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또 하나의 시작] 유빈 김성녀 시인 인터뷰
Q: [마흔,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시집의 제목에 대한 소개와 시인으로 활동하게 되신 계기 그리고 문학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 첫 시집 출간을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집 제목에 대해 질문하셨는데요. "마흔,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문구는, 제가 삼십 대 후반에 저의 사십 대를 기대하며 저 자신에게 던진 화두였어요. 저에게 이십 대는 그야말로 사랑과 야망, 탐색과 방황으로 화려했던 시절이었다면, 삼십 대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성장해 가느라 통증이 심했던 시절이었어요. 제 꿈과 가정생활 사이의 간극 때문에 갈등도 많았고요. 그래서 저는 사십 대가 되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좀 더 현명해지리라는 기대를 했던 것 같아요.
꼭 문자적으로 마흔이 아니라, 마흔으로 상징되는 인생의 중년에도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저 자신에 대한 위로, 내지는 각오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3, 40대에 쓴 시들만을 모아 "마흔, 또 하나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엮게 되었습니다. 이 제목을 달고 있는 제 시는 제가 마흔 번째 생일을 맞으면서 저의 감상을 적은 시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시인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좀 단순해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문학이 낯설지는 않았어요. 특히 소설은 늘 화제작을 놓치지 않고 찾아 읽었고요. 저는 원래 단행본 영어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번역가였던지라, 우리말 어휘와 문장력을 좀 더 키울 생각으로 몇 권의 시집을 일부러 사서 읽은 적은 있어요. 또 외국 생활 중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그리워 인터넷에서 시를 찾아 읽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를 쓴다는 건 왠지 저와는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았어요.
그러다가 삼십 대 후반에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알게 모르게 쌓였던 상처들, 또 아름다운 추억들이 시로 표현되기 시작했어요. 정말 시가 쓰나미처럼 저에게 덮쳐온 시기였어요. 거의 영적인 경험과 비슷한, 참 특별한 경험이었죠. 저도 모르게 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면서 많은 치유가 있었어요. 그렇게 얼떨결에 시 쓰기가 시작되었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문학의 본질인 '카타르시스'를 그야말로 유감없이 경험했던 시기였어요. 지금도 저는 시를 쓰고 있으면 마음이 깨끗이 씻겨지는 느낌이에요. 제 시 중에 '시 쓰는 밤'이라는 시가 있는데요. 거기에 제가 시를 쓰는 이유, 제가 생각하는 문학의 본질이 잘 나와 있습니다.
'호호 불어 맑게 닦은 유리창처럼 / 시를 쓰면 내 마음이 화창해진다 / 숨어 있던 나를 찾아 사뭇 반갑고 / 아직도 거둬야 할 내가 있기에 / 남은 목숨 고스란히 소중해진다.'
정말로 시는 제 마음을 맑게 씻어 주고, 저 자신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세상사로 피곤하고 지친 날에도, 잠시 짬 나는 시간에 시를 쓰고 다듬다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행복감이 몰려옵니다. 아마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이 다 그렇게 씻김(카타르시스)과 치유의 힘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출간기념회에서 유빈 김성녀 시인, 사진: 통신원]
Q: 2007년 캐나다 한인문인가협회 주최의 문예상 수상, 2021년 한국예술문학상을 받으셨는데요. 두 수상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2007년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가 주최한 문예상은, 말 그대로 이 문학가협회에서 해마다 5월에 문예상 발표를 하고 당선자들은 협회의 회원이 되어 함께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는 등단 기회입니다. 그리고 한국예술 문학상은 문학 계간지 [열린 문학]에서 1년에 한두 명씩 신예 작가를 선정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문학상입니다.
Q: 스스로 부여한 이름, 유빈의 뜻은 무엇인가요?
A: 제 필명이 '유빈'인데요. 부유할 부(富), 가난할 빈(貧), 이렇게 극과 극의 의미가 나란히 병렬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영감을 얻은 이름이에요. 시인은 왠지 도인 같은 자세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든 초연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터득하는 삶, 그런 지혜가 제 시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표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저 스스로 지어준 필명입니다.
거기에 의미를 좀 더 보탠다면, 우리의 삶 속에 공존하는 모든 대립의 정황들, 가난과 부유뿐만 아니라, 현실과 꿈, 개인과 사회, 가정과 직장, 자아와 타인 등, 서로 대립하는 삶의 영역들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갈등하기보다는 잘 통합되어 조화로운 중도의 삶으로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좀 거창하지요?
제가 가장 현실적인 직업 중의 하나인 리얼터와 몽상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이라는 두 역할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살아가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싶은데요. 저는 이런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해서 참 좋습니다. 어느 한쪽만 살고 있으면 왠지 세상을 반쪽만 경험할 수밖에 없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요.
Q: 이민자로서 시 쓰기가 이민자 개인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요? 시집을 읽어보니, 녹록지 않은 이민자의 애환도 느껴지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힘든 시간 속에서 시가 태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시집을 통해 독자들과 어떤 소통을 하고 싶으신가요?
A: 이민자가 된 것이 확실히 시 쓰기에 도움이 되는 것 같긴 합니다. 뭐랄까요, 나의 정체성을 형성해 준 한국을 떠나 와 있어서, 약간의 비판적 거리가 생기고 그리움도 생기고 나의 추억들도 좀 더 객관화시킬 수 있어서, 좀 더 쉽게 시 쓰기의 질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 시에 드러난 애환들은 이민자의 애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저 인간이다 보니 겪는 애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타국의 봄'이나 '타국의 밤'처럼 대놓고 이국 생활의 낯섦을 소재로 한 시들도 있긴 하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어디서 어떤 형태로 살든 희로애락의 여정이기 때문에, 어디서 살든 삶의 애환은 시인들에게 좋은 시의 소재가 되는 것 같아요. 시를 쓰다 보면 애환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희망을 말하게 되곤 하거든요.
저는 그런 점들을 독자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조카 같고, 동생 같은, 3, 40대의 후배 여성들에게 '너만 힘든 게 아니야. 산다는 게 다 그래.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보람이 있고, 어려움을 헤쳐온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단다.'라고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폭넓게는, 유빈이라는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 생을 껴안고 살아가면서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함께 나누면서, 독자들도 자신이 헤쳐온 삶의 희로애락을 다시 한번 껴안고 생을 희망하며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지역 신문의 인터뷰 기사에서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 중에 '더불어 시쓰기' 운동을 언급하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자세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역 신문 인터뷰에서 밴쿠버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 ‘더불어 시쓰기’ 운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했는데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있죠. 일단 제가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져야 할 것 같고요. 가능하면 기성 시인들보다는 시 쓰기를 처음으로 시작하려는 분들과 함께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함께 좋은 시를 많이 읽어야겠죠. 그리고 시 창작에 대한 책도 함께 읽으며 토론을 하고요. 그러면서 각자 시 쓰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재미있고 보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시기가 곧 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Q: 첫 시집이 완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압니다. 두 번째 시집 계획은 언제인가요?
A: 첫 시집은 정말 출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좀 늦은 감이 있죠. 두 번째 시집은 제가 오십 대에 쓴 시들을 모아 출간할 계획입니다. 이번만큼은 너무 늦지 않고 오십 대가 지나기 전에 출간해야 할 테니까, 적어도 5년 이내에는 출간이 되어야겠죠. 한 번 해봤으니 두 번째 출판은 조금 더 쉬울 것 같습니다.
Q: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시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독려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어요?
A: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시를 시작하는 방법을 물어보셨는데요. 글쎄요.. 저도 이제 막 첫 시집을 낸 신출내기 시인이라 남에게 조언이나 가르침을 줄 수준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시를 즐기시기를 권합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창작은 감상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일단 좋은 시를 많이 읽으시고, 한 줄 쓰기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Q: 해외동포들에게 지면을 통해 소개하고 싶은 시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제 시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단연코 '육아일기'입니다. 문학적으로 가장 잘 쓰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마가 되어 내 아기에게 젖을 물릴 때의 그 행복감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가 되지 않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어요. 그 시는 지금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두 자녀는 이제 다 자라 이십 대가 되었지만, 이 시를 읽노라면 아직도 내 아가들의 젖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요. 반면에 제가 가장 저다운 시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사춘기-가을'이에요. 이 시에 나오는 은유들과 시의 구성이 제 맘에 쏙 들고, 약간의 유머와 해학이 장난기 많은 저답거든요.
유빈 작가 소개
유빈 김성녀(Sonya Chang)는 1965년 강원도 원통에서 출생. 강릉을 거쳐 서울에서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주리 주립대 언론대학원에서 광고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07년 캐나다 한인문학가협회에서 주최한 5월 문예상 수상. 2021년 한국예술작가상 수상. 현재 가족과 밴쿠버에 거주하고 있다. 전문 번역가, 부동산 컨설턴트, 시인.
2021년 7월 재외동포재단 스터디코리안 해외통신원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