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의원 외과의사 충남의대 필내음 동인
제8회 보령수필문학상 금상 수상(2012) 제12회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2012)
calne@hanmail.net
봉합수술
김대겸
종합병원시절, 외과의사인 나는 위와 장을 자르고 붙이는 큰 수술을 했었다. 지금은 작은 의원을 개업한 지 7년, 동네의 아저씨 의사가 된 나는 감기나 배탈 같은 소소한 병을 진료하지 그런 배를 가르는 큰 수술을 할 일은 없다. 간혹 작은 상처를 꿰매는 일만 있다. 그래도 아주 드물게 큰 봉합을 해야 할 때가 있기는 있다. 비록 우리 몸에 난 상처는 아니지만…….
방바닥에 낡은 범퍼침대가 있다. 작은아들 녀석이 태어나고 구르기를 시작할 무렵, 아내가 아이를 위해 들여놓은 것이다. 나무는 없고 매트리스와 쿠션으로만 되어 있는 일종의 간이침대이다. 그것은 저렴하지만 아주 유용하다.
아이가 자라서 어린이집에 다녀도 아직 잠자리 역할을 하고 있다. 자려면 꼭 이 덩치 큰 녀석 안으로 들어가 눕는다. 놀이터 역할도 해준다. 엄마 아빠의 침대 위에서 그 위로 뛰어내리기 연습을 하곤 한다. 형과 같이 있으면 두 남자 아이의 장난은 더 짓궂다. 형제가 그 위로 점프를 하는 것은 물론, 베개나 장난감을 던지는 각종 장난이 풍성하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장난은 점점 심해진다. 해가 가고 온갖 수난에 군데군데 삭은 곳, 닳은 곳, 떨어진 곳,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이 터져버렸다. 퍽!……. 외마디비명에 그의 배가 터져버렸다. 방안에서 형제의 멀리뛰기 디딤판 역할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쿠션을 세우기 위해 묶었던 끈이 같이 찢겨 터지고 말았다. 침대 벽은 발랑 뒤로 자빠져 있다. 비명소리에 들어온 호랑이 할머니에게 사고를 들켜버렸다.
“누가 그랬어!”
형과 동생이 서로 눈치를 본다. 배의 옆구리가 한 뼘 가량 툭 터져있다. 삭은 헝겊천이 너덜너덜 붙어있다.
“아휴, 이 녀석들 또 일거릴 만들었네! 또 만들었어!”
직장에 다니는 아내를 대신해 같이 사시면서 집안 살림에 아이들까지 봐주고 계신 어머니다.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긴 했지만 아이들을 누구보다 우선 생각하신다. 하지만 매사 깔끔한 성미의 어머니에게 아이들이 커갈수록 늘어나는 가사다. 직접 꿰맬 일거리가 하나 더 는 걸 생각하시니 부아가 오르는가 보다. 장난을 알아서 말리지 않았던 우리 부부에게 화가 나신 것인지, 개구쟁이들을 혼을 내시는 것인지, 아니면 손자의 보금자리인 낡은 침대를 속으로 진정 아끼셨던 건지, 어머니가 역정을 내신다.
“어머니…….”
아무래도 화가 난 어머니의 눈치에 주방에서, 퇴근 후 잔일을 하던 아내가 진화에 나선다. 의도와는 어긋나버리지만…….
“어차피 낡아서 그 헝겊 침대는 버리고 바꿔야 해요. 다 해지고…….”
“뭬야?”
순간 분위기가 싸하다. 평생을 알뜰절약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이다. 아들과 며느리 대신 당신의 개인사도 제쳐놓고 계신 어머니. 어머니 대신 고치리라 나섰다면 좋았으련만 망가졌다고 아예 버릴 생각을 하다니 그런 며느리에게 서운하기도, 화가 나기도 하신 모양이다.
아내의 말도 맞는 말이다. 얼마 전 그 낡은 범퍼침대를 바꾸기로 나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참이었다. 꿰매자는 어머니, 바꾸자는 아내. 모두 일리가 있었지만 두 여인의 갈등이 터진 순간이다. 싸구려 낡은 침대 때문에…….
“잠깐! 잠깐 있어 봐요.”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났다. 내가 나서서 한번 꿰매 보리라. 바늘통을 찾으러 간다. 서랍 어디에 있었더라? 사실 집에서 바느질을 해본 적은 없었다. 큰 수술에 손을 놓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나는 외과의사 아니던가. 서랍장 구석에서 바늘통을 찾아 바늘귀에 실을 꿴다. 올이 몇 겹으로 터져 너덜거리고 벌어진 상처가 만만치 않다. 수술처럼 녀석의 터진 옆구리를 꿰매간다.
之자로 벌어진 곳, 川자로 갈라진 곳, 한 땀 한 땀 꿰매간다. 어느 한곳 벌어진다면 볼품이 없으려니와 제대로 힘을 받지 않을 것, 촘촘히 꿰매간다. 또다시 터지는 일이 없길 간절히 바라면서…….
내과의사도 아니고,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아마 외과의사니 바느질하는 모습이 그럭저럭 어울리는가 보다. 이 남정네를 내버려둔다. 솜씨가 궁금한지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흘끗흘끗 쳐다본다. 조금 전만 해도 냉랭했던 분위기의 두 여인이다. 힐끔 보고 싱긋 웃는 것이 지금은 오히려 신기하고 재미있는가 보다.
봉합부위가 까다롭고 결정을 빨리 내려야 했던 응급 수술이었다. 급히 바늘을 놀렸지만 다행히 봉합은 잘 이루어졌다.
“야! 아들, 잘 꿰맸네.”
처음 본 아들의 바느질 솜씨지만 어머니는 흡족하신가 보다.
“훗! 제법인 걸.”
아내도 마음에 드는가 보다.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에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비슷하게 할 줄 알았던 것이 다행이다. 벌어진 부위가 항상 이렇게 잘 봉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느질은 소박하지만, 화려한 디지털보다 더 값질 수도 있는 아날로그다. 옛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이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바느질로 깁던 것은 반드시 옷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쉬이 아물지 않던 상처를 봉합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범퍼침대는 봉합수술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도 생기가 돈다. 오늘도 가장은 집에서 기꺼이 바늘과 실을 잡는다. 스스로 바늘과 실이 되어도 좋으리라.
첫댓글 바느질 솜씨 제대로 발휘하셨네요.
문자적인 상처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도 봉합하실 수 있는 멋진 의사, 글쟁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개구쟁이 사내아이 둘 이면 집에 남아 나는 게 없지요, 멋진 바느질 솜씨로 집안의 작은 불화를 잘 봉합하셨습니다.
좋은 작품 볼 수 있길 고대합니다.
등단 축하드려요! 앞날에 문운이 창대하시길...
신인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환영합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따뜻한 환대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많이 알려주세요..^^
김선생님이 가지신 시간, 그 가능성이 무지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지면을 통해 그리고 이 공간을 통해 계속 따뜻하고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신인상 축하드립니다.
봉합수술하던 솜씨를 범퍼침대에게 생명을 다시 주시다니 바느질로 못하시는게 없군요^^.
바느질 솜씨를 발휘하신 작품 잘 읽었습니다.
자주 뵙길 바랍니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선생님이 꿰매신 것이 침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그것도 참 꿰매기 어려운 고부간의 마음을 봉합하셨습니다. 좋은 글로 자주 만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