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퇴마연의(退魔演義) 002 - Case No.01 괴담(怪談)
길을 걷다가 네게 말을 건 낯선 여자.
그 여자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니?
File #02 빨간 마스크
“ 빨간 마스크? ”
“ 에- 뭐야? 아직도 그런 얘기들이 돌아다닌단 말야??? ”
아침 식사가 끝나고 승민이 새로 의뢰 받은 사건의 브리핑을 시작하자, 소파에 나란
히 앉아있던 선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고, 옆에 앉아있던 혜성이 들고 있던
수박을 베어 물며 우습다는 듯 말했다. 그런 혜성의 반응에 혜성과 선호가 앉은 맞은
편 소파에 혼자 앉아있던 동완은 눈을 지그시 감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원래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야. ”
“ 그래도... ”
“ 조금 바뀌기는 했더라. 살이 좀 더 붙었다고 해야 하나? ”
그런 동완의 말에도 말이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수박씨를 뱉어내던 혜성에게
승민이 들고 있던 자료를 뒤적이며 말했다.
“ 어떻게? ”
“ 예전에는 그냥 단순히 빨간 마스크를 한 여자만 나왔는데,
요즘은 아류작으로 파란 마스크, 노란 마스크, 검은 마스크들이 있고,
또 각각 대처 방법도 다르다던데? ”
“ 와아... 누군지 머리도 잘 썼네?... ”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에 놀란 혜성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관심을 보이자, 승민은
그런 혜성이 귀엽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 다 상업 수단이지, 뭐... 책자도 있더라. 하나에 500원짜리 소책자. ”
“ 정말? 재미있네... 있어? 한번 보고 싶다. ”
“ 자. 여기. ”
혜성의 말에 승민은 상자에 담겨져 있던 작은 책자를 혜성에게 건넸다.
“ 와아~ 진짜 쪼꼬맣다... ”
“ 애들 보는 거니까... ”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올 만큼 작은 책을 받아든 혜성을 포크를 입에 문 채 신기한 듯
책을 뒤적였다. 50여 페이지 남짓한 소책자는 하얀색의 질 좋은 종이에 깔끔한 활자
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 그래도 의외로 내용은 튼실하네?
나 초등학교 다닐 때 있었던 얘기들이 다 실려 있어. ”
“ 아마 꽤 많은 양이 팔린 것 같아. ”
“ 제조사는 어딘데? ”
소책자를 뒤적이던 혜성이 책의 앞뒤를 살피며 물었다. 코팅까지 된 칼라 표지였지만,
출판사는 적혀있지 않았다.
“ 그게 쉽지가 않아. 원래 문방구라는 곳이 다양한 물건을 팔기 때문에
물건을 공급하는 쪽도 매우 다양하고, 그래서 편리를 위해서 돌아다니면서
배달하는 업자가 자기 임의대로 물건을 떼다가 공급하는 식이야.
물론, 문방구에서 필요한 물건을 부탁하기도 하고...
그래서 문방구 주인들은 직접적으로 생산자하고 연관되어 있지는 않아. ”
“ 뭐 단순히 문방구만 그런 건 아니잖아.
요즘 같은 시대에는 거의 모든 가게가... ”
“ 다른 형태의 가게들은 대부분 대형 생산업체에서는 자체적으로 배달하고,
또 자잘한 물건만 떠돌이상들이 배포하는데, 문방구의 경우는 문제집과 준비물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물품들이 떠돌이 업자들로 인해 배포되는 형태야. ”
“ 흐음... 그럼 잡기 쉽지 않단 말예요? ”
이제는 혜성에게 소책자를 넘겨받은 선호가 책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고, 혜성은 수박
한 조각을 더 찍어 입에 물고는 심각하게 물었다.
“ 몇몇 문구점에서 이제 올 때가 되었다고 말하길래,
형사 가게마다 형사 몇이 잠복하고 있고,
또 몇몇 곳에서는 업자의 번호를 안다고 하길래 물건이 필요하다며
빨리 와달라고 연락해 놓고 잠복하고 있으니까, 며칠 내로 꼬리는 잡힐 거야. ”
“ 그럼 다행이고... 아무래도 대상이 어린애들이다 보니까, 수사도 힘들겠다. ”
“ 응. 증언도 잘 안되고, 또 부모들도 민감하고, 학교 쪽도...
언론 쪽 막는 것도 쉽지 않고... ”
“ 근데... 빨간 마스크가 뭐예요? ”
“ 뭐??!!!! 빨간 마스크를 모른단 말야??!!!! ”
승민과 동완의 브리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혜성과는 달리 평소와는 전혀 반대인
태도로 조용히 앉아있던 선호가 조심스레 묻자, 혜성이 크게 놀랐고 그 바람에 입에
물고 있던 포크는 바닥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 선호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으니까, 모를 수도 있지.
나도 이번 사건 때문에 자료 조사하면서 알게 된 거니까...
흐음- 굳이 말하자면 미국의 프레디 정도? ”
“ 프레디? Freddy Krueger? ”
“ 응. 아, 민우도 잘 모르지? ”
승민의 설명에 프레디 크루거가 무서운 듯 꼼지락거리며 서류를 뒤적이는 선호를 보
고는 민우를 향해 묻는 동완의 물음에 동완의 맞은편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민우
도 고개를 끄덕- 했다. 그 모습에 혜성은 ‘지는 또 왜 모른데?-’하고는 입을 삐죽
였다.
“ 빨간 마스크란 10여 년 전에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일종의 공포이야기야.
하지만 다른 괴담에 비해 어린아이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안겨주는 바람에
한동안 언론에서까지 시끄러웠지.
그 당시만 해도 요즘과는 달리 이런 괴담은 구전으로 전해지다시피 해서
이야기는 중구난방이지만, 간추리면 이래.
‘빨간 마스크’는 길거리에 만난 사람에게 ‘나 예뻐"라고 물어본 다음,
사람을 죽이는 빨간 마스크를 쓴 여인을 일컫는다고 해.
이 여인이 빨간 마스크를 쓴 이유는 귀까지 찢어진 입을 가리기 위해서고
인상착의는 긴 생머리에 하얀 코트를 입었으며,
한쪽 손에 큰 칼 또는 낫을 몰래 들고 다니며 살인을 저지른다고 하지.
물론 이런 사건이 아직 국내에서 일어난 적은 없어.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괴담’일 뿐.
10여 년 전에는 입에서 입으로 떠돌아서 그리 빨리 퍼지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의 확산으로 그 보급 속도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지. ”
“ 근데 우리가 그런 괴담도 수사해요? ”
동완의 설명에 혜성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처음에는 예전에 듣던 괴담이 신기해
흥미 있게 참여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히 이쪽에서 수사할 일은 아니라는 생
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 문제는 괴담이 아니라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이야.
‘빨간 마스크’는 그냥 단순한 괴담이지만, 최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방법이
그 빨간 마스크의 살인 방법과 동일해서 그 괴담이 수사망에 오른 거야. ”
“ 왜, 그...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나 예뻐?’라고 물어보는 그거요? ”
“ 응. ‘예쁘다’고 대답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래도 예뻐?’하면서 귀까지
찢어진 입을 보여준 다음, 입을 찢어 끔찍하게 사람을 죽인다는 것.
‘안 예쁘다’고 말하면, 식칼을 꺼내 들고서 쫓아와 목을 자른다는 것.
이런 살인 방법과 동일한 사건들이 반복해서 일어나자
빨간 마스크가 나타나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어. ”
“ 그거 말고도 뭐 빨간 마스크가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던가...
하는 얘기도 있지 않아요? ”
“ 응. 빨간 마스크는 100m를 10초에 달리는 놀라운 주파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2층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또 빨간 마스크에게 벗어나는 방법도 있어.
‘포마드’를 3회 이상 외치거나, 엿을 주면 빨간 마스크는 도망간다고 하더라고. ”
“ 생뚱맞게 웬 엿? ”
보고서를 뒤적이며 설명하는 승민의 말에 여전히 포크를 입에서 떼지 않고 있던 혜성
은 입가를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 아무튼 예전의 빨간 마스크가 단순 괴담인데 비해,
최근의 사건들에서는 실제로 목격한 학생들도 많고,
또 그 학생들이 찍은 사진도 있어서 신빙성을 더하고 있어. ”
“ 그럼 목격자가 있단 말예요??? ”
동완의 말에 혜성이 놀라며 물었다. 어린 시절 빨간 마스크의 괴담이 떠돌 당시만 해
도 실제로 목격한 목격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 그대로 괴담(怪談)일 뿐이
었던 것이다.
“ 응. 우선은 혼란을 막기 위해 언론을 차단한 상태야. ”
“ 그래서 언론이 조용했군요. ”
매일 TV와 인터넷 뉴스를 꼼꼼히 체크하는 선호가 이제야 자기가 그 사건에 대해
모르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하지만 이미 인터넷에는 잔뜩 퍼져 있더라구. 막는 일이 쉽지 않아.
자. 이게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야. ”
“ 흐음- 흐릿한데요? 게다가 뒷모습이잖아. ”
사진을 받아든 민우가 승민을 올려보며 말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누군가의 뒷
모습이 아주 흐릿하게 찍혀 있는 사진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물론 남자인지 여자인
지조차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 대상이 어린 학생들이다 보니 보기만 하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느라 바빠서 실제로 사진을 찍은 학생은 거의 없어.
이것도 그 근처에 있던 목격자가 찍은 사진이야. ”
“ 이걸로 범인을 잡기는 힘들겠는데요? ”
“ 동완 형.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겼던 사진 분석 결과는 어떻게 됐어요? ”
민우의 말에 승민이 동완을 돌아보며 묻자, 동완이 대답했다.
“ 휴대폰 사진이라 워낙 화소도 낮은데다가, 흔들린 사진이라 이걸로 범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판단하기는 힘들어. 그냥 평균 체격의 여성이라는 것 밖에는... ”
“ 사건에 대한 다른 정보는요? ”
“ 그건 내가 할게. ”
선호의 물음에 동완이 소파에서 일어나 승민과 자리를 바꾸었다.
“ 지금까지 밝혀진 피해자는 총 넷.
첫 번째 피해자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예리한 칼날에 목이 베어서 죽었고
두 번째 피해자는 중학교 3학년 학생으로 첫 번째 사건 사흘 뒤에 목이 졸린 후,
입이 찢겨 죽었어.
세 번째 피해자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그 일주일 뒤에 마찬가지로
질식당한 후에 입이 찢겨 버려진 상태로 발견되었어.
과다 출혈로 위험하지만, 다행히 살아있어. ”
“ 뭔가 기억하는 건 없어요? ”
“ 과다 출혈로 혼수상태고, 만일 의식이 돌아온다 할지라도
어린 학생인데다가 너무 놀라서 제대로 진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
“ 그럼 피해자는 총 셋? ”
“ 아니. 어제 밤에 한명 더 생겼어.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마취 되서 목이 베어 죽었어. ”
“ 그럼 네 번째 피해자야? ”
“ 응. 그리고 그 피해자가 JK그룹 통신사 사장의 아들이라 의뢰가 들어온 거야.
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살인과 살인미수 사건들이 아니라면 충분히
피해자의 아버지와 연관된 사건으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단순 엽기 범죄인지,
아니면 목적이 있는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인지 확인이 필요해. ”
“ 그렇군. ”
동완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생각에 잠겨 사건에 대한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
.
.
“ 저... 저건... ”
“ 쉿-. 조용히 해. ”
“ 저건 아무리 봐도 사람인데? ”
“ 어차피 이번에는 영이 아닌 사람을 잡으러 온 거야. ”
“ 아... 그렇구나... ”
빨간 마스크가 자주 출몰한다는 초등학교 앞에 잠복하고 있던 승민과 혜성의 대화에
승민은 만일 민우가 있었더라면 또 싸움이 났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는 웃고 말았다.
사람 사귀는데 서툰 민우였기에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서지 않는데, 유독 혜성에게만
심술 아닌 심술을 부렸다. 혜성은 민우가 자기를 비웃는 다며 난리를 치곤했지만, 오
랜 동안 민우를 알아온 승민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민우가 혜성에게 하
는 행동들이 사람다운 행동들이었다. 집에서와 일을 할 때는 냉랭하고, 학교에서는 더
없이 상냥하고 따뜻한 민우였지만, 본래 민우의 성격은 그 누구와 엮이는 것도 싫어
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 였기 때문이다. 사람보다는 ‘괴(怪)’나 ‘영(靈)’과 더 자주 만
나고 상대했던 민우인지라, 사람을 대하는 데는 다소 서툴렀다. 하지만 그런 민우가
혜성에게는 평소와 다르게 사람다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 형! 저거!!! ”
“ 잡아!!! ”
승민의 말에 혜성과 승민은 날렵하게 차문을 열고는 얇은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고는
골목에 나타난 형체를 뒤쫓기 시작했다. 혜성과 승민의 기척을 느낀 여자는 어마어마
한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주택가 담벼락으로 뛰어올라 사라져버렸다.
“ 헉... 헉... 헉.... 헉....... 놓친 거야?...... ”
“ ...... 하아....... 하아...... 그런 거 같다........
젠장! 동완 형이나 민우가 있었으면 잡을 수 있었을 텐데..... ”
“ 정혁 형! ”
가쁜 숨을 내 뱉으며 그 자리에 쭈그려 앉은 승민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혜성이
소리치는 곳을 바라본 승민 역시 놀란 눈치였다.
“ 정혁 형. 웬일이야? ”
승민의 말에 정혁은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 정혁 형이 웬일로 사건에 나서 준대? ”
“ 정혁 형이 재주가 있긴 한 거예요? ”
“ 그럼~ 우리로서 영(靈)을 보는데 있어서는 정혁 형이 최고 실력자지. ”
“ 이민우. 그 자식은? ”
“ 민우는 괴(怪) 전문이고...
민우 같은 경우에는 영(靈)은 비슷한 기운을 느끼는 정도야.
정말 필요할 때 명안부(明眼符)를 이용해서나 보지, 평소에는 보지 못해. ”
“ 에- 그러면서 그렇게 잘난 척이었어?
선호는 그래도 팀 내에서 최고의 실력자라던데... ”
승민의 설명에 뭐가 불만인지 입을 삐죽이며 말하는 혜성의 모습에 승민이 웃으며
설명했다.
“ 실력자인 건 분명하지. 어쨌든 영(靈)을 보지는 못하지만,
괴(怪)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최고의 실력자이고,
또 각종 부적(符籍)을 만드는데도 능하니까... ”
“ 그럼 정혁 형은 귀신을 볼 줄 안다는 거야? ”
“ 응. 우리 중 유일하게 귀신을 명확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지.
도통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아서 문제지만... ”
승민과 혜성은 앞장서서 천천히 걷는 정혁을 따라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 여긴?... 사건 현장 아니야? ”
정혁이 멈춰선 곳에 다가간 승민이 정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정혁은 그런 승민의 말
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체가 놓여있던 장소를 나타내는 흰 선의 옆을 응시하고
있었다.
“ 그 곳에 있어? ”
승민의 물음에 정혁은 고개를 돌려 승민을 바라봤다. 도통 대화를 하려하지 않는
정혁이었기에 그런 행동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정혁의 대답에 승민은 전화를
걸었고, 곧 동완과 선호, 민우도 현장에 도착했다.
“ 뭐야? 너희는 아까 초등학교에 잠입해 있기로 하지 않았어? ”
“ 정혁 형이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어. 아이가 보인데. ”
“ 형 정말 보여요? ”
하지만 선호의 물음에도 정혁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채 귀를 막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사건 현장에 와 동완과 혜성에게 이곳이 사건 현장이라는 걸 말해준 지 얼마
되지 않아 엄청난 소음이라도 들리는 듯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은 정혁은 도통 일어나
려하지 않았다.
“ 별 수 없다. 내가... 초혼술(招魂術)을 쓰는 수밖에. ”
“ 그건 안돼! 자꾸 그런 걸 하면 네 명이 준단 말야!!! ”
할 수 없다는 듯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여는 민우의 말에 동완이 화를 내며
소리를 쳤다.
“ 어쩔 수 없잖아. 사건부터 해결해야지. ”
“ 하지만!!!... ”
“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니까... 괜찮아. ”
“ 괜찮긴!!! 떠난 지 얼마가 됐던지 혼(魂)은 혼이야!
초혼술(招魂術)을 행하면 명이 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없단 말야!!! ”
“ ...... 상관없어. 별로 미련 없어. ”
“ 이민우!!! ”
동완의 화가 난 듯 낮게 깔린 목소리에도 상관없이 민우는 가방에서 부적을 꺼내들고
는 바닥에 앉은 채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느껴지기 시작하는 서늘한 기운에 혜성이
가볍게 몸을 떨었다.
“ 네가 예림이니? ”
서늘한 기운에 발팔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을 부비고 있던 혜성은 민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민우의 앞에 작은 여자아이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작고 마른 여자아이는 목의 오른쪽이 절반이나 잘려서는 고개를 왼쪽으로 떨구고 있
었다. 그 목에서 흘러나온 피는 핑크색 꽃무늬가 자잘하게 박힌 하얀 원피스를 축축
하게 적시고 있었다. 민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아이의 목은 금방이라도 떨
어질 것처럼 달랑 거렸다.
“ 말... 할 수 있니? ”
민우의 물음에 예림이는 입을 벙긋거렸지만, 바람 새는 소리만 날 뿐 말소리는 나지
않았다.
“ 목 때문이구나... ”
민우의 물음에 예림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자 절반쯤 남은 목이 다시 덜렁거렸다.
선호는 그 모습에 울먹이다가 차마 그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 네가 정혁 형을 여기로 불렀니?
혹시 손을 들 수 있으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래? ”
더 이상 덜렁거리는 목을 보기 힘든 민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예림이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 왜 정혁 형을 여기 불렀지? 넌 범인을 아니? ”
예림이의 작은 손이 다시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그렸다.
“ 범인은 여자니? ”
“ 봤어? ”
“ 그 여자를 따라다녔니? ”
“ 줄곧? ”
“ 널... 그 여자가 널 해치고 나서부터? ”
민우의 계속된 질문에 예림이는 계속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 뭘 봤니? 아... 이건 동그라미로 대답할 수 없겠구나. ”
자신의 질문이 잘 못 됐다는 듯 말하는 민우의 말에도 예림이는 손을 놀리기 시작했
다. 예림이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 그 여자가 목을 졸랐어? 다른 아이의? ”
예림이는 다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든 후, 손가락으로 입 양쪽을 쭉- 잡아
당겼다.
“ 그리고 입을 찢었어? ”
민우의 질문에 예림이는 다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으며 눈의 흰자위를 내보였다.
“ 숨을 쉴 수 없게 했어? ”
예림이는 다시 동그라미를 만들고는 다시 손가락으로 입을 찢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는 다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 어제는 다른 아이의 목을 베었고? ”
민우의 물음에 예림이는 다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 그 여자가 어디 사는지 아니? ”
예림이는 또 동그라미를 만들며 습관적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 이상 잘린
목을 덜렁거리는 그 모습이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지만, 그 몸짓만은 아이
처럼 순수했다.
“ 알려줄 수 있니? ”
민우의 물음에 예림이는 다시 동그라미를 만든 후, 손가락을 자신의 목에 댄 후 피에
젖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었다.
“ 네 피로? 괜찮겠어? ”
민우의 물음에 예림이는 입가를 살짝 올렸다. 그 모습이 진짜 순수한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같아 동완은 입술을 깨물었다. 경찰 일도 이 곳의 일도 이럴 때가 가장 힘
들었다. 어린아이들이 관계된 사건을 다룰 때가...
“ 그릴 종이를 줄까? ”
민우는 부적을 쓰가 위해 가지고 다니는 종이를 내밀었다. 그 종이라면 인간이 아닌
예림이도 자신의 의지대로 뭔가를 그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림이의 작은 손가락
에 묻은 피는 민우가 내민 종이로 옮겨져 어설픈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 고맙다. 예림아. 우리가 범인을 꼭 잡아 줄게.
이제... 편안히 보내줄까? 엄마는... 만나봤니? ”
민우의 질문에 예림이는 눈물이 촉촉한 눈을 하고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이야기가 나오자 민우와 약속한 동그라미로 대답하기도 잊은 채 열심히 고개를 끄덕
이는 예림이의 모습에 선호는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 그럼... 이제 가자. 편안해... 질 거... 라고는 거짓말 안할 게.
네가 여기 오래 있어서 가는 길이 조금 무서울 수도 있어.
하지만 가서는 즐거울 거야. 그리고 다음 생에는 행복할 거야. 그건 확신할 게. ”
예림이는 다시 피에 젖은 입가를 올려 웃는 입 모양을 만들었다.
“ 그럼... 이제 가자. ”
민우가 혜성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며 수인을 맺자, 예림이의 주변은 잠시
빛으로 둘러 싸였다가 예림이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민우는 정신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미스/테리] 퇴마연의(退魔演義) 003 - Case No.01 괴담(怪談)
길을 걷다가 네게 말을 건 낯선 여자.
그 여자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니?
File #03 운명(運命)을 짊어진 남자들
“ 이민우!!! ”
예림이를 보내주고는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민우를 향해 혜성은 소리치며 달려들어
민우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민우를 받아드는 혜성과 쓰러지는 민우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 형!!! ”
그런 멤버들의 모습에 혜성이 당황해서는 승민과 동완을 돌아보았다.
“ 걱정 마. 초혼술(招魂術)을 하고 나면 늘 그러니까.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일이야.
물론 명(命)도... ”
“ ......... 그런..... ”
걱정스럽게 자신의 품에 안겨있는 민우와 무표정하게 서 있는 승민을 번갈아 돌아보
는 혜성에게 예상하고 있었다는 말투로 설명하는 승민의 말에 혜성은 더욱 당황해 이
번에는 곁에 서있는 동완과 선호를 돌아봤다. 동완은 아무 말 없이 혜성과 눈을 맞추
고 있었고, 선호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담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호의 옆에 앉
은 정혁은 여전히 그들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귀를 막고 앉아 멤버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 그런 일이야. 우리 일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
이래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니? ”
예상치 못한 멤버들의 모습에 당황한 혜성의 눈빛에 승민이 담담히 물어왔다. 그 질
문은 혜성이 처음 팀에 들어오던 날과 같은 질문이었다. ‘우리의 일음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야. 그래도 이일을 하고 싶니?’
그때... 무슨 대답을 했었더라?...
승민의 질문을 들으며 그날의 기억을 환상처럼 떠올린 혜성이 생각해봤지만, 이상하
게도 그날의 자신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대답을 했었는지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 ......... 그럼... 모두들 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인 줄 알면서
이 일을 하는 거죠? ”
혜성은 그날의 일을 기억해내려 애쓰느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되물었다.
“ ......... 운명(運命)이니까.... ”
혜성의 물음에 승민은 차분하지만 알 수 없는 묘한 어감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승민의 대답은 단순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의미가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래서 그 한마디로 대답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전 제 선택 역시 운명(運命)이라고 생각해요.
선호가 헬기로 우리 집의 불을 끈 것도, 승민 형이 날 끌어낸 것도...
모두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내 선택은 나의 의지였지만, 난 내 스스로 내 운명을 선택한 거예요.
후회는 없어요. ”
“ 그래. 가자. ”
혜성의 말을 듣고 있던 동완은 혜성에게 안겨 있던 민우를 안아들고는 돌아서며 말했
다. 그런 동완과 혜성을 번갈아 살피던 선호는 곧 민우를 안아든 동완을 따라 뛰었고,
그런 선호를 바라보던 혜성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 가자. 정혁 형. ”
승민은 길가에 주저 앉아있던 정혁의 팔을 잡아 당겨 일으키고는 동완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저녁노을에 길게 늘어진 주택가 담벼락의 그림자에 숨어 눈물을 닦은 혜성
은 곧 그 둘을 따라 달렸다.
“ 그래. 내가 선택한 운명(運命)이야.
후회하지 않아. ”
.
.
.
“ 운동선수거나, 운동을 했거나, 운동신경이 좋거나... 그 중 하나일 거야.
혜성이와 내가 쫓아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
쓰러진 민우를 방안에 눕히고 모두 거실에 모여 앉자, 예림이가 그린 종이를 들여다
보던 승민이 말했다.
“ 이거 아파트 같은데요? ”
승민의 말을 듣고 있던 선호가 안경을 끼고는 종이를 바짝 들여다보며 말했다.
“ 하지만 아파트라는 것만으로는 범인을 찾을 수 없잖아요. ”
“ 하아- 민우가 깨어나면 뭔가가 더 나오겠지. ”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몸을 묻는 동완의 옆에서 종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혁은 옆
에 놓인 펜을 들어 예림이가 그린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 우산? 우산이야, 이거? ”
그런 정혁의 행동에 놀라 묻는 선호의 질문에도 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
갔다.
“ 우산이야? 웬 우산? ”
“ 이거 혹시 아파트에 그려진 그림 아니야? ”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혜성이 말했다. 그 말에 모두들 그림에 얼굴을 모으고는
말했다.
“ 그래. 그럴 법하다! ”
“ 동완 형. 얼른 우산이 그려진 아파트 수배해 봐. ”
“ 알았어. ”
승민의 말에 동완이 전화기 버튼을 누르며 통화를 시작했고, 모두들 다시금 생각에
빠졌다.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며 민우가 나왔다.
“ 민우야. ”
“ 민우 형! ”
“ 종이랑 펜 좀 줘봐. ”
두통이 있는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부스스해진 머리를 부여잡으며 방에서 나온 민우의
말에 선호가 얼른 종이와 펜을 건네주었다.
“ 109란 숫자와 11층이란 엘리베이터 숫자.
그리고 호화스런 집안 인테리어를 봤어. ”
“ 보였어? ”
“ 응. 예림이의 의지가 강해서 보였어.
자기가 본 걸 말로 전해 줄 수 없는 게 답답했나봐. ”
“ 동완 형. 109동이란 숫자까지 쓰는 아파트,
11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 중에 찾아 봐. ”
“ 알았어. ”
승민의 말에 통화를 끝낸 동완이 현관으로 나가려 했다.
“ 우선 세 군데를 찾았대. ”
“ 나도 갈게. ”
“ 넌 금방 깨어났잖아. ”
설명하며 집을 나서는 동완을 따라 나서는 민우에게 동완이 눈살을 찌푸린 채
말했다.
“ 내가 봤어. 그 아파트. ”
“ ........... 그래. 가자. ”
하지만 그런 동완의 무서운 표정에도 표정 없이 대꾸하며 먼저 나서는 민우의 모습에
망설이던 동완은 말했고, 모두 동완과 승민의 차에 올라탔다.
.
“ 근데 아파트를 찾는다 쳐도 어떡할 거야? 들어가서 수사를 할 수도 없잖아.
영장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 그게 우리 일의 단점이지. 형사들을 시켜 잠복근무를 하는 수밖에... ”
차가 골목을 벗어나 도로에 진입한 것을 본 혜성의 질문에 운전을 하던 동완이 대답
했다. 동완의 대답에 잠시 운전하는 동완의 옆모습을 바라보던 혜성을 몸을 돌려 뒷
자리에 누워있는 민우를 힐끗 바라봤다.
“ 좀 쉬면 괜찮을 거야. ”
“ 누... 누가 걱정 한데? ”
운전하느라 앞을 보면서도 마치 혜성을 보고 있는 듯이 말하는 동완의 모습에 혜성이
당황해서 몸을 앞으로 되돌리고는 소리쳤다. 그 모습에 동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초혼술(招魂術)이란 건 자신이 모시는 신과의 계약에 따라 혼(魂)을 불러내는
의식이야. 그리고 누구나 신과의 계약을 한다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고.
악마와의 계약과 마찬가지로 선한 신과의 계약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야.
사람에게 그건 자신의 체력이 될 수도, 또 자신의 명이 될 수도 있고... ”
동완의 설명에 혜성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악마에게 혼을 팔아버린
불쌍한 영혼. 그 불쌍한 영혼이 민우는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 .......... 민우는 어떻게 여기 온 거죠? ”
“ .......... 운명(運命)이 민우를 이곳으로 이끈 거지..... ”
혜성의 조심스런 질문에 동완은 알 듯, 모를 듯한 대답을 해주었다.
“ .......... 형도 승민 형처럼 내가 팀에 들어올 게 실수라고 생각해요? ”
“ ..... 우리와 함께 하는 게 네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게다가 넌... 하아- 아니다. ”
“ 뭔데요? ”
동완이 무슨 말을 하려다 망설이며 멈추자 혜성이 몸을 돌려 동완을 바라본 채
물었다.
“ 넌... 너와 너의 가족들을 그렇게 만든 존재들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팀에 들어온 거니? ”
“ .......................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동완의 물음에 혜성이 잠시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 그렇다면 넌 나보다 나은 녀석이구나. ”
“ .......... 그게 무슨.......... ”
동완의 탄식이 섞인 듯한 말투에 혜성은 당황해 동완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표정
없이 운전을 하고 있는 동완이었지만, 혜성은 차마 더 이상 무언가를 물을 수 없었다.
늘 어른스럽고 든든한 동완의 눈매가 너무 아파보였기 때문이었다.
“ 난 복수를 위해 팀에 들어왔어. 하지만 넌 아니라고 했지?
그렇다면 네가 어떤 이유로 팀에 들어왔든 나보다는 정당한 이유일 거야. ”
“ ......... 동완 형......... ”
“ 다 왔다. 근처에 있는 아파트 중에 우산이 그려진 큰 평수의 아파트는 우선 이거야.
민우야. 좀 일어나 봐. 민우야- ”
동완의 부름에 눈을 부비며 일어난 민우는 어둠이 깔린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 여기가 맞아. 109동. 11층. ”
“ 몇 라인 인지도 알아? ”
“ 제일 끝이었어. 오른 쪽으로 길이 보였거든. ”
“ 그럼 1/2라인이군. 1101호나 1102호. 둘 중 하나인가? ”
“ 여기가 맞아? ”
109동 앞에 나란히 서서 말하는 동완과 민우, 혜성의 뒤로 차를 주차한 선호와 승민
이 차에서 내렸다.
“ 정혁 형은 자요. 안 오겠대. ”
“ 여기가 맞아? ”
“ 맞는 거 같대. ”
승민의 물음에 여전히 머리가 아픈지 찡그리고 있는 민우를 대신해 동완이 대답했다.
“ 그럼 올라가서 몇 호인지 알아내야지. ”
“ 그럴 거 없어. 김 형사한테 확인 했어. 1101호는 나이든 노부부 둘뿐이래.
1102호에는 부부와 아들 하나래. 중학교 3학년 아들. ”
“ 그래. 그럼 형사들 잠복 시키고, 우리 먼저 갈게. 가자. 선호야, 혜성아, 민우야. ”
“ ........... 난 동완 형이랑 이따 갈게요. ”
승민의 말에 선호는 동완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말했고, 승민은 그렇게 말하는 선호
를 남겨두고는 민우와 혜성만을 태운 채 차를 집으로 돌렸다. 올 때처럼 차의 뒷좌석
에 탄 민우는 피곤했던 듯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그 아파트의 한 베란다에
서 세 사람이 탄 차를 내려다보던 인영이 중얼거렸다.
“ 드디어 만난 건가? 후훗- ”
별빛만 부드럽게 남은 검은 어둠 사이로 여인의 매혹적인 붉은 입술이 빛났다.
[미스/테리] 퇴마연의(退魔演義) 004 - Case No.01 괴담(怪談)
길을 걷다가 네게 말을 건 낯선 여자.
그 여자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니?
File #04 용의자(容疑者)에서 범인(犯人)으로... 그리고 다시...
“ 빨간 마스크의 전설은 일본에서 넘어온 것으로 과외를 시킬 수 없었던 한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도 과외를 할 수 없게 퍼뜨린 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해.
이 이야기는 1978년 12월 일본 기후현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자녀들을 교습소,
그러니까 지금의 학원 비슷한 것에 보내는 게 유행이었어.
하지만 생활이 넉넉지 않아 자녀를 교습소에 보낼 형편이 안 된 부모가
교습소 보내기 붐이 사라지게 하기 위해 ‘빨간 마스크’ 괴담을 퍼트렸다는
소문이 유력한다는 거지. ”
“ 하지만 그 집은 그렇게 가난해 보이지도 않던데? ”
사건의 시작이었던 빨간 마스크에 대해 조사한 승민의 설명에 혜성이 미간을 찌푸리
며 말했다. 서울 시내의 알짜배기 땅이라는 강남의 40평이 훨씬 넘는 초호화 아파트
에서 살면서 학원에 보내지 못하고, 개인교습을 시키지 못해 사건을 벌였다는 것은
신빙성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 그래. 공식적으로 알아본 바에 따라도 아버지가 개인병원을 하고 있어.
게다가 어머니 쪽도 부유한 편이고...
금전적인 이유라고는 볼 수 없다는 뜻이지.
하지만 성적이라는 게 돈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비공식적인 루트로 알아본 바에 의해서도 용의자의 아들은
줄곧 개인과외를 받고 있었다고 해.
그러니 이번 경우는 좀더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할 수 있지.
아들의 성적을 최고로 만들 수 없다면, 최고를 제거하라.
마지막 피해자가 용의자 아들과 한 학교에 다니고 있어.
용의자 아들의 앞 등수이고... ”
“ 에이- 설마 그런 일로 아이들을 죽이겠어요? ”
용의자 가족의 신상 명세를 설명하는 동완의 말에 선호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
를 저으며 말했다.
“ 날 더운데 새치기 한다고 사람을 죽이는 게 요즘 세상이야.
동기란 정말 말 그대로 동기일 뿐이야. ”
“ ......... 너무 섬뜩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
냉정한 동완의 말에 선호는 두 눈 가득 눈물을 담고는 말했다.
.
.
.
“ 네? 알았어요. 곧 갈게요. ”
“ 무슨 일이야? ”
이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샤워까지 끝낸 혜성이 욕실에서 나오다 전화를 끊는 선호
에게 물었다.
“ 용의자가 아들의 중학교 학생 한명을 납치 하려다가
잠복하고 있던 형사들에게 잡혔대요. ”
“ 가보자! ”
방으로 뛰어들어 옷을 갈아입는 혜성의 본 선호가 민우의 방에 노크를 했다.
.
“ 흐음- 이현숙씨는 완벽한 엘리트 삶을 사셨군요.
예원학교와 서울예고, 이화여대에서 성악전공에 독일 유학까지 다녀오셨네요. ”
“ 네. 그래요. ”
혜성과 민우, 승민과 선호를 비롯한 다른 형사들이 있는 방의 유리 너머로 벽에 비스
듬히 기대어 서서는 질문하는 동완과 평범한 테이블 앞에 변호사로 보이는 남자와 나
란히 앉아있는 우아한 여인이 보였다.
“ 혹시 운동도 하셨나요? 음악 하시려면 체력이 필요하셨을 텐데... ”
“ 네. 골프와 승마를 했어요. ”
미소를 띤 채 묻는 상냥한 동완의 질문에 이현숙 역시 고개를 살짝 돌려 동완을 바라
보고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육상이나 체조 같은 건 안하셨나요? "
“ 아뇨. 그런 건 사교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
갸름한 턱 끝을 살짝 올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저은 탓에 입고 있던 쉬폰 소재의 블라
우스의 레이스가 살짝 흔들렸다.
“ 그렇군요. 자, 그럼 말씀하시죠.
왜 아이들을 그렇게 무참히 살해했는지. ”
“ 이현숙씨가 했다는 증거라도 있나요?
그런 게 아니라면 이건 과잉수사입니다. ”
갑자기 냉랭하게 변한 동완의 말투와 사건에 대한 질문에 동완의 계속되는 일상적인
질문과 대답에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변호사가 바로 제지하고 나섰다.
“ 아니라고요?
그럼 살해된 아이들의 옷에서 나온 DNA와
이현숙씨의 DNA가 일치하는 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
“ 근처에 사는 아이들입니다. 우연히 지나다가 묻을 수도 있는 거죠. ”
“ 살해당한 아이의 상처와 손톱 밑에서 나온 피부조직입니다.
이 정도의 피부조직은 심하게 잡거나 할퀴지 않으면 묻기 힘든 것이죠.
지나가던 아이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할퀴기라도 했다는 말씀인가요? ”
“ 그렇군요. 지난 번 지나가다 보니,
어떤 꼬마가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달려오다가 저에게 부딪힌 적이 있어요.
그때 묻은 게 아닌 가요? ”
“ 어떤 꼬마였죠? ”
“ 분홍색 꽃무늬가 있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꼬마였어요. ”
“ 어디서요? ”
“ 그 사건이 일어났다는 초등학교 근처에서요. ”
“ 사건 당일 날 말씀이신가요? ”
“ 그래요. ”
동완의 계속되는 빠른 질문에 이현숙은 마치 대답을 준비라도 한 듯이 매끈하게 대답
했고, 그런 질문과 대답의 고리는 몇 번이나 되풀이 됐다. 하지만 이현숙의 마지막 대
답이 끝나는 순간 그때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빠르게 묻던 동완이 얼굴에 미소를 띄우
고는 조용히 말했다.
“ 이상하군요. ”
“ 뭐가요?!!! ”
180도 변해버린 동완의 모습에 오히려 긴장한 이현숙이 소리쳤다.
“ 그날 그 아이는 심한 감기로 인해 학교에서 옷에 실수를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아이의 엄마가 새로 산 원피스를 가져다 입혀주었고요.
옷에 실수를 한 아이가 우울해 할까봐, 특별히 아이가 입고 싶어 하던
새 원피스를 사다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그 원피스를 처음 입었던 것이고요.
그 후, 하교 때까지 그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명랑하던 아이가 그 실수 때문에 우울하게 혼자 집에 가겠다고 조퇴를 한 거죠.
조퇴를 한 아이는 엄마가 데리러 오기 전 5분 사이에 납치당했고,
결국 그 아이가 그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것을 본 사람은
학교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현숙씨께서 그 원피스를 알고 계시죠? ”
“ 그... 그거야... 뉴스에서 보고... ”
동완의 막힘없는 설명에 이현숙은 처음으로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 그건 더 이상하군요.
이번 사건은 어린아이가 잔인하게 당한 사건이라서
아이의 사진은 아이 생전에 가장 예쁜 모습이 나갔습니다.
그게 그 아이에 대한 예의니까요. 그리고 그 사진들에서
아이가 사건 당일 입었던 옷을 입은 사진은 없었습니다.
그 옷은 그 날 엄마가 사온 옷이니까요. ”
“ 그... 그건... ”
“ 말해보시죠. 어떻게 그 옷을 알고 있었는지!!! 당신이 본 거죠! 그 사건 당일!
그 아이의 목을 예리한 칼날로 베면서!!! 뭐였죠? 식칼이었나?
아! 그래. 아줌마니까 당연히 식칼이었겠군! 어때? 잘 들던가?
살림을 잘 못하니 칼이 잘 안 들었을 텐데...
그러니까 아들 성적도 그 모양이었고...
그래서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애들을 없애기 위해 한 사건 아닌가?
그러면서 칼은 열심히 갈았군? 왜? 싸구려라 칼이 잘 안 들던가?
그래서 밤새 갈았나? 뭘로 갈았지? 아줌마도 물 뿌려가며 손 수 갈았나?
죽일 애들을 상상하면서? 하긴... 그렇게 무딘 날로는 좀 무리였을 테니... ”
“ 아냐!!! 난 헹켈사의 쌍둥이 칼을 써!!! 너 같은 쫌팽이 형사가 알기나 해?
그건 독일 명품이라고!!! ”
“ 하! 그래서? 그래서 잘 잘라지던가요? ”
“ 그래! 한번에 잘라졌다! ”
“ 동맥이 쑥- 나갔죠? ”
“ 그래! 한번에 나가더라!
피부 잘리는 소리는 물론이고, 동맥 끊어지는 느낌까지 한칼이었어!!! ”
“ 이현숙씨!!! ”
“ 아!!!...... ”
속사포처럼 쏘아대며 묻는 동완의 자존심을 구기는 질문에 이현숙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까지 띄운 채 자기 자랑이 섞인 대답을 내뱉어 버렸고, 이현숙의 비명에
가까운 대답에 변호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현숙
은 놀라 멍-하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 역시 살림 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군요?
네. 알았습니다. 집에 있는 칼들을 조사해 보죠.
칼 브랜드를 알았으니 찾는 건 시간문제로군요.
게다가 행켈사의 칼이라면 칼집도 있는 명품 칼이죠?
칼집에 칼이 모두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협조 감사합니다. ”
동완은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지은 채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
.
.
“ 어. 그래. 찾았어? 그래. 잘했어. 그럼 증거물 제출하고 수사 마무리 하도록 해. ”
담당 검사와 재판 건에 대해 의논하던 동완은 걸려온 김 형사의 전화에 미소를 지으
며 말했다.
“ 수사하시던 사건 증거가 발견 됐나보죠?”
“ 예. ”
“ 대단하시네요. 이러다 정말 최연소 경찰청장이 되시는 거 아녜요? ”
“ 하하- 무슨 그런 말씀을... 전 형사 체질입니다. 사무실에 있는 건 질색예요. ”
“ 그래도 대대로 경찰청장을 지내신 집안 아닙니까? ”
“ 그거야, 저희 형들이 이으면 될 일이고, 전 아닙니다. 하하- ”
검사의 말에 동완은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그 빨간 마스크 사건으로 유명하던 사건인가요? ”
“ 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들이 엄마에게
아이들을 죽여 달라고 부탁했고, 엄마는 아들의 내신 등급을 올리기 위해
자기 아들보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차례로 죽이고,
그 걸 속이기 위해 무고한 어린이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
“ 나 참... 아무리 성적이 중요하다지만, 어떻게 그런 일 까지... ”
“ 그런 부탁을 하도록 키운 것도 잘못이지만,
결정적으로 그런 부탁을 받고도 꾸중을 하지 않고
들어준 게 더 커다란 문제겠죠. ”
“ 그렇네요... 근데 범인의 아들은 중학생이라던데,
눈속임을 위한 사건에서 일부러 초등학생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은
역시 작고 힘이 없기 때문에 다루기 쉬웠기 때문입니까? ”
“ 네. 범인이 여자였던지라 힘없는 어린이들을 상대한 거죠.
그 탓에 고등학생이나 남학생은 없고, 무고한 어린이들만
사건의 피해자로..... 아!....... ”
검사에게 사건에 대해 설명하던 동완은 갑자기 소리를 치고는 뛰어나갔다.
[미스/테리] 퇴마연의(退魔演義) 005 - Case No.01 괴담(怪談)
길을 걷다가 네게 말을 건 낯선 여자.
그 여자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니?
File #05 발광청년(發狂靑年)
“ ........... 쿵.. 쿵....... 쿵!!! 쿵!!!..... 쿵!!!!!!!! ”
“ ...... 으음..... 뭐야..... ”
한밤중에 들리는 무거운 소리에 혜성은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멍-하게 침대에 앉아
있던 혜성은 다시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이미 거실
에는 민우와 선호도 나와 있었다.
“ 무슨 소리야? ”
“ 정혁 형 방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요? ”
“ ................... ”
선호의 대답에 민우는 정혁의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문밖으로 책을 비
롯해 온갖 물건들이 날아들었다. 날아드는 물건에 놀라 한쪽 벽으로 바짝 붙은 혜성
과 바닥으로 쪼그려 앉은 선호와는 달리 민우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그 물건들을 피하
고는 방으로 뛰어 들어 미친 듯이 입을 벙긋-대며 물건을 집어 던져대는 정혁을 잡았
다. 괴로운 표정으로 민우를 거부하며 계속 물건들을 집어던지는 정혁을 끌어안고는
침대로 나동그라진 민우를 본 선호는 재빨리 일어나 거실로 달려가서는 전화기를 들
었다.
- 여보세요?
“ ..... 흑... 동완 혀엉..... ”
- 선호야! 왜 그래??!!! 울어???
운전을 하고 있던 동완은 자동차 핸즈 프리를 통해 들리는 선호의 울음소리에 놀라
소리쳤다. 어지간히 마음이 여린 선호였지만, 눈물은 쉽게 보이지 않는 선호였기에
선호의 울음에 크게 당황해 버린 동완은 하마터면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 사고를 낼
뻔 했다. 끔찍한 순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 도로 한쪽에 차를 세운 동완이 휴대폰
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대고는 말했다.
- 선호야. 무슨 일이야. 응? 울지 말고... 어디야? 어딘데 울고 그래???
“ ... 흐흑... 집... 흑... 동완 혀엉.... 흑흑...
...... 정혁 형이... 정혁 형이 막... 막.... 흐흐흑... ”
- 알았어. 금방 갈게. 울지 말고 있어. 금방 갈게.
선호의 말을 듣자마자 동완은 무서운 속도로 차의 시동을 걸며 운전석 앞에 놓인
사이렌을 차 밖으로 내어 놓고는 미친 듯이 속력을 내 선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쾅!!!!!
“ 정혁아!!! ”
“ 정혁 형! 무슨 일이야??!!! ”
“ ....... 헉...... 헉... 빨리 와서 좀 잡아 봐. ”
동완의 연락을 받고는 거의 동시에 도착해 정혁을 부르며 집안으로 뛰어든 동완과
승민이 정혁의 방에서 정혁을 잡고 있는 민우와 혜성, 선호를 보고는 놀라 그들을
대신해 정혁을 붙잡았다.
“ 정혁아, 왜 그래? 왜? 대체 왜 그래??!!! ”
“ ...... 헉.... 잠시만 잡고 있어봐. 결계를 칠테니까... ”
놀란 동완의 물음에도 정혁은 연신 몸부림을 치며 괴로워했고, 민우는 오랜 몸 씨름
으로 지친 민우가 힘겹게 일어나며 말했다. 이미 혜성과 선호는 거의 탈진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 하지만 이집은 이미 결계로... ”
“ 그래도 모르잖아. ”
그런 민우의 말에 놀란 승민이 정혁을 끌어안은 채 말하는 승민의 말을 끊은 민우는
재빨리 자기 방으로 들어가 부적을 가지고 나와 정혁의 방에 새로운 결계를 쳤고,
그때서야 동완과 승민에게 잡혀서도 몸부림을 치던 정혁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곧
떨어지듯 침대 위로 축- 쳐졌다.
“ 어떻게 된 거야? ”
“ 모르겠어요. 갑자기... 자는데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까,
민우 형이 나와 있었어요. ”
정혁을 눕힌 방문을 열어둔 채 거실에 앉은 모두는 이미 땀범벅이었다. 지쳐 소파에
널브러진 승민이 묻자 걱정스런 표정의 선호가 땀으로 범벅이 된 티셔츠를 벗으며
소파에 앉는 민우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진 민우의 상체를 본
혜성은 자신의 호리호리한 몸매가 떠올라 근육자랑이라도 하려냐고 소리라도 지르려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아무 소리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 밖에서 운동하는데, 갑자기 소리가 들리길래... ”
그런 혜성의 마음은 모르는 민우는 지친 표정으로 몸을 돌려 옆에 놓인 1인용 소파에
앉은 승민에게 말했다.
“ 대체 무슨 일이지? 정혁이가 말 할 것 같지는 않고... ”
“ 내가 초혼술(招魂術)을 써볼게. ”
“ 안돼!!! 한 사건에서 두 번씩이나 쓰겠다고??!!! 너 지난번에도 쓰러졌어!!! ”
여전히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는 민우를 보고 동완은 화난 표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 어쩔 수 없잖아. 그럼 정혁 형을 제대로 두란 말이야? ”
“ ...................... ”
“ 정혁 형, 이대로 두면 정말 미쳐버릴 거야. ”
“ ...................... ”
“ 하게 놔 둬. ”
“ ........... 젠장!!!!!! ”
민우의 말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동완은 옆에 놓인 쿠션을 들어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그런 동완의 모습에 승민과 선호는 고개를 숙였고, 혜성은 미간을 구기며
민우를 바라봤다.
지난 번 강하기만 하던 민우가 한번에 쓰러지는 모습을 본 뒤로 혜성은 초혼술(招魂
術)이라면 두렵기까지 했다. 동완의 말대로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파는 의식같이 느껴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우는 그런 혜성의 시선에도 무표정하게 방으로 들어가 준비
했다.
.
“ 너냐? 정혁 형 괴롭힌 게? ”
- 괴롭힌 게 아냐.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민우의 부름에 나타난 영(靈)은 열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년
으로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있었으며, 입이 귀까지 길게 찢어져 있었다.
“ 사실? 무슨 사실? ”
민우가 써준 명안부로 그 영(靈)을 볼 수 있게 된 동완이 물었다. 그런 동완의 물음에
소년의 영(靈)은 고개를 돌려 동완을 바라봤고, 그때서야 영(靈)의 모습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던 선호는 그 참혹한 모습에 입술을 깨물었다. 반면 창백하고 말끔한 인상
인소년의 영(靈)은 지난 번 예림이가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던 것과는 달리 오히려
침착해 보였다.
-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소년의 영(靈)은 자신의 참혹한 모습에 힘겨워하는 선호의 모습을 잠시 응시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민우와 동완을 돌아보며 말했다.
“ 무슨 진실? ”
- 그 아줌마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 아니라는 거야? ”
- 진짜 범인은 따로 있어. 너희도 눈치 채고 있잖아.
그리고 난 진짜 범인을 잡아달라고 말 한 거밖에 없어.
이 집에 결계가 쳐져 있어서 미처 들어올 수 없어 밖에서 말했을 뿐이야.
근데 저렇게 발광이잖아. 저 형 미친 거 아냐?
소년의 영(靈)은 흉한 몰골과는 달리 꽤나 시니컬한 표정으로 정혁이 누워있는 방 쪽
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입이 심하게 찢어져 피가 범벅이 된 몰골과는
물론이고 열여섯 살의 소년의 모습과도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침착했다.
“ ....... 진짜 범인이 혹시 용의자인 아줌마 아들의 뒤 등수 아이니? ”
- 역시 알고 있었군. 그러면서 왜 가만히 있었어?
느닷없이 소년의 영(靈) 뒤쪽에 서 있던 선호가 물었다. 그러자 선호의 말에 소년의
영(靈)은 몸을 돌려 나란히 앉은 선호와 혜성, 승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 심증만 있었을 뿐이야. ”
- 물증이라면 그 애 주변에 있는 그 악마 놈이 물증이지.
“ 악마? ”
- 그래. 어떤 악마 놈이 그 아줌마네 갔었고, 또 그 애 집에도 갔었어.
“ 알았어. 우리가 해결할 테니, 더 이상 정혁이에게 나타나지마. 알았어? ”
- 알았어. 범인만 잡아준다면 나도 억지로 여기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말을 마친 소년의 영(靈)은 순순히 모습을 감추었다.
.
“ 그럼 그 귀신의 힘으로 그 순간에 그렇게 초인적인 힘을 냈다는 거야? ”
소년의 영(靈)이 사라지자 멤버들은 동완이 추리한 것을 듣고는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완의 의견을 확실히 하려는 듯 묻는 승민의 물음에 동완 역시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안 그래도 좀 이상했어. 그 아줌마.
보기엔 전혀 운동을 한 사람 같지 않은데
어떻게 그렇게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었던 거냐고?
결국 인간의 힘은 아니라는 거잖아... ”
동완의 대답에 혜성이 이제야 그때의 상황이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달리기가 꽤
빠르다는 승민과 자신이 따라 뛰었는데도 잡지 못했던 속도나 담장을 한번에 훌쩍-
뛰어넘는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연약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도 왠지 수상하고... ”
“ .......... 역시... 인간은 힘은 아닌 거 같지?
게다가 뭔가... 더 이상한 무언가도 있고...”
“ 악마와 계약 같은 걸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
“ 뭐... 그 비슷한 거... ”
“ ............ 이 아줌마 아들 학교 성적표를 확인해 봐요. ”
동완의 질문에 승민이 대답하려는 순간, 생각에 잠겨 있던 선호가 말했다.
“ 왜? ”
“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 그 영(靈)이 말한 대로, 악마와 계약한 상대가...
범인이라고 자백한 아줌마의 아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그럴 듯해..... ”
선호의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혜성이 중얼거렸다.
“ 성적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
“ ............ 혜성아. 잊지 마. 네가 여기 들어올 때 조건을... ”
그때를 놓치지 않고, 냉정하게 들리는 승민의 목소리. 평소와는 전혀 다른 냉정한 승
민의 목소리에 모두들 아무 말 없이 승민과 혜성을 번갈아 살폈고, 혜성은 그런 승민
을 말없이 응시하다가는 입을 뗐다.
“ ..... 잊지 않아요. 절대... 안 잊어..... ”
[미스/테리] 퇴마연의(退魔演義) 006 - Case No.01 괴담(怪談)
길을 걷다가 네게 말을 건 낯선 여자.
그 여자가 널 죽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니?
File #06 진범(眞犯)
“ 자백한 아줌마의 아들이 오늘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어. ”
“ 뭐??!!!!! ”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모두가 앉아 선호가 만들어준 수박화채를 퍼먹고 있던 집으로 들어온 동완의 말에
모두들 수박을 문 채로 멍-하니 동완을 바라봤다. 사실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니었지만, 또한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수업 시간에 느닷없이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뛰어내렸어. ”
“ 자살... 이에요? ”
입에 물고 있던 수박을 꿀꺽- 삼킨 혜성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 표면적으로는 그렇지만, 내 느낌에는 뭔가 이상해. ”
“ 뭐가? ”
“ 자살 하러 옥상으로 올라갈 때 그 아이가 좀 이상했대. ”
“ 자기 부탁으로 엄마가 그런 일을 벌였는데, 정상인 게 더 이상하지 않아? ”
그 아이가 자살할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커다란
일을 감당하지 못한 어린 학생이 충분히 벌일 수 있는 일이기도 했기에 승민이 먼저
이성을 찾고는 말했다.
“ 그래.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점은
그 애는 자기가 엄마한테 그런 부탁을 한 걸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 ”
“ 뭐??!!!! ”
“ 그럼 그 엄마라는 사람이 거짓말을 한 거야? ”
“ 아니. 그 학교에 내 친구가 근무하는데 그 녀석 말이
그 학생 말로는 요즘 들어 가끔씩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있대. ”
“ 그게 무슨... ”
“ 그럼 정혁 형의 방에 나타난 영의 말대로... ”
“ 그래. 그 애도 그 애의 엄마도 뭔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아. ”
“ ............ 결국 그 녀석의 다음 등수를 찾아봐야 겠군. ”
“ 학교에 부탁해서 성적표를 받았어요. 역시 그 집 아들은 전교 등수가 3등이었어요.
죽은 아이는 1등이었고, 마지막 피해자가 될 뻔했던 아이가 2등인 아이었어. ”
승민의 말에 선호가 좀 전에 학교 측에서 메일로 보내준 내용을 떠올리며 말했다.
“ 4등은? ”
“ 이태희라는 여학생이요. ”
“ 가보자. ”
.
“ 뭔가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 ”
“ 그래? 민우 네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
“ 아주 강력한 놈이지... ”
이태희의 집 앞에 서자마자 주변을 둘러보는 민우의 말에 모두들 바짝 긴장했다. 약
간의 영력과 부적을 쓸 줄 아는 힘이 있는 민우였지만, 정혁만큼 영력이 강한 편이
아니었기에 민우는 큰 힘만 느낄 수 있었다. 민우의 말에 동완이 대문 앞에 다가서서
벨을 눌렀다.
- 띵동~
- 누구세요?
“ 이태희양의 집인가요? ”
- 네. 그런데요?
“ 경찰입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조사 때문에 그러는데 잠시 들어갈 수 있을까요? ”
- 네. 그러세요.
문이 열리고 하얀 얼굴의 예쁘장한 소녀가 문 안쪽에 서서 동완 일행을 반겼다.
“ 들어오세요. ”
“ 그래. 고마워요. 근데... 부모님은? ”
“ 여행 가셨어요. ”
동완 일행을 거실로 안내하고는 음료를 내오는 소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 그럼 지금 혼자 있는 거야? ”
“ 네. ”
생긋 웃으며 주스가 담긴 투명한 잔들을 일행의 앞에 내려놓은 소녀가 일행의 맞은편
에 앉았다. 명문으로 유명한 학교에서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만큼 꽤 똑똑하
다고 할 수 있는 이태희는 영리해 보일 뿐만 아니라 무척 예쁘기까지 했다.
“ 그럼 일을 좀 편하게 해결할 수 있겠군! ”
이태희의 대답에 느닷없이 그렇게 말한 민우가 들고 있던 검을 꺼내들자, 은빛의 장
검에는 푸르른 검기가 맺혔고, 그 순간 민우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소파를 넘어 뒤로 물러난 이태희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웃으며 짐승처럼 거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 황당한 상황에 민우의 옆에 앉아있
던 혜성은 멍-하니 민우와 소녀를 번갈아 돌아보았다. 꽤나 예쁘고 영리해 보이는
모습에 호감을 느끼고 있던 혜성은 소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혜성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민우와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이태희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 흐흐흐... 역시 생각대로 강한 놈들이군...
특히 넌 들어올 때부터 기운이 남달랐어... ]
이미 본래의 모습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에는 얼핏 악령의 모습이
스쳐 나타났다. 울퉁불퉁 근육들이 솟아난 얼굴의 연신 씰룩거리는 입술이 유독 눈에
띄었다. 뒤집어질 대로 뒤집어진 입술은 모세 혈관들이 터져 피가 잔뜩 맺혀 있었다.
입을 떼자 뚝뚝 떨어지는 타액은 그 피가 섞여 붉은 색으로 바닥에 고였다.
“ 너 따위한테 그런 말을 듣는 건 별로 달갑지 않군. ”
[ 흐흐흐... 어때? 날 죽이고 싶지? 하지만 어쩌나?
날 죽이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계집의 몸뚱이부터 죽여야 할텐데...
흐흐흐... 넌 살생을 할 수 없는 몸이지. 안 그런가? 승려 양반?
그 금강저(金剛杵)가 아깝군. 흐흐흐흐.... ]
“ 웃기지 마. 난 그런 거 상관없어. ”
[ 그래? 상관없다... 흐흐흐... 그래. 상관없겠지.
그랬으니 수 백 년 동안 그리 많은 인간을 죽여 왔고,
그래서 그 업보로 그런 고통을 이어가고 있으니...
이제 면역이 되서 상관없게 느껴질 때도 됐지... 흐흐흐...
하지만 내 친절하게 충고하나 하지. 이 애를 죽이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
“ 그럼 한 번 해 보자고!!! ”
민우가 검을 들고는 탁자를 밟고 올라가 소녀에게로 검을 내리 꽂으려는 순간 소녀의
몸에 있던 영은 민우와 눈이 마주쳤다. 흔들림 없이 강인한 민우의 눈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이나 후회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 이... 이런 미친 놈!!!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니!!!! ]
민우가 진심으로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악령은 허를 찔린 듯 당황해서
는 그렇게 외치며 몸을 날려 도망쳤고, 그 순간 선호가 재빨리 걸어놓은 결계에 갇혀
버렸다.
[ 이... 이게 뭐냐??!!! ]
“ 결계라는 거야. 내 발명품이지. ”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 거친 목소리로 묻는 영에게 선호가 생긋- 웃으며 답해주었다.
[ 이 따위 것들이... ]
“ 부적과는 달리 이것들은 물리력도 행사할 수 있어.
너같이 사람의 몸에 들어간 빙의령(憑依靈)을 잡기에는 최고의 물건이지. ”
결계의 기능이 깃든 수갑이 소녀의 팔목과 손목에 채워져 소녀를 벽에서 떨어질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소녀의 상태를 본 선호가 승민을 돌아보자 승민은 소녀에게
다가와 정교하게 세공된 아름다운 아치형의 봉으로 소녀를 내리쳤고, 그 순간 소녀의
몸에서 튕겨져 나온 악령은 다시 선호가 앞쪽에 걸어놓은 결계에 걸리고 말았다.
[ 끄윽... 이런... 잔재주만 잔뜩 지닌 놈들 같으니라고... ]
“ 잔재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엔 너무 이른 거 아닌가? ”
그렇게 말한 승민은 들고 있던 아치형의 봉을 등에 있는 가방에 꽂고는 메고 있던
크로스 백에서 가죽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오랜 손때가 묻은 성경을 꺼내 읽기 시작
했다.
“ ...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무엇을 무서워 하리요... ”
[ 큭큭... 어리석인 녀석들 같으니... 내가 그 따위 성경 나부랭이에....
으... 으.... 으으윽........ ]
그런 승민의 모습에 빙의 되어있던 몸에서 튕겨져 나와 결계에 걸려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던 악령은 느닷없이 몸을 비틀어대기 시작했다.
“ .....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
[ 아... 아니... 이게 어떻게..... 우... 우아아아악!!!!!!!!!!!!!!!!! ]
“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
[ 끅.... 끄으으윽...... 붓다의 저주받은 네 놈은.... 꾸웩....
........ 분명 살생을 하게 될 것이고... 웨엑.......
그럼... 우으윽!!!! 그 계집은.... 이번 생에도... 죽게 되겠지...
바로.... 우욱!!! 너 때문에.......... 꾸웨에엑!!!!!!!!!!!!!! ]
- 푸쉬시쉭....
승민의 엑소시즘에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라도 퍼붓는 듯 악에 바쳐 소리
치던 빙의령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소멸되자 아까까지만 해도 괴롭게 몸부림치던
소녀의 몸은 수갑에 매달린 채 축- 처졌다. 그런 소녀의 모습에 동완과 선호가 다가
가 소녀를 받아들고는 소녀의 몸을 내렸다.
“ 아무래도 이 놈은 승민 형이 사도(使徒)인 줄 몰랐나 보네요. ”
“ 훗- 승민이가 어디 신부로 보이냐?
쟨 십자가를 들어도 패션으로 보이는 놈이야. ”
소녀를 소파에 눕힌 선호가 동완에게 말하자 동완은 승민을 돌아보며 말했고, 그 말
에 승민은 가볍게 웃으며 피곤한 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 피곤하죠? 매번 사람 몸에 든 빙의령을 상대하려면... ”
“ ...... 응. 어쨌든 저렇게 어린 소녀를 다치게 하면 안 되니까..... ”
“ 부모는 죽은 거 같군. ”
선호와 승민의 대화에 조용히 위층을 올려 보던 민우의 말에 일제히 민우를 돌아
봤다. 민우는 잠시 위를 바라보더니 검 집을 들고는 2층으로 올라갔다. 민우를 따라
간 혜성과 선호, 동완은 코를 찌르는 악취에 코를 잡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 으... 죽은 지 한참 된 거 같은데?... ”
이미 잔뜩 썩어서 형태조차 알아 볼 수 없게 된 두 구의 시체에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 계약을 한 댓가로 부모를 팔았군. ”
“ 저 소녀가? ”
“ 소녀가 팔았는지, 부모 스스로 자신을 팔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 ”
“ ....................... ”
민우의 냉정한 말에 모두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 냉정한 민우였지만, 영에게
자신을 판 이들에게는 더욱 냉정한 민우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민우를 탓할 수
는 없었다.
“ 저따위 하급 빙의령 따위에게 영혼을 팔아 어쩌겠다는 건지... ”
“ 인간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 한 것이겠지. ”
선호는 슬픈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그런 선호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린 동완이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감정에 떨고 있는 선호를 토닥이며 말했다.
“ 인간(人間)이 얻을 수 없는 것은 영(靈)도 얻을 수 없어.
설사... 신(神)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
그런 선호와 동완의 대화를 들으며 잠시 썩어 들어가는 시체를 바라보던 민우는 여전
히 무표정하게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갔고, 상부에 뒤처리를 부탁하는 전화를 거는
동완을 끝으로 모두 집 밖으로 나왔다.
.
.
.
“ 그래서 결론은 이번에도 악령의 장난이었다는 건가? ”
“ 네. 악령에게 혼을 판 이태희가 그 힘으로 자기 앞 등수의 아이인
박평한을 조정해 박평한의 엄마인 이현숙이 살인을 하게 했고,
또 결국 박평한도 자살을 하게 했습니다. ”
“ 만일 박평한이나 이현숙이 진짜 범인이 아니라면
눈속임용의 살인도 필요 없었던 것 아닌가? ”
커다란 마호가니 책상의 뒤에 앉아있는 중년의 남자가 보고서를 읽기 위해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은 단순히 눈속임용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살인을 했던 이현숙도 그런 의도로 아이들을 살해한 것이고요.
하지만 그 모든 살인이 모두를 조정했던 빙의령(憑依靈)의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 어째서? ”
“ 우선 승민이가 소멸시킨 놈은 절대 귀찮은 짓은 하지 않는 놈입니다.
머리가 좋고, 또 그 머리를 쓰는 것을 즐기는 놈이죠.
이중 함정 따위는 놈에게는 즐거운 퍼즐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죽은 아이들은 놈이 원한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거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 그래. ”
“ 첫 번째 아이의 장례식을 집도하신 분이 저희 일에 대해 아시는 목사님이신데...
그 아이에게 영적 능력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 그래? ”
“ 예. 교회에 다닐 때도 종종 그런 일이 있곤 했답니다.
하지만 선한 쪽으로만 힘을 쓰는 아이고,
또 자신의 힘을 스스로는 쓰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지켜만 보셨다고 합니다. ”
“ 그럼 다른 아이들도 그럴 가능성은? ”
“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
“ 게다가? ”
“ 이번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두 번째 피해자 소년의 영의 주인도
본래 영적 능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 그래? ”
“ 네. 민우와 선호가 결계를 쳐놨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가 들리게 했어요.
민우와 선호의 결계를 만드는 주술 솜씨는 최고입니다.
보통 영이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 그래? 그렇다면 지난 번 사건과 같이
팀에 들어올 미래의 인물들을 미리 제거하고 있다? ”
“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 놈들도 머리를 쓰기 시작한 건가?
만약 이번에 이쪽에서 투입이 되지 않았다면
그냥 성적에 집착하는 한 가정에서 벌인 일로 끝났을 테니... ”
“ 예. 점점 지능적이 되어가는 듯 합니다. ”
“ 그래. 알았네. 나가보게. ”
“ 예. 그럼 이만... ”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집무실을 빠져나온 동완은 앞에 앉아있던 비서와 눈을 마
주치고는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벌써 4년째 이곳에서 비서 일을 하는 그녀와는
이미 서로가 충분히 눈에 익은 사이였다. 그렇게 집무실을 나와 복도를 걷던 동완의
눈에 호화로운 1층 로비를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 저 사람들 중 과연 몇 명이나 우리가 하는 일을 알고 있을까?
아니... 자신들이 있는 이 건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훗- ”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낸 동완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밖에는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따위는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밝고 반짝이는 여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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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성서 시편 27:1~3
첫댓글 후훗~~최고예요!
그림 무서워요 ㅠㅠ
배경이 무서워서 못보게ㅛㅛㅏㅁ
재미있었어요^^ 옆에 여자사진에 깜짝놀라긴했지만요 ㅋㅋ 사진이 무서워 어제밤에 읽으려했던걸 아침으로 미루었네요 ㅋㅋ
배경정말 깜짝놀랐어요 ㅠㅠㅠ
배경 깜놀...ㅠㅜ 신경쓰여서 보기가 힘들어요....ㅠㅜ 안보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ㅠㅜ 간절...ㅠㅜ
배경때문에 글읽기가 어렵다는 ㅜㅜ 배경어떻게 안보이게 할 수 없을까요?ㅜㅜ
클릭한순간 깜놀 했어여ㅠㅠ
완젼 무서웠지만 다 읽었죵~~재밌었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