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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시의원 “발달장애인이 세뇌당해 탈시설 편지 써” 주장
편지 쓴 발달장애인 A씨 “문성호 발언 모두 거짓, 내게 사과하라”
피플퍼스트 “도가니 같은 사태 벌어져야만 문제? 탈시설은 권리”
24일 오후 4시, 서울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 A씨와 함께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기자회견실에서 문성호 서울시의원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김소영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앞두고 찬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문성호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발달장애인이 세뇌를 당해 탈시설을 옹호하는 편지를 써서 시의원들에게 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발달장애인 A씨로부터 전달받은 편지에 대해 당사자와 면담하고 관련 내용을 조사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발달장애인 당사자 A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문 의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박하고 나섰다.
24일 오후 4시, 서울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 A씨와 함께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기자회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 시의원에게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문성호 시의원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옹호 편지, 세뇌당해 쓴 것” 주장
지난 4월 24일, 서울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하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담은 편지를 서울시의원들에게 전했다.
당시 시설에 거주하던 A씨 역시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 “7살 때 시설에 맡겨져 26살까지 살았다. 시설에 살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것도 할 수 없다. 시설 밖으로 나가 꼭 자립해 시설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보고 싶다”면서 “시설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곳”이라고 썼다.
지난 5월 3일, 문성호 시의원이 서울시의회 제323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탈시설지원조례와 관련해 A씨가 쓴 편지를 언급하고 있다. 사진 서울시의회
이 편지는 문성호 시의원에게도 전달됐다. 지난 5월 3일, 문 시의원은 서울시의회 제323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탈시설지원조례와 관련해 해당 편지를 언급하며, “발달장애인 편지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어 편지를 쓴 당사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이 편지 내용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문 시의원은 “해당 장애인은 현재 시설에 거주하지 않고, 자립 체험으로 외부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왜 해당 장애인은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주장하고 자유가 박탈된 것처럼 비난적인 묘사를 했을까”라며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어 “A씨는 청소년기에는 시설에서 원하는 교육을 지원받고 동계스포츠까지 배웠다. 피플퍼스트 오사카 대회에 참여하는 등 원하는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과 응원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문 시의원은 “발달장애인의 보편적 인지 특성을 고려했을 때 A씨는 주변에서 세뇌에 가까운 편파적인 정보만 반복해 제공받았다”면서 “A씨는 얼마든지 현혹되어 시키는 대로 편지를 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률적이고 강압적인 탈시설이야말로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어야 한다”면서 “서울시 내 모든 장애인 돌봄 시설을 ‘광주 인화학교’로 매도하지 말라. 또한 모든 교사와 돌봄종사자를 장애인 인권을 유린하는 쓰레기로 매도하지 말라”고 했다. 광주 인화학교는 장애인 학대 등 끔찍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대표적인 장애인거주시설로 영화 ‘도가니’의 모티브가 된 곳이다.
- 편지 쓴 발달장애인 A씨 “문성호 발언 모두 거짓, 내게 사과하라”
이날 기자회견에서 편지를 쓴 발달장애인 A씨는 “문 시의원의 발언은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A씨는 “공격받을 것이 두려워 얼굴과 이름을 밝히지 않는 점에 대해 양해 부탁드린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실제 서울피플퍼스트는 “문 시의원이 서울시를 통해 A씨가 거주하던 시설에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문제를 제기해 A씨는 내부고발자로 원망을 받으며 쫓기듯 자립해야 했다”고 전했다.
A씨에 따르면, 문 시의원의 주장과 달리 면담이 아닌 ‘전화 인터뷰’로 이야기는 진행됐으며, A씨는 시설이 운영하는 자립생활체험홈(공동생활가정)에 거주하고 있었다. 체험홈은 ‘소규모 거주시설’로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거주시설로 분류된다.
문성호 시의원이 언급한 편지를 쓴 A씨가 가면을 쓴 채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이어 A씨는 “문 시의원에게 동계 스포츠를 배웠다는 것과 피플퍼스트 대회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시의원이 행한 사생활 침해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A씨는 “나는 세뇌당해서 편지를 쓴 것이 아니다.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면 ‘나와 내 동료들이 시설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편지를 쓴 것”이라고 밝히며 “문 시의원은 내 안전을 생각하지 않고 권력을 함부로 이용한 것에 대해 내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피플퍼스트 “도가니 같은 사태 벌어져야만 문제인가? 탈시설은 권리”
이날 발달장애인들은 “‘광주 인화학교 사건’과 같은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시설 수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가”라면서 ‘문제 시설’이 아닌 ‘시설의 문제에 대해 짚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시설 당사자인 박경인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자립은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다. 그런데 자립하고 싶다는 말에 ‘도가니 사건(광주 인화학교 사건)’을 왜 이야기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그 정도 인권 침해가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인가. 꼭 폭력이 있어야만 인권 침해인가”라고 되물었다.
서울피플퍼스트 또한 기자회견문에서 “시설에서 학대당하고 굶지 않으면 괜찮은 삶인가”라면서 “우리는 ‘시설 인권침해’를 말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말한 것이고, 시설은 평범한 집이 될 수 없는 곳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기백 서울피플퍼스트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 위원장 옆에서 한 활동가가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고 세뇌당했냐?”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김기백 서울피플퍼스트 위원장은 “문 시의원은 발달장애인들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조력자들을 발달장애인을 현혹해서 가짜뉴스를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었다”면서 “발달장애에 대한 서울시의원의 인식이 어떻게 이렇게 처참할 수 있는가. 발달장애인도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존재”라고 분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의원들도 참석해 문 시의원을 규탄했다. 박유진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문 시의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왜곡했다”면서 “발달장애인들의 주장이 온전히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지지를 표했다.
한편, ‘서울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은 25일 서울시의회 본회의 심의만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