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부작 건설족기업소설 : 저작권은 잭런던에 있음을 공지합니다. 80-3부
퍼플레인(Purple Rain)
出林 - 3편. (그들과 조우하다)
“여기가 역삼동 구. 현대산업개발 사옥인데...”
택시기사가 검고 화려한 대리석의 갑옷을 입은 우람한 건물 앞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가 스타타워인가? 상열이 대단하네!”
태규는 동공을 과장스럽게 크게 열며 입을 삐죽거렸다.
건물은 연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을 무수히 삼키고 토해내기 바쁘다.
야. 여기가 소위 잘나가는 한국의 경제중심지구나. 스타타워라....흠. 이름 재밌군.
갑자기 옆으로 검정 에쿠스 한 대가 키익- 다가왔다.
어느 틈에 갈색 유니폼을 입은 아가씨 한명이 또각또각 달려와 차문을 열었다.
우리 둘은 다소 놀라 뒷걸음치듯 슬쩍 비켜났다.
차에서 풍채 좋은 50대 남자가 기름기 번들거리는 얼굴을 내밀며 차에서 내린다.
차는 사라지고 그 남자는 거만하게 정문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태규와 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좃 두 아닌 게.
사람들이 흐르는 방향으로 따라 가니 승강기가 보였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면면이 고급스럽고 전문가집단 같은 이미지가 철철
흘러넘친다. 우린 무슨 까닭인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침묵을 지켰다.
내가 봐도 우리 몰골은 산티 그 자체다. 결국 우린 촌놈이었다.
승강기 땡~. 소리를 내고 19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반짝거리는 금박이 입혀진 회사 이름이 시야 전체를 덮어버린다.
‘Golden Gate Group'
‘Golden IT', '골든 건설’ ‘Golden Gate Holdings' ’Golden Investment' 등
얼핏 봐도 대 여섯 개의 자회사로 추정되는 작은 명패들이 즐비했다.
사무실 입구는 남북으로 나눠져 있었다.
모두 커다란 통유리 문으로 잠겨있었다.
‘용무가 있으신 분은 옆 버튼을 눌려주세요’
버튼을 눌렸다. 조금 후 단아하게 머리를 빗어 올린 늘씬한 여성이 등장했다.
그녀가 이름표로 보이는 사각 카드를 문 옆 어디인가로 갖다 대자 띵-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열렸다. 그리고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물었다.
“혹시, 최상열 사장님 친구 분이신가요? ”
“네 ..에..”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녀는 기다란 복도를 한참 지나 임원실 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작은 복도로
다시 들어갔다. 그 곳은 여러 개의 방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두 개의 문이 여닫이로
된 큰방을 열자 또 다른 공간이 나오면서 이 아가씨가 주인인 듯한 짙은 원목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책상 뒤로 ‘대표이사실’ 이란 명패가 붙은 문이 또 보였다.
먼저 그녀가 노크를 하고 그 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나왔다. ‘들어가시죠.’ 방긋 미소를 짓는다.
“어이! 광서 오랜만이다!”
상열이었다. 다비드의 용모는 그저 세월이 얹혀 약간의 초록 이끼만 보일 뿐,
예전 그대로였다. 나는 계속 말없이 투정부리듯 치이~ 치이~. 괴상한 소리만 내뱉었다.
조금 전 그 아가씨가 커피 잔을 들고 들어왔다.
상열이 비서인 그녀에게 ‘총괄부사장 및 부동산 쪽 임원들 사장실로 오라고
전해줘-한다. 그녀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나갔다.
“광서야. 이게 몇 년 만이냐.”
우린 꼬옥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태규와 상열이 악수를 나눴다.
상열에게 ‘너 알지? 1학년 때 니 안경 벗기고 기절한 놈’ 넌지시 기억을 떠 올려줬다.
상열은 익살스럽게 입을 한껏 벌렸다.
“야아~. 너도 인연이다. 이렇게 만나는 거보면”
“허허 그자!. 나도 그렇게 생각 한다”
태규가 동창임에도 긴장이 잔득 묻어있다 인연이라는 소리에 크게 웃는다.
“상열아, 자료 준비해 왔는데 볼래?”
태규가 다소 급했다. 내가 그냥 자료주고 천천히 하자-라고 말했다.
상열은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웃기만 한다.
그 때 문이 열리고 비서가 들어왔다.
“사장님. 다들 오셨는데요.”
상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 밖에서 요란한 목청을 울리며 누구랑 열심히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조용하더니 문이 열렸다.
동년배로 보이는 사내 세 명이 들어왔다.
‘어! 이게 누구야’ 난 멀끔히 쳐다봤다.
“아니, 이광서!”
“너, 우리 부대에 왔었던 이과 반 성태지? ”
다소 비만이지만 금테 안경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성태를 난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힘껏 악수를 나눴다.
‘어! 넌 2학년 때 우리 반 안학찬 같은데?...’
“너, 안학찬 맞지?”
키가 작고 여윈, 벌써 이마가 슬며시 넓게 드러난 안학찬 또한 금방 알 수 있었다.
“어. 맞다. 오랜만이네...”
이 녀석은 무슨 이유인지 목소리가 메말랐다. 자식 여전하네. 내성적인 녀석.
이건 원. 동창회도 아니고.. 헌데 공교롭게 서울대 동문들만 보인다.
나머지 한명은 정말 생면부지의 남자였다.
우리보단 서너 살은 많아 보이는 , 머리에 무스를 발라 깔끔하게 넘겨
어떻게 보면 차라리 우리 중 가장 대표이사의 직함이 어울릴 법한 느낌이었다.
그는 명함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송진호 라고 합니다”
명함엔, Golden Gate holdings 이사 송진호-라고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 명함이 없습니다...”
명함을 지갑 속에 넣으며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 뭘요. 정말 옥션이라는 경매 사이트에서 인기가 대단하시더라고요.
만족도 99%는 저도 처음 봤습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이 사람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옥션에서 장사치하는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나는 정보 출처자를 단정하고 상열을 바라봤다. 상열은 난감한 표정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송진호 라는 사람을 슬쩍 째려보았다. 그는 바로 입을 닫았다.
헌데, 성태라는 친구가 난데없는 멘트를 날렸다.
“야아~, 이광서 머리 염색에, 옷차림에 이제도 나이가 있는데. 뭐고 양아치도 아니고.”
일순 분위기가 쏴아-해지며 상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난 짐짓 광대 같은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이 자식 내 과거를 아는군!”
내가 세상을 사며 깨우친 건 그저 그런 유연함이었다. 본래 학삐리들이 그랬다.
상문이 입을 열었다.
“저, 태규야. 너도 알겠지만 투자는 우리가 리스크를 앉는다.
그 정돈 너도 알지? 우리 돈 준비되었다. 대신 넌 일정의 리베이트만 가져라.
만약 물품이 선정되면 무조건 일정 리베이트를 떼어 줄게.
단 조건이 있다. 너와 광서 사이도 존중하는 차원에서..
광서가 우리 일을 도운다면 프로젝트를 진행하자 “
나는 담배를 태우다 끔뻑 소스라쳤다. 뭐여. 지금 그 멘트는.
“광서야. 지금 인터넷 쇼핑몰 사업 한 달 순이익이 얼마냐?”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난데없이 일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밑도 끝도 없이.
“야~, 뭐 이래. 생각도 안했는데. 다음에 애기하자”
그 때, 담배에 불을 붙이며 성태가 입을 열었다.
“사실, 좀 급하긴 급하지. 어이 광서야, 농담은 아니고 좀 그렇다”
어!, 결단을 촉구하는 상열의 눈빛이 이상하다. 이글거리며 어둔 충혈이 보인다.
또 짧게 고민에 빠졌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는데. 사실 인터넷 쇼핑몰 때문에 재고도 아직 있고..”
상열이 말을 뚝 끊어버리고 들어왔다.
“재고 우리가 다 구입할게. 그리고 정 니가 판단이 어려우면 이렇게 하자.
월 천 만원 봉급으로 줄게. 우리 회사에 솔루션 개발 팀장으로 들어와라.
그리고 열흘 후에 태규와 함께 유럽으로 가라. 한 두어달 갖다와야 할거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난 순식간 혼란에 휩싸였다. 습관처럼 머리가 가려워졌다.
천만 원이면 사실 지금 벌려 놓은 장사보다 순이익으로 따지자면 서너 배 아닌가.
금전적으로는 파격적이다. 하지만 뭔가 내 능력이 과대 포장된 느낌이다.
그게 사실 두려웠다. 이 애들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
“태규야 넌 어쩔래?”
고개를 돌려 태규를 보았다. 태규는 다소 실망어린 표정이었다.
하지만 손해 볼 것도 아니기에 안하기도 그럴 것이다.
“난. 조.오.타...”
태규도 뭔가 갈팡질팡하는 투다. 말이야 좋다지만.
아무래도 쉽게 결정할 상황은 아니었다. 아내가 반대할 리는 만무하지만...
"며칠 말미를 좀 주면 안 될까?"
"그래, 그래라 대신 내일까지 결정해라. 질질 끌 문제가 아니다.
우리 회사도 로드 맵이 있기 때문에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 안내려가도 되지? 나중에 연락하면 술 한 잔 하자.“
태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주저할 것 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상열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 인터폰을 눌렸다.
'어, 르네상스에 방 하나 잡아줘' 하고 뚝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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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 말하는 호텔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그건 태규도 마찬가지였다. 태규도 그저 이익분의 분배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는데,
의외로 이렇다 할 댓구도 못하고 그냥 손을 든 셈이다.
그리고 이 번 프로젝트의 칼자루는 실상 나에게 맡겨진 셈이다.
시야 멀리 스타타워 꼭대기에서 거대한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음속에선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어쩌면 그저 그렇게 흘러갈 인생에
전환점이 될 것이란 희망이 마구 싸움질이다.
"광서야, 뭐 잘됐잖아. 나도 손해 볼 필요 없고. 너도 이번 기회에 날개 한 번 펴봐라“
태규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 했다.
"그래, 생각 좀 해보자. 집사람하고 의논도 해봐야하고..“
마음이 뭔가 알 수 없는 꿈틀거림 때문인지 마구 두근거린다.
그 때 태규가 핸드폰을 꺼냈다.
"어. 문석이. 어. 방금 나왔어. 지금 르네상스 호텔로 가는 중이야. 어디? 응. 광서도? 응. 알았다."
달칵 끊는다. 그리고 날 쳐다봤다.
"문석이가 좀 보잔다. 호텔로비에서 기다려 달래"
"잘됐네. 나도 할 말이 많은데..."
Summer move on .. 서울의 밤 공기가 무척 맘에 들었다.
그토록 무더웠던 여름은 이미 퇴장하였다.
태규는 집사람에게 내일 저녁에야 내려가겠다고 전화를 걸고 있다.
점점 머릿속이 정리되면서 동시에 어떤 묵직한 운명 같은 게 그 빈 공간을 채워가는 느낌이다. 나는 차창을 내렸다. 그리고 힘껏 호흡을 했다. 난 어쩌면 이 냄새를 사랑할 것 같다. 이광서 .이제야 출림(出林)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