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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베덴보리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해바라기
스베덴보리 저서 '참된 기독교'가 제시하는 미래상
-Jonathan Rose / 목사, 신학교수, 고전어학박사, '참된 기독교' 번역인.
“기독교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참된 기독교>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나는 이 저서를 통해 보이는 스베덴보리의 모습에서, 다곤 신전의 거대한 두 기둥을 양팔로 밀고 있는 거인 삼손을 본다. 삼손이 최후를 맞는 스토리를 알고 있는가? 그는 수많은 필리스틴 사람들이 운집한 큰 신전 한 가운데의 두 기둥을, 온 힘을 끌어모아 밀어서 무너뜨린다.
스베덴보리의 인생 후반도 그랬다. 그에게도 무너뜨려야 하는 두 기둥이 있었다. 그것은 '대속'과 '이신칭의'라는 두 교리였다. 그의 눈에는 그 두 교리에서 온갖 그릇된 신념들이 파생되어 기독교 전반에 퍼져나간 것이 보였다.
‘대속’의 교리는 간단히 말해서, 예수는 신의 세 위격(Persons)중 한 분에 불과하고, 인류를 성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되심으로써, 인류에게 내려진 저주를 인류 대신 떠맡아 해결했다는 논리다.
또 ‘이신칭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교리다. 스베덴보리는 믿음으로 구원된다는 교리가 결국 사람이 선하게 사는 것은 구원에 전혀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귀결되었다고 보았다.
이 두 교리는 많은 기독교인 개인들과 또 종교로서의 기독교 자체에 영적으로 큰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스베덴보리는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두 기둥을 밀어 넘어뜨려 그 기둥 위에 세워졌던 그릇된 신념 체계를 철거하고자 했다. 이 저서 군데 군데 나오는 분노에 찬 표현들을 보면, 그가 그 두 교리에 대항해 분투하며 내뱉는 신음이 귀에 들리는 듯 할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단언하기를, 사실상 그리스도의 삶과 메시지는 처음부터 잘못 해석되어왔다고 말한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하고 신앙심 깊은 가톨릭 및 개신교 신자들은 천국에 들어갔지만, 그러나 기독교의 지도층과 교리는 올바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가 영계에서 알게 된, 장차 나타날 기독교의 본모습, 즉 과거의 '대속'과 '이신칭의'라는 두 기둥을 대신하여 앞으로 지상에 세워질 소망의 기독교는, 스베덴보리 당시의 기독교와는 현격하게 다른 기독교였다. 특히 '삼위일체 교리'와 '예수의 삶과 죽음의 목적'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 크게 달랐다.
삼위일체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세 분(Three Persons)이 아니라 단 한 분(One Person)이라고 스베덴보리는 강력하게 확언한다. 이에 대한 그의 가르침을 달리 표현해보겠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그 사람의 세가지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그의 마음 즉 영이 있고, 그 마음과 구별되는 몸이 있으며, 또 그 사람의 활동 즉 영향력이 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다 삼일성을 갖는다. 하나님도 이와 마찬가지시다. 유일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의 영을 우리가 ‘성부’라 하고, 그분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고 그 분의 영향력은 ‘성령’인 것이다. 이렇게 삼위일체는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양상(facets)이라는 개념이 <참된 기독교>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기존의 '대속' 교리는 그 목적이 성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서라고 가르치지만, 스베덴보리는 매우 다르게 설명한다. 예수님이 지상에서 사신 삶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에게 훨씬 더 밀접하게 가까이 갈 수 있는 대로를 만드시기 위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스베덴보리가 영계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교통은 성육신 이전에는 단지 간접적인 교통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높은 천국의 천사들에게로, 그들로부터 그 아래 천국 천사들에게로, 그들에게서 천국 아래 중간 영계에 있는,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영들에게로, 그리고 그 영들에게서 이 지상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로 단계적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자, 세상은 선보다 악이 더 우세하게 되었다. 그 결과, 중간영계에는 선한 영들보다 악한 영들의 비율이 점점 더 커지게 되었다. 중간영계의 속성상 그곳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영들로만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영계와 지상에서 늘어나는 악은 검고 위협적인 구름이 되어 빛 자체이신 분과 인류 사이를 가로막게 된다. 그 어둠 속에서 사람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되었었던 것이다.
이 검은 구름을 흩어버리고 사람에게 직접 접근하실 수 있는 항구적인 경로를 열기 위해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것이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행적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측면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즉 복음서엔 예수님의 가르침, 치유, 섬김의 사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그 전체 계획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예수님의 생애에는 두 가지 커다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속량(redemption)', 다른 하나는 '영광화(glorification)'인데, 이 두 신학용어를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의미로 사용했다.
예수님의 주요 목적중 하나는 천국과 지옥과 중간영계를 재편성함으로써, 당시의 엄청난 악의 증가를 상쇄하고 선악간의 균형을 되찾는 일이었다. 이것을 이루신 것은 하나님이 지상에서 한 인간으로 존재하심으로써, 순수한 신적 존재로서 접근하셨다면 필히 파괴되어버릴 매우 낮은 차원의 인간 본성까지도 그것을 손상하지 않은 채 직접 접근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셨기 때문이다[124-125항]. 이러한 영계 재편성이야말로 예수님이 이루신 진정한 '속량'이라고 스베덴보리는 말한다.
예수님의 또하나의 주요 목적은, 일생동안 계속 이어지는 변화의 경험('시험')들을 통과하시는 것이었다. 그 경험들중 마지막 것이 십자가의 고난이다. 이 경험들은 예수님에게 있었던 완전히 인간적인 속성들을 하나님의 속성들로 하나씩 대체하는 과정이었으며 이를 통해 마침내 온전히 하나님 자신이 되신다. 이것이 진정한 '영광화'의 의미다.
예수님이 육신까지도 완전히 영광화된 상태로 무덤에서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고 사람은 하나님이 된 것이다. 그 결과, 이 변화로 인해 하나님이 직접 접근하실 수 있는 영역은 영계의 모든 부분으로 확장되었고, 그 확장된 영역 안에는 지금 이 순간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까지도 포함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순간부터 영원히, 예수님은 비록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스베덴보리가 사용한 “접근(access)”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당신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더욱 충만히 임하심을 말하는데, 이는 단지 우리 바깥에 또는 우리 곁에 오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과 마음 안에 와서 계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을 들여다 보시고, 우리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시고, 우리의 감정을 다듬으시고 생각을 이끄시며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나님이 그런 차원으로까지 우리에게 접근하시도록 실제로 허용해드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문제지만,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주님은 지상의 삶을 통해 이룩해놓으셨다.
그 다음, <참된 기독교>에서 스베덴보리는 기존의 대속 교리가 제시하는 하나님과는 무척 다른 하나님 상을 보여준다. 기독교 교리의 낡은 구조를 철거하려 시도하면서 동시에 스베덴보리는 새로운 기독교, 거듭난 기독교의 탄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가 전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진노하고 형벌과 저주를 내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직접 우리에게 오셔서 가능한 한 더 충만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싶어하시는 분이다.
<참된 기독교>의 중요한 내용 또 하나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관계는 협력관계(partnership)라는 점이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개별적으로 상호 자발적인 관계를 이루고 싶어 하신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의 파트너가 된다면 필연적으로 나의 나됨을 잃어버리고 무한자 속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스베덴보리는 확언하기를 하나님과의 파트너쉽은 사실상 나의 나됨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한 협력관계의 결과는, 과거의 나도 아니지만 내가 아닌 것도 아닌, 새로운 나, 유일무이하고 천사다운 내가 창조되는 것이다. 실제로 스베덴보리 자신의 놀라운 영적 각성의 과정은, 그가 이 책에 묘사한 그대로의 하나님과의 협력관계를 보여준다.
스베덴보리는 앞으로 다가올 날에 대한 비젼을 갖고 있었다. 그 날은 단지 기독교인들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를 위한 날이다. 그는 기독교만이 유일한 절대 진리라는 믿음이 일반적이었던 유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그가 영계를 방문하면서 알게 된 것은, 다른 많은 종교들도 그 신도들을 천국에 가도록 성공적으로 준비시켜왔다는 것, 즉 어떤 종교에 의한 삶을 살든지 하나님과 파트너쉽을 수립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기독교가 (신자들을 천국에 보내는 데 있어서) 가장 성공율이 낮았는데, 그 가장 큰 원인은 ‘십자가 대속’과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잘못된 두 교리의 기둥이었다.
<참된 기독교>에서 스베덴보리는 그가 미리 본 새로운 기독교,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파트너쉽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하나의 운동(movement)에 대한 기초를 마련했다. 1771년에 그는 이 운동이 일정 기간을 지나기까지는 그 영향력이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848항) 그러나 분명히 새로운 기독교의 날은 오고 있으며, 그것은 인류의 밝은 영적 미래의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고 그는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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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sion of True Christianity
an unseasonably pleasant Friday evening in January, the Swedenborg Foundation hosted a talk by Dr. Jonathan S. Rose. In his talk, Dr. Rose expressed what he saw as the vision contained in the work True Christianity, the first volume of which he recently translated for the New Century Edition. The following article is based on that talk. “Christianity is not something in the past. It is something in the future. It has yet to dawn.” What is the core message of Emanuel Swedenborg’s True Christianity? I see Swedenborg in this work as Samson with his hands against two great pillars [see Judges 16:29]. Do you know the story of the end of Samson’s life? Thousands of Philistines were gathered in, and on the roof of, a large temple supported by two central pillars. Samson summoned all his strength and pushed down the two pillars, killing all the people there, including himself. At the end of Swedenborg’s life as well, there were two pillars he wished to tear down: the doctrine of the vicarious atonement and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which in his view were propping up all sorts of other false notions throughout Christianity. In brief, the vicarious atonement is the idea that Jesus is but one of three Persons in the Godhead and that Jesus took on the damnation of the human race to protect it from the wrath of God the Father, sacrificing himself on the cross for our sins.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or the belief that it is our faith and only our faith that saves us,to Swedenborg meant that the good actions we perform contribute nothing to our salvation. He saw both of these doctrines as spiritually damaging to many individual Christians and to Christianity as a whole. He wanted to push those two pillars down and destroy the whole system that was based on them. In expression!s of outrage that occur here and there in the text, you can almost hear him groaning as he strains against them. Swedenborg claimed, in fact, that, from the very beginning, Christ’s message and life had been misunderstood. Although over the years there had been many good, faithful Catholics and Protestants who had found their way to heaven, the Christian church leadership and its doctrines had always been in error. So from the perspective of this work, Christianity is not something in the past. It is something in the future. It has yet to dawn. The Christianity that Swedenborg saw coming in the spiritual world, which he wished to establish on earth to replace those two pillars?the vicarious atonement and justification by faith alone?differed starkly from the Christianity of his times,particularly in regard to the Trinity and the purpose of Jesus’ life and death. As for the Trinity,God is one Person, not three,Swedenborg strongly asserts. To paraphrase Swedenborg’s teaching about this concept,if you think of someone you love, you can see three parts or aspects to that person:there is a mind or spirit; there is a body that is distinct from the mind or spirit; and there is the work that the person does, the effect he or she has. Each of us, then, contains a trinity, and God is no different.What has been called God the Father is really just the soul of this one divine Person. Jesus Christ is the body of this Person. And the Holy Spirit is the effect of this Person. The concept that the Trinity is three facets of one Person forms the theological heart of True Christianity. As for Jesus’ purpose in coming into the world, whereas the doctrine of the vicarious atonement holds that he did so in order to appease God the Father, Swedenborg gives quite a different explanation: Jesus’ earthly life served to create an avenue by which God and people in the physical world could have greater access to each other. According to Swedenborg, God’s communication with human beings before his Incarnation was only indirect. God was present with people only through a chain of communication that extended from him to angels in the higher heavens, from them to angels in the lower heavens, from them to people who had recently died and become spirits in the world of spirits below heaven, and from them to people still alive in this world. As the millennia passed and people drew farther and farther away from God,evil became more preval!ent in the physical world. As a result, the ratio of evil spirits to good spirits necessarily rose in the world of spirits as well, since that world is populated exclusively with people who have recently passed on. In effect,this growth of evil in both worlds interposed an increasingly dark and menacing cloud between the Light itself and the human race. In this darkness, the path to heaven was becoming more and more difficult to find. In order to dispel this dark cloud and establish a direct and permanent path of access to people, God was born in human form as Jesus Christ.The Gospels’ record of Jesus’ ministry covers only its outermost aspects; his teaching, healing, and ministering were, according to Swedenborg, but a small part of the overall plan for his life. His life had two grand purposes, called redemption and glorification?terms to which Swedenborg gives new meanings. One of Jesus’ primary purposes was to restructure heaven, hell, and the world of spirits in order to restore a balance despite the tremendous growth of evil. He was able to accomplish this because his presence as a human being on this earth allowed him direct access to and control over areas much lower than those he could have approached as a purely divine being without destroying them [see True Christianity §§124? 125].This restructuring of the spiritual world, says Swedenborg, was the real redemption that Jesus brought about. Jesus’ other main purpose was to undergo a series of transformative experiences, the last of which was the Crucifixion;these experiences changed his merely human attributes into divine attributes so that,in the end,he became fully one with God himself. This was Jesus’ real glorification. When Jesus rose from the grave with his whole glorified body, God had become a human being and a human being had become God. In effect, this transformation stretched God’s zone of direct access to cover all parts of the spiritual world, including the realms in which our minds and hearts are dwelling right now, while we are still alive in this world.Therefore ever since he died on the cross, although we can no longer see him with our earthly eyes, Jesus is able to be Immanuel, “God-with-us.” By “access” Swedenborg does not simply mean that God wants through his Incarnation to be more fully present outside of us or next to us. God wants to be able to be present within our mind and heart, to be able to see our memories, feel what we feel, shape what we feel, guide what we think, and have a direct impact on us, even while we are still alive in this world. It is up to us, of course, whether we allow God this degree of access to us in actuality, but the potential for it was established by his life on earth. In this volume, then, Swedenborg gives us a much different view of God than that presented by the vicarious atonement. In attempting to pull down the old structure, Swedenborg wishes to create room for a new or rejuvenated Christianity. He portrays a God of love and mercy who wants to come directly to us and be with us as fully as possible, wherever we are. In another crucial message of True Christianity, Swedenborg characterizes our ideal relationship with this accessible God as a partnership: God wants to form a reciprocal relationship with each of us individually. Although one might assume that a partnership with God would entail an inevitable loss of self and absorption into the Infinite, Swedenborg asserts that partnership with God actually increases our sense of self. The result of such a partnership is not what we used to be and not what any others have become through their partnerships with God, but a new, unique, angelic being. In fact, Swedenborg’s own remarkable spiritual awakening can be seen as resulting from the type of partnership with God he describes in True Christianity. Swedenborg had a vision of a day to come, a day that was not just about Christians; his was an ecumenical vision. He had grown up in a Europe that generally believed Christianity was the only true religion.When he visited the spiritual world, however, he found that many different faiths successfully prepared their followers for heaven?the living of any faith was sufficient to establish this partnership with God. In fact, Christianity was having the least success, largely because of its two false pillars of the vicarious atonement and faith alone. In True Christianity, Swedenborg laid the foundation for the new Christianity he envisioned?a movement centered around personal partnership with a personal, human, loving God. He suggested in 1771 that this movement would have little impact for “a time,times,and half a time”yet to come [see True Christianity §848]; but he foretold that it was certainly coming and was only the beginning of a bright spiritual future for the human race.
첫댓글 아래 글에 하늘구름님이 '새교회가 무엇인가요?' 질문을 하신 것을 보고 이 글을 가져왔습니다. 새교회는 '새로운 기독교, 거듭난 기독교'입니다. 늦었지만 대략이나마 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빅터 마춰가 주연한 삼손과 데릴라 영화에서...눈 먼 삼손이 쇠사슬에 묶인 채 블레셋 신전 두 기등 사이에서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밀어 무너뜨립니다. 최후의 기도. 장렬한 죽음 장면 인상적이지요...그 두 기둥을 대속 교리와 이신칭의 교리라고 비유한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목사나 평신도나 입버릇처럼 뇌이는 대속의 은혜 믿음만으로..그것이 정말 성서적인가 주님의 구원 섭리와 합치되나...세심하게 따져 보고 모순이 있다고 밝힌 분이 스베덴보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
전통적 대속 교리...와 새교회의 속량 교리를 비교 하는 글을 부탁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인생의 마라톤을 누구나 출발합니다. 가다가 많은 방해세력과 난관으로 인해 좌절하고 넘어집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고 불렀더니 예수께서 그를 업고 대신 마라톤의 종착지까지 뛰었다는 것이 대속이고, 반면 속량은 넘어진 자에게 방해세력을 제거해 주시고 손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어서 남은 코스를
직접 잘 뛸수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심이 주님의 속량의 은혜라고 보는 것이지요... 마치 간음한 여인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같이...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범죄치말라" - 평화 -
무엇을 드셨길래 이렇게 멋진 비유를 하시나요!
제가 표현할수 없었던 답답함을 잘 기술해 주셨네요~
저의 어리석음으로 안타까워 하던 내용을 잘 기술되어 있어
참으로 유익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홍익맨입니다.
귀한 글들 매우 잘 읽고 있습니다.
혹시
천국과 지옥과 중간영계의 재편성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쭙습니다.
어느 부분을 보라 말씀해 주셔도 고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홍익맨님! 쾌활하신 성격 덕분에 카페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어요. 감사드리고 앞으로가 많이 기대됩니다.
영계 재편성, 즉 속량에 대해선 참된 기독교, 천국의 비밀, 최후 심판 이렇게 세 권의 책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중 아마 최후심판이라는 책이 가장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아시는 얘기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우려되지만, 기초적인 부분만 간단히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인류가 시작된 때부터 지금까지, 영적 교회사를 보면 크게 세 번(홍수, 초림, 재림)의 최후심판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교회가 타락하여 어둠이 절정에 달해 인류가 멸망의 위기에 처한 때입니다.
그 때 주님이 당시의 창궐한 지옥을 정리하시면, 중간영계에 밀려있던 영들은 분류되어 악한 영들은 지옥으로 내려가게 되고, 선한 영들은 새로운 천국을 형성하여 올라가게 되는 것이 영계 재편성이고 그 결과 지상에는 새 천국으로부터 새로운 교회가 수립됩니다.
기존에 알려진 '십자가 보혈로 속량'이 아니라, 이 영계재편성의 과정을 통해 선악간 균형을 회복하여 인류에게 영적 선택권을 되찾아주시는 것이 속량입니다.
아침 일찍 답변을 주셨군요.
대답 나와라 뚝딱! 더 쉬운 대답 뚝딱!
봄나무님 같은 분이 우리곁에 계시다니 대박입니다.
참된 기독교 두 권(양규대옮김 다지리)을 갖고 있는데
번역이 더 매끄럽게 된 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읽다가 말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추천해 주신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이런, 어느 '부분'인가 물으셨는데 저는 책제목만 알려드렸군요.
참된 기독교에서는 114-133항이 속량에 관한 내용입니다. (페이지가 아니라 조항번호)
순정기독교(정인보역-혹시 절판?), 참된 기독교(양규대역), 이렇게 두 버전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두 버전을 비교해가며 보셔도 괜찮을 듯해요. 혹시 영문을 대조하기 원하시면 아래 주소로 드가심 됩니다.
http://swedenborgdigitallibrary.org/contets/tcrtc.html
ㅎㅎㅎ 봄나무님이 그게 되시니 다른 사람도 되는 줄 아시나 봅니다.
영문을 대조해서 볼 정도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ㅎㅎㅎ
귀한 글을 읽어보게되어 기쁩니다.
1. 오늘날 위세를 떨치고 있는<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교리가 크게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에 절대 공감합니다.
2. 사실 저는 이 "이신득의"의 교리가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는 "엉성한 신앙생활"을 초래했다는 설교나 글을
이미 여러 차례 접해본 바 있습니다.
3. 그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곤 했지만
첫째, 세상이 주는 재미와 편익이 너무 좋았고
둘째, 교회에서는 줄기차게 "이신득의" 를 주입시켜 주니까
슬그머니 그 깨달음을 외면해 버리곤 해왔습니다.
4. 그런 저에게 오늘 읽어 보는 이 글 <스베덴보리 저서 '참된 기독교'가 제시하는 미래상>은
저에게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새롭게 다짐하게 해줍니다.
5. 문제는 늘 작심삼일을 되풀이하는 제 자신입니다.
6. 이런 제가 이 좋은 카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여러분들로 부터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며 본받기를 힘써 간다면
분명 괄목할만한 진보를 이루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설레입니다.
다시 한번 많은 도움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