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천 죽죽정을 다녀오면서 **
[homihomi- 호미숙]
6.6일 현충일 합천의 죽죽정에서 전국궁도대회가 있기에 하루 전인 일요일 오전부터 분주하게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당부와 이것저것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나서는 길의 햇살이 눈부시게 밝아 왔다. 동서울터미널에 가서 대구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참으로 오랜만에 혼자만의 긴 여행길이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시간은 있지만 움직이지를 못하다가 오랜만에 경남 합천을 향한 설렘에 마음마저 부풀었다.
차에 오르기 전 작가 김훈님의 [현의 노래]란 책을 사서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게 느끼며 버스의 질주감과 창 너머 푸른 6월을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며 4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버스 안은 그리 많지 않는 승객들이었다. 2인용 좌석에 혼자 앉아 가는 나만의 즐거움
금강 휴게실에 들러 차 한 잔과 그리고 휴게실의 건축 디자인과 강 여울에 잠시 동안 눈을 식히고 강바람을 맞았다. 금강휴게실에 들를 때마다 느끼는 정갈함과 청결함 그리고 멋진 풍경에 감동을 하곤 했는데, 그날따라 더욱 정겨움으로 다가왔다. 15분의 휴식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끼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버스에 올랐다.
[현의 노래]란 소설 속에 푹 빠져 주인공이 된 마냥 가야국의 우륵이 되어 깊은 감동의 현의 울림이 들리는 듯 했다. 어느새 서대구에 도착했다. 서대구 터미널에서 가까운 대구의 [관덕정]으로 택시에 올랐다. 경남 지방에 대회가 있을 때마다 들르는 곳으로 자주 들르는 활터이다.
언제나 조용한 활터, 그리고 산속의 싱그러움 푸른 잔디가 반가이 맞고 2년 전 보았던 활터지킴이 귀염둥이 어미 개는 사라지고 어린 강아지가 쫄랑쫄랑 반긴다. 정간에 정중히 인사를 하고 관덕정 사우께 목례를 하고 함께 습사를 하기 위해 사대에 올랐다. 활을 쏘기 시작한지 햇수로 벌써 7년이지만 늘 현실에 쫓기다 보니 제대로 활을 쏘지 못하고 전국대회 또한 자주 참여를 하지 못했다.
활이 좋아 활의 연을 끊지 못해 시작한 국궁, 내게 있어 여러 가지 의미가 있기에 평생운동으로 생각하고 정신적 지주이므로 나를 지키고 세우는 운동으로는 가장 좋다고 여긴다. 그렇게 관덕정의 멋지고 조용한 산사 같은 분위기에서 습사를 하고 내려와 다시 합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합천에 도착하니 아주 작은 우리 고향 마을 같은 다정함으로 번거롭지 않게 화려하지도 않게 서울의 호미를 품어주었다.
지방대회 때마다 1박 이상일 때 늘 여러 가지 불편함이 있는데 그중에 숙소 문제다. 큰 지방의 도시는 찜질방과 싸우나 시설이 있어 그렇게 불편하지 않게 묵을 수 있는 반면에 합천과 같은 소도시에선 여관 또는 여인숙 정도의 숙박시설이 전부이다. 이른 새벽에 [죽죽정]에 올라야 하기에 여관에 짐을 풀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디 외지에서 혼자 자려는 밤에 잠이 쉽게 오겠는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자정을 넘기고 한참을 지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는지 새벽 5시도 안되어 눈을 뜨니 창밖으로 뿌옇게 밝아 오고 있었다.
이번 대회로 합천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기에 낯도 설기에 일찍 준비를 하고 죽죽정을 향했다. 활터가 터미널에서 가깝다고 했으니 택시를 타면 될 것으로 알고 새벽에 마주친 주민들께 여쭈니 걸어가도 그리 멀지 않단다. 다행이다 싶어 설명해준 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빵빵~ 크락숀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죽죽정의 오사범님이셨다. 반가이 맞으며 안내를 해주신 사범님 덕분에 쉽게 죽죽정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죽죽정의 활터가 보였다. 2층 건물에 아담하게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리고 정간을 향해 인사를 하고 사대에서 바라본 무겁터엔 안개가 자욱했다. 이미 몇몇 선수들이 도착해서 습사를 하고 계셨다. 사대 앞에 선 소나무가 강바람을 맞아서인지 그리 키가 크지 않지만 당당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 소나무 옆으론 바로 황강의 물줄기가 있었기에 강안개가 뿌옇게 강을 덮고 있었다.
습사를 위해 활을 올리고 시를 정리하며 멀리 보이는 무겁터의 과녁을 향해 새로운 각오를 해본다. 여러 사우들과 새벽습사는 신선했다. 처음으로 마주한 죽죽정의 과녁 보이지도 않는다. 안개는 걷힐 듯 말듯 여러 차례 붉은 홍점을 보여주다가 다시 숨겨버린다. 오리무중,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한 거궁 그리고 발시 첫 시부터 관중이다.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관중시마다 멜로디가 흘러나오게 한 전기장치) 마음마저 후련하게 시원한 강바람이 부드럽게 볼 살의 솜털을 간질인다. 오전 7시 반까지 되어도 안개는 여전히 걷히지 않고 뿌연 과녁만 보여줄 뿐이다.
동녘의 하늘에 밝게 비춰주니 경기관계자의 경기 시작 발표와 함께 선수들이 하나, 둘 입장했다. 흐리던 과녁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햇살이 눈을 부셔 과녁마저 바라 볼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정사에 들어간 선수들이 긴장을 하고 관중이란 신호에 엷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선수, 아쉽게 과녁 밖으로 떨어진 화살에 아쉬움을 하는 선수등, 다양한 표정들이 오고갔다.
한동안 연습도 않고 갔던 터라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내심 욕심을 갔던 것이 진심일 것이다. 요즘 남산 석호정에서 연습 시 어느 정도 실력이 된다 싶어서 이렇게 장거리를 마다 않고 나선 길이 아닌가……. 욕심을 화를 불러 온다고 했던가. 역시 그 진리를 호미에게 새기게 만드는 하루였다. 습사 내내 너무 잘 맞아서 오히려 두려움을 갖았는데 영락없이 정사에 들어서니 그 징크스에 호미가 휘둘리고 말았다. 습사에 몰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 습사 때 두 번이나 몰아 버린 것이다 (몰기: 한순 5발을 쏘아 5발 모두 관중) 언제나 그랬듯이 습사에 잘 맞으면 늘 실전에서는 기록이 저조했었다. 그날도 다름없었다.
경기라는 게 늘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만 못 미치는 게 대부분이 아닌가, 다시 다음에 잘 하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일찌감치 짐을 싸고 서울로 발길을 돌렸다.
황강의 죽죽정
[석호정 호미숙 여무사]
운무에 가려진 죽죽정 맞은편
낮은 산이 살포시 속살을 보이려나
찬 강바람이 안개 속치마를 들춘다.
하늘도 땅도 하나로 휘감은 안개
과녁은 어디 있는가.
어렴풋이 붉은 꽃잎 보이려다 숨어버리네
거센 강바람에 맞서
몸을 비틀다가
황강을 짚고 일어선 소나무
시위를 떠난 화살은 간데없고
들려오는 멜로디
관중으로 대신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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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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