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 인자하신 담임 손재식선생님께서 아버지와 담판을 지으시어
중학교를 겨우 졸업했다.그리고는 공부끝, 농사를 지으면서 공
사판 자갈과 벽돌을 져날으면서 1년을 보냈다. 이발소에 머리
감겨주는거 라도 취직을 하려고 무진 애를 써봤지만 도저히 도
회지로 나갈수있는 줄이없다.대전 사촌형의 주선으로 사진현상,
인화하는 대전역앞 "신영사"라는 DP&E점에 취직을 해서 몇개월
있으니 엄마가 자식 보고잪아 못살겠다 한다고 델로와서 다시
농사를 게속했다.우리보다 백배로 잘사시는 순천작은집에 할머
니께서 계셔서 다니러 간김에 작은아버지께 사정을 하니,3년치
의 월싸금과 하숙비를 계산하여 대전 큰아버지께 일시불로 주셨
다.작은 어머니께서는 철도 무료패스를 써보는게 소원이라시며
철도학교를 가라고 하셔서,그학교를 찾아가니 그게 없어지고 중
도공고로 변해있었다.다행이 통신과 CW가 적성에 맞아 전학년
1~2등을 하며 재미있는 학교생활을 하며 신문도 돌리고 등록금
을 김종식 선생님께 꾸어서 내기도 여러차례 하면서 졸업을했다
.그당시 큰집이 넉넉치를 못했다.체신공무원 5급을,부산전신전
화건설국 발령을받고 중계소내에서 자취를하며 잠은 숙직실에서
잤다.월급 7500원타서 2500원으로 자취하며 5000원정도 시골
집에보냈다.동생들 여섯이 고몰고몰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비번날은 동대신동 전자 상가에가서 라디오 반제품 3000원에
사다가 조립하여 6000원에 10대정도 팔았다.얼마 되지않아영장
받고 군입대하여 원주 통신훈련소 16주 CW교육시작, 그건 내가
도사라서 조교,교관은 제쳐놓고 내가교관이다.교육수료 1등을하
여 서종철 1군사령관 표창을 받고 개인출발 육군본부통신운용대
대 무선중대배치,쫄병시작 하자마자 김신조일당 출현,보초에
불침번에 죽을뻔했다.듣기에는 내가 근무하던 육본무전실,암호
실도 폭파대상에 있었다고,, 진짜 클날뻔했다.갸네들 때문에 군
생활이 고스란히 36개월로 연장되어 고참들에게 많이도 시달렸
다.제대무렵 중앙정보부 무전병 시험이 있었다.우수한 성적으로
딱1명 합격, 신원조회 때미 늦어져서 발령을 못받고 부산 전화국
에 복직을 했다.이문동 정보부 인사과에 수없이 전화를 해서
발령여부를 문의했지만 신원조회중,,,경찰,보안대,정보부등등
수없이 해보았댔자 10촌까지 행방불명자,부역자가 없어야 된다
는 연좌제가 있어 끝내 발령 못받았다.그때 발령 안나길 천만다
행이었지,혹 김재규관련 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류 됐으면어떡해
요? 그러던중 우리 김종식 선생님은 부평변전소에 근무하시면
서 저에게 한전 응시하라는 전화를 주신거죠,71년도 크리스마
스 선물로 한전합격증을 받았습니다.정말 감사했습니다.그 이
듬해 2월 천안변전소,다음엔 식장산중계소,며칠근무,다음 며칠
휴무하는 교대근무를 하는중 우리 시골도 전기가 들어왔다.220
V를 100V로 바꾸는 강압기를 필요로하는 집이많아서 그걸사다
가 여러집 달아줬다.몇만원씩은 이문이 남았다.그리고는 점포를
보다가 엉덩이가 추워서 코일을 사다가 저항과 암페아를 계산하
여 전기장판을 만들어 장판밑에 깔았더니 너무 따뜻하고 좋았다
.이웃집들이 와보더니 자꾸만 자기네도 만들어 달라고 해쌓서 입
소문으로 하여또 수십개 만들어 팔았다.지금 말하자면 불량품인
데,,그밖에도 문열면 빼~~~액 하는 경보기,사람접근하면 따르
릉하는 경보기등등 여러개를 시설해주고 쬐끔씩 돈을 벌어 보기
도했다.또한 전기가 들어오니 건전지로 쓰던 라디오를 전기로
쓸수있게 해달래서 AC→DC 아답터를 한가방 사다가 동네마다
다니면서 팔면서 달아주었다.그러던 사이에 결혼을하고 신혼생
활 하루도 없이 동생들 셋을 영동,양산에서 대전으로 모두 전학
시켰다.중고등학교 셋 월싸금에 철철이 교복에,체육복에,의식주
를 모두 해결하면서 가르치는데 참말로 징그럽게도 쪼들리더라,
요즘같았으면 난 이혼 당했을지도 모를거다.그래도 식장산이 나
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이없다.거기 근무하면서 수당이라
도 쬐끔더 받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으나 월급을 타오면 매달 적
자다.정말 이렇게 6년을 버텨야 하는데 정말큰일 났더라.우유하
나 계란하나를 맘놓고 못사먹었다.그러다또 귀가얇아서 누가 뭐
좋다하면 금방쏠려가지고 그저 실수의 연발이다.옆집에 보니 관
상용 새를 키우는데 너무 보기좋고 돈벌이가 잘되길래 당장시작
한거 아닌가,, 십자매50쌍,백문조10쌍,홍문조10쌍,금화조10쌍,
금정조10쌍,잉꼬20쌍,모란앵무(뽀당)20쌍,카나리아20쌍,호금조
5쌍,대충 이런정도 옆집에서 분양받아서 몇년 키우고 새끼도 많
이 내봤지만 결론은 본전을 건졌는지 잘 모르겠다.그리고 팔짜
에 없는 목욕탕을 사 가지고 운영을 해 보았는데 정말 힘들더라.
"나는 카운터에서 돈만받으면 되는줄알고",,,야~~진짜 쉬운건
없더라고.왜 내가 이걸 시작했는가? 마음속으로 매일같이 울었
다.툭하면 때밀이 나가지,보일라보는 기사 띵깡부리지,남탕에
들어가 보면 수건이 바닥에 쓰레기장 처럼 깔려있지,그 몸띵이
하나 닦는데 수건을 5개씩 쓰질 않나,욕실에는 뜨건물을 샤워기
로 그냥흘려 보내는게 부지기수라,나는 새벽 3시부터 보일라 가
동시켜 끓여놓은 물을 그냥 다 버린다.그래도 "물좀 잠그라"고
하면 인상을 팍~쓰는기라,여탕은 더 말할것도 없다.해서 넙쭉한
고무다라를 한 20개사서 밀어넣으면서 때미리 아줌마보고 버리
는 뜨건물은 다라에 받아서 쓰라고 했더니 그래도 큰효과는없더
라,도리어 물좀 버리지 말라고 했다고 때미리와 싸우고 있더라,
그렇게 버리다보면 곧 찬물나온다,그러면 오히려 "물이 차다고
이따위로 장사할꺼냐"고 빨개벗은 여자들이 욕탕에서 삿대질하
고 야단이다,난 무슨팔자가 여자들하고 싸울일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그래서 지금은 샤워기에 물절약 스윗치가 달려 나온
다더라,교대근무를 하면서 할려니 힘들었고 집사람이 거의 다
하자니 을매나 고생이 많았겠는가,도저히 못견디고 세를주고
말았다,몇년을 지탱하다가 겨우 본전 건지고 빠져나왔다,뭐되는
게 없어,소문만 부자라고 요란하다,그후 토개공 땅을 분양받아
어중간한 자리에 집을지었더니 점포도 별볼일이 없어 재미를 못
보고, 처분하면서 원룸이라는걸 알게되었다.이무렵 한전을 퇴
직한후, 전세깔고 융자받아 두채를 사서 하나씩 월세로 돌리다
보니 "아~ 이거구나" 싶더라,몇년을 고생하니 두채에서 월세가
천만원 가까이 되더라.그랬으면 거기서 만족하지 무슨,,,못된놈
의 꾀임에 빠져 하나를 팔고 자리가 좋아보이는 곳에 모텔을 샀
던것 아녀,,결론적으로 퇴직금 3억은 거기에 들어갔다고 봐야지,
15억5천 짜리를 10억융자(이자월700만원정도) 보증금 2억에
월1300만원정도 되더라고,,,보니 계산상으로는 괜찮더랑깨,야~
그란디 이자날이 왜 그렇게 빨리 돌아오냐고,, 세는 장사 안된다
고 잘 주지는 않지, 매달 100만원씩 깎아달라고 하지, 그러던중
노무현정부가 성매매 특별법을 선포한거 아녀? 여기에서 진짜
망했당깨,,,장사가 아주 확~ 안되는기라,세를 안주는기라,이자
때문에 큰일낭기라, 건물 경매얘기가 실실 나오는데 참말로 미
치겠는데,무슨방법이 있어야지? 어거지로 쬐끔씩 받아서 겨우
이자는 감당한것같다, 처자식을 불러놓고 "아빠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이번엔 참힘들다,저게 만일 경매가 되
면 우리는 파산할수도 있으니 각오를 단단히 해라"하면서 서로
를 위로했다.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가 귀는 얇아서 일을 자꾸
만 그르치고 참으로 내자신이 너무 한심했다.고통스런 나날이
한동안 지나갔다.최선을 다해서 매매쪽으로 해서 현재 융자,보증
금,그냥그대로 가져가는걸로 해서 간신히 퇴직금 날리면서 인계
했다.커다란 회오리 바람을 맞고나니 기진맥진,탈진할정도다.그
래도 덕분에 살고 있는집은 무사하니 감사하지요,이로서 깨달은
건,벌은것 지키는게 더 힘들다는 거다.그당시 한빛,우리은행! 참,
간판만 보아도 경끼한다, 지금도 그은행은 거래안한다.이젠 모든
게 겁이난다.그래도 아직까지 부자라고 서울까지 소문이났다고,
신광재는 나보다 열배는 부자면서 나만보면 부자란다.어쨌든 그
런소릴 들으니 못산다는것 보다 기분은 좋다.그래도 그 와중에도
시골부모님께20~30만원씩 50년정도를 보내드리고 작은아버님
께도 맛있는것 한번씩 사 잡수시라고 매월10만원씩 보내드리고
일찍 돌아가신 작은어먼님 제사때마다 10만원씩 보내드리곤 했
다. 사람이 욕심을 부리자면 한이없긴 하지만 결론은 ,위에 잘된
사람만 보고 살랑깨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불행이더라,해서"위를
흘끔거리면서 아래를 보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낭깨 기분
좋고, 그래도 가끔은 퇴직금 날린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
프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그토록 발버둥쳐가며 약빠른
척 쫓아다니고 장사 비스무리하게 해 봤댔자 남은게 뭔가?"
모두가 다 허황된 일이었다" 그렇게 살지말고 순리대로 남들처럼
살껄 하는 후회도 있더라, 이제부터는 "만약" 이라는말을 생각하
지않고 "다음"이라는 말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했답니다 ,
그래도 저에겐 전화국친구,한전친구,군대친구,전우회,전통회,
무선중대, 또 오빠오빠하며 잘 따르는 여자친구들,이렇게 많이
날 인정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행복하답니다.
감사합니다. (박희옥 올림)
첫댓글 희옥아 고생많이 하였구나 너와나 이땅에 테어나지 않았음 좋았을걸 그랬구나 ! 본인의 의지로 태어난것 아니진만
개래도 태어나길 잘했다 싶을때도 많았다 이제는 모든것 정리하고 회사정리 자금으로 전세준 아파트 좀 많긴 하지만
모두 월세로 돌리려니 한밤종에 찾아와서 사정하는 사람도 많드라 아내와난 찾아오는 전세입자마다 몇십만원씩
까아주었다 내가 어려울때를 생각하면서 함께 울기도 하였다
이제는 남은 여생 베풀면서 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잘 될런지는 모르겠다 열심히 살아라 살다보면 하나님도 도와
주실것으로 믿고 오늘도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 드리고 귀가길에 눈이 많이 와서 고생 많이 하였다
그래요,맞아요,열심히 살아야지요,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