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누굴까 김활란, 노천명,모윤숙,김성수,조선일보,삼양
사... 그리고 쭉 맞다.
일제시대에 일본인순사가 있고 그 밑에 조선인 순사보가 있었
다. 어르신들 말씀이 순사는 순사보에 댈 것도 아니라고 ... 우
리는 이완용을 욕한다 아니 이완용만 욕한다. 구한말시절 밀정
을 비롯해 해악을 끼친 조선인들이 있었다.
만일 이완용이 가진 힘이 100이고 100만큼 친일을 했다치자 그
리고 밀정이 1만큼의 힘으로 5만큼 친일을했다면 누가 더 나쁠
까 이완용을 잘했다거나 변호하려는건 아니다.
어느 단체 회원이 잘못했을때 그 회원이 욕먹는게 아니라 그
대표가 욕먹는 식은 아닐까
인조반정이란 잘못된 역사로 50만이란 수많은 양민이 끌려갔
었다.
병자년포로중 일부는 북방에 남아 만주와 몽골의 귀족들에게
노비로 분급되었고 소수의 조선인 포로들은 몽골승려들에게 주
어져 교육을 받고 라마승이 되었다.
탑골공원에 있는 경천사13층석탑에 새겨진 그림이 고려시대
라마교와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리고 돌아온 여인들은 환향녀로 다시 화냥년으로 불리며 마
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나라의 잘못인데 왜 그녀들이 수난을
당해야했을까
우리의 불행은 결국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롯
된 것일뿐인데..
위안부할머니들 분개하며 수요집회를 갖는다 맞다 틀린거 하나
없다 나도 딸을 기른다 내 딸이 그런 수모를 당했다면 내 마지
막까지라도 원수를 갚으려 했을것이다.
그분들은 살아돌아오셨고 제2의 화냥년이 되셨다. 그분들이 무
슨 잘못을 하셨길래 갖은 천대와 학대 멸시를 당해야했을까 그
분들을 그렇게 대한 남편, 자식, 주변인에 대해 우린 단 한마디
라도 했을까 생각의 편린이라도 있었을까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학을 연구하는 학자분
들의 공통적말씀이 한일이 감정싸움을 하는건 쌍둥이 때리기라
고한다 이런건 둘째치더라도 일본엔 쇼토쿠태자의 ‘와’사상이
있다 섬에서 싸우면 자멸한다 그러니 서로서로 좋게 지내자 뭐
대충 그런 뜻이다 그래서 모든걸 통합시킬 수 있기에 천황제를
계속 존속시키는 것이다.
우린 정이 많아 몸부비기를 좋아하고 그네들은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상대를 배려하기를 좋아해 스킨십에 익숙치가 않
다. 과거 노무현, 고이즈미 총리시절 제주정상회담이 단적인
예일 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친근함의 표시로 살짝살짝치거나 몸을
부비는 흉내를 냈고 고총리는 그냥 웃고만 있었다.
상대의 문화를 이해못하면 서로간의 소통은 대단히 어려워진
다.
그시절 고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을 살짝살짝치거나 몸을 부
비는 흉내를 냈어야했다 생각한다.
최고지도자들이 이러니 일반 백성들은 오죽하겠는가
상대의 문화를 이해못한 가장 단적인 예다.
우리는 직설적인걸 좋아하고 일본은 에둘러말하길 즐긴다.
우리는 우리식대로 그들은 그들식대로 사과했다 안했다 말이 많
다 일본은 일본식대로 사과 많이한 것 같은데
80년대 베스트셀러중 한국일보기자가 쓴 ‘이것이 일본이다’에
서 천왕궁앞 히메이공원을 조깅하던 젊은 남자와의 인터뷰장면
이 있다.
그 당시 한국대통령과 천황이 만나 사과를 어떻게 하느냐하는
문제가 나올때였다. 젊은 일본인왈 ‘그 정도했으면 되었지 어
디까지해야 되냐’는 다소 화난 투의 말을 했다.
후쿠시마원전사고후 KBS일본특파원이 쓴 ‘일본의 눈물’에서
한일기자간의 이야기도 평행선으로 끝났다.
한쪽은 일본이 진심으로 사과안했다 한쪽은 그렇게 많이 사과
했는데 어디까지 해야되냐한다 더하면 사이만 나빠지니 여기까
지만 하고 술이나 하자는 말만하고 막을내린다.
한국드라마에서 좀 야비하게 생긴 배우를 일본인으로 많이 등
장시키고 일본인은 좀 네모진 얼굴의 사람을 악역으로 많이 등
장시킨다 한국사람중엔 북방계통의 네모진얼굴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일까 가만있다가도 서로에 대한 말만나오면 감정이 안좋
게 변한다 선입견이 문제다.
개가 꼬리를 치면 반갑다는 표시인걸 우리는 안다. 고양이가
꼬리를 올리는건 경계한다는 표시란걸 우리는 안다 마오리족이
혓바닥을 내미는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함인걸 우리는 안
다. 코끼리가 귀를 세우는건 화난 표시란걸 우리는 안다.
볼을 부비며 인사하고 코를 부비며 인사하는 민족이 있다는걸
우리는 안다.
멀리있는 이웃의 문화를 넘어 종이 다른 개체의 문화까지도 이
해하는데 왜 바로옆 이웃의 문화는 이해못할까 그들의 문화를
이해못하면 그들과 소통할 수 없다.
부드러운 대답이 노여움을 푼다.
증오는 그들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못할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
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게할 뿐이다.
어느 사람 어느 민족에게나 비통한 과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간다나 르완다가 우리의 이웃이었다면 우린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을까 그럼 정권에 속아 월남에 용병으로 보내져
월남인의 무수한 피의 댓가로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그 여파로
중동특수까지 챙겼는데 우린 월남인을 증오하고 멸시만한다.
오죽했으면 한국기업에 취업하는 월남인이 배우는 첫 번째 한
국어가 “때리지 마세요”일까 우리자신의 모습에 대해선 자성
도 못하면서..
3.1만세후 사이토총독 취임때 폭탄이 터졌고 총독부 미즈노정
무총감은 그때 다친며 다짐한다 ‘어디 두고보자’를 속으로 되
뇌이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몇 년후 관동대지진때 그는 이 때다
싶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개인
적 복수를 하지만 우리는 일본전체가 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미즈노 한사람의 복수인데 야구선수 이치로(서로 돌을 던지는
두나라 국민들)처럼 개인적으로 서로에게 흥분한 사람들은 정
권의 유지를 위해 위정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속고 있는 사람들
일 뿐이다.
일제치하 1929년 원산에서 총파업이 있었고 총독부는 일본인
노동자들을 대타로 데려왔지만 그들은 파업노동자들의 사정을
듣고 “우리는 모르고 왔소”하며 빈손으로 돌아갔다한다.
아사카와 다쿠미, 광화문 철거에 반대한 야나기 무네요시 같은
일본인들, 전라도에서 고아들의 삶에 일생을 보낸 일본여인들
찾아보면 많은데 사람들은 왜 이런건 이야기 안하고 나쁜것만
자꾸 꺼낼까
동국대사학과 이기동교수님이 그러셨다. “문화재 다 돌아옵니
다 다 돌아와요”
어느 뉴스를 본다. 어느 친일한 고위관리의 송덕비옆에 뜻있는
사람들이 단죄비를 옆에 나란히 세워둔다 서로 같이 뽑자 그리
고 옆에 봉분을 하나 더 만들어 같이 묻어두자 1,000년후 후손
들의 교육을 위한 타임캡술이라 생각하자 잘못된 역사도 역사
이다.
세상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이 지닌 가장 놀랄만한 특징중 하나는 손실을 이익으로 바
꾸는 힘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책을 난 여럿 읽었다. 재야시절부터 조선일보
와 참 끈질긴 악연이었다.
노대통령시절 MBC에선 조선일보 방씨일가의 친일행각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고 나는 그 내용에 격분해 인터넷으로 조선일보
에 돌던진 기억이 있었다.
MBC에선 격분한 조선일보에 한마디한다 “일전을 불사하겠다”
그리고 노무현대통령에게 모두 박수를 보냈고 친일인명사전까
지 만들어 영전에 바쳤다.
이것도 친일파청산을 핑계로한 정치보복아닐까
그 많던 순사보, 신앙을 꺾고 친일한 종교인들, 밀고자들, 무수한
변절자들 신분세탁후 친일파에게 돌던지는 친일파들 그리고 그 후손들
다 어디갔는가
민중속으로 사라졌고 영전에 바친 사람들도 민중 아닌가
난 조선ㅇ리보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이용한걸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그만하자 조선일보에 대한 마녀사냥 이제 그만하자 간신의 대명
사인 임사홍의 셋째아들은 의를 지키다 사화에 걸려 목숨을 잃
는다 명성황후시혜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으로 망명한 우범술의
장남 우장춘박사는 한국의 종자독립을 이루었고 돌아가시기 3
일전 훈장까지 받지 않으셨던가
원흉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의사의 둘째 아들 안중생은 친일을
하다하다 귀국한 김구선생님께 면담조차 외면당하지 않았던가
세상은 돌고돈다.
누가 간음하다 예수앞에 끌려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이제 그만하고 함께 손을 잡자 익숙해진 틀을 깬다는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 놓인 나랏일만해도 태산이다. 우리 세대가 사회변혁의 주
인공이었다고 자랑하고 싶다.
달을 보고 ‘달이 참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달이 정말 아름다
워서일까 아니면 달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다워서일까
긴글 읽어주셔서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