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측정되는 노동의 가치와 삶으로 측정되는 노동의 가치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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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는 농업인들의 푸념을 심심찮게 들어왔다. 들인 자본과 시간과 땀, 그 투자에 비례하는 소득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안 되고, 가뭄이 들어도 안 된다. 병충해가 끊이지 않고, 때로는 정성껏 키운 농작물이 대풍이 되어도 가격 폭락으로 오히려 제값도 받지 못한 채 헐값에 팔 수밖에 없는 게 농업이다. 그래서 농사를 수익성을 목표로 계획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런데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사를 다섯 해 동안 지으면서 한 가지 귀중한 사실을 배웠다.
씨앗은 거짓이 없었다. 거름을 주고 정성을 들이면 그만큼 자라고, 돌보지 않으면 잡초와 병해가 먼저 자랐다. 내가 땀을 흘렸다고 해서 땅이 특별히 나를 봐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농부라고 해서 토지가 나를 특별 대우를 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농사는 내가 한 만큼, 그리고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돌려주었다. 그렇다, 농사는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게 나를 대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농사를 짓다 보면 겉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얼굴과 목덜미는 햇볕에 검게 그을린다. 손은 거칠어지고 허리도 굽는다. 도시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흙 묻은 옷이 부끄럽지 않다.
베네딕트 수도원 정신인 “기도하고 일하라”는 책 속의 글 한 줄이 내 생활 루틴으로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
흙에 씨앗을 묻고, 싹이 터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추수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법도 배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밭을 갈고, 씨 뿌리고, 김을 매고, 병충해를 살피는 것까지다. 그다음은 하늘과 땅의 몫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 영역이다.
그래서 농사는 나에게 기도와 닮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
농사를 수익성으로만 계산하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러나 노동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는 내 영성으로 계산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농업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아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농사짓는 일과 목양하는 일이 많이 닮이 있다. 그래서 농부와 목사가 하는 일의 패턴은 매우 비슷하다. 그러니 농부와 목사의 단어가 복합되는 것도 낯설지 않다.
그래, 조금 어리석어도 좋다.
베네딕토 수도원의 정신 ‘일하고 기도하라’는 노동의 영성을 흉내라도 내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겸손하고 진실한 삶울 살아갈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어리석음은 기꺼이 품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