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글에서 쓸데없이 ‘의’ 관형격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아래 글에서도 관형격조사 ‘의’를 써서 문법상으로 어긋난 것은 아니지만, 표현구조가 일어투여서, 마치 몸에 안 맞는 옷을 할 수 없이 얻어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따옴표(‘’) 안의 말은 화살표(→) 쪽으로 고쳐써야 자연스럽다. *문학 작품 ‘감상의 즐거움에서’ 깨닫게 되는 사실과 상상한 내용을 가지고 말하기·듣기와 ‘쓰기의 학습을’ 해 본다.(고등국어 상 30쪽) → 문학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면서 깨달은 사실과 상상한 내용을 말하고 듣고 쓰는 학습을 해 보자. *이러한 ‘추상화의 능력이야말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고등국어 상 87쪽) → 이렇게 추상하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 *말하기·듣기와 ‘쓰기에서의 문제’.(" 300쪽) → 말하고 듣고 쓰는 문제.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 당나귀 한 필이었다. *‘효과적인 읽기의 방법을’ 이야기해 보자.(" 하 30쪽) →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을 ∼‘.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국민교육헌장) → 저마다 타고난 소질을. *‘인권의 획기적인 신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일관한 정치적 신념이다.(ㄷ신문 논단) → 획기적인 인권 신장은. *건전한 소비자는 ‘단순한 디자인의 옷을’ 좋아한다.(신문 광고문) →∼ 디자인이 단순한 ∼.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들르다'와 '들리다'/ 남영신
사람들이 보통 말을 할 때 홀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발음을 조금 틀리게 해도 상대가 뜻을 이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확하게 소리내지 않는 버릇이 굳어져서 많이 이들이 틀리게 발음하는 말이 있다. ‘들르다’와 ‘들리다’가 그 보기다. “퇴근하는 길에 슈퍼에 들러 반찬거리를 샀다”라고 말할 것을 ‘슈퍼에 들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들르다’와 ‘들리다’는 아주 다른 말이다. ‘들르다’는 잠깐 거침을 뜻하는 말이고, ‘들리다’는 ‘듣다’ 또는 ‘들다’의 피동으로 쓰는 동사다. 이들의 활용형도 다르다. ‘들르다’는 ‘들러, 들러서, 들렀다’처럼 변하고, ‘들리다’는 ‘들려, 들려서, 들렸다’처럼 바뀐다. ‘치르다’를 ‘치루다’로, ‘잠그다’를 ‘잠구다’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잦다. “우리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훌륭하게 치렀다”처럼 써야 할 것을 ‘치뤘다’로 쓰는 때가 있다. “문을 잘 잠가라”를 ‘잠궈라’로 쓰기도 한다. ‘치르다’는 ‘치러, 치렀다’처럼 변하고, ‘잠그다’는 ‘잠가, 잠갔다’처럼 활용한다. 이밖에도 ‘으스스하다, 스라소니, 부스스, 부스럭, 복슬복슬, 즉각’ 같은 말들도 ‘으시시하다, 시라소니, 부시시, 부시럭, 복실복실, 직각’처럼 소리내는 경우를 보는데, 이렇게 본다면 ‘으’ 소리를 정확하게 내는 것이 교양인의 잣대가 될 듯 싶다. ‘금슬’을 ‘금실’로 쓰는 것을 관용으로 허용된 상태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일본말에서도 목적격조사(を)와 관형격조사(の)가 있지만, 많은 일본인들이 즐겨 ‘물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란 말(水を飮みたい人)에서 조사를 바꿔 ‘물의 마시고 싶은 사람’(水の飮みたい人)처럼 쓰자, 좀 배웠다는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이것을 흉내내서 목적격조사 ‘을/를’ 대신 관형격조사 ‘의’를 쓴 기형문을 쏟아내어 국어의 특성을 죽이고 일본말투를 유행시켜 왔다. 따옴표(‘’)를 화살표(→) 쪽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군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의 척결이’ 시급하다.(ㄷ신문 사설) → ∼ 부조리를 척결하는 일이/ ∼ 부조리 척결이 ∼.(국어의 목적어에는 목적격조사를 넣어 표현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때로는 아예 그것을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국기의 게양 및 관리 요령.(교육청 문서) → 국기를 달고 관리하는 요령. *한번 추락한 ‘신뢰의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 ∼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 *이 책의 사용법.(고등국어 상, 일러두기) → 이 책을 사용하는 법/ 이 책 사용법. *‘어구의 해석이’ 달라지면.(" 상 38쪽) → 어구를 달리 해석하면/ 어구 해석이 달라지면. *조선어학회는 사전 ‘편찬의 준비’ 단계로 맞춤법과 ‘표준어의 제정’이 필요하였다. → 표준어를 제정하는 일이 ∼/ 표준어 제정이 ∼.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희망의 상실’이다.(ㅈ일보 문화마당) → ∼ 희망을 잃는 것이다./ ∼ 희망 상실이다.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방송에서 퀴즈시간을 진행하는 사람이나 출연자들이 흔히 답을 맞춘다고 말한다. 이는 잘못이다. ‘맞추다’는 ‘맞게 하다’의 뜻을 지닌 타동사로서, 조건·기준에 어긋나지 않게 함(박자에 맞춰 행진한다), 서로 어울리게 함(보조를 맞춰라), 마주 댐(입을 맞춘다), 형편에 맞게 미리 주문함(옷을 맞추었다), 짝이나 차례에 맞게 만듦(키를 맞추어라) 등의 쓰임새를 지닌다. 그런데 ‘맞히다’는 맞는 답을 댐(답을 맞혔다), 목표에 맞게 함(과녁을 맞혔다)의 뜻을 지닌 타동사다. 일정한 틀이나 규범이 있는데 그것에 맞게 하는 것은 맞추는 일이고, 일정한 목표(또는 정답)가 있는데 거기에 맞게 하는 것은 맞히는 행위다. ‘맞추다’는 ‘짜 맞추다’와 통하고, ‘맞히다’는 ‘알아맞히다’ ‘들어맞히다’와 상통한다. “화살이 과녁에 맞았다”는 “과녁을 화살로 맞혔다”와, “포탄이 지붕에 맞았다”는 “지붕을 포탄으로 맞혔다”와 같은 말이다. “내 답이 정답에 맞았다”는 “정답을 나의 답으로 맞혔다”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맞히다’를 쓰는 경우에는 꼭 표적으로 ‘정답’ ‘과녁’ 따위를 써야 한다. 반면, ‘맞추다’는 동급의 사물을 서로 꼭 맞게, 어긋나지 않게 하는 때 쓴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그 음악의 이름을 맞혀 보세요”, “사람의 미래를 맞히는 사람은 자기의 운명에 맞추어 살려고 노력한다”처럼 쓰면 된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표준말의 한계/ 박용수
민족이란 한가지 말을 쓰는 언어 공동체여서 겨레붙이가 쓰는 말은 같지만, 고장에 따라 말씨가 조금씩 다른 것은 그 고장의 독특한 풍토가 새 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 안 여러 고장 중의 하나일 뿐인 서울 고장 말을 표준말로 삼은 현행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으로는 전체 말을 아우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남북이 한가지로 쓰는 말 가운데 ‘화톳불’이 있다. 그러나 북쪽 사전에 올려져 있는 ‘우등불’을 남쪽 사전은 사투리로 제쳐 표준말로 쓰지 못하게 해놨다. 화톳불: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으고 질러 놓은 불. 우등불:화톳불, 모닥불의 평안방언.(이상 남쪽 사전) 화토불:한데에 나무삭정이나 나무토막, 마른풀 같은 것을 모아 질러 놓은 불. 우등불:주로 한데서 추위를 막기 위해 나무토막이나 땔나무 같은 것을 모아놓고 피우는 불.(이상 북쪽사전) 이는, 산림지대인 평안도나 남만주에서는 아름드리 나무토막으로 우등불을 피울 수 있지만 기껏 서까랫감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서울 쪽에서는 화톳불보다 규모가 큰 불을 피울 수 없었던 탓에 아예 ‘우등불’이란 말이 생기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처럼 그 고장에서 쓰이지 않는다고 사투리로 내치면 나중엔 괜찮은 말 하나가 스러져 없어지게 된다. 이런 경우가 한 둘이 아닌데, 국어사전에서는 물론, 표준말 규정의 방언이나 복수표준어 조항을 확장하여 온전한 말로 거두어들여야 할 것이다. 박용수/ 한글문화연구회 이사장
일어투 주격/ 이수열
일본말에도 주격조사(が)와 관형격조사(の)가 있는데, 많은 일본인들이 ‘내가 쓴 편지’(私がかぃた手紙)를 ‘나의 쓴 편지’(私のかぃた手紙)라고 쓰자, 좀 배웠다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그것을 완벽하게 흉내내어 주어 자리에 ‘가/이’ 대신 ‘의’를 쓴 기형 표현을 홍수처럼 쏟아 내 우리 말글을 일어에 딸려붙이는 추태를 부린다. 다음 예문들에서 따옴표(‘’) 부분을 화살표(→) 대로 고쳐 써야 한다. *‘그녀는 나의’ 존경하는 어머니(오페라 가사) → 그 여인은 내가 ∼. *‘재판관들의 형 심의를 위해서’ 법정은 잠시 휴게로 들어갔다.(이무영 소설 ‘죄와 벌’) → 재판관들이 형을 심의하기 위해서 ∼. *얼른 보기에도 ‘경선의’ 자기를 보는 눈에는 애연한 빛이 가득차 있었다.(현진건 소설 무영탑) → 경선이 ∼. *우리 배달말에도 암소, 계집, 황소, 사내 등 성을 드러내는 것이 있지만 그것들은 자연의 성을 드러내는 것이지, ‘그 말의 가진 말본에서의’ 성은 아니다.(최현배 ‘우리말본’) → ∼ 말이 지닌 말본의 ∼. *우리는 큰 기대를 가지고 ‘군의’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 볼 것이다.(ㄷ신문 사설) → ∼ 군이∼. *‘누대의 장려함과 경개의 기절함이’ 완연히 봉래선경이니.(고등국어 상 60쪽) → 누대가 장려하고 경개가 기절하여 ∼.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기미독립 선언문) → 조선이 ∼ 조선인이 ∼.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소리원칙과 현실/ 최인호
우리말글이 지닌 중요한 소리 특징의 하나가 홀소리 어울림(모음조화)인데, 시늉말과 풀이말 씨끝에서 많이 볼 수 있다. 1988년 맞춤법과 표준말 규정을 바꾸면서, ‘깡충깡충’ ‘오뚝이’ ‘싹둑싹둑’ 등을 굳어진 채 쓰인다 하여 인정했다. 그러나 이는 예외일 뿐 모음조화 현상은 음·양에 따라 큰말·작은말의 느낌을 주면서 잘 지켜지고 있다. 다만 오순도순, 단출하다 등은 그 전부터 굳어진 말이다. 문제는 언중들이 모음조화 의식에 따라 ‘오손도손, 단촐하다’로 쓰는 이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북쪽 문화어에서도 이렇게 쓴다. 표준말이나 맞춤법을 정하는 데서 조심할 것이 언어현실을 얼마나 인정하고 반영하느냐인데, 특히 기본원칙을 허무는 경우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똑·우뚝’ ‘싹독· 썩둑’ ‘깡총, 껑충’ 따위는 틀림없이 큰말 작은말로 맞서는 말인데, 현재 표준말에서는 ‘오뚝하다, 싹둑’ 따위만 쓰게 했다. 이렇게 쓰는 게 대세라면 덤으로 음·양이 어울린 말을 하나 더 인정하는 정도로 그치고, 잘 쓰지 않는다 해도 원래 조화롭게 양립된 말은 살려두어야 옳다. ㅂ불규칙 용언들도 그렇다. ‘아름답다, 고맙다’ 따위에서 실제 발음이 ‘아름다워, 고마워’로 난다 하여 이를 인정하고 ‘아름다와, 고마와’를 버렸는데, 역시 모음조화에 어긋나므로 오히려 ‘와’를 원칙으로, ‘워’는 예외로 허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런 경우에서 맞춤법에 맞지 않으니 틀렸다고 초들 수 없는 어려움이 생긴다. 최인호/ 교열부장 | 따옴토씨 '라고'와 '고'
말이나 생각을 따올 때 토씨 ‘(이)라고’와 ‘고’를 쓴다. 남의 말을 그대로 따올 때 ‘(이)라고’를 쓰고, 간접으로 따올 때는 ‘고’를 쓴다. (그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라고 외쳤다.) 이처럼 바로 인용할 때는 반드시 따옴표를 써야 한다. 따옴표에는 큰따옴표와 작은따옴표가 있는데, 남의 말을 따올 때는 큰따옴표를 써야 한다. 그 뒤에는 따옴토씨 ‘(이)라고’를 붙인다. 때로는 읽거나 들은 대로가 아니라 자기 말로 바꾸어 인용하기도 한다. 이때는 씨끝 뒤에 ‘고’를 붙인다. (그는 자기에게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이것이 간접인용 문장이다. ‘나에게’가 ‘자기에게’로 바뀐 것에도 주의해야 한다. 그런데 신문글에는 이런 문장이 자주 나타난다. (그는 “한국 축구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며, “한국이 우승까지도 가능할 것이다”고 말했다.) 직접인용을 하면서도 간접인용에 쓰는 토씨를 붙인 것이다. 이는 다음의 두 경우로 고쳐 써야 한다. (그는 “한국 축구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 한국이 우승까지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는 (그는 한국 축구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며, 한국이 우승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올 내용이 문장이 아니라도 이 규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쉬지 않고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라고 외쳤다.) 또는 (그는 쉬지 않고 ‘대한민국’과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큰따옴표 뒤에는 꼭 토씨 ‘(이)라고’를 붙이자. 남영신/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번역투 ‘으로부터’/ 이수열
우리말에서, 생긴 곳, 온 데, 행동 대상 등을 보일 때 쓰는 토씨는 ‘에서, 에게서, 한테서’ 등인데, 요즘 저마다 ‘from’이 들어간 영문을 분별없이 ‘으로부터’로 옮겨 써 버릇된 탓에 국어다운 말맛을 해친다. 이는 문장조차 영어 구문에 예속시키는 독소로 작용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2항) → ~ 국민에게서, 국민한테서. *학교로부터 버림받은 청소년들은 거리에서 방황한다.(신문 사설) → 학교에서 ~. *권력층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검찰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신문 칼럼) → 권력층에 얽매인 검찰에 ~. *여당 총재인 대통령이 김 대표로부터 당무보고를 받았다.(신문 기사) → ~ 김 대표의, 김 대표한테서 ~. *돈으로부터 깨끗하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ㅈ일보 칼럼) → 돈때가 묻지 않고 과거가 깨끗한 ~. *‘보호’는 약한 자를 위험으로부터 지킨다는 뜻이다.(ㅎ방송) → ~ 약한 자를 지킨다는 뜻이다. *정치 지도자들 가운데 지역감정을 자극한 비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ㄷ일보 사설) → ~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 *최근 우리는, 우리가 더이상 북한의 테러와 사보타주 공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환멸했다.(ㅈ일보 칼럼) → 여전히 북한의 테러와 사보타주 공작의 대상이라는 ~.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소리와 글자/ 최인호
소리와 글자가 달라 헷갈리는 말이 여럿 있지만, 잘 써놓고도 달리 발음하는 경우도 잦다. 글자(어원·형태)에 집착하여 소리 의식을 눌러서 생기는 현상 탓이다. 이는 글자 매체의 발달이 한몫을 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소리와 글자가 완벽하게 일치할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현상이기도 하다. 신문로가 [신물로]였다가 [신문노]로, 논리(놀리)를 [논-리]로, 곤란(골란)을 [곤-난]으로 소리내는가 하면, 치다꺼리(치닥거리), 골칫거리(골치거리), 수돗물(수도물), 전셋값(전세값), 돋치다(돋히다), 며칠(몇일) 등도 괄호 안처럼 적는 이가 많다. ‘치닥거리’는 일감, 재료를 뜻하는 말 ‘거리’에 얽매여서, ‘골치거리·수도물·전세값’은 글자에만 집착하고 사이시옷 적기에 익지 않아서, ‘돋히다’는 입음꼴 뒷가지 ‘히’에 얽매여, ‘몇일’은 분명찮은 어원에 얽매여 잘못 적고 있다. 이는 형태표기 의식이 성하여 생기는 현상으로서, 소리와 글자가 달라지는 이중현상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뒷처리, 뒷쪽, 헛탕·일찌기, 꺽다, 늦깍이, 깍다’ 들은 반대현상을 보인다. ‘뒷처리·뒷쪽’은 뒷소리가 ㅊ, ㅉ 곧, 거센소리·된소리로 된 까닭에 ‘뒤처리·뒤쪽’으로, 일찌기는 ‘일찍’이라는 말이 살아 쓰이므로 ‘일찍이’가, ‘깍다’는 원래 쌍받침 ‘ㄲ’을 썼으므로 ‘늦깎이·깎다’로 써야 맞다. ‘깍듯이, 깍두기, 깍쟁이’들은 원체 ㄱ받침이다. 이 정도 혼란은 맞춤법 자체보다 학교에서 맞춤법 익히기를 소홀히한 데서 온 것이 아닐까 싶다 토씨 '가·이, 는·은'/ 남영신
우리말은 첨가어이므로 체언에 토씨(조사)를 적절하게 붙여 써야 원하는 뜻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한국인이라면 특별히 토씨를 잘못 써서 낭패를 당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급 언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토씨의 미세한 차이를 감안하여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현하려 한다. 그러므로 두루 그 미세한 차이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유정은 소설 ‘동백꽃’에서 주인공의 수탉이 점순이 수탉한테 쪼이어 대가리에서 피가 떨어지는 것을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라고 묘사했다. 여기에 쓰인 토씨 ‘은’은 ‘이’로 바꾸어야 한다. “붉은 선혈이 뚝뚝 떨어진다”라고 해야 그 장면을 제대로 나타낸 문장이 된다. 사람이 누워서 자는 것을 보고 ‘사람이 누워서 잔다’처럼 말하지 ‘사람은 누워서 잔다’처럼 말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조금 일찍 나가는 사람이 ‘저는 일찍 나가겠습니다’라고 해야지 ‘제가 일찍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우습다. ‘가, 이’는 ‘누가 그러한지’에 대한 답의 성격으로 쓰는 토씨다. 곧, 서술어의 주체를 밝히는 때 쓴다. 그러나 ‘는, 은’은 ‘그가 어떠한지’를 밝힐 때 쓰인다. 곧, 주어의 서술어를 밝히는 경우에 쓰는 것이다. 곰곰 생각하면 우리가 이미 이런 차이점을 알고 분별해서 이 두 토씨를 쓰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구별을 무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르게 쓰는 것이 아름답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낡은 말투 ‘~에 의하여’/ 이수열
‘~에 의하여’는 원래 ‘증거에 의하여 사실을 밝힌다’ ‘형법 제 ○○조에 의하여 피고 아무개를 ○○형에 처한다’처럼 쓰는 낡은 한문투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지식인들이 영문(Mr. Kim was killed by robber. 김씨가 강도에게 피살했다, 강도가 김씨를 죽였다)을 ‘김씨가 강도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따위로 서투르게 번역한 형식을, 비슷한 모든 경우에 판에 박은 듯이 써서, 국어 본연의 글틀을 무너뜨리고, 언어생활의 이상인 언문일치를 파괴하여 국어를 말하기 어렵고 듣기 거북한 언어로 전락시킨다. 아래 보기들은 화살표(→) 쪽으로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 27조 1항) → 모든 국민에게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이 법률대로 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조의관에 의해 사당과 금고 계승자로 지명된 덕기.(고등문학 교과서) →조의관이 사당과 금고 계승자로 지명한 덕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 인민을 위해, 인민이 하는, 인민의 정치. *이라크의 수송선이 미군에 의해 나포되었다.(신문기사) → 미군이 이라크 수송선을 나포했다. *우수한 상감청자가 고려인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교육방송) → 고려사람들이 우수한 상감청자를 만들었습니다. *삼당합당에 의해 탄생된(신문기사) → 삼당합당으로 생긴.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주스’와 ‘쥬스’/ 김세중
시중에서 팔고 있는 오렌지 주스 제품에는 ‘쥬스’로 적은 것도, ‘주스’로 적은 것도 있다. 당연히 ‘주스’가 맞다. 언론사 인터넷에도 ‘레져’로 된 곳도, ‘레저’로 된 곳도 있다. ‘레저’가 맞다. 외래어 표기법에서 ‘ㅈ, ㅊ’ 다음에는 ‘ㅑ, ㅕ, ㅛ, ㅠ, ㅒ, ㅖ ’ 따위가 올 수 없고, ‘ㅏ, ㅓ, ㅗ, ㅜ’ 등만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에서 자음 ‘ㅈ, ㅊ’은 이른바 입천장소리다. 다른 자음과 달리 ‘ㅈ, ㅊ’ 다음에서는 ‘ㅏ’와 ‘ㅑ’가 구별되지 않는다. ‘ㄱ’이나 ‘ㄴ’의 경우는 ‘가’와 ‘갸’, ‘나’와 ‘냐’가 분명히 다른 소리지만 ‘자’와 ‘쟈’는 같은 소리나 마찬가지다. ‘자, 쟈’와 ‘차, 챠’가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국어에는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 등으로 시작되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ㅈ, ㅊ’ 다음에는 오로지 ‘ㅏ, ㅓ, ㅗ, ㅜ, ㅐ, ㅔ’ 등의 단모음만이 올 수 있다.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쥬스, 레져, 텔레비젼, 챨리, 쵸콜릿’ 같은 표기는 틀리고 ‘주스, 레저, 텔레비전, 찰리, 초콜릿’이라고 해야 맞다. ‘쥬스’ 같은 표기가 나타나는 까닭은 그렇게 적어야 원음을 제대로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영어에서 온 외래어이지 영어 단어 그 자체가 아니다. 외래어는 우리말에 동화된 말로서, 우리말의 질서와 특성에 맞게 적고 발음해야 한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소리와 적기/ 최인호
자주 틀리게 적는 말 중에 ‘색씨, 깍뚜기, 갑짜기, 몹씨, 덥썩, 법썩, 납짝, 껍떼기, 껍찔’ 들이 있다. 소리는 그렇게 나지만 적을 때는 ‘색시, 깍두기, 갑자기, 몹시, 덥석, 법석, 납작, 껍데기, 껍질’로 적어야 맞다. 그렇다면 ‘어깨, 오빠, 이따금, 잔뜩, 살짝, 담뿍, 몽땅’ 들은 왜 소리나는 대로 적는가? 또 ‘널따랗다, 좁다랗다, 기다랗다, 짤따랗다’는 무엇인가? 왜 ‘넓다랗다, 길따랗다, 짧다랗다’로는 안 쓰는가? 왠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약속 또는 맞춤법의 필요성이 생긴다. 맞춤법에서는 ‘한 단어 안에서 별 까닭 없이 나는 된소리는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며, 그 조건을 ‘두 모음 사이’와 ‘ㄴ, ㄹ, ㅁ, ㅇ 받침 뒤’에서 나는 된소리로 한정하고 있다. ‘ㄱ, ㅂ’ 받침 뒤에서는 자연스럽게 된소리가 나므로 된소리로 적지 않는다고 했다.(제5항) ‘널따랗다, 좁다랗다, 짤따랗다’도 이 조건에서 해결된다. ‘넓다랗다, 짧다랗다’는 ‘넙따라타, 짭따라타’가 아니라 ‘널따라타, 짤따라타’로 소리내므로 소리 따라 적고, 좁다랗다의 ‘-다랗다’는 ㅂ받침 뒤여서 된소리로 적지 않는 것이다. ‘길따랗다’는 ㄹ받침 소리가 아예 없어진 채 소리나므로 ‘기다랗다’로 적는다. 이처럼 소리와 형태를 두루 갖추어 적으려다 보니 예외가 많아지고 맞춤법이 까다롭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눈·귀·입을 두루 만족시키는 언어는 우리말글만한 게 없다고 한다. 최인호/ 교열부장 ‘아 해 다르고…’/ 남영신
옛 어른들이 말다툼을 할 때면 으레 “말은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법이다”라면서 상대를 윽박질렀다. 이는 상대가 말을 정확하게 하지 않아서 자신이 오해했거나 기분이 나빠졌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격언으로 굳어진 것을 보면 우리 겨레가 정확한 언어생활을 했고, 따라서 오늘날도 정확한 언어생활을 하고 있을 법한데, 실제로는 잘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라다’는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다’, ‘바래다’는 ‘옷감의 빛깔을 바람이나 약품을 사용하여 희게 하다, 물이 날다’ 등의 뜻이다. 그러므로 ‘바라다’를 ‘바래다’로 쓰면 안 된다. ‘네가 잘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라고 써야 하고, ‘다음 공정은 옷감을 바래는 일이다’처럼 쓰는 것이 옳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바람’을 ‘나의 바램’으로 쓴다. ‘놀라다’는 자신이 갑자기 무서움을 느낄 때 쓰는 말이고, ‘놀래다’는 남을 놀라게 할 때 쓰는 말이다. ‘네가 고함치는 바람에 아이가 놀랐다’처럼 쓰고, ‘네가 고함을 쳐서 아이를 놀랬다’처럼 쓴다. 만일 ‘그가 고함치는 통에 내가 무척 놀랬다’라고 쓰면 틀린다. 자기가 놀랐는지 상대를 놀랬는지 구별하여 써야 한다. 비슷한 말투로 ‘같아요’를 ‘같애요’로, ‘맡기다’를 ‘?기다’로, ‘만들다’를 ‘맨들다’로 잘못 발음하는 것을 방송에서도 자주 듣는데, 이런 경우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법이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준말과 지나친 생략/ 최인호
갖추어 써야 할 말을 생략한 채 쓸 때가 잦다. 그 말을 자주 쓰는 환경에 기대어 대충 읽어 넘어가기는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될 때가 많다. 이는 통상의 준말과는 좀 다른데, 준말은 그것이 통사적인 말이든 아니든 ‘새, 왕따, 아무튼, 귀찮다, 전교조’처럼 줄여쓰기 전 원래 소리나 뿌리 등 최소 흔적은 살려 쓴다. 회사이름으로, 엘지(럭키·금성), 에스케이(선경), 케이티(한국통신) 등을 보자. 이는 원래 이름의 첫글자를 따서 로마자로 바꿔 적은 것이다. 이들은 준말 범주를 벗어나 상징적 글자상호로 쓰는 것들인데, 바람직한 이름짓기 방식은 못 된다. 한 부분을 뭉텅 생략한 채 일종의 대유형식으로 쓰는 말로, “월드컵(축구대회) 첫승에 도전하다,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다, 아이엠에프(관리체제, 구제금융) 위기극복, 프로축구(경기) 삼연승, 전축(소리)을 듣다, 텔레비전(방송)을 보다, 대입수능(시험)에 대비하다, 재벌(총수) 2세” 등을 보자. 거의 괄호 안의 말을 생략한 채 쓴다. 정도가 지나친 준말, 끊어먹거나 이어붙인 말은 뜻 전달이 안 되거나 문장을 기형으로 만들 때가 잦다. 관용상 생략한 채 쓰는 말도 말글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갖춘 형태를 적어주어야 바른 자세라 할 것이다. 최인호/ 교열부장
외래어에 쓰는 받침/ 김세중
외래어는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이다. 그런데, 외래어란 외국어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의 특징에 맞게 바뀌어 쓰인다. 우선 외래어는 로마자 등으로 적는 외국어와 달리 한글로 적는다. 그리고 발음도 달라진다. 예컨대 ‘바나나’라는 외래어를 보면 영어일 때는 둘째 음절에 유난히 강한 악센트가 있지만 일단 우리말에 들어오면 세 음절에 고르게 강세가 난다. 또 ‘버내너’처럼 발음되던 것이 ‘바나나’로 바뀐다. 외래어도 국어인 이상 받침을 적을 때 우리말글의 특징을 따라야 한다. 예컨대 ‘커피숍’은 영어(coffee shop)에서 들어온 말인데, 거리의 간판을 보면 ‘커피숍’이라 된 것도 있지만 ‘커피?’이라고 적은 것도 많다. 영어일 때 마지막 글자가 ‘p’이니까 ‘?’이라고 적은 모양이지만 이는 잘못이다. [커피쇼비], [커피쇼베서]라고 발음하는 이상 ‘커피숍’이라고 적어야 옳다. 외래어에서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 일곱자만 받침으로 쓴다. ‘ㅋ, ㅌ, ㅍ’과 같은 받침은 쓰지 않는다. 따라서 ‘케?, 디스?, 커피?’과 같은 표기는 옳지 않고 ‘케이크, 디스켓, 커피숍’으로 적어야 한다. 외래어가 비록 외국어에서 들어온 말이기는 하지만, 국어 안에서 쓰이는 낱말인 이상 그 특징에 맞게 적는 것은 당연하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어문자료부장 웃기는 사람? / 남영신
1960년대 초만 해도 ‘웃긴다’는 좀처럼 쓰이지 않았다. 웃음은 자기가 우스워서 웃는 것이지 누가 억지로 만들어서 웃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를 웃게 만드는 사람들이 직업적으로 웃게 만드는 개그맨뿐이어서 그러는지 사람들은 이제 ‘웃긴다’를 더 자연스럽게 쓰는 것 같다. 얼굴이 좀 특이하게 생겨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에 그 사람을 ‘웃기게 생겼다’고 하고, 언행이 좀 특이한 사람을 ‘웃기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말투는 상대를 참으로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구 웃으라고 얼굴이 그렇게 생긴 것도, 말투가 특이한 것도 아닌데, 그런 사람더러 웃긴다고 하는 것이 실례가 아니 되겠는가?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래서 은연중에 의식이 수동적으로 변하고, 말까지 수동적으로 바꾸고 있는 것 같다. 서양 언어의 피동 표현을 분별없이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잘못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 없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우스워서 웃으면서도 상대가 웃겨서 웃는 것으로 표현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웃는 본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우스운’ 것을 ‘웃기는’ 것으로 말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주체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영어투 ‘요구된다’/ 이수열
‘요구한다’는 ‘요구’에 뒷가지 ‘-하다’를 붙여 만든 타동사지만, ‘요구된다’는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하겠다’는 영어문장(I’ll do all that is required of me)에서 ‘is required of’ 부분을 ‘요구되는’이라 번역한 데서 온 기형이다. 우리말 본새를 모르고 색다른 것에 정신 팔린 지식인들이 이를 즐겨 써서 국어를 영어에 종속시키면서, 게으른 농사꾼의 논밭에 짙은 잡초가 작물의 성장을 막듯 제대로 된 국어를 죽인다. *지금 ‘요구되고 있는 것은’(ㄱ) 공명선거 의지입니다. 공명선거를 치르려면 흑색선전을 ‘근절할 집중적인 단속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ㄴ)(ㅎ방송 뉴스) (ㄱ) →필요한 것은/ 요구하는 것은 (ㄴ) →철저히 단속해서 근절해야 합니다. *새로운 경제팀에는 … 유연한 정책대응 자세가 ‘요구된다.’(ㄷ신문 사설) →필요하다.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의 집행과 질서의 존중이 요구된다.’(ㅈ신문 사설)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간단한 언어표현에 관한 문법성을 판단하는 데도 많은 사고과정이 ‘요구된다’.(고등국어 상 85쪽) →필요하다. *‘무한 경쟁이 요구되는’ 국내외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등국어 상 393쪽) →끝없이 경쟁해야 하는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 흔히 부닥치는 말글에서, “통화를 나누다, 대화를 나누다, 담화를 나누다, 대담을 나누다” 따위는 “의견을 나누다, 얘기를 나누다, 인사를 나누다”들과는 쓰임새가 좀 다르다. 곧 통화, 대화, 담화, 대담은 ‘通 對 談’ 따위가 서술어 구실을 하여 ‘마주하다, 주고받다’는 뜻을 스스로 지닌 말들이다. 원체 ‘-하다’를 붙여 써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데도 굳이 목적격 ‘을, 를’을 달아 ‘나누다’를 거듭 쓰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한자말의 쓰임이 점차 변해가는 사례로 봐야 할 듯싶다. 달리 보면, 한자말이란 외래어의 고유어화 현상이랄 수도 있겠다. 예컨대 “피해를 입다, 피랍을 당하다, 부상을 당하다, 부상을 입다”들이 습관적으로 쓰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말도 ‘입음’(피동)이 겹쳐쓰인 말들이다. 역전앞, 처갓집, 외갓집, 대갓집 역시 역앞, 처가, 대가로 충분한데도 사용 습관이 사라지지 않는데, 이중적이긴 하나 한자말이 고유어화하는 흔적들로 보면 관용할 수 있는 경우다. 말이 이런 방식으로 쓰이는 것은 경제성에서나 됨됨이에서 달가운 것은 아니다. 역시 나은 방식은 간단히 ‘-하다’를 붙여쓰든지, 고유어투로 바꿔쓰는 것이다. ‘부상을 입다’는 ‘다치다’, ‘피해를 입다’는 ‘피해를 보다’, ‘대화 좀 나눕시다’는 ‘얘기 좀 합시다’ 따위로 말이다. 최인호/ 교열부장 영어투 '이뤄지다'/ 이수열
`이루어진다'는 타동사 `이룬다'의 입음꼴(피동형)이므로 국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식인들이 한영사전에 실린 `be achieved'의 예문을 직역한 투로 표현한 문장을 퍼뜨려서 우리말글의 품위가 나날이 떨어져 간다. *그이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다.(한영사전, 시사영어사) → 그이는 숙원을 이루었다. *인간은 환경에 의하여 성격이 이루어진다.(표준국어대사전, 국어연구원) → 인간의 성격은 환경에서 형성한다. *이 책으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은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등국어 상 일러두기) → 이 책으로 하는 교수·학습은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는 가공의 세계이다.(고등국어 상 32쪽) → 상상하는 세계는 공상세계다.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언어 활동은 대체로 설명과 설득의 범위에 든다.(고등국어 하 144쪽) → 일상 생활에서 하는 언어 활동은 ~. *언어 표현은 문장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진다.(고등문법 166쪽) → 언어는 문장 단위로 표현한다. *한국이 강대국들과 공존하면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사설) → ~ 발상을 바꿔야 한다.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다.(신문 시론) → 선거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어야 ~.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
변하는 말들/ 김세중
말은 끊임없이 변한다. 새 말이 생겨나고 쓰이던 말이 어느새 사라진다. 다방보다 커피숍이 더 많이 쓰인다. 천연색 사진은 `컬러사진'으로, 자동차 열쇠는 `키'라고 하는 때가 더 흔하다. 미장원이 미용실로 가더니 이젠 `헤어샵' 쪽이 더 많다. 예식장 간판보다는 `웨딩홀'이 더 많은 형편이다. 영어 우대 풍조 탓이다. 반대 현상도 적지 않다. 미용실 대신 머리방이 나타나기도 하고, 대학에서는 서클이란 말이 슬며시 사라지고 `동아리'가 자리잡았다. 데모보다는 `시위'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1인 시위라고 하지 1인 데모라고 하지 않으니 말이다. 시위는 한자어지만 우리말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최근 들어 핸드폰 대신 `휴대전화'라고 하는 사람도 꽤 있는 걸 본다. 핸드폰은 영어를 재료로 해서 새로 만든 말이고 휴대전화는 한자어이지만 우리에게 좀더 친근한 느낌이다. 영어에서는 셀룰러폰이나 모바일폰이라 하지 핸드폰이란 말은 없으니 이 말은 그야말로 국적 없는 말이다. 하다못해 휴대폰 정도라도 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아예 휴대전화가 널리 쓰이는 걸 보니 무척 반갑다. 내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 남 것이 더 좋아 보이는 마음이 외래어를 자꾸 늘어나게 한다. 외래어가 늘어나면 우리말은 튀기말이 되어 간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연구관
좋은 하루 되세요?/ 남영신
나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은 내가 무엇이 될지 궁금해한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나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제법 고상한 권고를 해 주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은 아리따운 목소리로 나더러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한다. 백화점에 가면 나더러 “즐거운 쇼핑 되세요” 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권고에 따라서 `좋은 하루'도 되고 `즐거운 쇼핑'도 되는 셈이다. 어제는 아무개한테서 특별한 인사를 받았다. 내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잘 듣고 있노라면서 “앞으로도 더욱 좋은 프로가 되세요”라고 했다. 아마나 시시한 프로가 아닌 훌륭한 프로가 되라는 뜻인지, 아니면 더욱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노력하라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그가 내 프로를 잘 듣고 있다고 했으니 프로그램을 뜻할 것 같은데 “좋은 프로가 되세요”라고 했으니 헷갈릴수밖에. 밤에 텔레비전을 끄려는 순간에 들려온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인사말을 들으면서 나는 순간 “좋은 프로 되세요”도 이와 같은 인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온 국민은 `되세요'라는 인사 덕분에 요술쟁이처럼 날마다 `좋은 하루', `즐거운 쇼핑', `편안한 밤', `좋은 프로' 같은 것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였다는 생각도 하였다. 이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이제 인사를 바꾸어 보자. 말이 되는 말로 바른 인사를 하는 것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나한테 주어진 길?/ 이수열
`받는다'는 타동사이지만 역시 타동사인 `준다'와 맞세워 놓으면 입음(피동)의 뜻을 지니므로, 어떤 경우에도 주는 것은 `준다' 받는 것은 `받는다'고 해야 하는데, 오래 전부터 영어 기브(give)의 수동태 `be given'을 직역한 `주어진'이 만연해서 준다는 것인지 받는다는 것인지 분별하기 어렵게 표현하는 사례가 도처에 보인다. *공직에 권력이 주어지는 것은 맡겨진 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함이다.(신문 사설) → 공직에 권력을 주는 것은 맡은 일을 ~. *공격의 찬스가 주어지면 기민하게 행동해야 합니다.(축구 중계방송) → 공격할 기회가 오면 ~. *우리 선수에게 퇴장이 주어지는군요.(중계방송) → 우리 선수를 퇴장시키는군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윤동주 `서시') → 내 길, 내가 갈 길 ~. 윤동주의 서시는 숭고한 시정신과 주옥같은 시어로 빛나지만 `나한테 주어진 길'은 옥에 티다. *그는 인생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억지로 주어진 것이라고 믿어 왔다.(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올림말 `주어지다'의 예문) 작가 홍성원의 소설 <육이오>에서 따온 예문인데, 문장이 극도로 치졸해서 진의를 헤아리기가 심히 어려우나 `그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했다'는 뜻인 듯하다. 외래어와 외국어/ 김세중
아나운서들의 말은 반듯하고 정제되어서 빨리 말하지만 누구나 잘 알아듣는다. 그래서 흔히 아나운서를 표준말 선생님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이따금 의아할 때가 있다. “야구팬 여러분 …”, “팩스를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말에서 ‘팬’, ‘팩스’의 ‘ㅍ’을 [f]로 내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ㅍ’은 두 입술을 붙였다가 떼면서 내는 소리고, [f]는 아랫니를 윗입술에 마찰시키며 내는 소리다. 영어에는 [f] 소리가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다. 그렇다면 ‘팬’, ‘팩스’는 영어인가? ‘영어’와 ‘영어에서 온 외래어’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fan'은 영어고 ‘팬’은 영어에서 온 외래어, 곧 한국어다. ‘애호가’쯤으로 바꿔 쓰면 좋겠지만 굳이 `팬'을 써야 할 때 말이다. ‘팬’이 ‘영어에서 온 외래어’라면 그것은 곧 한국어이고 ‘팬’의 ‘ㅍ’을 [f]로 발음해야 할 이유가 없다. 외래어라도 이왕이면 영어 발음 가깝게 발음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f]만 그래야 할 이유가 없고 ‘바이올린’의 ‘ㅂ’도 [v]로 발음해야 할 것이고, ‘지퍼’의 ‘ㅈ’도 [z]로 소리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ㅍ’을 [f]로 소리 내는 것은 간혹 들었어도 ‘ㅂ’을 [v]로 내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ㅍ’을 [f]로 발음하는 것이 일관성이 없음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김세중/ 국어연구원 학예연구관
틀린게 '좋은' 세상/ 남영신
한 낚시꾼이 텔레비전에서 자기 낚싯대는 다른 사람 것과 `틀린다'고 자랑한다. 어떤 진행자는 한 인기인의 어린 시절을 말하면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틀렸다'고 강조한다. 한 디자이너는 옷에 따라 이미지가 `틀려지니' 옷차림에 신경을 쓰라고 권한다. 어떤 연예인은 “올해와 작년이 좀 `틀려진' 점이 있다면 올해 우리 귀여운 아들이 생겼다는 게 `틀려진' 점인데”라고 말한다. 진행자가 “느낌이 다르죠?”라고 묻자 이 연예인은 “틀리죠” 한다. 마치 `틀리는' 것이 좋다는 말투다. 왜 이렇게 `다르다' 대신 `틀리다'를 즐겨 쓸까? `틀리다'는 `어긋나거나 맞지 않다', `사이가 벌어지다', `감정이나 심리가 나빠지다'란 뜻을 지닌 부정적인 말인데 왜 이를 자꾸 긍정적인 용도로 쓸까? 학창시절 답을 잘못 대어 `틀렸던' 쓰라림을 잊었을까? 그 반작용으로 `틀린' 것을 `좋은' 것으로 왜곡하게 되었을까? `다르다'를 써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까닭은 다르면 틀린 것으로 생각하는 왜곡된 가치 의식 때문일까? `그는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놈이니 틀린 놈이야'라는 독선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속에 자리잡은 결과일까? 그렇다면 `틀리다'를 틀리게 쓰지 않음으로써 이런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다른 말이며, 이를 혼동하여 쓰는 것은 틀린 언행이 될 수 있다. 바른 말이 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남영신/ 국어문화운동본부 대표 영어식 표현 '갖다'
우리 겨레는 자신을 천민(하늘 백성)이라고 믿고, 삼라만상을 하늘의 창조물이라고 신성히 여겨, 함부로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자기에게 속한 것까지도 `땅뙈기나 있다' `돈푼이나 있다' `자식 남매를 두었다'고 말하고, 예사로운 일상사는 모두 `한다'고 하며, 관혼상제나 마을의 큰 공동행사는 `치른다'고 하면서 분수껏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런데 좀 일찍 현대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물질주의가 만연한 서양문화를 배워 들이면서, 온갖 것을 탐내어 가지고 싶어 하는 속성을 드러내, 모든 것을 영어투로 `가진다'(have)고 한다. 자연현상도 `We have much rain'이라고 하는 것을 흉내내, 제게 딸린 것은 물론, 생각과 집단행사도 `가진다'고 하는 말투를 퍼뜨려, `말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대로, 욕심껏 가지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천민(천한 무리)들이 득실거리는 판국이 되었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2조)→모든 국민에게 신체의 자유가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대와 유사한 구조의 발성기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은 드물다.(고등국어 상 84쪽)→발성기관의 구조가 인간의 성대와 비슷한 동물은 드물다. *이 후보는 어떤 정책노선을 갖고 무엇을 하려나?(신문글)→정책노선으로. *의원회관에서 모임을 갖고→의원회관에 모여. 이수열/ 국어순화운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