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글인데,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글이라서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싶어 올립니다.
사진은 삼무곡자연예술학교 어린이 여름캠프, 청소년 겨울 캠프...
그리고 삼척 삼무곡자연예술학교 학생들과 응봉산 및 지리산 사진이죠^^
<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
...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켜 큰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대학교수를,
작은 아들은 서울에서 대기업 임원으로 있는데,
정작 그 어머니는 시골에서 혼자 쓸쓸히 지내고 계시는 분의 얘기를 하다가 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아주 잘 키우면 국가의 자식이 되고, 그 다음으로 잘 키우면 장모의 자식이 되고,
적당히 잘 키우면 내 자식이 된다는 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식 중에 한 명 정도는 시골공고에 보내서 내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말도 했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야 집에 하수구가 막혀도 “얘야? 하수구가 막혔다. 얼른 와서 해결 좀 해라.” 하고 편하게 부를 수 있고,
방안의 전구를 바꿀 때도 “얘야? 얼른 와서 전구 좀 바꿔라.”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하수구가 막혔다고, 전구가 나갔다고, 미국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 없고,
서울에 있는 아들을 부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볼까 말까하는 아들이 내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고,
평생에 한두 번 볼 수 있고 사진을 통해서나 겨우 만날 수 있는 손자들이
내 손자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겨울 추워져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쉬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말입니다.
옛 어른들도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무릎 꿇고 앉아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
그 못난 소나무가 부모의 산소를 지키고, 선산을 지키고, 고향을 지키는 것입니다.
같은 소나무지만 토질이 좋고 비바람을 덜 받아
곧고 수려하게 자란 소나무는 사람들이 재목으로 쓰기 위해 베어가 버립니다.
또한 괴이하면서도 특이한 소나무는 분재용으로 송두리째 뽑아가 버립니다.
그러나 같은 땅이라도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린 못난 소나무는 모진 고생을 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또 크게 자란다고 해도 동량이 되지 못하니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못난 소나무는 산에 남아 산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산을 지키는 못난 소나무는 산을 지키면서 씨를 뿌려 자손을 번성케 하고
모진 재해에도 산이 훼손되지 않도록 산을 보존합니다.
결국 잘난 소나무가 멋지게 자라서 재목이 될 수 있는 것도
못난 소나무가 산을 정성스럽게 지켜준 덕분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못난 소나무를 업신여기는 경향들이 없지 않습니다.
서로가 못난 소나무이면서, 너는 나를 우습게 알고, 나는 너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러했지 않습니까.
서로 비난하고, 서로 깎아 내리고, 잘난 꼴은 못 보고.
그리고는 잘난 소나무만 바라보며 그를 우러러 봅니다.
우리 대부분은 못난 소나무입니다.
우리 자식들 대부분도 못난 소나무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못난 소나무가
우리에게 효도하고 우리의 산소를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지킬 것입니다.
그래서 도시의 교육정책도 못난 소나무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잘난 소나무는 잘난 소나무대로 열심히 키워야 하겠지만
평생 동안 고향을 지키게 될 못난 소나무들을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소외되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식이 잘되면 고마운 일이지만
자식이 평범하게 성장하더라도 구박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오히려 더 정성스럽게 키워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 아이가 결국은 내 곁에 오래남아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전구를 바꿔주고,
내가 아프면 나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놈이기 때문입니다.
못난 소나무도 함께 모이면 울창한 숲이 됩니다.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못난 소나무가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