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양 교수 /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혈액암 치료의 발전
금세기 들어 많은 새로운 암 치료법이 개발되어 암 환자의 장기 생존율은 물론 완치 가능성도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혈액암은 모든 암 중에서 가장 큰 치료 진전을 가져 온 분야이다. 이는 세포 성장속도가 빠른 암 일수록 치료효과가 큰 현대 항암 치료제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특히 고용량 화학요법을 가능하게 하는 조혈모세포이식의 도입으로 혈액암 치료는 더욱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인체에서 가장 성장 속도가 빠른 혈액세포에서 발생한 혈액암은 성장 속도가 다른 어떤 암보다 빨라 세포 독성제를 주로 하는 고전적인 항암화학요법에 가장 우수한 치료효과를 보여 주었다.
혈액암은 폐암, 위암 같은 고형암 보다 암세포를 채취하기가 쉽고 체외에서의 암세포 배양도 용이하여 다른 암에서 보다 연구가 먼저 이루어 졌으며 새로운 개념의 항암치료제도 대부분 혈액암에서 개발되고 있다. 최근 새로운 항암 치료제로 표적치료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표적 항암치료제는 암세포 발생의 원인 단계를 직접 정밀 조준하여 치료함으로써 치료효과의 극대화와 함께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표적항암치료제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된 이마티닙(글리벡)이 효시라고 할 수 있으며 이후 다른 혈액암과 고형암 들에서도 속속 같은 개념의 표적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최근 개발된 항암제들 중 가장 획기적인 치료제로 각광 받고 있는 이마티닙(글리벡)은 동종조혈모세포이식 만이 유일한 완치 치료법이었던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치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경구 복용하는 글리벡은 만성골수성백혈병 발생의 원인인 세포 표면의 티로진키나제 활성을 억제하여 암세포 증식을 막는다. 이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는 글리벡 만으로도 평균 수명 20년 이상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는 만성골수성백혈병이 당뇨병, 고혈압 같은 질환들처럼 치료로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만성 질환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마티닙 결합부위에 내성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생겨 내성이 생긴 환자에서는 2세대 제제들인 다사티닙, 닐로티닙과 보수티닙 등이 개발되었으며 탁월한 치료효과가 증명되었다.
혈액암 분야에서는 이마티닙에 이어 또 다른 새로운 개념의 항암제들이 속속 개발되어 암 치료 발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다발성골수종에서 자가 조혈모세포이식 후 재발된 환자에서 프로테아좀 억제제인 보르테조밉과 탈리도마이드는 탁월한 치료효과가 증명되었다. 최근에는 다발성골수종의 초기 치료제로도 이용하여 보다 우수한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향후 다발성골수종은 처음부터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지 않고 항암제만으로 치료하는 시기가 올 수 있음도 기대되고 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의 전단계인 골수이형성증후군 환자에서는 중증이거나 빨리 진행하는 경우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준한 항암화학요법이나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하는 것 외에는 효과가 입증된 치료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개발된 아자시티딘과 데시타빈은 암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새로운 개념의 에피제네틱 치료제로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의 진행을 늦추고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급성전골수구백혈병은 항암화학요법과 경구 복용하는 아트라 만으로 80% 정도의 완치율을 기대할 수 있으며 재발하는 경우에도 비소제제인 As2O3 치료로 다시 대부분의 환자에서 장기 생존 또는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금세기 들어 개발된 또 하나의 항암제는 항체 치료제들이다. 리툭시맵, 알렙투쭈맵 등의 항체 치료제들은 악성 림프종과 림프구백혈병에서 환자의 수명을 연장 시킬 수 있는 치료효과가 증명되어 항암 치료분야에서 또 하나의 큰 발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밖에도 플루다라빈, 클라드리빈, 펜토스타틴 등 대사억제제들도 탁월한 치료효과가 보고되어 백혈병 환자에서 치료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 세기 혈액암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 온 또 하나의 치료법은 조혈모세포이식이다. 조혈모세포이식은 고용량 화학요법으로 암세포를 파괴하여 기존의 항암 치료로는 완치가 불가능하였던 혈액암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은 이식된 혈액세포 중 면역세포가 환자의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기전으로 환자의 암세포를 공격하는 이식편대종양 효과가 매우 크다.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은 많은 혈액암 환자를 완치시킬 수 있게 하였고 저용량 전처치를 시행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미니이식은 고령 환자와 다른 질병이 동반된 환자들에서도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은 자녀를 적게 갖는 현대사회에서 형제자매 중 조직적합성항원(HLA)이 일치하는 공여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환자들에서는 최근 조혈모세포은행을 통해 골수 공여자를 찾아 타인이식을 시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조혈모세포은행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적절한 조혈모세포 공여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일본, 미국, 대만,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조혈모세포 공여자를 찾을 수 있다.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은 재발율이 적고 항암치료 효과가 큰 반면 이식편대숙주병 등 이식에 따르는 합병증이 문제가 된다. 치료 후 완치율과 장기 생존율이 같으면 합병증에 의한 삶의 질 저하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따라서 통상적인 항암화학요법 보다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의 치료효과가 클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를 적절히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액암 세포의 염색체 및 유전자 변화와 초기 항암치료에 대한 치료 반응, 환자의 나이와 진단 시 제반 임상상황 등을 종합하여 재발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서는 동종 조혈모세포이식을 고려한다. 최근 종전에 이용되었던 염색체/유전자 소견 외에도 새로운 예후지표들이 알려지게 되어 치료방침 결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편,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을 이용한 고용량 화학요법은 항암치료 효과는 크지만 이식되는 조혈모세포에 오염된 암세포에 의한 재발 가능성과 이식편대종양 효과가 없어 항암효과가 반감되는 단점이 있다.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이 통상적인 항암화학요법 보다 치료효과가 우수한지에 대해서도 일부 혈액암을 제외하고는 아직 명확한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재발된 비호즈킨 림프종, 호즈킨 림프종과 고위험군 비호즈킨 림프종 및 다발성골수종 환자들에서는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이 통상적인 항암화학요법만 시행하는 것보다 치료성적이 우수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급성골수성백혈병과 급성림프구백혈병에서는 치료의 우수성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혈액암 환자는 정상 적혈구 생성의 장애로 대부분 빈혈을 동반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적혈구 수혈이 필요한 환자가 흔하다. 적혈구는 수명이 100일 이상 길기 때문에 수혈을 통해서도 빈혈을 조절할 수 있으나 적혈구에는 철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간 수혈을 받는 환자에서는 철 과잉 축적에 의한 장기 손상이 큰 문제가 된다. 종전에는 데페록사민이라고 하는 주사제로 철을 체외로 빼 낼 수 있었으나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 사용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최근 개발된 경구 복용제들인 데페라시록스와 데페리프론은 효과적이고 편리한 철 제거제로 빈혈 환자의 진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2010년 혈액질환 알아야 이긴다-Monthly Schedu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