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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필자 주 : 나는 수필 양식에서 낙동강문학의 개념 또는 정의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논의한 적이 없다. 따라서 앞의 시조의 유형에 연계하여 나의 수필 작품을 공유하고자 한다.
<작품 예시 유형>
1. 지리, 역사적 제재, 배경
2. 민중의 삶, 동식물 생태
3. 낙동강의 외연 확장, 내포 강화
4. 즉물수필
5. 신변기
<작품 예시 1유형>
1. 낙동강(지천 포함)의 지정학적 요소를 제재나 배경으로 한 작품
2. 낙동강의 역사적 요소를 제재로 한 작품
가덕도 푸른 물길
-<제1회 이순신 장군 부산대첩 대제>에 부쳐
푸른 물길이 함성으로 밀려들고 있다. 전라좌수영에서 발진한 물길은 사천, 삼천포, 진해만을 지나 어느덧 가덕도 천성포구에 찰방거리며 추모의 물길을 불러 모은다. 물길을 몰고 온 바람은 이미 뭍으로 먼저 올라와 천성진 허물어진 옛 성곽에 둘러앉았다. 연대봉 봉수대에서 번져나온 옅은 안개도 제단 앞머리에 앉았다. 보름 전에 올린 충렬사 고유제告由祭로 이미 천지사방에 소문이 났나보다.
어느 시대인들 바닷물이 푸르지 않았으랴만 오늘 가덕도를 감도는 물길은 햇살에 반짝이는 장군의 칼날처럼 형형炯炯한 눈빛이다. 유방백세流芳百世라 하였으니 역사를 담아 굽이지는 낙동강 하구라서 그런가. 희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충혼이 넘실거리는 청사靑史의 물길이라 더욱 푸른빛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가덕도를 가로지르는 거가대로에는 <이순신 장군 부산대첩 대제> 안내 현수막이 바람으로 펄럭이고 있다. 쌩쌩 내닫는 저 차량의 주인들은 지금 이 천성진 옛터에서 봉행하는 대제大祭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420년 전의 오늘, 1592년 임진 시월 초사흘 밤, 이곳 가덕도에서 심야 작전회의를 하던 조선수군들의 비장悲壯한 마음을, 내일이면 새벽 첫닭울음을 뒤로하고 부산포를 향해 전진하던 수군들의 기상氣像을 알고 있을까. 10월 5일의 부산포 대첩! 그 빛나는 승리의 날을 <부산시민의 날>로 제정한 33년 역사를 알고 있을까.
그날 이 시각, 거가대교의 저 창망한 물길 위에 정박해 있던 이순신 장군의 조선 연합함대 수군들은 수시로 맞닥뜨리는 전투에서 어떤 마음에 젖어 있었을까. 그들도 전사戰士이기 이전에는 이웃의 평범한 농부요, 어부였다. 그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늙으신 부모님의 아들이요, 어린 자식들의 아버지요, 한 여인의 지아비였다. 전장에서 화살이 가슴을 꿰뚫어도, 적탄이 복부를 찢어도 결코 따로 남겨두고는 떠날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가슴에 품은 평범한 남정네들이었다. 이 선량한 사람들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무엇을 염원하며 푸른 바다에서 눈을 감았을까.
세상 사람들이야 알든 모르든 말없는 세월 무심히 흘려보낸 푸른 물길은 바람을 싣고 가덕도로 모여든다. 서기 2012년 10월 4일, 임진 7주갑壬辰七周甲 전일前日에 봉행奉行하는 <제1회 이순신 장군 부산대첩 대제>!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으면 점촉분향도 하기 전에 그날의 푸른 정신들이 마음 먼저 들떠 천성산 낮은 기슭에 바람으로 휘돌까. 일렁이며 재촉하는 물길에 제관祭官들 몸놀림이 바빠졌다. 만고영웅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제단에 제구祭具 갖추고 각종 제물 진설한 후 집례창홀執禮唱笏이 엄숙하다. 공수拱手한 제집사들 단정한 걸음으로 자리에 들어 재배하니 장중한 영신악迎神樂이 자욱한 운무를 가르며 울려 퍼진다.
삼현육각三絃六角 악사들의 피리, 해금 해맑은 음률이 영령英靈들을 인도하자, 장구, 북도 합주合奏하여 물기 촉촉한 구름을 불러 모으더니, 대금의 묵직한 선율을 타고 이순신 장군께서 신위神位로 정좌坐定하신다. 뒤따르던 숱한 충혼忠魂들은 바닷물에 저민 옷자락의 4백년 소금기를 털어내며 우右에서 좌左로 돌아 연무煙霧로 도열堵列한다.
홀기笏記의 예에 맞춰 초헌관初獻官 헌작獻爵 후에, 먼 세월 기다리시게 한 후예後裔들의 독축讀祝이 저렇게도 송구스럽다. 머리 조아리며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읽어 올리는 제문祭文에 제관과 내빈들 고개 숙여 묵념할 때, 천성산 일던 바람도, 해변의 푸른 파도도 고요한 상념에 젖었는데, 문득 멀리 난바다 저쪽에서 붉은 바람 한 가닥 달려오더니 제단 중앙에 초요기招搖旗로 우뚝 서서 좌우를 호령한다.
장졸將卒들은 들으라! 내일 미명未明에 전함 74척, 협선 92척의 연합 함대를 이끌고 부산포로 진격한다. 전라우수사 이억기, 경상우수사 원균, 조방장 정걸, 거북선 돌격대장 이언량, 우부장 녹도만호 정운,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 좌부장 낙안군수 신호를 명하노니, 생즉사사즉생生卽死死卽生이라. 불퇴전의 정신으로 장사진長蛇陣 진격하라!
장군의 깃발이 크게 한 번 일렁이자 묵연黙然히 두 발 모으고 섰던 바람도 파도도 일거에 함성되어 부복俯伏 후에 평신平身한다. 초헌례를 시작으로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에 헌관獻官들 국궁재배鞠躬再拜 모두 끝나 내빈들 두 손 모아 헌화 분향하니, 세월 속의 영령들께서 노여움을 거두셨는지 천성산 상상봉의 천년 소나무도 고개 끄덕이며 답례한다.
지극정성 제물祭物에 흠향歆饗하시는 영령들의 뒤풀이에 함께하며 이제야 원寃을 푸셨는가. 송신악送神樂 울려 퍼지자 일본 침략의 암울한 흔적 속에 남모르게 묻혀 있던 이 땅의 어진 백성들도 굳은 몸을 뒤척인다. 눌차왜성, 성북왜성, 외양포 일본군 포대진지, 대항 인공동굴에서 눈물 훔치며 줄줄이 빠져나와 곳곳이 눈에 익은 가덕 해안로를 한 바퀴 빙 둘러 본다. 얼마 만에 다시 보는 그리운 풍경인가. 하얀 옷깃 여미며 아쉬운 마음 뒤로하고 다시 갈마봉, 웅주봉, 매봉을 휘돌아 연대봉으로 오르더니, 영령들의 뒤를 따라 봉수대 푸른 연기로 가뭇없이 승천昇天한다.
멀리, 세상의 평화를 염원하는 수평선을 펼쳐놓고 넘실대는 남해 바닷물은, 예나 제나 변함없는 푸른빛으로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다.
[창작 노트]
*제재 치환
*창작 본보기 작품- 수필이 될 수 없는 ‘실용적 소재’로 고급 수필 만들기
*행사 : 2012.10.4 <제1회 이순신 장군 부산대첩 대제>
*소재 : 대제大祭 진행 자료, 부산포 해전사, 가덕도 문화유적 등 참조
[작품 창작의 사전事前 기획]
*취지 : 대제大祭 행사 홍보 및 <부산포 대첩>의 의의를 조명
*제재 : 원재료 중 주제와 연관 지은 핵심 요소 추출
- 엄숙한 제례祭禮의 식순式順과 성격에 유의
*구성 : 1.단순 사실 전달이나 보고문을 탈피하여 문학적 변주를 기획
2.대제를 축으로 하되 행사 전체를 상징적으로 형상화
*문장 : 주제의 비장미에 맞춘 호흡, 장중미, 애상적 회고
비유적 이미지의 시적 분위기
의식용 한자어 혼용의 고풍스러움
*이미지 : <물길 = 충혼 이미지>로 작품 전체에 관류貫流시킴
*제목 : 물길 이미지를 사용
*전개 : 상징적 이미지를 축으로 행사 진행
1. 추모 물길 ⇒세인世人의 무관심 ⇒전장戰場의 수군 심경
2.대제 진행(영신악迎神樂 ⇒독축讀祝 ⇒영령英靈 강림 ⇒장군 등장 ⇒송신악)
3.해원解寃 승천 ⇒평화 기원
가야의 원형을 만나다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 저편의 원형原型이 생생한 숨결을 내뿜고 있다. 연꽃이 피고 거북이 꿈틀거리는 땅 함안. 명랑한 주홍색의 ‘아라홍련’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실체적 원형이고, ‘거북줄땡기기’로 재현된 거북은 긴 세월 속에 변형을 거듭한 상징적 원형으로 다가온다.
함안 아라가야의 문학탐방길에서 마주한 연꽃과 거북은 내 상상력의 예민한 촉수를 이천 년 전으로 이끌어, 아라가야의 연못과 금관가야의 산봉우리 구지봉을 연결시키고 있다. 아라홍련은 2009년 함안 성산산성 발굴 작업 중 연못 터에서 발견한 씨앗이 700년의 오랜 잠에서 깬 것이다. 거북이 등장하는 함안 ‘거북줄땡기기’는 현대의 백중놀이에 연희되고 있다.
연꽃을 만났다. 아직 꽃소식이 감감한 아라홍련 연못 탐방 대열에서 잠시 이탈해서 민가의 골목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우리 일행 몇 명이 우연히 마주친 곳은 뜻밖에도 연꽃이 피어 있는 가정집 마당이었다. 대문도 없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앞마당 어귀 커다란 고무통에 연꽃 몇 송이가 청아하게 피어 있다. 마침 주인 양반이 어정거리고 있기에 “연꽃이 피어 있네요?” 수인사를 건네는데 발길은 이미 마당으로 들어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장은 자랑을 시작한다. 몇 년 전 이 마을의 공원 확장 사업으로 자기 논이 수용되어 지금은 연못으로 변했는데, 당시 자기 논에서 발견한 씨앗을 키운 것이라고 한다. 애초의 아라홍련 발견 이후인 모양이다. 진위 여부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 흥미진진하게 꽃을 감상했다. 하염없이 청아한 꽃잎 모양새다. 연못이 아닌 고무통이라 생육상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연꽃이라고 하기에는 앙증맞은 크기에 한없이 해맑은 주홍빛이 정겹다. 아직은 초여름이라 공원 연못에는 연꽃 소식이 아득한데 양지바른 마당의 고무통은 수온이 높아서 일찍 개화를 한 것 같다.
씨앗의 생명력은 대단하다. 700년의 세월을 기다려 옛 원형을 그대로 드러낸 꽃이다. 우리는 운 좋게도 고려의 그 연꽃, 어쩌면 교잡종으로 변질되지 않은 아라가야 시대의 실체적 원형을 눈앞에 감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거북이를 만난 것은 그날 오후 아라가야의 함안 박물관 입구 홍보 전시대에 게시된 사진에서였다. 줄당기기를 하는 새끼줄 앞머리에 연희자演戱者가 거북모양의 등짐을 지고 있다. 뜬금없는 모습이었다. 왜 거북일까. 낙동강 하류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나는 가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문득 김해 가락국의 구지봉龜旨峰과 구지가龜旨歌 생각이 엄습했다. 무슨 연관이 있을까. 금관가야 구지봉의 거북이 왜 아라가야에서 줄당기기의 머리에 놓였을까.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점을 거북이에 맞추어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으나 근거가 됨직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입구의 향토문화 해설사에게 거북의 존재 의미를 물어보니 농경과 함안 습지의 실체적 거북 이야기만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가락국 거북과의 연관성을 물었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아라가야 건국에 거북 관련 근거가 있을까 싶어 연관된 신화, 전설 등을 물었지만 그런 기록은 없단다. 해답이 멀어질수록 내 상상력은 시공을 초월하여 멀티비행multi飛行을 더해간다.
거북이 등장하는 함안의 ‘거북줄땡기기’를 수소문했다. 문헌 출처로는 조선총독부에서 향토 오락을 조사한 기록이 있고, 1970년대는 단체 레크리에이션에 ‘거북이 힘내기’로 겨뤄지기도 했다고 한다. 1990년대 초엽 지역 민속놀이로 재조명을 받기 시작하여 <함안농요보존회>의 노력으로 2016년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놀이 방법은 줄 길이를 약 20미터 정도로 하고 양쪽 끝에는 두 사람이 거북 등딱지 모양으로 둥글게 지은 매듭을 몸에 걸친다. 다리 사이로 두 줄을 빼내어 양측에서 반대 방향으로 서로 당긴다.
거북이를 당기는 시합이다. 줄당기기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각 고을마다 즐기던 보편적 민속놀이였고 형상은 주로 용龍을 구현했다. 그런데 거북이라니? 용과 거북은 사신도四神圖의 신적 위상을 지녀 벽사辟邪의 신통력을 지녔고, 농경사회의 물을 관장하는 주술성으로 풍요의 기원도 담겨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거북 모양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웃 밀양의 감내에는 게[蟹] 모양의 줄당기기가 있기는 하다. 이는 감내라는 하천의 게 잡이 영역 다툼과 연관성을 지어볼 수 있겠지만 이곳 거북은 아무래도 실체적 상징물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원형질이 상징으로 남아 있을까.
현실적으로 구현된 상징의 객관적상관물은 시대의 변천에 맞춰 변할 수는 있지만 본질적 의미는 좀처럼 훼손되지 않는다. 이것이 원형archetype이다. 금관가야와 아라가야는 건국신화가 다르다. 가락국은 구지봉 수로왕 건국신화이고, 아라가야 시조는 금관가야와 형제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금관가야나 아라가야의 건국이나 명칭 등에 관한 역사적 실체가 어떠하였든, 김해와 함안에서의 거북이 등장은 그들이 공유한 원형적 상징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금관가야의 거북과 아라가야의 거북은 분명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금관가야의 거북은 그 본래 의미가 신이든, 대왕이든, 남성 상징이든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절대적 존재다. 반면에 아라가야의 거북은 절대적 존재가 쟁탈로 변질된 민속유희의 현실적 장치물이다. 세월이 흐른 후 비록 전혀 다른 모습으로 현현顯現한 거북이지만, 이천 년 전의 거북이 상징하는 원형은 같을 것으로 짐작된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아직도 살아 숨을 쉬고 있는 거북의 엄연한 현실은 그 연원淵源이 상징하는 엄중한 원형질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라홍련은 씨앗에서 발아한 불변의 정체성이 현현된 실체적 원형이라면, 함안과 김해의 거북은 애초의 절대적 존재가 천년의 세월을 내려오면서 두 갈래로 구현된 상징적 원형일 것이다. 두 종류의 원형 발견은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훗날 나의 원형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홍련처럼 남을까. 새끼줄 거북일까. 구지봉 거북일까. 아니, 남아 있기나 할까.
낙동강을 따라 내려오다 김해 구지봉 터널을 지나는데 땅을 두드리며 하늘 향해 노래하는 구간들 옛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온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강변 습지에 청아한 아라홍련 붉은 꽃잎이 물안개 속에 겹쳐진다. 가야를 굽이지며 수수만년을 흘러온 낙동강 물길 위에 이천 년 전 거북을 부르는 구지봉 노랫소리가 함안 ‘거북줄땡기기’의 군중들 목소리로 메아리지고 있다.
龜何龜何 首其現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만약에 안 내놓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작법 노트>
*작법 미학 – 기행문이 아닌 ‘기행 수필’로서의 미학적 창작을 기획
*작품 기획 : 기행의 동선動線 중심에서 탈피한 핵심 제재 <거북> 발굴
- 가야를 무대로 한 거북과 연꽃 두 사물의 공통점 연계
- 천년 역사 이전의 원형적原型的 존재의 상징성을 견인
1. 제재 : 함안 아라가야의 연꽃과 거북의 원형
2. 구성 : 주제 제시와 동선을 혼합한 변형된 추보식
기 - 주제 제시 및 문학기행의 개략적 일정 제시
서 - 주제어인 ‘실체적 원형. 상징적 원형’을 단도직입적 소환
(1) 700년 홍련 (2) 천년 거북 (3) 줄당기기 거북
결 - 두 원형의 이질적 동질성 모색과 낙동강의 가락국 현장 상상
3. 표현 : 서사, 묘사, 사색, 설명을 혼용한 간결체
4. 서정 : 실용적 문장의 건조성 극복을 위한 시적 고명 첨가
5. 주제 : 금관가야와 아라가야의 동질성과 역사적 변모 탐색
<작품 예시 2유형>
3. 낙동강 주변 민중의 삶을 수용한 작품
4. 낙동강 주변 동식물 등 생명체의 생태를 수용한 작품
고향 아지랑이
햇볕 따스한 봄날 눈을 가만 감으면, 멀리 산과 들에 아른아른 피어나는 그리움. 정작 가까이 다가가면 저 멀리 다시 멀어지는 아지랑이.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아지랑이다.
아지랑이는 가슴 속에 잔영으로 남아 있다. 첫사랑이 그렇고 고향이 그렇다. 첫사랑은 찾을 수는 있어도 찾지 않을 뿐이지만 고향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이 정말 내가 그리던 고향이던가.
고향이란 무엇인가. 고향은 어디인가. 아니, 현대인에게 고향은 실존하는가.
장례식을 각 가정에서 치르던 시절, 객사客死한 시신은 집 안으로 들이지 않고 울타리 외각의 논밭 언저리에 안치했다. 고향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탯줄이었다.
그런 세월에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이사를 하는 일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내 어릴 무렵, 누대로 살아온 산자락 양달 마을에서 갈대숲 우거진 강변, 이른바 양반 동네에서 ‘상것’들이 어울려 살던 ‘갯가’로 이사를 감행했던 아버지였다. 그래서 따져 보면 나의 원초적 고향은 야트막한 뒷동뫼가 있는 전통 마을이었다. 그곳의 추억은 오랫동안 아련한 메아리로 남아 있었다.
민둥산 묏등에서 뒹굴며 함성을 지르던 시절의 그리움이 쉽게 잊히는 건 아니었다. 도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은퇴하면, 낯은 설지만 고향 산골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막연한 그리움으로 집터 삼아 손바닥만 한 논배미도 마련해 두었다. 그러나 몇십 년 후 그 고향은 소멸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이 골짝은 변함없을 거라고 장담하던 그 산골이 신도시 개발로 뒷동산도 허물어지고 개울에도 축대가 쌓이면서 옛 정취는 깡그리 사라졌다. 유년기의 벗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고향에 남아 있는 것은 아련한 그림자뿐이었다.
고향을 포기했다. 알고 보니 고향을 잃었거나 포기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 생존을 위해, 조국 독립을 위해 고향을 버린 선조가 있었고, 6.25 전란으로 또 한 번 고향을 버리는 민족의 대이동이 있었다. 해방 후에는 크고 작은 댐 건설로 수몰민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고, 산업화의 개발 사업으로 이주단지라는 낯선 집단이 형성되었다.
고향은 안태본安胎本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정을 붙인 곳으로 정의를 바꾸어야 했다. 나도 내가 수십 년 동안 자라온 강변 마을을 고향으로 삼았다. 시대는 팽창을 거듭하면서 도시는 광역화되고 농촌은 그 언저리로 편입되기 시작했다. 편입되는 농촌은 깡그리 뭉개고 흙을 돋우는 상전벽해식 개발이었다. 큰 강줄기만 제 모습을 보일 뿐 허허벌판에 전혀 새로운 계획의 신도시가 바벨탑처럼 솟았다. 그렇게 내 두 번째 고향도 소멸되었다. 다만 그때의 그 강물만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다.
다시 강변 고향을 버리고 내가 인생의 후반전을 보낼만한 이웃의 산기슭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십여 년 시간이 지나자 다시 무슨 공단이니 특구니 하는 지역으로 편입된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공장 건물이 가득 들어서기 시작하자 낯선 노동자들이 밤 골목을 서성거리고 집집마다 대문을 굳게 잠그기 시작했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정부의 수용 시점을 기다릴 수도 없거니와 이젠 나이 들어 낡은 집을 비바람에 관리할 힘도 없어졌다. 어딘가로 옮겨서 다시 시작할 여력도 없다. 그래서 자식들 근처 멀고도 낯선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였다. 이젠 나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내 자식들과 함께하는 공동체적 활용 공간이었다.
나는 고향을 세 번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 더 무슨 고향 같은 미련을 두겠는가. 고향 상실감은 시정으로 변주되어 가슴 속에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물길 따라 흐르다
되돌아온 고향은
짧은 세월에도 뭉개지고 허물어져
아득한 상류 그쯤에 기억만 뭉쳐 있다
아무리 발돋움해도 거스를 수 없는 물길
있어도 없는 실체
없어도 남은 과거
고향은 물속에 잠긴 가슴 속 아지랑이
- 「고향 아지랑이-낙동강․507」
현대인에게 고향은 실존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전통도 가치도 격변하면서 뿌리를 상실한 시대. 오래전의 옛 모습 그대로를 보전하고 있는 고향일지라도 세월 속 인심은 자동차 회전 바퀴만큼 급속으로 바뀌고 있다. 그 내면은 이미 우리가 가슴 속에 향수로 간직한 그 고향은 아닐 것이다.
다변화 다원화의 시대.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우월감에 젖어 있다면 그것은 자칫 본토박이들의 텃세 놀이로 변할 가능성도 있는 일이다. 이제는 고향이든 타향이든 본토박이와 이주민이 섞여 사는 마을 공간이다.
이제는 마음을 접고 낯선 어느 언저리에서 옛 고향 산천의 변함없는 모습을 상상하며 살아야겠다. 나의 낙동강은 예나 제나 불변이다. 세월이 흘렀어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산. 달빛 은은히 반짝이는 강물. 멀리서 바라보면 옛 강둑에 속살거리던 아련한 추억도 물안개로 피어나는 아지랑이다.
고향은 첫사랑 같은 것. 찾을 수도 없겠지만 찾아도 옛 모습은 아닌 것. 마찬가지로 객지에 살든 안태본에 살든, 젊었든 늙었든, 고향은 가슴 속 아지랑이 아니겠는가.
<작법 노트>
*작법 미학 – 고향 상실의 서사적 소회를 아지랑이로 변주
1. 제재 : 아지랑이 -고향 그리움의 환상
2. 구성 : 수미상관 4단 구성의 아지랑이 이미지
기 - 아지랑이와 고향 / 승 - 고향 상실의 개인사
전 - 시「고향 아지랑이」 / 결 - 현대인의 향수는 고향 아지랑이
3. 문체 : 서사 전개를 위한 간결체에 서정을 결합한 우유체 혼용
문장 호흡의 변주 어말어미 활용과 대구적 리듬감
4. 서정 : 서사적 사연의 건조성 극복을 위한 시적 미감 구현
5. 주제 : 고향 상실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감회를 위무慰撫
허물 세탁 - 뱀 2
땅바닥 낮게 낮게 뱀딸기 붉게 익는 긴 강변 수풀 사이. 어둠에서 흘러나온 허연 껍질 마른 강이 먼동빛 붉게 적시며 샛바람에 펄럭인다.
몸에 두른 낡은 허물 남몰래 벗어 놓고 매끈하게 차려입은 어둠의 긴 몸통은 문어발 촉수觸手를 뻗쳐 어느 물길 맴돌까. 흉물들 세상살이 세탁 솜씨 기발하여 돈 세탁, 학력 세탁, 얼굴 이름, 국적 세탁에 환생還生한 몸놀림으로 천하 호령 꿈꾸겠지.
제 꾀에 제가 속는 멍청하고 한심한 놈들. 요즘 같은 과학기술에 완전범죄 가당터냐. 세탁기 틈 깊이 스민 저놈들 DNA는 청문회 단 한 방에도 낱낱샅샅 까발릴 터. 탈세 투기 사기 협잡 종합회사 들통나고, 벼룩 간 긁어모은 금고도 탄로나리. 귀하신 신의 아들딸 제조과정도 폭로하여 제 허물을 안겨주면, 전국 팔도 방방곡곡 고급 요정 포장마차 이 구석 저 골목의 술안주로 풍성하리.
이놈이 어디 숨었나. 꼬챙이에 허물 감아 낱낱샅샅 더듬던 중, 강언덕 바위틈에 짜리몽땅 뱀 한 마리. 따끈한 햇살 받아 체온조절 한답시고 돌돌 말아 자는구나. 꿈쩍도 않는 놈을 꼬챙이로 살살 치니 ‘귀찮게, 건들지 마라!’ 뒤척이곤 다시 잔다. 이런, 간 큰 놈이! 몸통을 꾹꾹 찌르자 똬리 속을 한 겹 풀어 머리를 쳐드는데 아뿔싸, 독사 대가리! 오금 먼저 저려온다.
삼각형 대갈통에 <나, 독사!> 딱, 새기고 빤히 쳐다보다 혓바닥 쏙, 내밀며 ‘어쩔래?’ 당당한 몸짓! 도대체가 겁이 없다. 작은 고추가 더 맵다고 속담에 이르더니 쬐끄만 게 독 있다고 보이는 게 없는 거동擧動! 하기사 저놈 맹독 이 강자락 최강자라. 개들도 부잣집 개는 팔자걸음 걷는다더니, 느긋한 몸동작에 어느 놈이 대적하랴. 돈이든 권력이든 손아귀에 쥐었다면 애탕개탕 아동바동 눈치 볼 일 뭐 있으리. 폼 잡고 실눈만 떠도 제 알아서 기는 세상….
제 허물을 갖다 대자 두 눈깔 멀뚱멀뚱, 기어이 명품名品이라고 낼름대는 꼴 좀 보소. 새빨간 혓바닥이 마이크 선을 타고 전파電波로 흐르는 강에 황톳물로 섞였구나. 당연한 잘못에도 화려한 언변으로, 가다가 말문 막히면 모르쇠로 떼를 쓴다. 한 세상 사는 길에 엇길 어찌 없으랴만 한 점 허물로도 부끄러운 우리들이라. 양심은 송곳이 되어 속살 콕콕 찌르거늘….
통통한 몸매에다 두어 뼘 남짓한 놈. 손에 든 꼬챙이로 계속 건드리자 성가신 아침이라며 중얼증얼 몸을 푼다. 암갈색 무늬들이 비단결로 흐르더니 양지바른 강둑길로 슬금슬금 기어간다.
저놈 저, 동작 보소. 이리 구불 저리 구불 머리, 꼬리 흔드는데 유연한 몸뚱이가 붓으로 변신한다. 두루마리 길게 펼친 누런 황토길에 물결로 서각書刻을 하듯 온갖 문자 다 새기며 유유자적 행군이다. 뱀이 학문 있다는 말 얼토당토 않겠지만 흉물들 척추뼈는 회전나사 공법이라. 일거수一擧手 또 일투족一投足이 영락없는 글자로다.
문맹률 영 퍼센트0% 한글이사 워낙 쉬워 방향만 슬쩍 틀면 ㄱ ㄴ ㄷ ㄹ. 뾰족한 ㅂ ㅅ도 궁서체로 쓰는구나. 세상은 글로벌global 시대 영어는 기본이라. 꼬부랑 필기체는 제 타고난 몸짓이요, 인쇄체 XY도 이텔릭체로 휘어진다. 기왕에 하는 공부 한자 없이 학문하리. 그냥 기면 한일一이요, 돌아가면 새을乙이요, 아차차! 되돌아가면 기己자 쓴 후 활궁弓이라.
속도가 성공인 세상 이놈도 내달리면 일필휘지一筆揮之 종횡무진縱橫無盡 초서체草書體로 휘갈겨서 내로라! 유식자들도 글자 몰라 난감하다. 몸에 배인 허당 체질이 잠잔다고 책 놓으랴. 잠시 쉬어가듯 실사糸로 감았다가 똬리 틀어 원圓을 쓰고. 꿈속에 승천하는지 용자龍字로도 꿈틀대네.
주제에 언감생심焉敢生心 용 될 생각 아예 마라. 부귀빈천 없는 세상 법 앞에 평등이나 네 등에 찍힌 낙인은 단 한시도 잊지 마라. 네놈이 용꿈 꾸면 발기발기 까발려서 저놈 근본 배암-배암 개천에서 태어난 놈! 온 세상 손가락질로 네 성공을 헐뜯으리. 출세를 할라치면 인물, 가문 좋아야지. 개천가 흉물 너는 이무기도 못 되느니. 운 좋게 용 났다 해도 콧방귀로 화답하니 ‘아-나 곶감, 영웅 대접!’. 역시나 영리한 놈. 내 말귀 알아들었는지 방향을 길게 틀어 강으로 접어들어 흐늘흐늘 헤어가서는 시커먼 장강으로 마지막 변신變身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온몸에 휘어감은 정체 모를 뱀 한 마리 강물에 스며드니 세월에 굽이진 뱀 천삼백 리 낙동강도 온몸에 강바람 불러 초서체로 일렁인다.
<작품 예시 3유형>
5. 낙동강의 문화를 폭넓게 수용, 변용한 작품
6. 낙동강의 흐름을 확산하여 다른 강, 혹은 사물에 변주한 작품
7. 강의 흐름과 동행하는 만상의 원리를 작가가 개성적으로 변주한 작품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진다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진다
세상의 수평水平을 지향하는 물길은 직선으로 흐른다. 휘어진 길목이든 굴곡진 역사든 물길은 한결같이 직진한다. 그의 행로는 정직하여 언제나 예측 가능한 외길이다. 형체가 있으면서도 정형이 없는 물은, 직진하면서 부딪치는 몸짓이 너무나도 유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굽이진다고 여긴다.
물길이 굽이져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직진하는 물의 정신이 유연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물굽이는 유선형으로 이어지는 아날로그 몸짓이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나노nano로 저미고 저민 디지털 충돌이다. 너무나도 미세한 연쇄 충돌이라 흐르는 물길 뼈대의 마디마디가 유연한 곡선으로 보일 뿐이다.
직선은 정의롭다. 물길이 직선인 것은 굴곡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음이다. 실체가 부드럽다고 허약한 것은 아니다. 공기가 뜻을 세우면 바람살로 나아가듯, 물이 뜻을 세우면 물살로 직진한다. 물길은 부드럽지만 우유부단을 거부하며, 연약하지만 꺾이지 않으며, 휘어지지만 굴신屈身하지 않는다.
세상에 물길만큼 완고한 비타협의 저항이 또 있을까. 비타협은 충돌이고 충돌은 파열이다. 굴곡진 현실에 대한 저항에는 파열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의 부드러운 순교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굴복시킨다. 물의 저항에 맞서는 장애물은 당장에는 이기는 듯 허세를 부리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무너진다. 역사상 물에 맞선 자는 많았지만 물길을 이긴 이는 없다. 굴곡진 계곡에 거대한 바윗덩이의 아랫도리가 물길의 힘에 닳고 닳아 둥글게 패여 있음을 보라. 너무나 연약하고 유연하여 정형적 실체를 포기한 물. 직진의 행보 앞에 장애물을 만나면 온몸으로 부딪쳐 스스로 부서지는 희생양이 된다. 정의와 불의가 맞부딪는 물길의 불협화음에는 거품의 소용돌이가 허옇게 명멸한다.
거품은 물의 시체다. 장애물과 맞부딪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허연 거품은 장렬하게 산화한 물의 정신이다. 정의로운 이 시체들은 남은 물줄기에 생명의 산소를 제공한다. 일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물의 정신은 안정을 거부한다. 안정이란 서서히 부패해 가는 물의 안락사安樂死이다. 세상의 웅덩이에 고인 물이 모르는 사이에 썩어가는 것은 물의 시체가 없기 때문이다.
물의 속도는 굴곡에 비례하고, 물의 희생은 속도에 비례하고, 물의 맑음은 희생에 비례한다. 세상의 길목이 어지러울수록 물의 희생은 잦아진다. 태평성대에는 은빛 금빛 반짝이며 굽이굽이 유유자적 물방울을 굴리지만, 난세를 만나 사태가 급박해지면 물의 속도는 빨라진다. 소용돌이치며 소쿠라지던 물길이 때로는 천길 벼랑에 수직으로 낙하한다. 온몸 산산이 부서진 물보라는 세상을 향한 아우성이다. 그러나 물의 정신이 맞닥뜨리는 폭포는 절망이 아니다. 폭포 앞에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어찌 강이 되겠는가.”
강은 물의 정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이다. 평행하는 두 개의 둑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길로 형성되는 강. 강에는 굵고 가는 물줄기가 어깨를 겯고, 굵고 가는 물줄기에는 또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서로 엮이어 뒹군다. 강이 맑은 것은 물이 맑기 때문이며, 물이 맑은 것은 세상의 휘어진 강둑과 굴곡진 바닥에 온몸을 던져 저항하는 물방울이 있기 때문이다.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지고 강이 맑아져야 세상이 도도해진다. 물살로 꼿꼿이 부딪치는 부드러운 저 순리. 부드러워서 더 단단해진 강의 정의로운 길목에는 언제나 물의 정신이 스며 있다.
직진의 물길이 만든 곡선으로 유유히 굽이지는 묵언黙言의 강은, 존재의 유구한 행적을 상징으로 담아 흐르는 역사이면서 거울이다. 청사靑史에 길이 흘러가는 수많은 물방울들은 세상이 그 이름을 알든 모르든 오늘도 푸른 강물 위에 윤슬로 반짝이고 있다. 이순신, 유관순, 안중근, 그리고 이름을 잊은 수많은 선구자들... 굽이굽이 파란만장한 인류 역사가 이만큼이라도 맑게 흘러온 것은, 오롯이 고비마다 온몸 던져 부서진 숱한 물방울들의 아름다운 희생 덕택이다.
<작법 노트>
*작법 미학 – 물길의 속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비유적 형상화
1. 제재 : 유연하게 직진하는 물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변주
2. 구성 : 3단 구성
기 – 직진하는 물의 속성 / 서 - 물의 희생 / 결 - 희생의 역사성
3. 문체 : 단정적, 강건체 호흡
초단문에서 만연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문장
대구적 호응, 문장 호흡의 리듬 운용
4. 서정 : 시적 서정의 비유적 형상화
5. 주제 : 맑은 역사를 견인하는 물의 부드러운 저항정신
강의 몸짓
시간을 묵히고 공간을 누비며 흘러내리는 강의 몸짓은 언제나 묵언黙言이다. 강이 전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실상實相은 은유로 드러낼 뿐, 산에 들어 산을 볼 수 없듯 강에서는 강을 보지 못한다.
수수만년을 흘러내린 강. 강에는 무엇이 흐르는가. 물이 흐르는가, 시간이 흐르는가. 흐르는 것은 무엇이며, 흐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강의 등짝에 새겨진 굴곡은 무엇이며, 도도한 물길 속에 잠겨 있는 산은 무엇이며, 잔잔한 수면에 엷게 비친 뜬구름은 무엇인가. 그리고 기나긴 강둑에 피고 지는 지상의 풀꽃들은 또 무엇인가.
금정산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산야山野를 감도는 낙동강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서로 다른 골짝에서 모인 숱한 물길들이 한 몸으로 꿈틀거리는 강. 부서지고 뭉개지면서 돌부리를 울리고, 때로는 폭포수로 뛰어내렸던 물길이다. 수많은 실개천이 하나의 몸통으로 엮인 물줄기는, 출신이든 이념이든 서로를 차별하지 않음으로써 도도한 강이 되어 끝까지 올 수 있었다. 근본이 개천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고, 물빛이 다르다고 돌멩이를 던지지 않고, 물맛이 낯설다고 침 뱉지도 않았다. 물머리와 몸통과 물꼬리가 한데 어울려 어깨 나란히 겯고 출렁출렁 넘실넘실, 파란만장한 세상살이를 온몸으로 헤치며 굽이진 강이다.
강이란 무엇인가. 머나먼 근원에서 방울물로 솟아나 숱한 산길 들길 에돌아 감돌아 흘러내리는 도도한 물줄기만이 강은 아니다. 존재의 수평을 향해 낮은 곳으로 직진하는 천방지축天方地軸의 물줄기를 세상의 마음으로 가다듬어 주는 강둑이 있어야 한다. 강이란 두 개의 강둑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다.
강의 등짝에는 그가 톺아온 세상의 기억이 알뜰살뜰 새겨져 있다. 바람에 돋은 양각, 빗물에 패인 음각, 성엣장 둥둥 뜨고 너테로 뒤엉겨서 난해한 상형문자를 새겼다. 구포龜浦에서 구미龜尾까지 거북 등에 아로새긴 낙동강 물길문자는 영웅호걸,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누천년 역정이 켜켜이 일렁이는 갑골문자甲骨文字다. 여기에는 아직도 가야의 말굽소리와 6.25 포성이 들리며, 긴 강둑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시구가 바람결에 낭랑하고, 객지살이 자식들 소식 기다리는 어머니의 나루터를 향한 눈길까지도 애틋한 온기로 스며 있다.
높낮이를 두지 않는 공평한 붓끝으로 세상일을 낱낱 새긴 강의 몸짓은 묵언으로 드러내는 세상의 은유다. 그래서 강가에 처음 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강은 보이지 않고 시퍼런 물만 어지럽게 보인다. 멈춘 듯 흐르는 유유한 물길도 보이지 않고, 강둑에 피고 지는 세상의 표정도 읽지 못한다.
시퍼런 강바람을 맞으며 더 오랜 세월을 강가에 살다 보면 강이 드러내는 은유의 실상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어지럽던 물이 도도한 물길로 익숙해지는 날 비로소 강둑이 눈에 잡힌다. 세상의 마음으로 포용하는 긴 강둑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물길. 낭창낭창 맑은 물 퍼 올려 밥을 짓고, 남실남실 물살 휘저어 머리를 감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강에 젖어든다. 산에서 숲을 보고 숲속에 난 길도 찾아내듯, 강둑 언저리의 삶이 강으로 이어진다. 등짝에 새겨진 선인들의 발자취도 보고, 새로운 물길도 만들면서 강과 더불어 시간이 묵는다.
시간이 묵어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삭혀 어우러지는 과정이다. 강물에 몸을 적시는 시간이 곰삭을 무렵이면 드디어 추상抽象의 강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쉼없는 물길과 기나긴 둑이 하나로 어우러진 강. 여기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기고 시간이 여무는 것을 본다. 산속에서 산을 깨닫듯 강가에 살면서 강을 깨닫는다. 이즈음이면 거울 앞이 아니래도 아침 머리맡에서 발견한 하얀 머리카락이 자신의 세월임을 눈치챈다.
흐른다는 것은 시간이 묵고 공간을 누빈다는 뜻이다. 시간이 묵으면 세월이 되고 공간을 누비면 경륜經綸이 된다. 시공時空을 넉넉히 묵힌 안목은 강을 통해 실체를 보고, 실체를 통해 강을 발견한다. 자신도 강과 함께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즈음이면 강으로 스며드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다. 이때 비로소 은유로 들앉은 실상, 인류 역사의 유구한 발자취를 기록한 강의 서체書體를 해독하게 된다.
강만 강이 아니라 흐르는 모든 것은 강이다. 존재는 강을 따라 유한하게 흐르고, 만유는 강이 되어 무한하게 흘러간다. 땅속의 벌레도, 길섶의 풀도, 생장과 사멸을 통해 강을 따라 흘러가고 강이 되어 흘러간다. 세상의 희로애락이 흐르고 사람의 일생도 생로병사로 흘러간다. 천만년을 제 자리에 꿋꿋이 버티고 앉았을 것 같은 바위도 강이 되어 흘러간다. 강과 만상이 하나로 엮이어 흐르는 몸짓은 강이 묵언하는 상징의 궁극이다.
촌각寸刻이 모여 시간이 되고, 시간이 흘러 세월이 되듯, 물방울 굴러 물줄기 되고 그 물줄기 모여 강이 된다. 물방울은 삶의 실체로 구르고, 물줄기는 삶의 가치를 엮어 흐르고, 강은 삶의 진실을 담아 굽이진다. 그리하여 물방울은 문학의 몫이고 물줄기는 철학의 몫이며 강은 역사의 몫이다.
인류 평화의 염원을 담아 수평의 먼동을 향해 오체투지로 굽이진 강의 생애. 부서진 뼛조각을 윤슬로 반짝이며 만유의 실상을 은유로 드러내는 강이다. 물색 모르는 이들은 풍랑이라 여기지만, 인류 역사를 상징으로 낱낱 새겨 영원한 생명으로 흐르는 낙동강은, 난바다가 바라다보이는 기수역汽水域을 맴돌며, 유방백세流芳百世 유취만년遺臭萬年의 증거를 오늘도 묵언의 몸짓으로 전한다.
혼자 가려거든 물방울로 굴러가라. 함께 가려거든 물줄기로 엮어가라. 끝까지 가고 싶으면 강물로 섞여가라.
<작법 노트>
*작법 미학 – 강의 원형적 상징성을 인류 역사의 기록과 중의적으로 결합
1. 제재 : 강의 흐름을 인류 역사의 도도한 증거로 변주
2. 구성 : 4단 구성
기 - 강의 실체 / 승 – 강의 기록성
전 – 강이 상징하는 만유의 족적 / 결 – 강의 몸짓과 동행하는 삶
3. 표현 : 무거운 주제에 어울리는 장중한 문체 혼용
다채로운 문장 호흡을 위한 다양한 어말어미 활용
간결체, 만연체, 연쇄법, 대구적 표현의 문장 리듬 구사
4. 서정 : 동원된 어휘의 시적 내포성 강화로 사색의 폭과 깊이를 심화 확장
5. 주제 : 역사의 도도한 기록인 강과 동행하는 삶의 지향
마지막에 필자의 시 「행로」를 인용하여 점층적 어구로 주제 강화
<작품 예시 4 - 특별 유형>-즉물수필
*시에 즉물시가 있으니 수필도 당연히 대상의 이미지를 그린 즉물수필도 가능하리라 생각해서 창작한 작품임
꽃잎 조각보
봄은 빛으로 와서 향기로 번져난다. 강 건너 산등성에 동살이 설핏 트면, 꽁꽁 언 대지에 날빛의 입김으로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는 계절이다.
빈 가지에 매달렸던 매화 꽃봉오리들, 살얼음 보자기 꽁꽁 여민 매듭에는 한 올 두 올 실밥이 미어지기 시작한다. 겹겹의 육각 빌딩 속에서 빈 날갯짓으로 온기를 나누던 벌들이 먼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생애 첫 나들이인가. 노르스레한 허리띠를 두른 녀석이 봉긋봉긋한 꽃망울마다 기웃거리다 가지 너머 반쯤 벙근 또래 꽃송이를 발견하고는 잽싸게 직진한다. 머리를 처박고는 청매화 속적삼을 헤집느라 팔다리 솜털 자락에 노란 꽃가루를 잔뜩 묻혔다. 아직은 아니라며, 꽃잎 앙다물고 꽃술 오그려도 연초록 매화향이 상큼하게 번진다.
산기슭 진달래밭에는 소월 시인이 이미 다녀갔는가. 꼭꼭 다져진 층층의 하얀 어둠을 뚫고 발갛게 가슴 먼저 달아올라 터질 듯이 부푸는 봄. 치마 끝에 실바람이 스치면 붉은 교태로 온몸 흔드는 삼월은 온통 그리움의 눈물바다.
온 누리에 출렁이는 봄소식. 메마른 가지에는 젖니 같은 잎사귀 몽글몽글 돋고 있다. 강가 뾰족이 창끝을 올린 갈대촉의 떨리는 몸짓 파동에 물꽃판이 동심원을 그리며 달려간다. 마른 부들 밑뿌리를 더듬던 물닭, 논병아리도 강바닥에 갓 돋아난 수초잎을 찾는 자맥질이 분주하다. 비오리, 쇠오리는 물속에 상반신을 처박고 앙증맞은 궁둥이를 하늘 향해 치켜들었다. 물가 버드나무는 다람쥐 꼬리 같은 연둣빛 꽃방망이를 촘촘하게 매달았다. 연둣빛이라지만 초록과 파랑과 노랑을 오묘하게 버무린 빛깔. 어쩌면 자연은 저렇게도 평화로운 마음을 빚어낼 수 있을까. 그 위로 떼로 나는 참새들. 수수한 옷맵시에 조잘조잘 정겹다. 버드나무 군락 속에 몸을 숨긴 낯선 새들도 왁자지껄 목청 돋우어 봄빛 자욱한 강자락에 음향 하나 더 보탠다. 시각과 후각, 촉각과 청각이 여울지는 낙동강 하구의 총천연색 합주곡.
팡, 팡! 눈치 재바른 벚나무의 팝콘 신호탄이 터졌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화방창萬化方暢 꽃물결의 염기艶氣 경쟁에 세상이 달떠 오른다.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꾸는 진분홍 복사꽃 어깨 위로 뭉게구름을 피운 백목련은 온 동네 눈길을 다 끌어당긴다. 샛노란 바람개비를 돌리는 개나리꽃 아래, 동백나무 짙붉은 꽃송이는 노란 종소리를 울리며 위태위태하게 짧은 목을 가누고 있다. 때 이른 조팝꽃도 몇 알 끼어들었다. 그 너머 명자나무 빼곡한 가지 사이로 처녀꽃 몇 송이가 수줍어 얼굴을 붉힌다.
춘분도 지났으니 하루를 걸어가는 해님 발걸음도 여유작작이다. 따스운 햇볕이 이마 위에 옹종거려, 양지바른 강둑 아래 키 낮은 벚나무가 하르르 꽃잎을 날린다. 그리운 날들의 연분홍 손톱이 모시나비 날개로 흩어진다. 봉숭아 꽃물들이던 아름다운 시절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눈을 살포시 감으면, 물안개 아련한 세월 저편에 까르르까르르 방울웃음 쏟아내며 내달리던 추억의 강둑길이 이어진다.
흐르는 물길 만큼이나 인정도 맑고 깊어, 조약돌 한 개만 던져도 온밤 내내 두런대던 강마을. 꽃빛 수줍음이 내닫던 긴 강둑에도 세월의 된바람은 쉼 없이 불었지. 시절 따라 바람 따라 물길 흘러가고, 파란 하늘을 받쳐 구름장도 흘러가고, 별빛이 잠기던 밤의 사랑 또한 흘러가고….
산자락 굽이굽이 끊임없이 물길 흘러가도 강물은 여직 푸르르고, 봄볕은 파랗게 강둑에 살아 아지랑이로 돋는구나. 뒷모습 아쉽게 보이며 순이, 철이 다 떠나갔어도 강둑은 예 그대로 앉아 풀꽃들을 피웠구나.
그리움의 꽃빛 자욱한 풍경 속에 사람들의 세월 실은 발길도 봄빛만큼 다사롭다. 삼삼오오 꽃길 따라 쫑알쫑알 거니는 사람, 꽃그늘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얼굴 맞댄 사람, 언덕배기에 퍼질러 앉아 무념무상 봄나물을 캐는 사람….
버들잎에 살랑대는 다정多情한 봄바람의 속삭임에 다감多感한 풀잎의 몸짓 화답이 살갑다. 벚꽃잎 내려앉은 길섶, 무릎 낮추어 살펴보니 초롱초롱 눈빛들이 젖먹이 옹알이 같은 풀꽃웃음을 건넨다. 노란 씀바귀 듬성한 꽃잎 옆에 하늘색 봄까치꽃이 말똥말똥 쳐다본다. 제비꽃도 보라색 댕기머리를 맵시 있게 묶었다. 절로 자란 유채꽃도 성큼한 키 높이로 샛노랗게 일어섰다.
고개를 드니 저만치 너른 잔디밭 가장자리에는 봄맞이 땅따먹기가 시작되었다. 마른 잔디 사이로 새파란 클로버 특공대가 군데군데 펼치는 게릴라전. 이미 방패로 뒤덮은 무성한 잎 사이로 가녀린 자루를 한 뼘이나 빼어올려 하얀 꽃방망이를 흔든다. 잔디밭 가운데서는 민들레도 자리잡았다. 잎보다 먼저 피운 동그란 꽃에서 노란 연막탄이 피어오르고, 때마침 불어오는 실바람에 고공高空의 침투 임무를 띤 꼬마 공수대원 한 무리가 명주실 낙하산을 펼친다.
살랑, 명주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의 춤사위가 어지러워진다. 한낮 기온이 오르면서 강바람이 방향을 바꾸는가 보다. 사향노루 요정들이 꽃잎으로 뛰어노는 강둑. 겨우내 일천삼백 리를 숨죽여 웅크렸던 낙동강 긴 물길은 꽃향 그윽한 윤슬로 조각보를 펼쳤다. 빛과 향기와 소리가 어우러져 출렁출렁 남실남실 진양조 선율旋律로 흐르는 강. 세상사 기쁨 슬픔 꽃잎으로 엮은 물길, 그 강둑 걷는 사람도 형형색색 꽃송이다.
<작법 노트>
*작법 미학 - 즉물시에 대응하는 즉물수필卽物隨筆의 시범적 창작
*작품의 의의 : 수필 미학의 본류는 지적 감동이 아니라 언어미학임을 제시
1. 제재 : 강변 이른봄의 파노라마 서경
2. 구성 : 공간 이동의 병렬적 4단 구성 / 이미지의 수미상관
기 – 충만한 봄의 서경 /승 – 다채로운 봄빛 서정의 공간이동
전 – 봄빛 재소환/ 결 - 강둑길의 상춘객
3. 문체 : 감성적 언어의 정감적 분위기 구사
이미지와 공간 이동에 연쇄법 사용
어조 변화를 위한 조사 생략과 다양한 종결어미 활용
4. 서정적 감성 : 장면마다 선경후정先景後情 전개로 시적 감성 발현
소재의 비유적 형상화 및 시각, 청각, 촉각의 융화 및 음성상징 활용
5. 주제 :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융화된 강변의 봄빛 서정
<작품 예시 5 - 신변기>
*일상의 서사
입춘 꽃망울
학창 시절, 내 가슴을 그렇게도 설레게 했던 그 여학생과 50년 만에, 그것도 단둘이 마주앉았다!
삶의 연륜이 우아하게 묻어나긴 하지만 여전히 나직나직한 목소리에 동그란 얼굴, 눈웃음 어린 실눈, 작게 오므린 입술은 청초했던 옛 모습 그대로다. 새침데기 분위기도 여전하다. 밥상 너머 그녀와의 거리는 70센티미터 남짓. 온돌방바닥의 좌식 식탁이라 발끝을 살짝만 옴지락거려도 전신마비가 될 수도 있는 지근거리至近距離다. 단둘만의 여유 시간은 운이 좋아도 길어야 10여 분. 살짝 두근거리는 심장을 빠져나온 뜨거운 촉수는 회상의 아련한 꽃밭 속을 헤집는다.
하긴 2020년 올겨울에는 실종된 혹한으로 때 잃은 꽃들이 강기슭에도 많긴 하다. 덩달아 회춘의 꽃망울이 내 가슴 속에 벙글고 있다. 뜻밖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라 엄동설한 춘화발嚴冬雪寒春花發인가. 그렇지, 오늘이 묘하게도 입춘이지. 반드시 제 몫을 한다는 입춘 추위는커녕 봄보다 더 따듯한 날씨다. ‘코로나 19’에 온 나라가 마스크로 도배를 했지만, 오늘은 입춘대길立春大吉의 시발점 아닌가. 여러 명의 지인들로부터 얻은 입춘방立春榜 덕택인 모양이다.
이미 열흘 전에 만개한 매화나무를 본 적이 있다. 자식들과 함께 설을 보내기 위해 시골 산장으로 가던 날, 마을 어귀에 만발한 매화나무들이 있었다. 눈 밝은 내가 먼저 탄성을 질렀고, 미심쩍어하던 아내는 승용차가 가까이 접근하자 맞장구를 쳤다. 아직은 양력 정월이 아닌가. ‘날씨나 매화 중에 분명히 한 놈은 제정신이 아닐 거야.’라며 우리는 즐겁게 감상했다. 그러면서 산골집 매화는 어떨지 궁금해하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현관 앞 양지바른 곳에 북을 돋우어 아담하게 심어둔 매화.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산 일년생을 화분에서 땅으로, 이리저리 옮기면서 43년째 키우고 있는 우리 매화는 아직 꽃망울이 팥알 굵기다. 그럼 그렇지. 정월 하순의 꽃망울 크기는 이게 정상이지. 세상이 헛돌아도 시절 파악은 올바르게 하는 기특한 녀석이다. 매화는 꽃이 늦게 피어야 꽃샘추위 폭탄을 피해 열매가 튼실해지거든. 혹한을 이기고 피는 매화는 언제 보아도 살갑다.
그러나 아무리 가슴 두근거려도 반세기 만에 만나 속마음 활짝 열어보이는 이야기꽃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 더구나 앞에 앉은 사람은 겹겹 꽃잎의 이름난 새침데기다. 의례적인 덕담으로 가슴 속 꽃망울을 다독이지만 겸연쩍은 듯 도란도란 주고받는 정담情談은 반세기 저편 그때, 대학 캠퍼스의 상큼한 향수를 불러들인다. 풋풋한 새내기 시절, 짝사랑으로 꽁무니를 줄기차게 졸졸 더듬다가 퇴짜를 맞았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밭둑에 절로 자란 가시오이 촌놈이었고 그녀는 도심의 온실 속 참나물이었다. 잎과 잎이 부딪쳐도 내 잎에는 가시가 있었고 참나물 잎망울엔 꽃멍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남은 학창시절 내내 내 가시를 낱낱이 도려내면서 그 자리에 스스로 멍자국을 만들었다.
우리 둘 다 속잎으로 멍을 가리고 겉으로는 데면데면한 눈인사 속에서 학창시절이 다 지나가고, 서로 다른 강줄기는 산을 휘돌고 들을 에돌아 세월의 굽이를 흘렀다. 이따금 첩첩 산 너머에서 옛 참나물 향취가 강줄기 속에 소문으로 섞여들면 물낯바닥에도 멍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새삼스레 일렁이는 물굽이가 없지는 않았다. 옹이진 고목이 조각품이 되듯, 세월 실은 강물, 강물 실은 세월 속에 어느덧 그 흉터 자국이 은빛 금빛 반짝이는 윤슬로 채색되는 강의 하류에 이르렀나 보다. 더불어 우리도 넓어진 강폭에 마음의 거룻배를 띄우고, 깊어진 수심으로 생각의 노를 저어 추억의 강나루 이곳저곳에 닻을 내리는 연륜이 되어 있었다.
잃어버린 사람 없이, 특별히 몸 아픈 곳 없고, 얼굴에 행복꽃잎 아른거리는 모습에 정담의 화제는 자연스럽게 액자 구성으로 좁혀지고 있다. 이래저래 기본적 소문은 서로 듣고 있었겠지만 내가 자식 소식을 농담조로 건넸다.
“자식은 아들 하나, 머시마 하나. 그렇게 끼리끼리 짝지어 제 새끼 데불고는 단군의 후손으로 자~알 살고 있는 모양입디다.”
“난 사내 하나가 더 있어요.”
그녀는 짧은 한마디로 눈빛 마주치며 볼웃음을 지었고 난 크게 웃었다. 살랑, 강바람이 스치자 강둑 풀잎들이 살짝 옷깃을 비볐는가. 딸 없는 집안의 동병상련을 주고받은 뜻밖의 농담 후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직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은 식탁 위에 그녀는 손가락을 곰지락거리며 무심한 낙서를 하고 있다. 연분홍 손톱은 세월의 꽃잎이 되어 내 낡은 앨범 속 흑백사진을 낱낱이 더듬으며 하르르하르르 흩날리고 있다.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의 숱한 사진들이 동영상으로 되살아나 잔물결로 출렁이기 시작한다.
문득, 방문 너머의 왁자한 소리에 섞여 미닫이가 열리더니 대학 동기들 일여덟 명이 우르르 방으로 들어선다. 다들 어지간히 약속 시간에 맞춰 사는 모양이다. 졸업 48년 만에 처음 하는 지역 번게팅. 여학생들끼리는 자주 어울렸지만 남학생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단다. 낯선 듯 낯익은 얼굴도 있고, 낯익게 낯선 얼굴도 있다. 강물은 흐르면서 폭과 깊이는 달라지더라도 본래의 물빛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음식이 차려지고 후식까지 끝내는 긴 시간 동안, 세월의 폭과 깊이는 그대로 지닌 채 모두들 강물 줄기를 최상류 추억의 계곡으로 역류시키고 있었다. 우리가 갓 입학하고 무시로 어울렸던 그 계곡에는 새잎들이 앙상한 가지마다 젖니를 앙증스럽게 내밀고 있었고, 교정의 젊은 매화나무엔 하얀 꽃망울을 헤집으며 벌들이 잉잉거리고 있었다. 초겨울 졸업여행 때 지리산 어느 산사 큰 방 한 칸 숙소에서 이불도 없는 혼숙을 하던 밤, 오르르 떨던 싸늘한 한밤중에 군불을 지핀 촌놈의 이야기도 되살아났다. 마주앉은 그녀는 너무 뜨거워서 오히려 잠을 설쳤다며 웃는다. ‘무슨 놈의 절집 방구들이 그렇게 얇았는지.’ 내가 변명을 했다. 강물의 흐름을 잠시 막아버린 백발의 청춘들은 세월의 호수를 그려 놓은 식탁 위에 추억의 돛단배를 띄우고는 회춘의 꽃망울을 무수히 터뜨렸다. 웃음꽃 향기가 방안에 자욱했다.
내 앨범 속 사진들을 보내달라는 당부와 함께 잘 가시라는 눈인사를 떨어뜨려 놓은 부산 서면 문화의 거리. 그 여운을 길게 느끼면서 낙동강 하굿둑을 건너는데, 세월 실은 온갖 물길이 섞여 맴도는 난바다 저 멀리, 꽃잎 같은 배 한 척 수평선을 아련히 넘어가고 있었다. 꽁꽁 언 땅에다 새잎을 곧추세운다는 입춘立春. 가슴같이 따뜻한 날씨를 견주어보니 산골 우리 집 45년생 매화나무에도 지금쯤은 꽃망울이 콩알만큼 굵어졌겠다.
<작법 노트>
*작법 미학 – 탈脫신변잡기를 위한 문학 미감을 구현
- 제목 「입춘 꽃망울」 = 봄 + 미완未完의 사연
- ‘그녀, 아내, 나’ 3인 외 연관된 사람들의 마음을 고려한 안전장치(!) 마련
1. 제재 : 50년 만에 만난 학창 시절 옛 여친과의 정담
2. 구성 : 3단 추보식, 입춘 이미지의 수미상관
기 : 직설적으로 과정 제시하며 독자 궁금증 유발
실체적 사연은 안개로 피우면서 복선伏線 깔기와 서정적 견인
서 – 긴 사연들의 추보식 전개
결 - 만남의 여운
3. 표현 : 서사에 문학 미감을 위한 고명 장치를 듬뿍 혼용
내 신변의 안전(!) 장치 동원 - 결혼 1주년 기념의 매화
4. 서정 : 싱그러운 봄꽃의 이미지로 전편을 장식
5. 주제 : 만년에 만난 학창 시절 짝사랑 동창생과의 짧은 정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