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나의 삶이 되다 [4]
남진원
[4] 1975년, 막걸리 한잔에 담던 창작의 열기
1975년 최도규 형의 교실에서 자주 만나서 문학에 대한이야기 꽃을 피웠다. 드디어 도규 형이 사고를 쳤다. 『새교실 』의 6월호에 ‘아가’ 작품이 추천되었던 것이다.
퇴근 무렵이 되어 나는 즐거워서 소리쳤다.
“형님, 갑시다!”
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학부형이 하는 학교 뒤 구멍가게였다. 』
“형님, 축하드려요. 한 잔 받으세요!”
막걸리를 잔에 가득히 따라 드렸다. 나는 추천이 된 도규 형과 축하주를 나누며 시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창문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딱 술 먹기 좋은 시간이었다. 나는 작품을 보내도 심사평에 한 줄도 거론되지 않았지만 도규 형이 추천되어서 기쁘기만 했다. 추천받은 도규 형의 모습에서 나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가
최 도 규
태양은
목이 말라
옹달샌 깊숙이
내려앉은 안낮에
잠은
아가를 데리고
맴을 돕니다
고 작은 손
쫘악 펴
만세 부르다
내릴 생각 잊은 채
그냥 그렇게 돕니다
송송
땀방울
꿈방울도 익을 때
얼굴 가득
행복한 웃음으로
피고
엄마의 일손도
아가 따라 돕니다
( 새교실 1975. 6. )
이 작품은 내 마음에 남는 가장 아름다운 시로 기억하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여름 열기와 그 열기를 식히는 묘사가 독창적일 뿐 아니라 서정미의 우아함을 나타내는 데 백미라 볼 수 있다.
깊은 산속의 작은 옹달샘에 태양이 연결 고리가 되어 그려낸 표현, 목이 마른 태양이 옹달샘 깊숙이 내려앉는다는 건 읽는 이에게도 시원함과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한낮에 잠이 든느 아가의 모습은 얼마나 귀여운가? 그 모습도 ‘잠이 아가를 데리고 맴을 돈다’고 하였다. 더위 속 얼굴에 송송 돋는 땀방울에 대한 묘사도 얼마나 멋진가.
‘ 송송
땀방울
꿈방울로 익을 때
엄마의 일손도
아가따라 돕니다’
잠이 든 아가의 모습을 행복하게 보며 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평화롭기 그지 없다.
1975년 10월에는 ‘목동’이란 시가 『교육자료』10월호에 추천이 되었다.
이날도 우리는 학교 뒤의 구멍가에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축하주를 나누었다. 좋은 시라서 여기에 꼭 다시 남기고 싶었기에 옮겨 본다.
목 동
최도규
목동의 팔베개에
졸음이 와 앉아
산에 걸린 하늘을
눈속에 가둔다
싸리울 칡넝쿨
한 입 가득 돌리며
황소가
선허리를 먹어 없애면
겁먹은 갈잎
바르르 떨고
산을 타던 개미들도‘ 방향이 없다
도룽도룽
익어가는 숨소리
바람이 몰고 가고
딸랑딸랑
소방울
땀방울로 익어
목동의 이마엔
반짝이는
여름들.
( 1975. 10. 『교육자료』)
초등학교에 다닐 땐 마을에 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좀 살만한 집이면 집집마다 소 한 마리씩은 키웠던 것이다.
여름날 아침이면 소를 몰고 나가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하루 종일 소를 먹이기 위해서였다. 마을 논밭을 지나 흐르는 개울을 건너면 문래산이 기다린 듯 우람한 모습으로 서 있다. 아이들은 소를 몰아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산에다 소를 그냥 풀어놓았다. 소는 하루종일 산을 휘돌아가며 풀을 뜯어 먹었다. 소를 산에 풀어놓은 뒤에는 개울에서 멱을 감다가 나무 그늘 밑에서 팔베개를 하고는 낮잠을 자곤 하였다. 자다가 눈을 떠 보면 황소가 산허리 쯤에서 계속 보이면 안심하고 또 잠을 청하곤 했다. 해가 산을 넘어갈 무렵이면 소를 몰아 집으로 들어왔다. 소의 배 옆구리가 풀을 뜯어 먹어 퉁퉁하였다. 최도규 형의 ’목동‘을 읽으면 늘 고향의 앞산에 풀을 뜯던 황소와 목동이 생각났다. 황소와 산이 잘 어울리는 한폭의 산수화였다. 장광 옆의 키큰 미루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즐기는 목동의 모습도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였던 것이다.
시를 쓰면서부터 고향은 더욱 가까운 형제처럼 내 마음속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최도규 형의 시 ’목동‘을 읽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한 폭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한국화 한 폭을 선물해주고 있었다.
최도규 형의 작품 <아가>와 <목동>은 모두 ’잠‘을 시의 중심 소재로 하였다. <아가>에서는 아가의 ’잠‘, <목동>에서는 목동의 ’잠‘이 전체적인 핵심 분위기이다.
순진 무구성을 가장 최고조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평화스럽게 잠든 아가의 모습이다. <목동> 역시 산에서 황소를 풀어놓고 황소가 산에서 풀을 뜯어 먹는 동안 잠이 드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아가의 ’잠‘이나 목동의 ’잠‘은 모두 ’평화스러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시의 기법은 ’고요함‘이 ’움직임‘ 속에서 일어나는 ’動中靜‘이다.
고요함을 드러내기 위해 감추어진 ’動‘을 미리 꺼내놓은 것이다. ’고요함‘은 평화스러움이요 아름다움이 지극한 상태이다.
’휴식‘은 새로운 힘을 솟아나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시인이 쓴 시는 시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말도 시 속에서 알려준다. 이것이 시가 가진 특별한 특징이다.
시 <아가>에서 옹달샘, 아가의 손, 땀방울, 엄마 등의 소재는 편안함을 느낀다. <목동>에서는 팔베개, 졸음, 싸리울, 칡넝쿨, 황소, 소 방울 등의 시어에서 목가적 분위기도 흐른다. 그렇기에 두 작품 모두 풍기는 이미지가 ’평화로운 휴식‘임을 알 수 있다.
현대문명의 산업화 기술화, 정보화에 따라 사람들의 긴장과 불안은 고조되고 있다. 이렇게 평화로운 자연친화적인 시를 만남으로써 긴장이 해소되고 마음의 치유도 할 수 있는 힘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