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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으나 감당 못할 고백을 하는 한가인에게 나로선 더 이상 뭐라 할 재간이 없다. 침묵뿐인 교실 분위기에 언어기관들이 엷게 희석되는 느낌과 함께 입술이 바짝 말랐다.그 찰나의 순간, 힘겹게 사태의 흐름을 억류시키려 나는 재차 한가인에게 질문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도플갱어?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너랑 얼굴이 비슷한 사람이겠지, 판박이처럼 완전 똑같이 생긴 사람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겠지?, 하며 웃어넘기면 될 일이지만
거짓말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아도 심장에 다가오는 진지한 한가인의 얼굴에 난 뒷 걸음질 쳤다.
"아, 아닌가?"
극도의 초조함과 불안감에 띄어본 말이지만, 감히 누가 누굴 바보로 아나, 성적으로 월등한 엘리트 한가인은 멸시하는 눈초리로 날 노려 보고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향했던 커터 칼이 날 향해 살며시 쥐여있었다.
무무, 무서워 쟤!
“내 비밀을 알아버린 이상, 나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너 때문에 내가 살생부에도 없을 자살을 할 뻔했어.”
여자애가 도플갱어가 있다는 것을 들켰다고 남을 죽여 입막음 하겠다는 낡은 사고는 갖지 말자고!
“네가 멋대로 자해하려 했잖아? 설사 도플갱어가 있다 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뭐든지 하겠으니 용서해줘' 전략은 뭐야. 만약 내가 널 속였다면 어쩌려고?”
당황하는 한가인은 여유의 증거, 허세 그 자체인 어설픈 미소와,
“주..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용케 내 걱정을 하는구나.”
이런 상황에서 말을 더듬는 언어능력이라니.
"그 대책 없는 판단능력이 심히 걱정스럽다."
"참견하지 마!"
한가인은 나름 지끈거릴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 뜨렸다. 더러운 비듬 같은 게 떨어질리가 없는 예쁜 모습을 한 주제에 뻔히 보이는 허세용 커터 칼을 돌리는 것은 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가.
그런 주제에 잘도 용서를 구했구나, 하고 칭찬하고 싶었지만 녀석은 너무 막무가내다.
누군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온 줄 아냐.
한가인이 나름대로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몰라. 처음해본 시도였고...나름 진지했는데... 네가 다 망쳐버렸어.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 시간에 학교 프린트물 받으러 오는 건 또 뭐야?”
“굳이 따지자면, 이 시간에 여학생한테 화풀이 하러 올 놈이 있을 것 같나.”
“계, 계속 이렇게 있으면 언젠가 내 짝퉁 도플갱어에게 강한 원한을 산 사람이 올 거 같았단 말이야! 그 위대한 첫 걸음에 하필 일반인이 끼어들다니.”
저 사고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지, '예 알았습니다' 하고 인정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확신한다. 저런 격한 방법으로 사과를 하면 도플갱어의 나쁜 짓들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대체 얼마나 극단적인 녀석이란 말인가.
용서를 구하는 대신 뭐든지 해줄게-라는 말을 하는 예쁜 여자애는 학교 못된 녀석들에게 의도적인 유혹으로 보일 게 뻔하다. ‘또다시‘ 도플갱어에 엮인 것은 귀찮은 사실이지만, 맨 처음 한가인의 비밀을 알게 된 나는 기약 없이 이런 일을 계속하려했던 한가인에게 과분한 행운일걸. 물론 내겐 불행뿐일 일이지만.
"희석된 존재도가 진해진다..." 내가 몰래 중얼거렸다.
나름대로 고민의 시간을 꽤 가졌을 한가인.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으로 도플갱어와 타협하려던 그녀에게 나는 조금 도움을 주기로 했다. 나중에 생각하면, 아니, 뭐 어찌되었건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였다고 조심스레 예상하지.
“내가 도와줄 일이 얼마든지 있는 것 같은데.”
쿨하게 거절하는 한가인.
“죽기 싫으니까... 마지막 발악하는 것처럼 보여.”
"누굴 벌레로 보는 거냐, 너는!"
"서커스 광대 정도...?"
"눈 가리고 나이프 투척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 정도는 알란 말이다!"
쿨한 한가인에게 쿨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지만...
이런, 딴죽으로 친해지는 전개라니. 첫인상(같지 않은)치곤 최악의 전개다.
계속 커터 칼로 허공을 베거나, 여린 얼굴에 어울리지도 않는 협박조로 나를 위협하고 있는 여자애지만, 적어도 내 눈엔 사람을 어쩌고 할 그런 못된 마음씨의 소유자로 보이진 않았다. 요즘 애들 답지 않은 정의감의 소유자- 라기 보단 약간 어리숙한 여자애에게 당당히 다가갔다. 한가인은 얼떨결에 책상 뒤로 넘어질 뻔.
“뭐, 뭐, 뭐야?!”
나는 그녀의 이마를 검지를 콕, 하고 찔렀다. 귀여운 인형처럼 고개가 튕겨 돌아온다.
"아프잖아."
도플갱어의 악행을 용서받고자 자해라는 극단적 대응을 하려던 그녀가 예상외로 상당히 쓸 만한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은, 약간 기뻤다. 생판 남과 도플갱어에 대해 터놓은 시원함에 흥분했던 거겠지.
가족이라고 해도 말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예전의 진짜 나'와 바꿔치기된 내게 조금이나마 믿음을 가진 한가인이 말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내게 그만둬, 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자신의 이마 위, '예전엔 가짜였던' 내 검지를 쳐내는 한가인.
"갑자기 뭐냐니까?"
아아...
이 여자애는...
은근히 귀엽잖아?!
정확히 내 취향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수준급의 딴죽 내공을 가지고 있으니 일단 체크 정도는 해주마.
진짜로 찍었다는 뜻은 아니야.
“그러니까.”
겸사겸사 말을 끊은 나는 한가인의 반응을 살폈다. 이제야 통성명을 한 나랑 살짝 한 스킨십에 반응했는지, 얼굴이 약간 홍조가 띄어졌다. 이 반응은 고양이일까, 토끼일까, 나는 동물원에 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한가인을 쳐다봤다.
"그, 뭐?"
야옹~, 경계심 가득한 귀여운 새끼 고양이에 가깝다.
사소한 감상은 접어두고- 나를 당황시켜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던 말도 안 되는 자살극을 그녀 스스로 벌일 가능성, ‘만에 하나’의 일이겠지만 내 앞에 있는 한가인이 상황을 인식하기에 약한 인격을 지녀 바꿔치기 당할 사람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살짝 시선을 돌리면 나오는 그녀의 옆모습. 한가인은 묵묵히 내 말을 경청하려 책상 위에 무릎을 꿇어 앉아있다. 척 보기에도 긴장한 그녀의 눈엔 빛이 반짝 감돈다. 우등생의 자세란 필히 저런 것이겠지. 우등생의 본능 같은 것인지, 그녀는 펜 대신 커터 칼을 나라는 공책을 향해 날카롭게 겨눈다.
어,
잠깐?
"칼 던지는 투구모션에 들어갔어?!"
생명이 위협 받고있다!
"빨리."
자신의 도플갱어가 난리 치고 다니는 형편에 그 죄를 모두 뒤집어쓰겠다는 태도에서 이미 확인할 것도 없던 거다.
딱히 칼에 정말로 겁먹은 게 아니다.
“나도 도플갱어 경험이 있어.”
우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책상위의 한가인이 내게 돌진한다. 내가 건드린 걸 복수라도 하려는 셈일까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운, 한발작 정도인 둘의 거리에 나는 얼굴이 화끈 거림을 느낀다. 목이 뒤로 빠지는 건 필연적이다.
솔직히 여자애랑 이렇게 가깝게 접근한 적도 없고 말이지.
"정말?!"
어쨰서인지 동정이라고 놀림받는 기분이 살짝 들었다. 나이스 타이밍.
"응, 그래.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아있고."
가짜와 진짜의 바꿔치기가 실패된 내 모습에, 그녀는 금세 활기를 찾은 모양이다.
나는 '예전의 진짜 나'가 내가 아니였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것만은 어쩔 수 없는, 나를 제외하고 단 한 녀석만 공유한 비밀.
"도플갱어 현상이 이렇게 흔한 놈이였으면 진작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일단 좀 떨어져!"
아까보다 더욱 요란한 소리로 한가인이 떨어졌다. 용케 저런 성격으로 황당한 결심을 했구나.
"에고고..."
허리를 부여잡는 한가인에게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도플갱어를 신경 쓰지 마."
내 발음이 그렇게 안 좋았냐.
"도깡들을 신경 쓰지 말라고?"
십수년전 인기 드라마 장군의 아들 김도깡을 말하려던 건 아니겠지. 이제 보니 여러 장르를 두루 섭렵한 딴죽의 영재일지도.
그녀는 여태껏 남에게 말하지 못했을 고통을 외롭고 쓸쓸하게, 고독하게, 홀로 견뎌 왔겠지. 자신의 존재를 그녀 스스로에게 야금야금, 조금씩 갉아 먹힌다. 도플갱어에게 관대하게 해 줄 여유 따위 없었다. 낯선 내게 기대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 기대를 벗어나는 말을 나는 가볍게 꺼내들었다.
"도플갱어들도 사람을 해치고 싶진 않아. 그냥 너와 다른 인격으로 봐주면 안 될까?"
우등생 같았던 그녀에게, 나는 강한 반발을 듣는다.
“넌 모르니까 그런 말을 쉽게 하겠지. 내 소중한 인생을 어지럽히는 나 자신을 보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 아무리 말해도 듣질 않아. 도플갱어는 언젠가 날 밀쳐내고 진짜 한가인이 될 속셈이야.”
어느새 부터, 존재하지도 않던 또 다른 내가 진짜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은 그 가짜로 다가간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자기 존재이유이기도 한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다. 당연히 그녀에게 있어 불쾌하고 저주받아야 할, 인정하지 말아야 할 존재로서 우리는 인식되어야 마땅했다. 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억울함을 내게 폭발시킨 한가인에게 나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야 할 터다.
“절대로 지금처럼 네 존재가 희석되는 일상을 살지 마."
이 정도가, 과거 도플갱어였고, 지금 누군가가 나를 도플갱어라고 불러도 부정할 수 없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예전의 진짜 나’의 의견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사실이다.
가짜들은 진짜가 약해져야만 비로소 진짜가 될 수 있다.
뚜렷이 자신을 믿는 사람에게, 가짜 따위가 어찌 할 방법은 없다.
'예전의 진짜 나'는 그러지 못했기에 나에게 무거운 짐을 건네고, 가짜로 돌아섰다.
"지금처럼 이라니...대체 무슨 말이야? 그리고 그 정도는 조언 축에도 못 끼거든?"
"뭐?"
"도플갱어가 내 존재를 지우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그러니까 학교에서 여러 방법을 써 보았지만..."
아차, 문득 한가인의 학교생활을 떠올린다.
등교시간은 남들보다 훨씬 빠르고, 수업 중엔 선생님의 말은 전부 흘리고, 점심시간엔 일부러 학교 옥상에서 먹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애들이 말을 걸어도 새침거릴 뿐. 어떻게 보면 그녀는 엄청난 존재감을 퍼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는 아이들에겐 한가인 같은 특이인격은 그들의 수용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들에게 다가가려 옷을 화려하게 입을수록, 그 옷들에 의해 막혀 들어가지 못했다.
성격만 특이한 아이였다면 조금은 먹혀들었겠지만 같은 여자 입장에선 섞이기 힘든 미모까지 겸비한 한가인.
"설마..."
"모르겠어. 보통 방법으로는 안 될 것 같아서 일부러 좀 반항적으로 다녔는데, 이상한 양아치들이나 꼬여들고, 결국엔 손 쓸 수도 없을 상황이 되어 버렸어."
“이 바보가!”
작은 토끼 같던 한가인이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변태에게 성추행 받은 듯, 심한 모욕을 당해 억울하다는 얼굴은 너무하잖아!
"남들 눈에 튀려고 그런 외톨이 짓을 하고 다녔단 말이야? 너는 친구를 사귄 적도 없어?!"
"이, 있지만...어렸을 때라 왕따라거나 따돌림 같은 건 없었고."
“그렇게 당당하게 대답하면 내가 당황스러운데...”
소매로 눈물을 슥슥 훔쳐내는 한가인. 아까보다 더 눈이 짓물렀다. 이번엔 레빗이냐, 울먹이는 목소리 톤이 일정하지 않다.
“도, 도와, 도와준다며.”
윽.
남자로서 진심으로 흠칫했다.
“흐음...주변으로부터 존재감을 잃지 않는 방법이라면...”
“역시 친구들을 많이 사귀는 게 좋으려나?”
“그런 방법이 제일 좋긴 한데. 너는 친구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한가인은 귀여웠던 마스크를 바꾸어, 위험해 보이는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짝퉁들에게 내 존재를 빼앗기는 보다야, 가식으로라도 애들이 날 잊지 못할 끔찍한 기억을 심어주겠어.”
“그런 식의 존재감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군. 하지만 난 누구에게나 없으면 안 될 존재가 되란 뜻이였어. 설마 '한가인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어!' 라고 외치는 변태들을 만들겠다는 뜻이냐?!”
적극 만류하는 나.
“어쨋거나 평생 날 기억할 사람을 만든다면, 내 짝퉁 녀석도 별 힘을 못 쓴다는 거지?”
“뭐-. 네가 알다시피.”
한 번 뿐인 시물레이션이지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본인이 알고 있다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다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주변인들 보다는 확실한 연을 맺는 것이 중요해. 그러기 위해서 애들이 가진 너에 대한 인식을 깨야겠지만..."
"힘들어."
"스스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짝퉁은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
"내가 보기에 도플갱어보단 한가인 양 당신이 좀 문제인 것 같네요."
"날 닮았으면 문제 없을텐데."
"맞아, 날 닮았으면 문제 없을텐데."
스스로 하는 칭찬 얘기에 살짝 수긍, 고개를 끄덕이는 나. 지레 발끈한 듯, 잠시 심호흡을 한 한가인. 이내 그녀의 맑은 눈이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동아리 같은 거라도 만들어서, 내 진짜 모습을 아는 친구들을 만드는 거야."
"동아리? 지금 새 학기 시작된 지 한 달이나 지났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왜, 라이트 노벨 같은 거 읽으면 전파녀들이 쉽게 부원들을 모으잖아. 부잣집 따님이라든지 여자 같은 남자애라든지, 가끔 외계인이나 초능력자들이 모이는 얘기들은 널리고 널렸어. 너랑 나는 도플갱어 쪽 속성이니까 이상한 애들끼리 이끌려 모이지 않을까."
이 무슨!
도대체 내가 사는 세계에 엄청난 혼동을 주는 발언인가!
딴죽을 걸려고 해도 스케일이 너무 크다.
"이 세상에 그런 건 없어."
누구라도 내 말을 신용해야 될 걸, 나는 이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지.
"도플갱어는 있는데?"
"도플갱어는 있지만, 적어도 네가 열심히 나열한 친구들은 우리나라엔 없을 거야."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거야, 돕겠다고 말만하지 말고 행동을 좀 보여줘봐."
"네 존재감을 진하게 만드는 방법이 동아리 한정이란 것도 웃기지 않을까? 그냥 평상시에 애들이랑 어울리는 게 어때?"
"바보 아냐? 내가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쪽에서 날 피하는 거야."
학교 평판이 문제였다. 아무리 착한 애들이라도 쓰레기 수준의 나쁜 소문을 달고 다니는 한가인에게 다가갈 리가 없다. 도플갱어가 깽판을 치고 다니는 탓에 그런 일을 벌일 리 없는 진짜 쪽이 피해를 보고 있다.
여자애들끼리의 질투나 유치한 장난인 줄 알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꽤나 심각한 상황이다. 나는 한가인에게 진지하게 질문했다.
"너 이 학교에 아는 애들은 있는 거야?"
한가인의 벼락같은 말에, 나는 진지하게 고민한다.
1학년 때 2명, 2학년인 지금 한가인을 제외하고 3명 정도와 면식을 텄던 느낌?
...죄송합니다, 안 대들게요.
“그럼 내일 스카우트해봐. 동아리는 내가 알아서 해 볼 테니.”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동아리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거냐?”
“어차피 너랑 나는 친한 애도 없어서 부활동 안 하고 있었잖아. 뭘 그렇게 난리야?”
“이렇게 기분 상하는 부탁은 처음 받아본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괜히 했군, 나는 살짝 후회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 방안을 내세우고 싶지만, 해가 벌써 떨어졌어."
"그렇겠지."
"너, 내 일에 전혀 관심 없는 거 아냐?"
그렇지 않지만, 여전히 극단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그녀에게 살짝 피곤한 느낌이 들던 나였다. 오히려 그런 한가인의 바보 같은 점이 돕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그...렇지 않아. 일단 우린 같은 반이였었던 느낌이니까, 그런 건 꼭 오늘 아니라 다른 날을 잡아도 충분해."
한가인은 당연한 내 얘기에 격하게 수긍했다.
"확실히 우린 그런 느낌이네."
"......"
나는 남자로서 뭔가 기분이 팍 상한다.
"왜 그래?"
"뭐, 그럼 일단은."
슬픈 척은 그만 두고, 나는 한가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처음 보는 광경인지, 한가인은 핸드폰을 처음 보는 것 같은 얼굴을 지었다. 난감한 건지, 기뻐하는 건지 동향을 살피기 힘든 녀석이다.
"남자 핸드폰이라."
그렇게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한가인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단 사실과, 내 전화번호부가 가족 의외의 사람을 오랜만에 저장한 것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저장된 번호중에 여자가(물론 가족 제외) 한가인 뿐인 건 아니다.
그런데 나는 내 존재감을 세상에 희석시키려 했던 중이 아니였나?
흐음...뭐 고작 도플갱어 한 명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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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진짜 나' 에게.
도플갱어는 가짜를 싫어해.
가짜를 싫어하는 것이 과거 도플갱어인 나였을 수도 있고, 한가인의 도플갱어가 가짜인 나를 싫어하는 쪽도 있겠지.
누구나가 자신을 대처할 수 있는 짝퉁을 반길 일은 없으니까.
지금은 '가짜'가 되어버린 '예전의 나'에게.
그때 난 널 싫어했을까?
첫댓글 오, 잘썼는데..댓글이 없네ㅋㅋ 재밌게 잘봤어!
옹 감사 ㅎㅎㅎ
음음. 잘보고 가요.ㅎ
음음. 감사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