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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우간다 져스터스1004PD의 꿈
“코리아맘의 나라. 코리아 파파의 나라”
수동골에서 가장 높은 전망 좋은 1009호 행복방 침상에서 바라본 아침 풍광은 산중턱에 구름띠를 둘러 흘러가는 모습이 어릴적 할아버지 시골 집 동네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벌써 8년째 머물고 있는 수동골은 모처럼 수동계곡이 범람할 것 같이 비가 내리다 잠시 소강 상태였다.
작년 4월 몸이 힘들어 식사도 잘 하지 못 할 때 아침 침상 식판 앞에서 TV를 보게 되었다.
대통령이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맞춰 한 가정이 먹을 것이 없어 커피 찌꺼기를 끓여 먹는 참혹한 장면을 바라보다 눈물이 없던 나는 뭔가 울컥 올라오면서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동안 국내외 많은 NGO 단체에서 후원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식량문제 하나 해결이 안 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죽기 전에 저 참혹한 현장을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14년 전 아프리카 우간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져스터스 선교사와 만나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그가 떠올랐다.
그는 몇 년전 석사를 마치고 올해 박사학위 논문 준비하고 있는데 우간다에 가장 시급한 것이 우물을 파는 것이라고 했다.
“2,000원이 없어 약을 사지 못해 아이들이 죽어간다.”
상류에서 동물 배설물과 함께 빨래를 하고 버려지는 물이 흘러 내려오면서 물이 부족해 오염된 물을 먹을 수밖에 없고 열악한 환경으로 말라리아에 걸려도 2,000원이 없어 약을 사지 못해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라가 가난해 우물을 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우간다 키우무루학교에 가장 필요한 것이 맑은 물을 마실 수 있게 우물을 파는 것이라고 했다.
우물이 파지면 반경 4Km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했다.
얼마의 금액이 필요하느냐 물으니 중국과 인도인 회사에서 장비로 거리에 따라 1,000만~1,200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했다.
그건 좀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그럼 수맥을 찾아 마을 사람들이 손으로 파는 방법이 있는데 절반 정도 금액이면 팔수 있다고 해 그 정도면 기금마련을 통해 1년 후에 우물을 파주기로 약속을 했다.
그 후 져스터스선교사를 다시 만나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생명수 우물파기’ 필요성을 지인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우리가 은혜를 갚아야한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너무 가난해 필리핀보다도 못 살 때 외국선교사를 통해 여러 학교와 병원들이 세워졌고 물질적인 도움도 받아 지금 밥은 굶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며 이제는 우리가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SNS를 통해서 아프리카의 참혹한 현실과 우물파기의 필요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며칠 후 전화 한통이 왔다.
오래전 사업을 할 때 인연이 되었던 대구에서 동심 유아용품 사업을 하셨던 사모님이었다.
‘사장님 저도 우물파기에 동참하고 싶어요’ 하며 처음으로 우물파기 계좌에 후원금을 입금시켜 주셨다.
첫 후원금이 마중물 되어 본격적으로 모금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대구 지인들에게 우물파기 지정 후원금으로 1만원의 정기후원금을 여러 명 받아 주셔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모금활동을 시작하니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을 통해서 우물파기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더 컸고 그렇게 녹녹치 않았다.
그 후 포토테라피 사진 촬영과 각 단체 강연활동, 평생교육원 강의와 쌀국수를 판매해서 모금한 금액을 회원들에게 수시로 보고 하기 시작했다.
모금활동이 몇 달간 지속되자 지켜보던 1004클럽 나눔 공동체 회원들이 한두 명씩 기금마련에 참여 하기 시작했으나 8개월 정도 모금활동을 해왔지만 생각처럼 기금마련이 잘 되지 않았다.
약속했던 기간이 몇 개월 안남아 작년 11월 매년 해오던 연말 1004클럽 희망 나눔 송년 감사페스티벌 광고 후원과 참가회비를 통해서 생명수우물파기를 알려 목표액을 하루라도 빨리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1004클럽 사무국회의에서 송년행사를 제안했지만 회원들은 나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며 한사람도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다.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니 젊었을 때부터 몇 년 간격으로 여러 차례 쓰러져 계속되는 병마로 가족들과 형제들에게 짐만 되다가 의미 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죽기 전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으로 수백 명의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공동체란 회사 운영보다 더 힘이 든다고 생각 들었고 개인적으론 너무 아쉬웠지만 결국 송년행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독단으로 구성원을 움직일 수 없었고 명확한 비전제시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공감대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동체란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킬 때만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과거 단체를 운영해본 경험을 통해서 배웠고 무엇보다 나의 부족함으로 더 이상 행사를 강행할 수가 없었다.
2017년 신년희망나눔콘서트를 다시 준비하기로 위안을 가졌지만 젊은 날부터 사업만을 해왔던 나는 목표지향적인 것과 공동체의 공감대 형성과는 괴리가 너무 컸다.
‘수동으로 파면 물이 마를 수 있어요’
올 봄 약 70% 정도의 목표액이 달성되었을 때 져스터스선교사로 부터 전화가 왔다.
‘찰리선생님 수동식으로 우물을 파면 가뭄에 물이 마를 수 있다고 해요.
그러나 장비를 사용하여 기계식으로 1층수 지나고~ 2층수 지나고~ ( 충청도 말보다 더 느리게) 3층수 물을 파면 아무리 가물어도 물을 먹을 수가 있데요’ 하며 현지에서 좋으신 분을 만나 D/C를 받기로 했으니 기계식으로 바꿔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일 년 정도 모금활동을 하며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결코 쉽지 않아 답변을 못하고 잠시 생각하다 그럼 회원들과 상의 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가락시장역 1004클럽 사무국회의에서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회원 모두가 나의 건강을 위해 극구 만류를 하고 그냥 약속한 금액을 전달해주고 끝내라고 했다.
“둥근 스티커에 장기기증자라는 표시가 있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30대 초 가장 열정적으로 사업 할 당시 강남성모병원에서 처음 간염 판정을 받았다.
그 후 25년 전 강북 고려병원에서 간경화 판정을 받았고 몇 년 간격으로 사업을 하면서 쓰러지고 입원하고를 반복하다 결국 2010년 길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혈액 검사결과 종양수치가 너무 높다며 다시 MRI 촬영 결과 간부위에 둥근 종양이 발견되었고 간이 섬유질화 되어 간 기능을 못해 간을 대신하는 비장이 과부화로 너무 많이 부어 있었다.
담당의사는 절재 수술 후 다시 간을 이식 받아야 살 수 있다며 이식받을 사람을 찾아보라고 했다.
막내동생에게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형 내가 간 이식해줄게’ 하고 말했다.
어느날 우연히 헌혈을 자주하는 동생 책상에서 주민등록증 위에 둥근 스티커에 장기기증자라는 표시가 있었다.
막내여동생 . 찰리. 남동생.작은누님 .뒤 큰누님(어머니는 막내임신중)
담당의사는 이식 받기전 동생이 먼저 검사를 받고 우선 종양절재 수술을 먼저 하자고 했다.
수술을 하면 간 이식을 받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다시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당시 복강경 수술로 고생했던 것이 떠올라 며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고 수술을 보류했다.
날짜가 지나갈수록 얼굴은 황달에서 흑달이 왔고 먹지 못하는데 배는 올챙이 배처럼 볼록하게 불러왔다. 의사는 복수가 차서 그렇다고 했다.
과거에도 4차례나 의식을 잃고 큰 병원을 여러곳을 다니면서 입원과 퇴원을 3~4년 간격으로 반복했었다.
그럴 때마다 퇴원 후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함께 몇 달을 지내면 다시 몸이 회복되었던 생각이 났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2010년 봄 경춘선 전철이 개통되기 전 마석역에서 축령산 지나 수동골 끝자락 산속 깊숙이 있는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입원당시 식도 정맥류로 목에서 피가 자주 나왔고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했는데 간 부위는 수시로 송곳으로 찌르는 통증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침상에 누워 자려고하면 왼쪽 가슴과 어깨가 조여 들어 바로 누워 잘 수 없어 새우잠을 자야만 했었다.
음식을 먹지 못해 영양부족으로 빈혈이 너무 심했지만 병원에서 나오는 볶은 곡식을 한주먹가지고 나와 매일 10미터 씩 걷다 쉬었다를 반복하면서 물 없이 씹어 먹으며 힘들어도 걸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책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나 병실 밖으로 나와 산책길에 볶은 곡식만 4개월간을 먹으면서 매일 조금씩 걸으면서 몸이 차차 회복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몸이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후에도 간수치가 정상보다 20배 이상 너무 높아 어지러워 또 다시 몇 달 동안 걷지도 못할 때도 있었고 어떤 때에는 고열로 몸이 불덩이가 되어 의사는 본 병원으로 가라고 했지만 야간에 온열 체험실 직원의 도움으로 온몸을 얼음찜질로 식혀 큰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
어려운 고비를 몇 차례 넘기고 암환우들의 포토테라피 사진 봉사를 통해서 그 기쁨으로 기적같이 회복이 되었지만 면역력이 약해 독감으로 겨우내 고생을 했고 합병증인 고혈압과 당뇨가 심해 머리와 뒷목이 조여들고 눈뜨기 힘들 정도로 힘이 들어 진단서를 발급받아 또다시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수동으로 파면 물이 마를 수 있어요’
작년 모금활동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회원들은 나의 건강을 생각해서 송년 회원을 위한 감사페스티벌 우물파기 기금마련 행사를 모두 반대를 했다.
잠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주일 동안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귓전에 ‘수동으로 파면 물이 마를 수 있어요’ 하는 말이 귓전에 멤돌며 마음에 걸렸다.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사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다시 회원들에게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고 말하고 져스터스에게 2달 정도 더 시간을 달라고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그렇게 공헌을 해야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포기를 못할 것 같아서였다.
주변에는 지혜롭지 못하다고 여러 차례 말려도 결코 중단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져스터스선교사의 꿈이 나에게는 꿈 너머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사명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단을 하고 적극적으로 모금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더 많이 만나고 모금활동을 해나갈 수록 주변에 가까운 지인과 친구들이 반대가 가장 심했다.
너 몸이나 돌봐라~
한국에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다~
우물은 다른 곳에서도 많이 한다.
네가 나서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판 새길 돈으로 우물파기 기금에 보태라~~
바벨탑을 쌓지마라~
동정심으로 구걸하지 마라 ~
그 돈이면 너를 위해 써라~
더 심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거라 생각하며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었다.
그러나 우간다에서 가끔 보내주는 익숙해진 사진속의 아이들이 생명수 우물이 파져 물을 마시는 장면이 영상이미지로 생생하게 떠올라 결코 중도에 포기할 수 가 없었다.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되겠지만 비난받기를 선택했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주시고 삶의 의미를 부여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했다.
“여행에 참여해도 기부가 됩니다.”
올 봄 공동체 행사로 우간다 우물파기 기금마련 행사인 “여행에 참여해도 기부가 됩니다.” 양구군 곰취체험과 금강산 길목 두타연 트래킹 희망나눔기차여행을 다녀왔다.
2011년 에덴요양병원 입원 당시 문학 치유반 원귀옥지도교수님 주관으로 마석역에서 암환우를 위한 시,사진 전시회를 3개월간 진행되었다.
전시회 기간중 코레일 동부본부 권택원역장의 도움으로 암투병중인 환우들과 1004클럽 재능나눔 연주 봉사자들과 함께 화도읍 주민을 위한 거리음악회를 마석역에서 진행을 했다.
권역장은 암환우을 위한 추억만들기 힐링여행도 많은 도움을 주었고 2013년 봄부터는 1004클럽 공동체의 희망나눔기차여행으로 회원가족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는 공동체 행사로 단체여행을 해오고 있다.
올 봄 2회차 양구군 기부여행에 소비연국사프 회원들 우물파기 기금마련에 동참해주었다.
나눔 여행을 통해 아프리카 우간다 생명수우물파기 기금마련행사를 여러 회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눔의 행복을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코리아 맘의 나라. 코리아 파파의 나라 ”라고 부른다.
올 4월 져스터스 선교사는 우간다 키우무루학교에 부모 없는 아이와 장애인 아이들에게 몇 년째 매달 고정적으로 후원금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보내줘 감사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우리는 누가 도와줘 학교도 다니고 이렇게 공부를 할 수 있느냐고 물어 너희는 코리아에서 도와주고 있어 아무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해 아이들은 한국을 “코리아 맘의 나라, 코리아 파파나라 ” 라고 부른다 고했다.
매월 보내주는 고정 후원금으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선정해 신발, 장화 등을 전달해 주기도 하고 어느 때는 밤에도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름 전등을 전달받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와 친척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메시지 캡처해 사진과 함께 보내오기도 했다.
신학기에는 책가방과 학용품을 받고 찍은 사진들을 보내왔고 최근 우물파기의 일정을 통보해준 후 아이들이 학교 언덕 풀밭에서 뛰놀고 선생님과 함께 학교 앞 등교길을 가꾸는 사진과 교실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공부하는 장면사진들을 보내왔다.
“후원금이 끊어져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져스터스는 이제는 “후원금을 끊어져도 이제는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아이들 마음속에 사랑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이상 잘 못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져스터스는 영어도 유창하지만 14년전 어눌했던 한국말도 이제는 너무 잘한다. 지난번에는 고사성어를 하나 알려주면서 “천고우행”이란 뜻을 알겠냐 묻기도 했다.
(천):1004클럽이 (고):고생하면 (우):우간다가 (행):행복해요 라고 해 한바탕 웃었다.
올 4월 말 다시 수동식에서 기계식으로 바꿔주기로 약속하고 회원들도 더 적극 동참해 주기 시작했다.
천사플러스(주) 천사가게 임하리대표는 회원들에게 쓰지 않는 옷과 생필품 등을 기증받아 바자회를 열어 기금마련에 적극 동참해 주었다.
천사가게의 오픈이 알리자 옷을 걸 수 있는 생산자협의회 엘리시아 행거 제조업체 구명화 사모님은 회원들이 옷장에 모셔두었던 사계절 옷들도 모두 걸 수 있게 행거를 넉넉히 기증해 주었다.
“생명수우물파기 기금마련 1004클럽 희망나눔콘서트”
후반기 첫 기금마련행사를 석촌역 송파여성회관에서 아프리카아동돕기 1004클럽 희망나눔콘서트를 “아프리카 우간다 져스터스의 꿈” 이란 주제로 작년 속초시 후원 암환우 콘서트 이후 올해 첫 공동체 기금마련 행사로 모처럼 회원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만들어 더 의미가 있었다.
또한 이번 행사는 사회자와 출연자 모두가 스스로 아프리카 우간다 학교 우물파기 행사에 동참해주었다.
이번행사에 여러 봉사 단체 대표들도 자리를 했지만 수동골 암환우들의 봉사처인 수동 입석리 장애인 생활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두리원 섬마을소녀 김선숙원장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만큼은 아프리카 아동 돕기에 동참하고 싶다고 극구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들과 함께 회비를 내고 참석하고 싶다며 행사 전에 미리 후원계좌에 입금을 시켜줘 더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
나눔이 곧 행복입니다.
이번 생명수우물파기 기금마련은 120명 후원자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7월 말 현제 현재 100명 정도가 동참했고 8월22일 출국해서 8월24일 현지에 기계식우물파기 공사가 착수된다.
일주일 정도 공사로 우물이 파지면 후원자들의 감사의 뜻을 동판에 새겨 아이들이 커서 더 어려운 이웃나라를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사진과 영상에 담아 보름동안 미션수행을 마치고 돌아올 예정이다.
●아프리카 우간다 키우무루 생명수 우물파기
명예의 전당 120명 후원자 접수중입니다.
사랑의 주전자
찰 리
까칠한
대지에
물을 뿌려야지
나눌수록
늘어나는
꽃송이들
비울수록
무성하게
피어나는 꽃들
지구 한 모퉁이
사랑은 돋아난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 찰리
꽃은 피어있고 싶으나 떨어지고
나무는 푸르고 싶으나 낙엽지네
돌은 머무르고 싶으나 모래가 되고
사람은 영원하고 싶으나 죽음이 있네
세상 만물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네
변하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뿐
영원을 주관하시는 오직 한분
그와 함께 하려하네
포토테라피스트 찰리
010-8033-1472
■ 아프리카 우간다 져스터스의 1004PD 꿈
▪ 천사가게 방문해 "우간다의 꿈" 인터뷰 동영상
● 1004클럽 홍보대사 김민정탈랜드
[단체명]
한국유아용품생산자협의회
천사플러스㈜천사가게, 올리브㈜
코레일동부본부권택원역장
전남순천선교회, 충현스리랑카선교2팀,
강동크리스토퍼 리더십59기,소비연 국사프
수원크리스토퍼 리더십,1004클럽 전남본부
희망과 감동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1004클럽
[1004 의미]
⍥1004는 천사라는 소리가 주는 의미와 더불어 숙자 1004가 가지는 특별한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1004개의 사랑나눔프로젝트
▪1004명의 프로젝트 디자이너(1004PD)
▪1004명의 재정후원 서포터즈( 1004FD)
1004나눔 학교 나눔 시스템을 통해 1004PD을 발굴, 육성하고 있습니다. 추계 1004PD 워크숍이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함께 참여해주세요~~
<1004클럽 나눔 공동체> www.1004clu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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