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사회는 타협 없는 증오와 진영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서로를 향한 혐오는 깊어지고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과거의 정치적 양극화가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됐다면, 오늘날의 양극화는 '상대 진영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 그 자체로 변질되었다.
나는 이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포스트모더니즘과 과도한 해체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조들은 기존의 종교적, 도덕적 규범을 기득권의 허구적 서사로 규정하며 해체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공유된 도덕 기준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각자의 집단 논리만을 절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때 반대편은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을 위협하는 적'이 된다. 해체가 가져온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공통의 언어를 잃은 사회의 혼란이었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이미 이를 간파했다. 사회적 규범이 해체될 때 개인은 공동체 소속감을 잃고 극심한 불안에 빠지며, 그 불안은 외부 집단을 향한 적대감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선악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공동체가 작동하려면 구성원이 공유하는 초월적 기준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그 역할을 해온 것이 종교와 도덕적 규범이었다.
혹자는 "현대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자고 종교로 돌아가자는 건 퇴행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특정 신을 믿으라는 포교가 아니다. 어떤 종교를 믿든, 혹은 믿지 않든 간에, 인간의 이기심보다 더 높은 차원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것이 보편 윤리이고, 공동체를 유지시켜온 최소한의 도덕적 언어다.
그렇다면 종교 대신 법과 제도로 질서를 잡으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율일 뿐, 마음속 이기심과 혐오까지 통제하지 못한다. 법망만 피하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이 지금의 무질서를 낳았다. 법은 행동을 규제하지만, 도덕은 마음을 규제한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의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선언이 불러온 파장은 작지 않았다. 공유된 가치 체계가 무너진 자리에 극심한 허무주의가 들어섰고, 역사는 그 결과를 보여준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대표적이다. 1차대전 패전 이후 기존 질서가 일거에 해체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자유로운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공유된 도덕적 기반 없이는 그 자유를 감당하지 못했다. 극심한 가치 혼란과 사회 불안은 결국 나치즘이라는 극단주의를 불러들였다. 인간은 이성과 법만으로는 통제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보다 높은 차원의 보편적 윤리와 겸손함이 필요하다.
비슷한 사례를 로마에서도 찾을 수 있다. 로마 공화정은 시민의 덕목과 공동체적 규범 위에 세워진 체제였다. 그러나 제국이 팽창하면서 전통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공유된 도덕 기반이 약해지자, 로마는 내부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외부의 침략이 아니라 내부의 도덕적 공백이 제국 붕괴의 핵심 원인 중 하나였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것은 군사력이나 법률이 아니라,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이라는 것을 로마의 역사는 말해준다.
그렇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무조건 틀렸는가?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 체제의 억압을 폭로하고, 소외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으며, 특정 분야에서 분명한 기여를 했다. 문제는 그 해체의 칼날이 사회 전반의 도덕적 기반까지 무너뜨렸을 때다. 억압적 규범을 해체하는 것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둥마저 부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전자는 해방이지만, 후자는 혼란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을 지탱하던 최소한의 도덕적 기둥마저 부숴버린 지금의 무질서함은 우리 사회를 침몰시키고 있다. 성찰과 표현이라는 과목에서 결국 나는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 나 역시 해체주의가 선사한 자유 속에서 내 편의대로 선과 악을 규정하며 타인을 비난하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는 인간보다 높은 차원의 보편적 가치 앞에 겸손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첫댓글 니체, 뒤르켐, 바이마르 공화국, 로마 사례까지 연결해서 설명한 점에서 설득력이 높은 글이라고 느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나도 모르게 내 생각만 절대화하며 상대방을 진영 논리로 바라보았던 구체적인 경험이나 순간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글에 드러난 주장이 굉장히 뚜렷하고 그 근거가 타당하게 느껴져요. 종교가 집단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도덕적 윤리를 제시하고 겸손과 성찰을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무교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종교를 갖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알고 싶어요.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글인 것 같아서 잘 몰입됐습니다! 성찰과 반성을 해야한다고 하셨는데 그를 통해서 변화한 점이 있을까요?
현대 사회의 갈등과 혐오 문제를 가치관과 도덕의 문제로 연결해 깊이 있게 분석하신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오늘날 사회가 공유해야 할 가장 중요한 보편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현재의 상황이 딜레마라고 생각해요. 로마와 같은 근대와 달리 현재는 초월적 기준이 자유,평등,인권이라고 생각해요. 이 기준들을 각 공동체가 다르게 해석하는 점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즉 모두가 명목상 초월적기준을 의식하고 추구하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충돌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것에 대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자유만큼이나 서로가 공유할 초월적 가치와 책임도 중요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던 도중 로마 역시 종교와 전통적 가치관이 강했던 사회로 알려져 있는데, 왜 그것이 후기에는 공동체를 묶는 힘으로 작용하지 못했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서로를 미워하기보다 함께 지켜야 할 가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존에 종교가 담당했던 보편적 도덕 규범을 이제는 성찰과 반성을 통한 개인의 양심에 맞겨야 한다는 입장이신지 궁금합니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인간의 이기심과 혐오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고, 결국 공동체를 유지하는 보편적 윤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했습니다.
우리가 인간보다 높은 차원의 보편적 가치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는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보편적 가치를 그저 교과서 속 문장으로만 생각하고 조금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편적 가치에 대한 겸손의 자세를 취해야한다는 말에 동의가 되는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가 예전보다 자유로워지면서 각자의 주장과 개성을 나타내기 쉬워지고 다양성이 커진 것은 사실이나 이 때문에 서로에 대한 혐오와 비난 또한 커진 것 같아요. 이러한 혼란을 어느 정도 잠재우고 컨트롤할 수 있을 만한 보편적 규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합니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전부터 가지고 계신 생각을 풀어낸듯 논리가 탄탄해서 되게 흥미롭게 읽었어요. 읽던 중 의문이 들었던게, 공유도덕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초월적 기준이라는 위상까지 가져야할까는 점이었어요. 기독교의 이단 취급이라던가, 조선시대 유교 사상을 떠올리면 종교나 교리가 도덕적인 보편 기준을 세워준 것은 맞지만 절대적인 차별과 약자를 억압하는 도구로도 충분히 쓰였잖아요. 그러한 점 때문에 니체가 해방을 주장한 것이기도 하고.. 허무주의와 현재에는 이른바 냉소주의가 사람들 마음 기저에 깔려있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올바른 도덕 규범을 세울 수 있을까요?
"결국 인간은 스스로 선악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럼 선악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편 가르기, 극심한 혐오와 같이 현대 사회에서 무질서를 느끼고 있던 참에 공감 되는 글이였습니다.
종교와 도덕적 규범이 공동체 유지에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역사적으로 종교 역시 갈등과 혐오를 심화시킨 사례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상당히 깊이있는 글이였다고 생각하고 겸손해야 하는 법을 배워야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대 진영을 단순히 '적'으로 보게 되는 순간을 경험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현대 사회의 혐오와 양극화의 원인을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라고 하셨는데 정치·경제적 불평등, SNS 알고리즘, 미디어 환경 같은 구조적 요인보다 사상적 변화가 더 근본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사회 전반을 지탱하던 최소한의 도덕적 기둥마저 부숴버린 지금의 무질서함은 우리 사회를 침몰시키고 있다.라는 문장이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현상과 주제였는데 이렇게 역사와 연관지어 좋은 흐름의 글을 써주셔서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도덕적 규범의 획일화와 자유를 갈망한 무질서 사이의 절충적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포스트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혐오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를 보인 글인 것 같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