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산나교회는 어려운 가정과 미자립 교회를 돕는 긍휼 사역을 1년 넘게 하고 있다. 교인들은 매달 10곳이 넘는 가정과 교회를 찾아가 낡은 집과 예배당을 정비한 다음 후속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은 교인들이 지원 가정집에 가서 도배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호산나교회) |
부산 호산나교회 교인들 10여 명이 교회 인근에 사는 한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이 노인은 구청에서 매달 9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아 지냈고, 딸이 간간이 보내 주는 용돈으로 관리비를 해결했다. 집은 20년 전 입주 당시 상태 그대로여서 내부 환경은 낡고 열악했다. 교인들은 도배를 하고, 장판을 새로 깔고, 부엌 찬장과 형광등을 교체해 집 안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이 노인은 삶에 활력을 얻었다.
호산나교회에서 진행하는 '긍휼 사역'의 한 모습이다. 긍휼 사역은 매달 10~15개 정도의 어려운 가정의 낡은 집을 수리하거나 정비하고, 각 가정 상황에 맞게 후속 지원을 하는 활동이다. 교인들은 교회 인근이나 농어촌 지역 교회의 예배당도 보수해 주는 등 미자립 교회도 돕고 있다. 이 사역은 2011년 5월 교회에 부임한 홍민기 목사가 시작했다.
홍민기 목사는 청빙 투표에서 97.7%의 찬성표를 받아 부임해 2년간 목회에 매진했다. (관련 기사 : 호산나교회, 홍민기 목사 담임목사 청빙 결정) 2년 뒤인 올해 6월 30일 교회 위임목사를 확정하는 투표에서는 찬성 5247표로 투표 참가자의 98.5%의 지지를 얻었다. 홍 목사는 이제 담임목사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것은 홍 목사가 그동안 교인들과 쌓은 신뢰의 열매요 긍휼 사역과 같은 나눔을 실천한 노력의 결실이다.
▲ 홍민기 목사는 2011년 호산나교회 후임으로 청빙받고 난 뒤 2년 만에 담임목사로 확정됐다. 그동안 교회에서 나눔의 목회 철학을 실천에 옮긴 그는 대형 교회 목회와 사역을 향한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
호산나교회에 오기 전부터 홍 목사가 유지했던 목회 철학은 '나눔'이었다. 교인 수가 1만 명 정도 되는 교회에서 나눔 사역은 빚진 자의 마음이 담겼다. 교회는 긍휼 사역에 1년 예산의 10% 정도를 쓰고 있다. 일회적으로 집수리만 하고 사역을 끝내지 않고, 일자리 알선을 하고 생활비·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미자립 교회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홍 목사의 아버지가 미국에서 힘겹게 목회한 것이 그 배경이 됐다. 홍 목사는 12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해서 아버지의 고생스러운 목회를 보고 자랐다. 힘겨웠지만 인내하며 끝까지 목회의 길을 걸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미자립 교회 지원 사역을 낳았다.
홍 목사는 과거에 대형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미국에 있을 때나 한국에 와서도 개척 교회에서 목회했기 때문이다. 홍 목사가 호산나교회에 온 지 2년이 흘렀지만, 대형 교회 목회와 사역을 향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교회 일부 대형 교회들이 목회자의 비리 행위나 분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느끼는 책임감도 크다. 7월 6일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와 대화했다.
- 2011년 호산나교회 후임으로 청빙받고 난 뒤 2년이 지나서 위임목사가 됐다. 지난 6월 30일 공동의회에서 위임목사로 확정된 다음 마음이 다를 것 같다.
"전체 1만 명 정도의 교인들 중 5321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98.5%(5237명)가 찬성했다. 교인들의 열망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교인들의 성숙함도 느꼈다. 홍민기라는 사람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한 것이 아니다. 교인들 대부분이 교회의 발전 가능성을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한 목회자를 우리 교회에 보내 주셨다는 믿음을 품었기 때문에 찬성표가 많이 나온 것이다. 1.5%의 반대표도 소중하다. 교회에 대한 걱정을 품고 투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 이들 앞에서도 좋은 담임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 2년 전 청빙 당시 97.7%(4952명)가 찬성했다. 그때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는데, 2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찬성이 높았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는 담임목사 자리가 한참 비어 있다가 2년이 지난 뒤 후임을 청빙하기로 결정한 것이어서 찬성표가 높게 나온 것이다. 누가 왔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교인들 안에 담임목사에 대한 열망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잘해서 찬성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인들 안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동안 교인들과 정도 많이 들었다. 교인들과 만나는 기회를 넓히고자 했다. 담임목사실의 문턱을 낮췄다. 청년들이나 교인들이 담임목사실에 드나들 수 있게 해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자 했다.
매주 목요일에는 항상 교인들을 찾아갔다. 찾아가는 목회를 하려고 노력했다. 일대일 심방은 아니었지만, 10개 정도의 다락방(지역별 소모임)에 갔다. 교인들과 밀접하게 만나면서 건의 사항도 듣고 쓴소리도 귀담아 들었다.
또 내가 교회에 부임하면서 이웃을 돕는 긍휼 사역을 시작한 것이 교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교인들이 내부 일을 주로 하다가 외부 사역에 참여하면서 자긍심을 키웠고, 교회의 미래에 대해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한다."
지속성 강조한 긍휼 사역, 해외 선교, 차세대 양육
▲ 호산나교회는 해외 선교에 대해 전략을 다시 짰다. 잠깐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몇 개 나라와 도시를 정해서 앞으로 20년간 선교지 지원 사역을 지속할 계획이다. 사진은 교인들이 단기 선교 여행을 가서 현지에 필요한 우물 파기 사역을 한 모습. (사진 제공 호산나교회) |
- 호산나교회에 와서 중점을 두고 추진한 사역이 있다면.
"긍휼 사역, 해외 선교, 다음 세대 양육 등이 교회의 3대 비전으로 정한 사역이다.
긍휼사역위원회를 만들어 1년 넘게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구청과 시청에서 추천받은 가정과 교회에서 실사해서 선별한 가정을 돕는다. 매달 10~15곳에 가서 도배, 장판·싱크대 교체 등 집수리 활동을 하고 있다. 후속 활동으로 가정별 상황에 알맞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거나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에 관심을 두고 지원할 뿐, 교회에 나오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교회 인근이나 농어촌 지역에 있는 미자립 교회도 돕고 있다. 교인들이 예배당 내부와 사택을 수리하거나 미술인 선교회 교인들이 벽화를 그려 꾸미기도 한다. 작은 일이지만 미자립 교회 목회자에게 힘겨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고자 한다.
매달 평균 300명 정도의 교인이 긍휼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부부터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함께한다. 한 집이나 교회에 10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방문한다. 긍휼 사역은 중독성이 있다. 타인을 돕는 활동은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은 계속하게 된다. 교인들은 이 사역을 통해 기쁨과 보람을 누리고 있다.
긍휼 사역에 들이는 재정은 교회 1년 예산의 10% 정도 차지한다.
선교에 대해서는 전략을 다시 짰다. 잠깐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한다. 몇 개 나라와 도시를 정해서 앞으로 20년간 선교지 지원 사역을 지속할 계획이다. 장로들과 함께 1년에 두 차례 선교지를 탐방하면서 적정한 곳을 찾고 있다. 교인들은 올해 900명 정도가 국내외로 선교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다.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차세대 지도자를 양성하는 학교도 세울 계획이다. 학교 건립을 위해 교회 장로·교역자들과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 홍민기 목사는 12세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해서 아버지의 고생스러운 목회를 보고 자랐다. 그래서 홍 목사는 미자립 교회를 돕는 사역에 나섰다. 힘겨웠지만 인내하며 끝까지 목회의 길을 걸은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미자립 교회 지원 사역을 낳았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
- 어린 시절 아버지가 미국 이민 교회에서 어렵게 목회하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고, 나중에 목사가 된 후 교회를 개척해 작은 교회 목회를 경험했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대형 교회에서 목회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나.
"대형 교회에서 목회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미국에서도 한인 2세들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고, 서울에 와서도 교회를 개척했다. 선임 목사가 20여 년을 목회한 큰 교회의 후임이 되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정말 힘든 목회를 하셨다. 하지만 어려운 와중에도 철저하게 정도를 걸었다. 교회에 어떤 문제가 터지면, 자기 잘못도 아닌데 사임하고 나온 경우도 있었다. 사역 현장에서 박탈감도 많았을 테고,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고생하며 목회한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셨다는 마음이 아버지에게 있는 것 같다. 아버지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다시 목회를 한다면 더 감사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겠다. 문제보다는 좋은 것을 많이 보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호산나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아버지의 목회가 소중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다. 큰 교회 목사는 작은 교회 목사보다 누리는 것이 더 많다. 물론 호산나교회에서는 합리적으로 목회자 사례비를 책정하고 있지만, 차나 사택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 아버지와 비슷한 목회자들을 지원하는 사역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어려운 환경에서 평생 끝까지 목회하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다. 또한 사모에 대한 지원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내가 다 사모여서 그런지 사모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농어촌 교회 사모들이 위로를 얻고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올 가을에 펼칠 계획이다."
- 교회에서 2년간 목회하면서 실수했던 것이나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점이 있나.
"수요 예배에서 옷도 편하게 입고 말도 자유롭게 하는 편이다 보니까 혹여나 이것 때문에 상처를 받은 교인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인들이 나에 대해 특별히 피드백을 해 준 것은 없지만, 상처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대형 교회에서 목회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데, 장로들이나 교역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형 교회, 구제 넘어 사회적 책임에 눈 뜬다면
- 호산나교회가 대형 교회로서 자기 교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부산 지역 교계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바로 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 교회를 올바로 세우는 것이 부산 지역과 한국교회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교회답게 나눔을 실천하고, 신도들이 정말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개척 교회들에 교인들을 단기간 파송해서 전도 활동을 돕게 할 생각이다.
나눔의 목회 철학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우리 것을 우리를 위해서만 쓰지 말아야 이웃을 도울 수 있다. 교인들이 자원해서 활동하니까 1000만 원짜리 공사를 200만 원만 들이면 할 수 있다. 이것이 나눔의 원리다.
미자립 교회들을 지원하면서 자기 아버지를 바라보며 속상해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이 목회자 자녀들과 목회에 소명이 없다고 여기며 절망하는 목회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 예배당을 수리하고 깔끔하게 꾸몄다고 해서 교인들이 오는 건 아니지만, 목회자들이 다시 일어설 마음을 품기를 바란다. 나는 이런 일에 한 푼이라도 더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김종희 대표는 홍민기 목사에게 교회가 구제와 함께 사회적 책임에도 관심을 둘 수 있도록 교회에 사회선교팀 같은 조직이 있어도 좋겠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 소외, 집값 인상 문제, 청년 실업 등의 사회문제를 고민하며 교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
- 긍휼 사역의 내용이 좋긴 하지만, 긍휼이라는 표현이 우리가 가진 것을 우리보다 못한 이들에게 베푸는 느낌이 묻어난다. 자칫 잘못하면 더불어 잘 사는 사회 구조를 향한 관심보다는 봉사에 치중된 사역이 되지 않을까. 교회에 사회선교팀 같은 조직이 있어도 좋겠다. 해외 선교 여행도 있지만, 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선교적 과제가 있다. 한국에 외국인이 150만 명 정도 들어와 있고, 이 중 70만 명 이상이 노동자다.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긍휼 사역을 통해 이들을 도울 수도 있지만, 구조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교회도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교인들 안에서 긍휼이라는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 나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사랑의 집짓기 활동을 하는 '해비타트'도 그 뜻을 찾아보니까 그냥 '거주지'라는 뜻이더라. 우리도 근사하게 보이는 단어 말고 다른 이름을 지어야겠다는 필요를 느낀다.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활동은 긍휼 사역에 포함되어 있다. 교회에서 30~40분 거리 안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근처에 녹산 공단이 있는데, 여기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거기에서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교인들도 많이 있다. 이들을 지원하는 사역은 우리 교회의 숙제이다.
외국인들을 위해 6개 나라의 언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6개 나라의 본토 사역자들을 교회로 불렀다. 그래야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를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애환이나 어려움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외국인 가정 아이들이 선교원에서 양육받도록 도울 준비를 하고 있다.
이 밖에 다른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두고 있다. 전셋값 인상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누구에게 전셋집을 내줬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것인데, 전셋값 인상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사회문제에 대해 교인들과 공부해 가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 같다.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려고 한다.
청년 실업 문제도 심각하다. 부산의 청년 실업률이 굉장히 높다. 괜찮은 젊은이들이 부산에 남아 있으면 좋겠지만, 취업을 위해 서울로 가려고 한다.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과제다. 취업 문제는 교회가 자체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지역의 구청장들과 만나 해결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