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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목사논문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에 대한 고찰
- 방법과 내용과 삶을 중심으로 -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연합 총회
성복교회
양 광 석
2013년 4월 일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에 대한 고찰
- 방법과 내용과 삶을 중심으로 -
이 논문을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연합 총회
목사논문으로 제출합니다.
2013년 4월 일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연합 총회
성복교회
양 광 석
양광석의 목사고시 논문을 인준함.
심사위원장 서명
심사위원 서명
심사위원 서명
심사위원 서명
2013년 4월 일
대 한 예 수 교 장 로 회 (합동개혁연합) 총회
목 차
1) 노방의 샤우터(Shouter)가 되기 까지.. 111
오늘날 말세지 말을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성경에 계시된 종말의 징조들이 손에 잡히듯 눈에 보이듯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계시된 종말의 징조들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보자면 첫째, 구약의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이스라엘 민족의 고토 귀환이 이루어진 시대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 만 명의 메시아닉쥬[1]가 현재 존재하고 있고 그 수는 더욱 빨리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신약에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천하만국에 복음이 전파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대환난 때에 활동할 적그리스도[2]가 준비되고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넷째, 다니엘 12:4을 보면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고 하였다.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수많은 지식들이 넘쳐 나오는 것을 볼 때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3]
그런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설교나 서적들, 매스 미디어 등을 통하여 종말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의 재림[4]을 대망하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92년 10월 28일에 공중강림과 휴거사건이 있을 것이라고 외쳤던 성도들의 경우를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목적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잘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현실도피, 교만과 독선, 잘못된 계시 해석 등으로 말미암아 건전하지 못한 시한부적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D선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기독교 역사에는 많은 단체나 개인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증거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새롭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우리는 그러한 사건을 통하여 그 성도들로 하여금 쓰라린 경험을 하도록 하심으로써 순수한 성경적 재림신앙을 갖도록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종말론이나 재림신앙에 대해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인식이 생김으로써 건전하고 성경적인 재림대망신앙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까지 위축되게 하였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재림의 목적에 대해 정확하게 깨닫는 것은 건전한 성경적 재림신앙을 갖도록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성경을 중심으로 재림의 목적을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첫째, 익은 열매를 추수하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둘째, 대환난[5]으로 죄악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셋째, 천년지상낙원시대[6]를 열어 주시기 위해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7]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최후의 재림대망 신앙[8]과 최후의 충성[9] 그리고 최후의 사랑[10]을 세상에 나타냄으로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하고 마지막 성화의 기회를 선용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교회와 성도들조차도 세속에 물들어 잠을 자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Ⅲ. 문제점에 대한 견해』에서는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의 문제점에 대해 방법에 대한 견해, 내용에 대한 견해, 삶에 대한 견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방법에 대한 견해에서는『Ⅱ.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에 대한 견해』를 토대로 전도자들이 열심을 가지고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하지만 방법적인 면에서 밝은 빛 가운데 행하지 못한 부분들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내용에 대한 견해에서는 현재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이 어떤 내용을 외치고 있으며 그 내용상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삶에 대한 견해에서는 은밀하게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의 삶의 문제점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본다.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를 찾아 보기 어려운 시대에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노방에서 전도하시는 전도자들의 열심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9:27을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 했다. 사도 바울도 복음 전파를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방법적인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의 외치는 내용을 들어볼 때 올바른 언어 생활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반말, 욕설, 정죄의 말,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표현 등 죽이는 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신 말씀 요한복음 6:63을 보면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고 했다. 몇 가지 올바른 언어 생활에 필요한 권면의 내용을 살펴본다.
▷ 우리는 성경책을 읽을 때도‘예수’를‘예수님’으로 읽고, 찬송가를 부를 때도 그렇게 하잖아요.
▶ 성경에는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는 부분이 많지요. 사실 이번에 복음성가를 만들 때도 ‘예수’라고 나온 것을‘예수님’혹은‘주님’으로 고치려고 노력을 했어요. 그런 면에 관심을 가지고 수정했어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예수’라고 많이 하지요. 그러나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을 때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예수’라는 단어를 읽을 때도‘예수님’으로 바꿔볼 수 있는 우리 마음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 그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 그런 문제는 사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주님을 동네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아니면 동네 소꿉친구 이름 부르듯이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정중하게‘님’자를 붙여서 더 존중하는 것이 좋겠지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예수님!’이렇게 부르는 게 좋지요.‘주여’하는 것보다‘주님’하고 부르는 것이 좋아요. 그만큼 더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더 높이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하나님에 대한 정성과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한다면 하나하나가 다 상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11]
▷ 아집이나 독선이나 교만이 안 섞이고 어떻게 하면 온유하고 겸손하게 할 수 있을까요?
▶ 우선 하나님 중심으로 얘기하려고 해야 합니다. 자기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으로 해야 돼요. 그리고 목소리나 마음상태를 상대방한테 호소하는 식으로 하면 좋아요. 진지한 사랑과 동정하는 마음을 가지고요. 공격적으로 냉정하게 얘기하거나 비방조로 얘기하기보다도“그것 때문에 당신이 손해를 많이 볼 텐데 참 안타깝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을 바꾸시면 좋을 것 같네요.”라고 하면서 하소연하듯이, 애원하듯이 해야지요. 그러면 겸손의 향기를 나타낼 수 있어요. 진정한 사랑의 향기도 나타내고요.[12]
▷ 어떤 분들은 빛과 어두움을 예를 들어주면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세요.
▶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 율법사나 서기관들의 옳지 못한 마음과 행실을 판단하며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고, 사도 바울이나 기독교 역사 가운데 훌륭하게 생활하며 증거했던 분들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전도를 할 때 빛에 대한 진리를 증거하려면 빛과 어두움을 잘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성도님들이 많이 혼동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심을 품고 판단하는 것, 또는 비방하거나 후욕하거나 무시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성에 지배 받지 않고, 건전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 온유하고 자비롭고 인내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안타까워하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더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성의 지배를 받은 마음 가지고 무시를 하고 비방을 한다든가, 혈기나 교만한 심정을 나타낸다면 심각한 것이지요. 속에 죄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건전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통해 빛과 어둠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필수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독사의 자식들아”(마12:34, 23:33),“회칠한 무덤이여”(마23:27) 라고 하시면서 진리를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혈기나 교만, 아집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약이 오르거나 화가 나서 한 비판은 회개해야 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심정으로, 사랑과 동정의 마음으로 한다면 죄를 범한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13]
▷ 참기만 하면 되나요?
▶ 해명을 하고 어떤 때는 변명도 해야 합니다. 그게 사랑 실천일 때도 많아요. 그런데 무조건 참아야 되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랑은 남의 유익을 구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그 문제 가지고 자꾸 오해를 하고 죄를 짓는 것 같이 생각된다면‘이것을 그냥 감춰두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설명을 해주어서 그분이 유익을 얻도록 도와주자.’라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얘기를 해줘서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이게 큰 사랑이라는 거예요.[14]
▷ 저희 집에 쥐가 자꾸 들어와요. 어떤 때는 화가 나서 막 내쫓아요. 어떻게 해야 될까요?
▶ 쥐라든가 벌레라든가 이런 것이 집으로 들어왔을 때는 밖으로 보내야지요. 물론 같이 지낼 수만 있다면 더 낫겠지만 그렇게 할 만한 처지가 안 되면 밖으로 내보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내보낼 때도 우리의 태도나 말씨, 표정을 통해서도 계속 덕을 세워야 된다는 거예요.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벌레나 쥐, 두더지 같은 것이 들어왔을 때“야 임마, 빨리 나가.”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 처음에 한 마리 들어왔을 때는 불쌍한 맘도 드는데 자꾸 들어와서 괴롭히니까 무감각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성경대로만 하면 돼요. 하나님 중심으로요.“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고 하셨잖아요.“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골3:9). 성경에 꽉 찬 말씀이잖아요. 이런 말씀들을 실천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쨌든 우리는 점점 성화되어야 하니까요.[15]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할 때 육성으로 하는 경우와 노방용 앰프나 확성기를 가지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 육성으로 할 때는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는데 앰프를 가지고 할 때는 신고 받고 출동한 경찰들과 대면하는 일이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사실 제 경우에는 육성으로 할 때가 소리가 더 컸다.
제 경우 처음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시작할 때부터『II.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에 대한 견해』『(8) 장소적인 견해』『② 소리적인 배려 』을 참조했고 소리 측정기를 휴대한 후 시작했다. 그리고 가능한 경우에 한해서 동역자를 통해 소리 크기를 확인한 후 전도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중 정말 소리가 커서 출동한 경우도 있었고 기독교에 대해 배타적인 분들의 신고에 의해 의무적으로 출동한 경우도 있었다. 정말 소리가 커서 경찰이 출동한 경우는 크게 바람 때문에, 급한 마음에 주변 환경을 파악하지 못하고 소리 측정을 하지 못한 경우, 같이 간 동역자들에게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에 대한 견해를 숙지 시키지 못한 경우 등에 의해서 발생했다. 한 마디로 시행착오의 순간들이었다.
요즘은 사람들이 소리 크다고 와서 말하지 않는다. 핸드폰이나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에 길 가다가도 직접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리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상대성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고가 접수된 이상 경찰은 출동을 해야 함으로 경찰 입장에서도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하튼 경찰이 출동한 이상 어떤 행동적 조치를 취해야 하고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의 이미지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각인이 될 수가 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앰프의 볼륨을 낮추고 전도 반경을 크게 잡지 않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신고에 의해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상황을 잘 설명해 줄 필요가 있다. 이 모든 일에 있어서 조심성이 필요하다.
▷ 조심성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 바로 조심성이 성장한다는 뜻이거든요. 죄성은 그대로 있어요. 자꾸 부딪쳐가면서 자아가 깨지는 것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죄성이 순간적으로 우리의 말이나 행동을 지배하려고 하는데, 조심성이 생겨가지고 그것을 자꾸 억제하면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뜻을 나타내도록 하는 것이지요. 조심성이 점점 많이 확장되어가는 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풍파에 시달리다가 얻게 되는 것이 영적 성장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풍파에 시달리다가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소득이 무엇이냐면 조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진리와 덕이 적용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조심성이라는 것을 늘 나약하고, 포기해야 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포기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조심조심 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에 강력하게 돌진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 다양해요. 그 가운데서 우리는 언제든지 기본적인 자세로서 조심성, 주의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서 모든 덕이 나타나는 법이고, 어떤 일에 대한 좋은 성과가 나타나는 법이고, 다양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꼭 약해지는 것만 가지고 조심성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치 온유가 제일 약한 사람들의 특징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세상에서 제일 강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16]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할 때 법이 정한 소리 범위보다 크게 확성기를 이용해서 한다든가 아니면 차량을 이용해서 하는 경우가 있다. 차량을 이용해서 외치는 전도를 하는 사역자가 이렇게 이야기 했다. “복음을 외치는 소리가 저기 100m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까지 들립니다.” 라고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작은 덕을 실천해야 하는 사역자가 사람들에게 큰 폐를 끼치면서 더욱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으니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의 회개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 수녀님 한 분이 프랜시스가 계신 곳에 문을 확 열고 들어와서는“어떻게 하면 수도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어요. 그럴 때“문을 세게 열고 닫는 것을 고치면 수도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다잖아요. 이런 작은 것, 가까이 있는 것이 변화되어야 하거든요. 우리는 먼데서만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기 생활이 너무 부족한데도, 큰 것만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큰 사람이 되고자, 큰 능력 받아서 불의 사자가 되고자 해요. 사람은 그런데 마음을 쓰기 쉽게 만들어졌어요. 그러나“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고 하신 말씀을 더 깊이 생각을 해보아야만 됩니다.[17]
주로 재래 시장에서 외치는 전도를 하는 어떤 전도사님께서는 상인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때마다 뱀처럼 지혜롭게 장소를 옮기면서 부딪치지 않고 전도를 하신다고 한다. 많은 경험을 통해서 지혜로운 방법을 터득하신 것이다. 그러나 재래 시장 같은 장소는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처음부터 핍박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외치는 전도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장소에 맞는 전도 방법을 지혜롭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앰프나 확성기를 사용하지 않고 육성으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제 경우에는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할 때 천막에 도표를 달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그 도표에 ‘신천지’ 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저는 괜찮았지만 동역자들이나 교회 성도들은 많은 걱정을 했다. 그래서 도표를 달지 않는다거나 ‘신천지’ 이름을 가리고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표를 다는 것 자체도 책을 전시 하는 것 자체도 이단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사람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그럼으로 이 부분은 확언을 하지 않고 융통성 있게 할 필요성이 있었다.
▷ 마태복음 10장 16절을 보면“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 사람들이‘뱀같이 지혜로우라’는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에덴낙원에서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게 할 때도 뱀이 속삭여서 유혹을 했잖아요. 마귀의 도구로써 뱀이 이용을 당했어요. 그래서 인간 전체가 멸망하는 큰 불행을 가져왔어요. 뱀을 보면 기분이 아주 나쁘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뱀을 좋게 말씀하신 것인지, 나쁘게 말씀하신 것인지 혼동스럽게 느끼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나 여기에서는 분명히 뱀을 지혜로운 동물로 인식하시면서 하신 말씀으로 봐야 되겠지요. 뱀이 다니는 모습을 봐요. 삐뚤삐뚤 하면서 이곳 저곳 아주 묘하게 피하잖아요. 뱀 다니는 모습 보셨지요? 몸에 딱딱한 뼈가 없으니까 아주 기가 막히게 잘 돌아다니잖아요. 물이든, 풀이든, 어디든지 잘 다녀요. 위험이 있는 곳도 잘 피하고요. 상당히 지혜롭게 살아가는 동물로서 인정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다운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뱀의 지혜로움과 같이 우리도 역시 지혜롭게 하나님을 섬기라는 거예요. 뱀의 좋은 점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비둘기는 순결 자체지요. 원체 아름답잖아요. 너무나도 순결하다는 것을 가서 보고 있노라면 느낄 수 있어요. 사람을 상당히 잘 따르고 사람이 무섭게 하지 않으면 어깨에도 앉고 손에도 앉고 그러잖아요. 먹이를 먹는 것도 요란스럽지 않고요. 아주 순수하고 깨끗하게 느껴져요.
▷ 추석 때 오늘처럼 모임이 있어서 집에 있지 않고 나오게 되면, 가족이나 친척들이 싫어하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덕을 세워야 하나요?
▶ 말과 행동으로써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됩니다. 어쨌든 성경에 있는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순간순간 지혜롭게 대해야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지혜를 가지고 고난을 무조건 떨쳐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아가라는 뜻은 아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가운데 지혜롭게 주어진 고난을 잘 받으면서 달려가라는 뜻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안 주신다, 당할 즈음해서 피할 길을 주신다, 이런 말씀을 강하게 믿으면서 순간순간을 대처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야 합니다.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을 보세요. 큰 바위가 가로 막혀 있을 때 그 바위를 뚫거나 밀어 제치고 내려가려고 하면 될까요? 잘 안되지요. 엄청난 힘을 가진 장애가 눈앞에 있을 때 살짝 돌아서 내려가거든요. 그것을 뚫고 내려가려고 하고, 밀어 제치고 내려가려고 하기보다도 옆으로 살짝 돌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해야지요.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지혜입니다. 정면으로 충돌을 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요.
그러면서도 언제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될 것은 환란과 핍박이 극심해서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느껴질 때는 순교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주세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피할 길을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순교함으로써 피할 길을 주시는 그런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 같은 분들 봐요. 돌멩이를 얻어맞으면서도 진리를 증거하다가 결국 순교자가 되었잖아요. 그것도 분명히 피할 길을 주신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 만일 돌멩이를 계속 맞는다면, 맞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불안과 공포에 쫓기면서 타협하기가 쉬울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기적과 신비를 나타내셨어요. 천국문을 활짝 열어주시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몸은 돌멩이를 계속 맞아서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그 고통을 모르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웃어가면서, 또 평안한 마음이나 고운 마음씨를 표정으로 나타내면서 끝까지 진리를 고수하다가 순교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피할 길을 주신 거예요.
어떤 분들은“아이고, 그분은 사람들한테 돌멩이를 맞아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피할 길이 없었던 거죠. 무슨 그것이 피할 길을 주신 것입니까?”라고 항의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순간에 영안이 열려서 승리했잖아요.
사람들은 이 영안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를테면 믿음이나 지식으로 뭔가 믿어지고 깨달아졌을 때 영안이 열렸다고 하는데, 그런 영안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영안이 아니고, 지식의 눈 혹은 지성의 눈이에요. 믿음의 눈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영안은 영체의 눈이 열려서 영계에 있는 사물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는 눈을 가리켜 말해요.
그런 눈이 열려서 천국보좌에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돌멩이가 날아와 얼굴이나 가슴이나 등이나 다리를 막 때려서 상처가 나고 피가 난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을 아주 가볍게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하나님의 신비스런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피할 길이에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당할 즈음해서 피할 길을 주신다는 거예요. 순교하는 것이 마치 피할 길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죽은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갔잖아요. 그것도 뱀같이 지혜롭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면‘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기적으로라도 도와주실 것이다.’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만일 도와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순교정신을 가지고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거예요. 비겁하게 세상과 타협하고 마귀와 타협하면 안됩니다. 그런 것을 지혜로운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비둘기처럼 깨끗하고 순결하라고 하셨지요.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도 순결한 생활을 의미하는 거 아니겠어요. 명절 때 좋은 음식이나 좋은 옷, 또 옛날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만나기 쉬운데, 그럴 때도 역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순결한 덕의 향기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핍박을 받고 손해 볼 각오를 갖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짊어지고 따라가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순결의 덕을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비겁하게 타협하기 쉽습니다. 불결한 마음에 사로잡히기 쉬워요.
그러니까 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짊어지고 따라가고자 하는 참된 제자의 정신을 가져야만 순결의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또 뱀같이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강직하게 왕고집을 가지고 바위덩어리라도 뚫고 가야 된다, 넘어뜨리고라도 가야 된다, 제쳐놓고라도 가야 된다, 이런 식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이름 같은 것을 왜 바꿉니까? 그것 가지고 핍박을 받아야지.”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전도가 안되니까 어떻게 하느냔 말이에요. 특정한 이름이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걸림돌이 되면, 전도하는데 굉장히 방해를 받잖아요. 그것 때문에 어려움도 많고요. 진리를 전하는데 있어서 방해가 심하게 된다고 할 때는 뱀같이 지혜롭게 이름을 바꾸면서 전도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이거죠. 성경에 절대로 이름 바꿔서는 안 된다, 이런 절대적인 계명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런 계명이 있다면 우리는 죽음으로써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살아가는 뱀같이 지혜로운 생활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타협하기 쉬워요. 또 잘못하면 왕고집을 가지고 독선적으로 살아가야만 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쉬워요. 어쨌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또 말씀이 지켜지는 한도 내에서 그때그때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18]
울산 시외 버스 터미널 주변 노방에 대구, 김해, 부산, 울산, 대전 등 각처의 사역자들이 모여 전도하기로 했다. 제가 진행을 맡아 기도 후 찬양하고 외치는 전도를 실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찬양 중에 복음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분들이 그 시간을 못 견뎌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외치는 전도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먼저 찬양을 통해 사역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찬양 후 외치는 전도를 하는데 수녀님 한 분이 화난 얼굴을 하면서 오는 것이었다. 상황을 보니 앞쪽의 목사님에게 구박을 당하신 것이었다. 그 목사님은 카톨릭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 후 그 목사님은 자신의 순번에 한 번 외치시더니 말도 없이 가버리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은 이와 같이 돌아가면서 외치는 것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스타일이 있으시다는 것이었다.
어떤 여자 목사님께서는 사역 후 대화 시간에 스님이 지나가는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외치자 고개를 숙이며 굴복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처럼 강력한 권세로 할 때 굴복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모습들이 현재 노방에서 외치는 사역자들의 단면이라고 볼 수 있다. 자존심이 깨어 져야 하는 노방의 현장에서 자존심이 살아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 자존심은 자아가 다 깨어지면 없어지나요?
▶ 자존심을 순간순간 극복하느냐 아니면 따라 사느냐, 영적이냐 육적이냐, 이런 차이가 있는 것뿐이지요. 자존심이 없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자존심이 순간순간 나타나지만 그것을 육적인 것으로 분별하면서 물리치는 거죠.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죄성과 정욕은 완덕에 도달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육체 가운데는 남아있어요.
자존심을 순간순간 빛 가운데서 잘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워치만 니 성자는 항아리로 비유하셨지요. 그 항아리가 우리의 자아에요. 항아리가 완전히 깨어져서 가루처럼 되었어도 그것을 모아놓으면 다시 항아리처럼 되거든요.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무너지잖아요.
그렇게 그대로 있는 거예요. 깨져버린 자아는 여전히 있어요. 육체에는 죄성과 정욕과 결점이 있어요. 영혼 가운데서만 뿌리가 뽑혀요. 그러니까“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롬8:10)고 하신 거예요.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간 성도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영혼만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지 육체까지도 의롭다함을 받은 것은 아니에요. 로마서 8장 경험에 들어간 성도라 할지라도 육체에는 여전히 죄성이 남아있어요.
▷ 자존심이 있다는 것이지요?
▶ 그런 것이 있지만 밝은 빛이 마음에 있으니까 틈을 못 탄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육체에는 죄의 법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것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물리쳐주는 것이지요.
자존심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육적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분별해서 잘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빛의 열매를 더 풍성하게 맺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극복할 때마다, 물리칠 때마다, 십자가에 못박을 때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점점 영적으로 진보되는 것입니다.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에요.[19]
출애굽[20]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경험적인 복음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하는 외치는 전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내용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외쳐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 많은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자아를 깨뜨리는 훈련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사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 경험을 가진 분들 중에서 사명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출애굽 경험이 없어도,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자아가 강해도, 자아를 깨뜨리는 훈련 시스템를 통해 얼마든지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누구나 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린이들까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심지어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과 은사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 목사는 노방전도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과 은사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노방전도를 하라고 권하지 않는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삶 속에서 복음의 열매를 드러내는 일이 앞서야 한다는 게 이 목사의 생각이다.[21]
전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명령인데 우리 스스로 제한한다면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생각이다. 잘못된 부분을 성경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말이나 글로 전도의 문을 막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없다.
▷ 전도에 달란트가 없으면 어떡해요? 그런 분은 전도가 참 어렵거든요.
▶ 조금 전에도 어떤 분이“자기가 쉽게 할 수 있고 성과도 풍성히 거둘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수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지 않느냐?”고 하셨지요. 그래서 전도의 열매가 없이 돌아오는 허전한 발걸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시게 되었다고 했는데요.
사실 우리가 재능이나 성향이 있어서 하기 쉽고 잘되는 일을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잘 안 되는 일을 십자가를 짊어지고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총력전도대회는 일 년 내내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두 차례 있잖아요. 그 기간에 전도하는 것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은사나 사명감이 부족할지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이 비록 부족함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또 성과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기간만이라도 전도에 대해 자꾸 연구하면서 해보려고 노력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대단히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므로“전도에 대한 은사나 성향이나 재능이나 구변이나 여러 가지 갖춰진 분만 해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성과가 더 잘 나타나는 일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때는 얼마든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지만, 이렇게 특별한 기간 동안에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거기에 맞춰보려고 최선을 다하면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 때가“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따라오라.”(마16:24)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해당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열심히 동참해야 합니다.[22]
뉴욕에서 노방 전도하시는 지영훈 목사님께서는 교회 내의 결과주의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이 피켓을 들고 다니고 거리에서 우리가 전도지 뿌리는 일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한 거예요.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고 했는데, 참 기이한 모습이다. 우리가 영어로 많이들 이야기하죠. 기이한 모습이다. 그런데 가장 기이한 모습으로 복음 선포한 분이 있고 그 퍼포먼스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무슨 퍼포먼스일까요? 제가 지금 보여드리잖아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위월드한 퍼포먼스로 복음을 전하신 분….
그 다음에 요한복음 4장 36절에 씨를 뿌리는 자나 거두는 자나 동일하게 즐거운 잔치에 참여하겠다.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뿌리는 건 기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물 줄 자 보내시고 하나님께서 거두실 자를 보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전략인데 버지니아에 가시면 맥린 바이블처치가 있어요. Jewish(유대인) 목사님이에요. 메시아닉쥬 이신데 이름은 론 솔로몬 목사님입니다. 대학생 때 마약중독 도박중독에 빠져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저 같은 길거리 전도자가 전해준 전도지 한 장을 받아 들고 스스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중에 신학교까지 가고 교회 개척했는데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모여들어서 지금 주일 출석이 만 명이 됐어요.
그러니까 노방 전도자가 무심코 전해준 전도지 한 장이 그런 놀라운 결과를 일으켰는데 그 전도자에게는 그 결과가 눈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교회 안에 결과주의가 있습니다. 그거 다 버리지 않냐… 눈 앞에서 확인되어지고 있지 않냐… 양육은 어떻게 할 것이냐… 결과주의 이거… 좀 생각을 해볼 문제입니다.
실제로 그 놀라운 예가 스데반의 경우입니다. 복음 전하고 돌 맞아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숨어 있었던 사울이 그렇게 쓰임 받을 줄 스데반 눈에는 결과가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대한 복음 전파자로 하나님께서 세우시잖아요. 아멘? 오늘 여러분이 무심코 전해준 전도지 한 장이 그들이 받지 않을지라도 혹시 모르겠어요. 마지막 시대에 사도 바울과 같이 쓰임 받을 자들이 있을 수도 있다, 없다? 있다!.
세계적으로 부흥 강사로 쓰임 받고 계시는 브라이언 박 목사님께서는 불신자 시절 노방 전도 목사님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브라이언 박 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한국 이름으로 박용종이신데 16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에 건너가서 UCLA 대학을 나오시고 미국 뉴욕 월가의 투자은행에서 26살에 부사장까지 지내신 분입니다. 한 때는 자기 친구 10명보다 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미국에서 21년간 투자은행을 운영했습니다.
그의 집안은 전혀 예수님을 모르고 불교와 온갖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이었고, 1년에 보통 9번 제사나 고사를 지냈습니다. 미국에 살았지만 어머니의 전속 무당이 있을 정도로 우상과 귀신을 열심히 섬기던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집안을 부적으로 도배할 정도로 우상을 숭배하는 집안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일찍 성공했으나 왠지 허탈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성공했고 비싼 고급 자가용도 여러 대 몰고 다녔지만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세상 쾌락에 빠졌습니다. 술과 담배와 마약까지 오랫동안 했습니다. 무려 21년간 술과 담배와 마약을 했습니다. 돈과 지위가 있었지만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방황하며 우울증에 걸려서 두 번씩이나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돈도 많고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마음에 기쁨도 없고 허무해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한 번은 너무 마약을 많이 해서 죽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자기에게 강한 힘과 의지가 있다가 생각해서 술과 담배와 마약을 끊으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께서 자기 모든 문제를 다 아시고, 약점을 아시고, 모든 잘못된 버릇과 술과 담배와 마약을 한 순간에 끊게 하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1994년 6월 17일 금요일 밤, 미국 LA 부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형과 운전을 하다가 그분을 만났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형이 세븐 일레븐이라는 편의점에 형이 커피를 사려고 들어갔고 혼자 차 안에 앉아 있는데 미국인 한 사람이 다가 왔습니다. 브라이언 박은 그날 따라 이상하게 자기 모든 면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습니다. 차에 앉아 있는데 외국 사람이 다가 오더니 중국말 아느냐고 해서 중국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까 돌아가더니 다시 왔습니다. 그리고는 “Do you believe in Jesus? 예수님을 믿느냐?”고 하기에 믿는다고 하면 가기에 보통 귀찮아서 믿는다고 했는데, 그날은 입에서는 퉁명하게‘No, 안 믿는다.’라고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 미국 사람이“Can I pray with you? 당신과 같이 기도해도 됩니까?”라고 합니다. 평소에 종교적인 말이나 전도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는데 그 날은 그의 입에서‘Yes, 예스’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분은 그의 손을 잡고 기도를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Jesus, With your blood, Take my sins away, And put the Holy Spirit in me.”, “예수님, 당신의 피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저에게 성령님을 임하게 해주세요.” 하기에 자기도 모르게 따라 했습니다.
이 기도가 끝나고 그 분이 누군지 물어보니 목사님인데 그 동네 어느 호텔에서 집회를 한다고 합니다. 전단지를 하나 주시고 목사님은 갔습니다. 형이 커피를 가지고 나와서 커피를 마시고 1, 2 분 가는데 갑자기 통곡이 나옵니다. 엉엉 울었습니다. 눈물이 나오는데 두 볼이 너무 뜨거워서 마시던 커피가 얼굴에 쏟아진 줄 알았습니다. 통곡하다가 그치니 형이 왜 우느냐고 웁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 2분 있다가 또 통곡이 나옵니다. 두 번째는 이상한 목소리로 웁니다. 그러더니 세 번째는 울음은 나오지 않고 온 몸이 진동하더니, 갑자기 그의 몸에서 무엇이 하나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 몸에서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인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오시니까 그의 몸 안에 있던 어두움의 세력인 더러운 귀신들이 나갑니다. 1, 2분에 하나씩 스무 번 정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며 나중에 알고 보니 스무 마리의 더러운 귀신이 나간 것입니다. 그런 신기한 현상이 끝나고 나니 처음으로 그는‘아, 이런 것이 깨끗하다는 거구나.’하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그의 인생에서 그 전에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깨끗함을 느꼈습니다.
형이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기에, 형에게 그 목사님 사진이 있는 집회 전단지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형이 그 전단지를 보더니 갑자기 깜짝 놀랍니다. 그 전날 목요일 낮에 형이 낮잠을 자며 꿈을 꾸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양복을 깨끗이 입고 나오셔서, 어떤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내가 내일 이 사람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전단지에 나오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돌아가셨는데 하나님께서 육신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형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형이 걱정이 되어서 그 목사님을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만났습니다. 그 형과 그분이 전화로 같이 기도하면서 네 시간 정도했는데 형에게는 50번 정도 이상한 귀신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도합 6시간 정도 기도하면서 초자연적인 놀라운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들은 그 전까지 교회를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 순간에는 그런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브라이언 박은 평생 하던 술 담배와 마약을 단 순간에 끊었습니다. 그렇게 의지로 끊으려고 하던 것을 성령님께서 한 순간에 끊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큰 소리로 기도를 하는데 방언 기도도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체험하였고‘나 같은 죽어 마땅한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것’이 너무 기뻤습니다. 기독교 배경이 전혀 없었던 그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당신의 선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드리고 자랑하고 싶고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픈 곳이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역기를 들다가 허리를 다쳐 16년간 심한 디스크를 앓았습니다. 왼쪽 2번, 3번 디스크가 없어서 허리가 휘면서 1년에 정기적으로 2-3주간은 누워 있었습니다. 양약과 한약 병원 등 50군데 다녔지만 가망이 없고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그의 왼손을 움직이시더니 왼쪽 아픈 곳을 만지게 하시고 전기가 찌릿하게 오고 다리뼈가 시원해지더니 16년간 앓던 디스크를 단 2초 만에 고쳐주셨습니다.
그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박목사님은 병도 고침 받고 다른 여러 가지 기적이 있지만 가장 큰 기적을‘구원’이라고 고백하십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화려한 세상의 지위와 경력을 그만두고 목사가 되는 것이 너무 엄청난 희생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생을 한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오고 좋은 것을 버리는 것인데, 투자은행 사장에서 목사가 되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 같이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십니다.[23]
앞서 성경에 계시된 종말[24]의 징조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목적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먼저 중요한 사항으로 휴거[25] 되는 성도들에 대해 살펴본다.
요한계시록 3:10을 보면“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휴거되는 성도들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는 매우 중요한 주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잘 해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사자들에게 보낸 일곱 통의 편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일곱 통의 편지 가운데에는 그 교회의 사자 즉 목회자 한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과 여러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씀과 전체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그 편지 내용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말씀인가를 정확히 분별해야만 주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 3:10은 예수님께서‘네가’라는 말과‘너를’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을 볼 때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회자 개인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목회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성도이기 때문에 장차 온 세상에 임하는 시험의 때를 면제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험의 때는 무엇을 가리켜 말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의 한 부분에서만 일어나는 시험이 아니고 온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시험하는 때 곧 예수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부터 지상재림하실 때까지 있게 되는 대환난을 가리켜 말한다.
마태복음 24:21에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고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낙원에서 추방된 날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에는 크고 작은 환난들이 많이 일어났다. 실례를 들자면 1·2차 세계대전이나 십자군전쟁, 6·25 한국전쟁, 이디오피아나 소말리아 같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기근, 중세기 유럽의 흑사병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환난들은 이 세상의 일부 지역에서만 일어난 것들이다. 그러나 계시록 3:10에 나온‘시험의 때’는 죄악세상의 종말 즉 대환난을 가리켜 말하는데 이때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험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눅 21:35)
그런데 주님께서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회자에게 이 대환난을 면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대환난을 면제해 주시겠다는 말씀은 대환난을 통과할 때 피난처를 예비해 주겠다거나 고생을 하지 않도록 돌봐준다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휴거되게 하심으로써 대환난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는 예수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변화된 몸 즉 부활된 몸을 가지고 공중으로 이끌려 올라가기 때문에 대환난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회자가 휴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의 말씀을 지킨 성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루나 이틀 동안 환난과 핍박을 참고 인내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1년이나 2년 동안 참고 인내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얼마 동안 즉 며칠이나 몇 달 혹은 몇 년 정도를 참고 견디면서 생활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회자가 인내의 말씀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기간 동안 철저하게 지키면서 익은 열매가 된 성도 즉 정결해진 성도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에 대하여 자세히 알기 위해 로마서 5:3-5의 말씀을 해석해 보고자 한다.“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성도들이 많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 인내의 말씀을 꾸준히 지키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만큼 연단을 받게 되면 확실한 소망을 가진 성도가 되어서 신비로운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하게 공급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연단을 받은 성도들은 음식이 맛이 있거나 없거나, 날씨가 춥거나 덥거나, 착한 사람을 만나거나 악한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라도 빛의 열매를 맺게 된다. 이러한 성도들은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기쁨이나 슬픔이나 만족이나 불만이나 이익이나 손해 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인내와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절제와 정직과 양선 등 덕의 열매를 맺으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큰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잘 참고 견딘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아무리 작은 고난일지라도 가볍게 생각지 아니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내한다면 더 빨리 성화되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 1:12에서는“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목회자는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 연단을 받고 정결하게 된 성도이기 때문에 대환난에 들어가지 않고 휴거되는 성도가 되었다는 것이다.[26]
참고로 성경적 재림론과 휴거론을 살펴본다.
예수님께서는 천년왕국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익은 열매가 된 성도들을 추수하시고 죄악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신다. 그리고 대환난을 통하여 정결하게 된 성도들이 들어갈 수 있는 천년왕국을 개국하신다. 그러므로 전천년설이 성경적 재림론이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밖에도 성경에는 천년그리스도왕국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또한 휴거론은‘환난 전 휴거론’과‘일부 휴거론’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견해를 입증할 말한 성경 말씀을 분석해 보자.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휴거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공중에 강림하셔서 익은 열매가 된 성도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중강림과 성도들의 휴거사건이 일어나는 때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전서 5:1-3을 보면“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평안하다 안전하다’라고 생각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고 있을 때 공중강림과 휴거사건이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리고 마태복음 24:36-44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노아시대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등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홍수 심판이 임한 것처럼 대환난으로 죄악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도 사람들이 육적인 행복을 추구하면서 전혀 재림이나 종말을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공중강림과 휴거사건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10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으로서 이 목회자가 인내의 말씀을 다 지켰기 때문에 시험의 때 즉 대환난을 면제 받고 휴거 되는 성도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휴거는 대환난 직전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 25:1-13을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오는데, 신랑이 되시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모든 성도들이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랑이 왔을 때 기름준비를 충분하게 해 놓았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잔치 집에 들어갔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이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혼인잔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여기서 열 처녀는 모두가 등불을 들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불신자들이 아니라 성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등불을 들고 처녀들이 기다리던 신랑이 잔칫집에 왔다는 것은 늘 깨어서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신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잔치에 들어간 것은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셨을 때 준비된 성도들 즉 익은 열매가 된 성도들이 휴거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3:10과 14:12에도 보면 후 삼년 반 환난 때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면서 성도들을 향하여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라고 유혹하며 박해할 때 성도들에게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휴거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다니엘 12:7, 10의 말씀을 보면 한 때 두 때 반 때 즉 후 삼년 반 환난 동안 성도들이 연단을 받으면서 정결하게 된다고 하였으므로 모든 성도들이 휴거 된다는 주장은 성경전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견해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휴거에 대한 견해는 구원받은 전체 성도들이 휴거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 중에 일부만 휴거 된다는 일부 휴거론이 성경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27]
이상의 내용만 가지고도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를 할 때 전도자들이 어떻게 외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알 수 있다. 그것은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하고 마지막 성화의 기회를 선용하도록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환난을 준비하도록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천년왕국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도록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로 구원이 넘어가고 있는 현실과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실 때가 임박한 사실을 생각할 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과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친척들 그리고 이웃들이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기도하고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셔서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고 할 때 이 음성이 우리의 음성이 되도록 마지막 성화의 기회를 선용해서 휴거 성도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25:11-12)” 고 할 때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대환난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이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하도록은 하지만 마지막 성화의 기회를 선용하도록 한다든지 대환난을 준비하도록 한다든지 천년왕국에 대한 소망을 심어 준다든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불신자를 대상으로 외치는 경우가 많다.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의 표어를 살펴본다.
(1)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2) 천국과 지옥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3)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으면“죄사함”받아서 천당 가지만 끝까지 고집부리며 예수 믿기를 거절한 자는 살아오면서 지은“죄값”으로 심판 받아서 영~원히 고통 받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4) 지옥 가면 안됩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1) 이 세상은 잠깐 살다가 떠나는 곳입니다!
(2) 부귀 영화, 출세, 성공, 향락이“죽음”앞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3) 예수 믿고 영~원한 천당 갑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1)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도다! 이 세상일은 모든 게 헛되지만은 주님한테 충성하고 헌신한 것은 영~원토록 복 받고 사는 복 된 길입니다!
(2) 빨리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3) 천당 가고 지옥 가는 것은 본인이 결정해야 하며 살아 있을 때에 결단 해야만 합니다! 예수천당! 불신자 지옥!
(1) 예수 믿으면은 대통령, 재벌, 연예인이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이지만 예수 믿으면은 천당에서 영~ 원토록 왕 노릇 합니다! 이래도 예수 믿기를 거절 하겠습니까! 예수천당! 불신자는 지옥!
(1) 할렐루야! 세월이 화살같이 날라가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2) 다른 것 믿으면은 지은 죄를 사할 길이 없어서 살면서 지은 죗값으로 끔찍한 지옥에 떨어집니다!
(3) 빨리 예수 믿고 가까운 교회에 가셔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예수천당! 불신자는 지옥!
(1) 할렐루야!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반드시 죽습니다!
(2)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은 죽지만은 속 사람인 영혼은 영원토록 행복한 천국 가지만 끝까지 고집부리며 예수 믿기를 거절한 자들은 지은 죗값으로 영원히 고통 받는 유황불 지옥에 떨어져서 살아 있을 때의 감각을 그대로 지닌 채 영원토록 사는 곳이 지옥 입니다!
(3) 빨리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내일 살아있다는 보장 없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자는 지옥!
(1)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은 죽는 데는 순서가 없습니다!
(2) 우리네 인생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인생들입니다!
(3) 예수 믿고 영~원한 천당 가는 것이 진정으로 성공하고 현명한 사람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천당! 불신자는 지옥!
(1) 불신자들과 다른 것 믿는 자들은 죽음이 끝장이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보다 엄청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죽음” 입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1) 예수 믿어도 엉터리 가짜들은 불신자들과 똑같이 심판 받아서 지옥 갑니다!
(2) 예수 잘 믿고 천당 갑시다!
(3) 교회는 다니면서도 여전히 불신자들과 똑같이 사는 가짜들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1) 지옥에는“껄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2) 진작에 예수 믿을 껄! 교회에 열심히 다닐 껄! 죄짓지 말고 예수 잘 믿을 껄!
(3) 예수 안 믿고 죽으면은“끝장”납니다!
(4)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예수 믿는 것은 시급하고 절박 합니다!
(5) 내일 살아 있다는 보장 없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자 지옥!
(1) 우상숭배하고 귀신 섬기면은 자손 삼사 대가 저주 받으며, 우환과 사고가 끊이질 않고 결국엔 끔찍한 지옥에 떨어집니다!
(2) 그러나 예수 믿으면은 자손 천대까지 복 받고 그 좋은 천당 갑니다!
(3) 예수 믿으세요! 예수천당! 불신자 지옥!
(1) 성경말씀에도“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죽음 후에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죽음 후에“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심판이 있습니다!
(2) 지은 죄를 회개하고 예수 믿고 영원한 천국 갑시다! 예수천당! 불신자 지옥!
(1) 요한계시록 20장 15절 말씀에“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2) 당신과 당신 가족은 주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3) 지금 예수 믿고 있습니까!
(4) 그 어떤 세상일보다도 예수 믿는 것은 아주 급하고 절박합니다!
(5) 예수! 예수천당! 불신지옥! 예수천당! 불신자 지옥![29]
(1) 예수님 믿으면 행복해 집니다!
(2)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갑니다!
(3) 예수님 믿으면 가정이 회복 됩니다!
(4) 예수님 믿으면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5) 예수님 믿으면 놀라운 기쁨을 누립니다!
(6) 죄의 삯은 사망 입니다!
(7) 예수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천국 갑니다!
(8) 모든 고난과 불행은 죄 때문에 왔습니다!
(9) 예수님께서는 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31]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이『1. 방법에 대한 견해』와『2. 내용에 대한 견해』에 대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진리무장과 영성훈련이 부족함을 알 수 있다. 먼저, 진리무장이 되어 있다면 『2. 내용에 대한 견해』에서 보듯이 불신자가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성도들도 마지막 성화의 기회를 선용하고 대환난을 준비하며 천년왕국과 천국을 소망하도록 외치는 표어가 나와야 할 것이다.
또한 『1. 방법에 대한 견해』에서 보듯이 영성훈련이 꾸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므로 언어 생활, 내면 생활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됨으로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가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경 66권의 진리가 무장되기 위해서는 핵심적인 진리들이 정돈이 되어 있어야 한다.『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는 성경의 핵심 진리가 정돈된 책이다.
① 의미 : 성경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열쇠
② 열쇠 : 8가지 기본진리는 성경 제 1권부터 제 65권까지를 이해시키며 마지막 제 66권째인 요한계시록을 여는 8개의 열쇠이다.①①
③ 왜 그런가? :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연구가 성경의 열쇠인 이유는 지금이 말세이기 때문이다. 즉 마지막 때에 요한 계시록을 여시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④ 열쇠의 핵심 : (가) 휴거성도와 광야성도
(나) 재림의 임박성[32]
예수님 : ○○아! 네가 올 줄 알고 있었다.
종말론적 입문을 오늘부터 꾸준히 공부하자. 이에 앞서『성경의 핵심진리 강해』가 어떠한 진리인지 설명해 주겠다.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란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의 결론이다. 수많은 종말론이 네 주위에 있는 것을 너는 알 것이다. 그러나 이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통해서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재림을 바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이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듣게 될 터인데 그때에『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이렇게 증거하라.
“첫째, 이『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만이 여러분을 이 마지막 때에 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구속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모든 하나님의 섭리를 이『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통해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 앞으로 여러분이 갈 길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이 거치른 7년 대환난을 어떻게 겪어야 되는지를 알게 함으로써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는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된 진리입니다.
넷째,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입니다.『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로 인해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사랑을 베푸실 것입니다.
다섯째,『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는 예수님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하신 것처럼 이 복음이 여러분의 올바른 길 즉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이 될 것이며 이 복음이 진리 중의 진리이며 여러분에게 영생을 주는데 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여라. 그렇다 나 자신은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그 자체이다.
“여섯째, 여러분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많은 연단이 닥칠 때 이겨내기 위해서 이『성경의 핵심진리 강해』가 필요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려면 이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가 필요합니다.” 라고 말하여라.
위 여섯 가지에서『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는 지금까지 어떤 진리보다 바르고 참되고 거룩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며 성경의 맥락을 마지막 때에서야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 네가 할 일이 무엇이냐? 성경의 초점이 종말에 관한 것인데 너는 성경의 초점을 바로 아느냐? 또한『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는 빛 된 행실을 강조하는데 너는 그러하냐? 네가 할 일이 무엇이냐? 이 거룩한『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다루기 위해서는 피섞인 땀을 흘릴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일을 바로 찾고 가는 네가 되어라.[33]
먼저 영성이 무엇인지 살펴본 후에 영성 훈련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본다.
영성이란 육성(肉性)의 반대 개념으로서 영적 성품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영성이 성도들의 마음과 행실과 생활을 주장하는 가운데 주님의 형상을 빠르게 닮아가고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철저한 영성생활을 하게 되면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용기와 정직과 겸손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열매들 즉 빛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고 영적으로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빛과 어둠, 선과 악,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하나님 중심적인 것과 자기 중심적인 것, 상급받을 수 있는 행실과 상급받을 수 없는 행실 등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철저하게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34]
▶ 수도회는 영성훈련의 중요성을 잃어버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침투하기 시작하면 망해요. 이것을 언제나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일반 선교단체하고는 달라요.
수도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훈련입니다.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훈련을 게을리 하면서 다른 사업을 위한 모임을 가지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구심점을 튼튼히 갖춰야 해요. 우리 밝은빛 공동체도 영성훈련이 약해지면 금방 세속화됩니다. 아주 빨라요. 사람들은 세속화되기가 아주 쉽게 되어 있어요. 가끔 모임을 갖다보면 그런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연구회가 지난주에 며칠 동안 모임을 가졌는데 사상들이 변질되었더군요. 정욕이 무엇이냐에 대해 토론을 하는데 타락한 정욕, 순수한 정욕하면서 정욕 자체를 순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증거하는 데도 그게 반영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정욕이 죄성과 연합하여 불순하게 된다. 그리고 정욕 자체도 육적인 생활이지 영적인 생활은 아니다. 정욕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본능인데 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육적인 생활임에 틀림없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빛의 열매는 바로 영성생활이고 영적 열매인데 그것하고는 차이가 많다.”고 했어요.
그랬더니“그럼 불순한 정욕이란 죄성하고 연합해서 죄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리켜 말하겠네요. 정욕 자체는 육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군요. 성자들도 순간순간 육적인 생활을 할 수 있군요. 아브라함 같은 경우도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육적 생활이고, 우리가 식사할 때 반찬 맛이 좋다고 하는 것도 육적인 생활이네요.”라고 하더군요. 성인들도 육적인 생활이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생활과 육적 생활, 빛된 생활과 어두운 생활, 이런 차이점이 잘 구분되니까 그때 비로소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거예요.“우리가 이것을 세밀하게 토론하고 검토하지 않았으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갈 뻔했어요. 정욕을 마치 영적인 것처럼 착각해서 우상 섬기는 생활에 빠질 뻔했습니다.”라고 하세요.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35]
노방 전도자를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로 변화시킨 양날의 검과 같은『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를 통해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의 핵심적인 기본 진리를 무장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따라서『VI.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 견해』에서는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선용하고 마지막 성화의 기회를 선용하며 대환난을 준비하고 천년왕국과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도록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의 내용에 대한 견해, 삶에 대한 견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내용에 대한 견해에서는 노방에서 외치는 전도자들이 노방에서 외쳐야 할 진리를 기본적 진리와 요한계시록으로 나누어서 개론적으로 정돈할 것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견해에서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성화된 삶을 살았던 위대한 영성 지도자들의 견해와 특징에 대해 살펴본다.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본적 진리와 요한계시록 강해이다. 제1부에서 기본적 진리를 살펴보고 제2부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강해한다.
기본적 진리는 빛과 어두움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시하면서 속죄와 영적 성장 그리고 종말론적 기초 진리를 증거함으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천국을 건설하시는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본적 진리를 정확하게 알게 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예언의 말씀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을 얻게 된다. 기본적 진리는 핵심진리 입문, 교회시대의 이긴자들, 영계의 구조와 실상, 죄론, 속죄복음, 성화된 성도들의 생애, 영적 성장론 그리고 마태복음 13장의 비유해설 등 모두 8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러한 기본적 진리를 가지고 요한계시록을 체계적으로 해석한다.[36]
여기에서는 먼저 성경에 나오는 종말론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중요한 용어와 견해들을 설명하고 성경이 가르쳐 주는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알아본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목적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받게 될 상급에 대하여 살펴보고 연단에 대한 진리를 연구한다.[37]
이 과목에서는 교회시대의 이긴자들이 어떠한 성도들인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먼저 이긴자들의 어원과 이기는 자를 이긴자로 부르는 이유와 영적 싸움의 대상에 대하여 알게 된다. 또한 이긴자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본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흰옷을 입혀주고 생명과를 먹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진리 즉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말씀이나 심령의 할례 그리고 생명의 내주합일에 대한 진리가 정확히 깨달아지게 된다.[38]
이 과목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하고, 성도들이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장소 즉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있는 영계에 대하여 알게 해 준다. 또한 사후에 영혼들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과정을 통과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과목을 공부하게 되면 영계에 대한 정확한 견해를 가지게 되므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얻게 된다.[39]
이 과목은 인간이 에덴낙원에서 마귀의 유혹을 받아 영과 육체 가운데 마귀의 성질 즉 죄성이 들어왔고, 본능 즉 정욕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범죄할 때마다 악용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또한 타락한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성과 정욕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마음과 행실을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타락한 인간의 심령상태에 대하여 성막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죄성과 정욕에 대하여 자세히 연구하므로 빛의 열매와 어두움의 열매 즉 영적 행실과 육적 행실이 무엇인가를 자세히 알게 된다. 그러므로 이 과목을 연구하게 되면 선과 악,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회개생활과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을 얻게 된다.[40]
이 과목은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준다. 즉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하여 나타내신 속죄하는 제사를 모형으로 하여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드려진 속죄하는 제사에 대해 자세히 깨닫게 함으로써 성도들의 원죄와 자범죄를 속죄하는 은총과 진리에 대하여 알게 해 준다.[41]
이 과목은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성화된 삶을 살았던 성자 성녀들에 대하여 증거함으로써 예수님의 밝은 빛을 따라 사는 생활이 어떠한 것이며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게 되는 성도들의 행실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게 한다. 먼저 이러한 성도들의 생애와 교훈을 알아본다. 썬다 싱 성자, 프랜시스 성자, 요한 웨슬리 성자, 허드슨 테일러 성자, 하천풍언 성자, 로사 성녀, 리드비나 성녀, 베네딕또 성자, 분도 요셉 라브르 성자, 황후 구네군다 성녀에 대하여 증거한다. 따라서 이 과목은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성화된 성도들의 빛 된 삶과 충성스러웠던 사역에 대하여 알게 함으로써 자신의 부끄러운 생활을 참회하고 영적으로 큰 유익을 얻도록 한다.[42]
이 과목은 성도들이 구원받을 때 즉 출애굽할 때부터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까지 점진적으로 진보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성도들이 신앙의 목표와 방향과 성장과정에 대하여 자세하게 깨닫고 정진하도록 도와준다. 이 영적 성장론은 영적 성장에 대한 성경진리와 신학적인 사상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성경에 나오는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정을 분석하게 된다.
따라서 이 과목을 연구하게 되면 성도들이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진단할 수 있게 되며 목표를 향하여 달릴 수 있게 된다. 또한 환난 고통 가운데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성도들에게 승리하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치관과 지혜를 공급하며, 휴거 되지 못한 성도들에게 대환난을 통하여 익은 열매로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대비하도록 도움을 준다.[43]
이 과목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온 예수님의 일곱 가지 비유 즉 씨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가라지 비유, 보화 비유, 진주 비유 그리고 그물 비유의 말씀을 해석함으로써 앞에서 알게 된 기본적 진리 전체를 종합적으로 정돈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144,000과 666의 비밀을 쉽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44]
요한계시록 강해는 앞에서 연구한 기본적 진리 여덟 과목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이 연구를 통해서 독자들은 계시록의 난해한 부분들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추수하시고 심판하신 후 천년지상낙원을 세우시기 위해 재림하실 예수님을 대망하고 대비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45]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 동안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진리를 가르치고 영적으로 훈련시켜서 교회의 기초가 되게 하셨다. 그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을 때 높은 학벌이나 좋은 가문 그리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살던 분들이 아니었다. 또한 큰 권세나 명예 또는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비천했던 12제자를 통해서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건설사업을 추진하셨던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산상보훈을 비롯한 많은 영적 진리를 가르쳐 주시면서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사도들이 되게 하셨다.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식만 공급하신 것이 아니라 친히 빛 된 말씀대로 실천하면서 모범적인 행실을 보여주셨다. 어느 때는 굶주리기도 하셨고 핍박 자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박해도 받으셨고 훼방 자들로부터 수많은 괴로움을 당하기도 하셨지만 어떠한 고난 중에서도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구하셨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시고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시며 오직 사랑을 실천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대로만 생활하신 예수님의 행실을 보면서 제자들은 생명의 빛을 보았고 덕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모범적인 행실을 본받아 훈련과 교육을 철저히 받으면서 교회의 기초석으로 세워진 것이다.
이와 같이 천국건설을 위한 모든 일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의 죄악과 형벌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날부터 40일만에 승천하셨다. 그 후 열흘이 지난 오순절 날에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 강림하셨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시던 날 그 다락방에는 예수님을 잘 따르던 제자들이 모여서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교회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교회는 사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의 복음과 빛에 대한 진리와 빛 된 삶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증거하는 가운데 구원을 받고 빛을 따라 생활하는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켜 말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어둡고 부패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부터 예수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까지를 교회시대라고 부르는데, 이와 같이 기독교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 중에서 영적으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 즉 죄 문제가 해결되고 큰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사역을 충실하게 감당하였던 성화된 성도들을 통하여 교회를 이끌어 오신 것이다.
이제부터 성화된 성도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들이며, 가장 밝은 빛 가운데서 생활하고 충성스럽게 봉사한 성도들이다. 또한 언제나 용감하게 전도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았던 분들이며,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교통하였고, 모범적인 경건생활과 충성스러운 봉사생활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상과 교훈을 남긴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화된 성도들을 통해서 신령한 은혜의 강물을 교회에 공급하였으며 천국건설사업을 진행하셨다. 그리고 교회가 세속화되고 어두워질 때마다 밝은 빛을 비추게 하여 교회를 어둠에서 건져내시고 새롭게 하셨다.
이분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영 속에 내주한 분들로서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유혹과 고난이 많은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좁은 길을 선택하였다. 또한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온 사랑의 은사를 받아 이웃사랑을 철저하게 실천한 분들이었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분들이었으며, 순결한 삶을 살았던 성도들이었다. 이러한 성인들은 하나님의 천국건설사업을 위한 기둥 같은 일꾼으로서 성결은총을 받은 성도들, 영적 할례를 받은 성도들, 신인합일의 경지에 들어간 성도들, 이긴자들, 인맞은 종들, 익은 열매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 나온 ‘성인’이란 용어는 개신교가 생기기 전 카톨릭과 희랍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구교로부터 유래되었다. 그리고 이 성인이라는 말은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들어간 성도들이라면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명칭이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46]
대부분의 성도들은 현실에 매여 살고 있지만 성화된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을 철저히 살았던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땅에 속한 삶을 살면서 육신에 속한 애정과 욕망을 즐기면서 살고 있지만 이분들은 예수님께서 주실 칭찬과 상급을 바라보면서 하늘에 속한 삶을 살았다. 또한 현실적인 것에 매이지 않고 언제나 영적인 목표를 바라보면서 생활하였다.[47]
성화된 성도들은 이 세상의 풍속과 운명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였다. 또한 순탄한 환경 속에서의 유혹과 역경 속에서의 고난을 잘 극복하면서 빛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분들이다.[48]
성화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깨닫자마자 세상의 환경이나 인연에 매이지 않고 즉시 실천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깨닫고 확신한 그대로 생활하였으므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또한 천국건설을 위한 대표적인 예수님의 지체들로서 각기 자신의 분야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어거스틴 성자처럼 대학자로서 이단사설에 맞서 성경진리를 확립한 분도 있고, 웨슬리 성자처럼 수많은 교회를 개척하며 활발한 전도활동을 하신 분도 있으며, 하천풍언 성자처럼 구제와 봉사로 일생을 보내신 분도 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역을 하면서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철저한 절제와 수도적인 생활을 하면서 평생 거지로 살았던 라브르 성자 같은 분도 있다. 이와 같이 성화된 성도들은 각자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수많은 사역을 하였지만 모두 밝은 빛에 대한 성경 말씀을 철저하게 실천하면서 생활한 성자들이었다.[49]
성인들은 ‘자기’에 대하여 정확히 알았고 빛을 따라 살기 위하여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매일매일 죄성과 정욕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은 옛 사람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50]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닮게 하시고자 하시는 뜻에 가장 철저히 헌신한 사람들로서(롬 8:29-30) 온전한 행실 즉 완덕을 추구하였던 사람들이다(마 5:48; 벧전 1:15-16). 완덕에 이르는데 절대 필요한 것은 성령의 도우심과 경건한 행실이다. 이 성도들은 언제나 완덕을 향해 정진하였고 복음삼덕(福音三德)을 일생동안 철저하게 실천한 분들이다.[51]
[참고사항]복음삼덕
가) 청빈
성 베르나르도는 “예수님의 일생은 탄생하실 때부터 가난하셨고, 그 생애 동안은 더욱 가난하셨고, 십자가에서는 더없이 가난하셨다”고 하였다. 타락한 인간의 모든 생활은 ‘부’를 소유하려는 탐욕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모든 불행과 화가 시작된다. 기독교는 ‘청빈(淸貧)의 정신으로 승리해야 한다. 기독교의 길은 청빈의 길이다.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겟세마네 동산을 지나 골고다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주님으로부터 청빈의 정신과 생활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52]
나) 순결
하나님을 향한 순결(純潔)이 신앙생활의 기초이다. 성경에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마 5:8). 성도들은 정욕과 죄성의 지배를 받아 더러워진 마음과 행실을 철저히 참회하고 꾸준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만 순결해질 수 있다. 특히 남녀간의 순결은 영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잘 지켜야 될 것이다.[53]
다) 순종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順從)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가장 영웅적으로 순종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괴로움을 인내해야만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부분적으로만 순종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기의 생각이나 의지를 온전히 버리고 순종해야 한다. 순종을 잘하는 사람은 빠르게 성장된다. 성령님께서 순종을 잘하는 영혼 속에서 자유롭게 역사하신다.[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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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핵심진리 강해 (Q.T-1)
[1] 메시아닉쥬(Messianic Jew 또는 메시아닉 쥬다이즘(Messianic Judaism)은 유대인과 유대교도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한 그리스도로 믿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대인 인구의 2%가 메시아닉쥬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최근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증가하고 있다.
[2] 대환난 중, 후 삼년 반 환난이 시작될 때 나타나며 자칭 재림 메시아, 만왕의 왕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미혹하고 핍박하게 될 것이다.
[3] 기독교문서선교원, [앞의 책], pp.34-39.
[4]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가리켜 말하며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이 있다. 공중강림은 예수님께서 대환난 직전에 공중으로 강림하시는 사건이며 그때 휴거사건이 일어날 것이다(살전4:16-17). 지상재림은 예수님께서 대환난이 끝날 무렵에 지상으로 재림하시는 사건인데 그때 예수님께서 백마군대와 함께 내려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슥14:4; 살전3:13; 살후2:8; 계19:11-12).
[5] 예수님의 공중강림과 성도들의 휴거사건이 지난 직후부터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까지의 7년 대환난을 가리켜 말한다며 전 삼년 반 환난과 후 삼년 반 환난으로 나누어진다.
[6] 메시아왕국이라고도 한다. 예수님께서 아마겟돈이라는 곳에 모여 전쟁을 할 때 갑자기 예수님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시면서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과 군대들을 멸망시키는 심판을 가리켜 말한다.
[7] [앞의 책], pp.40-44.
[8] 마태복음 25장 열 처녀의 비유
[9]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
[10]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의 비유
[11] 공용복, [축복을 전하라] (경기: 성결출판사, 2006), pp.214-215.
[12] [앞의 책], pp.235-236.
[13] [앞의 책], p.247.
[14] [앞의 책], p.260.
[15] [앞의 책], pp.261-262.
[16] 공용복,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 pp.121-122.
[17] [앞의 책], p.119.
[18] 공용복, [성령의 열매], pp.39-44.
[19] 공용복,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 pp.57-58.
[20] 성도가 성령님의 도우심과 보혈의 은총을 힘입어 구원받은 경험 즉 신앙생활의 출발점에 대한 모형이다.
[21] http://cafe.daum.net/lks3927/9zFV/5
[22] 공용복, [축복을 전하라], pp.179-180.
[23] http://www.cts.tv/prog/program/happy/content.asp?DPID=97711&PID=P4
[24] 마귀가 지배하는 죄악세상의 마지막 때 즉 이 세상의 끝을 가리켜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죄악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되는 대환난 때를 가리켜 말한다.
[25]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실 때 정결해진 성도들이 부활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으로 이끌려 올라가는 사건을 가리켜 말한다. 이것을 ‘들림받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26] 기독교문서선교원, [앞의 책], pp.44-47.
[27] [앞의 책], pp.49-51.
[28] 노방 전도 26년 경력.
[29] http://cafe.daum.net/NobangShouters/9rU7/6
[30] 노방 전도 29년 경력
[31] http://cafe.daum.net/NobangShouters/9rU7/7
[32]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 (Q.T-1), p.3.
[33] 성경의 핵심진리 강해 (Q.T-1), pp.5-6.
[34] 공용복,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 pp.10-11.
[35] 공용복, [수도생활] (경기, 성결출판사, 2007), pp.20-21.
[36] 기독교문서선교원, [앞의 책], pp.22-23.
[37] [앞의 책], p.23.
[38] [앞의 책], pp.23-24.
[39] [앞의 책], p.24.
[40] [앞의 책], p.24.
[41] [앞의 책], pp.24-25.
[42] [앞의 책], p.25.
[43] [앞의 책], p.25.
[44] [앞의 책], p.26.
[45] [앞의 책], p.26.
[46] [앞의 책], pp.330-332.
[47] [앞의 책], p.332.
[48] [앞의 책], p.332.
[49] [앞의 책], pp.332-333.
[50] [앞의 책], p.333.
[51] [앞의 책], p.333.
[52] [앞의 책], p.334.
[53] [앞의 책], p.334.
[54] [앞의 책],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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