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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문(祈雨文) 9 편의 기우문(祈雨文)이다. 종묘(宗廟)의 오실(五室)‚ 칠실(七室)‚ 구실(九室) 종묘기우문(宗廟祈雨文)‚ 평양강(平壤江)‚ (청천강(淸川江)‚ 압록강(鴨綠江)대강기우문(大江祈雨文)‚ 태백산기우문(太白山祈雨文)‚태자암기우문(太子巖祈雨文)‚흑산기우문(黑山祈雨文)에서 각각 기우제(祈雨祭)를 지낸 글들이다. |
原文(원문) 宗廟祈雨文 (종묘기우문) 五室 (오실) 성왕지부 불현기덕 하이일아 준혜우국 어호유애 한학사혹 자춘염혁 지우오월 척척산천 우우민물 형향망문 胡忍靡孑 或賜點滴 旋熾驕燠 用申徂宮 庶鑑焦膈 호인미혈 혹사점적 선치교욱 용신조궁 서감초격 七室 (칠실) 인조재상 어소우천 용석아지 유택면면 념자항양 녕정아궁 분담기심 모두장궁 정인루거 명우무징 소자유죄 生民可矜 誕敢哀籲 庶幾昭假 惠我無疆 與天同渥 생민가긍 탄감애유 서기소가 혜아무강 여천동악 황고근지 휴유렬광 이궐유모 비아극창 민수기사 국흘이녕 금호인차 칙막아청 소극무재 수직량박 미생령유 陟降何托 是用責躬 仍復刲羊 克相上帝 一沛汪洋 척강하탁 시용책궁 잉부규양 극상상제 일패왕양 大江祈雨文 (대강기우문) 兌澤之方 滔滔爲紀 自檀而箕 民受其利 其在于今 胡旱之甚 咎實在己 予用懔懔 肆竭菲誠 庶通金石 神之格思 毋恡優渥 태택지방 도도위기 자단이기 민수기리 기재우금 호한지심 구실재기 여용름름 사갈비성 서통금석 신지격사 무린우악 右平壤江
混混一帶 七佛之臨 效靈呈異 惟古惟今 胡玆女魃 肆虐無忌 赤地千里 大命近至 江流欲涸 神亦靡寧 亟沛甘膏 尙歆我誠 혼혼일대 칠불지림 효령정이 유고유금 호자녀발 사학무기 적지천리 대명근지 강류욕학 신역미녕 극패감고 상흠아성 右淸川江
天下之大 界我東土 民物資生 職興雲雨 閟澤屯膏 寧丁我躳 東作愆秩 西成望竆 靡神不宗 恐誠未至 用伸虔告 庶雨千里 천하지대 계아동토 민물자생 직흥운우 비택둔고 녕정아궁 동작건질 서성망궁 미신불종 공성미지 용신건고 서우천리 右鴨綠江
太白山祈雨文 (태백산기우문) 維山 鎭玆南國 雄峙爲紀 蒼鬱中天 呑吐伊氣 草木之蕃 雲雨之興 民生式資 靈應攸恒 况我百里 迫開前壑 유산 진자남국 웅치위기 창울중천 탄토이기 초목지번 운우지흥 민생식자 령응유항 황아백리 박개전학 朝暮薰蒸 輒成霡霂 稼種以時 莫非爾賴 無灾有年 六十之最 今也如何 極無爲凶 焚惔太甚 春徂夏中 牟麥旣焦 조모훈증 첩성맥목 가종이시 막비이뢰 무재유년 육십지최 금야여하 극무위흉 분담태심 춘조하중 모맥기초 莫移秧苗 田夫束手 日望高高 雲霓或橫 庶幾其霈 炎暘旋虐 膏顔奈改 泉源枯涸 土脉龜坼 若在洪爐 耗斁何酷 막이앙묘 전부속수 일망고고 운예혹횡 서기기패 염양선학 고안내개 천원고학 토맥구탁 약재홍로 모두하혹 豈靈無靈 愧守非守 齋心惕慮 竭誠號籲 冀呈深澤 大沛一方 活我禾糓 無恡其藏 西成有秩 匪獨民福 望秩靡絶 기령무령 괴수비수 재심척려 갈성호유 기정심택 대패일방 활아화곡 무린기장 서성유질 비독민복 망질미절 亦靈之糓 역령지곡 太子巖祈雨文 (태자암기우문) 嗚呼 守土無狀 天怒赫歟 發政違理 神怨極歟 匹夫匹婦 或抱寃歟 二氣欠交 孰傷元歟 五月得雨 亦孔之晩 오호 수토무상 천노혁여 발정위리 신원극여 필부필부 혹포원여 이기흠교 숙상원여 오월득우 역공지만 旣種還焦 甚矣斯旱 杲杲如焚 餘五十日 作雲仍散 欲沛誰嗇 風伯逞虐 雨師墜權 乾坤一罏 川澤燒原 百草霜容 기종환초 심의사한 고고여분 여오십일 작운잉산 욕패수색 풍백령학 우사추권 건곤일로 천택소원 백초상용 千畒龜背 菜糓均萎 哀我可愛 百萬元元 近止其命 人靡孑遺 物莫能幸 有死無生 大地其罄 凡百有神 竟將何托 천묘구배 채곡균위 애아가애 백만원원 근지기명 인미혈유 물막능행 유사무생 대지기경 범백유신 경장하탁 叶興雲雨 盍盡其職 况此巖壇 古稱其靈 民不可緩 太子爲名 亦旣徂祈 嗟莫之格 謂我誠薄 再玆齋沐 式歆牲醴 협흥운우 합진기직 황차암단 고칭기령 민불가완 태자위명 역기조기 차막지격 위아성박 재자재목 식흠생례 庶隲霡霂 蒸陰吐雲 一刻爲急 滌竇蕩塵 冀遄噓吸 及今滂沱 亦能有秋 血禱無徵 抑神之羞 서척맥목 증음토운 일각위급 척두탕진 기천허흡 급금방타 역능유추 혈도무징 억신지수 黑山祈雨文 (흑산기우문) 殿邦惟山 寔星之望 呑吐伊氣 雨澤攸降 草木賴殖 禾糓資暢 顯有主張 生靈賴仰 於乎有哀 曰暘斯亢 自春徂夏 전방유산 식성지망 탄토이기 우택유강 초목뢰식 화곡자창 현유주장 생령뢰앙 어호유애 왈양사항 자춘조하 女魃用壯 陽不能下 陰莫敢上 膏屯澤渴 兀山焦巷 一雨無功 五苗誰長 耗斁將竆 目慘心愴 視天夢夢 跼地漭漭 녀발용장 양불능하 음막감상 고둔택갈 올산초항 일우무공 오묘수장 모두장궁 목참심창 시천몽몽 국지망망 民其何辜 吏實無狀 肆竭菲誠 靡神不享 轉灾爲祥 神其敢讓 吉蠲來祝 士民其相 庶幾霶霈 隲我生養 민기하고 리실무상 사갈비성 미신불향 전재위상 신기감양 길견래축 사민기상 서기방패 척아생양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宗廟祈雨文] 종묘기우문
오실 (五室)
왕(王)이 신의(信義)를 이루면,
그 덕(德)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우리에게 넘치겠습니까?
나라에 큰 은혜를 내리셔야 합니다.
아아!
애처롭기는,
극심한 가뭄이 이렇게 혹독합니다.
봄부터 햇볕만 내리 쬐기를,
5 월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산과 냇물은 말라 버렸고,
사람과 만물은 가뭄이 들어 입을 벌립니다.
제사로 향기를 아뢰지 않더라도,
어찌 차마한 사람도 남기지 않으려 합니까?
간혹 몇 방울의 비를 내리게도 하셨다가,
도로 거세게 햇볕이 쨍쨍 내리 쬡니다.
궁(宮)에 가서 아뢰오니,
타들어가는 심정을 보살펴 주소서.
칠실 (七室)
어진 조종(祖宗)이 위에 계시니,
아!
하늘이 밝게 보이시리로다.
우리에게 복(福)을 내려 주시고,
은택을 끊임없이 남겨주시도다.
생각하건데 지금 대단한 가뭄을,
어찌 내 몸에 당하게 되었습니까?
이글거리는 열기가 이미 심하여,
손상시키고 없앰이 끝이 없습니다.
깨끗한 제사를 여러 차례 지냈지만,
명부(冥府)에서의 도움 징험이 없으니,
소자(소자)에게 죄가 있어,
백성들은 불쌍하고 가엾습니다.
이에 감히 애원하며 호소 하오니,
밝게 내려 오셔서,
우리에게 한없는 은혜 내려 주시기를,
하늘과 함께 풍성하게 하소서.
구실 (九室)
부지런 하신 황고(皇考)께서,
아름다운 공열과 업적이 있으셨도다.
후손에게 계책을 물려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잘 계승하여 번창하게 하셨도다.
백성들도 그 내려 주시는 은혜를 받아,
국가가 지금까지 편안히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찌 차마 이렇게 하시면서,
나의 애원을 들어주시지 않으십니까?
극흉(極凶)을 불러들이거나 재앙이 없도록 하는 것이,
아무리 얇은 덕에서 말미암는다 하더라도,
생령(生靈:생민(生民))을 남겨 두지 않으면,
정령(精靈)이 오르내리면서 어디에 의탁하겠습니까?
이 때문에 자신을 책망하면서 다시 양(羊)을 잡아 제사를 지내오니,
상제(上帝)를 잘 도우셔서 한 차례 비가 쏟아지게 하소서.
[大江祈雨文] 대강기우문 큰 강에 비내리기를 기원하는 글
관서 지방에서,
도도히 흐르며 기강 역활을 하였고,
단군으로부터 기자에게로 내려오면서,
백성들이 그 이로움을 받게 되었도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어찌하여 가뭄이 이리도 심함니까?
그 허물이 실제로 나에게 있기에 내가 위태롭고 두렵게 여겼습니다.
이에 보잘것 없는 정성을 다하오며 금석(金石)이라도 뚫기를 바라오니,
신명(神明)께서 이르셔서,
비를 충분하게 내리시고 인색하게 하지 마옵소서.
위는 평양강[右 平壤江]
하나의 띠처럼 넘실대며 흐르는 강을 칠불사(七佛寺)에서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신령한 효력과 이적(異蹟)이 나타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여발(女魃)이 포악하게 굴기를 꺼리낌이 없습니까?
천리의 초목이 말라 큰 일이 가까이 닥쳤습니다.
강물 마저도 말리려 하니 신명(神明)께서도 편치 않으실 것입니다.
빨리 단비를 듬뿍 내리게 하시고 나의 정성을 흠향하시기 바라옵니다.
위는 청천강[右 淸川江]
[여발(女魃:신화(神話) 가운데서 가뭄을 맡은 신(神)을 말함.]
광대(廣大)한 대륙과,
우리 조선(朝鮮)의 경계(境界)가 되는곳,
백성과 만물이 살아가는 밑천은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림에 말미암는데,
단비의 혜택을 막고 정지시키기를 어찌 나의 몸에 당하게 하십니까?
농사짓는 일에 차질이 생기면 가을의 수확은 희망도 없어집니다.
신명(神明)께서 주장하지 않음이 없으니 아마도 정성이 지극하지 않은 듯 합니다.
이에 경건하게 고하오며 천리에 비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위는 압록강[右 鴨綠江]
[太白山祈雨文] 태백산기우문 태백산에 비 내리기를 비는 글
태백산(太白山)은 바로 남방의 진산(鎭山)으로,
웅장하고 우뚝하게 기강(紀綱)이 되 도다.
하늘 가운데 울창하게 솟아,
그 기운을 삼키기도 하고 토하기도 하도다.
풀과 나무를 번성하게 하기도 하며 구름도 일게 하고 비도 내리게 하도다.
주민들은 이 산을 의뢰하여 살아가는데 신령한 감응이 늘 있었도다.
더구나 내가 이 지역의 수령이 되어 앞산 골짜기 어귀까지 개간 하였는데,
아침 저녁으로 훈훈한 기운이 번번이 이슬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갈고 씨 뿌리기를 때 맞추어 하였으니 그대 산을 으뢰하지 않음이 없도다.
재앙이 없었던 해가 육십 평생 동안이였는데 금년에는 어찌하여 극도에 달하였으니 흉년이 되지 않겠는가?
타는 듯한 가뭄이 너무 심하여 봄에서 여름까지 이어지니 보리와 밀은 말라버렸고 모내기도 못 하도다.
농부가 팔짱을 끼고 아무것도 못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하늘만 쳐다 보도다.
뭉개 구름이 간혹 지나갈 적이면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기를 바라지만,
내리 쬐는 햇볕이 도로 사나워져 단비를 바라던 얼굴빛이 고쳐지는데야 어쩌리요?
샘물의 근원이 말라들어가고 땅의 맥(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며 마치 큰 화로속에 들어가 있는듯 하니,
재앙이 어찌 이리도 혹독합니까?
어찌 신령의 영험(靈驗)함이 없겠습니까?
수령이 수령답지 못함이 부끄럽습니다.
마음을 재계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정성을 다하여 부르짖으며 호소합니다.
대단한 은택을 내려주시어 이 지방에 큰 비를 펴붓게 하고 우리의 곡식들을 살리도록,
그 감춰둔 비를 아끼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을에 수확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백성들의 복(福)일 뿐만이 아니니,
제사(祭祀)가 끊기지 않도록 바라는 것 또한 신령의 착함일 것입니다.
[太子巖祈雨文] 태자암기우문 태자암에서 비내리기를 비는 글
아아!
수령(守令)의 자질이 보잘 것 없어 하늘의 노여움이 대단해진 것입니까?
행정을 펼침에 순리를 거스려서 신명(神明)의 원망이 극도에 이른 것입니까?
평범한 지아비와 지어미가 간혹 원통함을 품고 있어서입니까?
음양(陰陽)두 기운의 교감(交感)이 부족하여 누가 원기를 손상 시켜서입니까?
오월에 비가 내렸으니 그것도 매우 늦은 편인데 이미 씨를 뿌린 것도 도로 다 타 버렸으니,
이번 가뭄이 심각하기도 합니다.
타는 듯 내려 쬐는 볕이 오십 일이 훨씬 넘었고 구름이 어우러졌다가는 곧장 흩어지니,
죽죽 쏟아지게 하려는 것을 누가 아낍니까?
바람마저 사납게 굴어 비내리게 하는 신(神)의 권위가 떨어졌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의 화로같아 시내며 못 그리고 들판이 타 들어가 모든 풀은 서리를 맞은 모습이고,
수많은 이랑은 거북의 등처럼 갈라졌습니다.
채소며 곡식도 골고루 말랐으니 아껴야 할 우리 주민들 애처로우며 백만의 많은 백성들,
그 목숨 멈출 날이 가까운데 사람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으려는 것은 만물에게 행운일 수는 없으며,
죽음만 있고 태어나는 것이 없다면 땅도 쓸모없이 텅 비게 될 터이니 모든 신령(神靈)들 께서,
마침내 어디에 의탁 하겠습니까?
화합해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어찌 그 직분을 다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더구나 이 태자암의 제간(祭壇)은 옛날부터 그 영험(靈驗) 함이 있다고 알려졌으니,
주민들이 늦출 수 없다고 하여 태자암(太子巖)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곳도 이미 가서 기도할 만한데,
아!
신명이 이르지 않으니 나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서 재차 재계하고 목욕하였사오니,
이 제물에 흠향하시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찌는 듯이 후덥지근한 기운이 구름을 토해냄이 일각이 시급하며 지저분한 곳을 씻어내고 먼지를 쓸어내도록,
빨리 호흡을 맞춰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라도 비를 퍼붓게 하면 역시 춧할 것이 있게 되는데,
정성을 다한 기도가 징험(徵驗)이 없다면 그것도 신(神)의 수치일 것입니다.
[黑山祈雨文] 흑산기우문 흑산에 비내리기를 비는 글
산(山)은 나라를 안정되게 하기도 하며,
별을 바라보는 곳이기도 하여,
그 기운을 삼키고 내뿜음에 은혜로운 비가 내리는 원인이 되고다.
풀과 나무가 그를 의뢰하여 번식되고 벼와 곡식이 그를 밑천으로 자라도다.
드러나게 주장함이 있기에 많은 주민들이 의뢰하여 우러르도다.
아아!
애처로움 사연있으니 대단한 가뭄이 들기를 봄부처 여름까지 이어져 여발(女魃)이 기세를 부리도다.
양기(陽氣)가 내려갈수록 없으니 음기가 감히 올라가지 못하도다.
땅의 기름기도 정지되고 못도 마르며 산은 민둥하게 되고 거리는 타 들어가는 듯 하도다.
오곡의 싹을 누가 자라게 하겠습니까?
손상되고 없어짐이 장차 다함이 없으니 보기는 참혹하고 마음은 서글퍼 집니다.
하늘을 쳐다보아도 넓고 멀기만 합니다.
주민들에게 그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관리가 실제로 보잘것 없어서 입니다.
이에 얕기는 하나마 정성을 다하였으니 신명께서 흠향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게 하는 것도 신명이 감히 사양 하겠습니까?
정결한 제물(祭物)을 차려와서 축원하는데 사대부와 주민들이 도왔사오니,
단비를 주룩주룩 퍼부어 주어 우리 주민들이 살아가며 기르도록 도와 주시옵서소.
[여발(女魃:신화(神話) 가운데서 가뭄을 맡은 신(神)을 말함.]
통제사정기룡제문-응제(統制使鄭起龍致祭文-應製) 임금의 명(命)을 받고 쓴 통제사 정기룡(鄭起龍)에 대한 제문(祭文)이다. |
原文(원문) 統制使鄭起龍致祭文(통제사정기룡치제문) 百特之資 萬敵爲學 心碓膽麤 勇邁才卓 虎榜登名 龍鞱抱奇 舞罷中宵 亂生我圻 起褊奏膚 辰巳午未 백특지자 만적위학 심대담추 용매재탁 호방등명 룡도포기 무파중소 란생아기 기편주부 진사오미 予有禦侮 曰幾捍衛 勣城可擬 信壇爰設 十年南北 累專弓鉞 忠勤有效 廉簡幷著 龍驤委重 莫如統制 여유어모 왈기한위 적성가의 신단원설 십년남북 루전궁월 충근유효 렴간병저 룡양위중 막여통제 一節三路 舍卿誰任 旣試知稱 再使往欽 褒用崇品 嘉乃赤忱 有辭仍勉 寵倚實深 庶終貞吉 式副予望 일절삼로 사경수임 기시지칭 재사왕흠 포용숭품 가내적침 유사잉면 총의실심 서종정길 식부여망 胡天不憗 奪我良將 盡瘁以死 在鄕無憾 失一腹心 予痛曷任 南警可虞 西圉方棘 思之益疚 痛矣難作 호천불은 탈아량장 진췌이사 재향무감 실일복심 여통갈임 남경가우 서어방극 사지익구 통의난작 耗匠事 續脩祀典 靈其不昧 尙歆伻奠 명돈장사 속수사전 령기불매 상흠팽전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統制使鄭起龍致祭文) 통제사정기룡치제문 응제(應製)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자질로 만적을 상대하는 병법을 공부하여,
마음은 웅건하고 담력은 거칠 정도이고,
용맹은 뛰어나고 재능은 탁월하였도다.
무과 시험의 합격자 명단에 올라 병서(兵書)와 기법(奇法)을 지녔었네,
연회의 가무(歌舞)가 끝난 밤중에 우리 강토에 난리가 생겼도다.
편장(褊將)으로 기용되어 큰 공을 아뢰기를 임진,계사,갑오,을미,의 4 년동안 하였도다.
나에게 외모(外侮)를 막아줄 이 있어 거의 막아내고 호위 하였다고 하겠구려,
공(功)은 성(城)에 견줄 만하기에 신임하는 장단(將壇)을 마련하개 하였도다.
십년 동안 남쪽과 북쪽에서 여러차례 장군과 장수의 직책을 오로지 하였도다.
충성심과 근면함은 성과가 있어 청렴하고 대범함이 아울러 나타나 장수의 중책을 맡김에,
통제사 만한 것이 없겠도다.
하나의 부신(符信)으로 삼도(三道) 군사를 절제하는데 경(卿)을 두고 누구에게 맡기랴?
인미 시험하여 알맞음을 알았기에 재차 시키니 가서 조심스럽게 하라고 하였도다.
높은 품계(品階)로 포상(褒賞)한 것은 바로 변함없는 충성심을 아름답게 여겨서여지.
사양하였지만 그대로 권면하였으니 총애하고 의지하는 마음 실제로 깊어서였네,
끝까지 굳은 지조 변함없이 길하도록 바랐는데 나의 소망에 부응해 주었도다.
그언데 어찌 하늘이 그를 이 세상에 남겨두지 않고 나의 훌륭한 장수를 빼았아 간단 말인가?
마음과 힘을 다하다가 죽었으니 고향에서도 유감은 없겠으나,
심복(心腹)을 잃어버린 나의 아픈 마음은 어떻게 겨디랴?
남쪽의 경계도 염려할 만하고 서쪽의 국경은 바야흐로 허술하니 생각하면 더욱 걱정스럽지만,
가슴이 아프구나 다시 살릴 수는 없으니 상구(喪具)를 후하게 하도록 명하고,
이어서 제사 의식을 다듬게 하니 영혼이 어둡지 않거들랑,
사자(使者)를 시켜서 올리는 제물에 흠향하기 바라오.
[ 응제(應製:왕(王)의 명령에 의해 시문(詩文)을 지음.]
경시관과가행제축문(京試官過家行祭祝文) 경시관(京試官)의 임무를 맡고 가면서 어머니‚ 할아버지‚ 부인의 묘(墓)에 제사(祭祀)지내고 올린 축문(祝文)이다. |
原文(원문) 京試官過家行祭祝文(경시관과행제축문) 四方經營 祭如不祭 榮奠于今 顧余其庶 사방경영 제여불제 영전우금 고여기서 右先妣墓( 우선비묘) 餘慶有徵 天恩海深 幸玆歷省 洋洋我歆 여경유징 천은해심 행자력성 양양아흠 右祖考墓( 우조고묘) 食貧生年 享榮歿後 人間有感 地下知否 식빈생년 향영몰후 인간유감 지하지부 右亡室墓( 우망실묘) |
[京試官過家行祭祝文] 경시관과가행제축문 경시관으로 집을 지나다가 제사 지낸 축문
四方經營 사방경영 사방에서 경영하다 보니,
祭如不祭 제여불제 제사를 지내도 제사를 지네는 것 같지 않습니다.
榮尊于今 영존우금 영광스럽게 지금 제사를 드리오니,
顧余其庶 고여기서 저를 돌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는 어머니 묘소[右 先妣墓]우 선비묘
餘慶有徵 여경유징 남은 경사스러운 징험이 있어,
天恩海深 천은해심 임금의 은혜 바다보다 깊습니다.
幸玆歷省 행자력성 다향히 지나는 길에 성묘하오니,
洋洋我歆 양양아흠 양양하게 흠향해 주소서.
위는 조부 묘소[右 祖考墓]우 조고묘
食貧生年 식빈생년 살아서는 먹는 것 조차 궁색했는데,
享榮歿後 향영몰후 죽은 뒤에 영화를 누리니,
人間有感 인간유감 인간의 이 감회를,
地下知否 지하지부 땅 속에서 아시는가 모르시는가?
위는 아내 묘소[右 亡室墓]우 망실묘
재관피탄고묘문(在官被彈告廟文) 탄핵받고 그 사유와 귀향(歸鄕)하려는 자신의 뜻을 조상(祖上)의 사당(祀堂)에 알리는 글이다. |
原文(원문) 在官被彈告廟文(재관피탄고묘문) 久此官居 甚矣臺彈 歸計已定 敢先奉還 구차관거 심의대탄 귀계이정 감선봉환 |
[在官被彈告廟文] 재관피탄고묘문 관원으로 탄핵을 당하여 사당에 고하는 글
久此官居 구차관거 오래동안 벼슬살이 하다보니,
甚矣臺彈 심의대탄 대간의 탄핵 심하기도 합니다.
歸計己定 귀계기정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 이미 정해졌기에,
敢先奉還 감선봉환 감히 먼저 받들고 돌아가렵니다.
선비급망실이사묘고문(先妣及亡室移私廟告文) 어머니와 아내의 신위(神位)를 임시 사당에 옮기면서 그 연유를 알리는 글이다. |
原文(원문) 先妣及亡室移私廟告文(선비급망실이사묘고문) 我居靡定 奉妥無所 亦旣假㝯 敢請爰處 아거미정 봉타무소 역기가교 감청원처 [附還安文] (교: 宀+喬) 수우이안 유명하이 척강재자 서아의의 환안문 |
[先妣及亡室移私廟告文] 선비급망실이사묘고문
돌아가신 어머니와 죽은 아내의 신주를 사묘에 옮김을 알리는 글
我居靡定 아거미정 나의 거처가 정해지지 않아,
奉妥無所 봉타무소 편안하게 받들 곳이 없습니다.
亦旣假교 역기가교 이미 임시 거처를 빌렸으므로, (교: 宀+喬)
敢請爰處 감청원처 감히 여기에 계시기를 바람니다.
隨寓以安 수우이안 우거하는 곳을 따라 편안하게 여김이,
幽明何異 유명하이 이승과 저승이 무엇이 다르리까?
陟降在玆 척강재자 여기에 오르내리면서,
庶我依倚 서아의의 나를 의지하기 바람니다.
[환안문(還安文: 딴 곳에 옮겼던 신주(神主)를 제자리로 모시는 제문(祭文:환봉문(還奉文)]
이안외조고비신주고문(移安外祖考妣神主告文) 외할아버지 내외(內外)의 신위(神位)를 자신의 집 사당에 봉안(奉安)하면서 그 연유를 알리는 글이다. |
原文(원문) 移安外祖考妣神主告文(이안외조고비신주고문) 雖外亦孫 豈無所歸 私室可安 盍我來依 수외역손 기무소귀 사실가안 합아래의 [附奉安文] 부봉안문 旣卽我室 毋座之右 陟降在玆 式庶攸久 奉安文 기즉아실 무좌지우 척강재자 식서유구 봉안문 |
[移安外祖考妣神主告文] 이안외조고비신주고문
외조부 외조모 신주를 옮겨 봉안하고 고하는 글
雖外亦孫 수와역손 비록 외손이기는 하지만,
豈無所歸 기무소귀 어찌 돌아갈 곳이 없겠습니까?
私室可安 사실가안 개인 집도 편안하게 여길 만하니,
盍我來依 합아래의 어찌 저에게로 오셔서 의지하지 않으시렵니까?
旣卽我室 기즉아실 이미 우리 집에 오셨으니,
毋座之右 무좌지우 오른쪽에는 앉지 말게 하소서.
陟降在玆 척강재자 여기에 오르내리시면서,
式庶攸久 식서유구 오래도록 계시기 바랍니다.
제야성군묘상하오위문(祭冶城君墓上下五位文 ) 야성군(冶城君)송맹영(宋孟英)과 상하오위(上下 五位)에 대한 제문(祭文)이다. |
原文(원문) 祭冶城君墓上下五位文 (제야성군묘상하오위문) 是身分派 盖自冶源 粤我祖妣 則宋之雲 追惟始先 不遠伊邇 積慶餘曁 宰玆爲吏 松楸有鬱 시신분파 개자야원 월아조비 칙송지운 추유시선 불원이이 적경여기 재자위리 송추유울 壠墓攸在 瞻望感惕 倐忽二載 差糓展省 同我裔族 一氣流通 庶幾歆格 롱묘유재 첨망감척 숙홀이재 차곡전성 동아예족 일기류통 서기흠격 |
[祭冶城君墓上下五位文] 제야성군묘상하오위문
야성군 묘소 상하 다섯 위에 대한 제문
是身分派 시신분파 이 몸이 나뉘어진 파계가,
蓋自冶源 개자야원 대체로 야성군에서 부터이니.
粤我祖妣 월아조비 우리 조모께서는,
則宋之雲 칙송지운 바로 송씨의 후손이셨도다.
追惟始先 추유시선 선조를 추모하여 보면,
不遠伊邇 불원이이 멀지 않고 가깝도다.
積慶餘曁 적경여기 쌓은 경사가 아직도 남아,
宰玆爲吏 재자위이 이 고을의 수령이 되었도다.
松楸有鬱 송추유울 오동나무 소나무 울창한 곳에,
壟墓攸在 롱묘유재 산소가 모셔져 있도다.
瞻望感惕 첨망감척 쳐다보며 감격스럽고 공경스럽게 여긴지,
倏忽二載 숙홀이재 어느덧 2년이 되었습니다.
差穀展省 차곡전성 사람을 보내어 고하고 성묘하게 하오니,
同我裔族 동아예족 나와 같은 외손입니다.
一氣流通 인기유통 같은 기운이 유통하오니,
庶幾歆格 서기흠격 오셔서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창해서원존덕사봉안제문-사액문암(昌海書院尊德祠奉安祭文-賜額文巖 1616년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창해서원(昌海書院)을 창건하고 존덕사(尊德祠)에 이황(李滉)과 조목(趙穆)의 위패를 봉안하는 제문이다. 창해서원은 1694년(숙종 20)에 문암文巖)이라는 사액을 받는다. |
原文(원문) 昌海書院尊德祠奉安祭文 (창해서원존덕사봉안제문) 自箕于鮮。大道斯東。作者相繼。鮮矣中庸。翰林經老。學士文碓。惟晦伊成。侯圃伊忠。越若聖朝。有四儒宗。 자기우선。대도사동。작자상계。선의중용。한림경로。학사문대。유회이성。후포이충。월약성조。유사유종。 嫡統攸歸。挺我純公。集成群哲。規模晦翁。畜德輝光。氣象春風。粹美天禀。篤實學充。灑掃發軔。誠正收功。 적통유귀。정아순공。집성군철。규모회옹。축덕휘광。기상춘풍。수미천품。독실학충。쇄소발인。성정수공。 專心小大。一敬始終。知行兩進。體用兼融。堅苦刻勵。玩樂齋中。匪忘乎世。恐簡其工。存省敦密。仕止雍容。 전심소대。일경시종。지행량진。체용겸융。견고각려。완악재중。비망호세。공간기공。존성돈밀。사지옹용。 明白正大。坦愨端冲。亦旣德盛。而益禮恭。人仰粹盎。國倚廣崇。寔能成物。豈直艮躬。發揮十圖。用達四聦。 명백정대。탄각단충。역기덕성。이익례공。인앙수앙。국의광숭。식능성물。기직간궁。발휘십도。용달사총。 引君格君。大人至衷。析理毫分。討義底窮。反覆丁寧。箚進䟽封。朋來亦樂。隨質陶鎔。章句訛正。趣脉會通。 인군격군。대인지충。석리호분。토의저궁。반복정녕。차진소봉。붕래역악。수질도용。장구와정。취맥회통。 式日講劘。靡細不礲。生熟稗粟。取舍魚熊。兩端叩竭。爲酬悾悾。面提餘蘊。書尺憧憧。白日燭盲。轟雷警聲。 식일강마。미세불롱。생숙패속。취사어웅。량단고갈。위수공공。면제여온。서척동동。백일촉맹。굉뢰경성。 猗我先生。道大德隆。上嗣前聖。下啓後蒙。程朱韓域。孔孟吳儂。蟻慕羶香。樑摧士恫。於乎曷仗。巖冷棲空。 의아선생。도대덕륭。상사전성。하계후몽。정주한역。공맹오농。의모전향。량최사통。어호갈장。암랭서공。 羹墻起憶。耿着心胷。由鄕達國。祀殷饗重。舊廡今新。敞院崇墉。隣禮伊奉。若邶分鄘。江連洛源。地接陶峰。 갱장기억。경착심흉。유향달국。사은향중。구무금신。창원숭용。린례이봉。약패분용。강련락원。지접도봉。 杖屨或及。宛見遺蹤。渺末有徒。好懿赤悰。崇象後人。恥極心忡。太白南迤。峙鳳盤龍。爰卜面陽。剪棘栽松。 장구혹급。완견유종。묘말유도。호의적종。숭상후인。치극심충。태백남이。치봉반룡。원복면양。전극재송。 十載經營。有侐其宮。肅將奉妥。差糓邁鬷。粤有趙氏。 門下遊從。周溪弄白。顔雪點紅。一貫獨得。造詣超叢。 십재경영。유혁기궁。숙장봉타。차곡매종。월유조씨。 문하유종。주계롱백。안설점홍。일관독득。조예초총。 甞昔宰玆。育我愚侗。講傳師道。緖言橫縱。俾知尊德。仰若華嵩。繄不可諼。沙迹飛鴻。稽式陶鼎。祔安並供。 상석재자。육아우동。강전사도。서언횡종。비지존덕。앙약화숭。예불가훤。사적비홍。계식도정。부안병공。 座依容丈。師室弟同。位序明嚴。廟貌玲瓏。士林榮慶。文運亨豊。有潔豆籩。襟佩肅雍。道體流行。如水溶溶。 좌의용장。사실제동。위서명엄。묘모령롱。사림영경。문운형풍。유결두변。금패숙옹。도체류행。여수용용。 庶幾昭假。顧余孚顒。對越無斁。冀免互童。 서기소가。고여부옹。대월무두。기면호동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昌海書院尊德祠奉安祭文] 창해서원존덕사봉안제문
[후에, 문암서원(文巖書院) 이라고 편액(扁額)이 내렸음.]
[창해서원(昌海書院:퇴계 이황(退溪,李滉)을 주벽(主壁)으로, 월천 조목(月川,趙穆)을 배향 하는 서원.]
기자(箕子) 때부터 조선(朝鮮)에 이르기 까지 유교[대도(大道)]가 동방에서 행하여 졌도다.
떨치고 일어나는 자가 서로 잇달았으나 중용(中庸)에 근접한 이는 드물었도다.
한림학사를 거친 노숙(老宿)한 학사(學士)와 문웅(文雄)으로는오직 회헌(晦軒:안향(安珦))이 유교 진흥을 성취시켰고,
포은(圃隱:정몽주(鄭夢周))이 충절로 알려졌도다.
그 뒤 조선조에는 유학의 영수(領袖) 네 분이 있었으나 적통(嫡統)으로 귀착될 분은 우뚝한 문순공(文純公)이시네.
여러 어진 이들의 학설을 집성하면서 회옹(晦翁:주희(朱熹))을 규모로 삼았네.
덕(德)을 쌓아 업적이 빛나니 기상(氣像)은 봄바람과 같도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타고난 성품에다 독실(篤實)하게 학문으로 채우셨으며 물뿌리고 청소하는 일을 시작으로,
뜻과 마음을 정성되고 바르게 하는 공부를 수렴하였도다.
크고 작은 일에 마음을 진일하게 하여 하나의 공경하는 마음으로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하였도다.
지식과 행동 두 가지가 함께 진취하여 본체와 작용이 겸하여 융화 되었도다.
어려움을 굳게 참으면서 비상한 노력을 완락재(玩樂齋)에서 하셨도다.
세상의 일을 잊어버리려는 것이 아니고 아마도 그의 공부에 간단이 생길까 두려워서였네.
마음을 다잡고 살피며 돈독하고 면밀하게 하셨고 벼슬하고 그만둠도 온화한 모습으로 하였으며,
명백하고 정대하게 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단정하고 부드럽게 하셨으니 그것도 이미 덕(德)이 성해서인데,
더욱 예를 같추어 공손히 하셨으므로 사람들은 온화한 기상이 온몸에 가득함을 우러르고,
국가에서는 덕이 넓고 높음을 의지 하셨습니다.
이는 덕으로 사물을 성취하게 하는 것인데 어찌 자신에게만 그칠 뿐이겠습니까?
성학십도(聖學十圖) 를 발휘하여 사방 사람들의 총명을 통달하게 하였고 임금을 인도하여 임금이 감동하게 하셨으니,
대인(大人)의 지극한 충정에서 였습니다.
이치를 분석함에 있어서는 니세한 부분까지 하셨으며 의리를 토론함에는 끝까지 추궁하였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되풀이하고 또렸하게 차자(箚子)와 소(疏)로 봉(封)하여 올렸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찾아오는 것을 즐겁게 여겨 그의 본성을 따라 변화하게 하였으며,
경전(經傳) 장구(章句)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뜻과 맥락이 함께 관통되게 하셨습니다.
날짜를 정하여 강론하면서 미세한 곳까지 연마하지 않음이 없으셨고 날 것과 익은 것,
가라지와 곡식을,
물고기나 곰발바닥을 입맛대로 취하거나 버리게 하시고 두 방면을 남김없이 구명하여 응답헤 주시기를 성의껏 하셨으며,
마주 대하여 가르치고 남은 것은 편지로 인도하여 잊지 않게 하시기를 밝은 태양이 장님에게 비춰주듯,
굉장한 천둥이 귀머거리를 놀라게 하듯이 하셨으니,,,
아아!
우리 선생님은 도(道)는 광대하고 덕(德)은 융성하여 위로는 전(前) 시대의 성인(聖人)을 이으시고,
아래로는 귓 세대의 어라석은 이들을 깨우치기를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하남성(河南省)애서,
공자(孔子)와 맹자(孟子)가 강소성(江蘇省)에서 하듯 하셨습니다.
개미는 누린내를 사모하지만 선생님이 돌아가시자[량최(樑摧):대들보가 꺽임] 선비들은 슬퍼하였습니다.
아아!
어디에 의지 하겠습니까?
암서헌(巖棲軒)도 쓸쓸하게 텅 비였습니다.
사물을 접할 때마다 사모하는 마음 일어나 잊지 못하는 정 가슴 속에 자리 잡았습니다.
시골에서 도성에 이르기까지 제사 받드는 일을 넉넉하고 정중하게 여겼으며 옛 도산서당을 도산서원으로 새롭게 하여,
규모를 넓히면서 담장도 높혔습니다.
이웃 고을의 례로 제향을 받들기를 마치 옛날 패국(邶國)과 용국(鄘國)이 나뉜 것처럼 하였습니다.
강은 낙동강의 근원에 이어져 있고 지역은 도산(陶山)과 인접하여 있으므로 선생님께서 간혹 찾으신 곳이여서,
남은 자취를 완연히 뵙는 듯 합니다.
보잘것 없는 저희 무리들이 아름다운 행적을 좋아하는 마음 변함 없습니다.
선생님의 법상(法象)을 높이기 보다는 남보다 뒤쳐졌으니 걱정스럽고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태백산이 남쪽으로 뻗어내려 봉새가 우뚝 솟은 듯 용이 서린 듯한 곳의 양지바른 데를 골라,
가시를 잘라내고 소나무를 심으며 10년 동안이나 경영(經營)한 그 궁장(宮墻) 고요하기도 합니다.
엄숙하게 장차 봉안하려고 사람을 뽑아 힘써 고하고 아룁니다.
한 분의 조씨(趙氏)가 계셨으니 선생님 문하에 종유(從遊) 하였습니다.
계당(溪堂)을 두루 돌며 환한 달을 읊으셨고 눈을 보듯 깨뜻한 지조는 으뜸이 셨습니다.
뜻을 굽히고 혼자만이 터득한 공부는 깊은 경지에 다달아 무리에 뛰어나셨도다.
일찍이 이 고을의 수령으로 재임하면서 어리석고 미련한 우리들을 교육하시고 스승의 도리를 갈론하고 전수하시면서,
그 까닭을 자유자재로 말씀하시어 저희로 하여금 덕(德)을 높일 줄 알게 하셨기에,
우러르기를 화산(華山)과 숭산(崇山) 처럼 하였습니다.
아아!
잊을 수 없는 것은 모래톱에 날아간 기러기의 뚜렷한 흔적 같은 것입니다.
도산서원의 법을 상고하여 두 분 선생님의 위패를 봉안하여 받들려고 위패를 모시는 자리를 한 발쯤 여유있게 하여,
선생님의 방에다 제자도 함께 모셨으니 차례가 명백하고 엄정하며 사당의 모습은 영롱하게 빛이 납니다.
사림에게는 영광스럽고 경사스러우며 학문이 흥성하는 운세가 형통하고 넉넉합니다.
깨끗한 제물을 갖추어 선비들 엄숙하고 화목하게 제사를 받드니 도(道)의 본체가 널리 퍼짐이 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 같습니다.
바라옵기는 밝게 이르셔서 저희의 성실과 근신을 돌보시고 널리 알림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시어 어리석음을 면하게 하소서.
[완락재(玩樂齋:도산서당(陶山書堂)의 서재(書齋)]
[성학십도(聖學十圖:조선조 때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선조(宣祖)의 경연에서 성학의 대강으로 풀이하여 밝히고.
심법(心法)의 가장 중요한 점을 명시하기 위하여 여러 유학자들의 도설(圖說)을 인용하고
자기의 의견을 첨부하여 만든책1권.]
[차자(箚子:소장(疏章)의 하나 일정한 형식을 갖추지 아니하고 간단히 사실만을 기록하여 올리는 상소(上疏),
주차(奏箚),또는 차문(箚文)이라고도 함.]
[가라지:농어목.전갱이과의 바닷물고기.]
[암서헌(巖棲軒:도산서당(陶山書堂)의 헌감(軒檻:추녀 난간) 이름.]
월천선생부향존덕사제문(月川先生祔享尊德祠祭文) 창해서원(昌海書院)의 존덕사(尊德祠)에 스승인 조목(趙穆)의 위패를 합사(合祠)하는 제문이다. |
[月川先生祔享尊德祠祭文] 월천선생부향존덕사제문
월천선생의 위패를 존덕사에 부향하는 제문
하늘이 공자(孔子)를 탄생하게 하시고,
이어서 안자(顔子)와 증자(曾子) 를 두셨으며,
주자(朱子)를 세상에서 뛰어나게 하였는데,
황면재(黃勉齋)가 그 학통을 계승 하였도다.
아아!
우리 월천공(月川公)께서는 퇴계선생에게서 배워서 일어나셨으니 타고난 자질은 확실하고 성품은 순수하며,
기국(器局)은 의젓하고 단정하면서도 넓고 총명과 재주는 무리에게서 뛰어났지만 스스로 노둔(魯鈍)하다고 일컬으셨도다.
경서(經書)의 해석을 독실히 좋아하여 어렸을 때에 이미 잘 이해하였으므로 대성(大成)하도록 시를 지어 칭찬하였으며,
퇴계선생의 문하에 비로서 오르게 되었도다.
의귀(依歸)할 곳을 얻게 되자 질문하고 분변할 데가 있게 되었으며 도의(道義)로 맺은 교제에 참여하여,
복종하고 뜻을 굽혀 받들기를 잘 하셨으며 날마다 달마다 갈고 닦아 학문의 조례가 수준에 들어가고 오르기도 하였도다.
한 학통의 마루를 차지하게 되어서는 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으뜸이 되셨습니다.
정직하고 방정한 법도를 보존하여 잘못을 고쳐 착한 데로 옮기고 분노와 사욕을 참고 억누르셨으며,
배우고 가르침을 규정에 따라 거르는 일 없이 일정하게 하셨도다.
일생동안 가난한 생활을 하시면서 도(道)를 탐구하는 것을 지상의 즐거움으로 삼아 고요한 시골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읽으신 책만도 열 수레 분량이도다.
으리를 좋아하기를 맛있는 고기를 대하듯 하였으며 오동나무와 버드나무처럼 부드러운 정으로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능력에 비하여 낮은 벼슬을 맡기도 하셨으며 세상의 시끄러움을 피하여 시골에 묻혀 생활하심이 적합하였도다.
비자나무로 된 책상에는 먼지도 없고 종이로 만든 이불은 얼음같이 싸늘하였습니다.
맑게 갠 대낮에도 향(香)을 피우셨고 밤이 늦도록 등불을 밝히고 공부를 하셨습니다.
정자(程子)께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을 때에 양귀산(楊龜山)이 조심스레 떠난 것과 같은 마음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상한 노력을 하셨고 늙어서는 더욱 근신허셨으며 외출 때의 복장도 본보기가 되었으며,
말씀과 침묵도 법도가 되였습니다.
소년 때와 청년 때에 모범을 보이셔서 고향에서 감화되게 하셨으며 선행(善行)이 있으면 좋아하고 나쁜짓은 미워하셨으므로,
군자(君子)는 충심으로 복종하고 소인배들은 비난을 보태였지만 큰 도(道)에 무슨 손상이 있겠습니까?
태양은 변함없이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아아!
저히들 우러를 곳을 잃어 버렸으니,
추모(追慕)하는 마음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하늘에서의 청취는 낮은 데서 부터이므로 상덕사(尙德祠)에다 위패를 올려 모시며,
모든 제물과 의식 절차는 도산서원의 것을 그대로 본 받았습니다.
호수(戶數)가 적은 이 고을에 일찍이 수령(守令)으로 부임하셨으며 많은 어리석은 이들에게 글을 강독하고 익히게 하시면서,
물뿌리고 쓸며 대답하고 응하는 것부터 시작하셨으니,
장님과 귀머거리처럼 마음에 고질이 든 자들을 오히려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같이 천리를 가게 하셨기에,
이에 어진 이를 포장(褒奬)할 줄 알게 하여 사원(祠院)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창해서원 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일찌감치 여쭈어 결정한 것입니다.
구월의 좋은 계절에 희생이며 술이랑 제물을 갖추었습니다.
덕(德)을 좋아하는 이들 모두 모여 사민(士民)들 많기도 합니다.
문순공(文純公)의 자리 높기도하여 도산[도악(陶嶽)]이 솟은 것과 같습니다.
공(公)만 홀로 배향하게 되였으니 연꽃이 맑은 가운대서 솟은 듯 합니다.
가지런하지 않은 위패의 자리가 완연히 안석에 기대신 모습을 뫼시는 듯 예의에 꼼꼼하던 숙손통(叔孫通)도,
끝내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향기좋은 냄새 가득하고 제기에 담긴 제물 풍성하며 저의 정성을 다하여 흰종이에 기록하여 쳐다보고 구부려 경건히고하오며,
명명한 가운데서 응답하시기를 바라오니 좌우(左右)에 양양(洋洋)하게 내려다 보시고 이르소서.
[황면재(黃勉齋:송(宋)나라 때 학자 황간(黃榦)의 호(號).주자(朱子)의 제자이면서 사위 임.]
창해서원개제위판고문(昌海書院改題位版告文) 창해서원(昌海書院)에 봉안한 위패를 다시 만들고 그 연유를 고하는 글이다. |
原文(원문) 昌海書院改題位版告文(창해서원개제위판고문) 瞻仰面題 字失中道 肅將改正 敢先虔告 첨앙면제 자실중도 숙장개정 감선건고 [附還安文] 부환안문 정소미정 구제신휘 대덕유타 후학지의 환안문 |
[昌海書院改題位版告文] 창해서원개제위판고문 창해서원의 위판을 고쳐 쓰고 고하는 글
瞻仰面題 첨앙면제 정면에 쓰인 글을 우러러 보니,
字失中道 지실중도 글자에 중도를 잃어,
肅將改正 숙장개정 엄숙하게 장차 고쳐서 바로 잡으려,
敢先虔告 간선건고 감히 먼저 경건히 고합니다.
正所未正 정소미정 바르지 않은 부분을 바로 잡으니,
舊題新輝 구제신휘 그전에 썻던 것이 새로 빛이 납니다.
大德攸妥 대덕유타 대덕이 편안하게 여기실 터이고,
後學之依 후학지의 후학들이 의지할 데입니다.
용산서원회곡선생봉안문-사액주계(龍山書院晦谷先生奉安文-賜額周溪) 용산서원(龍山書院)에 권춘란(權春蘭:1539-1617)의 위패를 봉안하는 제문이다. 용산서원은 1633 (인조 11)에 주계(周溪)라는 사액을 받는다. |
原文(원문) 龍山書院晦谷先生奉安文 (용산서원회곡선생봉안문) 我邦多賢。越有先生。淑質溫愨。令儀端貞。擧業從衆。式敦內操。仕必思止。進亦耻躁。去速就遅。則維其常。 아방다현。월유선생。숙질온각。령의단정。거업종중。식돈내조。사필사지。진역치조。거속취지。칙유기상。 豸冠求縣。不顯其光。奸臆潛駭。達眼丕欽。旣養以榮。遂初爰尋。篤志劬書。孝友餘力。捧璧眞經。絶韋羲易。 치관구현。불현기광。간억잠해。달안비흠。기양이영。수초원심。독지구서。효우여력。봉벽진경。절위희역。 仁爲己任。有說輒箚。裒成卷帙。以資講劘。衆所未窺。我自孶矹。明窓喜靜。淸晝坐兀。人欲退伏。天理昭呈。 인위기임。유설첩차。부성권질。이자강마。중소미규。아자자올。명창희정。청주좌올。인욕퇴복。천리소정。 貧難動念。利豈嬰情。半畒一鑑。心源活潑。白雪蒼松。苦節誰奪。學日以就。道月斯征。專務其實。用晦而明。 빈난동념。리기영정。반묘일감。심원활발。백설창송。고절수탈。학일이취。도월사정。전무기실。용회이명。 廉靜爲度。簡雅成性。終始淸脩。出處惟正。歸盡隨化。樂天之命。位德長短。不須有云。生死順安。乃見其尊。 염정위도。간아성성。종시청수。출처유정。귀진수화。악천지명。위덕장단。불수유운。생사순안。내견기존。 鄕里之表。後學攸依。魯無君子。斯焉取斯。厥有師尙。栢潭夫子。亦旣廟享。盍共後死。好懿同彜。倡克有和。 향리지표。후학유의。로무군자。사언취사。궐유사상。백담부자。역기묘향。합공후사。호의동이。창극유화。 多士奔波。遠者近者。潔牲良辰。肅奉以妥。宛其容文。無間平昔。庶幾洋洋。顧我誠赤。 다사분파。원자근자。결생량진。숙봉이타。완기용문。무간평석。서기양양。고아성적。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龍山書院晦谷先生奉安文] 용산서원회곡선생봉안문
[편액(扁額)은 주계서원(周溪書院)으로 내려졌다.]
우라나라에 현인(賢人)이 많아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도다.
맑은 자질과 온화한 모습이며 아름다운 위의와 단정함이로다.
과거 공부는 여러 사람을 따라 하였지만 마음 속의 지조만은 돈독하셨도다.
벼슬은 반드시 그칠 때를 생각해야 하며 진출 또한 조급히 서두름을 부끄럽게 여기셨지,
떠남은 빠르게 진출함은 더디게 함이 그 떳떳한 기강이였도다.
대간(臺諫)으로서 지방관이 되기를 바라셨으니 그 업적이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간교한 소인의 마음으로는 놀라워 하였지만 달관한 사람의 안목으로는 크게 흠모하였습니다.
이미 영광된 일로 봉양하였기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해묵은 소원을 실현하였도다.
뜻을 돈독히 하여 부지런히 공부하기를 효도하고 우애하는 여가에 하셨도다.
경전을 보배처럼 받들었으며 주역은 가죽끈이 끊어질 정도로 읽으셨도다.
인(仁)을 행하기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셨으며 말씀하신 것은 번번이 기록하셔서 모은 것이 책을 이루게 되고,
그것으로 강론하고 연마하는 자료로 삼으셨는데 많은 사람들은 엿보지 못하였으나 나는 스스로 부지런하여 엿볼 수 있었다.
창문이 밝을 땐 고요한 것을 즐기시어 맑게 갠 한낮에도 단정히 앉아 계셨습니다.
남들이 물러나 엎드리게 하고자 했으며 하늘의 이치를 밝히고 드러내셨는데 이익이 어떻게 마음을 사로 잡겠습니까?
작은 연못가에서 자연과 더불어 생활하니 마음의 근원이 활발하기만 하셨습니다.
흰 눈이 덮인 곳의 푸른소나무의 그 높은 절개를 누가 빼았겠습니까?
학문은 날마다 성취되고 도(道)는 달마다 정진되셨으며 오로지 그 성실함을 힘쓰다보니 어두웠던 것이 밝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청렴하고 안정된 것을 법으로 삼으셨고 대범하고 단아함이 성품을 이루시어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게 수양을 쌓으시며,
진출과 용퇴를 바르게 하셨습니다.
자연의 조화를 따르시다가 돌아가셨으니 하늘의 명(命)을 즐겁게 여기신 것입니다.
지위와 덕망의 높고 낮음은 모름지기 말할 수 없습니다만 순리대로 사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신데서,
그 높은 덕을 볼 수 있습니다.
후학(後學)들에게는 의지가 되셨으니 노(魯)나라에 군자(君子)가 없었다면 이런 덕행을 어디서 취하였겠습니까?
스승으로 높일 분이 계셨으니 백담부자(栢潭夫子)이시도다.
이미 묘우(廟宇)에서 제향하고 어찌 뒤에 돌아가신 분과 함께 봉향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떳떳한 도리를 좋아하고 아름답게 여겨 앞장서자 화답하는 이 있어 많은 선비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를,
먼 곳과 가까운 곳의 구분이 없도다.
좋은 계절에 깨끗한 제문을 올리며 엄숙히 편안하게 받드오니 완연한 그 모습 옛날과 차이가 없습니다.
바라옵건데 양양(洋洋)하게 저희들의 정성을 돌아다 보옵소서.
[회곡,권춘란(晦谷,權春蘭:1539년(중종34)~1617년(광해군9). 자(字)는 언회(彦晦) 회곡은 그의 호(號)]
[백담부자(栢潭夫子:구봉령(具鳳齡1526(중종21)~1586(선조19). 이황(李滉)의 문인(門人).
이조참판(吏曹參判)과 대사헌(大司憲)을 지냄.]
회곡선생상향축문(晦谷先生常享祝文) 권춘란(權春蘭)의 신위(神位)에 상향제(常享祭))를 올리는 축문이다. 原文(원문) 仁不讓師 學以求道 晦養織 淸修節苦 인불양사 학이구도 회양지돈 청수절고 |
[晦谷先生常享祝文] 회곡선생상향축문
仁不讓師 인불양사 인은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으셨고,
學以求道 학이구도 학문은 도를 구하셨습니다.
晦養織 회양지돈 재능을 감추시고 뜻을 돈독히 하여,
淸修節苦 청수절고 맑게 높은 지조를 다듬으셨습니다.
구미당개기고문(九未堂開基告文) 구미당(九未堂)의 기단을 쌓기 시작하면서 그 일을 고하는 글이다 原文(원문) 闢千古慳 宅萬世基 天旣佑之 神其保矣 벽천고간 댁만세기 천기우지 신기보의 |
[九未堂開基告文] 구미당개기고문
闢千古慳 벽천고간 처고토록 감춘 곳을 열어,
宅萬世基 택만세기 만세에 집지을 터를 닦습니다.
天旣佑之 천기우지 하늘이 이미 도와 주셨으니,
神其保矣 신기보의 신명께서도 보호해 주소서.
제한강선생문(祭寒岡先生文) 스승인 정구(鄭逑)를 제사(祭祀)하는 제문(祭文)이다. |
原文(원문) 祭寒岡先生文 (제한강선생문) 嗚呼。 邦國欲瘁。先生病矣。道脉將墜。先生逝矣。叫閽未再。孰扶倫紀。就正無地。哀我後學。泗濱荒凉。오호。 방국욕췌。선생병의。도맥장추。선생서의。규혼미재。숙부륜기。취정무지。애아후학。사빈황량。 梅園寂寞。持敬明義。平生着力。發揮分類。垂敎膚公。豪毅之資。英粹之容。已矣難覿。視天夢夢。小子及門。 매원적막。지경명의。평생착력。발휘분류。수교부공。호의지자。영수지용。이의난적。시천몽몽。소자급문。 三千之後。宰縣四載。飽蒙諄誘。歸去歲換。驚聞啓手。遠稽匍匐。期已再過。慟自常切。情同有妥。王程歷玆。 삼천지후。재현사재。포몽순유。귀거세환。경문계수。원계포복。기이재과。통자상절。정동유타。왕정력자。 幸展祠下。乘舟昔酌。別語耳盈。燒香此酹。若接匪明。人事之謬。時運之舛。欲哭不可。傷心一奠。庶歆赤誠。 행전사하。승주석작。별어이영。소향차뢰。약접비명。인사지류。시운지천。욕곡불가。상심일전。서흠적성。 不昧惟靈。 불매유령。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寒岡先生文) 제한강선생문
아아!
국가의 운명이 쇠미하려 할 때에,
선생님께서 병이 드셨고,
유교의 바른 맥(脈)이 장차 떨어지려는데,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대궐에서 호소하기를 두 번도 못허였는데 누가 인륜과 기강을 부지하겠습니까?
나아가 의문을 질정할 곳이 없어졌으며 애처롭습니다.
우리 후학들이여!
사양(泗陽)의 물가도 황폐하고 쓸쓸하며 매원(梅園)도 적막(寂寞)하게 되었습니다.
공경심을 지니고 의리를 밝히시려고 평생동안 힘을 쓰셨으며,
유를 나누어 능력을 발휘하고 가르침을 주신 큰 공을 세우셨습니다.
호방하고 의젓하신 자질이셨으며 영특하고 순수한 모습이셨습니다.
이제는 모두 끝이나 뵙기 어렵게 되였으니 하늘을 보아도 흐리멍텅해 보입니다.
소자(小子)가 문하로 들어간 것은 많은 사람들의 나중이였으니 성주(星州)의 수령으로 있던 4년동안,
곡진하신 가르침을 배불리 받들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해가 바뀌었는데 놀랍게도 돌아가셨음을 들었습니다만 멀리서 기어서라도 가겠다고 생각한,
기약이 이미 두 번이나 지났습니다.
슬픔은 저절로 항상 간절하여 마음이 편할 수 없습니다.
왕명을 받들고 이곳을 지나면서 다행스럽게 사우(祠宇)아래서 회포를 펴오니 옛날 배를 타고 술을 권하시며,
작별하신 말씀 귀에 가득한 듯 하옵고 향(香)을 피우며 술잔을 올리니 마치 저승에서 뵙는 듯 합니다.
인사(人事)는 잘못되고 시운(時運)은 어긋나고 있습니다.
통곡하려 해도 할 수 없어서 상한 마음으로 한 잔 술을 올리오니,
밝으신 영혼께서 변함없는 정성에 흠향하시기를 바랍니다.
소고선생사묘(嘯皐先生祠廟) 스승 박승임(朴承任)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祭祀) 지낼 때의 제문(祭文)이다. |
原文(원문) 嘯皐先生祠廟 (소고선생사묘) 文章如先生。學文如先生。器度如先生。而先生之生。位止通政。先生之歿。世無尊敬。嗚呼痛哉。小子當年。 문장여선생。학문여선생。기도여선생。이선생지생。위지통정。선생지몰。세무존경。오호통재。소자당년。 面承提挈。幸忝科第。實荷敎育。奉命歷玆。感惕無任。薄具自公。庶幾我歆。 면승제설。행첨과제。실하교육。봉명력자。감척무임。박구자공。서기아흠。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嘯皐先生祠廟) 소고선생사묘
선생님 같은 문장(文章)으로,
선생님 같은 학문(學問)으로,
선생님 같은 기도(器度)로,
선생님 살아 생전에는 지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그쳤으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는 세상에서 존경하는 이가 없으니,
아아!
마음이 아픔니다.
소자(小子)가 당시에 직접 가르침을 받아 다행이 욕되게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실제로 가르치고 길러주신 은혜를 입어서 입니다.
왕명(王命)을 받들고 이곳을 지나다가 슬픈 감회를 견딜 수 없어,
관비[공비(公費)]로 변변찮은 제물을 차렸사오니 흠향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제회곡선생문(祭晦谷先生文) 권춘란(權春蘭)을 제사(祭祀)하는 제문(祭文)이다. |
原文(원문) 祭晦谷先生文 (제회곡선생문) 簡雅之質。廉靖之姿。篤志力學。惟日孶孶。爲親科甲。仕進非急。乍朝乍郡。就遅去速。晦以名谷。谷於藏身。 간아지질。렴정지자。독지력학。유일자자。위친과갑。사진비급。사조사군。취지거속。회이명곡。곡어장신。 不慕乎外。無求於人。潛心太極。講求仁說。平生自樂。道與心合。歿世人惜。位不稱德。生順死安。固無餘憾。 불모호외。무구어인。잠심태극。강구인설。평생자악。도여심합。몰세인석。위불칭덕。생순사안。고무여감。 哲萎道衰。云胡其慘。有几有筵。不昧惟靈。哭我小子。嗚呼先生。黃流滿爵。則如平昔。庶幾降格。歆我情曲。 철위도쇠。운호기참。유궤유연。불매유령。곡아소자。오호선생。황류만작。칙여평석。서기강격。흠아정곡。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晦谷先生文] 제회곡선생문 회곡선생 영위에 드리는 제문
대범하고 단아한 바탕에,
청렴하고 안정된 자태이셨으며,
뜻을 독실히 하여 학문에 힘쓰기를 날마다 부지런히 하셨습니다.
어버이를 위하여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벼슬하는 것을 서두르지 않았으며,
잠깐 조정에 있다가 잠깐 지방관으로 계시면서 취임하는 것은 더디게 하였으나 떠나는 것은 빠르게 하셨습니다.
감춘다는 것으로 골짜기의 이름을 지으셨고 그골짜기에서 몸을 감추고서,
세상의 일을 그리워하지 아니하며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셨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혀 주역을 연구하셨고 인(仁)에 관한 학설을 조사하여 찾으셨습니다.
평생토록 스스로 즐기시며 도(道)와 마음이 합치 하셨으므로 세상을 떠나시자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기기를,
지위가 그 덕망에 걸맞지 않았다고들 하였습니다.
하지만 순리대로 사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셨으니 진실로 남은 한(恨)은 없습니다.
훌륭한 분이 돌아가시고 유교가 쇠약해지니 그 참담함을 어떠하다고 말하리까?
궤연(几筵) 에 모신 밝은 영혼이시여,
소자(小子)가 통곡 하옵니다.
아아!
선생님 이시여!
술잔에 가득한 술 옛날과 같사오니 바라옵건데 내려오셔서 저의 간곡한 정(情)에 흠향하여 주소서.
[궤연(几筵:죽은 사람의 혼백(魂魄)이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곳. 영연(靈筵),영상(靈床).]
제의병장유공종개문(祭義兵將柳公宗介文) 왜적(倭賊))과 싸우다 전사한 의병장 유종개(柳宗介:1558-1592)를 제사하는 제문이다. |
原文(원문) 祭義兵將柳公宗介文 (제의병장유공종개문) 嗚呼痛哉。公寧負勇。公寧負智。一寸丹忱。惟忠與義。忠膽載張。義氣何偉。起身衰絰。糾召同志。雲從文武。 오호통재。공녕부용。공녕부지。일촌단침。유충여의。충담재장。의기하위。기신쇠질。규소동지。운종문무。 川赴遠邇。旬朔纔閱。部伍旣就。公於是時。益自勵氣。諭衆以義。誓身以死。分司勒署。俾不廢事。揭令定規。 천부원이。순삭재열。부오기취。공어시시。익자려기。유중이의。서신이사。분사륵서。비불폐사。게령정규。 務當其理。日夜措畫。未遑卧起。軍容庶振。洪功可竪。嗚呼痛哉。治戎未訖。賊勢告急。隣陣懷私。不協心力。 무당기리。일야조화。미황와기。군용서진。홍공가수。오호통재。치융미흘。적세고급。린진회사。불협심력 山磎隘阻。盖難馳突。凶鋒忽値。勢何迫厄。招援未至。散陣難合。雖或張弓。奈已勢弱。徒手徒足。未捍頭目。 산계애조。개난치돌。흉봉홀치。세하박액。초원미지。산진난합。수혹장궁。내이세약。도수도족。미한두목。 忠魂一驚。慘慟何及。山川動容。草木變色。嗚呼痛哉。公之生也。一陣重焉。公之死也。一陣輕焉。其生有關。 충혼일경。참통하급。산천동용。초목변색。오호통재。공지생야。일진중언。공지사야。일진경언。기생유관。 其死何遄。爲國一死。公猶恔然。未死殘旅。將何倚旃。天耶命耶。豈堪慟惜。玆觴漿簋。用吊義魄。魂兮歸來。 기사하천。위국일사。공유교연。미사잔려。장하의전。천야명야。기감통석。자상장궤。용적의백。혼혜귀래。 痛哭痛哭。尙饗。 통곡통곡。상향。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義兵將柳公宗介文] 제의병장유공종개문
의병장 유공 종개의 영위에 올리는 제문
아아!
마음이 아픔니다.
공(公)이 어떻게 용맹을 지녔으며,
공(公)이 어떻게 지혜를 지니셨기에,
한 마디의 정성된 마음 오직 충성신과 의리 뿐입니까?
충성스런 담력(膽力)이 펼쳐지는데 의기는 어찌 그리도 위대합니까?
어버이 상중(喪中)임에도 몸을 일으켜 동지(同志)들을 불러다 구합하니,
구름같이 모인 문관과 무관, 먼곳 가까운 곳에서 몰려 왔기에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겨우 지나자,
대오[부오(部伍)]를 이미 이루게 되였도다.
공이 이러한 시기에 더욱 스스로 사기를 높이려고 힘쓰며 여러 사람들에게는 의리로 타이르고,
자신의 맹세는 나라를 위해죽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담당을 나누고 부서(部署)를 통솔하여 일이 패기되지 않도록 하였으며 영(令)을 게시하고 규정을 정해서,
그대로 다스리려고 힘 썼습니다.
밤낮으로 조처하고 계획하느라 누윘다가 일어날 겨를도 없었고 군대의 모습이 거의 진작되자 큰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아아!
마음이 아픔니다.
군사를 다듬는 일 끝나기도 전에 적(賊)의 공격이 급박하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웃 진영(鎭營)에서 사사로운 마음을 품고 마음과 힘으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산골짜기의 좁고도 험하여 말을 타고 달리며 돌진하기는 대체로 어려운데 흉악한 적들의 예봉(銳鋒)을
갑자기 만나게되니 그 형세가 어찌 그리도 재앙이 가깝게 닥쳤습니까?
구원군을 불러 보았지만 이르지 않았으므로 군진(軍陳)은 흩어져 규합하기 어렵게 되였습니다.
비록 간혹 활을 쏘기도 하였지만 형세가 미약한데야 어쩌겠습니까?
한갓 손과 발만으로는 머리와 문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충성스런 넋이 한번 놀라니 참담하고 슬픈 마음 어떻게 언급하리요?
산천(山川)도 모습이 변하고,
초목(草木)도 빛깔이 바뀌였습니다.
아아!
마음이 아픔니다.
공이 살아있을 적에는 한 진(陳)도 소중히 여겼는데 공이 죽고서는 한 진도 가볍게 여겼습니다.
공의 생존이 시대운명과 관계가 있는데 공의 죽음이 어찌 그리도 빠름니까?
국가를 위하여 한번 죽는 것을 공은 오히려 쾌하게 여겼으니 죽지못한 쇠잔한 군사들 장차 어느장수를 의지해야 하리요?
하늘이 시켜서 입니까?
운명 입니까?
어떻게 슬프고 애석함을 감당 하겠습니까?
이에 술과 제물을 차려 외로운 넋을 위로하오니,
혼령이시여 골아오소서,
통곡하고 통곡하오며,
흠향하시기 바람니다.
제오춘당수영문(祭吳春塘守盈文) 퇴계(退溪)의 문인인 오수영(吳守盈:1521-1606)을 제사하는 제문(祭文)이다. |
原文(원문) 祭吳春堂守盈文 (제오춘당수영문) 嗚呼。退溪生于宣城。而宣城爲宣城。退溪旣歿。而宣城猶爲宣城者。以其尙有親炙之諸賢也。 오호。퇴계생우선성。이선성위선성。퇴계기몰。이선성유위선성자。이기상유친자지제현야。 今者月之三日而葬月川。八日而又葬春塘。春塘實崑岡之次玉也。當其時親賢而取友。有得於觀感之間者。 금자월지삼일이장월천。팔일이우장춘당。춘당실곤강지차옥야。당기시친현이취우。유득어관감지간자。 不爲不多。則其言語動靜。有非庸衆人所可擬者。春塘旣歿則宣城惟有勉進一人而已。嗚呼。退溪之澤。 불위불다。칙기언어동정。유비용중인소가의자。춘당기몰칙선성유유면진일인이이。오호。퇴계지택。 將自此而漸盡耶。若其平日進見之時。盃酒歡娛。詩章唱酬。不知年之老少。而寵以相從者。抑情之私也。 장자차이점진야。약기평일진견지시。배주환오。시장창수。불지년지로소。이총이상종자。억정지사야。 思之自傷而已。謹像平素。來薦薄具。雖非旨嘉。式歆庶幾。 사지자상이이。근상평소。래천박구。수비지가。식흠서기。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吳春堂守盈文] 제오춘당수영문 오춘당 수영 영위에 올리는 글
아아!
퇴계(退溪)가 선성(宣城:안동의 옛날 이름)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선성이 선성으로 알려지게 되였고,
퇴계가 돌아가셨는데고 선성이 오히려 선성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지금까지 퇴계에게 직접 글을 배운
여러 어진 이가 있기 때문 입니다.
이 달 초3일에 월천(月川:조목(趙穆)의 장례(葬禮)를 치렀고 8일에는 또 춘당(春堂)의 장례를 치렀는데,
춘당은 실제로 곤강(崑岡)의 차등(次等) 품질의 옥(玉) 입니다.
그 당시 어진 이와 가깝게 지내면서 친구로 삼아 눈으로 보고 감동하는 사이에서 많은 것을 얻은 자가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언어(言語)와 행동(行動)이 일반 대중과는 비교할 바가 아닌 부분이 있어서 입니다.
춘당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는 선성에 용기있게 진출하는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니,
아아!
퇴계의 은택이 장차 이로부터 점차로 다하는 것입니까?
그 평상시 나아가서 뵙던 때에 술을 마시며 즐기고 시(詩)를 지어 주고 받으면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잊은채
사랑으로 서로 따르게 한 것은 개인적인 인정에서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이 상(傷)할 뿐입니다.
삼가 평소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변변찬은 제물을 차려와서 올리오니 맛이 없더라도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제문(祭文) 8 편의 제문(祭文)이다. 제권태초문(祭權太初文1598)‚ 제송정랑문(祭宋正郞文)‚ 제남장호례문(祭南丈好禮文)‚ 제선암이장봉문(祭仙巖李丈峯文)‚ (제박전의태현문(祭朴全義台賢文)‚ 제박랑흔문(祭朴郞昕文)‚ 제김공망문(祭金公望文)‚ 제금군회문(祭琴君會文). |
[祭權太初文]무술(戊戌) 제권태초문 권태초의 영위에 올리는 글
아아!
내가 일찍이 생각하기를,
권태초(權太初)의 선세(先世)에 대대로 덕망과 학문이 있으면서 장수(長壽)하고 복을 누리지 못하였는데,
사부공(師傅公)이 또한 더 심한 경우였으므로 하늘이 장차 그 후손에게 크게 펴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고 여겼었다.
그러다가 태초를 보게 되었는데 그의 말하고 행동하는 즈음과 마음가짐과 일을 처리하는 실제를 살펴보니,
과연 태초가 사부공의 후손으로서의 구실을 잘 할 것으로 알았으며 일찍이 태초가 하늘이 펴이도록 할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일찍이 그가 힘쓴 바도 오직 학업(學業)을 닦고 덕행(德行)을 힘쓰는 것 뿐이였다.
아아!
태초의 사람 됨됨이와 사부공의 후손으로서 하늘의 펴주려는 도움을 받아 자신에게 있는 덕행을 닦았는데,
그가 또 가난하게 살다가 일찍 죽게 한 것이 어떻게 자연의 이치라고 하겠는가?
그가 한창 병이들어 있을 적에 나도 역시 어버이 곁에서 약 시중을 드느라고 한번 가서 문병(問病)도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병 증세를 보고서 전하는 자가 비록 더러는 말하기를,
틀림없이 구료(救療)하지 못할 것이다. 고 하였지만, 나는 그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또 꿈에서나 또 시초점[서(筮)]을 쳐보면서 기쁜 소식 듣기를 고대하였으니 그것은 하늘과 이치를 믿었기 때문이다.
아아!
내가 17일에 길을 나섰던 것은 병중(病中)에 있는 태초를 위로하려는 것이였지 태초의 죽음을 애도하며 통곡하려는
계획은 아니였다.
그런데 도중(途中)에서의 흉한 소문이 마침내 빈 말이 아니였으니 검은 널[현구(玄柩)]은 이미 꾸며졌고,
붉은 명정(銘旌)도 세워졌다.
음성과 모습은 적막(寂寞)하기만 하고 만나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하늘은 푸르기만 하고 이치는 어둡기만 하니 통곡한들 어쩌겠는가?
아아!
떠돌아 다니며 혼자 고생 하였으니 그대의 부모님 의탁할 데가 없겠고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슬픔에 젖어 있는
그대의 합부인(閤夫人)이 애처로운데 세 살난 어린 것이 지금도 아버지를 부르기를 그치지 않으니,
태초는 모든것이 끝이 났지만 태초 집안의 차마 볼 수 없는 정경이 이와 같으니 이것이 내가 태초를 위해서
창자와 심장이 꺾이고 찢어지는 듯한 감정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아!
날과 달이 물 흐르듯이 지나가 어느 덧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 따스한 옥같은 사람이 장차 땅 속으로 묻히게 되었기에,
한 잔의 술을 올리니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되겠구료,
태초여!
태초여!
그 사실을 알기나 하는가?
아아!
애닲도다.
原文(원문) 祭宋正郞文 (제송정랑문) 一源分身。聯甲生年。自野而朝。終始交全。忠信相期。往來憧憧。送我燕都。詩酒盤松。我歸自西。公疾已南。 일원분신。련갑생년。자야이조。종시교전。충신상기。왕래동동。송아연도。시주반송。아귀자서。공질이남。 思之奈何。遠莫能探。庶幾有喜。云胡不幸。呑聲一別。已矣其永。適宰于玆。慟悼冞切。匍匐伊晩。匪情之薄。 사지내하。원막능탐。서기유희。운호불행。탄성일별。이의기영。적재우자。통도미절。포복이만。비정지박。 不腆爰奠。所鑑者誠。嗚呼哀哉。夫子之靈。半世郞潛。始衰則亡。嗚呼痛哉。夫子之喪。主殯無孤。號天有孀。 불전원전。소감자성。오호애재。부자지령。반세랑잠。시쇠칙망。오호통재。부자지상。주빈무고。호천유상。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宋正郞文] 제송정랑문 송정랑의 영상에 올리는 글
같은 근원에서 갈라진 몸으로 동갑내기로 태어났도다.
초야에서부터 조정으로 진출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교유가 온전하여 충성과 신의를 서로 기약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왕래하였지 북경으로 떠나는 나를 전송하면서
반송정(盤松亭)에서 시(詩)를 짓고 술을 권하였도다.
내가 북경에서 돌아와 보니 공(公)은 병이나서 이미 고향으로 내려갔었도다.
사모한들 어쩌겠는가?
길이 멀어 찾아갈 수 없는 처지임을,
기쁜 소식 들리기만 바라고 있는데 어찌 불행한 소문이 알려지는가?
소리를 삼키며 전송하던 한 차례의 작별이 영원한 이별로 끝이 나겠도다.
마침 이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하게 되였으니 슬픈 마음 더욱 간절하도다.
기어서라도 왔어야 할 걸 이렇게 늦었으니 인정이 얕아서가 아니겠는가?
변변찬은 제물을 올리오니 살펴봐 줘야 할 것은 정성이라오.
아아!
애달프도다.
부자(夫子)의 영혼이시여!
반세(半世:15년) 동안 낭잠(郎潛)으로 있다가,
처음으로 쇠약해지자 곧 세상을 떠났도다.
아아!
마음이 아픔니다.
부자(夫子)의 상사(상사) 여!
빈소(殯所)를 주장할 아글은 없고 하늘에 울부짖는 청상(靑孀) 만 있도다.
[반송정(盤松亭:서울 모화관(慕華館) 북쪽에 있던 정자 이름.]
[낭잠(郎潛:낭관(郎官)으로 늙거나 오래도록 승진하지 못하고 영전(榮轉)하지 못함을 말함.]
原文(원문) 祭南丈好禮文 (제남장호례문) 有所不爲。公介吾欽。尙可有爲。奈終於沉。八十鄕閭。一畒虛老。雅度貞襟。書史爲伍。語援古昔。講喜探硏。 유소불위。공개오흠。상가유위。내종어침。팔십향려。일묘허로。아도정금。서사위오。어원고석。강희탐연。 作善惟日。降監者天。漑育庭蘭。榮發何遅。有孫伊糓。君子之貽。余昔追從。有同一家。歿不殮殯。坐滯縣衙。 작선유일。강감자천。개육정란。영발하지。유손이곡。군자지이。여석추종。유동일가。몰불렴빈。좌체현아。 旣葬而期。初又其再。尙闕匍匐。素分安在。薄具今奠。聊伸宿赤。幽宜燭明。庶我顧格。 기장이기。초우기재。상궐포복。소분안재。박구금전。료신숙적。유의촉명。서아고격。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南丈好禮文] 남장호례문 남장 호례의 영위에 올리는 글
벼슬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공(公)의 지조는 제가 흠모하는 바이지만,
할 수 있는데도 어찌하여 침묵을 지키겠습니까?
팔십 년 동안 시골에서 한결같이 전원에서 세월을 보내셨급니다.
아담하신 성격과 꼿꼿한 지조로 서책[서사(書史)]을 반려로 삼아 말씀할 때는
옛날의일을 인용하며 즐겁게 탐구하고 연마하며 강론하셨습니다.
날마다 선행(善行)을 일삼으셨으니 하늘이 내려다 보고 그것을 알았습니다.
슬하의 자제들 잘 양육하였는데 광영(光榮)의 발로가 어찌 그리도 더딤니까?
손자가 저리도 훌륭하니 군자가 물려준 좋은 계책의 덕인 듯 합니다.
제가 옛날에 공을 따르기를 마치 한 집안의 어른처럼 하였사온데,
돌아가셨을 때에 빈소를 찾아가지 못하였음은 지방관의 임무를 맡았었기 때문에서였습니다.
이미 장례를 치른지 한 해가 지나고 소상(小祥)이 지나고 또 대상(大祥)이 되였습니다.
지금까지 기어서라도 가지 못하였으니 평소의 정분이 어디에 있다고 하겠습니까?
변변찬은 제물을 차려 이 제사 오리며 애오라지 해묵은 정성을 바치오니,
저승에서도 의당 촛불을 밝힌 것처럼 환히 아실 터이니,
저를 돌아다 보며 오시기를 바랍니다.
原文(원문) 祭仙巖李丈華文 (제선암이장화문) 端以爲容。剛以爲尙。人或隘之。豈知其量。志固厭煩。行不欲苟。世多稱拙。匪觀其守。詞無不達。才亦超夷。 단이위용。강이위상。인혹애지。기지기량。지고염번。행불욕구。세다칭졸。비관기수。사무불달。재역초이。 累擧善屈。何命太奇。臨亂倡義。多士爲兵。將於其陣。倚望非輕。學宮之長。以其儒老。鄕之有司。見知於府。 루거선굴。하명태기。임란창의。다사위병。장어기진。의망비경。학궁지장。이기유로。향지유사。견지어부。 其如有用。必有所爲。書釰邱園。八十斯須。有兒非嫡。一念攸關。仲逝先伯。白首恫癏。得酒斯飮。逢人且謔。 기여유용。필유소위。서일구원。팔십사수。유아비적。일념유관。중서선백。백수통환。득주사음。봉인차학。 謂我少友。愛若骨肉。憧憧往來。四十年餘。洛行春殷。壺榼送余。八月還鄕。亦旣幽明。臨襄一奠。已矣呑聲。 위아소우。애약골육。동동왕래。사십년여。락행춘은。호합송여。팔월환향。역기유명。임양일전。이의탄성。 其庶顧歆。不昧惟靈。 기서고흠。불매유령。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仙巖李丈華文] 제선암이장화문 선암 이 어른 화의 영위에 올리는 글
단정한 모습으로 굳셈을 숭상하였기에,
사람들이 간혹 융통성이 없다고들 하였지만 어찌 그분의 아량을 알았으리요?
의지가 견고하여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였고 행동은 구차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옹졸하다고 일컫는 이가 많았지만 그의 지조 지킴을 관찰하지 않아서 입니다.
문장은 통달하지 않음이 없으셨고 재능 또한 뛰어나셨는데 여러 차례 과거에서 실패하셨으니,
무슨 운명이 그렇게도 기구하셨던가?
난리를 당하여 의병을 일으키니 많은 인사들이 군사가 되였도다.
그 진(陳)에서 장수가 되셨으니 조정의 의지와 기대가 가볍지 않았도다.
학궁(學宮)의 책임자가 된 것은 노숙한 학자였기 때문에서이며,
고을의 유사(有司)가 조정의 인정을 받은 격이였으니 그 등용이 되는데는 반드시 한 일이 있어야 하도다.
문무[서검(書劍)]의 재능을 갖추고 초야에 은거하며 팔십 년을 잠깐 동안 처럼 보냈도다.
적출(嫡出)의 가식이 없었음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염려하셨으며 중씨(中氏)가 백씨(伯氏)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늙으막에 상심하며 괴로워 하면서 술을 얻게 되면 마시게 되고 사람을 만나면 또 농담도 하셨도다.
나를 젊은 벗이라고 이르면서 아껴주시기를 친족처럼 하셨고 애틋한 마음으로 왕래하시기를 사십여 년 동안 하셨으며,
지난 봄에 한양(漢陽)에 가셔서는 나에게 호합(壺榼:물을 저장하는 그릇)을 보내 주셨고 8월에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셨도다.
장례가 다가와 한 잔 술 올리오며 모든 것이 끝이 났기에 훌쩍일 뿐이오니,
바라옵건데 밝으신 영혼이시여 돌아다보며 흠향해 주소서.
原文(원문) 祭朴全義台賢文 (제박전의태현문) 僕與君纔議親也。姜晉興甞稱君曰是朴氏有司也。所謂有司。擧一門憂喜大小事而以身擔當經營而布置之也。 복여군재의친야。강진흥상칭군왈시박씨유사야。소위유사。거일문우희대소사이이신담당경영이포치지야。 非慈詳惻怛者不爲也。直仁者之用心也。及余已結親。所睦於一門者。移於親家。 비자상측달자불위야。직인자지용심야。급여이결친。소목어일문자。이어친가。 則若僕之孤露踽踽家無強近之親者。所倚於君者宜如何。而其亡也其慟之也又如何歟。僕一生少親執。 칙약복지고로우우가무강근지친자。소의어군자의여하。이기망야기통지야우여하여。복일생소친집。 今年五十有七。猶未至稀有之年。而友朋中與僕親者。皆先淪落焉。君年少於吾又七年。而又無疾而康寧焉。 금년오십유칠。유미지희유지년。이우붕중여복친자。개선륜락언。군년소어오우칠년。이우무질이강녕언。 則固非當死之年。而亡又如是其急也。則君之亡。抑無乃要使我獨行而益無所伴耶。僕之懷其無窮也。限迹城闉。 칙고비당사지년。이망우여시기급야。칙군지망。억무내요사아독행이익무소반야。복지회기무궁야。한적성인。 殯未哭而奠不親。其何以洩此哀於幽明也。謹以丹荔庶羞。遣男代薦。庶紆一歆。百歲心香。 빈미곡이전불친。기하이설차애어유명야。근이단려서수。견남대천。서우일흠。백세심향。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朴全義台賢文] 제박전의태현문 박전의 태현의 영위에 올리는 글
복(僕:자신의 겸칭)이 군(君)과는 겨우 혼사(婚事)를 논의한 사이였소.
강진흥(姜晉興)이 일찍이 군을 칭찬하기를 이 시림은 박씨(朴氏)의 유사(有司) 입니다.
하였었지.
이른바 유사(有司)라는 것은,
온 문중(門中)의 걱정스럽고 즐거운 작고 큰 일을 모두 자신이 떠맡아 경영(經營)하며 처리하는 사람이니,
자상(仔詳)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있는 자가 아니면 그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바로 어진 사람의 마음 씀씀이인 것이다.
복(僕)과 이미 혼인을 맺음이 이르러서는 한 문중에서 화목하던 것을 혼인한 집안에도 옮겨 주었으니,
나처럼 뢰롭고 고독하며 집안에 가까운 친첮이 없는 처지의 사람으로서 군에게 의지한 것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그 슬픔 또한 어떠하겠는가?
복이 일생 동안 일을 몸소 떠맡아 한 때가 적었으며 올해 나이 57세로 오히려 드물게 있는 나이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친구 가운데 복과 친한 자가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오.
군은 나이가 복보다 일곱 살이나 적었고 또 병(病)도 없이 강녕(康寧)한 상태여서 진실로 죽을 나이가 아닌데도 죽기를,
또한 이와 같이 급하게 하고 말았으니 군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혼자 다니게 하여,
짝이 될 사람을 아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복(僕)의 회포는 끝이 없도다.
관직에 매인 몸이라서 빈소(殯所)에 가서 울[곡(哭)]지도 못하고,
치전(致奠)도 직접하지 못하니,
어떻게 이승과 저승 사이의 그 슬픔을 표현 하겠는가?
삼가 여러 가지 향내나는 제물을 가지고 아들을 보내어 대신 올리게 하니 바라건데 한결같이 굽어 흠향 하시게.
일생동안 경건한 정성을 고하는 바이네.
[치전(致奠:죽은 사람을 위하여 친족(親族)이나 인척(姻戚) 또는 친구가 슬픔을 표하는 제식(祭式).]
原文(원문) 祭朴郞昕文 (제박랑흔문) 嗚呼痛哉。天何嗇年。獨於吾郞。石火人世。二十三霜。嗚呼痛哉。天何禍人。偏我季女。旣禮厥子。繼夭夫壻。 오호통재。천하색년。독어오랑。석화인세。이십삼상。오호통재。천하화인。편아계녀。기례궐자。계요부서。 嗚呼痛哉。親迎之辰。非不遴吉。雨雪其霏。中心有觖。嗚呼痛哉。可愛其質。庶乎其學。筆畫強勁。有裕精力。 오호통재。친영지진。비불린길。우설기비。중심유결。오호통재。가애기질。서호기학。필화강경。유유정력。 嗚呼痛哉。一卧三年。斯人斯疾。洛下聞訃。驚腸欲裂。嗚呼痛哉。父在于上。妻在于前。俯仰有樂。何遽而捐。 오호통재。일와삼년。사인사질。락하문부。경장욕렬。오호통재。부재우상。처재우전。부앙유악。하거이연。 嗚呼痛哉。匍匐伊晩。職事之縻。大聲余哭。匪只爲死。嗚呼痛哉。弱孀抱女。靈其忘耶。載顧載育。惟我當之。 오호통재。포복이만。직사지미。대성여곡。비지위사。오호통재。약상포녀。령기망야。재고재육。유아당지。 嗚呼痛哉。富年橫折。神應不昧。式歆庶幾。老我一酹。 오호통재。부년횡절。신응불매。식흠서기。로아일뢰。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朴郞昕文] 제박랑흔문 박서랑 흔의 영위에 오리는 글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하늘이 어찌 수명(壽命)을 아끼기를 유독 우리 사위 에게만 하는 가?
부싯돌 불꽃처럼 빨리 지나가는 인간 세상 스물 세 해 밖에 되지 않았네.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하늘이 어찌 사람에게 화(禍)를 내림에 나의 막내 딸에게만 치우치게 하시는가?
이미 그의 아글을 빼앗아 가고 잇달아 그이 지아비도 데려가는구려,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친영(親迎)하는 날에 탐을 내며 길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었으며 세상이 어수선할 때에도 마음속에 희망이 있었더네,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그의 자질은 아낄 만하고 그의 학문은 기대할 만하였지 글씨 쓰는 힘도 굳세였고 정력(精力)도 여유가 있었도다.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한번 병이 들어 3년 동안 누웠으니 이 사람에게 이런 병이 웬말인가?
한양에서 부음(訃音)을 듣고 놀라워 가슴이 찢어지려고 하였네,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위로는 어버이가 게시고 앞에는 아내가 있으니 처다보나 구부려 보아도 즐거움이 있는데,
어떻게 서둘러 버리고 떠나는가?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이렇게 늦게와서 회포를 늘어놓는 것은 관직에 얽매였기 때문이라네 큰 소리로 우는 나의 울음,
단지 자네의 죽음을 위한 것만은 아닐세,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연약한 청상과부가 딸을 안고 있음을 영혼은 그것을 잊겠는가?
돌보며 양육하는 건 오직 내가 맡아야 할 일일세,
아아!
마음이 아프도다.
한창의 나이에 뜻하지 않게 요절하였으니,
신(神)은 응당 어둡지 않을 터,
늙은 내가 따른 한 잔의 술에 흠향하기 바라네.
[친영(親迎:혼인(婚姻)의 육례(六禮)의 하나. 신랑(新郞)이 신부(新婦) 집에 가서 신부를 맞는 의식(儀式).]
原文(원문) 祭金公望文 (제김공망문) 少小從遊。親同骨肉。居阻百里。晩苦相憶。豈謂吾兄。逝不以年。旌無異稱。寔余痛憐。歿不得殮。葬不得護。 소소종유。친동골육。거조백리。만고상억。기위오형。서불이년。정무이칭。식여통련。몰불득렴。장불득호。 匪薄於送。家有病故。亦旣初期。日月何遄。踽踽人間。我隨無肩。哭奠菲薄。訣于几筵。 비박어송。가유병고。역기초기。일월하천。우우인간。아수무견。곡전비박。결우궤연。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金公望文] 제김공망문 김공 망의 영위에 올리는 글
젊어서부터 교유[종유(從遊)]하여 친근하기가 친족과 같았으며,
백리 밖에 살면서 만년에는 서로 그리워 하였다오.
그런데 어찌 형께서 세상 떠나기를 나이대로 하지 않으시는가?
명정(銘旌)에 특이한 호칭이 없는 것이 바로 내가 슬퍼하고 가련하게 여김이도다.
세상을 떠났을 적 염습(斂襲)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장례 때 에는 호상(護喪)도 못하고서,
변변찬은 부의(賻儀)를 보냈던 것은 집안에 병고(病故)가 있얶기 때문이였소.
이미 소상도 지났으니 세월이 어찌 그리도 빠릅니까?
외로운 인간 세상에 나를 따를 사람 없게 되였소.
통곡하며 변변치 않은 제물 올리면서,
궤연(几筵)에 영결(永訣)을 알립니다.
[궤연(几筵:죽은 사람의 혼백(魂魄)이나 신주(神主)를 모셔 놓은 곳. 영연(靈筵),영상(靈床)]
原文(원문) 祭琴君會文 (제금군회문) 夫何不壽。吾友之仁。天不可必。斯疾斯人。六月九未。靑眼其幸。玉兒數管。須臾吸罄。別後五日。何遽輿歸。부하불수。오우지인。천불가필。사질사인。육월구미。청안기행。옥아수관。수유흡경。별후오일。하거여귀。 勿藥之喜。余苦佇之。翼夕凶聞。驚莫能信。俄得其實。摧我肝腎。哭之宜慟。若喪骨肉。不卽匍匐。匪情之薄。 물약지희。여고저지。익석흉문。경막능신。아득기실。최아간신。곡지의통。약상골육。불즉포복。비정지박。 居諸遄邁。襄期已迫。匹馬松扉。涕淚漣洏。菲薄來奠。百一之知。庶幾顧歆。平生之巵。 거제천매。양기이박。필마송비。체루련이。비박래전。백일지지。서기고흠。평생지치。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
[祭琴君會文] 제금군회문 금군 회의 영위에 올리는 글
도대체 어찌하여 장수(長壽)하지 못하는가?
나의 벗의 어진 마음을 가지고서 반드시 하늘도 할 수가 없구나.
이런 병이 이 사람에게 걸린다는 것을 6월의 구미당(九未堂)에서,
그의 애뜻한 눈빛 다행 스러웠는데 옥아(玉兒)가 피리를 두 어번 불고 난 뒤,
조금 있다가 숨이 진 것과 같도다.
작별한 뒤 5일 만에 어찌 그리도 바쁘게 가마를 타고 저승으로 돌아갔던가?
병이 나았다는 기쁜 소식을 나는 고대하고 있었는데 이튿날 저녁에 흉한 소문이 들리기에,
놀라워 믿을수 없었는데 조금 지나 그것이 사실임을 알고서 나의 오장(五臟)은 꺽여지는 것 같았네.
통곡하는 그 슬픔 친족의 상사(喪事)와 같았지만 즉시 기어서라도 가지 못했음은 인정이 임박해서가 아니라오.
일월이 빨리 지나가 소상(小祥)이 이내 닥쳐왔도다.
한 필의 말을 타고 소나무로 된 사립문에 들어서니 눈물이 줄줄 흘러 내리도다.
변변찬은 제물을 가지고 와서 올리는 것은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친분 때문이니,
바라건대 평생토록 친한 사람이 올리는 술잔에 돌아보고 흠향하시게나.
<<13세손 김태동 옮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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