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 쉴즈[Brooke Shields ]
생년월일 : 1965. 5. 31
학 력 : 프린스턴대학교 프랑스문학과
신 장 : 183cm
1965년 5월 31일 PM 1:45 뉴욕 포크릭 병원 출생. 세기의 미녀로 칭송받는 여배우.
그녀의 족보를 보면, 보스톤시 태생의 올리비아 무아라는 미인이 증조 할머니인데, 이 여인이 이태리로 건너가 이 나라의 귀족 도루로니아 공과 결혼, 일약 명문의 귀부인이 된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게 브룩 실즈의 친할머니인 마림나 도루로니아 비인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제적 미인이었다. 이 할머니가 1930년대 세계적 테니스 선수였던 프란시스 실즈라는 신사와 결혼, 그 사이에서 브룩의 아버지를 낳게 된다. 브룩의 아버지가 197.5cm의 휜칠한 키에 영화 배우 같은 호남형인 것은 켤코 우연이 아니다. 아버지를 닮아 브룩 실즈는 13살 때 162cm, 14살 땐 170cm나 되는 장신이었고 엄마 또한 180cm나 되는 장신 미인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혈통에도 불구하고 브룩의 부모는 불행한 사이였다. 그녀가 태어날 당시 아빠 프란시스 실즈는 24세, 엄마 테레사 슈몽은 31세, 무려 7살이나 연상이었다. 부모가 결혼 신고를 한 것은 브룩을 임신한 5달 후이고, 그가 태어나자 바로 이혼했다. 나이 차이도 많고 집안 차이도 커서 실즈가에서 반대가 심했던 모양. 아버지는 그 뒤 딴 여자와 결혼, 새 부인이 데리고 온 남매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 등, 모두 다섯 식구가 살고 있다. 그래서 브룩은 성장하면서 매달 한 차례 아버지 집에 가서 지내다오게 되었는데 이복 동생들과도 친하게 지냈다고.
4살 때 국민학교에 입학, 도중 영화 촬영 때문에 1년간 휴학했는데도 제 나이보다 2년이나 학년이 빠르게 미국 명문 프린스톤 대학을 다녔다. 그녀의 IQ가 무려 155. 글재주가 뛰어나며 공상적인 글도 있고, 심리 묘사를 잘 하는 시도 많다. 그림도 잘 그리고 폐물을 이용한 조각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고. 피아노에도 솜씨가 있다. 발레도 4년 쯤 배웠었고 노래 공부도 했다. 그리고 프린스톤 대학에서 올 A를 받을 만큼 미모와 지성을 겸비하고 있다.
브룩 실즈의 모델 출연은 생후 11달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보리 비누의 선전에 나왔는데, 카메라 앞에서도 딴 아이들처럼 겁을 먹거나 울지 않고 시키는 대로 연기를 잘 해냈다. 그 뒤 여러 상품 CF모델이 되었다. 8살 때와 10살 때는 <공원의 왕자>라는 영화 등에 잠깐 나왔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영화 스타가 될 셈으로 데뷔한 것은 역시 <프리티 베이비>. 브룩이 엘리자베스 테일러 이래 세계 최대의 미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2살 때(77년) 출연한 루이 마르 감독의 <프리티 베이비>라는 영화에 데뷔하면서부터. 더구나 이 영화가 그녀의 섹스 어필로 화제가 되었으니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때 출연료가 2만 7,500달러.
국제적으로 유명한 루이 마르 감독에 픽업되면서 브룩 실즈의 주가는 급상승하여 <집시의 왕(King of the Gypsies)>, <완다 네바다(Wanda Nevada)>에선 피터 폰다와 공연하여 15만 달러나 받았다. 다시 그의 개런티는 껑충 뛰어 <아가씨, 나와 그대 뿐이고(Just you and me, Kid)>에선 무려 50만 달러가 되었다. 그 뒤로 계속된 <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라든가, <사하라>에선 100만 달러 선에 육박하였다. 89년 <브렌다 스타> 이후 5년의 공백 끝에 영국-호주-일본의 합작 서스펜스물 <7층>에 출연했다.
97년 테니스 스타 안드레 아가시와 결혼했으나 2년 뒤 결별, 2001년 방송작가 겸 제작자인 크리스 헨치와 재혼했고, 2003년 둘 사이에서 첫째 딸 로한을 낳았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거인증으로 알려진 말단비대증이라고 한다.
지나치게 완벽한 아름다움과 일찍부터 시작된 성공으로 인생의 절정기에 이미 노쇠현상을 보인 아이러니의 상징 브룩 쉴즈. 신마저도 질투한 그녀의 미모와 다양한 활동 중에도 프린스턴대학(불문학 전공)을 졸업한 재원인 그녀의 이름은 '화제와 논란'의 대명사로 인정될만큼 한 시대를 장식했다.
나이는 피비 케이츠에 비해 어리지만, 연예계 데뷔로 볼 때는 그녀가 훨씬 선배라 하겠다. '파라다이스'라는 아류작을 낳은 '블루 라군(1980)'을 찍을 때 그녀는 15살이었다. 무인도에 표류한 두 어린이가 청소년으로 커가면서 성에 눈 뜨고, 아기까지 낳아 기르는 스토리 설정상 대부분 헐벗은 모습으로 찍어야 했다. 그래서 전신 누드 장면은 모두 대역을 썼고, 평소에도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려 가슴 부위를 가리며 나왔다. 원래 감독은 다이안 레인을 쓰려고 했지만, 지나친 누드 장면으로 인해 출연을 거절하는 바람에 막판에야 브룩 쉴즈에게 배역이 돌아갔다.
처음 남자주인공 역으로 제의를 받은 맷 딜런도 배역을 거절했다. 결국 모두 4천 명의 후보자를 물색한 끝에, 별로 연기생활에 관심이 없었지만 친구들의 끈질긴 권유로 오디션에 나왔던 크리스토퍼 앗킨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브룩 쉴즈보다 네 살이나 많았지만, 브룩 쉴즈는 이미 훌쩍 키가 커버려 178센티나 되었기 때문에 훨씬 키가 작은 앗킨스와 함께 촬영할 때는 도랑을 파서 키가 낮추어보이게 찍었단다.
1991년, 이 영화의 유명세에 기대보려고 속편이 만들어졌다. 전편에서 위험이 상존한 무인도를 떠나 보트에 몸을 싣고 표류하던 세 가족은 절망에 빠져 독이 든 열매를 먹고 깊은 잠에 빠졌으나 결국 지나가던 배에 의해 구조되는 마지막 장면에 이어, 혼자 살아남은 아들이 성장해 다시 그 무인도로 돌아가는 내용인데, 속편에서는 밀라 요보비치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결과는... 별무신통.
유아 시절부터 아이보리 비누 CF모델로 시작으로 최고의 어린이 모델로 자란 그녀는 14살에 '보그' 잡지의 최연소 모델로 실리기 시작했고, 16살 때 이미 도전적인 패션모델이자 영화배우로 세계적인 명사가 되었다. 1981년에는 일급으로 1만 달러를 받는 톱클래스의 패션 모델로 대우받았다. 15살 때 캘빈 클라인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CF 속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나와 클라인 사이에 무엇이 있는 지 알고 싶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이 광고는 어린이를 내세운 외설적 광고라는 논란에 한바탕 휩싸였지만 캘빈 클라인은 그덕에 떼돈을 번다. 매상이 석달만에 300%나 늘어난 것이다.
세계 최연소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그녀의 영화 데뷔작은 루이 말 감독의 '프리티 베이비(1978)'. 창녀인 수잔 서랜든의 딸이자 어린 창녀의 역할로 400달러에 처녀를 팔고 어머니와 기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는 파격적인 스토리로 '어린이 포르노'라는 논란이 되었던 영화다. 20여년의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동안 그녀가 가장 주목을 받은 영화는 역시 '블루 라군'과 이듬해에 찍은 '엔드리스 러브(1981)'다.
미모와 유명세만큼 사생활도 가십의 촛점이 되었던 그녀는 많은 유명인사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중에는 존 F 케네디 주니어, 가수 마이클 볼튼과 조지 마이클, 마이클 잭슨, 모나코의 알버트 왕자 등과 연인관계에 있었다. 그녀는 2005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자신이 '산후 조울증'에 걸려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털어놓아 팬들을 놀래키더니, 사이언톨로지 종교를 믿는 톰 크루즈의 선제공격으로 비난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가 주역을 맡았던 '엔드리스 러브'에서 톰 크루즈는 단역으로 잠시 얼굴을 비쳤으니 일말의 질투심이 발동한 일인지 모른다. 몇 해 전 말단 비대증과 싸우고 있다며 너무도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팬들을 다시금 안타깝게 한 그녀의 건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