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67년 로마는 앞서 나온 모든 관직을 평민들에게 개방한 리키니우스
법과 기원전 287년 평민집회 (트리부스민회) 에서 의결된 사항은 그대로 국법
으로 삼는다는 호르텐시우스법을 통해 귀족과 평민의 갈등을 해소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든 고도화가 되면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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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고착되어갑니다. 관직은 평민에게 개방되었다고 하나 어릴 때 교육문제
의 차이로 원로원을 경험한 28개 유력가문의 귀족들이 이를 대부분 차지했고
기득권에게 유리한 세금감면, 대부 업, 군납, 공공사업 수주, 토지독점 등을
통해 더더욱 기득권들은 잉여 부를 계속 쌓아갔고 결국 중산층이 무너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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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하층민이 많아져 사회가 불안해졌어요. 값싼 노예 노동력과 자본을
통해 로마의 경제가 효율적이 되고 규모가 커졌다고 꼭 로마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었어요. 현대사회에서 IT, AI 등의 첨단기술이 발달
하여 생산성이 높아지고 경제 규모가 커진다고 그 사회가 꼭 공정하고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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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게 아닌 것과 비슷합니다. 원로원의원은 법적으로 상업에 종사하지 못
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이에 로마 원로원 귀족들은 일반 자작농과 달리 징집
될 위험성이 없는 값싼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 농장경영을 하여 부를 쌓아가요.
이에 자작농들은 붕괴되어 갔고 이는 로마의 군대 입대자의 감소와 군대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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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락으로 나타나 큰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그라쿠스 형제로 유명
한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나타납니다. 과거 기득권층이
편입되는 유혹으로 유명무실했던 호민관이었지만 그라쿠스형제는 적극적으로
호민관 권리를 행사하여 차례로 개혁을 위한 정책들을 추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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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유재산을 건드릴 수 없으니 국유지 임차권을 제한하는 농지개혁법안을
내놓아요. 부유층의 부정 임차된 국유지를 환수하여 무산자들에게 재분배하고
재기 자금까지 국고에서 보조하자는 정책이었어요. 무산자와 실업자의 증가가
사회 불안 원인이라 것에 동의하는 자작농이나 무산자, 또 로마 거주하는 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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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등에 종사하는 다수의 평민의 동의를 얻어 농지법 추진합니다. 처음엔 대의
명분에서 밀리는 기득권측은 대놓고 반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밖에 싼값에
빈민층에게 밀 공급하는 곡물법, 장비와 물자를 국가에서 부담하는 병역법,
실업자 대책으로 공공사업을 진흥하는 공공사업법, 실업자나 퇴역군인 이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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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식민시건설, 원로원의원들만 독점한 배심원들을 신흥 부유층에게 개방한
배심원개혁법, 병역의무가 없는 속 주민에게 직접세를 징수하는 속주 법,
로마 동맹 시, 라틴시민권, 로마시민권 개혁법 등 다양한 개혁법안을 내놓게
됩니다. 현대사회에서도 그렇지만 구성원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개혁법안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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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반대를 할 수 없었던 로마의 기존 부유층, 원로원, 귀족, 엘리트, 신흥
부자 등의 기득권층은 프로파간다나 선동을 통해 반대세력을 모아 결국
그라쿠스형제를 차례로 제거하고 살해합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반
대중들은 정치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일들도 개인의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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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러진 일이라고 쉽게 믿어요. 심지어 많은 중산층의 평민들은 그라쿠스의
평민들을 위한 정책에는 찬성하나 그라쿠스의 호민관 연임을 권력의 사유화,
권력집중,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동조하게 됩니다. 또 보수적인 이들에게
로마시민권의 확대는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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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요즘 한국사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이에 그라쿠스 형제는 병역기간
단축 등 어찌 보면 포퓰리즘으로 보이는 평민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가로
추진하여 재선을 노리다 결국 반대편의 무력행사와 테러로 기원전 133년, 121
년 차례로 살해당하고 말아요. 특히 초법적인 원로원 최종권고- 계엄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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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언도의 첫 희생양이 되고 말아요.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실패와 살해는 결국
귀족과 평민의 돌이킬 수 없는 대립으로 몰고 갑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죽은 기원전 133년부터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를 평정할 때인 기원전 31년까지
100여 년 간 로마는 귀족과 평민의 격렬한 내전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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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파-원로원파의 권력투쟁, 로마시민권 확대에 따른 동맹시전쟁, 노예반란
등등 혼란을 겪어요. 평민출신 마리우스와 귀족출신 술라의 시대를 거쳐 로마
는 계속 정권이 바뀌었어요. 평민출신 마리우스 먼저 그라쿠스와 다르게 무산
자, 몰락자작농의 실업대책으로 군대를 이용합니다. 즉 징집제가 아닌 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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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전환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기존에 재산에 따른 대열의
차이를 없애고 전부 단일 병과로 통합하고 심지어 로마시민과 동맹시시민의
차별도 없애 일체감을 형성시켰으며 무엇보다도 총사령관이 장교를 직접 임명
하여 총사령관에게 권력을 집중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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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로마 군단은 사병화가 급속히 진행되지요. 이런 로마군단의 사병 화는
마리우스, 술라,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등의 여러 번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는
원인도 되기도 해요. 마리우스 이후 술라의 원로원체제로 반동,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그리고 카이사르로 이어지는 혼란을 겪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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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는 복은 화가 될 수 있다"
"성급함은 악이다"
"서투른 선은 정교한 악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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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가 뜨거운 가슴으로 시작해서 차가운 머리로 끝을 내야 한다고 봅니다.
정치인의 역량이란 결국 '옳은 일의 추구'보다 '옳은 일의 성취'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미숙하여 자신들의 뜻만 내세우다가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지지자들도
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사기'에서 숙손통도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인다"라고 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굽은 길을 성급하게 달려버렸습니다.
2023.2.18.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