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락 / 11-17/ 바다에 던져진 요나
11.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요나가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자백은 했지만 바다는 점점 흉용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몰고 온 징계의 파도나 폭풍은 내가 죄를 자백했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즉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회개는 3단계로 이루어져야 완전한 회개가 됩니다.
1)죄를 깨달음...인지의 문제...자기가 어떤 죄를 지은 죄인인지 인지하지 못한다면 회개가 안됩니다.
죄를 깨달았다는 것만 해도 귀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씩...말씀드리기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죄인이 살고 있다.
자기가 죄인인줄 아는 죄인과...자기가 죄인인줄 모르는 죄인이 살고 있다고 하는 겁니다.
2) 죄를 토함-고백의 문제
내 안에 죄가 있음을 깨달았다면 그냥 둔다면 깨달은 의미가 없습니다..토해내야 함
우리가 혹 몸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갈 수 있습니다...의사를 만나 진단을 받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했습니다...몸안에 종양이 자라고 있습니다..수술해야 합니다.
자...자기 몸에 이상을 느끼고...병원을 찾은 것 잘한 겁니다..
그리고 담당의사를 만나 진단을 받고 정밀 검사를 받은 것도 잘한 겁니다.
더 잘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다...수술까지 하는 것입니다.
아...수술하면 아픈데...힘든데....그래서 안한다면 앞에 수고들이 다 무용지물입니다.
3)하나님께로 돌아옴....방향의 문제...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길에서 돌아와야 합니다.
수술을 한 한자는 이제는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쟎아요
이전의 생활 패턴을 버리고..이전에 좋아하던 행실도 버리고...
암 치료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도 않고...암에 해가 되는 음식도 절대 안 먹어야 합니다.
이는 과거에서 돌아서서...새로운 새 인생의 길을 가는 겁니다.
마찬가지로...성도된 우리의 회개도...입술의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서...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그것이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겁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에 따라..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하나님의 법과 식을 따라 가는 겁니다.
그것이 진짜 새로운 피조물되고..거듭난 성도됨의 증거가 되는 겁니다.
요나가 입술로 자기의 죄를 자백했지만...자백으로 바다가 잔잔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백후...삶이 바뀌어....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이것을 이방인들도 알았습니다..아니까..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하고 묻는 겁니다.
이때 요나가 그 답을 이렇게 말합니다..
12.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이 요나의 결단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는 성경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것이 요나와 이스라엘 백성의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물론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선지자였기에..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언약을 버렸으니..
당연히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내가 죽어야 바다가 잔잔하리라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라고...다 그럴까요?...왕이라면 범죄한 후에...
다윗처럼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자백하며...돌아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나가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아무리 외쳐도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 아노라...고백이 없습니다.
이 고백이 없는데...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는 결단은 더더욱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와 동시대에 선지자였던 아모스를 통하여 암5:4-6절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4.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5.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6.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4절에...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6절에..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여호와를 찾는다는 것이 뭡니까?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겁니다.
즉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부르시고 또 부르시고...기다리고 또 기다리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고...돌아오지도 않다가...결국은 망하고 만겁니다.
13.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자...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고 계시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지금 이 장면이 상상이 되십니까?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잔잔하리라...답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요나를 던지지 못합니다..
도리어 그들은 힘을 합하여...힘써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이렇게 행하게 하고...이런 모습을...요나에게 보여줄까요?
지금 이방인들의 이러한 몸부림은 두 가지 뜻을 품고 있습니다.
1)생명을 귀중히 여김입니다....자기들도 한 생명이지만...요나도 생명을 가진 사람인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바다에 던질 수가 있느냐...그럴 수 없다는 마음이 담겨 있고요
2)인간을 긍휼 여김--요나가 비록 죄를 범한 죄인이지만
그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 장면은 하나님께서...요나에게 교육의 장으로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무엇을 이방인을 통하여 교육하고 있습니까?
요나야 너 이 이방인들 좀 봐라...이방인들도 이렇게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니?...
이방인들도...죄 지은 너를 긍휼히 여겨 바다에 던지지 못하지 않니?
저들도 어떻게 하든지 너 살리려고 하는 이 애씀이 보이지 않니? 이들을 좀 보라 겁니다.
왜 이런 장면을 보게 하시느냐 하면...
요나의 입장에서는 니느웨가 망해야 하고 니느웨 사람들은 심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요...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한 대적자들이니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서 안된다고 생각한 요나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비록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지만...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나아가 죄인 된 요나도 긍휼히 여김으로...
요나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함이 오늘 본문입니다.
성도는 나의 생명도 귀중히 여겨야 하지만...이방인의 생명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인이었을 때...긍휼함과 용서함을 받았다면
우리도 세상에 살다보면....이런 저런 잘못에 빠진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김으로 우리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 끈이 되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0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요나가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할 때에
배에 선장과 선원들이...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지 아니하고
어떻게든 배를 육지로 돌려...요나의 생명을 구하고자 노력해보지만...
13절 하반절에...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더 흉융하므로 능히 못한지라...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요나를 살려보고자 그들의 뜻과는 다르게....
파도의 힘을 그들이 이길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드디어 그들이 결단을 합니다..어떤 결단을 합니까?
하나님의 사람인 요나....선지자인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로...결단을 했습니다.
결단을 함으로 그냥 바다에 던진게 아니라...또 하나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4.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시작을 무리가...이렇게 시작합니다...무리라는 것은 그 배에 탄 선장과 선원은 물론이요..
그 배에 함께 탄 일반인들 모두를 말합니다...무리가... 모두가...뭐했다?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부르짖어 구하고 구하였다는 겁니다.
누구에게 여호와께...부르짖어 구하고 구하였다는 겁니다.
이 뜻은 주석을 보면...진심을 담아... 간절히 기도함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진심을 담아 간절히 기도했다는 겁니까?
지금 하나님의 사람...선지자라고 자신을 밝힌 요나를 바다에 던진다는 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될 무서운 일임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심을 다해 기도하기를...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을 바다에 던지지만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말아달라...
이 사람 요나가 바다에 던져 죽는 죽음의 죄값을 우리에게 찾지 말라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게...기도를 할 때에...꼭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을 담은 진실한 기도입니다.
기도에 가장 중요점은 진실의 문제이고...진실하다는 것은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혹 요나로 인하여 자기들이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이 기도의 뜻은...우리를 살려달라는 기도입니다.
기도중에 가장 진실하며 절박하게 마음을 담은 기도는 죽음의 자리에서 살려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가장 진실한 기도요...마음이 담기지 않을 수 없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이 담기지 않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기도를 아신 주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마태복음 6:7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중언부언의 기도란 어떤 기도일까요?...
이 기도는 마음이 담기지 않는 기도, 절박함이나 진실함이 없이 형식적인 기도라는 겁니다.
후안까를로스오르띠즈 목사님은...
마음이 담기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는 뜻에서...책을 쓰기를...책 제목이
[우리의 기도가 대부분 잡동사니 우편물 취급을 당합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잡동사니 우편물 취급을 당하지 아니하는 기도를 드리기 원한다면...
기도에 무엇을 담아라...마음을 담아라...마음을 담은 진실한 기도를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은 기도의 형식을 보시지 않습니다...
기도의 중심.....기도하는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방인들의 기도중에...마지막 기도가 뭔지 보시기 바랍니다.
14절 하반절...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즉 이방인들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기도에 대한 교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시다...이 뜻이 뭡니까?
우리가 기도는 하지만...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하신다는 뜻이요
좀더 깊이 들어가보면...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최고봉이 무엇이다... //
그리고는 요나의 말대로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졌습니다. 15,16
15.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2절에서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그리하면 잠잠하리라고 한 대로...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바다가 바로 잠잠해 졌다는 겁니다.
이 사건을 보고...사람들이 여호와를 뭐했다...크게 두려워하여...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0
크게 두려워함....다음에 제물과 서원이 따라옵니다...제물과 서원이 뭐냐...여러가지해석-경배,예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참된 예배가 시작됩니다...참여할 때에...구경꾼은 안됨-예배자
어제 새벽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통하여 요나가 깨닫기를 원함이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요나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드린 말씀이지만...
니느웨를 배경으로 쓰여진 성경이 두권이라고 했습니다.
그 두권의 성경이 요나서와 나훔서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두권의 성경이 니느웨를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요나선지자와 나훔선지자가 다 같이 니느웨에 파견을 받아...복음을 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요나가 복음을 전할 때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옴으로 구원을 받지만
나훔이 복음을 전할 때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지도 않고 돌아오지 않음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이렇게 극단적인 두 면을 기록하게 하셨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 나라의 백성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니느웨를 모델로 들어 서신 것이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너희들 봐라...이렇게 악한..대대로 악한 니느웨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내가 용서하고 그들에게 심판을 멀리하지만....
그들이 돌아오지 아니할 때는...내가 그들을 심판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델로 쓰신 겁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유다야...너희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돌아오라 돌아오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