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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날 때 저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다. 유전적인 요인과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사람의 성격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교사 중에는 모태로부터 신앙적 분위기에서 태어나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져 신앙인격의 골격을 이룬 교사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중간에 예수를 믿었다든가 혹은 어떠한 계기로 교회에 나아와 신앙생활을 시작한 경우에 전자의 경우와 신앙의 체질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주님의 체질을 닮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성숙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교사의 영적 체질을 진단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신문의 광고란을 보면 체질개선의 비결을 설명해 놓고 있다. 산성체질을 알칼리성 체질로 바꾸는 데는 자연식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체질을 바꾸어 나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영적 체질이 달라져야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교사의 영적 체질개선 무엇이 문제인가? 영적인 무감각, 무지로부터 어떻게 체질을 바꿀 수가 있는가를 필자가 그동안 교사로 헌신하던 시절과 목회사역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얻는 사실에 입각하여 체질개선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교사의 체질 개선이 없이는 영적인 재생산인 우리의 양들을 양육하고 보호하고 도울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체질개선은 교사에게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지적해 두고 싶다.
1. 자신의 영적체질을 바로 진단해야 한다.
의사가 약을 처방하기 전에 환자에 대한 바른 진단이 필요한 것처럼 교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밖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오는 병원균에 대하여 저항력이 없는 부문을 조직검사를 통해서 진단해야 한다. 예를 들면 말씀을 읽지 않고도 영적인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교사들은 이미 죄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순간순간 기도하지 않고 매사를 처리하는 교사는 이미 영적인 호흡이 정지된 식물인간인 것이다. 예배드리지 않고 교제하지 않고도 바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쫒겨 사는 교사는 이미 마귀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없이 교회 교사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이미 그 교사는 영적인 문제아를 양육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이여, 당신의 영적인 현주소를 확인하라. 영적인 양식이 없이 영적인 호흡이 없이 생존해 있다면 그는 영적인 암병에 걸린 수술환자에 해당한 것이다.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우리의 피폐된 영적 삶을 회복할 수 없게 된다.
교사들이여 오늘 당신의 영적 체온계인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체질을 바로 진단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하여 정직할 필요가 있다. 의사에게 자신의 병을 숨기고 엉뚱한 반응을 한다면 그 결과는 절대적으로 당신의 책임이며 바로 당신의 문제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영적 안목이 없다. 그러기에 말씀의 거울 앞에 서야 한다. 주님의 존전에 단독자로 설 때에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병원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입원하여 건강을 체크하게 되는 데 이미 암세포가 전신에 다 퍼져서 구제불능의 처지에 처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당신이 이미 병들었다고 느낄 때 이미 때가 늦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천국 병원은 인간의 의술이 할 수 없는 성령수술을 할 수 있기에 천만 다행이다. 당신의 영적 종합 진단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2. 체질 따라 경건을 훈련하라.
당신의 영적인 모델은 누구인가? 주님께서는 그 바쁜 일정, 그 바쁜 복음 사역 중에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 습관을 따라 주님과 교제의 시간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바쁘다는 이유 하나로 영적인 삶에 전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
교사 여러분, 당신은 진정 바쁜 일정에도 주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근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만을 바라봅시다."(히브 12:2)
그 분은 군중의 환호소리와 청중들의 박수소리에 현혹되지 않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않고 은밀한 곳에서 하느님과 교제하며 기도하시는 주님의 인격을 바라보자. 바로 여기에 경건의 모습이 있다. 바우로도 디모테오에게 편지하면서, "육체적인 훈련이 가져다 주는 이익은 대단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경건한 생활은 모든 면에서 유익합니다. 그것은 현세의 생명을 약속해 줄 뿐 아니라 내세의 생명까지도 약속해 줍니다."(1디모 4:8) 고 말씀하고 있다. 경건을 연습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습관은 습관에 의해 습관 된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의 영적 무감각 상태를 치료하고 상처 난 영혼을 치료할려면 경건을 훈련해야 한다. 경건이란 말은 하느님이 가장 기뻐 받으실만한 인간의 태도를 말한다.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려면 우리는 주님께서 사신 경건의 모습을 닮아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신다. 우리의 삶이 더러운 옷 같아서 심히 부패한 거짓되고 부패한 양심에서 비롯된 선행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우리의 헌신과 삶을 받으실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들이여, 우리 모두 우리의 체질에 맞는 경건을 연습하자.
어떤 사람들은 운동을 하더라도 자신의 건강에 맞는 운동을 선택하는 것처럼, 교사들이여, 지금 어떤 영적 운동이 필요한가를 생각하라. 말씀, 기도, 전도, 교제, 예배.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경건의 연습을 시도하자. 이것이 영적인 체질을 바꾸는 지름길이다. 말씀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일정한 양의 영의 양식을 섭취하는 일,매일 정규적으로 무릎 꿇고 기도하는 훈련, 다른 그리스도인과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영적인 교제, 내가 누린 복음의 감격을 전하는 증거 하는 일, 공 예배에 꼬박 꼬박 참석하여 예배드리는 훈련들은 연습과 훈련을 통하여 가능하다는 것이다.
3. 말씀 안에서 주님과 사귀라.
우리는 사람을 사귈 때 일단 자주 만나는 일이다. 자주 만나 대화하며 사귐을 갖다보면 그 사람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어 우정이 더 두터워지게 된다. 남녀 간의 사귐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고 그 사람과 함께 사귀고 그다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움트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과의 사귐이 이루어져야 주님을 닮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말씀의 옷을 입고 우리 가운데 와 계신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야 한다.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날마다 주님의 말씀 앞에 서는 훈련을 하여야 한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에만 우리 자신이 어떤 모습인가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연애편지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가? 그 때 감정과 기분이 어떠했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아본 연애편지는 얼마나 소중하게 그리고 깊이 몰두하여 그 내용을 간파하며 읽고 또 읽고 보관하였던가? 바로 그것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처럼 사랑한다는 연애편지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요한 3:16)
이 편지인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였는가를 생각해 보라. 이제 주님의 사랑을 확인하라. 얼마나 사모하며 얼마나 당신을 향한 큰 사랑의 가슴으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확인하라. 오늘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당신을 만나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그 주님의 음성을 말씀을 통하여 듣는 일 그보다 소중한 사귐이 어디 있을까?
교사 여러분, 주님이 아침마다 매일 매 순간 당신과 교제하며 당신의 삶을 인도하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부부는 닮았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가장 많이 바라보며 사귐을 갖는 관계가 부부일 것이다. 그렇다 닮아가게 되어 있다. 서로를 가장 많이 묵상하기에 서로의 분위기 인격을 닮게 되어있어 결국은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참맘으로 참맘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참맘으로" 하는 찬송가도 부르면서 예수님을 닮아가지 못하는 교사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자. 초대교회의 안티오키아 교회 성도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의 칭함을 받았다. 그들의 삶이 주님을 닮았다는 말이다.
당신은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삶의 전 부분에서 주님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스스로를 반추해보고 이제부터 주님을 인격적으로 닮기 위해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옷깃을 여미자.
4. 사귐을 통하여 얻는 축복을 생각하라.
첫째는 매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함이다.
히브리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 말씀하고 있다. 매순간 매 순간 우리에게 돕는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의 때를 따라 주님께서 돕기 원하신다. 당신보다 더 당신을 잘 알고 계신 주님의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주님과 교제해야 한다. 필자는 이 풍성히 채우실 주님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기대하며 벅찬 감격으로 살아가고 있다.
둘째로 매일 매일의 새 힘과 능력을 공급받기 위해서다.
당신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신 야훼, 당신에게 일용할 건강과 새 힘을 공급해 주신 주님을 오늘도 의지해 보라. 이사야 선지자는 "야훼를 믿고 바라는 사람은 새 힘이 솟아나리라. 날개쳐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아무리 뛰어도 고단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아니하리라."(이사40:31) 말씀하신다. 그렇다. 우리에게 매일 공급되는 새 힘, 새 능력이 필요하다. 주님과 매일 교제함으로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공급받을 수 있다. 이런 교사는 절대 지치지 않고 피곤치 않고 불굴의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고 마귀를 이겨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셋째는 고난과 환난 중에도 구원함을 받기 위함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할지 한 치의 앞을 모르고 살아간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미래를 아신다. 그러기에 모든 문제와 고난 중에 주님의 도우심을 받고 환난과 고난을 이길 수 있기 위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시편에서 다윗은 "살려달라 소리치면 야훼께서 그 소리 들으시고, 모든 곤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신다."(시편 34:17) 말씀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로마 5:3~4) 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결국 말씀을 통하여 고난이 유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 고난을 당하고 있는가? 우리 주님 앞으로 그 문제, 그 고통을 안고 나아오라. 그러면 주님은 그 고난에서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말씀하시며 당신의 짐을 주님께 내려놓기를 원하신다. 그래도 고집을 피울건가?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넷째로 모든 삶 가운데 평강을 얻기 위함이다.
참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샬롬이다. 평강이 요청된다. 그 평강의 신께서 우리를 초청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요한 14:27) 고 말씀하신다. 바우로는 이 평강을 소유하고 필립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 (필립 4:6-7)고 하셨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평안이 얼마나 놀라운 은총인가? 당신 안에 평안이 있는가? 지금 주님께 오라. 말씀 안에 거하라. 염려근심 모두 맡기고 기도하고 간구하라. 그것도 감옥 안에 있는 바우로가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말하는 평안을 소유하라.
다섯째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15:4-5)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열매가 없는 이유는 주님과 교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부터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라. 그것이 바로 주님안에 거하는 삶이다. 그것이 포도나무에 붙어사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열매를 맺고 사는가? 아니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형식은 있고 내용은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인가를 돌아보라. 그리고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기를 바란다.
5. 이렇게 주님과 사귀라.
1) 경건의 시간을 준비하라.
첫째로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겠다는 당신의 의지가 필요하다.
둘째로 당신의 삶의 초점을 주님께 두어야 한다.
셋째로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말씀을 따르라.
2) 별도로 떼어놓은 조용한 시간을 만들라.
성경의 믿음의 조상들은 아침시간에 경건의 시간을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주부들에게는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간 그 후의 시간이 조용한 시간일 수 있다. 우리 주님께서도 새벽 미명에 하느님과 교제하신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 시간은 모든 사람을 만나기전 모든 세상의 소리를 듣기 전에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모든 일 을 착수하기 전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주한 마음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다른 것으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주님만을 위해서 떼어낸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
3) 방해받지 않고 주님과 만날 수 있는 한적한 곳을 찾으라.
주님께서는 한적한 곳에 가셔서 하느님과 교제하심을 볼 수 있다. 왜 한적한 곳일까? 주님의 세미한 말씀을 들으려면 결국은 어떤 소음과 어떠한 주변 상황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일정한 장소가 중요하다. 당신의 생활 공간중 주님을 모시고 은밀하게 교제할 수 있는 장소가 어디인가를 정하라. 필자는 서재가 주님과 교제하는 은밀한 곳이다. 그 시간에는 외부에서 오는 전화선도 차단하라. 왜냐하면 주님의 세미한 말씀을 듣기 위함이다.
4)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을 의지하라.
말씀을 대하기 전에 우리는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말씀을 조명해 주실 때에만 우리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고 영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하소서"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철학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께서 말씀을 듣게 하시며 깨닫도록 도우실 것이다.
5) 말씀을 읽고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나 묵상하라.
묵상이란 말은 이방 종교에서 쓰는 명상과는 차이가 있다. 묵상이란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반추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되새김질을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될 때 그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내게 주시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라. 주의 깊게 말씀을 관찰하고 바르게 해석하여 나의 삶 가운데 적용하는 것이다. 시중에 나가면 많은 경건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교재들이 많이 나와 있다. 자신에게 맞는 한 책을 선택하여 주어진 본문을 계속 읽고 묵상하여 깨닫는 말씀을 적어가다 보면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가 생긴다. 성경 본문을 자신의 말로 한 번 다시 써 내려가면 훨씬 이해가 쉽고 잘 묵상할 수 있다. 결국 묵상이란 말은 말씀을 우리 삶 가운데 투여한다는 말이다. 약을 조제하여 우리 몸 안에 먹을 때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씀이 아무리 능력 있고 힘이 있다할지라도 우리 삶 가운데 적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6) 오늘 주신 그 말씀으로 기도하고 그 말씀에 반응하라.
우리의 기도는 흔히 독백이기 쉽다. 주술을 암송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기도가 있을 수 있다. 기도는 대상이 있는 인격적인 대화이다. 주님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대화하시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입장을 주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다. 묵상했던 말씀을 중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말씀으로 주님께 응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줍니다."(1베드 4:8) 라는 본문을 적용할려면, 지금 내가 허물을 덮어줄 사람이 누구인가를 그리고 언제 어떻게 그 허물과 잘못을 덮어줄 것인지를 주님께 말씀 드리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감정도 결심도 함께 주님께 기도를 통해서 말씀으로 반응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떠한 말씀을 주시든지 왜 오늘 나에게 이런 말씀을 주실까? 주님은 무엇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 를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다.
교회 교사, 그들은 누구인가?
주님과 교제하는 경건의 삶을 살아가는 주님의 일꾼이다. 생명을 다루는 영적인 지도자가 주님과 교제 없이 옛 기질과 체질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서 교사직을 계속한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교사들이여 영적인 체질을 개선해 보자. 결심 가지고는 약하다. 당장 경건의 시간을 착수하라. 사탄은 내일로 미루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오늘 착수하라. 주님과 교제를 통해 당신의 삶 가운데 주님의 향기가 그리고 주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그렇게 살자.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당신을 통하여 더 큰 일 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체질개선! 바른 진단으로부터임을 잊지 말라. 지금 교사 당신의 결단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체질이 굳어지면 수술 받아 째고 꿰매야 하는 아픔이 있다. 호미로 막아서 될 것을 삽으로 막아도 안 되는 경우를 당할 수가 있다. 교사의 체질개선 오직 경건의 훈련으로부터 임을 다시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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