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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의 회한(悔恨)과 눈물의 반성문
정 용 원
1. 어머니는 누구인가?
* 세상에서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부모가 있고 그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품고 있다. 자식은 대부분 부모의 은혜를 살아생전에 깊이 깨닫지 못한다. 부모 중에서도 어머니란 이름은 영원한 그리움의 대명사요, 사랑의 보통명사이다. 그래서 언제 들어도 듣고 싶은 목소리고 보고 싶은 얼굴이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서 길러준 고마운 존재이면서 그 이상의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고 있다. 낳아서 길러준 어머니는 본능적 의무요 책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우리 어머니이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은 자녀를 출산해서 육아, 교육, 결혼까지 정신적 경제적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는다. 어머니는 훗날 자식으로부터 보상받기 위해서 정신과 육체를 투자하지 않는다. 부모의 도리를 다 하려는 조건 없는 사랑이고 자연발생적이고 원초적, 본능적인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자식이 가정에서 바르게 잘 자라도록 길러주고 학교선택이나 교육과정 관리는 어머니의 몫이고 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돈 벌고 자식의 학비나 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물론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식 교육은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맡겨놓는 경향이다. 학원을 보내거나 학교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어머니들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교 전통사회에서는 철저한 엄부자모(嚴父慈母)주의였으나 동양 유교사상이 사라지는 요즘은 어머니가 자녀교육을 도맡아서 엄모(嚴母) 역할을 하고 아버지는 자녀교육을 등한시 하거나 수수방관하면서 거꾸로 자부(慈父) 역할을 하는 실정이다.
2. 한탄(恨歎)과 회한(悔恨)과 반성(反省) 소재(素材)
나의 어머니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과 비교하긴 힘들다. 어떤 기준으로도 본능적 모성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애정과 기대심리는 비슷하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요즘 어머니들처럼 자식을 교육하는 목적과 방법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점은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나는 어머니로부터 어릴 적 뼈저린 가난 속에서도 강하게 자라도록 눈물겨운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서른여섯살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어 찢어질 듯 가난한 집에서 핏덩이 3남매를 길러낸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여섯이나 낳아서 셋을 잃고 셋만 살렸다. 남편과 사별, 해방과 6.25동란, 4.19. 5.16 등, 격동의 시절을 살아온 비극의 주인공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빈국이었다. 힘든 농사와 떡 장수, 비단장사, 공장 노동자, 식모생활 등 여자로선 감내하기 어려운 노동을 하며 자식을 먹여 살리고 공부 시켰다. 농삿일을 하다가 몇 번이나 쓰러지고, 비단을 팔고 돈 대신 받은 곡식 자루를 머리에 이고 개울을 건너다가 얼음물에 빠져 동상에 걸리셨으며 떡을 만들어 이 골목 저 골목 이고 다니며 팔다가 남의 집 개한테 물려서 고통스럽게 지내기도 했다. 베틀에 앉아서 꼬박 밤을 새우고 길쌈과 베마당에서 질긴 목숨을 이어간 어머니. 사라호 태풍을 만나서 전 재산인 비단보따리를 흙탕물에 파묻어버리고 서럽게 눈물을 쏟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언제나 어린 자식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기 위하여 자신은 굶기가 일쑤였다. 우리 네 식구는 보릿고개 때,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진달래를 입이 새파랗도록 따먹거나 풀뿌리 나무열매로 허기를 채우고 좁쌀 한 줌 넣고 끓인 나물죽이나 덜 익은 보리를 삶아 먹으며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는 담임교사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매질해서라도 인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중학교 원서를 내기 위하여 면사무소까지 30리 길을 나 혼자 걸어가서 호적초본을 떼어 오도록 했으며 중학교 시절, 안동읍에서 길안면까지 50리 길을 주말에 고향에 올 때는 걸어서 오게 했고, 겨울 산에 올라가서 땔감나무를 해 오도록 지게를 만들어 주셨다. 그만큼 아버지 없는 외아들을 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어머니는 무섭고 혹독했다. 초등 2학년 겨울에 어머니 몰래 학교엘 가지 않고 동내 아이들과 연못 얼음판에서 놀다가 들킨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점심과 저녁밥을 굶기고 싸리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때렸다. 긴 겨울밤, 나를 안고 흐느끼며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학교에 갈 때는 “너는 아버지 없는 호로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선 안 된다.”고 일러주셨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어머니는 매일같이 시냇가 얼음을 깨고 찬 물로 목욕재개한 후, 절에 가서 불공 치성을 드렸다. 외롭고 슬플 때는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서 피를 흘리며 고통을 삼키곤 하셨다. 자식에 대한 애정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우리 3남매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속을 썩이기 일쑤였다. 고등학교시절에는 문학에 미쳐서 개인 시화전을 한다며 그 비용을 어머니로부터 받아썼는데, 그 돈을 거의 갚지 못했다. 시화액자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교직생활을 할 때는 퇴근 후, 문인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귀가해서 한 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간장을 무던히도 태워드렸다. 특히 독실한 불교신자로 음식을 철저히 가리는 어머니에게 고기반찬을 올려놓고 심정을 거슬리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예순 아홉에 별세하셨다. 그날도 나는 술을 마시고 늦게 퇴근해서 돌아왔는데, 가족들이 어머니를 병원 응급실로 옮겨놓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신없이 어머니를 불러댔지만 어머니는 웃음 띤 얼굴로 잠자듯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부처님께 “제발 잠자듯 저 세상에 가게 해 달라”고 빌더니 소원대로 아무런 고통없이 뇌졸중으로 운명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 내 볼을 갖다 대어 보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느꼈던 그 따뜻한 온기는 온데 간데 없었다.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부둥켜안고 실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어머니의 건강을 평소에 잘 관리해드리지 못했다. 그저 약국에서 조제한 감기약이나 혈압약 복용만으로 건강을 믿었을 뿐, 병원에 입원치료도 몇 번 해 드리지 못했다. 서른여섯에 남편 잃고, 핏덩이 3남매를 기르신 어머니는 자식들의 효도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땅을 치고 목놓아 울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어머니에게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동안 나는 넋이 나간 상태로 지냈다. 그래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10여년 동안 내 머릿속에는 어머니 생각 때문에 다른 시상(詩想)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저지른 불효가 나를 계속 괴롭혔다. 꿈속에서도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고 원망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3. “어머니”를 소재로 시를 쓴 이유
불효막심한 아들에게 마지막 효도로 만회할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해주시지 않은 안타까움이 나로 하여금 반성문을 쓰게 된 동기를 부여하셨다. 만약 병원에 입원치료하여 경제적 부담을 자식에게 안겨주기 싫어서 그랬다면 나는 어머니께 더 큰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그래서 그 불효를 벌충하고 죄값을 배상하기 위해서 반성문을 여러 편 썼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 고생하지 않고 편히 가셨다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효아들의 처지에선 벌충의 틈도 주지 않고 가신데 데에서 온 충격과 한이 두고두고 남는다. 그 한탄과 회한이 내 작품(시)의 소재가 되었다. 사실, 어머니란 소재는 옛날부터 누구나 흔하게 선택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진부하고 흥미없을 것 같은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옛부터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에 대하여 시나 산문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일 뿐이다.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어머니에 대한 글을 더 잘 써야겠다는 의미도 아니고 계획적이거나 의도적인 작업도 아니다. 그저 나도 모르게 어머니가 생각날 때마다 회한과 후회와 눈물의 반성문을 썼을 뿐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지금은 그 당시처럼 가슴 아프고 비통하질 않다. 그래서 어머니란 소재의 시를 남발하듯 쓰지 못한다. 가끔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써보지만 그 때처럼 체험에서 우러나온 감동적 작품으로 표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
4. 어머니를 소재로 한 나의 작품과 문인들의 비평
내가 쓴 동시 중에서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을 몇 분의 문인이 평을 해 주었다. 그들은 내가 아주 효자인 줄 착각하고 후한 평을 한 것 같다. 나의 반성문이 그 분들에겐 효심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여기 몇 분의 평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나의 부끄러운 본심이 글의 밑바탕에 깔려 있음을 짐작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단편적인 평이나마 어머니를 소재로 쓴 작품을 통하여 소재를 택한 이유를 짐작해 주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어머니에 대한 소박한 나의 시가 표현기법상 어색한 점이 있더라도 나의 역량 한계로 봐주기 바란다.
지금은 고향 산자락에/ 주무시는 어머니// 오늘도 산머루 따가지고/ 옛집으로 가셨는가!(중략) 비 내린 간밤에는/나뭇잎 우산 쓰고/서울 집으로 오실 거라고/ 대문 열어놓고/ 울어 밤 새웠답니다.// 엄마 무덤 비 맞는다고/ 청개구리 되어 웁니다. * 개인적 체험에 의한 감상적 시다. 그 체험이 깊고 강렬한 것이면 다른 사람이 받는 감정의 전이도 강렬해질 것이며 간접 체험의 심도도 깊어질 것이다. <서울 집에 오실 거라고 대문 열어놓고 울어 밤 새웠다>는 그 아픈 체험을 우리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그만이다. 얼마나 뼈저린 아픔인가. 시를 압도하는 강렬한 체험이 꾸밈없는 시편에 효과적으로 녹아들어 있어 성공한 작품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시이다. 한 개인의 시적 체험은 만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때 예술적 향기를 가지는 것이다. *공재동 (공재동의 시평모음:동심의 시를 찾아서)
어머니는 긴긴 하루/ 베를 맸다./길고도 긴 날실/ 풀솔로 문질러/ 겻불에 익혔다.// 어머니 사랑도 함께 익어/ 실은 도투마리에 감기고/ 뱁댕이는 어머니 솜씨를/ 재고 또 쟀다.// 마당 구석에서/ 끌개돌이 끌려오듯/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어머니 품에 안기면/ 어머니 풀손은/ 아들의 작은 손/ 꼬옥 쥐었다. * 정시인의 <베마당>은 소재의 특이성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는 민속적 소재가 어머니의 사랑을 재인식케 하는 소도구로 등장하고 있다. 시어도 깔끔하게 다듬어져있고 감정도 잘 절제되어 있다. 정시인의 그 밖의 작품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은 우선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강렬한 집착인 것 같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애타게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사실 어머니는 사랑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에게 따스한 이름이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두고두고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하는지도 모른다.*문삼석 (아동문예 1982.12월호)
* 정시인의 <그 산 그 무덤 아래서>는 산골 아이로 자라면서 지켜보던 가난한 삶이었지만 인정이 훈훈했던 소박한 옛 정의 향수가 실린 작품이다. 꾸밈없는 진솔성과 친밀감이 읽는 순간마다 밀도를 더해 준다. <오두막집 구들장 데우시더니...>는 오붓하고 단란했던 추억을 비롯하여 3대를 이어오며 조상의 얼을 지키고 받들어 살아오면서 인간이 겪는 생사의 섭리를 초극(超克)하려는 의지로 인륜과 천륜을 다하려는 순진무구한 인간상을 만나게 된다. *경 철 (아동문학평론 21월호 시평)
엄마의 하얀 치맛자락/엄마의 하얀 머리카락// 하얀 솜이불 되어/ 하얀 연하장 되어.../ * 정용원의 <눈>은 바로 엄마의 하얀 치맛자락과 엄마의 하얀 머리카락으로 사모(思母)의 정과 함께 이중적 정서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전원범 (아동문학평론 18호)
과수원에는 주룩주룩/ 장맛비가 내린다.// 아기 사과들이 파란 알몸으로/ 그 비를 맞고 있다.// 사과나무는 주룩주룩/ 우산도 쓰지 않은 채/ 그 비를 다 맞고 있다.// 아기 사과들이 감기 들까 봐/ 잎으로 비를 막아주지만/ 온 몸은 비에 젖어 더 파랗다.// 어머니 사과나무/ 가슴에 목에 팔다리에/ 아기 사과 주렁주렁 매달고/ 비를 맞으며 젖을 먹이고 있다. * 정시인은 아름다운 나이를 어머니라는 이름에 묻어두시고 자녀사랑으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를 동시 <비오는 날 과수원>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어머니를 어머니사과나무로 비유하여 아이들 눈높이에 알맞게 은유적 표현법을 동원했다. 아기사과들이 채 다 익기도 전에 파란 알몸으로 장맛비를 맞고 있는 걸 보는 어머니 사과나무는 아기사과들이 감기라도 들까봐 잎을 펴서 비를 막아준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6남매 형제자매들의 끼니가 어렵던 시절에 먹이고 입혀서 자랑스럽게 길러낸 나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오버랩되어 세상은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여전히 내일을 향해 열려있음을 보게 된다. *김재용 (아동문예 2002년 11월호 월평)
* 정용원의 제 2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하여 때묻지 않은 본래적인 모성애적 인간애의 자각 속에 영원한 사랑의 고향인 어머니를 발견한 것이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시집 속에 담겨져 있는 19편의 시를 읽으면서 나 자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눈시울을 몇 번이나 적셨다면 이 시집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를 독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시인이 추상적인 넉두리를 통해 어머니에의 사모의 정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가슴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고향에의 사랑이 곧 자연에의 사랑이요, 그것은 곧 어머니의 사랑이란 등식은 그의 시에 있어서 커다란 강줄기이며 그가 지켜나가고 발전시킬 그의 시의 근원이다. *이재철 (2동시집 ‘어머니, 우리 어머니’서문중에서)
우리 어머니 주무시지요.........(고향 그 산에는 1. 제 1연 3행) 고향 그 산에는/ 돌아가신 내 부모님/ 할배 할매 무덤 아래 주무시고// (고향 그 산에는2, 제3연) 우리 어머니/ 얼마나 추웠을까!/ 그 산허리에서// (겨울 아침에 제 2연) 어머니 주무시는/ 고향 그 산 그 무덤/ 사진 찍어왔다. (사진속의 어머니 제 1연) * 정용원이 우러르는 산은 모두 어머니와 연루되어 있다. 화자의 입에서 나오는 진술처럼 ‘어머니 주무시는 산’이기에 그럴 것이다. 애타게 그리워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굽어보는 산이므로 산의 표정은 살아생전 어머니의 표정 그대로이다. 그런 인식 위에서 산은 정용원에게 사모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정용원은 산의 매장성에 힘입어 시적 대상을 끌어오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런 시작태도는 지고지순한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추념의 뜻을 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겠고 무엇보다도 산의 가임성에 의지한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산은 그 가슴 한 구석을/ 밭뙈기로 내어준다./ 사람들은 거기다/ 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는다 (소년아 산처럼 살자 제 2연) * 시인이 어머니를 화자로 내세우고 독자를 자식으로 삼아 쓴 듯한 인상을 받는다. 이러한 발언 방식은 이 시집의 ‘사모곡’시리즈를 지탱하는 언술체계이다. 산에 오르면/ 새가 되고싶다.// 꽃나무 사이에/ 둥지를 틀고/ 온 가족 체온 나누며/ 노래 부르고 싶다. (산에 오르면 전문) 꽃나무 가지 사이라는 둥지는 어머니의 자궁을 환유한 것이다. 나무에 부딪히는 바람의 위력을 감소해주는 가지 사이는 집에 바람벽을 만드는 심리와 다를 것이 없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산이기에 화자는 산에 난 꽃나무 사이일망정 노래를 부르고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공간이라 생각한 것이리라. 바다는 그리움 밭이다.// (.......) 그 밭 한가운데/ 한 점 섬이고 싶다./ 어머니 가슴/ 한가운델 떠나지 못하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이 시를 읽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가정적으로 인식하였던 정용원이 바라보는 바다가 어머니라는 시적 사실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바다를 이런 원시적인 원형적 심상으로 파악하는 시인의 자세는 다른 바다 연작시편들에서도 거듭 확인된다. 정용원은 어머니를 찾아가는 길을 산과 바다의 구원적 여성성에 기대어 두 가지로 시화하고 있다. 하나는 산의 수직성에 기대어 ‘하늘에 계신 우리 어머니’라며 기도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바다의 수평성에 기대어 어머니의 영혼과의 윤회적 만남을 시도하는 방식이다.(중략) 정용원은 모자관계의 설정을 통한 대상 인식의 수법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용원은 어머니를 향한 가없고 다함없는 사모의 정을 시화해 내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것은 그 나름의 시대적 책무에 대한 대꾸의 방식이면서 연치가 더할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자연스런 감정의 자별한 토로라 보아도 무방하겠고 개인적으로는 절절한 사모의 정념이 발동한 것이라 볼 수 있으리라. *최명표 (4동시집 ‘길이있지요’서평 중 ‘산과 바다,그 구원의 여성성’ 중에서 발췌)
엄마의 사랑을 비벼/ 밥 한 그릇 비우고// 이불 속에 가만히/ 자는 체 누웠다./ 내 이마 쓸어주는/ 주름진 손// 엄마는 바보야,/ 내가 자는 줄 아는가 봐./ 엄마가 자야 나도 잘 텐데...// * 위의 시 <어머니>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그린 작품이지만 여기에서 적잖은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고도화되고 그 속에서 지나친 문화의 혜택을 받고 사는 도시인들은 고향을 잃어버린지 오래다. 어머니의 은혜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도시인들에게 고향을 찾아주고 고향과 어머니를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심어주기위한 의도로 보인다. *엄기원 (동시집 ‘고향 그 옛강’ 발문에서 발췌)
깊은 밤/ 나 혼자 깨어 있을 때/ 찾아오는 소쩍새/ 고향에서 날아온 울음소리/ 소쩍소쩍/ 목쉰 어머니다.// “어머니, 밤바람 찰 텐데/ 날아들어 오세요. *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녹아있는 <소쩍새>를 읽고 있으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어머니는 소쩍새가 되어 지은이를 찾아와 창가에서 울고 있을 뿐, 왜 방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일까. 정용원 시인이 소쩍새의 피울음에서 찾아낸 것은 지극한 모성애이다. 많은 문학 작품이 소쩍새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 그것보다 더 진하다. 찔레꽃 하얗게 핀 애 고향으로/ 구름 타고 훨훨 날아가고 싶네/ 보리밭 초록 이랑 그 어디메 쯤/ 치마폭으로 땀방울 닦아내리며/ 지금쯤 엄마는 날 생각하고 계실까!//(엄마생각) (앞 생략) 내 옷을 빨랫줄에 걸어놓고/ 엄마는 햇볕이 되셨지요./ 용기와 기쁨의 햇살을/옷자락 올올이 엮어 넣으셨지요.(어머니의 빨래) * 어머니는 찔레꽃처럼 수수하고 소박하며 순백이다. 정용원 시인의 모성은 햇볕이 되고 <엄마의 빨래> 씨앗이 되고<목화> 등잔불이 된다<그 산 그 무덤 아래>에서. 정용원시인이 어머니란 그 성스러운 이름에 집착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는 젖 먹은 힘까지 다해 매달리는 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비오듯 흘렸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윗목에 앉혀놓고 여전히 밥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겨울밤은 길고 길었다. 어머니도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이 얼마나 솔직한 토로인가. 홀로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연민의 정이 정용원 시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항상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용원 시인의 동시를 이야기 하려면 고향과 어머니 즉, 모성을 이해해야 한다. *오순택 (시와 동화 2007 가을호(41호) ‘우리시대 젊은 시인’ 작품평에서)
째깍 째깍 째깍/가슴에 두 손 얹고 듣는다./ 나의 심장 뛰는 소리//(중략) 어머니 품에 안겨 있으면/ 어머니 가슴 속 뛰는 소리/ 내 가슴 속 뛰는 소리/한데 어울려 뛰는 소리/ 팔딱 팔딱 펄떡 펄떡/ 박자 맞춰 뛰고 있다. * 연작시 <시계소리 7>에서는 시계소리를 우리 어머니 가뿐 숨소리로 듣고 ‘시계야 배고프면 새 밥을 지어줄 테니 제발 멈추지 말라고 애원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시계에게 애원하는 시이다. 그의 효심에 대한 충격적 공감대는 ’정시인은 영혼의 화가‘란 찬사가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김재용 ( ‘한국 동시논평과 해설’집에서)
(............) 얘야 감기 들라/ 배 아플라 아랫목에 자거라/ 어머닌 감기 들어/ 끙끙 앓으시며/ (중략) 귀여운 우리 아들/ 밥 비벼줄게/ 많이 먹어라. * 정용원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대화조로 시인의 느낌을 강조하였다. 대화조가 아닌 평범한 시어를 가지고는 독자에게 호소력이 미약함을 느끼기에 새로운 스타일을 개척하였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철철 넘치는 귀절이기도 하다. *윤부현 (아동문예 1982년 6월호)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에서/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깊은 바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들여다 보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정용원의 시 <배를 타고>... 어머니에 대한 이 분의 집념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배를 타고>는 짧은 시 속에서 오히려 설명하지 않는 분위기만으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한다. *공재동 (아동문학평론 24호)
무겁디 무거운 몸/ 간신히 날아간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기 생각에/ 쉬지도 않고/ 부웅-붕-붕 날아간다. * 정용원의 동시 <어미벌>은 우리네 어머니를 상징한다. 시골에서 자란 정시인은 어머니에 대한 효사랑이 지극했다. 어머니 그 이름 석 자 앞에 늘 사랑받는 어린이로 살아왔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늘 마르지 않는 옹당샘 마냥 사랑의 원천이었다. 시인의 체험은 그 자체가 시가 아니다. 시가 체험이 되기 위해서는 엘리엇이 말했듯이 ‘전통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전통이란 효처럼 민족 집단의 무의식의 영역이다. 뱃속 가득 꿀을 담고 무겁디 무거운 몸으로 간신히 집에서 기다리는 아기 생각에 쉬지도 않고 날아가는 어미벌을 통해서 금방 ‘어머니’를 상기하는 생각의 정제, 표현의 진수는 시인의 경륜이 낳은 소산이다. *김재용 (월간문학 2009년 2월호 동시 월평 중에서)
천리 먼 길 떠난 아들/ “어머니!”/ 부르는 소리/ 천리 밖에서도 다 듣는다.// 밤 늦게 돌아오는 아들/ 기다리다 기다리다/ 찬 이슬 내리는 밤/ 대문에 매달려 떨고 있는/ 어머니의 귀. * 어머니를 향한 사랑은 그의 시 정신의 바탕이 되었고 그의 작품에 깊은 정서가 어리게 되는 원인이었으며 그 깊은 정서는 동심의 세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정용원의 초기 시에 나오는 어머니는 작가의 성장배경과 관련지어보면 일찍 아버지를 여읜 가정적인 상황이 작가로 하여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깊게 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효도를 다 하지 못한 회한의 마음을 담아 애끓는 사모의 정으로 작품화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발표된 <눈부처> 속의 어머니는 사사로운 어머니의 감정을 넘어 인간 근원의 정, 자연회귀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김향숙 (2005. 부산교대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정용원 동시연구”중에서 발췌)
때묻은 내 옷을 물에 담그며/ 저고리 깃 까맣게 묻은 슬픔/ 바지가랭이 휘청이는 피로를/ 사이사이 뒤집어 털어내셨지요.// 시냇가 빨랫돌에/ 푹푹 문지르고/ 탁탁탁 방망이질 하여/ 나의 슬픔과 피로를/ 비누방울로 흘려보내셨지요.// 내 옷을 빨랫줄에 걸어놓고/ 엄마는 햇볕이 되셨지요./용기와 기쁨의 햇살을/옷자락 올올이 엮어넣으셨지요.(어머니의 빨래) * 어머니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한 의지를 지니시고 온갖 고난에 직면하면서도 인종(忍從)과 순응(順應)의 생활로 일관하심을 본다. 우리들에게 보여준 모든 어머니들의 삶의 과정에 있어서 2중, 3중고를 수용하면서도 어떤 반작용의 모습도 없으셨다. 온 가족의 의·식·주의 문제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아들 딸이 건강하게 자라며 배워가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면서 오늘도 내 옷을 벗겨 물에 담그시며 한가닥 기대를 놓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집념과 애쓰심이 잘 나타나 있다. *경 철 (아동문학평론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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