누어서 분류하고자 했다. 어디까지나 회화 속에 포함된 이러한 유형은 그림 속에 언어가 개입되면서 만화의 특질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러한 유형은 19세기에 이르러 분명한 개성을 띠기 시작하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너무 대중적이었을까. 한동안 회화의 뒷전에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시각예술의 영역은 그 특질들을 간직하기는 했지만 장르 간에 벽이 허물어진 상태이다. 이에 따라 그 운용의 폭은 넓어지고 표현방법은 다양해졌다. 여기에 전달매체의 다중기능인 멀티플개념의 하이퍼텍스트가 일반화되면서 소통자체가 다변화된 시기에 이른다. 따라서 시각예술의 확대는 다양한 패러다임을 구축하게 되고 회화와 사진, 조각과 오브제, 판화와 인쇄물들이 통합성과 융합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만화영역은 지금껏 텍스트로만 알고 있던 인식의 범주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만화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Multi-Toon 전' 서문에서 백준기교수는 다양하게 수용하는 장르개념으로서의 만화문화를 정리하고 있다.
"고대 원시인들의 동굴벽화 양식으로부터 현대미술의 다양한 양상과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대상 사물에 대한 모방과 재현의 문제는 현실의 반영과 재현의 문제로서 미술사의 해묵은 과제였다. 지금도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 비평가와 미술인들이 고심하고 분투하는 문제는 역시 모방과 재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를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만화는 시작부터가 자연으로 말미암치 않고 '기호와 표기법으로 창안된 레알리떼'였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한다"고 한다.
이는 "기존 미술의 '모방'과 '재현'의 문제를 넘어서는 '도상적 상징기호/Iconic symbol sign'의 '픽쳐플랜/picture plane'으로 소통과 표현의 새로운 이디엄을 동시에 구축해 나간다는 점을 주목할 때, 만화문화는 그에 걸맞은 위상과 실천, 그리고 전열의 오와 열을 보다 명확히 구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림3)]백종찬, <매우매우 빨강>58x58cm ,2007, Multi-Toon 전
[그림4)]백준기,<Humor Abstraction- '그녀의 다리/Her Legs;03'>, Marking pen &Acrylic on, 2007 Multi-Toon 전
[그림5)]전재혁,<ufo> Multi-Toon 전
만화계도 전형적인 텍스트형식의 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코드의 작품들을 수용할 수 있는 풍토가 자리해야한다. 또한 기존 회화의 인식에서도 만화가 갖은 함축성과 서사성, 풍자성과 해학성을 익히 수용하고 사용함에도 아직 그 시선이 평범하지는 않음이 사실이다. 이번 'Multi-Toon' 전시회를 계기로 좀 더 다양한 방법의 전달요소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표현의 가벼움을 가벼움으로만 그치질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한 일반대중과의 소통의 본래적인 모습을 적절한 코드로 제시해준 전시회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