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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서울,경기도 사찰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면 봉선사
중부고속도로의 구리방향인 강동대교를 건너 퇴계원 방향으로 직진하여 남양주시
진접을 지나 광릉수목원 방향으로 진입한 후 음식점들이 많은 곳에서 봉선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면 고찰 봉선사에 도착하게 됩니다.
봉선사의 역사를 인용해 보면 고찰임을 알 수 있죠.
》창건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께서 창건하고 운악사라 하였다.
》초창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 이라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하다.
》2창
서기 1592년 선조 25년의 임진왜란과 서기1636년 인조 14년의 병자 호란에 소실된 것을 서기 1637년에
계민 선사가 복구하다.
》3창
- 1950년 6.25사변으로 16동150간의 건물이 전소, 다시 복원 현재에 이르고 있다.
- 1959년 화염스님이 범종각을 복원하다.
- 1963년 능허. 운경 두 선사가 운하당을 복원하다.
- 1969년 운경 스님이 브르크 스레트로 요사 (복무실) 18평과 동별당 2평을 짓다.
- 1967년 오보명일의 시주로 주지실 현 후원)34평을 부로크 스레트로 짓다.
- 1970년 주지 운허 스님과 화주 운경 스님의 인권과 정문수행의 시주로 큰법당
30평을 복원하다.
- 1972년 주지 만허 스님때에 정문수행의 시주로 정중탑을 새로 세우다.
- 1973년 주지 만허 스님때에 정문수행의 시주로 방적당을 복원하다.
- 1977년 현주지 월운 스님이 정보현행의 시주로 개건당을 새로 짓다.
- 1978년 현주지 월운스님이 정보현행의 시주로 다경실을 새로 짓다.
- 1985년 여러 불자들의 동참으로 설법전을 지어 낙성하다.
- 1990년 동별당 2채를 해체하고 재건하다.
- 1993년 봄 문창섭 거사를 비롯한 불자들의 협조로 유치원을 지어 개원하다.
- 1993년 추석에 국고보조를 받아 현대식 화장실을 개축하다.
10여년 전에 보았던 봉선사의 입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군요.
먼저 예전엔 보이지 않던 정비된 주차장과 일주문이 보이고
차도와 인도의 구별이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예전의 차도 좌측으로 인도를 조성하여 인도의 양쪽엔 나무를 심어놓아 운치를 느끼게 합니다.
인도 좌측으로 제법 규모가 큰 연못을 조성해 연꽃을 심어 놓았으며
벼도 심어 놓았는데 벌써 벼의 고개가 숙여지고 누런색으로 변해갑니다.
논 위쪽으론 다시 연못이 보이고 주변엔 산책로까지 있어 예전과는 많이 변해있는 모습입니다.
지은지 얼마 안돼 보이는 일주문
부도
부도와 비석들
연꽃 유치원
인도겸 산책길
인도 좌측의 연못
당간지주의 흔적
느티나무를 지나며 보이는 회랑
느티나무를 지나며 뒤쪽에 보이는 청풍루
청풍루를 지나며 좌우측엔 사천왕상이 있는데 봉선사의 사천왕상은 돌이나 나무로 만든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되어 있다.
사천왕을 지나면 계단을 올라 큰법당을 만나게 되는데 대웅전이나 다른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큰법당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집니다.
큰법당
큰 법당에 이르기 전 우측에 보이는 방적당
방적당이란 스님들이 어느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낳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당우라고 합니다.
큰법당 앞에서 본 회랑과 선열당
운하당 역시 스님들이 어느 단계의 수행을 마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더 낳은 수행을 준비하는 곳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당우라고 합니다.
운하당 안쪽의 모습
사천왕을 지나 큰법당으로 으르며 뒤돌아 보면 2층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이곳은 설법전 입니다.
이곳의 앞쪽은 청풍루 라고 되어 있는곳 이지요.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는 3층석탑
큰 법당 전경
큰 법당의 단청
큰 법당의 불상의 모습
큰 법당의 단청과 풍경
지장전
원래는 어실각(御室閣)으로서 세조대왕과 정희왕후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에 복원하여 지금은 지장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장전의 불상
지장전의 벽화
지장전의 벽화는 이 그림외 총 10편의 그림으로 이루어졌으며 큰 지옥에서 고생하는 중생을
지장보살의 도움으로 보살핀다는 내용입니다.
지장전 풍경모습과 뒤쪽의 개건당
개건당(開建堂)이란, 봉선사를 창건하여 개산(開山)한 개산대공덕주 정희왕후 윤씨와, 중건공덕주인 계민선사와
정문수행을 모시기 위한 당우로서, 개산과 중건의 머릿글을 따서 이름한 것이며
현재의 조사전 전각이 원래는 개건당이었는데, 이 당우를 신축하여 개건당으로 사용하고
원래의 개건당은 조사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개건당만 있을 때는 스님(계민선사)과 속인(정희왕후 외)을 같은 당우에 모셨으나,
조사전을 지음으로써 스님은 조사전으로 모시고 속인은 개건당에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큰 법당 앞에서 본 설법전
삼신각
월초(月初)화상에 의해 1926년에 건립되어 6.25때 소실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이며
산신과 칠성 및 독성 등 세 분의 성인을 모신 전각입니다.
조사전
1977년 7월, 대시주 정보현행의 도움으로 삼성각과 동일한 규모로 지어서
원래는 '개건당'으로 사용하던 당우였으나 근래에 들어 그 아래쪽에 새로이 전각을 지어
개건당에 모셔졌던 봉선사의 개산(開山)과 중건(重建)의 공덕주들을 모시고
이곳은 조사전으로 장엄하여 계민선사와 월초(月初)스님을 비롯한
근대의 봉선사 조사스님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관음전
원래는 노전 스님이 머무는 노전채였던 것이, 6.25때 전소되었다가
정부의 지원으로 발굴조사를 거쳐 1999년 복원되어 지금은 관음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관음전의 불상
관음전의 벽화
관음전에는 이외에도 총 9개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중생을 위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좌측에서 본 설법전
큰 법당 전경
보물 397호 봉선사 대종
선열당
반지하의 후원(식당)을 신축하며, 그 위에 지은 당우이며
애초에는 객실의 용도로 신축하였으나 객실로는 지속적인 관리가 어려워
수좌스님들의 해제철 해랑방사(解囊房舍) 등 다각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회랑
식당의 담쟁이
샘터
연꽃이 필때 오면 보기 좋겠더군요
전원까페 이름이 뜰앞에 잣나무 입니다.
비빔밥,다양한 국수 감자전등 식사를 즐길수 있고 각종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습니다.
까페 내부1
까페 내부2
"옴"자 핸드폰 고리
반야심경이 각인된 은반지, 사진은 노랗게 금반지처럼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