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장님이 아부지가 멋쟁이 시라고 합니다. 꽃배달 얘기하면서ㅎㅎ자주 가서 친한 사장님이에요. 아빠는 2030 남자들이 왜 보수진영을 택하는 거라고 생각하세요?(예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님이 문자를 했는데 못 받았구나... 미안... 잤어요(나)" "괜찮습니다 아부지 생각이 궁금해서요. 천천히 말씀 주시면 감사하겠어요(예주)" "너무 늦게까지 공부하는 거 아닌가? ...글쎄다... 만약 네 말이 맞다면 피해의식이 아닐까? 부부 싸움을 하는 가정을 예로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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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엄마/여동생/누나 대신, 울아버지는 아들인 내가 지킨다 같은 거 ㅋㅋㅋ <토템과 터부>에서 아버지의 거세 공포를 통과해야 하는 건 숙명인데, 어떤 이유로든 패스하지 못할 경유, 내가 엄마/아빠의 남근이 되겠다고 깐부 먹는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일종으로 보면 어떨까?(나)" 몸 안의 나쁜 기운을 볼링 할 요량으로 숲속 산책을 나왔어요. 이까지껏 하나 실행하는데 군인정신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게 웃기지만 <변화>를 받아들여야만 <생성>될 수 있다는 평범한 선택을 응원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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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 보수 우파를 선택한 데는 페미니즘 영향도 있다고 봅니다. 폐미든 뭐든 교육이 만들어낸 공정의 기회를 얻게 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지위의 <변화>를 얻게 했고, 이때 울고싶은 아들들은 아버지와 한편 먹고 빼앗긴 기득권 쟁탈전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Conservative는 루틴이고 reveral은 변화가 아닐까. 아비는 진보를 지향하지만 이번에는 표를 주지 않았어요. 보수가 뭐 하나 맘에 드는 게 없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자를 수 없는 마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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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으로 시작하는 철학처럼 이념 문제도, 사랑전선도 계속 의심을 놓지 마시라! 이번에 두 번째로 여성 총리가 된 한성숙(60), 배현진(42), 예주(27)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태후 2회>입니다. 두두두두..."못 본 거야... 못 본 척하는 거야(rkd닥터)" 못 보긴... 다 보고 있었어요. 대사 없이 유 대위가 머플러를 주워 강모연의 손에 전달합니다. "저 기억나십니까?(그 도둑놈) 대한민국 육군 김 기범" "뜯어봅니다... 남자답게(유 시진)" "신고합니다. 중위 김명주는 우르크에 전출을 명 받았습니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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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는 오지구나... 찌찌야 찌지... 이게 먹어" "다 줄 수 없으면 함부로 나눠주면 안 됩니다... 난 이런 걸 농담이라고 하는데... 움직이지 마요! 방금 지뢰 밟았어요(진짜요? 나 지뢰 밟은 거예요? 나 이제 어떡하냐고요... 나 죽어요?) 안 죽어요... 발 빼요... 내가 대신 밟을 테니까(대신 밟는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그럼 안 터져요?) 터져요... 내가 대신 밟고 죽는 거죠(빨리 가서 더 잘하는 사람 데리고 와요... 빨리... 어 어... 모예요? 왜 안 터져요?) 잘 지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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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야... 다 뻥이었어! 뭐 하는 거예요!) 괜찮아요? 난 그냥(됐어요... 말 걸지 마요... 따라오지도 말고) 잠깐만요... 미안합니다. 사내놈들하고만 있다 보니 장난이 지나쳤어요 정말 미안합니다(알겠어요)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유 대위/강 닥터)" 한편 서대영 상사의 전출 명령이 떨어진 걸 보니 사령관이 손을 쓴 걸까요? 윤 명주 대위는 남친 찾아 오지까지 파병을 왔는데 서 대영은 없으니 어쩝니까? "저기요... 거기 대장님부터 오세요... 그냥 가시지 마시고요... 따끔합니다(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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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왜 혈관이 안 잡히지? (장교는 항상 권총을 휴대합니다. 실탄이 들어있는) 그래요? 그럼 쏘시던가... (아야!) 아직 안 잘랐거든요 (어제 장난친 것 때문에 화가 아직 안 풀린 거면...) 저 그런 걸로 뒤끝 있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여긴가? (여깁니다) 어어? (피 담아야죠 병에) 네네" 본진에 가는 유 대위와 인터넷을 찾아 나선 강닥터는 어째 데이트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여기 진짜 뜬금없다... 어떻게 이런 곳이 있죠? 기절하게 예뻐요... (그럼 또 와요) 근데 이 배는 여기 왜 이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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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려서... 아름다운 것에 홀리면 이렇게 되죠) 홀려본 적 있어요? (있죠. 알 텐데... 그러고 보니 아직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잘 지냈어요? 여전히 섹시합니까? 수술실에서) 나 이제 수술 안 해요... 수술 실력은 경력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금방 돌아갈 거고... 돌아가면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돼서 바쁠거에요 (그렇군요)(송송 커플)" 강모연과 유시진이 있는 부대로 급한 vip 환자(아랍 의장 무라바트)가 들이닥쳤습니다. "지도자의 몸에 아무나 손을 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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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님 수술은 오직 주치의만 할 수 있습니다(경호원)" "I don't want to be responsible for world history, but if I pull out now, this patient will die 난 세계사를 책임질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지금 손 떼면 이 환자는 죽습니다(강모연)" "잘 들어! 지금 죽냐 사냐가 문제가 아니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게 포인트야 아랍 애들이 하자는 대로 해줘 그래야 환자 죽으면 그건 수술 안한 의사 개인의 과실로 책임 돌리면 돼 우리 군은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명령이야(대대장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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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자 살릴 수 있습니까? (네... 확실한 건 열어 봐야 알겠지만 어디가) 복잡한 얘긴 됐고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만 대답해요? 의사로서... ( 살릴 수 있어요) 그럼 살려요! 2030 남성의 보수화는 잃어버린 기득권의 반격일까, 아니면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생존 전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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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남성들의 보수화에는 취업난, 부동산, 병역 문제, 젠더 갈등, 공정성 담론 같은 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합니다."세상이 바뀌는데 나는 뒤처지는 것 같다."어쩌면 이것이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페미니즘이든 능력주의든 세계는 계속 변화합니다. 그런데 변화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기회인 동시에 상실입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과 변화의 긴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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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익숙한 세계를 지키려 하고, 진보는 새로운 세계를 열려 합니다.그러므로 둘 다 필요합니다. 델리케리트하지만 "가족을 자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접점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누구를 위해 책임질 것인가? 철학자들은 자유를 선택의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자유는 책임질 대상을 선택하는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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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멈춰 있는 삶에서는 아무것도 생성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지뢰밭을 건넙니다. 누군가는 정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아주 운이 좋다면,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묻게 될 것입니다. 잘 지냈어요? 그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아직 곁에 있는지 말입니다.
2.
2030 남성의 보수화는 잃어버린 기득권의 반격일까, 아니면 불안한 시대가 만들어낸 생존 전략일까? 당신의 글은 정치 평론처럼 시작하지만 사실은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딸 예주와의 대화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사람은 왜 어떤 편에 서는가?"라는 훨씬 오래된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예주는 "왜 2030 남성들이 보수를 선택하느냐"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즉시 경제나 정책이 아니라 가족 심리학으로 들어갑니다.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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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토템과 터부』를 끌어와 아들과 아버지의 연대를 설명하려 합니다. 물론 현실 정치를 정신분석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청년 남성들의 보수화에는 취업난, 부동산, 병역 문제, 젠더 갈등, 공정성 담론 같은 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통찰은 그 아래에 있는 감정의 층위를 건드립니다. "세상이 바뀌는데 나는 뒤처지는 것 같다."어쩌면 이것이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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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든 능력주의든 세계는 계속 변화합니다. 그런데 변화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기회인 동시에 상실입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안정과 변화의 긴장입니다. 보수는 익숙한 세계를 지키려 하고, 진보는 새로운 세계를 열려 합니다.그러므로 둘 다 필요합니다. 당신이 "진보를 지향하지만 이번에는 표를 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대목도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이념의 배신이라기보다 관계의 복잡성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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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자를 수 없는 마음." 정치보다 더 깊은 층위입니다. 글의 후반부는 갑자기 《태양의 후예》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사실은 넘어간 것이 아닙니다. 유시진 대위가 지뢰를 밟았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을 당신은 길게 인용합니다. 왜일까요? 그 장면은 사랑의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대신 밟고 죽는 거죠."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 농담이 먹힌 이유는 사람들이 그런 희생을 사랑의 언어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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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 VIP 수술 장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군인은 책임을 피하려 하고, 정치는 계산하려 하고, 조직은 위험을 회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의사는 말합니다. "지금 손 떼면 이 환자는 죽습니다." 이 순간 강모연은 조직의 논리보다 생명의 논리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이 글의 숨은 주제는 정치도 아니고 드라마 리뷰도 아닙니다. <책임>입니다. 2030 남성들이 느끼는 상실감도, 페미니즘이 만든 변화도, 유시진의 장난도, 강모연의 수술도, 모두 결국 같은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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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를 위해 책임질 것인가? 철학자들은 자유를 선택의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자유는 책임질 대상을 선택하는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예주가 공부를 선택하고, 에스더가 학원을 선택하고, 아버지가 새벽 산책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이 글 마지막에 적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생성된다"는 문장은 바로 이 이야기의 결론처럼 읽힙니다. 숲길을 걷는 악동은 알고 있습니다. 변화는 언제나 두렵습니다. 그러나 멈춰 있는 삶에서는 아무것도 생성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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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지뢰밭을 건넙니다. 누군가는 정치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아주 운이 좋다면,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묻게 될 것입니다. 잘 지냈어요? 그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아직 곁에 있는지 말입니다.
2026.6.9.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