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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平澤林氏(갈곡공파) 종친회 원문보기 글쓴이: bj
임씨(林氏)는 중국 서하(산서성 하동도 임분현)에 은(殷)나라 주왕의폭정에 죽음을 무릅쓰고 직간하다가 참형을 당한 비 간(比干)의 아들 견(堅)이 장림산에 은거하면서 성을 임으로 하였다고 한다.
임씨의 본관은 문헌에 249본까지 기록하고 있으나 현존하는 본관은 30본 미만인 것으로 전해지며 그중에서 평택(平澤)과 나주(羅州)가 대표적이다.
평택 임씨는 우리나라 임씨의 도시조(都始祖)로 알려진 임팔급(林八及)이 당나라 문종(당의 14대왕. 재위기간;827- 840)때 한림학사로 동래(東來)하여 팽성(평택의 고호) 용주방(龍珠坊)에 세거 (世居)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평택(平澤)으로 하였고, 나주임씨는 고려때 대장군을 지낸 임 비(林 庇)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흘러오는 동안 부안(扶安) ,익산(益山) ,은진(恩津) ,진천(鎭川) 안동(安東) ,예천(醴泉) , 순창(淳昌) ,장흥(長興) ,옥야(沃野) ,안의(安義) ,울진(蔚珍)등으로 분적(分籍)되어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오늘날에 와서 임씨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자손이란 신념으로 대동단합하여 「 임씨대동보(林氏大同譜)편찬을 서두르고 있으며, 모든 성손(姓孫)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 연원 (淵源)및 유래 (由來)
임씨의 도시조 팔급은 당나라 문종때 한림학사를 지낼 때 간신들의 참소가 있자,동래 팔학사중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팽성(평택의 옛지명)의 용주방에 정착하였다.
그후 문헌의 실전으로 세계를 상고할 수 없어 고려말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을 지낸 세춘(世春)을 일세조로 하는파(派)와, 역시 고려말에 삼중대광 태위 찬성사(三重大匡太尉贊成事)와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봉해진 언수(彦修)를 일세조로 하는 파(派)가 누대(累代)에걸쳐 세거(世居)한 평택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다.
세춘의 아들 재(梓)가 예의 판서 (禮義判書) 와 보문각 대제학(寶文閣大提學)을 지냈고, 증손 정(整)이 조선 태종때 예조 판서(禮曹判書)에 올라 성종때 청백리(淸白吏 : 당상관 및 사간원 사헌부의 우두머리가 천거하여 선정한 청렴한 벼슬아치)에 녹선(錄選)되었으며 , 현손 명산이 이조 판서 (吏曹判書)를 역임하여 가문을 중흥시켰다.
평택 임씨의 대표적 인물인 조선의 명장 경업(慶業)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황(篁)의 네째 아들이며 세춘의 12세손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달리기에 뛰어났던 그는 무과에 합격하여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願從一等功臣)이 되고, 병자호란(丙子胡亂)때는 평안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서 도처에서 적군을 무찔러 영웅적이고 전설적인 용명(勇名)을 떨쳤다. 특히 무인으로서 그가 숭모하는 촉한(蜀漢 : 중국 역사상의 삼국중 하나 221년 유비 가 건국한 후 263년 위나라에 멸망 )의 장군 관우의 행적을 그리워 하며 지은 시조가 전하는데 아래와 같다.
발산력(拔山力) 개세기(蓋世氣)는 초패왕(楚覇王)의 버금이요
추상절(秋霜節) 열일충(烈日忠)은 오자서(伍子胥)의 우히로다
천고산(千古山) 늠름장부(凜凜丈夫)는 수정후(壽亭侯)인가 하노라
그의 형 형업(亨業)도 병자호란때 모친상을 당한 관계로 피난을 못 가 청군에게 붙잡혔으나, 그들도 「효자는 해칠 수 없다」라고 찬탈할 정도로 효성이 뛰어나 효자 (孝子), 충신(충신)의 정문(旌門)이 고향에 세워졌다.
또한 언수를 일세조로 하는 또다른 일파에서는 그의 아들 성미(成味)가 고려말 우왕때 왜구를 격퇴하는데 공을 세워 삼사우사(三司右使 : 삼사 소속의 정 2품 벼슬)에 이르렀고, 견미(堅味)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제미(齊味)는 판개성윤(判開城尹)을 역임하여 가문을 빛 냈다.
* 유적기록표
충 렬 사(忠 烈 祠) 임경업 충북충주
현 충 사(顯 忠 祠) 임경업 평북의주
충 민 사(忠 愍 祠) 임경업 평북선천
충 민 사(忠 愍 祠) 임경업 전남낙안
송재서뭔(松齋書院) 임형수 전남나주
정 렬 사(旌 烈 祠) 임 회 전남나주
충효정문(忠孝旌門) 임형업 경기도평택
*파(派)
충정공 언수파 (忠貿公 彦修派)
부사공 세춘파 (副使公 世春派)
* 항열표(行列表)
世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항열 | 순 | 식 | 병,희 | 규,규 | 종,석 | 호,수 | 동,상 | 섭,열 | 배,형 | 진,호 | 태,철 | 모,근 | 형,경 |
行列 | 淳 | 植 | 炳,熙 | 奎,圭 | 種,錫 | 浩,洙 | 東,相 | 燮,烈 | 培,炯 | 鎭,鎬 | 泰,澈 | 模,根 | 炯,炅 |
* 지역별분포현황
구분 |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경기 | 강원 | 충북 |
가구수 | 11,818 | 2,794 | 1,992 | 1,625 | 6,945 | 2,684 | 1,903 |
인구수 | 48,317 | 11,682 | 7,908 | 6,761 | 28,658 | 11,231 | 8,065 |
구분 | 충남 | 경북 | 경남 | 전북 | 전남 | 제주 | 계 |
가구수 | 3,619 | 4,516 | 1,962 | 2,320 | 3,889 | 603 | 46,670 |
인구수 | 16,344 | 18,140 | 8,043 | 10,038 | 17,103 | 2,440 | 194,550 |
* 종친회 연락사무실
평택임씨 전객령공계 대종회
Tel. 043-842-0186[380-080] 충북 충주시 연수동 1148
길안임씨(吉安林氏) 시조 임박(林樸)은 고려 공민왕 때의 문신이며 홍건적에게 개경이 함락되자 사적(史籍), 예서(禮書) 등을 땅에 묻어 보전했으며, 성균제주(成均祭酒), 대사성, 대언(代言)을 지냈다.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부안임씨(扶安林氏) 시조는 임숙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선산임씨(善山林氏) 시조는 임양저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 대표적 인물 ] 임억령(億齡) : 명종 때 동부승지로 등용되어 병조참의,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며, 문명이 높았다. 임백령(百齡) : 임억령의 동생. 명종 때 호조판서로 을사사화를 일으켜 위사공신 1등으로 우찬성에 승진되었다. 순창임씨(善山林氏) 시조 임중연(仲沇)은 임연(林演)의 아들이며, 충숙왕 때 우상시, 밀직부사, 첨의찬성사가 되어 순창군에 봉해졌으며 왕을 대신하여 동정성(東征省)을 다스렸다.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 대표적 인물 ] ·임선미(先味) : 임중연의 아들. 태학사로서 퇴폐한 예법과 세속을 바로잡는 데 힘쓰다가 고려가 망하자 은거하여 두문동(杜門洞) 72현(賢)으로 일컬어진다. 예천임씨(醴泉林氏) 시조 임춘(林椿)는 고려 의종 때 서하처사로 일컬어졌으며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등과 함께 강좌 7현의 한 사람으로서 한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났다.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예천임씨에서 분관된 본관은 경주임씨, 양양임씨, 밀양임씨, 안의임씨 등이 있다. 옥구임씨(蔚珍林氏) 시조 임개는 고려 문종 때 내시로서 선종 때 공부상서로 송나라에 다녀오고 추밀원동지사, 서북면병마사 겸 행영병마사를 거쳐 중서시랑평장사, 형부판사를 역임했으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 대표적 인물 ] 임유문(有文) : 임개의 아들. 숙종 때 요나라, 예종 때 송나라를 다녀오고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지냈다. 임경한(景翰) : 순조 때 서예의 대가로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울진임씨(蔚珍林氏) 시조 임민비(林民庇)는 고려 명종 때의 명신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 대표적 인물 ] ·임중량(仲樑) : 선조 때의 의병장이다. ·임익빈(益彬) : 영조 때의 학자이다. 은진임씨(恩津林氏) 시조는 임성근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 대표적 인물 ] ·임자미(林自味) : 고려시대에 예조판서를 지냈다. ·임훈(薰), 임운(芸) 형제 : 선조 때 학행과 효행으로 이름났다. 익산임씨(益山林氏) 시조는 임완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장흥임씨(長興林氏) 시조는 임분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조양임씨(兆陽林氏) 시조는 임세미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조양임씨에서 분관된 성씨는 보성임씨, 안동임씨, 임천임씨, 임파임씨, 임하임씨, 전주임씨 등이 있다. 진천임씨(鎭川林氏) 시조 임희(林曦)는 고려 혜종왕의 왕비 의화왕후(義和王后)의 아버지이며 평택임씨에서 분관 했다. [ 대표적 인물 ] ·임지(智) : 고려 말에 문하시중, 대제학을 지냈다. ·임구(球) : 임지의 아들. 조선에서 호조참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