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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첼린지드 (Physically Challenged)/육체의 반항
민영이는 무려 9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이제 며칠 있으면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진단도 받았다. 의족을 착용하고 목발로 걷는 것도 이제 많이 편해지고 숙달이 되었다. 그러나 의사가 권하는 두 발 모두에 의족을 착용한다는 것이 한쪽 발에만 의족을 착용한 것보다 더 불편하다는 사실을 민영이는 스스로 깨달았다. 그래서 민영이는 한쪽 발에만 의족을 착용하고 목발 두 개를 사용해서 운신하곤 했다. 의족을 착용한 한쪽이 아프면 다른 쪽 의족을 교대로 달고 목발 두 개를 이용해 빠르지는 않지만, 반듯한 자세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자연스러운 행동에 의사도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한발이든 두 발이든 편하게 의족을 착용하고 병원 구석구석을 다니는 민영이의 모습은 딱히 불행해 보이지도, 안쓰러워 보이지도 않은 그저 남들이 인식하는 지체 장애인일 뿐이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 있었다. 민영이가 움직이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그 무렵에 의사의 허락을 받고 외출을 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는 집에 가 보고 싶었다. 너무 집을 오랫동안 비워두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슬레이트집은 평소보다 더 황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많은 우편물이 편지함에 있었고, 그리고 현관문 앞에는 쪽지가 하나 붙어 있었다. 옆방에서 자취하던 학생들이 돌아간다는 내용과 밀린 방세는 통장에 넣어 두었다는 짧은 메모였다. 마당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흔적이라도 보이듯 보이지도 않던 동네의 야생고양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놈들을 몰아내고자 목발 하나를 들어 흔들어 봤지만, 그놈들은 여유 있게 뒷모습을 보이며 쉬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눈앞에 있는 고양이조차 쫓아낼 수 없는 처절한 몸뚱이가 그렇고, 수도꼭지를 틀어 온 마당을 물로 씻어내야 하는 쉬운 노동력도 마음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이 민영이의 의지와 관계없이 한숨으로 되돌아 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엉금엉금 기어서 방안으로 들어갔다. 메퀘한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서 나는 냄새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냄새는 오랫동안 전원을 연결해 두고 나왔던 노트북의 밧데리가 터져버린 흔적이었다. 또 엉금엉금 기어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노트북의 전원 코드를 뽑아 마루 쪽으로 밀어냈다. 딱히 대단한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속도가 느려터진 노트북이라 새것으로 장만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새 노트북을 사면서 복구할 수 있다면 자료라도 다운받고 버려야 하기 때문에 당장 버릴 수는 없었다. 없는 동안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남향집이고 커튼이 없는 방이어서 그런지 한겨울에도 방안의 공기는 항상 따뜻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노트북 밧데리가 터져버린 이유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침대에 벌렁 누웠다. 천정을 쳐다보고 누웠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 있다가 엉금엉금 기어서 현관 앞에 세워둔 목발을 집어들고 학생들이 세들어 살았던 방으로 가 봤다. 자취하는 학생들이었지만 그들만 통행하는 작은 쪽문이 바깥으로 나 있어서 현관을 통행하지는 않았다. 문이 잠겨 있지만, 현관 T.V 위에 있는 보석함에서 열쇠를 꺼내어 방문을 열었다. 방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4개의 방중에 두 개는 민영이가 사용했고, 두 개는 항상 세를 주고 있었던 까닭에 자주 들어와 보지는 않았다. 또 다른 방도 가 봤다. 그 방도 역시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곳에는 쪽문으로 드나들 때 사용했던 열쇠 두 개가 방 중앙에 놓여 있었다. 퇴원을 하면 제일 먼저 복덕방에 들러 방을 세 놓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그 방을 나왔다. 민영이가 사는 집은 대학교 근처이기도 했지만, 또 술집도 많아서 어렵지 않게 세가 나가곤 했다. 그러나 더러 있는 술집 아가씨들은 방을 세 내 주어도 그렇게 오래 있지를 않았다. 또 그녀들은 너무 늦은 밤에 들어오기 때문에 수면을 방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두 방이 모두 학생이면 좋았다. 학생들은 한번 계약을 하면 보통 한 한기를 꾸준히 세들어 있고 길게는 일 년 넘게 방을 빼지 않고 살았다. 민영이는 주방 쪽으로 몸을 움직여 다락을 쳐다봤다. 그곳에서 노트북을 담을 수 있는 가방을 꺼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평소에 작은 의자 위로 성큼 올라가 다락문을 열고 쉽게 꺼냈던 그런 행동도 이제는 쉽지 않았다. 겨우 탁자에 의지해서 의자에 올라선 다음 다락문을 열고 노트북 가방을 꺼냈다. 병원에 있을 때는 전혀 노트북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장에 운신할 능력도 없었지만, 한동안 빠져 있던 스스로의 자괴감은 노트북을 찾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는 병원생활이지만 심심할 때는 노트북으로 인터넷 웹서핑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로 산 노트북에 터져버린 노트북의 자료를 모두 내려받을 심사로 그는 그렇게 했다. 창문을 닫고 그리고 집안을 대충 흩어보며 대문을 잠그고 골목길을 걸어 나왔다. 재활훈련을 받을 때 어깨에 가방을 메고 걷는 연습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와 다르게 어깨에 압박이 왔고 걷는 게 자연스럽지 못했다. 골목길은 길지 않았지만, 평소와 다르게 힘이 들었다. 큰 길가에 나와 있지만, 택시는 쉬 오지 않았다. ‘차도 한 대 구입하기는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을 때 멀리서 차가 한 대 오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빈 택시임에도 차는 민영이 앞을 통과해서 그냥 지나쳐 버렸다. 고개를 갸웃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또 멀리서 택시가 한 대 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필사적으로 목발을 들어 올리며 운전기사가 볼 수 있게 신호를 보내봤다. 그러나 그 차마저 속도를 더 내고 민영이 앞을 지나쳐 버렸다. 그때야 ‘아-.’ 하고 자신이 손님으로는 많이 부적절한 장애인임을 느꼈다. 서글퍼졌다.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살아야 해. 씨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을 때 민영이 앞에 택시가 하나 섰다. 늙은 기사였다. 택시를 타는 것도 불편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늙은 기사는 다른 기사와 다르게 문을 열고 나와 직접 뒷문을 열어주면서 편하게 탈 수 있게 몸을 부축해 주었다. 그리고 긴 목발을 뒷좌석 안으로 밀어 넣어주며 마치 군대의 상사를 모시듯 깍듯한 친절을 보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어디로 가께라?”
“예. 노트북 하나 살라고 그란디 쪼깐 멀어도 존께 좀 좋은 데로 갑시다.”
“하이마트로 가실라? 거가 쪼깐 싸다고 하던디.”
“예. 그리 갑시다. 빨리 가야쓴디 택시를 못 잡아서 거그서 한참 시리고 있었소.”
“왜라? 거그는 택시가 자주 오는 동넨디?”
“씨발 새끼들이 짝대기 짚고 서 있응께 걍 가븝디다. 병신된것도 서러워 죽겄는디, 읎시 보였는가 개새끼들이 속도를 더 내고 자빠졌드랑께요.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가꼬 도와주고 한께 내가 쪼깐 감동 묵어블락했소.”
“쯧쯧쯧……. 나쁜 새끼들……. 아무리 회사 택시를 모는 자석들이라고 해도 우째 장애인을 보고 걍 지나치까이. 그런 새끼들은 지질이도 못난 새끼들이라 평생 운전기사로 썩을 것이요. 그라고 인자 택시 탈라믄 걍 회사에 전화하쇼. 장애인들만 특별히 서비스하기도 하고 또 짐이 많고 급하믄 장애인복지센터 같은디서 직접 나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그란디. 아제는 그것을 몰랐소?”
“아 그라요? 내가 이몬양 이 꼬라지 되븐지가 얼마 안된께이…….”
“요새는 장앤인들 편의 사항이 무쟈게 많이 좋아져가꼬 머리만 잘 쓰믄 그라고 불편하지는 않을것인디, 잘 연구해 보쇼. 잘은 몰라도 컴퓨터 그것도 잘 하믄 장애인들은 싸게 살 수 있는가 몰겄소이? 차는 혜택을 많이 준께 싸게 사고, 그라고 연료도 까쓰를 쓴께 무쟈게 혜택을 많이 준디이.”
택시 기사는 참 친절했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친절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어떻든 세상은 돌보다 쌀이 더 많은 보기 좋은 밥상이었다.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또 하나의 경험을 하나씩 배우는 것이었다. 남을 탓할 일도 아니요 원래부터 세상은 그랬던 것이다. 그 택시 기사는 민영이가 내리기 쉽게 하이마트의 입구 쪽 가장 가까운 곳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내려 민영이가 쉽게 내릴 수 있게 목발을 꺼내 주고 어깨를 잡아 주었다. 목발을 짚고 입구에 들어서자 친절한 아가씨가 뭘 사러 왔느냐고 물었다. 노트북이라는 소리에 이 층으로 올라가라고 친절한 안내를 해 주었다. 계단을 처음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힘들었다. 뒤뚱거리고 걷는 민영이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쉽게 갈 수 있도록 길도 터 주고 민영이가 움직이는 반경을 넓혀주었다. 노트북의 종류는 많았다. 친절한 직원은 노트북의 사양과 가격, 그리고 인터넷의 속도 따위로 제품의 장점들을 설명해 주었다.
“근디..... 노트북도 터지요?”
“예. 터지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주로 외국산이 많이 터집니다. 국산은 자주 터지지 않지만, 최근에 국산도 한번 터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특히 밧데리는 꼭 정품을 사용하셔야지 비품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사고를 당하곤 합니다.”
“금메이...... 사실은 내가 지금 노트북이 터져브러가꼬 새것으로 살라고 그라는디……. 이거 자료는 어치케 살릴 수 있을랑가 모르겄네이?”
“그래요? 노트북 가져 오셨어요?”
“이거여. 사면서 좀 으찌케 해 돌라고 부탁할라고 가꼬 왔는디.”
민영이는 어깨에 걸려 있는 가방을 점원에게 주었다. 점원을 가방을 열어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역시 밧데리가 비품이네요.’ 하는 소리와 함께 하드디스크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분리시킨 그 하드디스크를 다른 잭과 연결해서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에 연결했다. 몇 번 키보드를 두들겨 보더니 밝게 웃는 표정이 보였다.
“이거 사용 중에 터지지는 않았죠? 보니까 안전모드에서 터졌네요. 자료는 살릴 수 있겠습니다.”
“그래? 다행이네이? 그 작것이 집을 비운 사이에 지 혼자 저 지랄을 했당께. 불 안 난 것만도 천만다행이여.”
“노트북은 데스크톱 컴퓨터와 달리 밧데리가 있어서 사용하고 난 후에 노트북 자체를 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전원을 뽑아 두어야 합니다. 사용하지 않아도 자체 방전이 되고 그러면 자동으로 계속 충전을 하거든요. 또 비품을 쓰셔서 평소에도 열이 많이 났겠는데요?”
“금메 그것이 나는 다른 노트북도 다 그 정도는 열이 나는 줄 알았제. 그라고 터져 자빠질 줄 으치케 알았겄어? 한겨울에도 무릎에 놓고 쓸 때는 밑에가 따땃했응께.”
“사양도 너무 오래된 것이라 바꾸기는 바꿔야겠습니다. 요새 무선랜이 대세거든요.”
“무선랜? 그것이 뭐여?”
“인터넷 선을 연결하지 않고도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물론 그런 장치가 설치된 공간이어야 하지만 뭐 대학교 근처나 시내 중심가는 이미 다 설치가 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집에도 무선랜을 설치하면 선이 필요 없습니다.”
점원의 장황한 설명을 듣고 민영이는 그 자리에서 노트북을 샀다. 기본적인 프로그램과 그리고 폭발해 버린 노트북의 자료를 모두 내려받은 다음에 병원으로 가져다주겠다는 친절한 직원의 말에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해 놓고 계산을 했다. 일시불이었다. 비록 몸은 망가졌지만, 민영이는 부자다. 그것은 많은 보험금을 탔기 때문이다. 보험회사와 실랑이를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살아가는 희망이 돈밖에 없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많이 다퉈가면서도 결국 최고액수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날, 택시를 타는 데 힘이 들어서였을까? 민영이는 병원에 돌아오자마자 자동차 대리점에 전화해서 차를 사기 위해 사람을 불렀다. 병원으로 찾아온 판매원은 여느 판매원처럼 친절했다.
“애기들 빠끔살이 하는 것 멩치고 째깐한 차를 사고 싶은디.”
“편할 데로 하십시오. 작은 차도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요.”
“몸이 부실한께 걍 주차하기 쉽고 쫍은 골목길도 들어가고 할 수 있으믄 좋은디. 그라고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서 양손으로만 운전할 수 있는 차도 멩그러 준담서?”
“예. 좀 시간이 걸리지만, 장애의 정도에 따라서 맞춤형으로 제작해 드립니다.”
“그라고 옆에 보조석 의자는 그대로 놔 둬블고 뒤에 의자는 왕창 띠어 내블믄 좋겄는디이. 왠고하믄 파이브도아 뒤쪽 문을 열믄 쉽게 거그다 짐을 싣고 내리고 할 수 있게 말이여. 내가 휠체어를 거그다 좀 싣고 뎅길라고 그란디. 다른 차 트렁크 멩키로 생겨블믄 내가 들어 올리기가 심이 들것 같응께 하는 소리여.”
“아- 벤 승용차 말씀이시죠?”
“그러제 그러제, 맞어 벤 승용차.”
“그것도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차 가격은 장애인이라고 해서 많이 우대를 해 줬다. 특별소비세, 교육세면세, 특별소비세, 심지어 취득세와 등록세 일부도 면세해 주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장애인 자동차증이 발급되면 공용 주차장이나 혼잡통행료 따위가 많은 혜택을 준다고 했다. 또 장애인 자동차는 가스로 운행이 되기 때문에 많은 절약이 된다고 했다. 견적서를 만들어 가면서 차를 팔러온 대리점 직원은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묻지도 않았지만, 장애인 고객은 평생 고객이 된다는 사실도 이야기했다. 그래서 꼼꼼하게 장애인 고객은 많은것을 챙겨 주고 그 기록도 회사에 남겨 놓는다고 했다.
“그란디, 그런차는 그라믄 발밑에 암것도 없는가?”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밑에 가속페달도 있고 브레이크도 있고 다 있어요. 의족으로 운전하실 수 있으면 핸들에 붙어 있는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비장애인 차보다 더 섬세하고 만들어져 나옵니다.”
“보험은?”
“그런 것은 다 똑같아요. 그거 아세요? 보험회사에서는 장애인이 가장 큰 고객이랍니다. 장애인들은 워낙 조심해서 운전하기 때문에 사고가 별로 없다잖아요.”
“금메 그라기도 하겄네이? 글믄 차는 언제 나와?”
“전액 현금으로 사셨으니까 제가 독촉을 해 보겠습니다.”
“내가 인자 얼마 안 있으믄 여그를 떠야 써. 긍께 여가 있는 짐들을 이왕이면 그 차에 싣고 그라고 가고 싶은디이. 될랑가 몰겄네이?”
“야튼 최대한 빨리 나올 수 있도록 압박을 해 볼게요. 늦으면 다른 회사 차를 구입할지도 모른다고 거짓말을 좀 해야겠네요.”
“좀 그렇게 해줘.”
“장애인 등록은 하셨어요?”
“..... 인자 본께 병신되야브렀다고 국가에 신고도 안해브렀어야. 웜메 이것은 또 으찌께 하는 것이여? 동사무소 가서 하는가?”
“그것도 제가 해 드릴께요. 원무과 들려서 서류 몇 장 가져가면 됩니다.”
“아이고, 고맙네. 차 한 대 삼서 내가 무쟈게 부려 묵어블그만이?”
“괜찮아요. 항상 그랬는걸요 뭐.”
차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흰색이었다. 앞유리에는 장애인 등록증이 붙어 있었고 민영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복잡하고 섬세했다. 핸들은 마치 오토바이 핸들처럼 되어 있었다. 차를 판매한 직원은 민영이를 옆에 태우고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주었다.
“아저씨. 다른 건 운전을 해 보셨으니까 다 되는데요 처음에는 브레이크 잡는게 항상 서투르거든요? 왼손에 붙어 있는 게 브레이크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오른손은 오토바이와 똑같은데, 급하다고 핸들을 당기면 안 되니까 항상 조심하세요. 지금 아저씨가 오른손으로 잡은게 쉽게 말해서 액셀러레이터와 똑같아요. 그게 바로 이 차의 가속장치입니다. 장애인 차는 팔고 나서 한 달 안에 사고가 없으면 끝까지 사고가 없다고 하거든요. 보통 사고가 나면 꼭 한 달 안에 납니다.”
“아따 뭔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해브요이? 아, 내가 이레봬도 예전에 택배 회사에 있었당께. 차보다 오토바이는 더 선수여. 선수.”
“아- 그러셨어요? 그렇다면 평생 사고 없이 잘 타시겠네요. 그래도 항상 조심하세요. 그럼 한번 몰아 보시렵니까? 제가 옆에서 도와 드릴게요.”
“그라까?”
여느 차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시동을 걸고 그리고 기어를 변경해서 천천히 오른손 핸들을 돌려 봤다. 차가 천천히 움직인다. ‘왼손은 항상 브레이크 잡을 준비를 하세요.’ 하는 판매원의 조언이 없었다면 정말 브레이크를 잡지 못할 뻔했다. 병원 마당을 두 바퀴 돌았다. 그리고 병원 정문을 나와봤다. 병원을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 돌고 마지막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차를 주차했다.
“아저씨 하시는 것 보니까 조금만 몰고 다니시면 운전은 무난히 하시겠네요.”
“이것이 오토바이랑 영- 한가지만.”
“조심하시고, 나중에 좀 큰 차가 필요하시면 또 연락 주세요.”
“아믄, 살다가 형편 풀리고 하믄 또 차도 바까야 쓴께 그때는 내가 또 연락을 드리께라.”
“자동차 등록증에 제 명함을 함께 넣어 두었으니까 필요하시면 꼭 연락 주세요.”
“알았당께 그라네.”
“아 그리고, 장애인들은 차를 전진 주차하는 게 좋습니다. 항상 트렁크를 열고 닫고 할 일이 많으니까요. 뒤칸이 시원하게 터져서 좋죠?”
“병신 되고난께 별것이 다 틀려지그만이? 듣고 본께 것도 맞는 말이긴 하네이.”
병원을 퇴원할 때는 많은 사람이 전송해 주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딱히 부탁도 미리 했지만, 택배 사무실 소장은 바쁜 중에도 직원들과 함께 병원으로 찾아와 그동안 민영이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모두 차에 실어 주었다. 민영이를 옆에서 돌봐주었던 간병인은 눈물까지 흘렸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자기가 병구완했던 환자 중에서 민영이가 최고라고 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었다. 중환자실에 있었던 처음 두 달을 빼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간병인 생활을 하면서 마치 직장인처럼 출퇴근해본 것도 처음이요 오랫동안을 수입 걱정 없이 일해 보는 것도 처음이라고 했다. 보통의 간병인들은 길면 보름 그리고 짧으면 며칠만을 일하고 또 다른 환자에게 간다고 했다. 그러나 민영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러 보험회사에서 간병인이 꼭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그는 바득바득 필요하다고 우겼다. 그러나 보험회사 직원이 돌아가고 나면 간병인에게 집에서 쉬었다가 오라고 퇴근까지 시켜 버렸다. 그것은 어찌 보면 순전히 민영이 자신이 그저 그렇게 해 보고 싶은 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의 말로는 집에서도 자기 같은 간병인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동사무소에 부탁하면 간병인이 아닌 활동보조인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꼭 자기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와서 도와준다고 했다. 그러나 수급인이 내는 돈은 없다고 특별히 조언을 해 주었다. 사실 집에 도착하면 당장 필요한 사람은 간병인이 아닌 파출부 같은, 살림을 거들어 주어야 할 사람이었다. 어떻든, 민영이가 병원을 떠나는 날 옆에서 간호했던 수간호사며 함께 있던 많은 사람이 민영이의 퇴원을 축하해 주었다. 택배 사무실 소장은 각별했다. 직원 두 사람을 붙여 집에 도착하면 차에 있는 살림도 꺼내서 집에 넣어주고 거들어 주라고 시켰다.
“그라고 뿌사지고도 또 차부터 사브렀냐? 징그럽도 안해?”
“근동에 갈라고 그래도 차 없으믄 안된께 하나 장만했소. 그리고...... 내가 택시를 몇 번 타본께..... 호로새끼들이 병신 취급해븐께 서러워서 안되겄습니다.”
“크크크..... 니.... 병신 맞어 임마? 인자 세상일이 좀 꼬아도 니가 참아사 쓴당께.”
“아따 소장님까지 그라요?”
“맘 같애서는 니 하고 어디 물 좋은디 가가꼬 술이나 한잔하믄쓰겄그만, 언제 날 잡아라. 니가 술을 묵어도 되는지 어짠지도 모르겄고 한께 그때 한번 보자.”
“의사는 술 못묵게 하든디....... 묵어도 한 일 년 있다가 묵으라고 그랍디다.”
“지랄들 한다. 술도 음석인디 믓을 못 먹어야? 몸에 안 좋은 술, 담배는 니미헐 의사 놈들이 더 쳐묵고 뎅기드라. 니는 택배 안 해봤냐? 병원에 우리가 을메나 많이 술 배달을 해 주고 뎅기냐? 기연가미연가[其然가未然가]인것이여. 즈그도 그것이 긴가민가 함서 걍 환자들 한티는 그저 못 처묵게 할라고 그란것이제.”
“언제 날 잡아 보쇼. 먹고 죽기야 하겄소. 나한티 술 따라 줄 년도 읎고, 뭐 소장님이 한잔씩 따라주믄 또 마셔야제.”
“그래. 팔 병신은 아닌께 나도 니 술잔 한번 받아보고 싶다.”
“흐흐흐.... 아따 소장님 자꼬 병신병신 하덜마. 거 듣는 병신 기분 안 존께.”
“그래 알았다. 니가 삭신이 그래논께 웃음이라도 잃을까 싶어서 자꼬 웃길라고 그래 봤다. 그래도 표정이 그케 나쁘지 않은께 나도 기분이 좋다. 잘 가봐. 연락하고.”
손을 흔들며 모두가 나를 배웅해 줬다. 특별히 같이 근무했던 택배 직원이 한 사람은 신기하다며 동료의 차를 타지 않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민영이가 앞장서 갔고 그리고 동료 하나가 민영이의 차를 뒤따랐다. 상큼하고 기분이 좋다. 실로 오랜만에 차를 몰고 시내를 질주하는 그 기분은 병원에서 있었던 때와 사뭇 달랐다. 집에 도착하자 택배 직원들은 짐을 모두 내려 집안으로 옮겨 주었다. 후배격인 직원 하나는 전기밥통에 밥을 해 주고 가겠다고 했지만, 민영이는 손을 흔들어 만류했다. 이곳까지 따라와 준 그 친구들에게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고 권했지만, 택배 직원들은 극구 사양하고 모두 돌아갔다. 마당에 덩그렇게 놓인 전동 휠체어에 앉았다. 그리고 마당을 몇 번 왔다갔다해 봤다. 보일러실이며 밖에 있는 화장실 문을 열어 보았다. 구석구석 손 봐야 할 곳이 많았다. 특히 모든 출입구의 턱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과 같이 딸린 목욕탕,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 그리고 대문에 있는 턱까지 모두 없애지 않으면 전동 휠체어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전동차를 현관문 앞에 세워두고 목발에 의지해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차를 몰고 제일 먼저 들른 곳이 복덕방이었다. 어쨌든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방도 다시 세를 놓고 그리고 민영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거리도 찾아봐야 했다. 복덕방 주인은 놀란 듯 토끼 눈을 하고 세 놓는 것보다는 변해버린 민영이의 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아 씰데없이 아픈데 쑤시지말고 지금 방 두 개 비었응께 빨리 사람이나 잡아 보쇼이.”
“지금은 학생이 읎어. 학기초에 방을 잡아블믄 또 한동안 있어야 쓴께.”
“근다고 방을 저라고 비워두믄 쓰겄소? 야튼 책임지고 사람을 들라보쇼.”
“쩌참에 가시나 하나가 방을 도라고 하기는 했는디, 여작 방을 구했는가 어쨌는가 그것을 모르겄네?”
“술집 가이내요?”
“하는 품새가 그쪽 같기는 했는디.”
“아 그거라도 잡아주쇼. 은행 이자도 내야쓰고 한디 있는 방구석 어따 팔아도 팔아야제.”
“그라믄 지금 연락해 보끄나?”
“해보쇼 미. 지가 일요일이고 낮인께 잘하믄 있겄제.”
나중에 연락해 주라고 이야기를 해 놓고 민영이는 복덕방을 나왔다. 차를 몰고 가는 동안 교회 앞을 지났지만, 민영이는 교회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온몸이 부서진 자신의 모습을 혹시 아는 신도들이 볼 것 같아 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곧장 철물점으로 향했다. 철물점 주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복덕방 주인처럼 민영이의 무너진 온몸을 신기한 동물을 보듯 구석구석 눈 화살을 쏘아댔다. 슬레이트가 부실하면 고쳐 주기도 했고,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꿔주기도 했던 친절하고 씀씀이 좋은 철물점 주인이었다.
“으짜다 그리 됐어?”
“교통사고를 당해브러가꼬 다 뿌서져브렀소.”
“택배 회사 였제? 대차나이...... 거가 만날 차 몰고 댕기고 오토바이 타고 뎅기고 한께 좀 조심 해사 쓸것인디....... ”
“건 그렇고, 아자씨 낼 와가꼬 집구석에 붙어 있는 문지방 텍아리를 전부 밀어브러야 쓰겄소야. 집에 휠체어가 있는디, 그것이 안쪽으로 들어갈랑께 아조 안건린데가 없네. 대문 턱하고, 그라고 목욕탕, 현관, 당장은 요 세군디만 뿌사블고 세멘을 좀 발라야 쓰겄는디 낼 오실라?”
“믓을 낼가? 지금 가서 조져블제. 텍아리 없애는 것이 일이여? 다가네하고 함마 하나 들고 가서 살살 깨 내고 시멘트 이겨서 볼라블믄 당장 낼 아침에 발로 밟아도 쓸 것인디. 먼저 가 있어. 내가 공구랑 모래 좀 섞어서 가꼬 갈랑께.”
“아따 아자씨 성길 칼칼하네. 그리 해 주믄 나사 고맙제. 대문 열려 있응께 마트에 들렸다가 바로 갈랑께 내가 없어도 일은 시작 해브쇼이?”
“가서 일 보고 천천히 와. 대충 챙겨서 바로 갈랑께.”
민영이는 좀처럼 대형 마트를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재래식 시장에 더는 갈 수 없었다. 그곳은 차가 들어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주차장 시설이 있는 마트로 갔다. 그리고 당장 생활해야 할 필수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어차피 새로운 직장이나 다른 일거리가 잡히기 전까지는 집안에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장을 봐 두어야 했다. 라면이며 생전 사지도 않았던 과자 따위를 샀다. 그리고 일 년 있다가 마시라고 했던 의사의 권유도 무시하고 밀고 다니는 카트 안에 캔 맥주 세 개를 담았다. 장을 보기도 쉽지 않았다. 두 팔로 목발을 지지해야 하고 또 물건을 카트에 담으면 한 손으로 그것을 밀어야 했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사람들은 움직일 때마다 민영이 주위를 넓혀주고 보이지 않게 배려를 해 주었지만, 카트를 밀고 당기는 일은 온전히 민영이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에 마트에서 물건을 사는 일도 예전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낑낑거리듯 카트를 밀고 계산대에 가서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일 난감한 것이 바닥에 물건이 떨어질 때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잽싸게 도와주기는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집어 올리는 기술은 재활훈련에서도 해 보지 않았다. 언제나 민영이 주위에는 간병인 있었고 또 물건을 떨어뜨려 본 적도 없어서 많은 사람 앞에서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겨우 물건값을 계산하고 그 물건을 봉지 봉지에 나누어 담고 차에 옮겨 싣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트에서 돌아와 겨우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여러 봉지 중 하나만을 들고 집에 왔을 때는 철물점 아저씨와 예쁜 아가씨 한 사람이 있었다. 민영이는 그녀가 세들어 살 아가씨임을 직감했다.
“아가씨 집 보러 오셨소?”
“예.”
“집도 집인디, 저그 내 차에 가가꼬 봉다리 몇 개만 좀 이짝으로 가져다 줄라? 이놈의 목발을 짚고 서 있으믄 여러 개를 한꺼번에 못 가져온께 그라요.”
옆에서 정으로 턱을 깨고 있던 철물점 아저씨가 끼어 들었다.
“믓이 물견이 많아?”
“봉다리 두 개 있는디 한목에 다 못가져 온께 그라요.”
“내가 가꼬 오까?”
그러나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철물점 아저씨보다 아가씨의 동작이 더 빨랐다.
“차 문 열렸어요? 제가 가져올게요.”
“차 문 닫고 키 뽑아 와브쇼이?”
“예.”
그녀는 상냥하게 웃으며 골목으로 걸어나갔다.
“아따 좀 돌아 댕겼드만 뻐쳐 죽겄네. 그나저나 낼은 마르겄소?”
“안 그래도 경화제를 좀 바-짝 넣어가꼬 깡깡하게 굳게 만들어사 쓰겄그만?”
“왜라?”
“아 이 위로 무건 휠체어가 댕긴당께 푸석푸석 쪼개지기 시작하믄 금방 거가 물차고 깨져븐께 그라제. 좀 딴딴하게 공구리를 쳐야 쓰겄어.”
“아제가 손끝이 매워서 참 일을 잘 하요이? 그래 주믄 나사 고맙제.”
“지랄, 성냥쟁이 사십 년인디 이런 일머리 모르믄 쓰겄어? 공사는 한번 할쩍에 다부지게 해야 또 담에 안건들제. 시피 해 노믄 난중에 또 내가 손봐야 된디?”
동네에서도 소문난 영감이기는 했다. 무슨 일을 해도 꼼꼼하게 했고 한번 시공하거나 수리를 하면 뒷말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집을 보러 왔다는 아가씨가 양손에 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말없이 현관문을 열고 안에 봉지를 놓고 나왔다.
“차가 참 신기하네요.”
“내가 봐도 그라요.”
“방은 어떤 방입니까?”
“방이 두갠디, 아가씨 혼자 쓸 거요? 아니믄 또 딴사람이 있소?”
“저 혼자여요. 가끔 친구가 와서 함께 자기도 하고요.”
“그라믄 안에 들어가서 아무방이나 존걸로 찍어브쇼. 이것이 한 쪽방이 여자믄 또 다른 방도 여자를 줘야 쓰겄드라고. 방에 정지가 하나씩 붙어 있어서 밥도 해 묵고 거그서 세수도 할 수 있고 한께 혼자 쓰기는 괜찮을 것이요. 그라고 소변은 거그서 앙거서 봐 블믄 되고 큰 거는 돌아서 대문 열고 들어와가꼬 이짝 목욕탕하고 붙어 있는 화장실을 쓰믄 되요.”
아가씨는 민영이의 말이 재미있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거리며 웃었다. 민영이가 아무에게나 그렇게 농담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품새는 틀림없이 술집이거나 아니면 다른 유흥업소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을 이것저것 유심히 살펴보고 나서 다시 현관을 통해 나왔다.
“맘에 드네요. 우선 혼자 사는 남자가 주인이라고 해서 겁을 먹었는데 아저씨도 참 좋아 뵈고 또 밖으로 통하는 쪽문이 있어서 그것도 마음에 드네요.”
듣기에 따라서는 ‘너 정도면 여자지만 해볼만 하겠다.’로 들렸다. 그러나 민영이는 그 말에는 개의치 않는듯 말했다.
“살림이 많소?”
“비키니 옷장 하나하고 세간이 조금 있습니다.”
“방은 어느 쪽을 쓸라?”
“예. 왼쪽 게 좀 더 커 보이네요.”
“그라믄 왼쪽 방으로 쓰쇼. 농이 있으믄 좋은디. 그것을 이짝 출입문 쪽에 놔븐께 소리도 안 들리고 좋다고 그라듬만. 허기사 내가 그라고 시끄럽게 사는 사람은 아닌디....... 그라믄 언제 들어올라?”
“내일 당장 올 수 있습니다.”
“내 도장은 그 복덕방에 있응께 낼 거그 가가꼬 계약서를 써브쇼. 보증금 3개월치 하고 달달이 얼매씩 내는지는 거 가믄 영감이 다 이야기해 줄 것이요. 내 통장번호도 거그 가믄 이야기해 줄것인께 매달 30일 되믄 꼬박꼬박 돈은 찡가주쇼이. 내가 지금 열쇠는 드리랑께 낼부텀 와서 사쇼. 근디 와가꼬 청소를 좀 해야 쓸 것이요. 너무 오래 비워둬가꼬.”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열쇠는 저그 텔레비전 우게 보석함 있제라이. 거기 열어보믄 열쇠고리에 ‘1호방’이라고 써진 게 있을 것이요. 그거 가져 가믄되요.”
민영이는 월요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파출부를 불러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간병인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구청에 이야기하면 그런 경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활동 보조인 서비스라는 게 있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였지만 일부는 유료로 운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영이의 경우는 날마다 방문해서 목욕을 시켜 준다거나 대소변을 받아주는 그런 형태의 업무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딱히 두 발이 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충 일부를 거들어 주면 그만이었다. 구청에서는 장애인 협회에도 연락해 주겠다고 했지만 민영이는 그 제의는 거절했다. 같은 장애인끼리 모이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이다. 천형을 지고 태어난 장애인도 있겠지만, 최소한 민영이는 그렇지는 않았다. 몸이 뒤틀리고 망가진 사람들을 위해 사회가 지향하는 광범위한 행사나 복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런 부류의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생활하시면서 제일 불편하게 뭡니까?”
“...... ”
“형식적으로라도 면접이나 심사는 봐야 하니까요. 몇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아 보믄 모르겄소? 우째 우째 빨래는 세탁기에 넣고 한다고 해도 그것을 우쭈고 널어 놓겄소? 밥이사 전기밥솥에 넣고 걍 끼리믄 된디, 국 끼리고 가스불 뎅기고 할라믄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온디 아 그 정도믄 사람이 살았다고 산 것이 아니요. 걍 알아서 내 꼬라지 보고 대충 적으쇼.”
“..... 대소변이나 목욕은 혼자 하실수 있습니까?”
“그것이사 내가 혼자 알아서 하요. 방에 오강을 들이든 욕탕에 가서 때밀이를 부르든 그런것이사 해결이 된디 도통 집구석 청소하고 정리가 안된께 그라요. 쪼까 잘 봐주쇼.”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질문이었지만 민영이는 객기를 부려봤다. 또 구청의 직원은 그런 경우를 많이 겪어봤는지 무표정하게 몇 가지를 알아서 처리하는듯했다.
“그렇다면 꼭 여자가 아니라도 됩니까?”
“아무리 심 없는 여자라도 두 다리 뎅강 짤린 나 한나 못해보겄소?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응께 아무나 보내주쇼. 그란디 왠만하믄 여자로 보내주쇼. 내가이...... 사고 나기 전에도 혼자 살아가꼬 묵작것이 있어도 요리를 잘 안 해 묵어논께 그래도 오믄 반찬 쪼까 해 주라고 그랄것인디...... 남자가 와블믄 심이 있어서 일은 잘할랑가 몰라도 정지쪽으론 쫌 약할 것 같은디?”
그렇게 해서 찾아온 자원봉사자가 나이가 63살인 김분례 할머니였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젊어서부터 적십자 회원이었고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한다고 했다. ‘비러물…….’ 민영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결국, 여자를 보내달라고 한 민영이의 부탁을 구청 직원은 들어주었던 것이다. 그 할머니는 자원 봉사자라고는 했지만, 딱히 그렇게 고분고분하지도 않았다. 물 끓이기가 귀찮아서 생수를 사다 먹는 민영이에게 ‘믓한다고 생수여?’하고는 보리차를 가져와 큰 주전에 끓여놓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제나 반말이었다. 민영이와의 나이 차이도 있었지만 ‘내가 니 종은 아니다이? 알긋냐?’ 하는 소리로 기선을 제압해 버렸다. 또 ‘이눔아, 니 처지가 그랄 수록 더 깔끔해사 써.’ 하면서 바지나 다른 셔츠를 모두 다리미로 각을 세워놓곤 했다. 민영이에게는 졸지에 자원 봉사자가 아닌 어머니를 한분 모시고 사는 꼴이 되었다. 처음에는 월, 수, 금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만 오기로 했지만, 그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매일 찾아와서 집안을 대충 흩어보고는 꼭 해야 할 일들을 하고 갔다. 어떤 때는 집안을 한번 쭉 들러보고 나서 ‘오늘은 걍 가도 쓰것다.’ 하시고는 돌아가 버리곤 했다. 그 이유도 있었다. 그 할머니는 ‘오늘은 시군디를 들려야 쓴께 빨래만 해 놓고 갈란다이?’ 할 때도 있었고 ‘오늘은 죽교동 할메 목간시켜야 쓴께 일찍 간다이.’ 하는 식의 빡빡한 일정을 이야기하곤 했다. 민영이가 어떤 일을 시키기도 전에 일을 찾아서 하는 그 할머니에게 딱히 뭘 지시하거나 부탁할 것은 없었다. 딱 한 번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할메, 돈 주께 김치 좀 맛나게 담아주쇼야.”
“니 돈 많냐? 믓 할라고 따로 김치를 담어? 혼자 삼서 깔끔 떨라고 지랄하지 말고 걍 내가 철철이 김치는 대 줄것잉께 거나 쳐 묵어라. 아 혼자 산 놈이 김치 쉬어 빠지믄 혼자 만날 김치국 끼려 묵을래?”
“라면을 자주 끼려 묵은께 김치가 좀 셔도 괜찮한디.”
“아 이 썩을놈아. 나 와가꼬 냉장고 관리를 내가 하는디 암케나 쳐묵어도 내가 김치하나 못 채워 주겄냐? 봉사활동 함서 만날 하는 것이 김치 담그는 일이여. 아조 허벌나게 푸진게 김치랑께. 긍께 괴기 꾸워 묵고 싶을 때 아니믄 니는 나한티 돈 준다는 소리를 허덜마. 괴기사 살라믄 돈이 든께 그거사 니 쳐묵고 싶을 때 이야기 하믄 내가 푸줏간 가서 아조 실한디로 한 근 끈어와가꼬 얍씰하게 꾸워 줄랑께. 썩을놈이 돈이믄 단줄알어.”
“크크크...... 아따 할메도...... 만날 얻어묵기 미안한께 그랬그만 아조 무쟈게 미크러브네이. 믄 말을 못하겄어 그냥. 미크러븐 정도가 아니고 걍 자빨챠 놓고 밟아브네이.”
실제로 그랬다. 냉장고에는 언제나 맛있는 김치가 있었고, 더러 괜찮은 밑반찬이 들어 있었다. 허벌나게 푸지다는 김치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자주 김치를 담그는 행사 때 가져온다고 했다. 배운 것도 많은 할머니다. 옷을 다리던 전기다리미가 고장이 났을 때 그 할머니는 드라이버로 그 다리미를 분해해서 퓨즈 하나를 빼냈다. ‘물을 채워가꼬 자동으로 뿌려감서 다리는 다리미는 꼭 이것이 나가블드만?’ 했었다. 변기가 고장 났을 때도 나는 쉽게 철물점 아저씨를 생각했지만, 그 할머니는 달랐다. ‘믓 할라고? 장애인 센타에 전화하믄 공짠디.’ 했었다. 실제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군소리 없이 장애인 보호센터에서는 수리해 주었다. 더 재미있는 소리도 했다. ‘장애인은 왕이다. 그래 생각을 하고 살믄된다. 아 119도 니 꼬봉이여. 전화 해가꼬 죽겄다고 앙탈 한 번 부려봐라. 일반인들은 그라고 못해줘도 니한티는 금방 와가꼬 별짓을 시켜도 다 들어준다. 아 퍼질러 앙거서 쪼깨만 우는폼 잡으믄 걍 사람 금방 디지는줄 알고 다 들어 준당께. 긍께 그런 것을 잘 이용함서 살아야써. 알긋냐?’ 했었다. 어떻든 그 할머니 덕에 집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마당이며 부엌 그리고 쓰레기장처럼 내버려두었던 마당 한쪽의 텃밭에는 무슨 씨를 뿌려 두었는지 파란 싹이 나고 있었다.
민영이에게 있어 낮이라고 딱히 할 일은 없었다. 평소에 바빠서 잘 쳐다보지도 않던 컴퓨터가 좋은 소일거리였고 뉴스나 스포츠만 보던 평소와 다르게 영화 따위에 심취해서 보곤 했다. 그런 지루함 때문에 취직자리를 알아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일거리가 없는 것보다는 장애인에게는 일거리 자체를 주지 않았다. 기껏해야 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따위의 집안에서 소일하는 부업이 전부였다. 전화 작업만을 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 일은 고객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 정상인들도 쉽게 그만둔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한다는 소호(SOHO)도 있었지만 역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했다.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아봤지만, 그 역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기법을 많이 알아야만 했다. 택배 사무실에도 전화해 봤다. 간단한 경리 업무나 전화 같은 작업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택배 사무실에 잘 다니는 여직원을 그만두게 하고 민영이를 대신 채용할 수는 없었다. ‘가시나 시집가믄 그때 보자!’ 하는 게 소장님의 답변이었다. 집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삶이 지겹고 한심스러웠다. 낮에 낮잠이라고 자게 되면 그건 죽음이었다. 밤은 오히려 민영이에게 더 지겹고 두려운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수면을 독촉하기 위해 언젠가 사 두었던 맥주를 한 캔 마셔봤지만, 민영이의 몸은 술을 받아 주지 않았다. 딱 한 캔의 맥주만으로도 온몸 구석구석, 특히 하체의 관절이 더 아파졌다. 퇴원하고도 적지 않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몸은 완전한 제 사이클을 돌지 못하고 있었다. 온종일 컴퓨터를 가지고 놀 수도 없었고, 긴 밤을 텔레비전과 함께 할 수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는 했지만 성장하면서 직장생활을 한 탓에 낮시간을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무엇이든 해야 했지만, 사회가 장애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값싼 동정과 그리고 그들이 정상인보다 훨씬 불편할 것이라는 편견뿐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장애인은 정상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생활한다. 가장 무서운 편견은 그들에게 일을 맡겨서는 정상인보다 더 낮은 효율을 낼 거라는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택배든, 경리 일이든 그런 일자리가 있다면 또 해 나가는 게 인간이다.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차에 짐을 싣고 배달일을 할 수도 있고, 목발을 짚고 경리 장부나 통장을 들고 은행에 다닐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장애인에게는 그런 일거리를 주려 하지 않았다. 장애인이 된 뒤로 처음으로 여행을 갈 생각을 해 봤다. 차를 몰고 어디든 가 보고 싶었다. 차를 산 이후로 한 번도 장거리 여행을 해보지는 않았다. 차에 전동 휠체어를 싣고 그리고 어디든 공기 좋고 전망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작심하고 좋은 곳을 검색하기 위해 컴퓨터를 열었다. 이곳저곳을 찾아봤다. 우선 차가 갈 수 있어야 하고 많이 걷는 곳은 피해야 했다. 좀 좁더라고 전동 휠체어가 갈 수 있는 곳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공기 좋은 산속은 장애인이 가는 곳이 아니었다. 장애인들이 살 수 있는 곳도 결국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뿐이었다. 최소한 그런 곳에서는 장애인의 편의시설이나 쉽게 전동 휠체어만으로도 운신할 수 있어 보였다. 서울, 부산, 제주 세 곳으로 압축이 되었다. 민영이는 과감하게 제주도를 선택했다. 목포에서 제주도를 가기는 쉬운 일이었다. 페리도 있었고, 비행기를 타면 장애인은 반값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민영이는 선박을 이용하기로 했다. 비행기로 가면 차를 가져갈 수 없는 단점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제주도에 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할머니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할메 왜 웃소?”
“거그는 좀 애껴 놓제 그라냐?”
“믓할라고라?”
“아 이놈아 니 장개가믄 샥시하고 갈띠가 거 밖에 더 있겄냐.”
“누가 이 뿌사진 삭신보고 시집을 오겄소?”
“그래도 다 짝이 생기는거여. 불알 없는 병신한티는 샥시가 없어도 다리 없는 병신한티는 여자가 있는 것이다.”
“뭐라고라?”
“썩을놈 우째 그라고 말귀를 못타냐? 사내놈이나 기집년이나 죽부인은 끼고 자도 지 손꾸락 올라타고는 못 자는 법이여. 살풀이 못할 남녀는 만나봤자 헛방이라 그 말이다.”
“크크크...... 이 꼬라지에 믄 살풀이씩이나..... 크크크.”
“그라고 금메 니가 어디가 어째서 만날 장개 못 갈 것이라고 오지랖을 떨어? 이눔아 대가리 털고 고민할 것 같으믄 저그 예배당 가서 하느님 바짓자락이라도 잡고 흔들어봐.”
“..... 인자사 뭣을 새삼스럽게……. 교회를 가겄소..... ”
“이왕지사 콧구녕 바람 쐬러 간당께 잘 갔다 오니라. 항상 뜨신데서 자빠져 자야쓴다. 거까지 가가꼬 싸구려 객잔에서 잠서 관광하러 왔다 그라믄 그것이 바로 병신 육갑 떠는 것이여. 이왕에 갔으믄 괴부림서 당당하게 돈도 쓰고 그라고 오라 이 말이다.”
“아따매..... 할메 한티는 믄 말을 못하겄어. 좀 심각하게 말만 하믄 걍 밧다리 놔가꼬 질근 질근 밟아블라고 한통에 뭔 말을 못하겄어 그냥.”
“그래 그래. 알았다. 잘 뎅겨와라.”
할머니는 ‘그래 알았다 봐 주께.’ 하는 식이었지만 민영이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문단속 잘하고 가라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마치 어머니를 마중하는 잔잔함이 있었다.
제주도. 부두에 접안한 배에서 직접 차를 몰고 땅으로 내려왔다. 그래 이 맛이야. 민영이는 비로소 답답한 집을 탈출했다는 성취감에 웃었다. 제주도에 오면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성산일출봉이었다. 대단한 관광지쯤으로 알고 있던 제주였지만 성수기가 아니었던지 가는 길 자체가 촌스러운 풍경 그대로였다.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돌무덤이 길옆에 있었고 가는 도중에 큰 빌딩 따위는 아예 없었다. 차가 성산 일출봉에 도착하기 전에 멀리서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 본 산의 자태가 아름답다. 차 문을 달릴 때 부드럽게 상체를 감싸는 공기도 달콤한 맛이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동감이었다. 그러나 민영이가 제주도에서 느낀 행복감을 거기까지였다. 무엇이든, 그리고 어떤 형태의 관광지든 멀리서 바라봐야만 하는 절망감을 제주도에 있는 동안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다. 성산 일출봉의 정상은 매표소에서 걸어서 2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물론 그런 행보도 정상적인 일반인이어야 했다. 민영이가 등정을 각오한다면 족히 두 시간이 훨씬 더 걸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우연히 목발을 짚고 올라가는 장애인을 보긴 했지만, 그 사내는 그래도 한쪽 발이라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제법 빠른 걸음의 장애인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는 모습은 자연경관을 감상하기 위해 올라간다기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고집스러운 표정만이 보일 뿐 만족감이나 즐거움은 없어 보였다. 쓸쓸하게 성산 일출봉을 뒤로하고 다른 목적지를 찾아가 봤지만, 어디든 계단은 많았고 차에서 전동 휠체어를 꺼내서 몸을 운신할 공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저 잠시 차에서 내려 목발을 짚고 서서 먼바다를 바라보거나 차로 스쳐 지나가듯 한라산 주위를 맴돌 수 있는 게 전부였다. 계단만 있는 박물관, 두 발 없는 장애인이 걷기에는 무리한 그 많은 바닷가 해변들, 그런 모든 주변 환경은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역경이요 또 참아야 하는 재앙들이었다. 최소한 민영이에게는 그렇게 변해 버린 세상이었다. 민영이를 슬프게 하는 또 다른 분위기도 있었다. 제주도는 수많은 신혼부부가 오는 곳이었다. 어디든 사진을 찍는 연인이 있었고 관광지 주변에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일주일 정도를 계획했던 민영이는 하루 만에 목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하루 동안 민영이의 눈빛은 악마가 되어 있었다. 자기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자신이 두 발로 걷고 서지 못하게 만들어버린 그 당사자를 죽여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만들어 버린 원인 제공자가 신이든, 아니면 인간이든 평생을 계단을 두려워 하며 사는 인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만큼 돌려주고 싶은 복수심이 가슴에 활활 타올랐다. 제주도는 민영이에게 있어 그런 악마의 심성을 유발하는 발원지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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