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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시대 정삼품 상(上) 이상의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을 통틀어 이르는 말.
예전엔 망건에 관자라는 고리를 달았는데, 이들의 관자는 금이나 옥으로 만들어서
색이 변하지 않았다. 여기서 유래해 어떤일이 조금도 염려 없거나 확실할 때 ‘떼어노은 이것’
이라 말한다 : 당상(堂上)
2.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정치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이 사람은
서재필(徐載弼)과 독립협회(獨立協會)를 조직하여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했으며,
1927년엔 신간회(新幹會)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 이상재(李商在)
3. 조선 말기의 화가로 근대 회화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 필치가 호방하고 대담하면서도
소탈한 맛이 풍겨 안견(安堅), 김홍도(金弘道)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일컬어진다 :
장승업(張承業)
4. 1905년 11월 20일 을사조약(乙巳條約)의 부당성을 성토한 장지연(張志淵)의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으로 80여 일간 정간된 신문은 : 황성신문(皇城新聞)
5. 일본은 매년 8월 6일과 9일 이 두 도시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원자폭탄 공격을 받은 일본의
이 두 도시는 : 나가사키. 히로시마
6. 제2차 세계대전 종반인 1945년 2월 소련 흑해 연안의 한 도시에서 미국·영국·소련의
수뇌들이 전후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회담.
이 회담에서 소련군의 한반도 진주를 허용하였고, 한국 분단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얄타회담(Yalta Conference)
7. 조선시대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이곳은 간쟁(諫諍)하고 정사(政事)의 잘못을 논박(論駁)하는 직무를 관장한다.]
조선시대 이곳과 사헌부(司憲府)를 가리켜 양사(兩司)라 했는데,
임금의 처사에 대해 충고하고 논의하는 일을 담당한 이 관청은 : 사간원(司諫院)
8. 고려 인종(仁宗)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李資謙)은 영광군에 있는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이것을 먹어 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한다.
그리고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것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굴비
9.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 나라가 명주, 즉 강릉의 정동방향에 있으며,
신라 지증왕(智證王) 때 이사부(異斯夫)의 공격으로 신라에 항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곡식으로 바치기로 했다‘고 기록돼 있다. 삼국시대 울릉도에 소속돼 있던
이 나라는? : 우산국(于山國)
10. 감사원(監査院)에서 공무원들의 위법한 업무처리나 비위 사실을 조사하는 일.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에서 탐관오리를 적발해 책임을 묻는 일을 도맡아 하던
정6품 관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 감찰(監察)
11. 왕과 왕세자가 곤룡포(袞龍袍)를 입을 때 쓰던 익선관(翼善冠)의 뒤에는
이 곤충의 날개 모양으로 된 작은 뿔이 2개 달려있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이 곤충의 5덕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주로 여름에 활동하는 이 곤충은 : 매미
12. 조선시대 영조(英祖)는 왕비를 간택할 때 여러 여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깊은 것’과 ‘가장 최고의 꽃’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한 여인이 “사람의 마음이 제일 깊고, 백성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 꽃이 으뜸”
이라고 했는데, 훗날 정순왕후(貞純王后)가 된 그녀가 말한
‘천하를 따뜻하게 만드는 꽃’은 무엇인가 : 목화(木花)
13.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매를 길렀으며, 고려시대엔 매를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국가기관인 응방(鷹坊)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면 사냥용 매를 총칭하는 옛말로
‘한국의 푸른 매’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 해동청(海東靑)
14. 다음에서 잘못 짝 지어진 것은?
[평강공주(平岡公主)와 바보 온달(溫達), 노국공주(魯國公主)와 의자왕(義慈王),
선화공주(善花公主)와 무왕(武王), 낙랑공주(樂浪公主)와 호동왕자(好童王子)] :
노국공주와 의자왕
15. 조선이 개국하기 전 이방원(李芳遠)이 지은 시조.
고려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진심을 떠보고 그를 회유하기 위하여
읊은 시조로, 포은이 이에 답한 것이 <단심가(丹心歌)>이다 : 하여가(何如歌)
16. 열세살에 군주가 된 조선 성종(成宗)은 ‘늘 세종처럼’을 염두에 뒀다.
특히 세종(世宗) 때의 대표적인 학문연구기관이었던 집현전(集賢殿)의 기능을
이 관서로 통합시켰는데, 조선시대 언론을 담당한 삼사(三司) 중 하나로 궁중서적의 관리,
국왕에 대한 정책자문, 학술연구 등을 담당했던 이 기관은 : 홍문관(弘文館)
17.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의 로마시대 도시 유적인 이곳은 매년 200여만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명소이다.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인해 화산재 속에 묻힌 이곳은 : 폼페이(Pompeii)
18. 백제 제13대 왕. 비류왕(比流王)의 아들. 칠지도(七支刀)는 이 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철제칼로 백제가 일찍부터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했음을 보여준다.
이 왕은 백제에 복속하지 않았던 마한(馬韓)의 잔존세력을 정복하고 고구려(高句麗)와
대결해 고국원왕(故國原王)을 전사시킬 만큼 국력을 막강하게 다졌다.
백제의 최전성기를 연 이 왕은 : 근초고왕(近肖古王)
19. 고려말과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 이곳에서 유학을 공부하는 유생(儒生)들은
당대의 정치현실에도 매우 민감하여 국정에 불만이 있을 때에는 집단상소,
권당(捲堂:수업거부), 공관(空館:동맹휴학)이라는 실력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생원이나 진사시에 합격한 양반 자제들에게 입학을 허가했다 : 성균관(成均館)
19. 경복궁(景福宮)의 정문인 이것은 새로 건국한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직후인
1395년 처음 세워졌다. 하지만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불에 타버리는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2006년 12월 복원이 시작돼 3년 8개월 만인 지난달 옛 모습을 되찾았다 : 광화문(光化門)
20. 다음은 <조선왕조실록> 중 일부이다.
[세종대왕께서 정초 경복궁 경회루 앞뜰에서..
(중략).. 지그시 눈을 감고 이 종교의 원로가 낭송하는 꾸란 소리에 빠져 계시더라.]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한반도에 정착해 살던 이 종교 지도자들은 궁중하례의식에
정례 참석할 만큼 우리문화에 깊이 들어와 있었는데, ‘신에게 복종한다’는 뜻의 이 종교는 :
이슬람교
21. 한국전쟁 당시 연인원 5천여 명이 참전한 남미 유일의 6.25전쟁 참전국으로
지금도 매년 4차례의 한국전 참전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 콜롬비아(Colombia)
22. 1308년 고려 충렬왕(忠烈王)이 태복감(太卜監)과 태사국(太史局)을 병합하여 만든
천문·기상관측기관인 이것은 세계적으로방대하고도 정밀한 천문기록을 남긴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계승된 이 기관은 예조에 속하게 되는데, 세종(世宗) 때
관상감(觀象監)이라 개칭된 이후에도 꾸준히 관상감의 별칭으로 불려왔다 :
서운관(書雲觀)
23. 800년경 레오 3세가 시작해 대대로 교회운영의 재원으로 상품화했던 증서로,
15세기 말 대량으로 발행해 루터의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종교개혁의 실마리가 되었던
이 증서는 : 면죄부(免罪符)
24.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고종(高宗)이 60세에 낳은 막내 딸. 식민지에서 태어난 왕녀이기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가야했고, 또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했다가 정신질환으로 이혼을
당하는 등 순탄치 못한 일생을 보냈다 : 덕혜옹주(德惠翁主)
25. 고구려 제20대 왕(재위 412~491).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맏아들.
도읍을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옮기고 적극적인 남하정책으로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으며,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사로잡아 죽였다 :
장수왕(長壽王)
26. 춘추시대 주나라 환왕(桓王)과 장공(莊公)과의 싸움 중 장공이 쓴 군사작전에서 유래한 말.
‘실로 꿰매는 방책’이란 뜻으로, ‘빈 곳이나 잘못된 것을 임시변통으로 보완하는 것’을
이르는 말 : 미봉책(彌縫策)
27. 고려시대 최충헌(崔忠獻)이 설치한 무신정권의 최고 정치기관.
교정소(敎定所)라고도 한다 : 교정도감(敎定都監)
28.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 신종(神宗) 때 최충헌(崔忠獻)의 사노(私奴)로
노비해방을 위해 난을 일으키려다가 체포되어 죽은 이 사람이 남긴 말이다 : 만적(萬積)
29. 조선 영조(英祖)때의 학자. 호는 성호(星湖). 유형원(柳馨遠)의 학풍을 이어받아
실학(實學)의 대가가 되었으며, 특히 천문, 지리, 의학, 율산(律算), 경사(經史)에
업적을 남겼다. 관계에 나가지 않고 저술과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저서에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이 있다 ; 이익(李瀷)
30.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신 왕가(王家)의 사당 :
종묘(宗廟)
31. 조선왕조 건국 때 관악산(冠岳山)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광화문(光化門) 옆에 세운
석수(石獸).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판단하여 안다고 하는 상상의 동물.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에 뿔이 있다 : 해태(獬豸)
32.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말을 탄 고관들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기 때문에 서민들은 이 같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길 양쪽에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다니는 습속이 생겼다. 여기서 유래한 이 길의 이름은 : 피맛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