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어서 로타리 운동의 씨가 1927년 11월 10일 경성로타리클럽(Rotary Club Keijo) 이 국제로타리에 가입함으로써 심어졌다. 그 후 1935년 5월 15일에 부산로타리클럽이, 1937년7월3일에 평양로타리클럽이, 또 1938년 6월 9일에 대구로타리클럽이 각각 국제로타리 가입승인을 얻어 활동을 벌이다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해산되었고, 다만 서울에서는 수요회 라는 이름으로 오찬회 형식의 모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8.15광복 이전의 로타리클럽은 한국인 회원이 매우 적고, 주로 일본인들에 의하여 운영되었으니 순전히 우리의 로타리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우리나라가 해방되자 로타리운동이 다시 싹트기 시작하여 1949년 3월29일 경성로타리 클럽은 서울로타리클럽으로서 다시 발족하였고, 1952년 1월3일에 부산로타리클럽이, 1954년 6월28일에 대구로타리클럽이 다시 재건되었으며, 1956년 12월17일에 한양로타리클럽이,1957년 11월14일에 전주로타리클럽이 각각 국제로타리의 가입승인을 얻음으로써 우리나라의 로타리 운동은 우리나라 사람에 의하여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대전, 남부산, 광주 로타리클럽에 이어 1961년 1월24일 청주로타리클럽이 11번째로 국제로타리에 가입이 승인되고,국제로타리 이사회에서는 한국에 독립된 지구의 설정을 승인하는 결의를 하였다. 1961년 7월1일부터 발효하게 된 이 결의에 따라 지구번호를 국제로타리 375지구(R.I. District 375 )명칭을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으로, 우리들이 갈망했던 지구가 드디어 한국에 탄생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내의 로타리운동은 해를 거듭하면서 발전을 거듭하여 클럽 수와 회원수가 늘어나 1969년 7월1일에는 375지구와 376지구의 두 가지로,1971년 7월1일에는 다시 377지구의 분구로 3개 지구가 되었다. 그리고 1977년 7월1일 이후 국제로타리 375지구,376지구,377지구는 각각 365지구,366지구(경남.북)와 367(전남,북)지구로 개칭되었으며, 1978년 7월1일 368지구(충청 남,북)가 분구 하였으며, 1982년 7월1일에는 371지구(전남)가 분구 하였다. 1987년 7월1일에는 372지구(경남),373(강원도),375지구(한강이남의 경기도)가 분구하였고, 1989년7월1일 374지구(충북)가 분구하여 한국은 11개 지구를 가지게 되었다. 1989년 5월21에서 24일까지 서울에서 80주년 로타리 지구대회가 열려 86개국에서 38,878명이 참가하여 1978년 일본 동경대회의 39,834명에 이어 로타리 역사상 두 번째로 큰 대회가 되어 한국로타리의 저력을 과시하였다. 로타리가 계속하여 확대되는 추세에 발맞추어 RI이사회에 의하여 네 자리 숫자의 지구번호제가 채택됨에 따라 1991년 7월1일부터 기존의 3자리에 덧붙인 4자리로 변경되었다.(예 364R3640) 1994년 7월1일부터 서울특별시의 한강이남이 3650지구에서 분구하여 3640지구가 되어 한국에는 12개 지구가 되었다. 1995년 7월1일부터는 3610지구가 3710지구로부터, 3620지구가 3680으로부터,3630지구가 3700지구에서 각각 분구하여 1996년7월1일에는 3600지구가 3690 3750지구로부터 분구하고 1997년 7월1일에는 3590지구가 3720지구로부터 분구되어 한국은 17개 지구를 갖게 되었다. 또 1995년 규정심의회에서 전세계 Zone 재편성이 있어 한국은 세계35개 Zone가운데 Zone 9가 되어 단독으로 존을 가지고 4년마다 2년 임기의 한국로타리 이사를 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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