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_사순3주간_화요일_도제
‘성당을 다닌지는 오래 되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저 미사를 나온다고 말씀하시는 데, 한 분 한 분이 모여서 기도드리는 내용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보다 자신의 자녀와 가정, 먼 친척과 가까운 이웃을 위해서, 또 우리 성당 공동체를 위해서, 교황님과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모여서, 서로가 함께 목소리를 높여 기도하는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지를 체험하는 일은 신부로서 단연 가장 보람된 순간들입니다. 지나가면 잊혀지는 것들이 많지만, 그때 만이라도 주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를 청하는 모습이야 말로 어찌보면 그리스도인의 기본자세일 것입니다. 막상 기도가 필요한 상황에만 기도하고, 또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주님께 의탁하려 하지 않고, 기도를 부탁하기보다는 부끄러움에 숨고, 숨기려하는 모습은 안타깝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세례를 받은지가 오래되었고, 성당의 많은 추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존경심이 드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지식와 경험이 많다는 것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라 할 수 있음은, ‘하느님의 도제’가 되어 사랑이라는 그분의 전문분야를 잘 따르고 있음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도제’는 장인을 지망하여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도제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장인의 허락을 받고, 일도 하면서 기술을 습득해 나갑니다. 때로는 장신의 가정에서 자잘한 일들도 자연스럽게 돌보게 됩니다. 따라서 도제는 장인으로부터 일상의 옷과 음식은 물론 기술지도와 생활에 대한 지도를 받고 감독도 청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느님의 도제가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복음의 기쁨을 삶에서 드러내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의 전문가’, 때론 악과 유혹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전투병’으로 싸우기도 하는, 하느님의 자녀, 그분께 속해 있는 제자인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면, 마땅히 하느님의 도제라 불릴 수 있는 까닭입니다.
여러 가르침 가운데 ‘용서’는 하느님께서 매우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늘’, ‘언제나’ 용서시는 까닭은 그만큼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일흔일곱 번 용서한다는 것은 끝없이 용서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제안하시는 이 이상은, 우리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익할 것입니다. 용서는 우리를 명예롭게 합니다.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단정하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절대 옳을 수 없습니다. 만일 용서하기 위해 상대방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를 기다린다면, 엄청난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먼저 청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화해를 더 수월하게 해 줍니다. 사랑의 전문가, 하느님의 도제로서 먼저 청하는 ‘용서’는 그분께 더 많은 지도와 감독을 받는 은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