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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포천은 판개라고도 불리며 인천의 부평구와 계양구, 부천, 서울의 강서구, 김포시를 가로 질러 한강으로 흐르는 지방 하천으로 굴포천 유역은 150만 명이 살고 있는 인구밀집지역이다. 굴포천의 기원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는데 고려 고종때 최충헌의 아들 최이가 손돌목을 피해 보다 안전한 세곡 운반을 위하여 만들려고 했던 인공하천이 바로 굴포천이다. 생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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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침수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지형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굴포천의 유지용수로 부평시내의 생활오수와 공단지역의 산업폐수가 함께 유입되고 있으나 오염물질 배출부하량이 인천시의 하천 중 가장 크다. 풍납취수장으로부터 한강원수(75,000톤/일)를 유지용수로 흘려보내기 위해 추진다여 2006년 5월 시험통수식을 거행하였고 10월 새물맞이 행사를 개최하였다. | ||
사‘굴포(堀浦)’라는 말은 ‘판개울’을 한문으로 표현한 말로써 인공으로 팠다는 의미가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에 삼남지방에서 정부에 바치는 곡물(삼남미)를 싣고 바다를 통해 강화 손돌목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산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손돌목이라는 곳이 바다밑에 사슴뿔같은 암초가 많아 배들이 자주 조난을 당했다고 한다. 고려 고종때 최충현의 아들 최이라는 사람이 이 위험한 손돌목을 피하기 위해 부평 만월산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해 부평벌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흐르던 하천을 개조하고, 인천 제물포 쪽과 연결해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개설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조선 중종 때 김안로가 최이의 계획대로 하천을 파기 시작했지만 원통이 고개를 뚫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뚫지 못한 곳이 간석이고 그 때 판 하천이 지금의 굴포천이다. 그 때의 이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 ||
굴포천 자연형하천 조성사업 | ||
인천광역시 부평구 일대의 중심가를 관통하고 있는 굴포천 및 청천천의 치수 및 이수기능을 만족하면서 도시 산업화로 인해 오염된 하천의 수질을 개선하여 하천환경을 개선하고 친자연형 하천으로 정비하여 자연생태계 복원에 기여하며 시민에게 친숙하고 쾌적한 생활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자연과 시민이 어우러지는 하천을 조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 ||
- 굴포천 상류구간의 기존 수생식물 및 정수실물의 보전 - 하천과 주변지역, 경관 등을 포함한 굴포천의 개성을 살려 발전 - 도시의 중앙부를 관통하는 하천으로서 하천이 갖는 고유의 특성(친수성)을 적극 활용 - 장래의 하천경관 향상과 생태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시설 고려 | ||
*위 치 : 부평구 갈산동 ~ 부평구 삼산동 *테 마 : 자연과 이야기하면서 걷고 싶은 하천 *규 모 : 자연형하천 조성 6.2㎞ 하도정비 및 친수공간조성 6.08㎞ 친수시설 : 진입 및 친수계단 75개소, 산책로 1.969m 유지용수공급시설 : 강관(산림조경) 6,347m 갈산유수지 조성 *사업기간 : 2006년 11월 ~ 2008년 10월 | ||
- 2004년 8월 : 굴포천 테마설정을 위한 토론회 개최 - 2004년 12월 : 굴포천 유지용수 공급방안 수립을 위한 토론회 개최 - 2005년 3월 : 굴포천 공간정비 계획 수립을 위한 토론회 개최 - 2005년 9월 : 굴포천 설계용역 최종 주민설명회 개최 - 2006년 11월 3일: 굴포천 자연형하천조성사업 새물맞이 기공식 개최 - 2007년 1월 : 굴포천 자연형하천 조성사업 주민설명회 개최 - 2008년 10월 23일: 굴포천 자연형하천조성사업 준공 (준공식 : ‘08. 11. 4) | ||
첫댓글 굴포천 또한 4공단이 밀집된지역으로
예전엔 오염이 많이된것을 보았습니다.
최근엔 하천위를 시공하여주자장으로 사용하고있는곳이
일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