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장에는, 하나님에 의해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된 여호수아가 가나안 진격을 준비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1 주의 종 모세가 죽은 뒤에, 주께서, 모세를 보좌하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나의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스라엘 자손 곧 모든 백성과 함께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서,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거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바닥이 닿는 곳은 어디든지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4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 큰 강인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헷 사람의 땅을 지나 서쪽의 지중해까지, 모두 너희의 영토가 될 것이다.
원래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가나안만이 아니라, 유프라테스강, 그리고 지중해까지 이르는 넓은 영토를 주시겠답니다. 이 땅의 경계는 여호수아가 결코 가보지 못했던 곳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때,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에 점령한 곳인데, 여호수아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서가 여호수아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고, 그 직후에 쓰여진 것도 아니며, 훨씬 후대, 적어도 다윗과 솔로몬 이후에 쓰여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본문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분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말씀입니다. 5~9절을 보겠습니다.
5 네가 사는 날 동안 아무도 너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6 굳세고 용감하여라. 내가 이 백성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을, 이 백성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사람이 바로 너다.
7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8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9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1982년에 시각장애인 안요한 목사님의 일대기를 그린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을 부정하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시력을 잃은 안요한 목사님이 꿈에 하나님께로부터 이 말씀을 듣고 큰 위로와 용기를 얻고 회심하여 목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해에 저는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반 학생이었습니다. 그 해로부터 4년 전인 1978년에, 저는 학교 내 신앙동아리 겨울수련회에서 저의 하나님을 뜨거운 감동으로 만났습니다. 하지만 근본주의 색체가 너무나 강했던 학내 신앙동아리에서 대학 3~4학년 시절을 근본주의 신앙과 씨름하며 지냈습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저는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서 대학 때 받은 근본주의 신앙의 영향으로 '알보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졸업반이 되었을 때는 기독교에 대한 절망감으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납득이 되지 않는 성경구절을 만나면 만족한 답을 얻을 때까지 관주성경으로 성서 전체를 헤집고 다니면서 관련된 모든 부분을 샅샅이 살펴보곤 했던 저는 그때 그 영화를 본 거의 모든 분들이 큰 은혜를 받았다는 여호수아 1장의 이 말씀도 만났지만 저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의 전후 맥락에 흐르는 무서운 살상과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하시고 이방인에 대해서는 전혀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던 성서의 하나님에 대한 회의로 더 힘들고 외로웠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학대학원 3년 과정을 거의 마치고 졸업을 앞둔 시점까지도 성서의 언어가 기본적으로 고백의 언어라는 것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기에 겪어야 했던 아픔이었습니다.
신학의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성서의 언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신학대학원 졸업반에서조차 배우지 못한 이유는, 이런 신학적 관점이 불행하게도 당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에서는 공개적으로 입에 올릴 수 없는 위험한 신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4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아직도 여전히 성서의 언어를 모두 사실의 언어인 것처럼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왜곡이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인데 말입니다.
10절 이하의 본문에는, 여호수아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의 길로 들어설 것을 명령하면서, 가나안 동쪽 지역을 차지하기로 되어있는 세 지파, 그러니까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쪽 지파에게 전쟁에 함께 참여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