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다
슈리푼자
신을 왜 대상화하는가?
그것을 주체화하라!
빛으로 바로 가라.
그것 속으로
즉시 뛰어들어라.
가는 도중
그것에 대해 글을 쓰지 마라.
고요하라.
의심을 일으키지 마라.
욕망을 일으키지 마라.
모든 대상들을 모두 버리고
그것That으로 남아라!
모든 고통은 대상화하는 것이다.
자아가 자유를 소유토록
내버려두지 마라.
진리를 대상화하지 마라.
진리를 얻거나
습득한다고 하지 마라.
그냥 진리와 하나가 되어라.
거울에 비친 그대의 얼굴을 보듯
진리와 그냥 동일시하라.
마음이라는
이 방문객을 잊고서
그냥 그것과 동일시하라!
그대는 오직
그대가 아닌 것만을
경험할 수 있다.
경험하는 자 그 자체는
덧없기에
오직 덧없는 것만이
경험되어질 수 있다.
그러니 경험, 이름, 모습이라는
개념들을 포기하라.
이름과 모습에
손대지 마라.
그냥 지켜 보라!
‘나’를 말하는 순간
모든 대상들이
거기에 있다.
‘나’를 보라.
그러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나’가 ‘나’를 보게 하라.
탐구는
경험자인 ‘나’를 먼저
대상화하고
그 다음에
‘나’조차도 대상화한
주체를 보는 것이다.
주체를 대상화시킨
주체가 누구인지
탐구하라.
이 주체가
정말로 보는 자이다.
내 스승,
라마나 마하리쉬님은
“신은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다.
주체이다.
신은 보여질 수 없다.
신은 보는 자이다.
그러므로 이 보는 자를 찾아라”고 하셨다.
나의 가슴은 열렸다.
“보는 자를 찾아라.”
이것이 가르침이다.
참나는 주체보다 앞서있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에 집중할 것인가?
보는 자는 보여져야만 한다.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마라.
한 순간이라도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깨어나라.
그것은 너무나도 순결하고 순수하기에
한 생각조차도 그것을 더럽힐 것이다.
마음은
습관적으로 대상화 시키며 이원화 시킨다.
Vichar바차라로 마음을 굴복 시켜라.
"나는 여기이다" 임을 깨우쳐라.
그리고는 이 마음을 어디에든 가게 하라.
이것이 마음을 멈추게 할 것이다.
마음이 그대를 괴롭힐 때 질문하라.
마음이 괴롭히지 않는다면 그냥 고요하라.
마음이 움직일 때 세상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고요하라.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자유가 되어라.
마음이 순수할 때 그대는 모든 존재 속에서 부처를 볼 것이다.
바깥의 눈으로 보는 것을 중지하라.
그러면 안에 있는 신성한 눈이 열릴 것이다.
마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나"의 근원에 질문하라.
안을 들여다보아 오고 가지 않는 그것이 되어라.
무엇인가에 집착하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므로 마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없애라.
집착들에서 물러나 고요를 지킴으로
자각-존재-희열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하라.
마음이 진정 존재에 닿을 때 마음은 진정한 존재가 된다.
자유의 개념은 굴레의 개념을 없앤다.
옛 습관들이 그대를 다시 부르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라.
그리고는 자유 그 자체 속으로 용해되어라.
생각하기를 멈추어라.
생각은 세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생각 사이에 있는 간격이며 이것이 자유이다.
한 순간만이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라.
생각하지 말라.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자유이다.
생각이 온다면 오게 하라.
생각이 간다면 가게 하라.
자유에 대한 개념 없음이 자유이다.
자유에 대한 의도 없음이 자유이다.
진정한 탐구란 생각하지 않는 것.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을 해야 한다면 오직 부처를 생각하라.
이것이 가장 가까운 수행이다.
이것은 바다에 머물면서
파도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상태의 마지막과 첫 생각이 탐구가 되어야만 한다.
그냥 고요히 머물면서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라.
이 "봄"이 존재이다.
마음이 움직일 때 그것은 잠자러 갈 것이다.
이렇게 하지 말라.
수면은 함정이다.
그대가 잠수하여 찾으려는 진주에 노력 없이 주의하라.
영구한 답은 침묵이다.
대답은 호흡 끝에 있다.
이해는 객관화이다.
이해를 버림으로써 그대의 참나를 드러내라.
노력이나 이해로 그대는 근원을 찾을 수 없다.
모든 대답과 질문은 자아에서 오기 때문이다.
자아가 일어나는 곳을 찾아라.
그러면 자아는 사라질 것이다.
자아는 파괴되고 생각하기는 멈추어야만 한다.
지금 그렇게 하라.
“나는 참나가 아니다”라는 개념을
던져 버림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이해, 시각, 촉각-- 넘어에 있는 그것을 열망하라.
“나는 참나가 아니다”라는 개념을 던져 버려라.
개념의 개념조차 버려라.
지식의 끝인 베단타는 언어를 포함한 모든 것을 잊는 것이다.
책 주위에만 머무는 것은 경전을 운반하는 당나귀와 같다.
많은 성자들이 읽을 줄 모른다.
그림 속에 잇는 불이 차를 끓일 수 없듯이
지적 이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적 이해는 메뉴를 읽는 것이다.
진정한 경험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모든 이해는 그것의 맛과 견줄 때 메마른 지루함에 불과하다.
자아- 마음- 지성만이 존재, 의식, 희열이라는 말을 듣는다.
자아, 마음, 지성들이 간섭하게 내버려 두지 말라.
그대가 들은 것을 분석하지 말라.
텅 빔을 생각하면 그대는 텅 빔의 밖에 있다.
자유라는 말은 죄수만이 이야기 한다.
항상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를 말하지 않는다.
이 입에 오른 자유는 자유로워지기 위한 굴레가 필요하다.
그대의 참나를 스스로 탐구하여 자유하라!
이 자유를 그대는 말로는 묘사 할 수 없다.
참나의 희열에 취한자의 눈빛과 발걸음이
자유에 대한 최고의 묘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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