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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잔디밭에서 빵과 우유로 허기진 배를 달래며.... |
바로 밴쿠버 시내로 들어가 Mt Co-op 으로 달려가 필요한 장비를 가격 책크하고 주변 장비점에서 싼 것만 구입하고 다시 Co-op 으로가 나머지 장비를 구입하고 나니 16:30경,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지만 머뭇거릴 시간도 없다. 긴축정책에 의하여 식당에서의 매식은 금지하였다. 한인식품에 가서 쌀과 김치를 구입하고 세프웨이에서 식량을 대충 구입하여 로키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도저히 배가 고파 참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구입한 빵과 음료를 주택가 잔디밭에 앉아 먹었다. 시차로 인한 피곤함과 졸음에 대책이 없으나 갈 때까지 가기로 하였다. 금석이가 운전을 하고 나머지는 고속도로 진입과 동시에 잠에 떨어져 버렸다.
약 한시간 반후 Hope city를 지날쯤 깨어났고 Boston bar 약 20km 전방도로상에 있는 휴식소에서 산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로 급한데로 라면을 끓여 먹고 팩킹 위주의 장비를 사용위주로 재 포장하였다. 이곳에서 하루 자고 떠나려 했으나 근호는 무엇이 바쁜지 로키에 두고온 애인이라도 있는지 밤새워 교대로 운전을 하며 가자고 한다. 결국 Kamloop에서 과속으로 페트롤카에 적발되어 경고장까지 받으며 달리니 연료가 달랑달랑 한다.
7월 27일 (화)
흰 눈을 쓰고 있는 롭슨봉 |
아침 6시 아슬아슬하게 Open된 주유소를 만나 Full로 채우고 재스퍼로 향한다. 배고프기는 이루 말할 수도 없고 눈도 쓰리고 아프다. 5번 도로와 16번 도로 교차지점의 강변에 멋진 휴식소(Rest Area)가 있어 급히 조식을 하여 찬도 없이 설익은 밥을 먹어 치웠다. 로키의 최고봉 Mt 롭슨을 보고 탄성과 함께 넋을 잃었고 엄청난 적설에 하얗게 덮인 벽을보니 소름이 끼치며 과연 이번 등반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자신을 잃기도 하였다.
옐로우해드 고개에서 시계을 한 시간 더 보내고 재스퍼에 도착하였다.(10:00) 에디카벨 캠프장으로 가기전에 지난번 원정때 신세를 졌던 유영인씨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준비한 조그만 선물과 회지를 전했다. 일기예보 듣는 방법을 알려 받고(일기예보 전화 써비스) 에디카벨 야영장에 가니 캠핑이 금지되어 있었다. (야영장이 아니고 피크닉 에리어)
주차장 부근에서 에디카벨을 살펴보고 유스호스텔(이하 Y.H)에 가보니 사용료가 1인 1박에 멤버 8불, 비회원 13불이라 하여 포기하고 15km 떨어진 (재스퍼 16km 남쪽) WABASO 캠프 그라운드에 1일(1박)에 $9.25에 5일간 예약을 하였고 캠프설치와 짐 정리가 끝난 후 푸짐한 점심식사를 하였고 그늘을 찾아 낮잠을 잤다.(17:00) 낮잠이 밤잠으로 이어지고 22:30경 별안간 쏟아지는 비에 깨어나 비단도리를 한다. 일어난 김에 야식을 하고 새벽 1시경 다시 잔다.
7월 28일 (수)
비가 오락 가락하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다. 그냥 잠만 푹 자고 피로회복에 힘써야 한다. 마음껏 자고 오후엔 재스퍼에 가 식량과 물컵등을 구입하여 캠프로 귀환 하던 길에 93-A 도로로 가 아서바스카 폭포를 보고 귀환하였다. 아서바스카강이 협곡으로 빠져들며 웅장한 폭포를 이루고 있다. 17:00 경 자동전화 써비스로 일기를 알아보니 앞으로 3일간 계속 비가 내릴 것이라 한다. 서울에 전화하여 앞으로의 일정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이곳은 하루 종일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니 일단 하산루트 정찰은 다녀온다 하였다.
19:00경 점심을 거른 저녁식사를 하고 옆 캠프에서 도끼를 빌려 장작을 하고, 빌린 도끼를 돌려 주러가 완용이와 말도 안통하는 두 아가씨와 두 시간 가량 카드놀이를 하였다.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 꼬마 셋을 데려온 부부가 한 밤 도착하여 빗속에 텐트를 치느라 고생하여 도와주어 텐트를 쳤건만 텐트로 비가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 캠프로 돌아와 팩을 가져다 다시 텐트를 바로 쳐주고 왔다. 커다란 후라이를 친 우리 캠프는 비면 비, 눈이면 눈, 태양이면 태양.... 모든 것이 전천후이다. 야식을 하고 텐트에 누우니 엄청난 비가 쏟아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어 낸다. 밤새 많은 비가 올 것 같다. 에디카벨의 북벽과 정상부에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다. 내일의 계획은 엉망이 될 것이다.
7월 29일 (목)
아침에 눈을 떴건만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09:00경 비가 그칠 때 쯤 식사를 한다. 하단 부 등반을 하려 했으나 시간이 늦었기에 근호와 둘이 북벽으로 다시 정찰을 간다. 신설이 덮여 깨끗한 모습으로 단장한 에디카벨의 북벽은 화창한 태양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있다. 북벽이 잘 보이는 곳으로가 쌍안경으로 루트를 확인한다. 워낙 먼 거리였기에 자세히는 볼 수 없었으나 결국 하단부에서는 볼트 위치도 몇 곳 찾았다.
날씨가 별안간 초가을 날씨에서 늦가을 날씨로 변하며 추위가 느껴진다. 추위에 쫓겨 내려와 재스퍼 장비점에 가 정찰결과 부족할 것 같은 하캔 4개를 추가 구입하고 캠프로 돌아왔다. 내일은 일단 빙원까지라도 등반을 하기로 하였다. 석식 후 20:00경 재스퍼에 다시 나와 지루한 시간을 달래며 신문을 보니 일, 월요일에 날씨가 좋아질 것이란 예보가 있었다. 21:00경 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아직도 밝은 시간에 새삼 놀라며 잔디밭에 나와 있는 순록과 사진도 찍고 캠프로 돌아온다. 22:00가 지났건만 아직도 해저물줄 모른다.
7월 30일 (금)
변함없이 밤새 내리던 비가 아침에 그치고 오늘은 유난히도 기온이 떨어졌다. 춥고 감기 기운이 있어 약을 먹었건만 별 효과가 없다. 조식 후 에디카벨 주차장에 11:50경 도착하여 금석, 근호는 장비를 챙기고 완용이는 마중을 간다. 12:10 하단 벽 출발점에 도착하여 바로 출발하였다. 근호의 보고를 받으니 총 5핏치 정도의 암벽등반 구간인데 대부분이 걸어가는 구간이고 약 2핏치가 5.8 정도의 동작이 꽤 나오는 편이라 한다.
약 2시간 후 하단을 끝내고 엔젤 빙하에 도착하였고 완용이와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전보고를 받아 상황을 알아보니 크레바스도 가까이서 처음 보니 신기하고 북벽 전체를 살펴보니 전 구간이 모두 낙석의 위험이 있는 푸석 바위이고 벽 사이사이에 큰 물줄기가 있고 그 사이로 등반 가능한 루트도 보이지만 가끔 빙원의 얼음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보인다 한다. 엔젤 빙원의 위쪽은 병풍을 둘러친 것 같으나 우측으로 갈수록 벽이 섰다가는 다시 경사가 낮아지고 제일 우측은 푸석 바위의 낙석이 빙원을 덮고 있다고 한다. 약 한 시간을 살피고 하강을 하며 하강확보 지점을 책크하니 정찰 땐 안보이던 지점이 꽤 많다. 볼트는 없고 주로 하켄으로 하강지점(확보지점)을 설치한 것으로 보아 기존루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16:00경 하강을 모두 끝내는 것에 맞추어 주차장으로 내려가 정찰조를 만났다(16:30) "그래, 어떠냐?" 하고 물으니 "할만해요."한다. "코스는 약간 우측으로 하지?" 하니까 "우리는 중앙의 직벽이 가장 긴 코스 4번 코스로 하기로 했어요." 한다. 캠프 귀환 길에 재스퍼에 나가 쇠고기를 구입하여 저녁식사에는 볶음밥과 철판구이를 먹으니 근호는 "이게 왠? 매일 명절?" 이냐고 한다. 내일은 노말 루트로 등반을 하며 하산 루트를 확인할 예정이다.
7월 31일 (토)
4-5시에는 기상을 해야 하건만 눈을 뜨니 8시다. 이곳에 온 뒤 자정 전에 잔적이 없다. 밤 11시가 되어도 훤하고 계속 둥근 달이 뜨니 어두운 밤이 없다. 부지런히 움직여 9시경 캠프를 떠나 에디카벨 Y.H에 도착, 주차하고 바로 출발하였다.(09:50) 바로 계곡에 내려서니 카벨호수와 에디카벨 북벽의 어우러짐에 빠져 사진 찍기에 바쁜 줄도 모른다.
에디카벨 남쪽 써크 보울에서 웨스트 릿지 정찰중 |
잘 닦인 트레일을 따라 약 1시간 가니 '반텐트 크릭'이 나타났건만 계곡으로 길이 없어 코리안 스타일로 부근을 헤메며 찾던 중 승마 관광객이 십여명 온다. 그새 근호가 국제어인 바디랭귀지와 서툰 영어로 승마 안내인에게 길을 물어 알았다. 약 300m 되돌아가니 숲 사이에 작은 길이 있고 자세히 보니 입구에 작은(직경 10cm정도의 원) 표지판도 있었다. 그곳에서 약 3km 정도 숲 속을 들어가니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좌측 길로 택하여(지도를 보고) 한 시간 정도 가니 '왠? 텐트, 왠? 비박' 신고 후 허가를 받은 것인지? 도둑야영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없고 텐트만 덜렁 남아 있고 배낭에 후라이(판쵸)만 덮어 놓은 것도 있다.
사진에서 보던 써크보울(분지)이 보이고 남서 벽이 보이지만 모든 것이 하도 비슷비슷하여 확인코자 한 구비 더 돌아 호수를 확인하고 되돌아 써-크 보울로 돌아오니 금석이는 써-크 보울 쪽에서 오고 있다. 지금 노말 루트엔 몇명의 등반객이 하산중이다. 설악산의 무너미 고개 정도의 경사도를 가진 돌길이다. 일단 주능선에 올라서면 눈이 있을 뿐이지 별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하산 루트(웨스트 릿지)를 확인하고 트레일을 되돌아오는 길에 2명의 남녀 등산객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올라간다. 주말이라 그런 것일까? 트레일에서 간혹 배낭을 맨 등산객을 만난다. 16:20 경 Y.H 주차장에 도착하였고 캠프 귀환시 재스퍼에 들러 신문을 보니 월/화/수 삼일간 일기가 좋다고 예보되어 있었다. 등반 중 필요한 간식, 행동식을 보충 구입하여 캠프로 돌아 왔다.
8월 1일 (일)
이곳에 온지 일주일째 되는 날 지금껏 보지 못한 청명한 날씨이다. 내일도 모래도 일기는 좋을 것이다. 이곳의 일기예보는 거의 정확하다. 동쪽에서 발생한 일기가 그대로 서쪽으로 옮겨오기 때문에 정확히 맞춘다. 의논하여 내일을 등반 일로 잡고 공격(등반) 대원인 금석, 근호는 캠프에서 빨래도 말리고 장비도 정리하고 낮잠도 자라하고 완용이와 같이 재스퍼 외곽 지역으로 관광을 다녀온다. 마린호수와 주변의 산들과 또 다른 호수와 또 다른 산..... 일찍 캠프로 돌아와 산행 준비를 하였다.(15:00경) 모든 장비 식량, 내일 새벽 식사 준비까지 마치고 21:00 전에 취침하기로 하였다. 낮에 재스퍼에서 본 에디카벨 북벽은 너무 깨끗하였고 정상부의 눈은 어제보다도 더 많은 것 같다.
근호의 독백 "우리의 첫 목표인 에디카벨 북벽을 등반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왠지 지금의 심정은 빚장이에게 쫓기는 기분이라 편치 못하다. 마음 속 한구석엔 설레임과 걱정이 함께 한다. 차근차근 눈앞에 닥친 문제를 풀다 보면 정상에 설 것이고 침착하게 하산 루트로 내려오면 트레일이 있을 것이고 트레일까지 마중 나온 형들과 이야기 나누며 주차장에 도착하여 재스퍼로 차를 달려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피곤한 몸과 마음을 풀겠지? O.K 거기까지" 완용이는 목각인형을 깍으며 "내가 인형을 만들어 줄테니 등정시비에 말리지 말고 정상에다 묻어"하며 우스개 소리를 한다. 실수로 코가 잘려 양각에서 음각으로 변하는 목각의 코를 보며 내일의 등반을 상상해 본다. 내일 등반을 하기로 하고 금석, 근호는 일찌감치 텐트에 들여보내 자라고 하지만 늦게 까지 뒤척이는 소리가 잠을 못 이루는 것 같다.
8월 2일 (월)
어제 21시경 강제로 잠들려 하니 어렵다. 결국 중간에 깨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새벽 1시 30분경 깨어 기상 예정 시간인 2시까지 조용히 기다리다 잠이 들어 2시 40분에 일어나 볶음밥을 준비하고 금석, 근호를 깨워 한 술 뜨고 챙겨 놓은 장비를 싣고 캠프를 떠났다. 3시 30분 아무도 없고 찬 공기만 맴도는 에디카벨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사람만 보면 뛰어 나오는 다람쥐와 먹이를 기다리며 머리 위를 맴돌던 새들도 지금 이 시간엔 없다. 5시 등반을 시작하려면 약 한 시간 여유가 있다. 차 속에서 한 잠씩 더 자라 하고 주차장을 서성이며 오늘 등반을 무사히 마치기를 기원해 본다.
4시 20분 또 한번 깨워 금석과 근호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출발점으로 보내고 카메라와 필요한 장비를 챙겨 전망대 쪽으로 이동하였다. 랜턴 불빛이 바위를 오르기 시작한다. 하단이 거의 끝날 무렵 나의 시야에 두 대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고, 6시 20분경 하단 부를 마치고 빙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전기를 통해서 소식을 듣는다. 이정도의 속도라면 오후 2-3시경이면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일몰 전에 캠프로 돌아 갈수 있을 것 같았다.
에디카벨 북벽 전경 점선이 등반 루트 |
간식을 하며 동계장비를 착용한다는 무전이 온다. 한 시간 쯤 지난 후 예정된 코스의 밑 부분에 커다란 크레바스가 있어 우회하여 진입해야 한다는 교신이 왔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전망대에 있는 나와 완용이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망원경으로 찾아보나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찾다보니 내가 예상한 것 보다 훨씬 더 우측에서 나타났다. 크게 우회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 하단과 달리 속도도 없고 자세도 엉성해 보인다.
상상외로 시간을 소모하며 한 핏치 한 핏치 등반을 하고 있다. 직선거리 약 150m의 루트를 횡단 500m에 사선으로 등반을 하니 3시간 정도가 지났다. 이런 속도라면 오후 6시경이나 되서야 정상에 오를 것 같은 예감이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수직암벽의 등반이다. 넓은 벽에 들어선 작은 인간은 시야가 좁아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을 못하고 헤맨다 한참을 오르다 다시 내려와 무전으로 코스를 물어오나 멀리서 바라보는 나는, 망원경 속에서도 살펴보기 어렵다. 한 번 눈을 떼면 다시 찾기 어렵다. 수많은 관광객이 우리 앞을 지나며 묻는다. "망원경으로 무엇을 보느냐?"고 "우리 친구들이 저 벽에 붙어 오르고 있다"고 대답하면 환호성과 함께 망원경을 대고 찾아보고 우리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내며 부러워하지만 나의 망원경에 잡힌 대원들의 동작과 한동안 말이 없는 무전기로 보아 정상적 컨디션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니 나의 마음은 착찹하기만 하다. 작은 설벽을 기력 없는 모습으로 등반을 하니 등반을 포기 시키고 싶었고 다음에 다시 등반을 하자고 하고 싶었으나 아직도 시간은 오전이라 차마 말은 꺼내지 못하였다.
이제는 에디카벨 북벽의 크럭스 부분이다. 약 300여m의 수직 벽에 오버행도 버티고 있어 한 번 코스를 잘 못 들면 큰 고생을 하여야 하는 곳이다. 일단 수직 벽에 붙으면 지금 등반장비로서는 빽이안된다. 죽으나 사나 올라야 하는 기점이다. 300여m의 구간을 몇 번씩이나 루트를 변경해 가며 무려 7시간이 경과 한 후에야 넘어섰다. 이젠 다시 빙, 설, 암 구역이라 일단 경사는 수직에서 조금은 눅었다. 완용이와 나는 12시간 동안 가슴이 뛰고 침이 마르고 걱정이 되어 심장병이 걸릴 것 같았다.
오후 7시가 지났다. 대원들이 수직암벽을 오를 때 망원경 속에 비친 모습을 보며 당부와 위로와 공갈과 욕설까지 막 섞어 가며 무전 교신을 하였다. 어차피 관광객들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를 것이다. 하얀 빙설벽에 뚜렷이 나타나는 대원들의 등반 모습은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약 40m걷기를 경사는 있지만 30분 정도가 소요되어 오르고 있다. 앞으로 남은 구간이 600여 미터 지금 체력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7시간 정도가 더 소요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체력은 갈수록 저하 될테니 끔찍하다. 도저히 오늘 못 오를 것 같다. 밤엔 기온이 떨어질 것이다. 비박을 강행하려면 눈사태 위험이 적은 지금의 장소에서 해야 한다. 하지만 비박 장비도 시원치 않다. 무작정 체력이 되는 한 올라가야 한다. 등반자 자신의 심정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엉망이겠지만 밑에서 바라보는 완용이와 나도 피가 마르는 심정이고 차마 볼 수 없어 안절부절이다.
이제 일몰이 멀지 않았다. 이젠 등반자가 루트를 확인 할 수 없게 된다. 나는 머리 속에 앞으로 올라야 할 루트를 자세히 그려 놓고 대원들의 위치를 정확히 감 잡아야 한다. 대원들의 모습이 벽에 가려보이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지금 간식을 먹고 있고 지금부터는 금석이가 선등을 하여 오를 것이란 교신이 온다. 근호의 무전기는 고장이 났는지 벌써 몇 시간 전부터 말이 없다. 잠시 후 대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서히 해가 지기 시작하며 어둠이 깃든다. 해가 지기 전 다시 한번 올라야 할 루트를 확인하고 대원들에게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앞에 보이는 바위를 좌측으로 돌아야 다음 코스가 편하고 당장 우측이 쉬우나 그 위에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니 좌측으로 돌고 다시 설벽이 나오면 그 곳에서 우측으로 돌아 오르면 암벽이 없는 믹스크라이밍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순수한 설벽이 나온다." 하며 계속 떠들어 댔다.
22:40경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벽에선 랜턴 불빛이 반짝인다. 우리도 랜턴을 켜서 벽쪽으로 비추어 놓고 바위에 올려 고정시켜 놓았다. 전구도 할로겐램프로 바꾸어 놓았다. 등반 시작한지 19시간 지났다. 이제 막 금석이가 설벽 구간에 돌입하고 있다. 근호의 체력은 그야 말로 엉망인 것 같다. 완용이에게 카메라를 차에 두고오겠다 하고 자리를 뜬다. 차마 계속 볼 수가 없다. 한참을 안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진전은 있겠지 하는 심정에서이다. 우리가 있는 곳은 달빛에 랜턴 없이도 걷기 불편 하지 않다. 주차장 안내판에 있는 에디카벨 여사의 동판에 대고 빌었다. "제발 무사히 등반을 마칠 수 있게 도와 주십사하고 어떠한 고생도 지금 이 순간 대원들이 겪고 있는 고생보다도 더한 고생을 하더라도 제발 내려올 수만 있게 해 달라"고 빌었다.
두개의 불빛이 설벽 중간쯤에서 서로를 비추고 있다 얼마 후 다시 만나고 다시 멀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기를 수차례 이제 거의 끝 부분이다. 그래도 그 어둠 속에서 예상했던 코스로 정확히 가고 있다. 바로 올랐으면 커다란 커니스에 걸려 등반이 어려웠을 텐데 정확히 커니스가 없는 부분으로 우회하고 있다. 정신까지 약해지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날짜가 바뀌어 8월 3일 새벽 2시 두개의 불빛이 능선 상에 모였다. "휴-" 긴 한숨이 나온다. 이젠 조금은 안심이다. 침낭을 펴고 드러누워 본다. 이젠 침낭 속에 들어가 지켜 볼테다. 완용이는 차에 내려가 자라고 하고 나는 침낭 속에 누워서 지켜보았다. 15분후 금석이로 부터 정상이라는 무전이 왔다. 생각보다 빨리 정상에 닿았다. 능선 부분은 생각보다 상태가 좋은 것 같단다 . 이어 실로 8시간 만에 근호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등정의 기쁨을 나눌 시간도 여유도 기력도 없다. 일단 계속 이야기하기로 하고 교신이 끝나는 부분에서 무전기를 끄기로 하고 계속 이야기하려 하나 막상 할 말도 없다.
10분전에 내려간 완용이는 세상모르고 잠에 떨어져 있다. 완용이를 뒷좌석으로 보내 눕게 하고 Y.H주차장으로 내려갔다. 4시까지 기다리다가는 잠들어 버릴 것 같아 따뜻한 커피가 먹고 싶다는 금석이 말이 생각나 캠프로 차를 달려 커피와 설탕을 챙겨 다시 Y.H주차장에 돌아오니 03:45, 15분만 쉬었다 가야지 하고 대략 써-크 부근이나 먼저 번 정찰 때 등반객 야영하던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중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고 깜짝 놀라 깼을 때는 6시가 되었으니 큰일이다.
급히 완용이를 깨워 배낭에 커피, 버너, 간식을 조금 넣고 뛰듯이 달리듯이 걷는다
등반조는 얼마나 심신이 괴로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메인다. 반덴트 크릭 계곡 길로 접어들어 청각을 기울여 인기척을 느끼려 하며 계속 뛰듯이 걷는다. 7시25분, 반덴트 크릭으로 2km정도 들어가 등반조를 만났다. 한순간 안심이 되었고 핏기 없고 지친 모습을 보니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그 모습에 인사 치례라고 금석이는 "형! 곧 내려 갈 텐데 무엇하려 올라와요" 한다. 근호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물을 급히 먹고 체하여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 자리에 앉아 물을 끓이고 설탕을 타서 마시게 하고 손톱을 따서 피를 내는 응급처치를 하였다. 조금 나은 것 같다 하여 배낭을 바꾸어 메고 하나의 등반을 마쳤다는 기쁨에 들떠서 Y.H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 등반 시작한지 29시간 만이고 출발한 지 29시간 30분 만에 제자리에 돌아왔다.
8월 3일 (화)
이미 오늘이 된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이 있던 새벽이였건만 이제는 캠프에 돌아가 캠프를 옮겨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모두들 차에 앉자마자 떨어져 버린다. 캠프에 돌아와 정리를 하는 중에도 근호는 식사도 안하고 차 속에서 잠에 취해 인사불성이다. 캠프를 정리하고 짐을 차에 옮겨 실으려 하니 근호는 내려와 메트리스를 깔고 다시 누워 버린다. 12:40경 미수가루를 타서 근호에게 먹이고 캠프를 떠나 재스퍼 "에델바이스의 집"에가 완용이 비행기 좌석 예약을 확인하려 하니 그 곳에서 직접해 주었다.
그래도 사진 한 장 찍어 보겠다는 금석이와 구토 후의 근호 |
레이크루이즈로 가며 완용이와 대충 사진도 찍으며 관광도 해보지만 둘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금석이는 "그래도 덜 피곤해 보인다" 하니 후유증이 하루 지나야 발생하는 체질이란다. 모두를 피곤하지만 우리는 어쨌건 250km를 가야 한다. 콜럼비아 빙원부근에서 졸음이와 잠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려니 근호가 급히 뛰어내려 토한다. 그 큰 눈이 퀭한 것이 불쌍하기도 하다.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달려 레이크루이즈에 오니 마침 김종휘씨가 있어 인사를 나누고 캠프 그라운드를 찾으니 풀 상태이다. Over Flow를 가보니 지친 몸 이끌고 있을 곳이 아니다. 다시 밴프의 터널마운틴 캠프에 오니 마찬가지 상황이고 비도 내리고 있다. 모텔을 찾았으나 밴프의 모텔은 제일 후진 곳이 세금 비포함 상태로 $135이라 하니 끔찍하다. 기가 막혀 캔모어의 숙박시설을 찾아간다. 지친 몸을 끌고 330km째 이동이다.
캔모어에 온 김에 A.C.C 클럽 하우스에 오니 마침 빈방이 있어 지난해 숙박을 근거로 1일 1인 $ 11.00에 2일간 예약을 하였다. 대충 식사를 하고 바로 씻고 잘 준비를 하였다. 근호는 스프를 먹였으나 다시 토해 내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자정이 다 되서야 모두들 잠자리에 든다.
8월 4일 (수)
아침에 눈을 뜨니 10시 아직도 모두들 꿈나라이다. 11시경 일어나 조식을 하였고 금석, 근호는 남겨두고 완용이의 로키의 마지막 날을 위하여 레이크루이즈 관광을 간다. 김종휘씨를 만나 캘거리의 한인식품점 위치를 그려 받고 루이즈호와 모레인호 타카카우폭포등을 보고 밴프로 돌아와 완용이는 귀국 선물을 사려하나 별로 마땅한 것이 없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공원 안내소에 가서 지도를 5장 구입하고 캔모어에 돌아와 IGA 마켓에서 식품을 구입하여 클럽하우스에 돌아와 불고기를 만들며 서울의 종민이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하고 나니 낮에 금석이가 먼저 회장님과 합승이에게 통화를 하였다 한다.
8월 5일 (목)
8시 30분 기상하였고 금석, 근호 몸의 상태가 너무나 나빠 토, 일 숙박 연장 예약을 하고 클럽하우스를 떠난다. 캘거리에 도착하여 Mt. Co-Op에 들러 서울로 보낼 장비와 부가부에서 쓸 장비를 구입하고 한인식품을 찾아 (고향식품) 김치를 구입하고 그곳에서 교민이 운영하는 모텔을 물어 찾아갔다. 올림피아 모텔(5020, 16AV)방을 예약하고 식사를 하고 금석이가 이가 많이 아파하여 저녁거리를 준비하며 진통제를 구입하였다. 마당과 방에 모든 장비를 풀어 놓고 완용이 편에 보낼 짐을 팩킹하여 차에 실어 놓고 오랜만에 더운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풀어본다. 내일 완용이는 캘거리 공항에서 밴쿠버를 거쳐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 오전 6시 모닝콜을 부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8월 6일 (금)
전화 벨 소리에 깨어 어제 해놓은 밥으로 식사를 하고 바로 캘거리 공항으로 갔다.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여 모든 수속을 마치고 보딩패스까지 받았는데 약 1시간 30분 여유가 있다. 완용이와 같이 공항에서 시간을 보내고, 완용이 개찰 후 공항을 빠져나와 클럽 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에 Mt Co-Op에 들러 안전벨트와 메트리스를 구입하고 12:00경 클럽 하우스에 도착하였다.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이 정상이될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할 일이 없다.
저녁엔 슈퍼마켓에 우유를 사러 갔다가 연두부를 보고 순두부찌개 재료를 구입하였고, 저녁식사를 순두부 백반으로 하였다. 독일, 프랑스 합동팀이 낮에 낚시로 무지개 송어를 9마리 잡아 오븐에 소금구이를 하여 3마리를 주어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후 휴게실에 앉아 금석, 근호에게 마이티를 가르쳐 주며 시간을 보내던 중 별안간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아직도 금석이는 이가 아프고 근호도 제 컨디션은 아니다. 부근의 짧은 암벽코스를 계획하였으나 그 또한 헛일이 되고 만다. 비가 멈춰야 할 텐데..... 완용이는 잘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앞으로 한 시간 후면 도착 할 텐데...
8월 7일 (토)
8시경 눈을 뜨니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다시 잠을 청해 11시가 지나서 일어났다. 계속 찌푸린 날씨다. 요즘은 몸, 마음에 일기까지 모두가 엉망이다. 체력 회복을 위해 매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슈퍼마켓에 가는 길에 '보우벨리 스포츠크라이밍'지에 소개된 EEOR(런들산 동쪽 끝)을 찾아갔다. 픽스 로프와 볼트를 확인하고 간 김에 스프레이호까지 가보았다. 이곳으로 계속 가면 카나나 스키 컨트리 공원으로 연결되고 중간에 Mt.아씬보인 으로 가는 길이있다.
끝까지 가보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캔모어시에 돌아와 식량을 구해 클럽하우스에 돌아오니 아직도 두사람의 컨디션은 엉망이고 이젠 근호보다 금석이가 더 엉망이다. 내일부터는 몸을 암장에서 풀고 컨디션 회복 즉시 부가부로 이동해야겠다. 완용이에게 전화를 하니 잘 도착 했다 한다. 공항엔 기활, 용문, 합승이가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8월 8일 (일)
볼더링으로 컨디션 조절 중 |
어제 정찰한 EEOR(East End Of Rundle)로 가보니 차량이 몇 대 주차되어 있고 틀림없는 산쟁이 차인데 부근에 등반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 땜 밑에 사람이 있어 내려가 보니 산쟁이는 아니고 그들에게 물어보니 조금 더 내려가면 암벽등반 장소가 있다 하여 내려가니 아주 작은 못(땜의 물이 새어 이루어진)에 두 가족이 놀이를 나와 소풍을 즐기고 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인데도 이 곳은 바람이 없다.
대충 장비를 챙겨 내려가 몇 코스 돌며 2-3시간 보냈으나 만족치 못하였고, 캔모어시로 돌아와 슈퍼마켓가는 길에 우선멈춤 안 했다고 경찰차가 뒤따라와 적발 당했다. 위반사항을 한참 설명하더니 용서하고 돌아간다. 클럽하우스에 돌아와 먹고 쉬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럴 바엔 부가부로 옮겨 그 곳에서 컨디션이 좋아지는 대로 2차 목표에 시동을 걸려고 한다.
8월 9일 (월)
일찍 일어나 준비하여 캔모어에서 식량을 일주일분 구입하여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에 클럽하우스에 지도를 두고 온 것이 생각나 되돌아가 찾아 떠났다. 밴프를 지나 93번 도로로 구테니 국립공원을 지나 핫 스프링에 도착하니 고급스러운 숙박시설과 옥외 온천 수영장이 있어 비키니가 오가건만 근호 말대로 볼만한 것은 없다. 핫 스프링에서 고든 방향으로 95번 도로로 브리스코에 도착해 보니 상상외로 작은 마을이고 주유소 겸용 슈퍼마켓이 하나 있을 뿐인데 이 곳에서 부가부는 50km를 가야하고 그 곳에서 캠프는 도보 5km이니 식량 구입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비포장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은 지도를 유의하고 지나는 차에 물어보며 2시간을 달려오니 엉성한 주차장에 많은(약30여대) 차량이 있고 장비를 챙겨 올라갈 사람, 내려와 떠나려는 사람 분주하다. 차량마다 철망이 쳐 있어 의아해 물어보니 다람쥐 같은 놈들이 수없이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 놈들이 차의 고무제품을 갉아 놓는다하여 망을 친다고 한다. 우리도 짐을 챙기고 창고에서 망을 가져다 잘 쳐 놓고, 책에 소개된 바에 의하면 3마일(5km) 떨어진 곳에 카인 헛트가 있다 하여 한 시간 조금 더 가면 될 것 같아 짐을 두 번에 옮기기로 하였는데도 커다란 어택에 꽉꽉 눌러 담았다. 숲 속을 지나면 곧 나타날 것 같던 산장은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더니 한 시간쯤 지난 후 능선에 올라보니 멀리 보인다. 약 3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라 예측했는데... 산장까지 한 시간 반 주차장에서 두 시간 반 만에 도착한 것이다.
다시 내려가 장비를 가져와야 하나 다시 내려갔다 올라올 시간도 체력도 여유롭지 못하다. 일단 올려 온것 중에서 챙겨서 먹어보고, 침낭은 모두 올라왔으니 잠자는 데는 지장이 없다. 산장료를 자진 납부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안내판 앞에 앉아 전자수첩을 꺼내 놓고 계속 번역을 해가며 뜻을 알아보았다. 결국은 내일 아침에 관리인을 만나 알아보고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2층 침상에 누워 잠을 청한다. 눕자마자 잠들어 버렸다.
8월 10일 (화)
6시경 금석이가 깨워 일어났다. 식사를 하려다가 올려 온 식량을 줄이느니 내려가서 주차장에 있는 식량을 줄이자는 의견에 바로 내려가 다시 한 배낭씩 짊어지고 올라온다. 어제보다 조금 가볍다고 오늘은 2시간 반에 산장에 도착하였고 금석, 근호는 바로 애플비 캠프그라운드로 올라가고, 나는 산장에 남아 캠프료를 자진 납부하였다. 약 1시간 반이 지난 후 금석, 근호가 내려와 캠프사이트가 기가 막히고 우리의 텐트는 스폰지 같은 곳에 설치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나머지 짐을 지고 캠프로 올라가니 산장에서 40분 거리이다. 손가락질하며 "저-기" 도 아닌 "조-기"라 표현하는 곳인데...
짐정리를 끝내고 나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텐트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많은 비가 뿌린다. 텐트 밑이 젖어 들어와 밖에 나가보니 주변 바위의 빗물이 모두 우리 텐트로 밀려 스며든다. 그러니 이 바위덩이 위에 스폰지같이 풀이 자라 있었지? 한순간 비가 멈추길 기다려 빗줄기가 약해 질 때 신속히 텐트를 옮겨 설치했다. 다시 텐트에 눕자마자 시끄러울 정도로 눈, 비에 우박이 쏟아지더니 급기야 천둥, 번개까지 동원되어 천지를 뒤흔들어 놓는다. 눈, 비가 멈춘 뒤 나가보니 젖은 눈이 흥건히 쌓여 있다. 눈을 치우고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깡통을 따서 만든 음식은 근호의 엄지손가락이건만 내가 보기엔 괴상한 죽 같아 도저히 숟가락이 가질 않는다. 둘이서는 잘도 먹건만 나는 마른반찬(반찬이래야 고추장, 김치뿐이지만)에 식사를 마쳤다. 텐트에 누워 있자니 스르르 잠이 들었고 잠결에 또다시 눈비 쏟아지는 소리를 몇 차례 들었다.
8월 11일 (수)
06:00 일어나 텐트를 여니 빙수같은 눈이 질퍽하게 쌓여있다. 특별히 꼭 무엇을 해야할 계획은 없다. 금석이와 근호는 스노우패치 스파이어와 부가부 스파이어 사이의 안부로 정찰을 한다며 장비를 챙겨 9시15분경 떠났다. 나는 남아서 눈, 비에 젖은 장비와 텐트 그리고 침낭을 햇볕에 널어 말리며 시원한 부가부의 공기를 온 몸으로 느끼며 바위에 눕는다. 그것도 편한 것은 아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람쥐가 식량을 물어간다. 자리를 뜨려면 식량을 텐트 속에 넣고 신속히 다녀와야 한다. 잠깐 졸다가 텐트 모기장에 구멍이 생겼다. 순간 얼마나 화가 나는지 집히는 돌마다 던져보나 한 놈도 맞추지 못하였고 바람 통하려고 들어 놓은 텐트 밑에 들어가 있던 한 놈에게 온갖 화풀이를 하다보니 죽기 직전의 상태라 순간 불쌍한 생각도 들어 간호를 하니 서서히 회복을 한다. 이게 무슨 운명인지? 장난인지? 참!
2시경 근호와 금석이가 돌아왔다. 아까 안부로 올라가는 설벽에서 "왜 헤멧냐?"고 물으니 헤멘것이 아니고 웬 아저씨가 혼자서 내려오다 못 내려오고 있어 도와주러 갔다 오느라고 설벽을 좌우로 이동했었다 한다. 그 아저씨는 하필이면 오늘 아침 엄청난 낙석 사태가 있던 부분으로 내려와 순간 그 생각이 떠올라 급히 피했다고 하며 안부를 넘어서면 엄청난 경치가 펼쳐져 있고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필름을 다 썼다고 하며 형이 갔으면 필름 몇 통은 더 썼을 거라며 둘이 짠 것처럼 침을 튀긴다. 나도 내일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가까운 이스트 포스트와 크레센트 스파이어의 안부로 올라 코발트 스파이어와 코발트호 주변의 정찰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안부에 도착하니 실망이다. 지금 보아온 경치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눈 덮힘이나, 설원도 빙하도 없이 모레인지대에 간혹 썩은 눈이 있고 별로 크지도 않은 암봉들이 여기저기 독립되어 서 있다. 아마도 부가부, 스노우팻치, 피젼 메시프하우져 봉과 가운데 빙원이 부가부 산군의 백미인 것 같다. 캠프로 돌아와 의논 끝에 내일 부가부 스파이어 북동릿지를 등반하기로 하였다.
8월 12일 (목)
금석이가 일어나 조식 준비를 하고, 6시경 금석, 근호가 출발하였다. 나도 텐트를 정리하고 조금 뒤에 따라갔다. 출발점에 도착하니 대충 등반준비들을 마치고 근호가 막 출발하였다. 두 사람의 뷔불암을 챙겨 금석이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다시 캠프로 돌아왔다. 캠프에서 교신을 하며 둘이 정상부분에 갔을 때쯤 나는 출발하여 안부로 가면 된다. 어제 둘이 침을 튀겼으니 약 한 시간 정도 사진 찍을 여유를 갖고 가야겠다며 다짐을 하였다.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건만 망원경에 잡힌 모습은 도저히 전진이 없어 물으니 앞 팀이 무척 많아 잔뜩 밀렸다 한다. 나는 오늘도 다람쥐와 싸우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이젠 다람쥐의 습성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접근로와 퇴각로가 일정하며 급하면 구멍에 머리만 처박는다는 사실을 알아 아주 급작히 몰아 버리면 뚤리지도 않은 곳에 들어가 갇혀버리고 뚫린 곳도 다시 막아 놓고 몰면 잡을 수 있었다. 하여간 다람쥐와 싸우느라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낸다.
거의 정상 부분에 올라선 모습이 우리 대원들 같아 캠프를 걱정하며 돌아서 뷔불암과 카메라를 챙겨 안부로 떠난다. 안부의 눈은 약한 눈이 아니다. 반 얼음 상태의 굳은 눈이라 킥스텝을 생각하고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아 불편하게 오르는데 설상가상으로 오른쪽 밑창이 신발과 의리가 상했는지 분리되어 버려 독립을 하였다. 이 돌발 사태로 인하여 마찰 없는 신발로 한참을 고생했건만 상단부 약 40여m는 60도에 가까운 경사였다. 전자의 발자국에 손과 발을 잘 넣어 딛고 잡고 올랐건만 내려 갈 때가 더 걱정이 된다. 그러나 걱정도 잠깐 역시! 와! 눈부시다. 아름답다.
배낭을 벗어 카메라를 꺼내며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찍을 것인가? 셔터를 막 눌러 대어 36컷 2통을 순식간에 찍었다. 같은 장면은 한장 이상 찍지도 않았는데... 한참 사진을 찍고 나서 금석이를 불러 본다. 내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았다는 시간이 언제인데 아직도 내려올 생각을 안하나.. 이것들이 농땡이 피나?하였다. 정상부가 워낙 길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단다. 슬슬 한팀, 두팀 도착한다. 세번째로 도착한다. 출발할 땐 앞에 6팀이나 있었다더니 "대충 새치기 했네?" 하니 양보를 중간 중간에서 받았다 한다. 금석, 근호를 만나 캠프로 돌아 올 땐 절름발이처럼 걷다 눈이 없는 모레인 지대는 금석이 암벽화를 신고 돌아왔다.
등반을 끝내고 보웰 빙하에 내려선 조금석 |
등반을 끝내고 보웰 빙하에 내려선 부근호 |
8월 13일 (금)
13일의 금요일 서양에서는 재수 없는 날이라지만 우리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날이다. 어쨌건 우리는 오늘은 쉬는 날이다. 장비와 침낭을 말리며 캠프 주변에서 동네꼬마 골목대장(?), 불량 청소년(?) 마냥 배회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낮잠도 자고 교대로 다람쥐와 전투를 치루며 하루를 보냈으니 저녁엔 잠도 안 온다. 빗방울도 간혹 뿌리는 날씨였다. 성냥개비 문제등 간단한 문제들을 내며 풀며 버티다 23시경에야 잔다.
8월 14일 (토)
이스트 포스트 정상에서 기념 촬영 |
오늘은 크레센트 스파이어의 센타 타워의 코스 중 하나를 선택하여 한 코스 등반하려 하였으나 등반 자체가 너무 단조롭고 선인, 인수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느니 한다. 그래도 몇 코스 경험을 하자 느니 하는 중 밤새 장대비를 뿌리던 날씨가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다. 근호는 등반 가치를 따지는 건지 의욕이 상실된 건지 철수하자 한다. 금석이와 대충 장비를 챙겨 이스트 포스트에 잠깐 걸어 올랐다 오겠다 하고 그동안 텐트 정리 해 놓으라 하고 이스트 포스트 스파이어에 올라 필요한 사진을 찍어 자료를 확보하였다. 이스트 포스트 스파이어에 오른 시간보다 머무른 시간이 더 길었다.
캠프로 돌아와 짐을 챙겨 산장에 내려가 하산 신고를 하려다 관리인을 만나 이야기 하니 선불된 금액 중 잔금(거스름돈) $1.00와 조기철수로 미 사용료 $21.00 을 환불해 주며 영수증도 준다. 두 번에 올린 짐을 별로 줄이지도 못하고 한번에 내리려니 어깨가 죽겠다지만 다리만큼이야 하겠나? 주차장에 내려오니 세상 다 산 것 같은 기분이다. 브리스코-고든을 거쳐 레이크 루이스에 도착하여 세탁과 샤워를 (샤워 1인 $2.00, 세탁 $2.00, 건조 $0.25) 하였으나 세탁은 2회에 빨아지지도 않고 건조도 1회엔 마르지도 않는다.
김종휘씨에게 인사차 찾아갔다가 잘 곳을 묻기에 아무 곳에서나 자겠다니 이 빗속에 어디서 자겠냐며 불편하겠지만 자기 집 거실에서 묵으라 한다. 집으로 안내하여 주시곤 냉장고 식품과 커다란 쇠고기 덩이 닭고기를 주며 마음껏 먹고 편히 쉬라며 다시 주유소로 가셨다. 사모님께서는 우리의 식사가 걱정돼 평소보다 일찍 들어 오셨단다. 우리는 벌써 염체 불구하고 이미 먹고 싶은 것은 모두 맛보았는데...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부가부에서 내려오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달래본다.
8월 15일 (일)
광복절 인줄 알았더니 서울은 16일이였다. 사모님께서 일찍 식사 준비를 모두 해 놓으셨기에 미안하여 못 먹을 지경 이였는데, 잠시 후 교회를 가서 편하게 앉아 실컷 먹고 나서 일정을 정하려 하니 고민하지 말라고 비가 계속내리고 있다.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할 일은 이동이 가장 좋다. 주유소로 나가 김종휘씨와 작별을 하고 미국을 향해 떠난다. 다시 한번 구테니 국립공원을 지나 라듐 핫 스프링스에 오니 자동차 연료가 달랑달랑한다. 국경까지의 거리를 계산하고 잔돈을 털어 $11.00어치를 넣고 남쪽으로 계속 달려 국경 최종마을 크레스톤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미국쪽에서 자는 것보다 캐나다 쪽이 왠지 마음이 편하다) 아침에 미국으로 가려니까 근호는 미국에 무엇을 두고 왔는지 급히 볼일이 있는지 그냥 가자고 한다. 그래! 시간도 있으니까 그럼 가자.-
머리가 띵하고 지도가 잘 안보여 약 10km를 다른 길로 갔다가 되돌아왔다. 오는 길에 감기약을 한 알 먹었는데 그 탓인가? 팻말이 순간순간 빨리 안보이고 갈림길을 간혹 놓친다. 오후 6시경 국경에 도착하니 뚱뚱한 거구의 국경관리인이 여권을 보고 손수 입국카드를 작성해 주고 편의를 봐준다. 대도시를 연결하는 국경과는 달리 한가하고 조용한 것이 국경을 넘는다는 기분이 전혀 없다. 국경 관리인과 사진 한장 찍자하니 좋아하며 미국 국경이라고 크게 쓴 안내판 앞으로 안내한다.
국경에서 13마일(지금부터는 마일체제이다)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연료를 가득 채웠는데 환율을 생각하면 캐나다보다 결코 많이 싼 것이 아니다. "콜빌" 이젠 조금 큰(?)도시에 와서 숙박을 하기로 하였고 슈퍼마켓에서 닭고기를 구입하였다. 별안간 싸이렌 소리에 경찰차가 사방에서 달려드니 순간 근호는 총을 든 악당과 총격이 연상되었다 하나 아무 일도 없었다. 숙박업소가 몇 곳 없었고 주방시설이 있는 곳은 한 곳이었는데 가장 싼 곳이 U$50.00 이었다. 국경을 넘으면 더 쌀 줄 알았는데... 캐나다 국경마을은 $35.00 정도 였으니 거의 두 배의 금액이었다. 잘 끓인 닭도리탕은 질기다. 결국 싼 것이 비지떡이라더니 큰 것만 골랐으니... 연한 영계는 작은데...(노계, 영계 평가는 근호의 평가 기준임)
8월 16일 (월)
로즈 댐 전망대의 다람쥐들 |
금석이가 6시가 안돼 일어나 빨리 가자고 난리다. "쟈식! 시애틀에 소풍가나?" 밥상까지 다 차려 놓았다. 어찌나 설쳐대는지 30분도 못되어 출발하였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그 유명한 캐스캐이드산을 보아야 하기에 캐스캐이드 국립공원 쪽으로 길을 잡았다. 간혹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졸며 간다. 금석이는 운전만 한다. 간혹 길가의 팻말에 어린이들을 위한 것인지 자연 학습이 되는 것을 그려 놓았다. 한가지 예를 들면 '수성'부터 1마일 간격으로 '명왕성'까지 그림과 이름을 도로변에 그려 놓았다.
오후1시경 밴쿠버에서 L.A로 이어지는 5번 고속도로에 진입하였고 한 시간쯤 남쪽으로 달려 린우드에 도착하여 기억을 되살려 세탁소로 찾아가니 김광열씨는 안계시고 사모님만 계신다. 뒤의 볼링장 커피숍에서 한 시간쯤 기다리니 오후4시경 김사장님이 오셨다. 무척 반가와 하시며 제일 먼저 혜영이 소식을 묻는다. 6시30경 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REI장비점을 찾아갔다. 장비점에서는 0.749비율로 (환율:대캐나다달러)쳐주고 씨티뱅크에서는 0.753으로 환전해준다 하여 근호와 금석이는 환전하고 나는 캐나다 달러는 사용을 안하고 미국에서는 신용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서울에서 환차가 심하여 모두 캐나다달러로 환전하였는데 이곳의 환차가 더욱 심하여 결국 조금씩 손해를 보게 되었다.
REI가격을 일단 알아놓고 집으로 가니 벌써 귀가하셨고 급히 식사를 준비하느니 외식을 하자시며 작년에 먹었던 교민이 운영하는 '다리야끼'집에 가서 정말 먹기 힘들 정도로 많이 먹었다.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 하다보니 밤11시가 되었고 마침 빈방이 있다. 막내 재룡이 방 이였는데 친척들이 놀러와 응접실에서 잤고 마침 오늘 떠났다 한다. 금석이와 나는 방에서 잤는데 근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응접실 쇼파에 누워 이불도 없이 춥게 잤다고 투덜투덜.......
8월 17일 (화)
9시경 일어나니 주인댁은 아무도 없고 식탁에 메모만 되어 있다. 차려 놓은 밥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차도 한잔 끓여 마시고 문을 잠그고 10시경 집을 나와 시애틀의 노스훼이스를 필두로 스웰로우. REI. 훼더후렌드를 둘러보고 벨뷰로 건너가 마모트와 REI.을 보았다. 피자와 콜라로 중식을 하며 6개의 장비점을 모두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린우드의 REI들러 모든 장비를 구입하였다. 오후 7시경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하였다. 거의 모든 장비를 구입했는데 헬멧과 해드랜턴(리듐 건전지 사용)을 구하지 못했다. 작년에 보았을 때보다 상상외로 가격이 오르고 종류가 없는 것이 많았다. 오히려 캐나다의 Mt. Co-Op이 더 싸다.
8월 18일 (수)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도 우리뿐 차려진 밥상에 식사를 하고 장비를 챙겨 불필요한 동계 장비는 카고백에 넣어 남겨두고 돌아오는 길에 찾아가기로 한다. 전화를 걸어 세탁소에 들러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니 또다시 올 것이니까 피차 시간 절약 하자며 잘 다녀오라 하신다. 집을 나와 한인식품(한일식품)에 들러 고추장등 몇 가지 부족한 식품을 구입하고 5번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계속 남쪽으로 갈 때 까지 가기로 하고 달린다.
알바니시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다 알라스카에 거주하는 교민 박승현씨(스티브 박:앵커리지 다이아몬드 백화점 2층 모자점 운영)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받았다. 오후 6시경 캐년 빌에서 숙박하려다 가격이 조금 비싼듯하여 조금 큰 도시인 그랜트 파스에 오니 모텔은 엄청 많은데 가격은 더욱 비싸고 주방시설 있는 곳도 드물고 거의가 만원 상태이다. 결국 한 시간을 헤맨 끝에 U$47.00 이나 주고 방을 구하고 식량을 구입하여 저녁 식사를 마치니 밤 10시가 다 되었다.
이놈의 동네는 서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계통)계의 인종이 많아 동네 분위기가 이상하고 어떤 집은 향기가 너무 이상하여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8월 19일 (목)
밤새 간혹 비가 내리더니 새벽에 눈을 뜨나 아직 어둡다. 오늘 갈 길은 멀다. 예정보다 2시간 늦었다. 최소한 12시간-13시간 운전을 해야 요세미티에 도착할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에 들어서니 도로표지판이 달라졌다. 고속도로 출구에 마을 이름이 없어졌다. 도로번호만 표시되어 지도와 비교하기 까다롭다. 주유를 위하여 고속도로를 벗어나 주유를 하고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버거킹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먹었으나 가격, 맛, 써비스가 모두 맥도날드만 못하다. 캘리포니아주 지도는 없다. 세크라멘토 시가지를 관통하여 고속도로를 벗어나 지도를 구입하고 현재 위치를 물어 확인하고 요세미티 방향을 잡아 다시 떠났다. 지방도로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주택 진입로) 얼키고, 설켜 한 바퀴 빙!- 돌다 제 길을 찾아간다. 마지막 도시 오크델리에서 연료를 꽉 채우고,(요세미티는 비쌀 것으로 예상하여) 식품도 구입한다.
요세미티 입구에 도착하니 사람은 없고 게시판만 있다. 시간이 늦어 모두들 퇴근한 것 같다. 일단 요세미티 빌리지를 찾아간다. 빌리지 내 순환도로를 한 바퀴 돌아 대충 지형을 숙지하고 빌리지 안내에 가다가 마침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 통역을 부탁하여 써니 싸이드 캠프를 물어 찾아가니 레인져는 없고 메모판엔 내일 오전 8시45분에 온다고 되어 있다. 빌리지 내 한 바퀴 돌다 보니 우리식으로는 얼마든지 잘 곳이 많지만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우리는 캠프 그라운드들을 찾아 가보았으나 레인져가 근무하고 있는 캠프사이트는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잘 수 없어 일단 비어 있는 캠프 사이트에 들어가 자격지심도 있지만 새벽에 써니 싸이드에 줄을 서야 하기에 텐트도 못치고, 차에서 둘은 자고 나는 식탁위에 누워 하루를 보내기로 하였다. 랜턴심지가 깨져 근호가 옆 가족에게 빌리러 갔다오더니 "랜턴만 보이니 금방 알았다 하며 심지를 주던데요" 한다. 친절일까? 여유일까? 자정쯤 되어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텐트 치는 소리에 깨었다 다시 잠들다.
그들은 과연 예약을 한 사람들 이었을까? 그들도 우리처럼 일단 오늘은 자고 내일 아침 레인져에게 신고할 사람들일까? 그들의 생활 문화가 "내가 어제 이곳에서 당신 없을 때 묵었다" 하더라도 "그럼 어제 것도 지불하시요"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제는 내가 보지 못했으니 오늘부터 지불하시요" 하는 생활문화가 우리와 다른 점이다.
8월 20일 (금)
요세미티 써니 싸이드 캠프장 |
옆 텐트에서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깨어 6시경 급히 침낭을 걷고 차를 몰아 써니 싸이드 캠프에 오니 약 10여명이 줄을 서있고 캠프도 넓고 우리가 보기에는 텅텅 비었는데도 레인져 사무실 앞에서 비박을 하는 사람은 아직도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우리도 줄을 섰으나 15번째 쯤 된다. 잘못하면 오늘도 씨트 배정을 못 받을 우려가 있다. 정확히 8시45분 여자 레인져가 오더니 창문을 열고 제일 먼저 하는 말이 "45명 이후는 기다리지 말라"고 한다. 우리는 15번째이니 평균 3명 이하면 된다. 결국 9시 30분경 35번 씨트에 배정받아 캠프를 설치하고 비로소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 할 일은 빌리지 내의 암장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빌리지 상가에 가 지도와 책을 구입하고 엽서도 구입하였다. 지도를 펴고 대충 암장을 확인하며 한바퀴 돌아 보았다 엘케피탄에서는 등반중인 팀을 4팀이나 보았다. 캠프로 돌아와 엽서를 써 봉투에 넣어 한번에 보냈다. 등기속달로 보내니 U$ 13.00 이나 들었다. 써니싸이드 캠프사용료는 1인당 1박에 U$2.00 으로 환불은 안해준다. 최고 7일간 이용할 수 있다. 화장실과 세면장만 시설되어 있다.
8월 21일 (토)
요세미티 등반에 관해서는 나는 아무런 관여를 안하기로 하였다. 특별히 목표를 둔 코스도 없고 요세미티를 경험하고자 왔을 뿐이다. 근호가 자신이 등반하고픈 코스를 정하고 등반 일정을 잡으면 내가 도울 수 있는 능력껏 도우면 된다. 오늘의 계획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늦게까지 책을 보며 이 코스, 저 코스 구상하는 것 같던데 늦잠을 자는 것 보면 별 계획이 없는 듯하다.
이 곳은 모기도 별로 없어 나는 식탁 위에서 매일 비박을 하였기에 일찍 일어나야 했고 그러다 보니 아침 식사 준비를 내가 항상 준비하게 되었다. 아침식사를 마치더니 장비를 챙겨 짧은 코스를 등반하겠다며 금석이와 둘이 떠나고 나는 자료를 수집코자 카메라를 들고 어퍼 요세미티 폭포로 트레킹을 떠났다. 엎어 요세미티 폭포에서 바라본 하프돔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다시 하단 부 요세미티 폭포를 촬영하러 트레일을 따라 한바퀴 돌고 하프돔 입구 트레일을 확인하고 캠프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엽서를 부치려고 우체국에 갔으나 휴무였고 우표 자판기가 있었으나 속달로 보내야 하였고 지금 부친다 해도 어차피 월요일에나 수거하여 발송할 것이니 그냥 캠프로 돌아오다. 점심을 해 먹고 간식을 준비하니 17:30경 돌아왔다 "어디서 무엇을 했냐?" 고 물으니 코스의 이름은 모르고 책을 펴며 등반루트를 가르킨다. 4피치의 짧은 코스였다. 석식후 캠프에 앉아 요세미티의 3일째를 맞는다.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8월 22일 (일)
네바다 폭포와 하프돔 뒤통수 |
도대체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물론 시간은 많지만 조급한 나의 성격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내가 채근하여 계획을 변경 시킬 수는 없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면 무엇을 해도 하겠지? 오늘도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깨어졌고 조식을 준비하였다. 아직도 일어 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늘도 큰 등반은 없을 테고 짧은 코스를 등반하겠지... 생각하며 간식을 조금 챙겨 내가 먼저 떠났다.
오늘은 죤 무어 트레일을 따라 하프돔의 뒷편으로 정찰을 가기로 하였다. 마지막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 삼각대를 꺼내 어깨에 둘러메고 배낭을 메고 사진 촬영을 하며 올랐다. 혼자서 셀프타임으로 사진을 찍으니 사진 한장 찍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중요한(?) 순간 포착을 카메라를 꺼내다 놓치기 일쑤다. 네바다 폭포까지 올라 간식을 하니 14:00다. 너무 늦을 것 같아 그만 하산하기로 하였다. 올라 갈 때와는 달리 곧바로 내려오니 한 시간 만에 내려왔다. 올라 갈 때는 세 시간이 더 걸렸는데...
짜장면이 먹고 싶어 빌리지 스토어에 들러 재료를 구입했으나 결정적으로 전분이 없어 간짜장을 해 먹기로 하였고 캠프에 돌아오니 금석, 근호 둘다 산뜻한 모습으로 있다. 책을 보고 찾아간 코스는 너무나 아니올시다 였고 쟈일을 메고 지나가는 팀을 따라 갔으나 그들은 원핏치 크라이머 들이었고 한바퀴 헛돌고 캠프 근처에 오니 이 더위(그들이 “인디언 썸머”라는 무더위)에 다시 헤매기 싫어 콜라 사먹으러 빌리지 롯지에 갔다가 우리나라 대학부(등반을 끝내고 L.A에 갔다가 다시 시간 여유가 있어 돌아왔고 26일 출국예정이란다) 학생들을 만나 롯지 수영장 사용방법(롯지 투숙객을 위한 시설이니 공짜지만....)을 알아 더위에 '웬 공짜!' '웬 비키니!'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한국인 끼리 몰래 재워주고 도로변 숲 속에서 차를 세우고 자고 하다가 레인져에게 들켜(신고당하여) 쫓겨나기도 했다 한다. 비로소 우리를 바라보던 레인져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들은 원하는 캠프를 선택하도록 하더니 우리에게는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35번으로 지정을 해 주었고 모두들 대표로 한사람이 등록을 하는데 우리는 세 사람의 여권을 모두 보자고 요구하였다. 도대체 이런 국제적 망신이 어디 있으며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행위가 뒷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깨달아야 겠다.
22:00시 이후 모닥불과 대화를 그치고 모두들 자야 하는 규칙이 있건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이면 둘러 앉아 떠들고 규칙을 무시하고 지내다 쫓겨나기도 했다며 그것도 자랑이라고 하는 이야긴지 우리에게 충고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다. 주변의 외국인 보기가 부끄럽다.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한사람 등록 후 무더기로 자고하는 행위는 국내에서도 없어져야 하겠건만... 어쨌든 닭고기 간짜장이나 해 먹자...
8월 23일 (월)
오늘도 텐트는 늦잠이다. 식사준비를 안하고 같이 버텨보고 싶은 오기 같은 것이 꿈틀거린다. 그렇다고 살찐 놈 따라 부어 죽을 수는 없는 일...나의 언짢은 기분을 보일 수도 없는 일이라 조식을 준비하고 식사를 마쳤다. 오늘도 등반을 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오늘은 아예 나를 따라나서겠다고 한다. 금석이가 그럴 수는 없고 등반을 못하면 짧은 코스라도 계속 하겠다며 장비를 챙긴다. 다시 자료를 수집하러 떠났다. 분위기로 보아 근호의 의욕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
오늘은 요세미티 내의 편의시설 위주로 자료 수집을 하였기에 일찍 캠프에 돌아왔다. 김치를 담궈 먹으려고 배추와 마늘등을 사서 배추를 다듬던 중에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 근호는 한마디 전언도 없이 빨리 서울로 가겠다고 한다. 예상은 하였지만 기가 막힌다. 그러면 등반은 포기한 것이야? 고 묻고 싶었지만 물어본들 뭣하겠나? 아직 자료 수집할 지역도 많고 능력에 맞는 코스를 등반해 보고도 싶었기에 며칠 참고 기다리자하고 최소한 예약된 캠프 날짜만이라도 채우고 가자고 하였다.
8월 24일 (화)
오늘도 밖에서 모든 준비를 끝낸 후 일어났고 조식후 금석이와 둘이서 무작정 등반을 떠났다. 지정된 코스도 필요 없다. 자료 수집차 돌아다니다 보니 그 넓은 암장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코스를 변경시켜가며 테라스와 나무, 기존 볼트를 확보 하강지점 삼아 얼마든지 등반이 가능한 곳이 많았다. 일단 올라가는데 까지 가보기로 하고 떠났다. 근호는 캠프에 남아있겠다 한다. 어퍼 요세미티 폭포 쪽으로 가다가 적당한 암장을 선택하여 장비를 챙기고 옷과 신발을 갈아 신었다. 이곳에서 나는 불사조라 일컷는 (산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그 어려운 허밍버드를 보았다. 연한 녹색의 작은 '벌새' 빨간 꽃 속에 부리를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을 보고 카메라를 챙기려니 멀리 날아가 버린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EAGLE PEAK", 정상의 높이가 7779피트이고 현재의 위치가 5200피트, 약 2600피트(840m)의 벽이다.
등반중에 물 한모금 멀리 하프돔이 보인다. |
한 핏치 오르니 적당히 챙겨 온 장비가 부족하다. 커다란 후렌드류가 없다. 직상을 하려다 일단 볼트에서 1/2핏치 하강하여 트레바스하였고 이렇게 코스를 변경하여 어차피 기존코스가 어느 코스인지도 모르지만 약 10여 핏치를 등반하고 나니 정상으로 이어지는 완경사의 부쉬 지대가 나타났다. 이곳의 나무들은 수분이 없는 사막 기후의 식물로 어찌나 단단한지 가지가 가시 같다. 잎의 끝부분도 가시 같아 만질 수가 없다. 금석이는 반바지 차림이고 나는 그래도 클라이밍 바지를 반바지 속에 끼어 입었다.
오후가 되니 바위뿐만 아니라 흙도 만지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부쉬 지대를 치고 기존 트레일은 만난다는 것은 가히 부처님의 고행에 비할 정도일 것이란 생각이다. "부쉬는 NO! 하강은 YES" 4번의 하강을 하고 걷고 하여 계곡형 꿀루와르에 도달하여 크라이밍 다운하여 트레일에 내려섰다.
캠프에 돌아보니 근호는 식사를 마쳤고 금석이는 주유소 쪽으로가 콜라를 뽑아왔다. 수건을 들고 개울가로 나갔다. 두 가족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벗고 씻을 형편은 아니다. 물장난 치듯이 물속에 뛰어 들어 땀과 송진에 찌든 몸을 씻고 식혔다. 물속에서 나와 캠프로 돌아오던 중 옷이 대충 말랐다. 새 옷을 입고 빌리지 스토어에가 식량을 구해 석식을 준비하다. 이곳에 온 후 자연 냉장고가 없어 매일 식량을 조금씩 구입하여 먹는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커다란 아이스 박스를 두고 얼음을 사다 넣으며 식사를 즐기건만...
8월 25일 (수)
쎄콰이어 거목들 사이에 서서 |
오늘도 늦잠을 자고 있다. 별로 할 일도 없겠지만 좀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가 한번 버텨봐야지 하고 세면, 화장, 면도까지 모두 마쳐도 소식이 없다. 캠프를 한바퀴 돌고 주차장엘 다녀와도 감감... 내 배가 고파서도 더 못 참고 식사준비를 하였다. 쟈식들! 무슨 잠을 그렇게 자나? 버너소리에 깨어 나오는 것인지 일부러 버티는 것인지 실제로 이제 일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조식 후 오늘은 세콰이어 거목이 있는 MARIPOSA GROVE PARK에 가려고 준비하던 중 근호가 내일 떠나자 한다. 서울을 떠나 처음으로 "안된다"는 말을 하였다.
아직도 자료 수집할 곳도 많고 큰 등반을 못하더라도 작은 등반은 할 곳이 많이 있었기에 하루, 이틀만이라도 참으라 하였다. 심통이 난 녀석 모양 토라져 말도 없고 마리포사 그로브에 같이 가자해도 대꾸도 없다. 금석이와 둘이만 떠났다. 엘 캐피탄 앞을 지나며 차를 세우고 금석이와 바라보며 좌측 계곡으로 올라 마지막 부분 약 300-400m정도만 난이도도 높지 않은 곳을 택하여 내일 한 번 올라보자고 약속하고 마리포사 그로브 공원에 도착하였다.
안내소에서 엽서를 가르키며 문의하여 찾아갔다. 주차장에서 한바퀴 돌아 다시 돌아오기를 약 7km 정도 걸어 3시간 정도 소요하였다. 어마어마한 거목이다. 나무의 직경이 보통 5m이상이고 큰 것은 7-8m가 넘는다. 키는 보통 50여m, 솔방울이 나의 머리보다도 더 크다. 수령이 2500년이 넘는다 하니 가히 짐작이 될까? 나무 박물관에 보관된 나무 조각 나이테엔 예수의 탄생도 표시되고 신대륙 발견은 표피 부분에 표시되어 있으니, 인간의 역사를 보는 세콰이어의 마음은 어떨까?
나의 머리보다도 더큰 솔방울 |
캠프에 돌아와 중식을 하고 차를 마시던 중 근호가 "더이상 이곳에 도저히 못 있겠으니 제발 먼저 혼자라도 보내주세요"한다. 그레이하운드를 타고라도 혼자 가겠다고 애원한다. "알았다"고 하고 나니 너무나 허무하다. 남은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그렇다고 혼자 보낼 수도 없는 일 '그랜드캐년'은? '스미스록'의 열정은 다 어디가고 서울로 가겠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금석이 미국비자가 복수였다면 걱정을 덜 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밴쿠버는 약 2200km!..... 밴쿠버를 갔다가 다시 올 수도 없고 막막한 기분에 가슴이 답답하다.
어쨌건 할 일은 밴쿠버로 가서 근호를 비행기에 태워 서울로 보내는 일 만이 꼭 해야 할 일이니 다음일은 그 다음에 생각하자! 마음을 먹어보나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꼭이 뭐라 할 수 없는 무엇이 가슴을 누른다. 침낭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다. 오늘도 요세미티의 별들은 반짝이며 하늘을 수놓고 있다.
8월 26일 (목)
오늘 부지런히 움직여야 내일 시애틀에 갈수 있다. 그러나 오늘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오늘은 정말로 같이 벼텨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9시가 되어도 텐트 속엔 기척이 없다. 결국 또 내가졌다.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이젠 식사준비가 다되어도 무소식이다. 내가 먼저 식사를 하였다. 그제야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식사를 마치고 텐트를 걷고 캠프를 정리하여 요세미티를 떠난다.
올 때와 달라 반대편 Tioga pass 입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공원 내에는 작은 바위들(선인봉 만한)이 많고 등반 코스도 많다. 호수도 있고 경치도 좋고 다시 캠프를 치고 등반하고픈 생각이 든다. 3,013m의 Tioga pass를 지나 Mano Lake마을에서 주유를 하려니 너무 비싸 U$10.00 만 넣었다. Carson City에 도착하여 햄버거로 중식을 하고 주유도 하고 가는데 까지 가기로 하고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마음껏 달린다. 복잡한 고속도로보다도 훨씬 좋다. 오후 8시경 Klamath Fall City에서 SAFE WAY에 들러 후라이드 치킨 두 마리와 맥주를 사서 저녁식사로 하였다. 값이 엄청 싸다. 전기구이 치킨 한마리가 U$2.00이 안되었고 쇠고기는 레이크루이즈에 1/5-1/10수준 보통도시의 1/3수준이다. 마을이 온통 목장뿐이더니 소 값이 X값이로구나.
12시간째 달려 왔다. 지도에 표시된 캠프그라운드에 찾아가 빈곳에 자리하고 하루 신세를 진다. 금석, 근호는 차 속에서 나는 식탁위에서 호수의 출렁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잔다. 별안간 탱크 지나는 것 같은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호수에 요트가 들어오는 소리인가? 도로에 전차나 장갑차가 이동하는가? 한동안 잠이 안 온다. 결국 알고 보니 대형 트레일러들이 밤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소리가 숲에 울려 엄청난 소리를 낸 것이다. 내일 새벽에 떠나야 한다. 나의 고질병인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한다.
8월 27일 (금)
자동차 불빛에 놀라 일어나니 금석이가 시동을 걸고 있다. 침낭을 들고 차로 들어가 계속 자기로 하고 금석이에게 계속 이 길로 가다 5번 고속도로에서 북쪽으로 진입하라고 알려주다 약 2시간 후 눈을 뜨니 오레곤주를 거의 벗어나려 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주유를 하고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휴게소에 진입하여 화장실 더운물에 세수를 하고 면도도 한다. 어제 남은 닭 한 마리로 커피를 끓여 요기를 하였다.
11시경 시애틀을 거치지 않고 타코마에서 바로 벨뷰로 진입 마모트 장비점에 들러 소형 개스버너를 구하려 했으나 먼저 번 금석이가 구입한 것이 마지막 물건이었고 주문하면 일주일 후에 온다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근호가 책을 살 것이 있다하여 훼더 후렌드장비점에 들렀다가 또다시 노스훼이스에 가고 싶다 하여 그곳에 갔다. 장비점에 간 동안 싱가폴 에어라인에 좌석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찾았으나 주변엔 전화기가 없어 허탕 치고 결국 Lynnwood에와 로바다야끼집에서 식사를 하며 주인께(최익환씨) 전화를 부탁하여, 근호는 8월 30일로 금석이와 나는 9월 8일로 예약을 하였다.
식사 후 김광열씨 댁에 오니 손님이 한분 계셨고 우리의 존재를 이미 이야기 들어 반갑게 맞아 준다. 모든 짐을 차고 앞에 널어놓고 정리하였다. 근호의 짐은 귀국용 팩킹, 금석이와 내짐은 여행용 팩킹 장비정리를 끝내고 휴식을 취한다. 식량은 거의 부엌으로 옮겼다. 입술이 심하게 부르튼다. 김광열씨는 7시경 귀가하셨다가 바로 외출하였고 우리는 빌려 온 비디오(국내 방영분)를 보며 지냈다. 작은 거실에서 침낭을 펴고 하룻밤 신세를 진다.
8월 28일 (토)
김광열씨와는 출근 할 때 인사를 하였고 아침식사를 하고 떠난다. 밴쿠버를 향해 가다 253번 출구로 빠져나와 쇼핑몰 구경을 가다 근호는 소형 카메라를 구입하고 나는 스라이드 확대경을 하나 샀다. 쇼핑몰에서는 아마츄어 팻션쇼도 하고 있어 눈요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있는 동전을 몽땅 털어서 주유를 하였다. 이젠 미국 땅을 다시 밟을 일이 없다. 다시 로키로 돌아가 주요 북벽을 답사하려고 한다. 아씨니 보인과 롭슨등을 답사하려 한다.
국경에 도착하니 차량이 약 300m정도 밀려 있다. 대기 중에 차를 옆 갓길로 빼 놓고 미국 국경관리소에 가서 금석이 여권을 보이고 알라스카를 가려한다 하니 괜찮다고 한다. 알라스카를 다녀오려면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하지만 그것은 다시 연기하면 된다. 캐나다에서 재입국 신고를 하고 밴쿠버로 와 작년에 묵었던 카리브 모텔에 오니 주인이 바뀌었다. 중국인이였다. 요즘 밴쿠버에는 홍콩의 부자들이 많이 이주해와 밴쿠버의 땅 값과 건물 값이 많이 올랐다 한다. 아마도 홍콩이 중국에 합병되는 1997년 까지는 그런 현상이 계속 될 것이란 예상이다.
모텔에 짐을 풀고 Mt. Co-Op에 가니 폐점시간이였고 시애틀 교민신문에서 보았던 안경점을 찾아가니 밀러코팅(고오글)공장이 몬트리올에 있어 2주일 걸리고 코팅값 50불, 멀티코팅 15불, 렌즈 50불에 안경태값을 포함하니 약 220불에 세금 14%면.... 끔찍한 생각이 들어 포기하였다. 그것도 세일기간이라서 기회는 좋다고 하는데... 모텔로 돌아와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8월 29일 (일)
오늘은 정말로 지루한 날이다. 좁은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을 기다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새삼 느낀다. 시애틀에서 손님이 없었더라면 하루 더 있었을 것을... 하며 마침 T.V 에서 'K2'를 상영하니 팬티바람으로 죽치고 앉아 영화감상을 하고 낮에 방을 비워야 청소를 할 텐데 방을 안 비우니 청소 아줌마가 타올을 갖어와 타올만 교환하였다. 도저히 못있겠기에 어디 아무 곳이라도 나가자하니 둘다 꼼짝을 안한다.
혼자서 스텐리공원과 다운타운으로 구경을 나갔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카메라를 두고 나왔다. 다시 되돌아가 카메라를 갖고 나오려다 대충 점심을 먹고 나니 해 저물 시간이다. 근호가 술한잔하고싶다 하여 술 대리 판매점에 가 맥주와 안주를 사고 여행자 수표를 주니 현금 아니면 안 팔겠다며 하는 행동이 어찌나 불손한 지 이곳에 와서 "이런 기분 처음이야" "쟈쨘 꽝-" 현금도 있었지만 더러워서도 안 먹겠다는 오기가 생겨 다운타운으로 나가서 전망대에 가서 한 잔 하려하니 금석이가 죽어도 안가겠다 하여 근호와 둘이 다운타운에 나갔다.
Gas Town 가로등이 특이하게 조명되어 거리를 비추고 있어 가보니 파리의 몽마르트, 서울의 대학로같은 곳이다. 무명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리고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를 하고.... 개스타운 구경하다 술한잔도 못하고 자정이 다되었다. 되돌아오는 길에 하는 수 없이 더럽지만, 아니 꼽지만, 자존심 상하지만 맥주 6캔을 사갖고 모텔로 돌아왔다.
8월 30일 (월)
B.C주 북부 서서이 지평선이 나타난다. |
근호가 쌀을 씻으려 하기에 떡볶기로 대충 요기 후 공항으로 갔다. 도착 즉시 티켓 부킹을 하고 한국인 안내인에게 부탁하여 후론트 직통전화로 나와 금석이의 예약을 8일에서 10일로 2일간 연기하였다. 짐을 부치고 소형 렌터카를 계약했다. AVIS에서 후리 마일리지로 계약하고 허쓰사에 차를 반납하고 짐을 아비스로 옮겨 싣는다. 앞으로 여행자 수표는 쓸 수가 없다. 근호 이름으로 되어 있기에 모든 경비를 수표로 지불하고 잔액 $1320을 현금화하는데 수수료 $18을 지불하였다.
시간이 되어 근호를 출구로 보내고 12시경 금석이와 알래스카를 향해 떠나기로 하였고 밴쿠버 시내를 관통하여 North 밴쿠버를 지나 홀 쇼이 베이를 지나 Lillooet에서 빵을 사서 요기를 하고 비포장길로 들어서 호수가를 지나다 보니 좋은 Rest Area가 있어 라면을 끓여 먹고 다시 출발한다. 운전을 교대하고 Clinton 약 20km 전방 작은 마을에서 주유도 하며 서울로 전화도 하였다. 계속 달려 밤 9시 30분경 호숫가 Rest Area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곳에서 자려고 하니 금석이가 계속 가자고 한다. 다시 운전 교대하여 갈 때까지 가보자 하고 간다. 자다보니 차가 갑자기 멈춰 깨었다. 도로변 공터에 차를 세우고 졸립다고 한다. 침낭을 꺼내 등받이를 젖혀놓고 눈을 붙인다. 자정이 조금 지났다. 약 670-680km 운행하였다.
8월 31일 (화)
부시럭 소리에 깨었다. 차가 출발한다. 나는 그냥 누워 계속 잤다. 차가서더니 금석이가 졸립다고 한다. 운전을 다시 교대하여 Chetwynd 약 20km전 Rest Area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하다. 그저 넓은 평원과 낮은 구름 잘 가꾸어진 밭과 Rest Area. 로키와는 또 다른 세계. 침렵수보다 활엽수가 많은 지역이다
때마침 왓슨레이크에서는 로데오 경기가 열렸다. |
오후 3시 10분경 Fort St John에서 슈퍼마켓에 들러 치킨 튀김과 생선 튀김, 음료수를 구입하여 중간에 먹으려 했으나 이 곳부터 도로 확포장 공사가 시작되어 대기 시간이 길어 차 속에서 교대로 먹었다. 먹다보니 치킨이 아니었는데 메츄리 같기도 하고 하여간 정확히는 모르겠다. 금석이는 냄새가 난다고 안 먹는다. 현재 오늘 주행거리가 약 650km 이다. 오후 7시경 너무나 멋진 Rest Area가 Muncho Lake에 설치되어 있다. 수상비행기가 나르고 맑은 호수에 뛰어 들어 땀에 젖은 얼굴도 씻고 자연히 발도 씻게 된다. 이곳에서 석식을 하기로 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공사장을 지나와 엉망이 된 차를 호수의 물을 길어 닦았다. 모닥불용 장작도 많아 하루 묶고도 싶은데 우리에겐 여유가 없다.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며 시원하게 뚫린 길을 시원스레 달린다.
밤 11시경 Watson Lake City를 지나며 잘 만한 곳을 찾아본다. 37번 도로 갈림 삼거리에서 약 30km떨어진 곳에 Rest Area 팻말을 보고 찾아 들어가 바로 취침하였다. 오늘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번이나 주유를 하였고 주행거리는 약 1500km였다. 식사시간을 빼고도 16시간의 주행이다.
9월 1일 (수)
눈뜨며 출발하여 약 2시간 후 Teslin Lake Camp Ground에 조식을 하려 가보니 무료 캠프그라운드였고 우천시 사용하는 지붕있는 취사장에 난로도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먼저 온 임자가 있었고 물론 넓지만 날씨도 좋은데 실내는 무슨 실내, 아무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하고 식사를 하였다. 어제 오후부터 간간히 나타나는 단풍이 눈을 즐겁게 하더니 이곳의 단풍도 아름답다. 이곳은 수챗물이 바로 호수로 유입되지 못하게 구덩이를 파서 자연정화되게 하였다.
마지막 도시인 White Horse에 도착하여 주유를 하였고 Mt. Logan이 있는 KLUANE국립공원 안내소에 들러(Haines Junction) 되지도 않는 영어로 로간의 어프로치를 물으니 육로는 없고 호수에서 수상비행기로 가야 한단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는 못 알아들었지만 1인당 $270이란 소리는 들었다. 조금 가니 에메랄드빛의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이곳이 Kluane Lake이다. 상류 쪽 물이 유입되는 곳을 지나다 보니 어찌나 더러운 물이 유입되는지 지금 저 호수가 이 물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석회암이 녹아 내려 완전히 시멘트 풀어 놓은 것 같은 흙탕물이 일년 내내 유입되는데 일단 호수에 유입되면 부유물이 갈아 앉아 맑은 에매랄드 또는 싸파이어의 빛을 띠게 된다. 호숫가에 가 자세히 보면 자갈등에 부유물이 덮여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자갈이나 암반이 돌의 색을 그대로 노출한 깨끗한 모습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곧게 뻗은 도로 주변엔 단풍이....... |
Kluane Lake 캠프그라운드(무료) 우천시 취사장에 들어가 바람이 몹시 불어 바닥 모퉁이에 버너를 켜고 라면과 국수를 먹었다. 이제는 식량을 살수 없고 계속 있는 식량을 최대한 소비하여야 한다. Beaver Creek마을을 지나며 이곳이 캐나다의 마지막 부락이라고 하니 금석이는 벌써 다 왔냐? 며 저는 지금쯤 이곳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지도를 가르키는데 1/2 지점이다. 그러니 죽을 내기하고 달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 행동에 이해가 갔다.
국경을 나갈 때나 미국 국경으로 다시 넘어들어 갈 때나 아무런 제약이 없다. 촌놈들은 총 맞을까봐(?) 국경에 서서 관리인이 나오길 기다리니 의아해하며 나온 관리인이 뭐라고 하나 못 알아듣겠고 차 트렁크를 열어보라 하더니 가라한다. 이곳은 국경이 있으나 마나다. 다른 곳은 국경 초소간격이 몇 백미터 사이인데 이곳은 몇 십Km 떨어져 있었고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약 5분 쯤 가니 여행자 안내소가 있었으나 근무시간이 다 되었고 빈 사무소(화장실만 열렸음)에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다시하고 재차 출발한다.
8시30분경 Tok부락에서 빵으로 요기를 하고 밤 11시경 Delta Junction을 지나다 슈퍼마켓에 불이 켜져 있어 치킨을 구입하여 마을 어귀에 있는 캠프 그라운드(무료)에 들어가 닭도리탕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오늘도 약 1200km 정도 달렸다. 내일부터는 조금 여유 있게 행동해야겠다.
9월 2일 (목)
오늘도 변함없이 눈뜨며 출발하였다. 알라스카 제2의 도시 Fair Banks에 출근시간에 걸려 조금은 복잡한(?) 거리를 지나 시내를 빠져나가다 도로를 잘못 들어 공항으로 갔다 다시 나왔다. 벌써 10시가 다 되었건만 이곳은 도대체 캠프그라운드는 커녕 휴식공간도 없다. 도저히 배가 고파 할 수 없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차를 방패삼아 아스팔트에 쭈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였다. 매일 저녁식사 준비 때 다음 날 아침까지 준비하므로 별 어려움 없이 데워 먹기만 하면 되나 메뉴가 똑 같다는 것이 흠이다.
약2시간 달리다 보니 멋진 숙박시설과 기념품판매소 같은 곳이 있어 내려보니 이곳이 Denaly 국립공원입구의 마을이다. 공원입구는 몇 km더 남쪽으로 있다. 차를 타고 가는데 까지 가보려 했으나 약 20km 정도 들어가 싸베지 초소에서 차량이 통제되어 못 갔다. 셔틀버스가 운행되나 셔틀버스가 중간에 관광객을 태우는 것이 아니고 지정된 장소(공원입구 마을에서 출발하여 국립공원 관리소 앞에서 승차)에서만 탑승이 가능하다 하여 다시 공원 관리소로 나와 관리소를 둘러보고 필요한 자료 몇 가지를 구입하였다. 셔틀버스도 지금은 가까운 곳까지 밖에는 운행하지 않기에 포기하였다.
앵커리지까지 가는 길은 거의가 마을이 없었고 앵커리지부근의 위성도시인 Willow Town부터 Palmer까지는 마을의 연속이었다. 그중 Houston에서 슈퍼마켓에 들어가 중식을 하려 했으나 먹을 것이 없어 윈디스햄버거를 먹었으나 별로였다. 다시 슈퍼마켓에 들어가 저녁 찬거리를 구하려 한바퀴 돌다보니 먹을 것이 많았는데 아까는 못 보았다. 슈퍼마켓의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못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7시경 앵커리지에 도착하여 바닷가 일몰사진을 찍으려고 한참을 기다리고 시내쇼핑도 하고 다시 바닷가에 갔으나 일몰이 별로였다. 9시경 일몰에 헛물 켠 뒤 먼저 요세미티 가는 길에 맥도날드에서 만났던 박승현씨를 찾아 다이아몬드 센타를 찾아가니 문이 잠겨 있었다. 40분전인 9시에 끝났다. 돌아가기로 하고 앵커리지를 벗어나 적당히 잘 곳을 찾아 가보니 개인이 시설을 갖추고 야영장 영업을 하는 사설 캠프장이었는데, 캠프 그라운드 보다 시설이 훨씬 못하고 값도 비쌌다. 그냥 빠져나와 마을을 지나며 적당한 곳에서 자려 하다 멋진 캠프 그라운드를 발견 하루를 보낸다... 새벽 1시50분 경 취침.
9월 3일 (금)
어제는 너무 돌아 다녔나?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고 있었다. 눈뜨자 바로 출발하였다. 가다보니 길가에 차가 한대 서있는 것이 언뜻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엉성한 것이 산쟁이 차 같아 세워 내려 보니 역시였다. 차는 밴이었는데 차 속에서 한명이 자고 한명은 밖에서 비박을 하고 텐트가 길가에 쳐있는데 그 곳엔 몇이서 자는지 모르겠으나 9시가 지났는데 그들은 아직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어느 산을 다녀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길가에서 못 잔다는 것도 거짓이다. 이들은 아무 곳에서나 잘도 자고 있다.
멀리 만년설의 빙하가 내려 보인다. 9시20분경 갑자기 금석이가 차를 세우더니 이곳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한다(끝없는 직선도로) 사진을 찍고 다시 출발하려 하니 일어서다 건드렸는지 차문이 잠겼다. 반팔 옷에 날씨는 춥고 아찔하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 우리가 전날 자던 곳 약 10km지점이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청해보나 말이 통해야지..... 결국 한사람이 parmer에 가서 열쇠공을 보내주겠다고 가더니 다시 돌아와 추운데 떨지 말고 같이 가자고 한다. 하지만 차 속의 물건도 물건이지만 다른 방법으로라도 열어보려고 사양하였다. 지금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소형 카메라 뿐이다. 마침 안테나가 통선이고 나사형으로 분리가 되어 안테나를 뽑아 끝을 돌로 구부려 키 박스 부분을 누르니 몇 번 만에 열렸다. 마지막 수단으로 뒷문 삼각 유리창을 깨려던 수고는 덜었건만 약 20여분 추위에 떨었다.
도로에 닿아 있는 워싱턴 빙하 |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이곳에서 기다려야 하나 parmer로 가야 하나 말이나 통하면 지나는 차량에게 부탁하여 취소도 해보겠건만 그렇게 상세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기다리고 있자니 바보 같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떠나긴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열쇠공이 왔다면 '역시 동양놈들은 못믿어'하며 돌아갈 것이란 생각이 들어 더욱 마음이 무겁다. 중간 이름 없는 캠프 그라운드에서 식사를 하니 12시가 되었다. 이것이 조식이냐? 중식이냐?
Glennullen에 오니 Wrangell-St-Elias 국립공원의 멋진 모습이 다가온다. 눈 덮힌 만년설과 뾰족한 봉우리가 등반 욕을 자극한다. 이곳에 왔으니 Valdez에 가보려고 우측으로 차를 돌려 200km떨어진 발데즈 지방으로 간다. 발데즈 부근에 가니 빙하가 도로에 닿아 있다. 해안마을이다. 날씨도 따뜻할 테고 고도가 전혀 없는데 웬?빙하! 엄청난 적설을 예상할 수 있었다. 책에서 보았듯이 하루에 3-4m, 한시간에 1m의 적설도 있었다는 글귀가 실감나는 곳이다. 핀쳐 크릭의 폭포를 보고 3시30분경 발데즈에 도착하여 고난도의 Wowie Zowie폭포를 찾아가다 길이 막혀 돌아왔다.(다음에 알고 보니 길이 두 번 굽어 있었다)
발데즈의 박물관 내부에는 옛 인디언들의 생활모습이 전시되어 있다. |
박물관을 구경하고 6시경 발데즈를 떠난다. 중간 Rest Area에서 식사를 하고 오늘은 국경 여행자 안내소까지 가기로 하다. 이곳에 오니 밤 10시 가까이 되어야 어두워지니 활동 시간이 길어서 좋다. 국경에 새벽 1시40분 도착하여 세면과 화장을 하고 2시15분경 잔다. 오늘도 약 1000km의 운행이었다.
9월 4일 (토)
미국 측 국경 방문자 안내소 |
한참을 자다보니 어느새 캐나다 국경이고 국경관리소 여자직원이 뭐라 하는 바람에 깨었다. 침낭 속에서 여권에 스템프를 다시 찍고 Lake Creek캠프 그라운드에서 조식을 한다. 이곳은 숙박비용이 $3-8짜리였고 자진 납부제였다. White Horse에 도착하여 북단의 도시는 어떠한가 보려고 마을로 진입하였다. 주민피크닉 장소에서 중식을 하고 시내로 들어가 시내를 보았으나 별 다른 특징을 보지 못했으나 사람들은 예상외로 무척 많았다. 주말이라서 그런 것인지 내일이 우리가 모르는 무슨 특별한 날인지는 몰라도....
오후 5시30분경 화이트 홀스를 떠났다. 8시15분경 주유소에서 연료를 넣다 바로 옆에 Ranchria캠프 R.V. Park에 가보니 화장실에 샤워 시설이 되어 있고 더운물이 나온다. 유료인가 하여 가격을 알아 보려고 한참을 헤맸으나 유료의 모습은 발견하지 못하였고 무료란 결론을 내렸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교대로 샤워도 하였고 9시50분경 다시 출발하였다.
10시 50분경 Upper Liard에서 먼저 지나온 길을 버리고 비포장이 약 400km있는 37번 도로로 길을 바꾸었다. 지금까지 보아온 비포장 도로는 포장도로와 거의 손색이 없고 먼저 지나온 길은 공사구간이 많아 마찬가지라고 판단하였다. 비포장은 있지만 프린스 죠지 까지 약 200km정도가 단축된다. 11시 50분경 Boya Lake Park 약 5km전방 Rest Area에서 취침. 한참을 자다보니 커다란 트레일러가 들어와 같이 잔다. 오늘도 약 1000km의 운행이었다.
9월 5일 (일)
넓은 시냇가 Rest Area Deasa Lake에 가니 트레일러가 여러대가 있다. 아침식사를 하며 보니 우리나라 라면봉지가 타다 남은 재속에 있다. 옆엔 쓰레기통도 있건만 꼭 우리국민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우리국민이 연상될 것 같아 쓰레기통에 넣었다. 40mile Flats와 Bell II를 지나며 연료가격이 비싸 그냥 지나쳐 왔는데 Heyiadin Junction의 주유소는 폐쇄되었다. 주유기앞에 차를 세우고 주유구를 열고 나서야 알았다. 지도상의 다음 마을은 83km지점 연료눈금은 제로 상태 Stewart방향으로 49km지점에 마을이 있다 하나 그곳은 우리의 방향과는 다른 곳이다. 그러나 구세주 약 17km지점에 가격도 지금보다 싼 편인 주유소가 있어 연료를 채우고 그때서야 또다시 연료마개를 분실한 것을 발견, 페쇄된 주유소로 되돌아가 연료마개를 찾았고 조급한 마음에 그냥 지나친 Heyiadin Lake 캠프 그라운드로 들어가니 너무나도 멋진 곳이었다.
프린스 죠지를 지나며 편의점에서 음료와 간식거리를... |
사람도 여럿이 있다. 중식으로 라면과 국수를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캠프 사용료는 1박에 $8.00이었다. 이제 비포장도로는 없다. 비포장도로도 간간히 포장되어 전체 비포장도로가 200km정도였고 비포장이라도 100km/h로 달릴 수 있는 도로 상태니 시간 거리를 모두 단축시킨 셈이 되었다. 오후 4시45분경 16번 고속도로를 만나는 Kitwanga에서 New Hazalton과 Smithers(재스퍼 캠프에서 만났던 한 아가씨가 집이 Smither이라 했는데 어디인지 모르고 밴쿠버 부근인 줄 알았는데)를 지나 Houston에 도착하여 마을의 Service Park캠프에서 석식을 하고 서울로 전화를 하였건만 한사람도 통화를 못했다. 이젠 시간적 여유도 있건만 밤 11시 40분경 프린스 죠지를 지나며 첫번째 나타난 시냇가 Rest Area에서 취침 오늘도 약 1200km의 주행이었다.
9월 6일 (월)
8시30분경 Rest Area에 청소부가와 청소를 한다. 오늘은 평상시와 달리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떠났다. 오늘의 목적지는 레이크루이스, 약 400km거리이다. 11시 20분경 재스퍼로 가던 첫날 아침식사를 했던 곳에서 잠시 쉬며 이곳이 우리가 첫날 아침 식사를 하던 곳이라고 하니 금석이는 전혀 기억이 없고 모르겠다고 한다.
호수의 물이 맑아져 반영이 아름답다. |
재스퍼로 들어서며 또다시 Mt. Robson을 보니 먼저보다 적설이 덜하다. 그러니 그때는 일기가 나빴다는 결론이 된다. 오늘 롭슨을 보니 북벽은 몰라도 남면은 한번 해볼만 하게 보인다. 처음 롭슨을 보던 날은 등반을 상상하며 소름이 끼쳤었다. 재스퍼를 지나 바로 아이스 필드 파크 웨이로 들어서 에디카벨의 적설도 확인하려 했으나 햇살에 눈이 부셔 잘 보이지 않는다. Portal creek Rest Area에서 어제 부친 밀전을 데워 먹고 다시 출발 차안에서 잠깐 졸았는데 벌써 썬웹타고개를 너머 눈물의벽으로 향해 달리고 있다.
콜롬비아 빙원에서 셔틀버스(스노우 모빌)을 타고 사진도 다시 찍으려 했는데..... 공원내의 관광객 수가 눈에 띠게 줄었다. 람파트 Y.H에도 들려보고 여름의 폴라써커스와 와와 캐피탄도 보았다. 챕헌호수와 Mt.챕헌의 그림자를 보았고 사진을 찍다. L.A, 샌프란시스코, 캘거리에서 왔다는 교민들도 만났다. 레이크루이즈에 오니 김종휘씨가 반갑게 맞아주며 먼저 집으로가 쉬고 있으라 하며 주인 없는 집에 객이 먼저 들어와 휴식을 취하다. 저녁 식사는 치킨을 구입하여 먹었는데 사모님이 밤늦게 백숙을 끓여 주었으나 정말 배가 불러서 못 먹고 술만 한잔 하였다. 약 600km 운행
9월 7일 (화)
9시30분 사모님이 야채 쥬스 만드는 소리에 깨어 야채 쥬스도 한잔 먹고 아침식사를 하고 11시 30분경 집을 나서 모레인 호수와 루이즈 호수를 구경하고 돌아왔다. 오후엔 맥주도 몇 캔 사서 마시며 쉬었다. 그동안 메모를 바탕으로 밀린 일지도 썼다. 어제까지의 총 주행이 8100km이고 밴쿠버까지는 약 800-900km 이니 총 9000km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먼저번 차로 8600km를 달렸으니 작년에 4600km까지 포함하면 캐나다에서 22,200km정도의 주행거리가 계산된다.
9월 8일 (수)
캐나다 남부의 과수원 지대의 과일 직판장 |
9시 30분경 집을 나서 주유소로 가 김종휘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Field Town Yoho주립공원을 지나며 시계를 한 시간 되돌려 놓고 그리시아 국립공원에서 93년판 숙박업소 안내서를 구하고 곰에 관한 비디오도 조금 보다. 관광객이 생각보다 많다. 이 곳에서 작년에 지났던 길을 버리고 조금 우회하더라도 새로운 마을을 경험하고자 코스를 돌렸다. Mara Lake의 엄청나게 큰 호수와 호수 주변의 요트장 휴게소 등을 보며 영화에서나 보던 휴양지를 연상하였다. Princeton, Manning 공원등을 지나다 중간의 마을에서 저녁식사거리를 구입하다. 이젠 식량이 거의 바닥이 나서 쌀도 달랑달랑 하여 빵으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다.
Manning공원 휴게소에서 저녁식사를 해 먹고 서울로 전화를 하였다. (Hope City 가까이 있는 Manning공원은 넓은 지역 공원이다. Hope City는 밴쿠버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오후 9시 45분 Hope City 캠프 그라운드를 확인하고 다운타운으로 가보니 아무것도 없다. 콜라 한잔 마시고 다시 캠프 그라운드로 돌아가기 싫어 밴쿠버 쪽으로 가다 도로변 자동차 휴식소에 들르니 더운 물이 나온다. 10시 20분경 그 곳에서 주차를 시키고 잤다.
9월 9일 (목)
일찍(차량이 많이 다녀 늦잠을 잘 수가 없다.) 일어나 조식을 하고 밴쿠버에 9시 20분에 들어 왔다. 먼저 Mt. Co-Op으로 가 부족된 회원들의 장비를 마지막으로 구입하여 카리브 모텔로 간다. 방을 하루 계약하고 모든 짐을 꾸려 출국용으로 팩킹을 완료하고 옷도 한벌만 남겨 놓고 속옷도 모두 갈아입었다. 오후 3시 20분경 모든 것이 끝나고 휴식을 취한다. 풍년식품에 떡을 사러 갔다가(내일 아침용) 중국 음식점을 묻고 입맛에 맞는 음식 이름을 물었으나 음식점 위치만 알려주고 그 곳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라 했다.
저녁식사를 속은 셈 치고 외식을 하기로 하고 중국집에 찾아가 메뉴판을 번역하여 금석이는 돼지고기, 나는 오징어를 시켰는데 돼지고기는 설탕(물엿) 같은 것에 고열로 튀겨 볶은 것이었고 맛있었으나 좀 달았다. 내가 시킨 오징어는 물오징어를 밀가루 발라 기름에 튀긴 것인데 느끼하였다. 밥은 달라면 주는데 금석이만 시켜 먹었고 결국 둘이서 다 먹지 못하였다. 양도 양이지만 느끼하고 달아서 마음껏 먹을 수가 없었다. 다운타운에 가서 맥주 한잔하자니까 들어가 잠이나 자자한다. 모텔로 돌아와 캐나다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무언가 아쉬움이 꽉 차있고 허전한 밤이었다.
9월 10일 (금)
아침부터 서둘러 공항에 나갔다. 공항에 도착하여 한 시간도 안되어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공항 대합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지루하다. 12시 20분 개찰하여 12시 45분 탑승하였고 비행기 속에서의 지루한 시간 끝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의 시간은 9월 11일(토) 오후 5시경이었고 오늘 회에서는 도봉산에 합동 야영이 계획되었다 하여 모두들 도봉산으로 바로 갔다. 산으로 가는 길에 집에 들러 짐만 내려놓고 바로 도봉산으로 갔다가 새벽에 귀가하였다가 아침에 다시 도봉산에 들어가 회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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