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nel Harland Sanders(1890~1980)
65세에 사업 실패, 105달러의 사회보장연금으로 생활연명.
그러나 74세에 600여개의 체인점 사장으로 재기 성공,
90세에 전 세계 80여개국에 체인점 설립
인생은 60세부터 라는 말이 있던가. 65세라는 결코 적잖은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해서,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 바로 ‘켄터키 할아버지’ 로도 유명한 KFC의 창업자 커넬 할랜드 샌더스(Colonel Harland Sanders)이다.
그는 1890년 9월 9일 생이다.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그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을 해야만 했고, 어린 커넬은 3살짜리 남동생과 어린 여동생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다.
이런 연유로 그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하게 되었다. 7살이 되던 해에 그는 웬만한 요리는 곧잘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가 10살 되던 해, 농장 근처에서 월 $2을 받으며 처음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커넬이 12살 때, 그의 어머니마저 재혼을 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며 그의 젊은 시절을 보내고, 마침내 철도소방원이 되었다. 그는 법도 배웠으며, 보험 외판도 했으며, 오하이오강의 유람선에서도 일했으며, 타이어도 팔았고, 편의점이 딸린 주유소에서도 일해 보았다. 그러다가 22세 때 램프 제조판매업을 시작했는데 그만 망하게 되어 그동안 모은 모든 재산을 탕진해 버렸다. 그러나 또 열심히 일하여 조그마한 가게를 경영하기에 이르렀으나 39세 때 미국의 경제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전재산을 날려버렸다.
그가 40살이 되던 해, 그는 켄터키주 코빈(Corbin, Kentucky)의 조그마한 주유소에서 일을 했었으나, 이 때 다시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겪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 주유소를 지나가던 한 손님의 내 뱉은 "이 마을에는 먹을 것이 없어!" 라는 한 마디의 불평은 그의 평안한 인생에 일대 전환점을 가지고 오게 된다. 평소 요리를 좋아했던 그는 주유소에서 안 쓰는 창고에서 닭튀김 요리를 조금씩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당시 프라이팬으로 닭요리를 하던 것과는 달리, 그는 압력솥을 이용한 속성 닭튀김 요리법을 개발했고, 그 주유소에 들른 배고픈 방문자들에게 요리를 해 주기 시작했다. 돈이 없었기에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한 것은 아니었고, 주유소에 들르는 여러 여행객들에게 손수 만든 음식을 분식점규모로 제공한 것이었다. 점점 더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자, 그가 일하던 주유소 건너편에 142명이 앉을 수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 후 커넬 샌더스의 식당 이름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주지사 루비 라푼(Ruby Laffoon)은 그의 치킨을 켄터키주의 대표적인 요리로 승화시킨 것을 기려 커넬을 켄터키주의 명예 대령(Colonel: 커넬)으로 칭하였다.(※참고: 영국이나 중세 왕정 시대 나라에 위대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백작이나 공작의 칭호를 내리는 것에서 유래). 그리고, 1939년도에 커넬의 식당이 맛있는 음식점등을 소개하는 잡지 던칸 하인즈 "Adventures in Good Eating"에도 실리게 되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같은 해에 식당에 원인모를 불이 나서 식당이 전소되는 비극이 다시 찾아오게 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커넬은 또다시 조그마한 식당을 열게 된다.
그런데 1950년대 초, 갑작스레 미국에 들이닥친 경제 불황과 경영부실로 인해 그의 레스토랑은 다시금 문을 닫게 되고, 환갑이 넘은 커넬은 국가에서 받는 사회보장기금 단돈 $105를 가지고 그의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는 마치 노숙자같은 불쌍한 삶을 살게 된다.
급기야는 하는 사업마다 망한 절망감과 아들마저 잃은 충격으로 커넬 샌더스는 정신병까지 앓게 된다. 정신병때문에 결국 사랑하던 그의 아내마저도 그를 떠나 버리게 된다. 그 때 그의 나이는 65세였다.
다음은 그의 간증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절망과 낙심과 상처 속에 괴로워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 오더라는 것이다. 그 노래소리를 듣는 순간, 커넬은 마치 그 소리에 취한 듯이 그 소리가 나오는 곳으로 따라 갔다.
그래서 다다른 곳은 어느 조그마한 교회 예배당이었다. 그 예배당 앞에 어떤 한 미친 여자가 앉아서 너무나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바로 그 노래소리는 바로 찬송가 소리였다.
이 찬송소리를 듣고 커넬 샌더스는 그 여자 옆에 앉아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주님, 이곳에도 주님이 계
시는 군요. 미친 여자가 있는 바로 이곳에도, 주님은 계시는 군요. 제가 평생 예수님 없이 돈만 벌려고 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그렇게 한참 동안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커넬은 갑자기 정신이 맑아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로 병원에서 검진해보니 정신병이 완전히 나았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다시금 진실된 크리스천이 되어 신앙생활을 하던 중, 어느날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닭고기를 만들어 팔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물론 이전에도 양념에 대한 감각이 있긴 했지만 닭고기를 어떻게 양념하여 팔아야 할지 몰랐던 차였는데, 그냥 몇 가지 양념을 준비해서는 불을 피우고 기름 솥에 닭고기를 넣고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따라 이것 넣으라 하면 넣고, 저것 넣으라 하면 넣고 해서는 닭튀김을 만들게 되었다. 그 길로 길거리에서 KFC라는 간판을 붙여 놓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게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닭고기는 당시에 ‘목사고기’ 라고도 했다. 그 당시 목사님들이 가난해서 다른 비싼 고기를 사먹지 못하고 주로 닭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은 2차 대전 후 제대한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형편들이라 주로 이 닭고기를 많이 사먹었다고 한다.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용기를 얻고 이제는 압력밥솥과 튀김양념을 직접 가지고 다니며, 인근 식당 주인들을 찾아 다녔고 공짜로 튀긴 치킨맛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요리법을 전수해 주는 대신, 닭 한 마리당 5 cent(약 50원) 정도의 값싼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사업을 계획했다. 하지만 계획만으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는다.
한 겨울 시린 찬바람이 콜로라도 평원을 휩쓸던 날, 어느 레스토랑 앞.
새하얀 양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뚱뚱한 체구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한 사람이, 마치 온 세상의 고민을 몽땅 짊어진 듯한 표정으로, 쓸쓸히 서 있었다.
‘이번이 벌써 999번째 퇴짜구나.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게 무슨 비참한 꼴이냐.’
이런 생각이 들자, 그때까지 낙담이라고는 몰랐던 노인에게도 슬픔이 밀물처럼 몰려와,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그 때, 골목에서 놀고 있던 아이 몇 명이 다가와,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하얀 옷을 입었어요. 그리고 왜 아까부터 계속 눈을 감고 서 있기만 하세요.”
그러자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쓱 닦고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음, 이 할아버지는 말이야. 몇 년 뒤 이곳에 커다란 식당을 하나 지을 거란다. 장사가 너무너무 잘돼서, 요리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도시의 끝까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가 될 거야.
할아버지는 오늘처럼 하얀 옷을 입고, 손님들에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할 거란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너무 맛있어서 뼈까지 녹는 듯한 환상적인 치킨요리를 드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이지.
그 걸 상상하고 있자니, 가슴이 떨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이란다. 현재를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면 가슴이 벅차기만 하구나. 이 할아버지는 또다시 꿈을 행해 나갈 거란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도 10번의 실패를 더 맛봐야 했다. 이 노인의 이름은 커넬 할랜드 샌더스로, 당시 67세였다.
그는 자신의 치킨요리 프랜차이즈 계약을 따내기 위해, 미국 전국을 돌아다니는 중이다.
잠은 유일한 재산인 낡은 포드승용차에서 자고, 세면은 공중화장실에서 하고, 식사는 스스로 만든 닭튀김으로 해결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치킨을 맛있게 튀기는 기술뿐이었다. 그는 레스토랑 주인에게,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치킨요리법을 가르쳐주고 로열티를 받는 사업을 구상해냈다.
당시는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그의 발상은 새로운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레스토랑 주인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 잡상인으로 오해해 설거지 물을 끼얹기도 하고, 아들뻘 되는 사장이 “이제 그만 나이를 생각하고 쉬세요”라며 거만한 설교를 늘어놓기도 했다.
나중에 전기작가들은 “그는 2년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오직 거절당하는 일에만 종사했다”고 썼다.
3년 넘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려 1009곳에서 거절을 당했지만, 그는 ‘나에게 은퇴라는 말은 없다. 어떠한 역경이 닥쳐와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계속 움직일 것이다’라고 다짐하며, 새로운 꿈을 향해 전진해 나갔다.
그는 무수한 거절의 말을 들으면서도, 결코 “내 요리는 형편없어. 나는 아마 실패할거야”라고 말하지 않았고, 언제나 “내 요리는 완벽해. 나는 성공할 거야”라고 말했다.
“실패와 좌절은 인생 살면서 겪는 공부”
그는 절망 대신 희망을 가졌고, 우는 대신 웃었으며, 방황하는 대신 행동했다. 자신을 박대한 사장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포자기하는 대신 세상을 감싸안았으며, 항상 기도했다.
그리고 마침내 68세 때 1010번째 찾아간 레스토랑에서 첫 계약을 따낸 것이다.
첫 계약자는 피터 허먼이었다. 샌더스의 치킨 맛에 매료된 허먼은, 치킨 한 피스당 4센트의 로열티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또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이라는 이름도 제안했다.
하늘의 도움이 있어서인지 그의 닭에 대한 소식은 더욱 더 유명해져서 그가 74세가 되던 해인 1964년경에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여 600개 이상의 엄청난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는 말하기를 돈이 굴러 들어오는데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그 당시를 회상한다.
이렇게 출발한 KFC는 현재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약 1만3000여 곳의 매장을 가진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KFC의 오너는 계속 바뀌었고, 그가 사망한 지 벌써 26년이 지났지만, 샌더스는 여전히 KFC를 상징하는 인물로 남아 있다. KFC 로고에 있는 온화한 미소의 할아버지가 바로 그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훌륭한 생각,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는 남들이 포기할 만한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는 대신, 무언가 해내려고 애썼습니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공부의 하나랍니다. 현실이 슬픈 그림으로 다가올 때면, 그 현실을 보지 말고 멋진 미래를 꿈꾸세요.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세요. 인생 최대의 난관 뒤에는 인생 최대의 성공이 숨어 있답니다.”
그의 삶에서 우리에게 더욱 진한 감동을 주는 것은, 재기에 성공한 그가 자신의 경영능력의 한계를 알고, 자신보다 더욱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을 후에 켄터키 주지사가 된 존 브라운에게 KFC 회사를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자신은 그 회사에서 오히려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자문과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그리고는 온 미국과 캐나다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간증하는 삶을 살았다.
보통 회사의 CEO 같았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런 그의 존경스런 인격때문에 커넬은 그 후에도 KFC를 대변하는 인물로 계속적으로 남게 되었고, 1976년도에는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존경받는 유명인으로 조사되었다.
전문 경영 기술을 가진 새로운 주인 아래에서의 KFC는 더욱 그 성장의 속도에 가속이 붙게 되었다. 1966년도에 KFC의 주식을 공개하게 되었고, 1969년도에는 NYSE(뉴욕주식거래장)에 상장 되었으며, 1971년도에는 회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매장이 3,500개 이상으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1986년도에는 약 8억 4천만 달러(9,660억원)의 자산의 큰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기업이 가장 잘 성장할 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에게 그 자리를 양보한 커넬의 결단으로, KFC는 더욱 큰 이익과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고, 더불어 자신도 그 인격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삶에 실패와 좌절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삶에 상처와 고난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환경 앞에 나이 앞에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비전을 성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손을 대야할 때와 손을 떼야할 때를 명확히 알고 실천할 수 있다면 자기자신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과 강인한 절제력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흔히..KFC 가서 맨날 보았던 할아버지 동상..
왜 서 있을까 하고..생각 없이 다녔지만..이런저런 사연이 있었다니..
수많은 실패를 하고도 포기 하지 않고 74세에 성공하신 커넬 샌더슨.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뿐. 성공이라는 공식과는 무관한 것 같다.
끊임없는 노력이야 말로..성공이라는 공식이 아닐까...
어쩌다 나이가 의식되어가는 요즘...너무 힘들다...하다가도
아니지 하면서 나를 다잡게되는 Colonel Harland Sanders할아버지의 이야기
초보마을 우리님들 비오는 오늘 흐트러지는 마음 다잡으시리라 생각하며...
너 근심 걱정 말아라
1.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2.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3.
더 쓸 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4.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아멘
첫댓글 오 그렛군 글 보고 알앗네.....좋은 정보 감사.,...