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土幕)·유치진
줄거리
제1막 : 막이 열리면 문자 그대로 오두막집이 나오고 거기에 명서의 처가 남편을 나무라는 장면이 나타난다. 그녀의 남편 명서는 일본에 건너간 아들에게 편지를 쓰는 중이다. 마침, 삼조라 는 동리 청년이 일본에 건너간다. 그 인편에 역시 일본에 건너가 있는 아들에게 사연을 전하도록 하기위해서다. 그 편지가 며칠 걸려도 완성되지 못했다. 이에 명서의 처가 남편에게 닦달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여전히 꾸물댄다. 그러는 동안에 삼조는 길떠난 채비를 다한 차림으로 나타난다. 이제 아들에게 쓰는 편지를 다 써서 보내기에는 틀린 셈이다. 부득이 명서 일가는 아들에게 전할 사연을 말로 한다. 그 내용은 대충 아들한테 곧 고향으로 나오라는 말들이다. 그러지 못하면 돈이라도 부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었다. 그 숨통을 아들을 통해 열어보자는 속셈들이 뚜렷이 나타난다. 삼조를 떠나보내고 또, 이웃 사람들이 쪼들리는 살림에 다투는 모양들이 나타나면서 구장이 등장한다. 그의 손에는 신문지가 들려 있다. 구장은 명수가 잡혀 들어갔다고 말한다. 영서와 명서의 처는 물론 그 까닭을 묻는다. 구장은 그 죄목이 해방운동을 했다는 것이라고 알린다. 명서일가는 물론 그걸 믿지 않는다. 세상에는 같은 이름가진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명서는 구장에게 불길한 소식을 가져 왔다고 화를 낸다. 구장도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어 하면서 퇴장해버린다. 명서도 불길한 생각에 넋을 잃는다.
제2막 : 명서네 이웃에 사는 경선과 경선의 처가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전에 경선이는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부부 싸움을 하고 떠돌이를 한사람이다. 그가 나간 동안에 그들을 집까지 남의 손에 넘겼다. 그리하여 밤에 몰래 일가족이 도망치기 위해 잠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을 보내는 명서네의 심정도 참담하다. 경선네를 보낸 다음 명서의 처는 별안간 정신이상의 증상을 보인다. 오랜 가난에 아들명수의 소식을 듣지 못한 긴장이 겹친 탓이다. 그 때 밖에서 우체부가 나타난다. 우체부는 소포를 전한다. 그 소포는 명수네 일가가 목이 빠져라고 기다린 아들 명수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조가 보낸 것이다. 내용을 펴보는 그들은 크게 놀란다. 거기에는 백골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야 궤짝에 쓰인 글자가 눈에 띈다. ‘최명수의 백골’ 결국 명수는 그들을 하늘 같이 믿는 명서네 일가 앞에 백골로 나타난 것이다. 명수의 유골은 그 가족의 혹시나 하던 일말의 기대를 무참히 깨뜨린다.
이해와 감상
1931년 12월에서 1932년 1월에 걸쳐 《문예월간文藝月刊》에 게재되었으며, 1933년 2월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에서 공연하였다. 작가의 첫 희곡이자 동시에 극예술연구회의 첫 창작극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삶의 어려움을 가장 전형적인 장소인 농촌을 무대로 그렸다는 데에 작가의 현실감각이 날카롭게 드러나 있으며, 이 희곡이 가지는 현실적·연극사적 의미가 있다. “이 시대에서 숙명적으로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은”(작가의 말) 유치진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버드나무 선 동네 풍경」(1933), 「소」(1934) 등 당시의 농촌 현실을 고발한 일련의 작품을 쓰게 된다. 작가는 뒤에 이 작품에 대하여 “이만큼이라도 관객의 마음을 포착한 것은 작품이 예술적인 것보다 자기 표현에 굶주린 우리 관중에게 우리의 병든 현실을 추출해준 데서 온”것이라고 하였다. 한 작가가 ‘병든 현실’에 과감히 직면해서 쓴 작품으로 솔직하고 침통하게 비극적 현실을 파헤치려는 작가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사 전개를 볼 때 「토막」은 두 농가, 즉 명서네와 경선네의 몰락 과정을 비극적으로 그린 것이다. 경선네는 소작농으로 근근이 지내다가 땅마저 빼앗기고 장리 쌀 몇 가마 얻어먹은 것을 못 갚아 토막마저 차압당해 유랑 걸식과 행상으로 끼니를 잇다가 견디지 못하고 결국 고향을 떠난다.
「토막」에서의 중심 인물은 경선이 아니라 명서이고, 명서 일가의 비극에 이 희극의 초점이 있다. 명서네의 삶 역시 경선 일가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그런데 명서네는 장남이 일본으로 돈벌이를 간 것과 그를 기다린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유일한 희망마저 무산된다. 아들은 일본에서 해방 운동을 하다가 옥사하고 유골만 돌아온다. 그리하여 명서 일가의 비극은 절정에 달한다.
이 작품의 특징은 배경의 암시성이다. 그 퇴락하고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와 철저하게 가난하고 병들어 있는 삶, 그것은 단순히 한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일제의 통치하에 있는 1920년대와 30년대의 식민지 조선의 생생한 모습이다. 이렇듯 가난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식민지 정책의 구조적인 모순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을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등장 인물
·최명서 : 병들고 가난한 늙은이, 생활의 능력이 전혀 없다. 그러나 가장으로서의 체통과 위엄은 잃지 않고 있다.
·명서 처 :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망을 가지고 있는 생활력이 강한 아낙네
·금녀 : 최명서의 딸로서 병약한 처녀,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예지를 가진 인물
·강경선과 아내 : 명서 내외의 친구, 빈농, 등짐장수로 전락함, 빚에 몰려 집을 빼앗기고 밤 사이에 도망가 버린다.
·삼조 : 돈을 벌러 일본으로 건너가는 젊은이
작품 구성
·발단 : 삼조가 명서에게 소식 전할 것을 약속함
·전개 : 재산을 빼앗기에 된 경선. 명수가 구속된 소식을 들음
·절정 : 경선이 솔가(率家)하여 떠나고 명수 때문에 온 가족은 비탄에 빠짐
·대단원 : 명수가 백골로 돌아오자 명수네 가족은 절규함
핵심 정리
·갈래 : 희곡, 장막극, 사실극
·배경 : 시간-일제시대. 공간-오두막집.
·경향 : 민족의식 고취
·표현 : 1920년대 농민의 궁핍한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표현
·의의 : 한국 근대극의 출발
·주제 : 일제시대 한국 농촌의 현실과 비참한 삶
논리 논술
1. 제목 ‘토막’이 집약적으로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 서술하시오.
☞「토막」의 시대적 배경은 일제 강점기하 1920년으로 이 시기는 일제의 수탈과 상실로 점철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어울려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인 어느 가난한 농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토막이다. 음습하고 퇴락하여 찌든 가난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 토막이다.
2.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명수의 존재는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토막」의 갈등은 행동을 통해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비극적 장면과 희극적 장면의 대응에서 제시된다. 극적 긴장은 명서 처의 직관적인 불안과 공포 의식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명수의 존재 자체가 다른 인물들에게 긴장을 주는 것이며, 명수가 실제로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인물들에게 있어서 오히려 미지의 것에 대한 내적인 불안과 공포의 해소를 의미할 수 있다.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의 대립을 통한 외적 갈등이 아니라 한 개인의 불안과 공포의 심화를 통해 사건이 전개되어 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참고 자료
·「토막」의 문학사적 의의(「리얼리즘 극」의 형성 배경)
「토막」은 우리 현대 희곡사에서 본격적인 희곡으로서는 첫 작품이며, 사실주의 희곡의 첫 작품이다. 1930년대는 「신파극」의 전성기로 예술적 감동을 주지 못하는 상업주의 대중 연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상업주의적 대중 연극에 반기를 든 극작가들이 〈극예술 연구회〉를 조직하여 서구의 리얼리즘 연극을 수용하였는데, 「토막」은 〈극예술 연구회〉의 일원이던 유치진이 리얼리즘을 시도한 초기의 작품이다. 「토막」은 리얼리즘 희곡의 한 전형(典型)으로서 한국 현대극의 본격적인 출발이며, 식민지 시대의 현실을 강렬하게 고발한 작품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
·유치진의 작품 세계
① 작품 경향 : ·식민지 현실의 고발과 민족의식 고취. 例) 「토막」, 「소」,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 고발성이 짙은 문학 고취. (*·민족의식의 계몽 : 8·15 해방 이후는 「자명고」, 「원술랑」 등)
② 문학사적 의의 : 사실극 창립과 현대 희곡의 발달 및 연극인 양성에 공헌
·작가 연보
유치진 호는 동랑(東朗). 경남 통영 출생. 향리에서 중학을 마치고 도일, 도쿄 릿쿄(立敎)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1년 홍해성(洪海星)·서항석(徐恒錫) 등과 극영동호회(劇映同好會)를 창립하고, 이어 이 단체를 발전시켜 이헌구(李軒求) ·이하윤(異河潤) 등의 참여를 얻어 극예술연구회로 발족시켰다.
1931년 희곡 『토막(土幕)』을 《문예월간》지에 발표하고, 계속해서 『버드나무 선 동리의 풍경』, 장막희곡 『소』 등을 발표하였다. 그 후 사회성을 배제하고 인간의 애정문제를 다룬 『제사』, 『자매』, 『부부』 등을 발표하고, 중일전쟁(中日戰爭)이 발발한 이후에는 일제의 강압에 못 이겨 국민연극운동을 벌여 자신이 친일작품으로 인정하는 『흑룡강』, 친일의 선봉 이용구(李容九)를 찬양한 『북진대(北進隊)』 등의 희곡을 쓰고 공연하기도 했다. 8·15광복 후에는 『자명고(自鳴鼓)』, 『원술랑(元述郞)』 등의 역사극과 반공을 주제로 한 『나도 인간이 되련다』 등의 역작을 발표하였다. 국립극장장, 반공통일연맹 이사, 동국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고, 드라마센터 소장으로 후진 양성에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